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손소영, 임혜숙, 최진희, 이레나, 김정선] 공학 하는 여자들 -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 한국 최고의 여성 공학자들

일루젼 2022. 7. 7. 21:21
728x90
반응형

저자 : 손소영 / 임혜숙 / 최진희 / 이레나 / 김정선
출판 : 메디치미디어 
출간 : 2017.11.25 


       

제목이 신선하게 느껴져 선택했다. 17년도에 발간된 책이라 저자들도 젊은 분들이 아닐까 싶었는데 60년대 분들이 중심이 되어 있어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관련 분야에서 자신만의 업적와 입지를 다진 분들로 모시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참 소수구나 싶기도 했다.

 

80년대에 유학을 다녀온 재원들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조금 묘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때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있었지만, 유학이라고 하니 정말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서였다. (저자들 중 반수 이상이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을 갈 수 있었다고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띈다.) 배움에 대한 투자는 시일이 오래 걸리고, 당장 그 성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기술적 발전은 지난 세대들의 노력 위에 쌓이고 있다는 것, 그 시행착오들조차 소중한 데이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고색창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해서 적용하면, 물질적 축적보다는 개인의 역량 강화에 투자하는 것이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일 수 있다. 돈은 잃어버릴 수 있지만 돈을 버는 능력이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는 결론이 나오지만 사실 쉬운 선택은 아니다. 결과값이 확실하지 않은 것에 투자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핵심 변수로 '자신'이 들어간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상당한 일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가기 힘든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공이 맞지 않아서, 환경상 계속할 수 있는 분야를 공부해야 해서, 제안이 들어와서 등의 다양한 사유들로 '공학'을 하게 된 다섯 명의 저자가 자신들의 연구 업적과 분야에 관한 설명을 풀어놓는다. 그 속에는 여성으로서의 삶, 과학도로서나 공학도로서의 삶, 연구자로서의 자부심, 교육자로서의 보람이나 사업가로서의 보람 등이 다양하게 스며있다. 글로서만 만나고 있는데도 저자마다의 개성을 느낄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묘하게 공통적인 '이과생'의 문장이 느껴져서 그것도 신기했다. 논문에 익숙한 사람들의 글은 대개 이런 느낌인 것 같다.)

 

대체로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이나 다시 학업을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발간된 지 시일이 꽤 지나긴 했으나, 꼭 공학이 아니더라도 시야를 넓혀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공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원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공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즐겁게 읽었다.         

 


 

산업공학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흥미를 주는
손소영 교수님,

벨 연구소의 영광을 발판 삼아 후학을 양성하고 계신
임혜숙 교수님,

독성 물질 이슈로 요즘 유난히 바쁜
최진희 교수님,

의료기기 발명에 푹 빠져 있는
이레나 교수님,

식품 영양이 컴퓨터를 만났을 때의 놀라운 변화를 보여 주며
공학하는 여자들과 함께해 주신
김정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과학이 어디에 쓰일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학문이라면,
공학은 반드시 어디에 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이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발견함으로써 진리에 한 발짝 다가가는 기쁨이 있다면, 
공학은 우리 삶의 질과 복지를 향상하는 데 보람이 있다.

 

 

 

- 공대를 선택하는 여학생이 적은 이유로는, '공학은 남성의 영역' '여자가 기계를 다루는 건 이상해'라는 편견이 가장 클 것이다. 사실 IT 소프트웨어 원리의 기반인 '알고리즘'을 발견한 사람(에이다 러브레이스)도, 무선 통신기술을 만들어 '와이파이'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사람도 여성(헤디 라마)이었다. <공학 하는 여자들>은 편견에 맞선 여성 공학자 다섯 명의 일과 삶을 통해 공학은 원래 여성의 분야라고 '쿨'하게 선언하는 듯하다. 아직도 "여자가 공학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에게, 공학을 선택하길 주저하는 여학생들에게 롤 모델을 제시하는 필독서이다.

