저자 : 테오필 고티에,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장 자크 모로,
발터 벤야민, 피츠 휴 러들로, 알레이스터 크롤리 / 조은섭
원제 : Le Club des Haschischins
출판 : 지식의편집
출간 : 2020.05.30
이전에 읽은 후 시간이 조금 지난 터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테오필 고티에의 숨막히는 환상 체험에 압도되어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그의 글이 가장 마음에 들긴 했지만 다른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해시시를 찬양하거나 체험을 부추기는 글은 아니다. 당대에 문인과 지식인들이 해시시와 아편을 탐닉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남긴 다른 아름다운 글들과 마찬가지로 이에 관한 글들 역시 공개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지에 압도되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해시시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798년 이집트를 침략한 나폴레옹의 군대를 통해서였다. 술이 금지된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수천 명의 군인들이 이 동양의 이상한 약물을 접했고,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대에 해시시 금지령을 내려야 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군인들에 더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아라비안 나이트>를 통해 해시시에 대한 풍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해시시에 관한 첫 번째 연구서는 1803년 닥터 비레에 의해 출판되었다. 비레는 해시시를 트로이의 헬렌이 손님들의 기억을 빼앗기 위해 사용했던 신비한 약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저명한 아랍학자 사시는 암살자를 뜻하는 '아사신 assassin'에서 '해시시 hashish'란 단어가 유래되었고, 마르코 폴로가 기행문에서 언급한 동양의 신비한 독이 바로 해시시라고 주장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편이 크게 유행했다. 에드거 앨런 포, 워즈워스 등 많은 작가들이 아편을 창조의 뮤즈로 여겼다. 1821년 <런던 매거진>에 발표된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을 통해 아편의 중독성과 위험이 알려졌다. 아편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자 사람들은 다른 약물, 좀 더 안전한 약물을 찾기 시작했다. 정신의학을 공부한 의사 장 자크 모로는 정신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열쇠로서 환각을 중요시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해시시였다. 그는 1830년대 아랍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처음 해시시를 접했다. 해시시에 대한 경험과 연구를 통해 그는 정신병이 당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의 주장처럼 뇌손상 때문이 아니라 신경시스템의 화학적 변환에 의해 일어나는 뇌 작용의 변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백 년 후에 LSD를 연구했던 정신과 의사들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모로는 자신의 연구를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사례와 연구 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게 된 고티에를 통해 표현 능력이 뛰어난 작가들을 소개받았다. 이들은 해시시 클럽에 모였고 모로는 그곳의 약제사였다. 당시의 해시시는 지금과 달리 여러 가지 향료가 가미된 일종의 반죽(다와메스크)이었다. 항상 이국적인 것,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던 테오필 고티에는 모로를 통해 해시시를 경험한 뒤 당시 보들레르 등과 함께 거주하던 로쟁 저택에서 한 달에 한 번 해시시를 복용하는 해시시 클럽을 만든다. 그 멤버는 보들레르, 뒤마, 발자크, 위고, 들라크루아 등 당시의 뛰어난 작가들이었다.
고티에는 1843년 자신의 해시시 경험을 다룬 글을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자 1846년 <해시시 애호가 클럽>을 출판한다. 이 단편은 당시 로쟁 저택의 분위기와 거기 모였던 사람들, 해시시에 취한 그로테스크한 연회의 묘사로 유명하다. 보들레르, 고티에 등 유명한 작가들이 살았던 장소로 지금도 유명한 로쟁 저택은 1657년 로쟁 백작의 개인 저택으로 세워졌고 당시에도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었다. 고티에 글에 그 고딕적인 실내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해시시 클럽의 가장 유명한 회원은 물론 보들레르였다. 1849년 고티에를 알게 된 보들레르는 해시시 클럽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해시시를 열한 번이나 열두 번쯤 시도해 보았으나 해시시 클럽에서는 관찰자로 남았다. 1858년 발표한 <인공낙원>에 수록된 <해시시의 시>는 당시 발표되었던 사시의 글과 약제사 도볼트의 글에서 의학적인 소견들을 많이 따왔지만, 해시시 환각에 대한 문학사상 가장 시적인 묘사라고 평가받고 있다. 보들레르는 해시시가 상상력과 창조성을 높여주고 신체적인 해는 없지만 정신적인 해, 인간의 의지를 약하게 한다고 보았다.
