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킴 투이 / 윤진
출판 : 문학과지성사
출간 : 2019.11.29
<만>과 이어서 읽을 계획이었는데 사이사이 일이 생겨 20여 일 정도의 시차가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의 적당한 망각이 <루>를 '루'로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프랑스어로는 '실개천, (피, 눈물, 돈 등의) 흐름'을 의미한다는 '루'는 베트남어로는 '자장가'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 소설의 화자 '응우엔 얀 띤'이 출생 이후 지금까지 겪어온 피와, 눈물과, 돈의 흐름이 지금 그녀가 아들들 곁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자장가로 잦아들기까지를 의미하는 이중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흐름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얀 띤은 <만>에서의 화자 만과 무척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그녀는 오히려 저자 킴 투이를 더 닮은 것 같다. 미래가 보장된 것 같았던 평온한 어린 시절이 전쟁의 종결과 이후 찾아온 체제의 전복으로 인해, 그녀의 표현처럼 '오히려 전쟁이 끝나자' 찾아온 몰락으로 끝을 맺게 된다. 집의 절반을 내주어야 했던 강제적인 명령은 어느새 집을 모두 비우고 나갈 것으로 변했고, 얀 띤의 가족들은 생사를 걸고 밀항을 통한 망명을 선택한다.
'보트피플'. 그들을 위해 준비된 임시거처는 200명을 위한 곳에서 2000명이 넘는 이들이 '생존'해야 하는 새로운 지옥이었다. 비가 오면 진흙길을 타고 끝없는 구더기가 잠자는 판자까지 행진한다.
그녀의 생각들은 의식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어떤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문득 떠오른 듯이 이야기하다가 툭 끊어진다. 그녀가 그곳에서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어조는 너무나 고요하고 담담하다. 이미 지나간 어떤 지점을 영화를 보듯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온도에, 독자들은 얀 띤보다 더 뜨거워지지도 차가워지지도 못한 채 그녀가 보았던 풍경을 곁눈질한다.
그곳보다는 천국 같았던 퀘백으로 정착해 처음으로 하인들의 도움 없이 남의 집안일을 하고, 생활비를 위해 일을 구하면서 적응한 가족들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안정적인 생활 수준을 갖춰나간다. 얀 띤의 표현처럼,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을 손에 쥐고 달려와 도착한 곳에서, "더 이상 허약하지 않기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기에 나는 베트남인으로 나설 권리가 없다"고 느낀다. 이 표현은 그녀가 자신의 유전적 혈통을 부정하는 의미도, 베트남인들을 부정하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이 박히고 만 어떠한 특성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베트남인이며, 또한 프랑스인이다. 얀 띤의 정체성은 혼란스럽지 않다.
요약해두면 비슷한 줄거리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직접 읽어본 <만>과 <루>의 인상은 무척 다르다. <만>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아가는 한 여인의 삶의 과정이었다면 <루>는 내키는 만큼만 슬쩍 자락을 들어 올리고 보여주는 아오자이에 가깝다. 독자는 이것이 어디까지가 '얀 띤'의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킴 투이'의 이야기인지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 그녀가 사촌과 친구들의 이야기라고 풀어놓었던 것들까지, 어느 지점에 서서 자신을 관조하고 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녀가 그 일원으로서 풀어내는 베트남의 문화적 조각들이 풍기는 이국적임에 취해 있다가, 거기에 비치는 현실에 놀라 화들짝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럼에도 거기에서는 혼란이나 비판, 원망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보이는 대로, 보아온 대로 서늘하게 읊조린다.
너무 좋게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만>보다 <루>가 훨씬 마음에 든다. <비 Vi>도 읽어보고 싶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아 아쉽다.
우리는 아직 자신의 상처를 덤덤하게 바라보기에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환상통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치유가 가능하기를 바라본다.
- 나는 원숭이해가 시작되던 구정 대공세 동안에, 집 앞에 줄줄이 걸어놓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경기관총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울려 퍼지던 때에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 온 날 사이공의 땅은 폭죽 잔해들로 붉게 물들었다. 버찌 꽃잎처럼 붉은빛이었고, 둘로 갈라진 베트남 도시와 마을에 흩뿌려진 200만 병사의 피처럼 붉은빛이었다. 나는 불꽃이 터지고 빛줄기가 화환처럼 펼쳐지고 로켓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환한 하늘의 그림자에서 태어났다. 나의 탄생은 사라진 다른 생명들을 대신하는 임무를 지녔고, 나의 삶은 어머니의 삶을 이어갈 의무를 지녔다.