-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 그토록 바라던 수학과에 들어갔는데... 복잡한 수학 이론을 배우는 내 머릿속에는 질문 하나가 맴돌았다. '저 이론을 배워서 어디에 쓰는 걸까?' 의구심을 품었기 때문인지 성적도 시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산업공학 분야를 알게 되면서 현실 문제를 풀어나가는 산업공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산업공학은 이론을 정립하기도 하지만, 현실의 문제 해결에 깊이 관여한다. 휴대전화의 최적 디자인 조건을 찾아 적절한 출시 시기를 결정하는 일부터 미래 유망 기술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까지 산업공학이 다루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산업공학자인 나는 수많은 산업 데이터, 사회 데이터 등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낸다. 바로 데이터마이닝이다.  

 

- 처음으로 해외 연구년의 기회를 얻어 석사 과정을 했던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로 방문 연구를 가려고 절차를 밟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술보증기금에서 나를 찾아왔다. 기술보증기금은 재정 담보가 미약한 기술 기반 기업의 혁신을 위해 기업을 선별하여 정부 재원으로 보증을 서서 해당 기업이 돈을 빌릴 수 있게 하는 기관이다. 쉽게 말해서, 돈을 빌릴 때 필요한 땅이나 건물 등의 담보가 없는 기술 기업도 그 기술이 뛰어나다고 기술보증기금이 판단해 주고 보증을 서면, 시중은행이 기금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기금의 보증을 받고 돈을 빌려간 많은 기업이 부채를 갚지 못하면서 기금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었다. 기술보증기금은 나에게 이런 부실 금융을 해결할 새로운 기술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용카드 회사가 신용카드를 발급해 줄 때, 발급 대상자가 과연 돈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회사마다 판단하고 발급하는 기준이 있는 것처럼 기술신용평가 모형도 과연 기술 기반 기업이 빛을 상환할 수 있을지 능력을 판단하는 프로그램이다. 뜻깊은 일인 점은 이해했지만, 나는 연구년을 앞두고 있어서 과제 수행이 어렵다고 거절했다. 그런데도 기금이 수차례 부탁을 거듭해서 더는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 과제를 들고 영국으로 연구년을 떠나게 되었다. 

 

- KTRS는 1998년부터 축적된 데이터 1만 1000여 건을 활용해 다양한 통계적 검증과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바탕으로 개발한 시스템으로, 기업의 재정이나 과거 실적보다 기술력에 기초해 미래의 성공 가능성을 평가한다.  

 

- 내가 개발한 KTRS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본 데 반해, EFL은 사람을 평가했다. 그것도 사람의 심리와 활동 상태를 기초로 한 평가였다. 그 신선한 접근에 나는 매우 놀랐다. 기술 역시 사람이 관리하니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 또한 기술 금융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심리와 같은 대안 정보 활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 깊이 연구하고 싶어서 2014년에 돌아온 세 번째 연구년에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선택했다. 

 

- 하버드에서 한 여러 경험 중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동일한 문제를 각자 견지에서, 그러면서도 융합적으로 풀어 가는 인문사회학 세미나였다. '신용'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리면, 경제학에서만 논하는 게 아니라 역사학은 국가 신용의 역사를, 사회학은 가부장적 가족의 여성 신용 문제를 다루는 등 학문의 경계를 정하기보다 하나의 문제를 풀 때 집단 지성적 노력을 중시해 배울 점이 많았다. 

- 내 연구들을 하나의 키워드로 묶는다면, '데이터마이닝'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박사 과정 때 했던 첫 연구 '석탄 문제'부터 해군대학원 교수 시절 모병과 무기의 신뢰성 연구, 그리고 KTRS 모형을 포함해 지난 30년간 수행한 과제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요즘 들어 빅데이터와 데이터마이닝이라는 단어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지만, 내가 박사 과정을 할 때만 해도 이런 작업을 데이터마이닝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는 이 단어가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데이터마이닝을 했다. 대표적인 게 역사학이다. 학창 시절에는 역사를 배울 때 '옛날에 다 지나간 일을 왜 공부하나'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역사학은 수천 년간 축적된 수많은 역사적 자료 중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찾는 학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파악해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사학자들이 사료(史料)를 데이터마이닝한다면, 산업공학자인 나는 다량의 산업 데이터, 사회 데이터 등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 해당 조직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준다.

