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엘요나 니켈슨 / 박성은
원제 : Colored Pencil Painting Bible: Techniques for Achieving Luminous Color and Ultrarealistic Effects
출판 : 비즈앤비즈
출간 : 2011.12.08
색연필화에 관해 궁금했던 책들은 대체로 다 훑어본 것 같다.
('페이러냐오'의 저서들은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리뷰를 쓸 만큼 꼼꼼하게 읽은 건 아니라 빠졌다)
눈으로 과정을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더라도 그걸 실제 내 손으로 그려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형태나 색 같은 기본적인 선택부터 색을 겹쳐가는 순서나 강도, 방향 등 다양한 선택들이 결과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무척 즐겁지만, 이제는 의도한 대로 표현이 나오지 않으면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는지, 어디에서 실수를 한 것인지 고민스러울 때는 이렇게 조금은 전문적인 기법을 설명한 책이 도움이 된다.
저자는 극사실화 위주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로, 주 작업물은 색연필화인 듯하다. 색연필이 가지는 특유의 '선'(스트로크)들을 어떻게 매끈한 질감으로 바꾸는가가 색연필화가들의 노하우인 것 같다. 오히려 그 선들을 강조하는 기법을 쓰는 사람도 있고, 마카를 이용하거나 블랜더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엘요나 니켈슨'은 OMS사에서 나온 솔벤트 액(갬블린 갬솔)을 이용해 블랜딩을 하는데, 유성 색연필로 물감처럼 매끈하고 선명한 발색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고민인데, 색연필만으로 그 정도의 발색을 나타낼 수 없다면, 특수 기법을 사용한 것도 색연필화로 보아야 할까? 저자의 작품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OMS 액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당장은 색연필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본 기법들에도 익숙하지 않으므로, 이런 고민은 이 단계에 도전해보고 싶을 때 더 깊게 해 보기로 한다.
저자가 알려준 몇 가지 기법은 정말 놀라웠다. '실전 기법'에 가까운 느낌인데, 사실 팁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부드럽게 뭉개지는 부분을 표현하고 싶다면 파우더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색연필 자체를 쓰기보다 스테인레스 차 거름망에 심을 갈아 만든 파우더로 표현하는, 일종의 야매 파스텔 기법이다. 또 미술용품으로 많이 사용하는 전동 지우개는 종이를 상하게 하므로, 접착용 제제인 마운팅 퍼티, 매직테이프 등으로 종이에 발린 색연필을 찍어 올려 하이라이트 부분을 만들어내라고 조언한다. 반죽 지우개(떡 지우개)까지는 들어봤는데 마운팅 퍼티에서는 좀 고민이 되었다. (결과물을 보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더해 포토샵을 이용해 명도를 확인하고 라인을 딴다거나, 모자이크화 해서 색 분포를 확인하는 방법 같은 경우는 정말 효율적이라고 느꼈다. (물론 기초 드로잉 실력은 따로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기본을 두고 있는 부분은 '색채 이론'이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접근이나 후반부의 그림 연습에서의 설명을 보면 저자는 색에 관한 감각이 아주 예리한 것 같다. 저자의 방식 중 가장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관해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단계에서 빨강 / 노랑 / 파랑의 3색을 섞어 표현하고 있었다. 어떤 빨강, 어떤 파랑을 선택하느냐로 눈에 인식되는 색이 결정되는 것이지 '특정한 색'이 있는 건 아니라는 인식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선천적인 재능인지 후천적인 노력인지는 모르겠으나, 색을 하나의 단일한 색이 아닌 3원색의 배합으로 분리해서 인식하며 그 중에서도 어떤 명도와 채도인지 파악하는 능력은 아주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색연필로 딸기를 그리는 각각 다른 네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 어느 것도 '내 것이다' 싶은 방법으로 흡수하지 못했다. 확실하게 느낀 것은 딸기는 웬만하면 그리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것뿐.