- 내 이름은 어머니 이름을 조금 바꾸기만 한 것이다. 어머니 이름의 한 글자 밑에 더해진 점 하나만이 내가 어머니와 다른 사람이고, 어머니와 구별되고 어머니와 분리됨을 말해준다. 이름의 의미부터 이미 내가 어머니를 이어갈 것임을 뜻한다. 베트남어로 어머니의 이름은 '평화로운 환경'을, 내 이름은 '평화로운 내면'을 뜻한다. 바꾸어 써도 무방할 만큼 비슷한 두 이름을 통해 어머니는 내가 자신의 후속 편임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임을 확실히 했다.
- 베트남의 역사,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가 어머니의 계획을 무너뜨렸다.
(역자 주 : 프랑스어 histoire에는 '이야기 story'와 '역사 history'라는 뜻이 있다. 특히 대문자로 쓴 '역사 Histoire'는 역사 속에 일어난 일화적 사건들이 아니라 역사의 큰 흐름을 강조한다.)
- 그제야 나는 선창에서 마주 앉았던, 머리에 냄새나는 옴딱지가 가득한 젖먹이를 품에 안고 있던 그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했다. 며칠이고 내 눈앞에는 계속 똑같은 그 모습뿐이었다. 아마 밤에도 똑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천장에 박힌 녹슨 못에 끈을 걸어 매달아 놓은 작은 전구 하나가 낮이나 밤이나 똑같은 희미한 불빛으로 선창 안을 비추었다. 배 밑바닥에 모여 앉은 우리에게 낮과 밤은 더 이상 다르지 않았다. 항상 똑같은 그 불빛이 우리를 광대한 바다와 하늘로부터 지켜주었다. 갑판에 앉은 사람들 말로는, 바다의 푸른색과 하늘의 푸른색 사이 경계가 사라졌다고 했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 가고 있는지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우리가 탄 배의 배 속에는 천국과 지옥이 얽혀 있었다. 천국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고, 새로운 미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약속했다. 지옥은 우리 앞에 온갖 두려움을 펼쳐놓았다. 해적이 나타날까 봐, 굶주려 죽을까 봐, 엔진오일이 배어든 딱딱한 빵을 먹고 병이 날까 봐, 물이 부족할까 봐,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게 될까 봐,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붉은색 단지 안에 또 오줌을 누어야 할까 봐, 아이의 머리를 덮은 옴이 옮을까 봐, 다시는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없을까 봐, 희미한 불빛 아래 웅크린 200명 사이 어디엔가 앉아 있을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 아버지는 혹시라도 공산주의자들이나 해적들에게 잡힐 경우 청산가리 알약으로 가족 전부를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영원히 잠들게 할 계획을 세웠다.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어째서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어째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서 미리 앗아가려고 했는지.
- 나 자신이 어머니가 되고 나서, 사이공의 저명한 외과 의사이던 빈 씨가 열두 살짜리 아들부터 다섯 살짜리 딸까지 자식 다섯을 다섯 차례에 걸쳐 다섯 척의 다른 배에 태워 바다로 내보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더 이상 그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빈 씨는 공산당 정권의 위협에서 자식들만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정작 그의 병원에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공산당 동무들을 수술하다 죽였다는 죄목이었기에, 자신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다섯 아이를 배에 태우면서 빈 씨는 그중에 하나라도, 어쩌면 둘까지 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사람들은 자꾸 잊어버리지만, 남편들과 아들들이 등에 무기를 지고 다니는 동안 여인들이 베트남을 짊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자꾸 그 여인들을 잊는 것은, 그녀들이 원뿔형 모자를 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묵묵히 해가 질 때까지 버텼고, 그런 뒤에는 정신을 잃다시피 잠에 빠졌다. 잠이 밀려오는 동안에도 어디선가 산산조각이 나 있을 아들의 몸을, 혹은 난파선처럼 강 위를 떠다닐 남편의 몸을 떠올렸다.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온 노예들은 목화밭에서 고통을 노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 여인들은 하루하루 커져만 가는 슬픔을 그대로 가슴속에 품었다. 그러다 너무 커진 고통의 무게에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슬픔에 짓눌려 굽고 휜 등뼈를 더 이상 세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자들이 정글에서 나와 논두렁길을 걸어 다니기 시작한 뒤에도 여자들의 등에는 여전히 소리 나지 않는 베트남의 역사가 얹혀 있었다. 그렇게 짓눌린 채로 수많은 여자들이 소리 없이 생을 마쳤다.
