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젠 캠벨, 더 브러더스 매클라우드]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엉뚱한 손님들과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

일루젼 2022. 7.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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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젠 캠벨 / 더 브러더스 매클라우드 / 노지양

원제 : Weird Things Customers Say in Bookshops 
출판 : 현암사 
출간 : 2018.05.28 


       

머리를 식힐 겸 간단한 책들을 읽고 싶어져서 가벼운 것들로 골라 읽는데 꽤 즐겁다.

누워서 딩굴거릴 수 있는 시간을 킬킬거리며 행복하게 보내는 건 최고다. 

잘까 말까 고민하면서 리디 셀렉트를 뒤적거리다가 이 책을 골랐는데 강력 추천한다.

 

<그런 책은 없는데요...>는 서점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은 책이지만, 다른 분야에 적용해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들이라 웃기면서도 슬프다.

(사실 경험해 본 것들이 꽤 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지만 불특정 다수를 접하게 되는 직업들 특유의 고충이 있다. 처음에는 분야가 다른 영역을 체험해보지 못해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못해서 일어나는 실수가 아닐까 정도로 넘겼지만 적지 않은 수의 특이한 손님들을 겪다 보니 꽤나 지쳤었다. 당시 나의 의식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대략 이랬다.

 

- 아르바이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사업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모를 수 있다.

- 그러나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두 그럴 가능성은 무척 낮지 않을까? 

-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인가? 그렇다기엔 감정/응대/서비스 노동자들이 토로하는 고충들이 공통적이다.

 

- 상대의 수익을 줄여야 나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을까 날이 서 있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다.

- 상대의 지적 재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결과적으로, 내가 여기서 어떻게 응대를 하건 이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어디를 가나 이런 일을 겪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조금 더 현명한 대처 방식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나도 그런 여유는 없었다. 사람마다 상식과 가치관이 모두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상대가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때의 내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입지가 꽤 깔끔한 곳이라 상대적으로 청정한 편이었는데도, 드물지 않게 특이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외부 세계는 자신의 내면이 표현된 것이다'라는 말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볼 점이 많은 말이다. 당시 나의 경우에는 '옳음'에 대한 집착이 꽤 있었고, 상대방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면이 강했기에 더 예민하게 괴로움을 느꼈을 수 있다. 또 반대 입장에 있었기에 그렇게 느낀 것뿐, 나 역시 어떤 곳에서는 이상한 손님이었을 수도 있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이 이상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그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하거나)

 

따라서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상대가 이상하거나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보다는, 한 번쯤은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할 수 있다. 내가 가시덤불 사이를 걸어 다니고 있으면서 옷자락이 자꾸만 걸린다고 불평하는 건 상황을 개선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덤불 밖으로 나가거나, 가시를 없애거나,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긴 한 것이다.

 

가능하다면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는 내가 아니므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러므로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대방의 눈으로 봐야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가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내 의도나 내 입장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하며 정당화해도 이미 발생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언행의 상황에는 '상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나는 고통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일종의 탈피 현상이다. 경계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더이상 나와 합치되지 않을 때, 새로운 나와 경계 사이에서의 마찰이 불편함과 고통을 야기한다. 이전까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가 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치관이 탄생한다고 믿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직원'의 입장에서 읽어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되리라 말씀드릴 수 있겠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손님'의 입장이 되지는 않을지, 조금은 조심하며 상대의 입장을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깔끔한 손님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쓰게 되었던 나의 경험상, 뭔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드는 건 덤이고.  

 


 

    

- 손님 : 1960년대에 출간된 책을 찾고 있어요. 작가는 모르겠고 제목도 기억 안 나는데... 표지가 녹색이고요. 읽으면서 여러 번 깔깔 웃었거든요. 어떤 책인지 아시겠어요?

 

- 손님 : 이 책 환불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직원 : 네, 그럼요. 혹시 영수증 있으세요?

손님 : 여기 있어요.

직원 : 음, 손님 이 책은 워터스톤스 서점에서 구입한 책인데요.

손님 : 그런데 여기도 서점이잖아요.

직원 : 네, 그렇긴 한데 워터스톤스 서점은 아니죠. 

 

- 손님 : 혹시 제인 에어가 쓴 책 있나요?

 

- (전화벨이 울린다)

직원 : 여보세요.

손님 :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 조카에게 선물할 책을 찾고 있어요. 여자아이고 여섯 살인데 어떤 책을 사주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히네요.

직원 : 네, 도와드릴게요. 아이가 뭐에 관심이 많은가요?

손님 :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자주 만나질 못하거든요. 언니가 외국에 살아서요.

직원 : 네. 조카 이름이 뭔가요?

손님 : 소피요.

직원 : 그렇다면, 딕 킹 스미스의 <소피> 시리즈 어떠세요? <소피는 여섯 살>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거든요.

손님 : 아, 그거 괜찮겠네요. 좋은 아이디어예요.

직원 : 그럼 저희한테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볼게요. 아마 있을 거예요.

손님 : 아뇨,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요. 

직원 : 네? 그런데... 책은 제가 추천해드렸잖아요.

손님 : 알아요. 고마워요. 아마존에서는 왜 이런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전문 상담원이 없는 건지. 아주 불편하다니까요. 그래도 당신처럼 작은 서점 직원들이 있으니까.

직원 : ...

 

- (한 아이가 바닥에 있는 책을 갖고 놀다가 찢어버린다.)