어떤 그림을 그려보고 싶으냐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그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그려보고 싶다'라는 가장 고난도의 희망사항으로 답한다.
하다보면 늘겠지. 안되면 안되는 거고.
- 이 책은 색연필화의 주요 고급 기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초보자라면 구도, 색채이론, 기초 드로잉, 투시법, 해부학 등을 자세히 설명한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어떤 미술도구를 사용하든, 아티스트라면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연습해야 그림 실력이 늘 것이다. 이론은 색연필화의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부일 뿐이다. 제시된 가능성은 실제로 적용해봐야 한다.
- 색연필 아티스트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내가 처음 색연필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갖고 있던 여러 의문점을 이 책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몇 년 동안 조사하는 수고를 덜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지구 상의 모든 꽃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는지 기계적인 테크닉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터득한 몇 가지 유용한 기본 원리와 기법을 바탕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리는 방법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 '왜 색연필을 사용하나요? 유화처럼 보이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왜 그냥 붓으로 유화를 그리지 않나요?' 사람들이 회의적으로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유화만 진정한 예술적 작품 가치가 있고 그 외 도구를 사용해서 그린 그림은 아마추어나 취미 수준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아티스트들이 전통만 계속 고수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현대미술갤러리에서 아름다운 파스텔화나 수채화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색연필 차례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전통적인 도구들과 색연필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날, 아티스트들은 큰 보람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한다.
- 색연필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장점과 가능성이 크다. 아티스트의 성향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뭐냐에 따라 그 비밀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색연필은 초기 스케치에 적합한 도구로 여겨져 왔다. 쉽고 빠르게 색칠할 수 있고,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그림을 완성했을 때 어떻게 보일 것인지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색연필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가진 아티스트는 색연필로 손쉬운 스케치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에어브러시 효과, 수채화 효과, 유화 효과까지도 낼 수 있다. 색연필화는 관객의 눈까지 의심하게 할 만큼 매우 획기적이다. 관객에게 무엇으로 그린 그림인지 알아맞히게 해 볼 수도 있다!
- 밝고 어둠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삶 속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색을 인식하는 것보다 명도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명의 초기부터 인간은 삶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색을 분류해왔다. 빨간색/주황색/노란색은 불, 따뜻함, 경고를, 그리고 초록색/파란색은 물, 차가움, 침착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컬러 분류는 더 많은 용도로 사용된다. 컬러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우리의 내면과 개성을 반영한다. 컬러의 특징과 효과를 이해하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우리의 생각을 세상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 색이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의 눈은 감각 기관을 통해 추상체라 불리는 망막으로 빛을 받아들인다. 이때 우리의 뇌는 빛의 여러 주파수를 색으로 인식한다. 색채계 혹은 색채과학은 아직까지도 확실히 파악되진 않았지만, 3개의 추상체가 각기 다른 시각 스펙트럼(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각의 추상체가 특정 범위의 빛을 흡수하고 서로 겹쳐 혼합된 색을 만드는 것으로 여겨진다. 뇌는 이런 혼합을 빛 스펙트럼의 다양한 색채로 인식한다. 즉, 빨간색과 초록색에 반응하는 추상체는 특정 주파수의 빛에 자극을 받아 뇌는 노란색(Yellow)이라는 컬러로 인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빨간색 빛과 초록색 빛의 혼합은 노란색으로 보이게 된다. 빨간색 빛과 파란색 빛은 마젠타(magenta)로 보인다. 파란색 빛과 초록색 빛의 혼합은 시안(cyan)이 된다. 각기 다른 빛의 혼합으로 다양한 빛의 컬러가 만들어진다. 빛의 삼원색이 없으면 컬러는 블랙이 된다.