- 그녀가 죽은 뒤 나는 일요일마다 하노이 교외에 연꽃이 피는 연못에 갔다. 그곳에 가면 나이 든 여자 두세 명이 둥근 바구니 배로 장대 노를 저어 물 위를 옮겨 다니면서 벌어진 연꽃 봉우리 안에 찻잎을 넣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이튿날 연꽃잎이 시들기 전에 다시 가서 밤새 꽃술의 향기를 빨아들인 찻잎을 하나하나 걷어 왔다. 그녀들이 들려준 말에 따르면, 며칠밖에 살지 못하는 연꽃의 영혼이 그렇게 찻잎 속에 보존될 수 있다.
- 어머니의 오빠인 '쭝' 외삼촌이 두 문화 집단 사이, 두 정치 진영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했다. 사실 '쭝'이라는 이름 자체가 한자리에 모은다는 뜻이다. 나는 쭝 삼촌을 '둘째' 삼촌이라고 불렀다.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는 형제자매들을 이름 대신 태어난 순서로, 첫째는 비워두고 둘째부터 시작해서 부르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나는 엄청나게 넓고 다리에 조각 장식이 된 상아 소파 베드에 누운 할아버지밖에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구겨진 곳 하나 없는 새하얀 잠옷 차림이었다.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돌보던 다섯째 고모가 할아버지의 위생을 철두철미하게 챙겼다. 아주 작은 얼룩도 있어선 안 되고 그 어떤 부주의의 흔적도 용납되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는 하인이 뒤에서 할아버지 등이 굽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동안 고모가 앞에 앉아 한 숟가락씩 떠 올렸다.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볶은 돼지고기를 얹은 밥이었다. 돼지고기는 얼핏 보면 다져진 것으로 보일 만큼 잘게 잘랐다. 그렇다고 정말로 다져서는 안 되고, 가로세로 2 밀리미터의 작은 조각으로 잘라야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돼지고기를 얹어 청백색 공기에 내 왔다. 이가 나가지 않도록 얇은 은 테를 두른 그 그릇을 햇빛에 비춰보면 요철들 사이로 반투명한 부분이 있고, 그 자리가 햇빛을 받아 만들어지는 푸른색 음영들이 그릇의 품질을 확인해주었다. 청백색 공기는 10여 년 동안 매일같이 식사 때마다 고모의 손바닥에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고모는 한 손에 얹은 얇고 따뜻한 그릇에 다른 손으로 간장 몇 방울을 떨어뜨렸고, 황금빛 글씨가 쓰인 빨간색 캔에 들어 있는, 프랑스에서 수입해 온 브르텔 버터 한 조각을 떠 넣었다. 나도 할아버지 집에 가면 가끔 그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프랑스에 다녀온 친구들에게서 선물 받은 브르텔 버터로 내 아들들을 위해 그 밥을 만든다. 아버지가 브르텔 버터에 대해 최상의 수식어를 늘어놓으면 오빠와 동생은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다. 나도 브르텔 버터가 좋다. 브르텔 버터 냄새는 소방수가 된 병사들과 함께 살다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게로 데려다준다.
- 아메리칸드림은 실현된 뒤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곁가지나 혹처럼 계속 달라붙어 있었다. 하노이에서 하이힐을 신고 몸에 붙는 스커트 차림으로 서류 가방을 들고 빈곤 아동을 위한 요리학교에 처음 찾아갔을 때, 내가 앉은 테이블에 음식을 내오던 젊은 종업원이 내가 베트남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처음에는 남부 억양 때문에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았다. 식사가 끝난 뒤 이유를 묻자 종업원은 순진한 표정으로 내가 살이 쪄서 베트남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 나는 함께 간 캐나다 사업가들에게 그 말을 통역해주었고, 그들은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며 웃는다. 나는 그날 종업원이 말한 것이 45 킬로그램의 내 몸무게가 아니라 나를 두툼하고 통통하고 무겁게 만든 아메리칸드림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메리칸드림 덕분에 나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실리고 동작은 단호하고 욕망은 분명했으며 걸음걸이가 빠르고 시선에 힘이 실렸다. 아메리칸드림 덕분에 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시에 베트남 여인이 눈앞이 흐려질 만큼 땀을 흘리며 녹슨 자전거에 싣고 가는 호박의 무게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 달러로 두둑한 지갑을 가진 남자들을 홀리느라 허리를 흔드는 베트남 아가씨들과 같은 리듬으로 춤출 수 있다고 믿었다. 고국에 귀환해 넓은 저택에 살면서 동시에 맨발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교차로에 운동장도 없이 바로 거리로 문이 나 있는 학교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날 그 종업원의 말로 인해 깨달았다. 전부 가질 수는 없다. 더 이상 허약하지 않기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기에 나는 베트남인으로 나설 권리가 없다. 그날 그 종업원이 옳았다.