발자크 역시 해시시 클럽에 참석했으나 대부분 복용하지 않고 관찰자로 머물렀다. 그러나 결국 호기심이 그를 이겼다. 1845년 마담 한스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시시를 복용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때 천국의 음성과 거룩한 그림들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역시 해시시 클럽에 참석했으나 복용하진 않았다. 그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으나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보들레르의 인공낙원에 감명을 받아 약물을 다룬 형이상학적인 소설 <나선>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으나 그 작품은 초안에 머무르고 말았다. 빅토르 위고 또한 해시시 클럽에 참석했으나 경험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제라르 네르발은 약물에 관한 저작을 남긴 해시시 클럽 참여자였다. 그는 1847년 <동양기행>에 해시시의 환각과 도플갱어를 다룬 기묘한 단편 <칼리프 하킴 이야기>를 수록했다. 몇몇 글에선 아편의 영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글은 대부분이 환상과 판타지의 영역권 안에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 또한 해시시 클럽에 참여했고, 해시시의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그가 복용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최고 인기 작가였던 뒤마는 당시 신문에 연재했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해시시를 복용하는 '선원 신드바드 이야기'를 다룬다. 많은 부분이 마르코 폴로가 언급했던 '산의 노인'에서 그 소재를 따왔다.
붉은 조끼와 녹색 가발, 살아 있는 바닷가재를 끌고 파리 번화가를 산책하는 네르발, 극단적인 탐미주의와 약물, 압생트, 매독, 이국 취향, 고급 창부와 자살, 죽음. 어두운 도시의 밤거리를 헤매는 보들레르와 고티에 그리고 추종자들의 댄디즘. 그들의 한쪽에는 자연과의 합일, 고대의 시간과 장소, 초자연적인 신비주의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고도로 복잡한 대도시의 세련된 취향과 문화, 유미주의가 있었다. 이사야 벌린 말대로 그들은 '어느 곳을 향해 걸어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한번 들어간 사람은 결코 살아 나오지 못하는 곳'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상식이나 중용과는 거리가 먼 태도로, 모든 것에 반응하는 민감한 영혼과 열정을 가지고 개인의 행복과 위안을 등진 채 그들은 순교자의 자세로 낯선 폴리페모스 Polyphemus의 동굴로 걸어갔던 것이다.
- 편집부
"시간이 정지됐어.
차후로 년도, 달도, 시간도
더 이상 없을 거야.
시간은 정지됐어.
우리는 시간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거야."
- 테오필 고티에
- 12월의 어느 저녁, 나는 암호처럼 만들어져 회원이 아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소환장을 받고 파리 한복판에 있는 일종의 외딴섬에 도착했다. 강은 섬을 문명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듯 두 팔로 감싸 안고 있었다. 내가 최근에 가입해서 오늘 처음 참석하는 이상한 클럽의 월 모임이 이곳 생 루이 섬의 낡은 건물, 로쟁 백작'이 세운 피모당 호텔에서 있었다.
- 1845년 당시, M. 드 해머가 기록하진 않았지만 파리에 해시시 애호가 클럽이 존재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러분에게 말해줘도 믿지 않겠지만. 미스터리한 일들이 으레 그렇듯이 말이다.
- 식사가 괴이하게 차려졌다. 이국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생긴 온갖 그릇에 음식이 담겨 나왔다. 우윳빛 돌기가 있는 베니스 산 물잔들, 가문의 문장과 역사가 새겨진 커다란 독일산 컵들, 사암에다 유약을 바른 플랑드르 산 단지들과 갈대를 꼬아 감은 가느다란 주둥이가 달린 병들이 보통의 물 컵과 병들을 대신했다. 부르주아 식탁을 장식할 때 빠지지 않는 루이 르뵈프가 제작한 불투명한 도자기와 영국산 꽃무늬 자기가 없어서 더욱 빛이 났다.