- 가색법에 의하면 사물 자체에는 색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사물에 빛이 비춰지면 스펙트럼의 일부 색은 흡수되고 나머지 색은 반사된다. 우리가 보는 색은 바로 사물에 반사된 색이다. 예를 들어 녹색 잎에 흰빛을 비추면 잎은 초록색을 제외한 모든 빛의 주파수를 흡수하기 때문에 우린 초록색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단, 가색법은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 때문이다. 그림자는 빛의 한 기능으로 약한 빛 혹은 빛이 아예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시각예술작품은 우리 눈에 보이는 다양한 빛의 조건을 표현한 것들이다. 인체 해부학, 심리학, 물리나 수학 원리 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빛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빛에 반응한다. 빛은 사람의 주의를 끌 뿐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에서 빛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관객과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아이디어를 그림에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밝은 햇빛으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고, 벽난로의 일렁이는 불빛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고, 달빛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낼 수도 있다. 따라서 그림을 그릴 땐 빛의 종류, 위치, 정도, 컬러, 방향, 그림자의 강도 등에 유의해야 하며, 빛의 반사, 확산, 왜곡 등도 잘 파악해야 한다.
- 빛의 정도에 따라 사물의 컬러가 영향을 받는다. 밝은 빛에서 컬러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희미한 빛 아래서는 컬러도 탁하고 왜곡되어 보인다. 백열전구 빛은 컬러를 누렇게 보이게 한다. 흐릿한 햇빛은 컬러에 푸른 기운을 더한다. 게다가 모든 컬러는 광원으로부터 특정 컬러를 흡수하고 그 나머지를 사람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광원에 따라 컬러가 달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린은 레드 빛 아래에서 블랙으로 보이고, 레드는 블루 빛 아래에서 블랙으로 보인다.
- 빛의 조건에 따라 그림자의 컬러도 달라진다. 따뜻한 빛일 경우 -예를 들어 햇빛, 촛불, 백열전등- 그림자는 차가운 컬러이고, 반대로 차가운 빛일 경우 -형광등, 북향 창으로 들어오는 실내에서의 빛, 실외의 희미한 빛- 그림자는 따뜻한 컬러다. 물론 빛과 그림자의 온도 간 상관관계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변화에 따라 다르고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 이와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사물은 주변 컬러를 받아들이면서 배경과 다른 사물의 컬러를 반투명한 표면을 통해 바꿔놓기도 한다. 컬러와 명도의 변화는 사물의 투명도(색유리나 햇빛을 받은 풍선 등), 반투명 사물이 놓인 위치(반투명 사물이 배경과 가까울수록 컬러와 명도의 변화가 더 분명하게 보인다), 빛 조건(빛이 강할수록 컬러와 명도 변화를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다)에 따라 달라진다. 투명, 혹은 반투명 사물을 그릴 때는 표면의 굴곡에 의해 생긴 왜곡된 형태의 명도와 컬러를 추상적 형태로 표현함과 동시에 사물의 전체적 형태를 항상 염두에 두고 그려야 한다. 각 조각들을 정확하게 그려야 한다. 즉, 꼼꼼하게 그려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체적인 형태와 사물 간의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반투명 사물을 그리는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다.
- 반사율은 표면이 주변 사물이나 배경의 형태, 컬러, 명도를 반영하는 정도를 말한다. 표면이 부드럽고 굴곡이 덜할수록 반사된 이미지의 왜곡이 덜할 것이다. 실제 사물의 이미지와 반사된 이미지가 완전히 대칭되진 않는다. 반사된 이미지는 같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고,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다. 사물표면의 컬러는 반사된 이미지에서 달라진다. 명도 또한 실제 사물과 다르고, 보는 사람의 눈에 반사된 빛의 양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심하게 왜곡된 반사 이미지를 잘 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이미지들을 추상적 형태로 생각하고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표면의 굴곡과 부피감도 생각해야 한다.