- 맞는 말이었다. 나는 모국어를 너무 일찍 버린 탓에 다시 배워야 했다. 더구나 내가 태어났을 때는 베트남이 둘로 나뉘어 있었기에 어차피 모국어를 완전하게 배울 수 없었다. 남쪽 출신이던 나는 베트남에 돌아오기 전까지 북쪽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다. 북쪽 사람들 역시 통일 전에는 남쪽 사람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두 지역이 각자 자기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던 때였다. 북쪽의 언어는 당면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맞추어 변화했다. 그래서 북쪽의 언어에는 지붕 위에 설치한 경기관총으로 비행기를 어떻게 격추시킬지, 글루탐산나트륨으로 어떻게 혈액을 빨리 응고시킬지, 공습경보가 울릴 때 어떻게 방공호를 빨리 찾을지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이 생겨났다. 그동안 남쪽의 언어에는 코카콜라 방울이 혓바닥 위에서 톡톡 튀는 느낌을 설명하기 위한, 거리에 숨어 있는 첩자들과 반군들, 공산당 동조자들을 지칭하기 위한, 미군들의 광란의 밤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부르기 위한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났다.
- 그날의 추억은 내가 어디론가 떠날 때 달랑 가방 한 개만 챙겨 드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나는 책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그 무엇도 진정으로 내 것이 되지 못한다. 나는 호텔 침대에서도, 친구 집 손님방의 침대에서도, 모르는 사람의 침대에서도, 어디서나 내 침대에서와 똑같이 잘 잔다. 사실 나는 이사도 좋아한다. 소유물을 줄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면 좋은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할 수 있고, 눈을 감고서 눈부신 장면들만 떠올릴 수 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배 속을 간지럽히는 느낌, 아득한 현기증, 기우뚱거림, 망설임, 변화, 결핍... 떠올리는 순간에 따라 매번 내 마음대로 다른 모습으로 빚어낼 수 있는 느낌들이다. 굳건히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고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은 아니다.
- 남자를 만날 때 느낀 세세한 감정들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짧은 한순간 존재했던 몸짓들은 기억한다. 기욤이 내 왼쪽 발가락에 자기 이름의 G자를 쓰느라 스치던 손가락, 미하일의 턱밑에서 나의 1번 요추로 떨어지던 땀방울, 내가 오목가슴에 대고 중얼거리면 그 소리가 자기 심장에까지 울릴 거라던 시몽의 흉곽 아래 움푹한 자리를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로부터는 속눈썹의 떨림이 남았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뻗친 머리카락이, 어떤 이들로부터는 가르침이, 몇몇에게서는 침묵이, 한 번은 어느 오후가, 또 한 번은 어느 생각이 남았다. 그렇게, 어차피 나는 그 각각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 모두가 한 남자를 만들었다. 모두 함께 나에게 사랑에 빠지는 법을, 사랑에 빠진 여자가 되는 법을, 사랑의 환희를 갈구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사랑하다'라는 동사를 가르쳐주고 그 의미를 정의해준 것은...
- 기욤은 하노이에 2주 동안 머물다 돌아갔다. 나에게 주고 갈 옷이 더 없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그는 몇 차례 새로 세탁해서 바운스 향내가 밴 손수건을 비닐봉지에 밀봉해 보내주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소포에는 파리행 비행기표가 들어 있었다. 기욤은 미리 약속을 잡아둔 파리의 조향사에게 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제비꽃, 붓꽃, 푸른 사이프러스, 바닐라, 미나리... 특히 고향에 발을 딛기 전에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꽃이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다는 에델바이스 향기를 맡게 해 주었다. 고향을, 나의 세계를 느끼게 해 줄 향기를 찾아주려 한 것이다.