- "나는 천국에 있어. 나는 희열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 있어!”
그들이 외쳐대는 탄성들은 서로 엉키고 서로를 뒤덮었다. 숨이 가쁜 가슴에선 맛이 간 외침들이 터졌다. 무슨 환상을 보는지 바닥에 누운 채 팔을 휘젓고 발뒤꿈치와 목덜미를 흔들었다. 이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찬물을 끼얹을 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대로 두면 보일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인간의 껍데기는 쾌락을 견디는 힘은 지극히 약하고, 고통을 견디는 힘은 대단히 강하기 때문에 이 최상의 행복감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었다.
- 클럽 멤버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건반 뚜껑을 열고 그 앞에 앉았다. 그는 환각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날개가 있다고 믿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 이 쾌락적인 약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두 손이 상아로 된 건반을 동시에 찍어 누르자 아주 조화롭고 힘찬 화음이 울려 퍼졌고 모든 재잘거림이 잦아들더니 도취의 방향도 바뀌었다.
- 나는 그가 치는 곡이 오페라 <마탄의 사수 Der Freischutz>에 나오는 아가테의 아리아라고 생각했다. 천상의 피아노 소리는 나를 사로잡고 있는 흉측한 군상들, 우스꽝스러운 환상들을 싹 쓸어내는 강풍과도 같았다. 유충처럼 흐느적거리던 일그러진 형상들이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가 커튼 주름 사이에 몸을 숨기고 키득거렸다. 다시금 나는 살롱에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프리부르에 있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도 분명 지금 견자見者(우리는 절제하는 해시시 애호가를 그렇게 호칭했다)가 치고 있는 이 피아노 소리만큼 웅장하진 못할 것이다. 음들이 힘차게 진동해 빛나는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다. 곧이어 들리는 아리아가 내 안에서 나오는 것 같았고 있지도 않은 건반에 내 손가락이 닿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건반에서 나오는 파란색, 빨간색 소리들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베버의 영혼이 내 속에서 환생한 것이다.
- 간신히 계단 층계참에 도착해 내려가려 했다. 반쯤 불이 켜져 있는 층계참은 내 환상 속에서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크기로 변해 있었다. 어둠에 잠긴 그 양끝은 마치 하늘과 지옥, 두 극단으로 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자 끝도 없이 중첩된 수없이 많은 층계참들, 리락 Lylacq 탑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올라야 할 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자 층층이 이어진 나선형 심연에 현기증이 났다.
"이 계단이 땅속까지 뻗어 있는 게 분명해. 나는 세상이 끝난 다음 날에나 저 아래에 도착하겠군."
나는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떼어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림 속 인물들이 동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몇몇은 중요한 말을 할 기회를 얻은 벙어리들이 그렇듯 괴롭게 몸을 뒤틀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들은 내 앞에 놓인 위험에 경고라도 해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무기력하게 음습한 기운에 끌려가고 있었다. 마치 프리메이슨단이 겪었던 고행처럼 계단은 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끈적끈적하고 물컹물컹한 돌들이 두꺼비의 배처럼 힘없이 들어갔다.
- 테오필 고티에
- 스스로를 관찰해 그 느낌을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은 '호프만'처럼 자신의 영적인 잣대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사유의 관측소 안에 아름다운 계절들, 행복한 나날들, 감미로운 순간들을 기록해둔다. 인간이 한껏 젊어지고 원기 왕성해진 기분으로 잠에서 깨는 날이 있다. 눈썹을 옴짝달싹 못하게 붙여놓았던 잠을 털어내고 나면 강렬한 입체감, 또렷한 윤곽, 놀랄 만큼 풍요로운 색채로 외부 세계가 그를 엄습한다. 정신이 과거와는 다른 명료함으로 잔뜩 무장하고 자신의 광활한 전망을 펼치는 것이다.