- 그림자는 사물이나 바닥에 있는 하찮은 어두운 부분이 아니다. 그림자는 형태(그림자가 드리워진 형태 혹은 그림자를 만든 형태)와 주변 빛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그림자마다 구조, 방향, 온도, 컬러가 다르다. 광원 가까이 있는 물체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생기고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는 본영(umbra, 물체가 빛을 차단하여 생긴 그림자)와 반영(penumbra, 그림자의 덜 어두운 부분)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광원에 따라 빛과 그림자는 달라진다. 밝고 강한 빛은 어둡고 분명한 그림자를 만든다. 분산된 빛은 덜 분명한 그림자를 만든다. 물체의 어두운 부분은 물체 표면의 굴곡, 물체의 위치, 빛의 강도 등에 따라 어두운 정도가 달라진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작용하여 사물의 형태와 특징을 형성하고, 가장 밝은 하이라이트 부분과 가장 어두운 "그림자의 중심부"를 만든다.
- 하나의 그림 안에 광원이 너무 많으면 혼란스럽다. 주 광원 하나, 같은 방향으로 놓인 몇 개의 그림자가 가장 적당하다. 그림자를 구도의 일부로 다루되 전체 구도에서 너무 튀지 않게 한다. 그림자 방향, 명도, 컬러 어느 하나라도 잘못돼 있으면 그림 전체의 사실감이 떨어진다.
- 앞서 말한 것처럼 색연필화에서 겹칠 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점점 더 밝게 하는 것보다 점점 더 어둡게 만드는 게 더 쉽다. 그래서 나는 밝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반대 색온도의 컬러를 칠하고, 그다음 보색이나 보색에 가까운 색을 칠하면서 점점 더 어둡게 만들고, 그림자 부분을 가장 어둡게 한다. 주 컬러에 보색을 더하면 색이 탁해지면서 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형태 그림자를 그릴 때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다. 그림자 부분의 색이 너무 강하면 밝은 부분과 비슷해 보여서 그림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 사물의 명도에 그라데이션이 거의 보이지 않을 경우(명도 간 경계선이 매우 부드러울 경우), 나는 가장 밝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가장 어두운 부분 순서로 그려 나간다. 단, 명도 간 차이가 두드러질 경우(경계선이 강하거나, 패턴, 작은 디테일 표현의 경우), 그리고 경계선을 살리고 싶을 경우에는 중간 명도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내가 '명도 맵 혹은 컬러 맵'이라 부르는 기법을 사용한다. 명도/컬러 맵 기법을 사용할 땐, 주 컬러, 중간 명도를 파악하고 경계선 위치를 표시한다.
- 화이트 색연필로 하이라이트를 표현할 수 있다. 유리의 반짝임이나 과일의 흐릿한 부분을 표현할 때 유용하다. 단, 화이트 색연필을 사용하면 컬러가 탁해지거나 흐릿해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원래의 컬러로 되돌리고 싶다면, 이전에 사용했던 컬러를 다시 칠하면 된다. 화이트도 다른 색연필과 마찬가지로 반투명하기 때문에 이전 컬러를 완전하게 덥진 못한다. 따라서 불투명한 유화에서처럼 어두운 사물 위에 밝은 하이라이트를 만들기는 어렵다. 대개 하이라이트는 의도한 것보다 약간 어둡게 만들어진다. 최고로 밝은 하이라이트를 만들려면, 종이의 흰색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고, 아니면 카랑 다슈 네오 컬러 I(Caran d'Ache Neocolor II, 수용성 색연필) 같은 불투명한 색연필을 사용한다. 이 화이트 컬러도 역시 종이의 흰색보다 더 밝진 않겠지만 반투명한 화이트 색연필보다는 더 밝다.
- 현실에서 순수 화이트 컬러는 빛 스펙트럼의 모든 가시 파장을 같은 양으로 혼합했을 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화이트는 표현하기 상당히 어려운 컬러다. 그레이 색연필로 흰 사물을 그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컬러가 아닌 명암만 표현한 흑백 그림이 된다. 그렇다면 컬러 색연필로 어떻게 흰색을 표현할까? 해답은 간단하면서도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레드, 블루, 옐로우의 삼원색을 같은 양으로 혼합해야 한다.