- 이후로 나는 기욤이 파리에서 구해준 그 향수만 쓴다. 그 향수가 바운스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 향기가 나를 위해 말했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하우스메이트였던 한 친구는 누가 우리를 창조했는지, 우리가 누구이고 왜 존재하는지 알기 위해 몇 년 동안 신학, 고고학, 천문학을 공부했다. 매일 저녁 하루를 마친 그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들을 안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내가 궁금한 질문은 딱 한 가지뿐이다. 내가 언제 죽을까 하는 것이다. 만일 죽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아이들이 나에게 오기 전에 죽었어야 한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햇볕에 익은 아이들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 밤에 악몽에서 깨어난 아이들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손에서 나는 먼지 냄새, 이 냄새들 때문에 나는 살아야 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들의 속눈썹 아래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황홀해하고, 눈송이에 감동하고, 아이들 뺨에 흐르는 눈물 한 방울에 가슴이 철렁한다.
- 베트남을 떠나왔기에, 나의 아이들은 나를 잇고 나의 이야기를 이어간 적이 없다. 내 아이들의 이름은 파스칼과 앙리이고, 나를 닮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밝은 색이고 피부가 하얗고 속눈썹은 짙다. 새벽 3시에 자다가 깨어난 아이들이 내 품으로 파고들 때,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머니로서의 본능은 한참 뒤에, 밤을 지새우면서, 더러운 기저귀를 갈면서, 해맑은 미소를 보면서,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맛보면서 그렇게 찾아왔다.
- 와이엇은 아오자이에 반했다. 그 긴 옷이 여자들의 몸을 경이로울 정도로 섬세하게,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를 따라 어느 전원주택에 간 적이 있다. 원래는 공원이었던 곳에 정자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가려져 집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곳에 사는 나이 든 두 자매가 생계를 위해 자신들의 가구를 팔았다. 와이엇이 가장 단골 수집가였기에, 그녀들은 우리에게 내 할아버지가 누워 지내던 것과 비슷한 커다란 마호가니 나무 소파 베드 위에, 옛날에 아편을 피우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세라믹 방석에 머리를 대고 누워보라고 했다. 주인 여자가 절인 생강편과 차를 내왔다. 그녀가 나와 와이엇 사이에 잔을 내려놓기 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때마침 불어온 미풍이 그녀의 아오자이 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미 예순 살의 여인이었음에도 그녀의 아오자이는 너무도 관능적이었다. 살짝 드러난 살결이 세월의 힘을 조롱하듯 여전히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와이엇은 벌어진 아오자이 틈새로 드러나는 그 미세한 공간이 자신에게는 황금의 삼각지대라고, 행복의 섬이라고, 자기가 누리는 베트남이라고 했다. 그는 차를 마시며 속삭였다. "It stirs my soul."
- 지금 할머니는 많이 늙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여왕처럼 화려하게 아름답다. 사이공 응접실에 앉아 있던 40대의 할머니는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던 시대의 아우라를 지녔다. 아침마다 많은 상인이 새 물건들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집 문 앞에서 기다렸다. 대부분은 할머니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새 접시를, 유럽에서 막 도착한 조화造花를 가져왔고, 물론 할머니의 여섯 딸을 위한 브래지어도 가져왔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시장이 불안해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했기에, 다이아몬드를 가져올 때도 있었다. 그 시절에 주변의 베트남 여자들은 모두 다이아몬드 감정용 돋보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다이아몬드 속의 이물질을 가려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가계 관리에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은행은 체계가 잡히지 않아 믿을 수 없었기에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금과 다이아몬드를 사고파는 기술을 완벽하게 익혀야 했다. 할머니는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며칠이고 온종일 집에 앉아서 필요한 물건을 샀다. 할머니를 찾아온 사람들이 전부 상인은 아니었다.
(리뷰자 주 : 할머니의 여섯 딸, 그래서 일곱번째 이모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내력을 짐작할 수 있게 등장한다.)
- 흩어져 살던 대가족이 85세를 맞은 할머니를 위해 업스테이트 뉴욕에 모였을 때 역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서른여덟 명이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고, 웃고 장난을 치며 즐겼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여섯째 이모처럼 엉덩이가 볼록하다는 것을, 여덟째 이모와 비슷한 옷을 즐겨 입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덟째 이모는 나에게 언니와 같다. 내 어머니 몰래 이모가 어떤 남자의 자전거 탑튜브에 올라앉았을 때, 이모를 팔에 안은 그 남자가 이모 귀에 대고 '여신'이라고 속삭였을 때 어떤 전율을 느꼈는지 이모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스쳐가는 욕망, 이내 사라져 버리는 달콤한 말들, 훔쳐온 순간을 어떻게 놓치지 않고 맛볼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리뷰자 주 : 여덟째 이모는 혈연으로 맺어진 이모는 아닌 듯 하다. 책 전체에서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보트피플로 이주 후 이모와도 같은 존재가 된 이를 지칭하는 게 아닐까.)