아이 엄마 : 안 돼. 스티븐. (전혀 심각하지 않은 말투로) 책을 조심히 다뤄야지.

(아이에게서 책을 빼앗아서 책꽂이에 다시 꽂아놓는다.)

직원 : 손님, 실례합니다만.

아이 엄마 : 네?

직원 : 방금 아드님이 '차 마시러 온 호랑이'의 머리를 찢어버렸는데요.

아이 엄마 : 그러게요. 애들이란, 못 말린다니까, 그죠?

직원 : 네. 그런데 저희는 이제 저 책을 판매하지 못하잖아요. 파손되었으니까요.

아이 엄마 : 그래서 저더러 어쩌라고요? 

 

 - 손님 : 열한 살짜리 딸에게 사줄 책을 찾고 있어요. 추천하는 책이 있나요? 얼토당토않은 것 말고 교육적인 책이면 좋을 텐데.

직원 : 그렇다면 <히틀러가 분홍색 토끼를 훔치던 날>은 어떠세요? 열한 살이면 학교에서 곧 제2차 세계 대전을 배울 텐데, 이 책은 주디스 커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주디스 커의 아버지가 독일 기자였는데 히틀러에 반대하는 발언을 해서 가족이 유럽 전역을 떠돌게 되고, 그녀가 프랑스와 영국의 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손님 : 우리 딸이 히틀러니 나치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건 안 배웠으면 좋겠는데. 어쨌거나 너무 오래된 이야기잖아요. 현실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 아무튼 그런 이야긴 싫증 나요.

 

- 손님 : 혹시 요즘 직원 구하고 있지 않으세요? 우리 딸이 토요일에 여기서 일하면 좋을 텐데. 

직원 : 따님이 저희 서점에서 일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요. 이곳으로 와서 보고 직접 이야기해보는 게 가장 좋을 거예요.

손님 : 사실 우리 딸은 일자리에 관심이 없어요. 도무지 의욕이 없죠. 그게 바로 문제예요. 그래서 말인데 언제 한번 우리 집에 들르셔서 우리 딸에게 이 서점에 와서 일해보라고 설득해주시겠어요? 그러면 고민해볼 수도 있는데. 

 

- 손님 :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책을 들고) 제가 여기 있는 조리법이 적힌 페이지를 복사하면 신경 쓰이실까요?

직원 : 네. 신경 많이 쓰일 거예요.

 

- 손님 : 예전부터 제 꿈이 서점 주인이었는데.

직원 : 그러세요?

손님 : 그럼요. 서점에는 서점만의 매력과 분위기가 있잖아요. 이를테면, 굉장히 편안하고 느긋해 보여요. 쉬엄쉬엄 놀면서 해도 될 것 같아요.

 

- (전화벨이 울린다.)

직원 : 여보세요?

손님 : 그 서점에 불만 사항이 있어서 건의하려고요.

직원 : 네, 말씀하세요.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손님 : 우리 딸이 <괴물 그루팔로>를 읽고 며칠째 악몽을 꾸고 있어요.

직원 : 그런가요?

손님 : 이 문제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직원 : 이제까지 아이가 <괴물 그루팔로>를 읽고 악몽을 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원래가 공포스러운 책이 아니라서요. 이 책을 추천한 저희 직원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책, 언제 저희 서점에서 구입하셨나요?

손님 : 그 서점에서 구입한 거 아닌데요.

직원 : ...

손님 : 여기는 캐나다예요. 구글에서 이 책의 재고가 있다고 나오는 모든 서점을 검색해서 전화 중이고요. 지금 제가 그쪽에 전화 건 이유는 지금 당장 이 책에 대한 판매 중지를 요청하기 위해서예요.

직원 : ... 아. 

 

- (손님이 서가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읽는다. 그러다 페이지 귀퉁이를 삼각형으로 접더니 다시 서가에 꽂아둔다.)

직원 : 손님,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손님 : 방금 이 책 1장까지 읽었는데 마저 읽으면 친구와의 점심 약속에 늦게 돼서요. 그래서 이렇게 표시해놓고 내일 다시 와서 마저 읽으려고요.

 

- <에든버러 서점에서>

 

 

- 손님 : 안녕하세요. 만약 책을 사서, 읽은 다음, 다시 가져오면 다른 책으로 교환이 되나요?

직원 : 그건 안 되죠... 손님들이 그렇게 하시면 저희는 돈을 벌 수 없으니까요.

손님 : 아! 그렇군요.

 

- 손님 : 저 혹시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직원 : 음... 그게...

손님 : 고마워요. 목이 말라서.

직원 : (서가를 가리키며) 혹시 찾고 계신 책이나 마음에 드는 책 있으세요?

손님 : 오, 책을 사려는 건 아니고요. 버스 기다리고 있어요.

 

- 손님 : 누군가 셰익스피어란 남자에게 영어 철자 제대로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제 말이 맞죠? 그렇죠?

(리뷰자 주 : 리핑 얀스는 고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이다.)

 

- 손님 : 시집 코너는 각운이나 압운이 있는 시와 없는 시로 나뉘어 있나요?

직원 : 아뇨, 알파벳 순서로 진열되어 있어요. 어떤 시집을 찾으세요?

손님 : 각운이 있는 시죠. 약강 오보격이고 열 줄이 넘지 않아야 하고 여성 시인의 작품이었으면 좋겠고요. 그 조건 안에서라면 어떤 시건 상관없어요. 

(리뷰자 주 : 이건 좀 멋있는데...?)

 

- <리핑 얀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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