 

- 하루는 자원봉사자가 금으로 디자인한 배이자 소금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는 버흘리 네프(Burghley Nef)를 설명해 주면서 이 배와 관련된 신화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알려주고 소금의 역사도 들려주었다. 디자인과 역사, 신화가 만나는 설명이었다. 이런 강의를 듣고 오페라하우스에서는 관련 오페라를,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관련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면 진주를 실에 꿰듯이 머릿속에 부분 부분 조각나 있던 예술과 문화, 역사가 꿰어졌다. 이런 경험이 우뇌를 자극하고 깨워 주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영화가 나왔을 때 이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위대했던 키로스(Cyrus)와 이야기를 관련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에서 이라크 출신 자원봉사자에게 듣던 경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세울 때 필요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 주었고,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다.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우선은 전공 분야에 매진해야겠지만, 적절한 시기에 문화 예술 분야를 접해 공학과 접목한 융합적 사고 체계를 자연스럽게 갖추게 되길 바란다. 

 

- 산업공학자 손소영 

 

 

- 그 순간, '어? 나도 유학을 갈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외국 대학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흥분이 되었다. 당시 내 주변에는 유학 가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지만, 나는 유학 비용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석사 과정까지만 공부할 작정이었다. 새로운 길을 알게 된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국비유학생 선발 시험을 치렀다. 1차 시험인 영어와 한국사는 쉽게 통과했는데 2차 전공 면접시험에서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다음 해에 다시 치르기로 하고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나는 1년간 일하면서 시험을 다시 준비해서 치렀다. 그런데 또 떨어지고 말았다. 어렵지 않게 무난히 시험을 잘 치렀는데 왜 떨어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다음 해에도 역시 낙방해 결국 세 번이나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제야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제도는 대학 졸업생보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 유학을 가는 학생들을 더 많이 지원하는 게 아닌가. 나와 함께 국비 유학생 선발 시험을 본 석사 졸업 선배들이 하나둘 합격해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눈치를 챘다. 나는 곧바로 1989년에 서울대 대학원 제어계측 공학과에 들어갔다. 2년 뒤 신호처리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해에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그토록 원하던 유학을 떠나는 데 성공했다. 

 

-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로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첫 번째가 자기가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다. 학자로 알고리즘을 연구하는 내가 새로운 알고리즘 또는 더 좋은 알고리즘을 떠올리는 때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을 때가 아닌, 양치질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창밖을 내다볼 때였다. 평소에도 내내 관심을 갖고 의식과 무의식이 온통 알고리즘에 가 있기 때문에 뜻밖의 순간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해야 평소에도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첫 번째다. 

- 두 번째는 끈기다. 학부생들을 가르치거나 연구 지도를 하면서 학생들이 조금만 더 참아내면 좋을 텐데 막바지 고비 앞에서 손을 놓아버려 너무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았다. 조금 어려워서 좌절하면 '이 길이 아니고 다른 길이 내 길이 아닐까' 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좌절은 항상 하게 마련이다. 특히 전자 분야는 어려워서 다른 분야보다 더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 전자 분야는 과거에 축적된 기술을 모르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없다. 1897년 조지프 존 톰슨(J. J. Thomson)이 전자(electron)라는 미립자를 발견한 때를 전자공학의 시작이라고 친다면 전자공학은 지난 120년간 기술이 가장 급속도로 발전한 분야다.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과거에 축적된 기술을 배우는 데도 허덕거리기 쉽다. 넓고 방대한 전자 분야 중 한 가지 연구를 파고드는 연구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최초의 장애물이 방대한 전자 분야의 기본을 파악해야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연구는 쏟아지고 알아야 할 것은 광범위하다. 도처에서 좌절이 발목을 잡을 텐데 이때 필요한 게 근성이다. 어떤 학자나 전문가도 좌절 없이 타고나서 잘하게 된 경우는 드물다. 