- 이런 은총을 입은 사람은 자신이 훨씬 예술적이고 바르고 현명해졌다고 느낀다. 불행히도 아주 드물고 일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고귀해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나는 정신과 감각의 이런 예외적인 상태를, 짙은 암흑 속에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해 과장 없이 '천상의 상태'라 부른다. 그 상태의 가장 큰 특징은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는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란 점이다. 맑고 현명한 생활 태도의 산물일지 모른다.
- 모든 것은 보상과 징벌, 두 양극으로 통한다. 인간의 정신은 열정으로 꽉 차 있다. 흔히 쓰는 말처럼 '불타는 열정'. 하지만 타락한 채로 태어나서 자비와 온갖 미덕을 기웃거리던 불행한 영혼은 역설적이게도 압도적인 열정의 힘 앞에서 목적지를 바꿔버리고 만다. 그는 자신을 전부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다. 지나친 자만심에 빠져 상대가 자신보다 교활하고 강하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악령에게 한 올의 머리카락을 받친 사람은 곧 머리 전체를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 단순한 본능의 주인(나는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은 마치 단단한 가구와 실재 정원 대신 액자 속의 그림들로 현실을 대치하려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약물, 발효시킨 음료를 통해 천국을 창조하려고 한다.
- 하지만 프랑스산 대마는 해시시로는 적합하지 않다. 적어도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해시시와 대등한 힘이 있는 약물로 만들기에는 부적합하다. 해시시 혹은 칸나비스 인디카 cannabis indica, 인도산 대마라 불리는 이것은 쐐기풀과에 속하는 식물이며 프랑스 대마와 그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다. 놀라운 환각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서 학자들과 사교계 인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이집트, 콘스탄티노플, 페르시아, 알제리산들도 성분은 같았지만 효능이 조금 약했다. 해시시(혹은 허브, 보통 아랍인들은 육체적으로 쾌락을 주는 성분을 통틀어 한마디로 허브로 불렀다)는 배합 비율과 나라마다 다른 제조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름(인도에서는 방지 bangie, 아프리카에서는 테리아키 teriaki, 알제리와 예멘에서는 마준 드 magjound 등)으로 불렸다. 또 수확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꽃이 필 때 가장 약효가 세다. 이 꽃 봉우리로 다양한 제조를 하는데 거기에 대해 몇 마디 덧붙여 설명해보겠다.
- 그들은 해시시에 취한 상태를 신비한 환상과 마법이 펼쳐지는 거대한 무대, 마치 모든 것이 기적 같은 경이로운 나라로 여긴다. 이는 선입견이고 엉뚱한 오해이다. 대부분의 독자와 질문자들에게 해시시란 단어는 이상하고 전복적인 세계와 놀라운 꿈(사람들 생각처럼 그렇게 자주 발생하지도 않는 환각)에 대한 기대를 주기 때문에 나는 지금 당장 해시시의 효과와 꿈의 현상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를 피력할 참이다.
- 우리가 매일 밤 하는 모험 가득한 여행인 꿈에는 긍정적이고 경이로운 뭔가가 있다. 정확하게 밤마다 반복되는 경이로움이라서 그 신비함이 떨어진다. 인간의 꿈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상의 삶, 강박, 욕망, 악의로 가득한, 낮 동안에 본 사물들이 이미 거대한 기억의 그물 속에 각인되어 있던 것들과 나름의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다. 이는 자연발생적인 꿈이다. 다른 종류의 꿈이 있다. 부조리하고 불가사의하고 꿈꾸는 사람의 성격, 삶, 열정과 하등의 관계도 없고 연결도 되지 않는 꿈! 내가 앞으로 상형문자라 지칭할 이 꿈은 분명히 삶의 초자연적인 면을 구현한다.
- 하지만 그 부조리함 때문에 고대인들은 꿈을 신성하게 여겼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 외적인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오늘날도 꿈 연구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꿈에서 때로는 비난을 때로는 경고를 읽어내는 철학 학파도 존재한다. 요컨대 꿈꾸는 인간의 정신 자체가 상징적이고 윤리적인 그림을 낳는 것이다. 그 그림이 우리가 연구해야 할 사전이고, 현자만이 그 이해의 열쇠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언어이다.