- 아시아에서 돈으로 하룻밤 사랑을 사는 외국인 남자들에게 물어보았다. 베트남 혹은 태국의 정부들과 요란스러운 밤을 보낸 뒤 왜 굳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그 여자들을 붙잡는지. 그녀들은 밥 대신 차라리 밥값을 받고 싶었을 텐데, 그러면 그 돈으로 어머니의 신발을 사고 혹은 아버지의 침대 매트리스를 바꾸고 혹은 남동생을 영어 수업에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녀들이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어차피 문 닫고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나 쓰일 것들뿐인데 무엇 때문에 침대 밖에서 같이 있기를 바라겠는가. 남자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여자를 잡아두는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그 여자들이 젊음을 돌려준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했다. 젊은 여자들을 보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꿈과 가능성이 가득한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그 여자들은 자신이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는 환상을, 적어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활력과 욕망을 준다고. 그 여자들이 없으면 자신의 처지에 환멸이 밀려오고 슬픔이 가시지 않는다고. 그것은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그리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슬픔이다. 5달러면 한 시간의 행복을, 적어도 애정을, 누군가가 함께 있으면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이 나라 아닌 다른 곳에서는 돈이 있어도 행복을 얻을 수 없었다는 환멸이다. 5달러만 내면 서툰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와 함께 커피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자기들이 베트남어로 '후추' 얘기를 하려다가 '오줌 누다'라는 단어를 발음하면 환한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두 단어는 베트남어에 숙련된 귀가 아니면 구별하기 힘든 억양 차이밖에 없다. 그저 억양 하나로 단순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나는 시가 라운지에 있는 붉은 가죽 소파를 좋아한다. 그 소파에 앉아 친구들에게, 때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맨몸을 드러낸다. 물론 듣는 사람은 그것이 내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살아온 나날의 조각들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처럼, 혹은 어느 익살꾼이 지어낸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혹은 이국적인 배경 속에서 색다른 소리가 들리고 기이한 인물들이 살고 있는 먼 나라의 이상한 이야기인 양 말한다. 담배 연기 가득한 라운지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이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는 아시아인에 속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이누이트들처럼, 나의 아들들처럼, 동양의 피가 흐르는 모든 사람처럼 엉덩이에 푸른 반점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는다. 몽고반점은 어린아이일 때 사라지기 때문에, 나의 유전적 기억을 드러내는 그 흔적을 나는 잊는다. 그리고 나의 정서적 기억은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흐려지고, 흩어지고, 뒤섞인다.
- 그렇게 멀어졌기에, 떨어져 나왔기에, 유전적 기억과 정서적 기억 사이에 놓인 거리 덕분에 나는 내가 태어난 곳에서라면 다섯 식구가 1년 동안 먹고살 수 있을 만한 돈을 내고, 전부 다 알면서도 아무런 가책 없이 산다. "유 윌 워크 온 에어 You'll walk on air." 상인이 장담하면 나는 그냥 산다. 정말로 하늘을 떠다닐 수 있고 우리의 뿌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을 때(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양 하나와 대륙 두 곳을 지나는 일이 아니라 신분 없는 무국적자 난민 상태를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숨겼던, 생존 배낭과도 같았던 아크릴 팔찌의 운명에 대해 초연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닷물에 빠지지도 않고 해적도 피하고 이질에서도 살아남은 그 틀니 잇몸 색깔의 팔찌가 원래 모습 그대로 어느 쓰레기장엔가 묻혀 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살던 그런 초라한 아파트에도 누군가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다면, 분홍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런 보잘것없는 팔찌까지 들고 갔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 식구들은 훔쳐간 물건을 정리하던 도둑이 그 팔찌를 일찌감치 내던졌을 거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수천 년이 흐른 뒤에, 다이아몬드들이 어째서 이렇게 땅 속에 원을 그리며 묻혀 있는지 의아해할 고고학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 학자는 다이아몬드들이 종교 제의와 관련된 것이라고, 동남아시아 바다 밑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금들과 마찬가지로 신비스러운 제물이었다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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