- 그리고 여성이 전문가로 살아남으려면 아내의 경력 개발과 유지에 협조적인 남편을 만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남편과 아내가 동시에 공부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양육 문제에서나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유학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남편이 학위를 받은 후 공부하겠다는 여성을 많이 보았다. 그분들 중 아주 적은 수만이 학위를 마치는 데 성공한다. 학위를 받을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도 학업에 대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육아에 밀려 학위를 포기한 경우이다. 결혼 초기에는 나도 남편과 가끔 다투었다. 가사와 육아에 대한 생각의 차를 좁혀 나가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유학 시절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한 적 없이 가사와 학업을 병행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육아에 매우 적극적이고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 준 덕택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몇 번 집안 살림을 도와주는 분이 와 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편은 식탁을 차리고 나는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가사가 분담되어 있다. 경쟁적인 성격이었던 과거의 나에 비하여 지금의 나는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훨씬 편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있다. 공평하고 합리적인 남편을 만나 오랜 기간 큰 갈등이나 다툼 없이 살아온 덕이 아닌가 싶다. 

 

- 내가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나 국비 유학에 합격했을 때, 학위를 받았을 때와 같은 어떤 성취를 이루어 냈을 때 어머니는 늘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렸을 때는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고맙다'는 말씀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살아가면서 점점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이루어 낸 좋은 일들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신 것 같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인지 나 또한 내게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에서 감사함을 많이 느낀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어떤 성취를 이루어 냈을 때 나도 모르게 어머니처럼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 칩이란 IC(Integrated Circuit, 집적회로)라 불리는 반도체 부품으로, 복잡하고 많은 기능을 집약적으로 제조한 것이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대부분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작고 까만 조각이다. 칩은 전자 제품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그 제품의 머리 또는 두뇌라고 볼 수 있다. 

 

- 스펙과 최상위 구조 정의. 칩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설계 제작하려는 칩이 수행해야 하는 기능과 구조를 정의하는 과정이다. 칩 내부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능을 나누어 블록도(block diagram)로 형상화한 후, 블록별 기능은 무엇이고 블록들 사이에 어떤 데이터를 주고받는지 등을 정한다. 칩의 동작 주파수나 메모리 크기, 전력 소모 등을 고려하게 되는데 이를 칩의 스펙이라 한다. 또 전체 개발 일정을 잡고, 칩의 동작시험(verification)은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계획도 세운다. 칩 내부의 동작뿐 아니라 이 칩과 연결되어 함께 동작해야 하는 외부 디바이스에 대해 지식과 경험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이 일을 담당할 수 있다.


- 전자공학자 임혜숙 

 

 

- 물론 이때는 훗날 생물학에서 벗어나 독성 연구에 전념하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생리대 유해 물질 검출 등 최근 화학 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커지고 있는데, 이는 내가 하는 일과 직결된 문제들이다. 편리함을 위해 개발된 화학 물질이 우리 몸에 악영향을 끼치는 독성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사전에 유해성을 평가하는 연구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 내가 들어간 연구실은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년을 앞둔 노교수인 라마드 교수님이 그룹의 리더였고, 젊은 조교수였던 티에리 카케(Thierry Caquet) 교수님 그리고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소(CNRS) 소속 엘렌 로쉬(Helene Roche) 박사님이 한 팀이었다. 프랑스의 연구실은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소속이 다양한 연구자들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게 보편적이다. 연구실이라고 하면, 교수님과 학생들만 참여하는 한국의 연구실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이런 그룹 연구 환경이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다. 지도 교수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전문가에게 지도받을 수 있는 프랑스 대학의 연구 환경은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생태독성학은 환경오염물질의 독성을 다양한 생물학적 단계에서 분석하여 환경오염물질에 대한 생태계의 영향을 포괄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으로 생태독성학은 환경생물종에서 개체군과 군집 수준의 영향 분석으로 접근했다. 예를 들어, 수질오염 정도를 강에 서식하는 생물을 직접 관찰하여 판정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분자 및 생리 · 생화학 수준의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생태독성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생태독성학에서 바이오마커는 환경 진단에 사용할 수 있는 미세 수준의 지표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을 때, 혈액 검사에서 나온 여러 수치로 우리 몸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듯이, 환경 바이오마커로 환경오염 정도를 진단할 수 있다. 미리 진단할 수 있으니 이를 활용해 환경오염도 예방할 수 있다. 환경이나 생태계를 그런 지표로 본다는 개념은 그 당시엔 전혀 없던 것이어서 우리 연구실은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곳이었다. 환경에 서식하는 생물에서 바로 이런 생리·생화학 수준 바이오마커를 개발하고, 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연구를 주로 했다. 또 대규모 생태독성 야외 실험 장치인 메조코즘(mesocosm)을 캠퍼스에 설치하고 자연 생태계를 모사하는 환경을 조성한 뒤, 화학 물질을 처리하여 실제 자연조건에서 화학 물질에 대한 생태계의 영향을 연구하기도 했다.