- 해시시의 도취 속에는 꿈의 현상과 유사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자연적인 꿈에 속하는 범위만을 다룰 것이다. 사실 도취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은 시시각각 발생하는 강렬한 환상들 때문에 거대한 꿈을 꾸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개인적 특색을 띠고 있다. 인간은 꿈을 원했고 꿈은 인간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꿈은 또 하나의 자신일 뿐이다. 할 일 없는 한량이 자신의 삶과 정신 속에 인위적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은 에너지가 생겼다 하더라도 그는 결국 같은 인간, 즉 몇 배로 힘만 커진 변함없는 그 자신일 뿐이다. 그는 정복당한 것이다.
- 당신은 해시시의 놀라운 효과에 대해 막연하게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뭔가 환상적인 도취를 맛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당신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다. 실제 당신의 희망처럼 효과가 정말 대단한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하지만 초보자의 이런 불안이 독이 침투해 정복하기 좋은 상태를 불러온다. 이들 대부분은 첫 단계에서 효과가 늦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어린애같이 조바심을 내며 기대한 것처럼 신속한 효과가 없다고, 믿을 수 없다고 소란을 피운다. 하지만 해시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알고 있는 선수들에게 이들의 이런 행동은 가소로울 뿐이다. 첫 단계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다. 그렇게 의심하는 중에 갑자기 나타나 배로 세진다. 맨 먼저 당신을 흔드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괴상한 폭소다. 창피할 정도로 이유 없는 발작적인 폭소에 아무리 스스로를 자제하려 해도 빈번하게 혼미한 상태가 되곤 한다. 단순한 말이나 아주 사소한 생각이 야릇하고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당신은 '왜 여태껏 내가 이렇게 단순하게 보았을까' 하고 놀라기까지 한다.
- "이런 광적인 환각 상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당신에게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상태가 일종의 정신적인 안락함마저 주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있는 아무도 내 상태를 모르고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단 것도 모른다는 확신이 한층 즐거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내 친구조차 단 한순간도 내가 얼마나 야릇한 감각에 휘둘리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내 위장된 행동의 보상, 이 특별한 쾌감이 내가 건진 진짜 은밀한 보상이었던 셈이죠."
- "그리고 좌석이 있는 부스에 들어설 때 어둡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는데 이는 냉기에 대한 망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도 해시시가 항상 눈부신 빛, 찬란한 색채, 황금이 녹아 흐르는 듯한 폭포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식탁보에서 반짝이는 빛, 뾰족하거나 울퉁불퉁한 곳에 박힌 쇠붙이에서 나는 빛, 거실의 촛대에 걸린 빛,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달月에 켜는 촛불, 석양에 쏟아지는 장밋빛, 모든 빛이 해시시와 어울린답니다. 그 초라한 샹들리에는 빛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 사실 도취의 이 단계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섬세함과 극도의 예민함이 모든 감각에 나타난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 능력이 모두 상승한다. 눈은 무한한 곳까지 미치고 귀는 거대한 소음 속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 잡아낸다. 환각이 생기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외부의 사물들이 서서히 괴상한 형상으로 일그러지고, 변형된다. 이어 모호함과 착각이 나타나고 사고들이 중첩되기 시작한다. 소리는 색깔로 덧칠되고, 색깔은 음악을 품는다. 사람들 얘기론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시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쉽게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내가 이미 독자들에게 언급했듯 해시시의 도취감 속에는 긍정적인 초자연적인 힘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환각이 낯선 생동감을 유발할 뿐이다. 이 환각이 침투한다. 환각이 점령한다. 그리고 광폭한 주인처럼 당신을 압도한다. 음악 악보는 숫자가 된다. 만약 당신이 수학적 재능을 갖췄다면 귀에 들리는 멜로디와 하모니가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특성을 가진 복잡한 수식으로 변한다. 수가 수를 낳고, 당신은 음악 연주자처럼 쉽고 빠르게 그 수식의 양상과 형성을 따라갈 수 있다. 이따금 인격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범신론을 추종하는 시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객관성이 당신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생성되어 퍼지는 경우도 있으며, 외부 사물에 대한 사유가 당신 자신의 존재를 망각시키기도 하고 또 외부 사물과 당신을 혼돈하기도 한다.