- 밝은 색에서 어두운 색으로 천천히 컬러의 명도와 강도를 높여가면서 화이트 컬러를 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세 가지 컬러 중 하나라도 너무 두드러질 경우, 사물을 어둡게 만들 염려 없이 쉽게 컬러를 조정할 수 있다. 가장 밝은 부분을 칠할 땐 좀 더 단단한 색연필을 쓴다. 색연필이 단단해야 종이에 칠해지는 색이 옅어지고 어두운 색으로의 전환이 부드럽게 만들어진다. 흰색 사물의 밝은 부분은 대개 따뜻한 컬러를 사용하고 그림자 부분은 차가운 컬러를 사용한다. 컬러의 강도는 빛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대조가 강하게 나타날수록 컬러의 강도도 더 높아진다.
- 여러분이 여태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색연필로 비교적 빠르고 효과적으로 검정 바탕을 만들 수 있다. 흰 종이에 검정 바탕을 만들려면, 블랙 색연필로 한 겹 칠하고, OMS를 뿌린 다음 인디고 블루, 다크 그린, 토스칸 레드를 한 겹씩 칠한다. 블랙을 한 겹 더 칠하고 무색 블랜더로 색들이 잘 섞이게 한다. 이렇게 하면 아주 까만 블랙 바탕이 완성된다. 이보다 좀 더 덜 까맣게 하려면 컬러를 한 개 정도 빼고 마지막 단계에서 블랙을 한 번 더 칠하는 과정을 생략하면 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종이에 색연필을 여러 겹칠 해도 상관없다. 이 상태에서 몇 겹 더 칠하면 마치 검정 종이 같이 보이게 할 수 있다. 너무 눌러 칠해서 종이 표면이 납작해진 것 같으면, 워커블 픽서티브를 한 번 뿌린다. 이렇게 하면 종이 표면이 어느 정도 되살아나서 색연필을 몇 겹 더 칠할 수 있게 된다.
- 꽃이 비주얼 아트, 특히 정물화 속의 단골소재로 등장하지만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초보 아티스트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 중 하나는 형태, 가장자리, 명도 전환을 너무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장식적 그림일 때는 이래도 되겠지만 사실적 그림을 그릴 때는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꽃 사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명도 전환과 가장자리는 거의 눈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꽃잎의 가장자리는 선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장자리를 선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서 초보 아티스트들이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실수를 피하려면 선, 명도, 가장자리를 우리가 눈으로 본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실제로 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지도 말아야 한다!
- 대부분의 꽃 그림은 주요 대상인 꽃다발 주변에 작은 꽃들이 배치된다. 작은 꽃들을 일일이 그리는건 지겹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만 잘 알고 있다면 굳이 일일이 그릴 필요가 없다. 컬러 겹칠 및 퓨전, 화이트 색연필로 버니싱 하고 명도를 밝게 하는 방법, 마운팅 퍼티 사용하는 법을 알면 해결된다.
- 아이디어가 우선이고 실천은 그다음이다. 종이에 색연필을 대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 그림에 대한 구상이 있어야 한다. 어떤 컬러를 쓸 것인지, 어떻게 그림 그릴 준비를 할 것인지, 어떤 기법을 쓸 것인지(이 순서대로) 등을 색칠하기 전에 이미 확실히 해야 한다. 계획을 꼼꼼하게 세워야 결과도 좋다.
- 색연필로 칠하기 전에 종이 위에 스케치를 옮길 때는 스케치를 깨끗하게 하면서 흑연 연필 라인이 진하지 않도록 특히 신경 써야 한다. 흑연 연필 스케치를 부분별로 나눠서 한 다음에 부분별로 색연필을 칠해서 최종 작품에 연필선이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연필 라인을 절대 문지르지 말 것. 종이 표면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운팅 퍼티나 반죽 지우개로 연필 라인을 찍어 올린다.