 

- 얼마 전 나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의 지도 교수님과 한-프 국제 공동 연구 사업을 시작했다. 학생과 제자 관계에서 동료 연구자로 다시 만나 같이 연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다. 이게 바로 연구 분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 함께 공부한 남편은 나보다 먼저 박사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1년 뒤 나 역시 학위를 마친 뒤 바로 한국으로 와서 박사 후 연구 과정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환경 모니터링과 관련된 생태독성 분야 연구실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 당시 생태독성은 국내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생태독성에서 바이오마커로 연구한 주제와 관련 있는 DNA 손상 및 수복(회복) 관련 연구 주제로, 서울대 의대 약리학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 과정을 시작했다. 바이오마커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의학의 패러다임은 낯설었다. 자연과학은 자연계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고, 환경공학은 환경오염을 모니터링하고 처리하고 방지하는 것이라면, 의학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목적이었다. 내가 박사 과정에서 연구한 것은 환경 진단인데, 병원은 환자를 진단하는 곳이라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기초 의학 연구로 박사 과정 때 전공했던 생태독성보다 훨씬 깊은 독성 기전(메커니즘)을 연구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시절 나는 세포실험과 동물실험 그리고 환자 시료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 나노 오믹스 분야 연구는 내게 큰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2016년 1월 세계적인 학술 금융 비즈니스 정보 전문기관 '톰슨 로이터'에서 각 학문 분야에서 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과학자를 발표했다. 톰슨 로이터는 자체 보유한 학술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를 활용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등록된 12만 건 이상의 논문을 평가했고, 각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상위 1%를 선정했다. 거기에는 한국인 과학자 19명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는데 나도 포함되었다. 나는 2016년과 2017년에도 선정되어 3년 연속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상을 받으면 누구나 당연히 기쁠 테지만, 나로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인정받으면서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져 더욱 감격스러웠다. 

 

- '나노 오믹스' 연구는 새로운 분야였고, 남들이 하는 전통적 방법이 아니라 내가 여러 접근 방법을 조합하면서 한 연구였기에 하면서도 이런 연구 접근 방법이 맞나 하는 불안감을 조금은 품고 있었다. 연구라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의 연구 위에 하나의 벽돌을 쌓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내 연구 위에 하나의 벽돌을 쌓는 것이다. 내 논문이 자주 인용되었다는 건, 남들의 연구에 바탕이 많이 되었다는 뜻이고 내 연구가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일로 내 연구에 의구심보다 자신감을, 불안보다는 보람을 느끼고 나아가게 되었다. 

 

- 나는 학사, 석사, 박사, 박사 후 연구원, 지금의 연구주제가 모두 분야가 다르다. 내가 경험한 단과대학도 자연과학대학, 의과대학, 도시과학대학에 걸쳐 있다. 서울시립대의 환경공학부는 도시과학대학에 속해 있으나 공학인증 프로그램 안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므로 실질적으로는 공과대학이다. 여기에 내가 석사 과정을 한 환경대학원은 환경정책 및 도시계획 분야의 프로그램 위주였으므로, 나는 이과의 많은 단과대학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학문하는 자세는 모름지기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매우 나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연구하는 분야를 살펴보면 지금껏 내가 경험했던 다양한 분야의 어느 한 과정도 도움이 안 된 것이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연구에는 내가 경험한 모든 분야가 다 녹아들어 있다. 