- 소리가 말을 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재잘거릴 것이다. 하지만 소리가 존재해야 한다. 해시시에 취한 사람의 눈에 기묘한 형상들이 비칠 것이다. 하지만 기묘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그 형상들은 그전에 평범하고 자연적인 것들이었다. 해시시 도취 상태의 환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리 생생하고 강렬해도 이 근원적 차이를 무시할 수 없다. 후자는 주변 환경과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반해, 전자는 그렇지 않다.
- 문법, 따분한 문법마저도 주술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 단어들이 살과 뼈를 지니고 다시 태어난다. 명사는 장엄한 실체를 가지고 형용사는 명사를 글라시 glacis 기법처럼 투명한 옷을 입혀 윤이 나게 채색한다. 움직임의 천사 동사는 문장에 동력을 준다. 게으른 이나 혹은 다양한 업무 속에서 휴식을 찾는 깊은 영혼을 지닌 이들에게 또 다른 소중한 언어인 음악은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당신 삶에 대한 시를 들려준다. 음악은 당신과 하나가 되고 당신은 음악 속에 녹아든다. 음악은 당신의 열정을 연주하지만 이는 어느 한가한 저녁 오페라를 듣는 것처럼 모호하고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신에 찬, 하나하나의 리듬이 당신의 영혼을 흔들고 각각의 선율이 단어가 되어 그 모든 시정詩情이 생명을 지닌 거대한 사전처럼 당신 머리에 박히는 것이다.
- 샤를 보들레르
-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빛줄기처럼 찰나에 번뜩였다. 어쩌면 이것이 내 마음속에 떠오른 이상한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을 더 혼란스럽게 했는지도 모른다. 가정은 또 다른 가정을 낳았다. 나는 논증하려고 애썼지만 결국은 포기해야 했다. 해시시로 인한 다음 환상이 진행되는 동안 갑자기 다시 그 문제가 나타났고, 곧 내 앞에 어떤 직관처럼 답이 주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수학 공리처럼 그 진실에 따라야 했다. 그때 나는 그 장엄한 계시에 경외심으로 부들부들 떨고 서 있었다. 비록 이것이 수수께끼들을 푸는 합당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논리력을 키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장엄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직관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물질적인 웅장함이 주는 최고의 감동을 넘어서는 일이다.
-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아름답고, 또 두렵기도 한 심포니로 전 우주를 흔들었다. 갑자기 나는 직관적으로 의식이 들면서 엄숙해졌다. 눈을 돌려 들판과 물, 그리고 하늘을 둘러보며 그 속에서 놀라운 의미들을 읽었다. 내가 여태껏 어떻게 그것들을 그저 무생물로 여길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이제 그것들은 숭고한 영적 진리의 고매한 상징물이 되었고 그 진리들은 이전과 달리 확고하게 느껴졌다.
- 우주의 여왕이 나체로 지도처럼 누워 있었다. 나는 모든 창조물이 어떻게 유형화되는지를, 어떤 강력한 영적인 법칙으로 어떻게 도약하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외적인 성장 형태를 가지며 단지 존재의 껍질에 머물지 않고 육체화되는 것이다.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평선에서 수평선으로 흐르는 음악은 여전히 내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나는 그 흐르는 순차적인 질서를 알아차렸다. 그 순서를 생각하며 음악에서 우주의 움직임으로 변환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숫자들의 기묘한 특성에 따라 각각의 행성이 궤도를 따라 돌았고 모든 정신적 감정이 일어났으며 가장 작은 이끼와 균조차도 이에 따라 발아하고 자라났다. 수들이 이 모두를 통제하였고, 반대로 그것들은 수로 인해 훌륭하게 형성화되었다. 정교한 비율로 공간은 조화롭게 정렬되었고, 웅장한 음의 조화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물질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의 여왕 : 타로카드의 두 번째 그림 패. '여교황'을 의미함 -역주)
- 피츠 휴 러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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