- 드로잉 보드에 종이를 붙이고 필요에 따라 보드를 돌리면서 그린다. 이렇게 하면 드래프팅 테이블에서 그리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연필 스트로크를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몇 시간 그림을 그려 보면 이 방법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넓고 두꺼운 고무 밴드로 참고 사진을 드로잉 보드에 고정시킬 것. 참고 사진을 바로 옆에 두고 보면서 그리면 컬러나 명도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 아주 밝게 표현해야 할 경우에는 첫 번째 칠할 때 심이 단단한 색연필을 사용할 것. 이런 경우에 난 프리스마컬러 베리신 색연필을 쓰는 편인데 이렇게 한 번 칠하고 나서 다음엔 일반적인 심(부드러운)의 색연필로 칠한다. 이렇게 하면 부드러운 심의 색연필로 여러 번 겹칠 했을 때 생기는 색연필 가루가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다.
- 밖에서 안으로 칠할 것. 이렇게 하면 그림을 좀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바깥쪽의 컬러나 명도가 그림 안쪽의 컬러나 명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배경부터 칠해야 한다. 어둡게 만들 땐 살살 연하게. 색연필은 밝게 하는 것보다 어둡게 하는 게 더 쉽다. 따라서 진하게 한번 칠하는 것보다 연하게 여러 번 칠하는 게 더 낫다.
- 과거에는 아티스트들도 많지 않았고, 이들은 드로잉을 연습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요즘은 많은 아티스트들이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드로잉 실력을 키우려는 생각도 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드로잉 실력은 모든 종류의 회화에 가장 기초가 되는 능력이다. 색연필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릴 때,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사물을 보는 능력, 그들이 본 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땐 유화에서처럼 실수한 것을 덧칠로 덮어버릴 수 없다. 모든 스트로크가 그대로 드러난다. 색연필 아티스트가 어떤 대상을 그릴 땐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이해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에는 열심히 드로잉 연습을 하면서 시작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 실력이 빨리 느는 사람도 있고, 같은 기술이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능력을 가졌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가 성공을 결정한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여러분 스스로 그릴 대상을 결정하라. 풍경화나 건물 드로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물화나 동물 드로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차갑고, 선명하고, 창백한 컬러도 여러분 스스로 결정한다. 그림 구도도 마찬가지다. 스타일은 여러분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스타일이 곧 여러분 자신이다. 아티스트의 스타일은 안에서 밖으로 배어 나온다. 여러분의 작품은 여러분 주변의 것들을 베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본 것을 해석한 것이다. 아무리 똑같은 대상을 보고 그렸더라도 아티스트마다 다른 작품이 나온다. 각자의 개성, 경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로 성장하면서 여러분의 인생관, 비전, 개인적 스타일도 발전한다.
- 때로 단순한 배경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냥 컬러만 있을 뿐 눈에 띄는 사물이 배경에 없는 경우다. 이럴 때 파우더 브러싱 기법이 효과적이다. 58페이지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파우더 브러싱은 색연필로 에어 브러싱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고안해낸 이 기법은 은은하면서도 그라데이션이 있는 하늘이나 그 외 표면을 표현할 때 요긴하다. 앞 페이지에 있는 <사막의 장미>를 그리면서 오른쪽 아랫부분을 흐릿한 배경으로 처리할 생각을 했었다.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 같은 인상을 심어주되, 관객의 시선을 주 대상 -노란꽃- 에서 빼앗지 않도록 너무 자세하게 그리진 않으려고 했다. 이런 경우에 파우더 브러싱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라임필(limepeel), 마린그린(marine green), 핑크 로즈(pink rose), 블러시 핑크(blush pink), 블루 바이올렛 레이크(blueviolet lake) 파우더를 뿌렸는데 컬러들을 서로 살짝 겹치게 해서 약간씩 섞이도록 했다. 그런 다음 바탕색과 가장자리들을 OMS로 흐릿하게 만들고 화이트 색연필로 버니싱 해서 모든 컬러가 서로 잘 섞이게 했다. 그 결과 그림에 사용된 모든 컬러를 바탕색에 포함시키면서도 주 대상에 대한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배경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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