(리뷰자 주 : 저자분들 중 유독 시기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분이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전공이 바뀌는 것이 이렇게나 영향을 주는 걸까 싶은데, 다른 저자분들의 경우 학부 시절과 유학 당시, 귀국 후가 그런대로 일관성이 느껴졌던 터라 더 놀라웠다.)

 

- 최근 유해 화학 물질과 질환 발생 관련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어렸을 때 미량으로라도 장기간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되면 평생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심지어 후세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의 과학적 기전으로 환경후생유전체학(EnvironmentalEpigenomics)이라는 분야를 최근 연구하고 있다. 

 

- 환경공학자 최진희

 

 

-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또 한 번 나를 변화시켜 준 분을 만나게 된다. MIT의 오토 할링(Otto Harling) 교수님으로 방사선 검출(Radiation detection)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분이다. MIT에 입학해 보니 모든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고 머리까지 좋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자신감이 떨어졌고, 세미나에서 교수님이 질문을 던지면 답을 알아도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나와 달리 미국 학생들은 틀려도 자신 있게 발표했다. 오토 할링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레나, 동양에서는 겸손이 미덕이지만 미국 사회는 달라. 아는 것은 확실히 안다고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배울 기회가 생기지. 그러니 앞으로 아는 것은 자신 있게 발표하렴. 그리고 너는 아직 학생이니까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해야 이번에 배워서 다음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단다." 

- 나는 아는 것은 잘난 척하기 싫어서 자신 있게 발표하지 못하고, 모르는 것은 창피해서 발표하지 못했는데, 교수님의 충고를 마음속 깊이 새긴 뒤부터는 무엇이든 자신 있게 발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수줍어하던 한국 여학생이 적극적인 공학도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학업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해갔다.

 

- 해당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병원에서 연구하면서 의사들의 생활을 본 뒤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의사 자격증을 받는 일은 포기했다. 평소 남의 일에 적극적인 면 때문에 환자의 아픔을 듣고 고쳐 주는 게 적성에 맞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내 마음부터 너무 아파서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 

- 졸업 후 처음으로 취업의 문을 두드린 곳은 컨설팅 회사였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컨설팅 붐이 한창 불었는데 컨설팅 회사에서 공학 전공자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공학 박사이기 때문에 경영컨설팅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없어지고 오히려 유명 컨설팅 회사들이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공학도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컨설팅 회사 연봉이 지금 정교수의 연봉보다 두 배가 높았다. 공학도인 내가 경영학 분야에 지원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연봉도 탐났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 기꺼이 지원해서 합격했다.

 

- 그렇게 해서 1997년 10월부터 미국 최대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일하게 되었다.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초특급 대우를 받았는데, 비록 인턴이었지만 매달 지급되는 월급이 조교수 월급의 여덟 배였다. 게다가 이동할 때는 항상 모범택시와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가 제공되었다. 오로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 나의 첫 임무는 한국으로 건너가 한 대기업의 ERP 시스템(기업 전체의 자원관리 시스템) 도입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해야 했는데, 아쉽게도 내가 최선을 다해 제시한 솔루션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솔루션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결국엔 다른 제안이 채택되었다. 그 때문인지 3개월 인턴이 끝나고 정식 직원으로 고용되지 못했다. 과학도는 자기 연구 끝에 도출된 결과가 있으면 그 결과가 옳다고 믿고 강하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어떤 결론을 내릴 때, 내 분석 결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야 하는데, 내 분석 결과만 정답이라고 강하게 믿은 것이다. 사회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컨설팅 회사 활동은 짧은 경험으로만 남고 나는 다시 공학자의 길로 돌아왔다.

 

- 나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 직업으로 삼지 못했는데, 좋은 의료기기를 개발해 그들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 의사의 진료도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내가 개발한 장비도 환자 치료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준다. 박사 시절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가 개발한 의료기기는 50개가 넘는다. 진단 및 치료에 사용되는 장비는 병원의 여러 과(영상의학과, 치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방사선종양학과, 응급의학과 등)에서 사용 가능한 장비이다. 치과 영상 촬영 장비, 이비인후과 카메라, 산부인과 전기 수술 장비, 응급의학과 경추보호대, 정형외과 및 동물용 엑스레이 장비, 산부인과 온열치료 장비, 영상의학과 유방암 진단장비, 방사선종양학과 초음파 온열치료 장비, 소아과 키 예측 프로그램 등이다. 

 

- 계속해서 많은 장비를 개발했지만 환자에게 사용되지 못한다면, 나만의 자부심으로 끝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개발 장비를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레메디 (REMEDI, Revolution in Medical Device)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생산 공장도 운영한다. 

 

- 의료장비 개발은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아이디어로 시작한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수많은 의료기기들을 사용해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다. 그러는 중에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환자에게 맞지 않는다거나 도움이 될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학적으로 구현 가능한지 궁금증을 품게 된다. 이럴 때 공학도인 나와 의논하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만나면 혁신적인 제품 개발로 이어진다. 제품 개발은 먼저, 연구실에서 하는 프로토타입 (prototype, 제품의 원형) 개발에서 비롯된다. 그런 뒤 성능 검사와 판매를 위한 시장성 검토를 잘 마치면, 대량생산 과정을 거쳐 판매 제품을 내놓게 된다.  

 

- 살펴보면 결국 화학에서 공부하는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분자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물질일까? 아니다. 분자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알갱이는 원자다. 수소(H), 산소(O), 질소(N) 등이 원자들이다. 그럼 '더는 쪼개지지 않는 단위'인 원자에서 미시 세계 여행은 종결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이 원자를 발견한 것은 '더는 쪼개지지 않는 최소한의 단위'에 대한 관념의 발명이 큰 역할을 했지만, 막상 원자를 발견한 후 더 연구해 보니 원자 역시 더 작은 미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원자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물질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양성자와 중성자는 가장 기본 단위의 물질일까? 역시 아니다. 이마저도 쿼크라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결국 우리 몸속 DNA를 비롯해서 모든 조직과 장기, 더 나아가 세상을 이루는 모든 만물이 바로 원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러한 원자를 쪼개어 보면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되어 있다. 

- 그럼 방사선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방사선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주고받는 에너지인 엑스선과 감마선이 있다. 결국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그 입자들이 상호 작용하기 위한 에너지인 엑스선과 감마선이 방사선이다. 우리 몸이 방사선과 동일한 물질로 되어 있다니! 무서울 수 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인체에 해를 끼치지 못한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마음대로 움직일 때만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고 움직이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를 우리는 방사선이라고 한다.

 

- 의공학자 이레나  

 

 

-  공부를 할수록 나는 연구와 천성이 잘 들어맞는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 어떻게 박사 과정 유학을 떠나느냐만 결정하면 되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는 속담이 나에게 실현될 줄이야. 그날도 늦게까지 동물실험을 마치고 집에 가다가 학과 게시판에 공고된 국비 유학 장학생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시험 과목은 국사, 국민윤리, 농화학이고 농화학 분야에서 1명을 선발하는데 당시 13명이 응시했다. 내가 준비했던 내용과 예상했던 문제들이 시험에 나온 덕에 국비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 그런데 석사 과정을 마치고 결혼한 나에게는 이미 돌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러기엔 석사 과정에서 공부한 영양생화학을 계속하기에는 무리였다. 영양생화학은 실험실에 늦게까지 남아 실험해야 했다. 나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공부를 찾다가 급기야 전공분야를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그게 바로 영양역학이다. 

- 역학이란 질병을 다루는 학문으로,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통계적인 확률에 근거해서 경향성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질병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또는 생활 습관으로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통계적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그중 영양역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식품과 영양 상태, 식습관 등과 질병의 관련성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컴퓨터만 있으면 데이터를 분석해서 연구할 수 있는 분야이다. 

 

- 영양역학은 육아 때문에 새로 도전한 분야이긴 했지만 종종 '이걸 하길 정말 잘했다'고 느낄 만큼 흥미진진했다. 인간의 '생로병사' 중 '병사', 즉 질병과 사망 원인을 영양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건 나와 가족은 물론 모든 인간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역학을 공부하면서 통계학과 자료 분석, 질적·양적 연구 방법론 등도 깊이 배울 수 있었다. 석사 과정에서 공부했던 영양생화학도 결과적으로 내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역학에서 나온 결과를 두고 기전(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설명할 때는 생화학적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학부 때 배운 식품영양학의 기초 과정 위에 영양생화학이라는 전공을 쌓았기에 그 위에서 영양역학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방대한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다. 내가 하는 연구는 역학 연구이자 '코호트 연구’다. ‘코호트'란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뜻한다. 2007년부터 국립암센터에서 내게 주어진 사명 중 하나는 암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검진하기 위해 방문하는 검진자 코호트를 구축하는 일이다. 2002년 문을 연 국립암센터는 인간생명윤리위원회를 만든 이후 방문 환자들을 상대로 동의서를 받아서 환자 자료를 연구에 활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대상자를 모으는 것인데, 이곳에는 이미 그런 기반이 확보되어 있는 셈이다. 1년에 5000명 정도의 코호트가 만들어지며, 현재 4만 6000명 정도의 코호트가 있다. 건강한 사람, 질병이 있는 사람, 건강했다가 질병이 생긴 사람 등의 그룹을 나누어 장기간 추적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다. 

 

- 환자들에게 이미 받아놓은 설문 정보, 임상 정보, 혈액이나 소변, 조직의 생체 정보 등 귀중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연구를 하다 보면, 보건의료 기관 간 정보 연계화와 공유 필요성이 절실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기관별 데이터 공개 수준이 낮고 기관 간 연계 · 통합 체계가 미흡한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전략 부재로 임상과 정책에 활용하는 데 제한적으로만 이용되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꾸준한 연구비와 협업하기 좋은 환경 그리고 용이한 자료 접근성 등이 나의 연구에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 주었다. 

 

- 식품과 건강의 관계를 흑백 논리로 판단할 수는 없다. 특정 식품이 좋으냐, 나쁘냐를 묻는다면 답을 하기 곤란하다. 특히 암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특정 식품은 없다. 암에 좋다고 특정 식품만 먹는 건 오히려 좋지 않다. 국립암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암 환자들의 61%가 영양 결핍 상태였다. 소화기 계통에 암이 생긴 경우 소화와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영영 결핍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많은 환자가 '잘 먹으면 암을 더 키운다'거나 '고기를 먹으면 재발이 많다'는 생각을 해서 영양 결핍을 더 키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식품과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따른 결과였다. 

 

- 특히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은 과거에 상상 또는 꿈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인공지능(AI) 수학 모델과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만성질환 환자를 위한 맞춤형 식단 관리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사용자(환자) 신체 정보, 혈압, 혈당, 자주 먹는 시간, 식사 시간, 음식을 씹는 시간, 음식 섭취량, 운동량 등을 입력하면 질병 치료와 예방에 최적화된 음식을 알려 준다. 손목형 밴드와 벨트를 이용하고 모바일 앱으로 현재 건강 상태 추이를 분석해 몸에 좋은 음식과 조리법까지 알려 준다. 당장 먹을 음식도 사진을 찍어 전송하면 푸드 센서와 클라우드 기반 개인 맞춤 분석 엔진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음식의 칼로리와 영양소를 계산해서 수치를 알려 준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 식단 컨설턴트다. 신기술의 발달로 식품영양학이 의학·공학 등과 접목돼 우리의 식생활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식품영양학은 대학과 연구소에만 갇혀 있는 학문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함께 호흡하고 교류하는 살아 있는 학문이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 식품영양학자 김정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