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루이스 캐럴 / 고정아
원제 :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출판 : 윌북
출간 : 2020.05.20
이다혜 작가의 추천사와 새로운 번역을 존 테니얼의 삽화로 읽고 싶어서 구매했던 것 같다.
크로켓 채가 홍학으로 바로 잡힌 것은 좋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많았다. 아버지가 신부님이 되고, 여공작이나 공작부인 대신 공작으로 표기한 부분이 눈에 띈다.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가짜 바다거북(모조 바다거북)과의 대화에서 시도한 초월번역이다. 수업은 '수'가 '없'어져서 수업이라거나, '인도'해주니 '인도거북'이라거나. 티타임에서도 'ㄷ'으로 말장난을 시도한 부분에서 원문 그대로보다는 한국어로 맛을 살리려 노력한 듯하다.
원어를 병기해서 설명하는 형식의 번역본들 위주로 읽다가 최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한국어로만 전달하고자 한 판본을 읽으니 새로웠다.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고,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생각하면 (루이스 캐롤의 말장난을 한국어로 초월번역을 시도하다니!) 조용히 애도를 표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판본을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장 선호하는 판본이 생기게 마련이다.
즐겁게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판본이 되지는 않았다.
끝.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번역 검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이 일하던 팀 전체가 머리를 싸매고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소설 전체가 산문시 같다고 해야 하나. 온갖 단어가 상징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번역'이라는 일대일 대응어를 찾는다는 (거의 무용해 보이기까지 하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한 명씩 루이스 캐럴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며,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번역본은 영원히 새로 나오겠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번역에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리라고.
-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어른들의 말을 배우고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알 것 같지만 설명하기 어렵고,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아서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세계에서, 앨리스는 계속 모험을 이어나간다. '이상한 나라'는 우리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익히고 적응해야 했던 어른의 세계 그 자체일 것이며, 이 세계는 혼란으로 가득 차 있고 뜻이 다른 것들을 같다고 믿는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책을 읽는 어른들은 알아차리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말이 통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눈다. 그 사이에서 오직 아이들만이, 뜻이 통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낸다. 혹은 자신이 정말 인지한 것 그 자체를 숙고할 줄 안다.
- "안에 어떻게 들어가나요?" 앨리스가 더 큰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안에 들어갈 수 있기는 한가?" 하인이 말했다. "그게 첫 번째 문제야."
그 말은 맞았지만, 앨리스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정말 답답해."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여기 동물들은 모두 말싸움을 하려고 해. 아주 피곤해!"
하인은 그 기회를 잡아, 아까 한 말을 조금 바꿔서 다시 했다. "난 여기 앉아 있을 거야. 여러 날 동안 간헐적으로."
"하지만 전 어떻게 해요?" 앨리스가 물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렴." 하인이 말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이 아저씨하고 말해봐야 소용없어. 완전히 바보야!" 앨리스가 답답해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제발,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신경 좀 쓰세요!" 앨리스가 놀라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러다 아기 코를 날리겠어요." 유난히 큰 냄비가 정말로 아기의 코를 떨굴 듯이 그 앞으로 바짝 날아갔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신경을 쓴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돌아갈 거야." 공작이 거칠게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닐 텐데요."
- 앨리스는 아기를 힘들게 안았다. 아기가 조금 이상하게 생겼고, 팔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사리 같아.' 앨리스는 생각했다. 앨리스 품에서 아기는 증기기관처럼 콧방귀를 뀌면서 몸을 계속 접었다 폈다 했고, 앨리스는 아기를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었다. 곧 아기를 제대로 안을 수 있게 되자(아기를 매듭처럼 약간 비튼 뒤, 오른쪽 귀와 왼쪽 발을 꽉 잡아서 몸을 풀지 못하게 하는 게 방법이었다), 앨리스는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서 생각했다. '아기를 안 데려가면 여기 사람들은 하루 이틀 만에 아기를 죽일 거야. 그러니까 아기를 두고 가는 건 살인이 아닐까?' 앨리스가 마지막 말을 소리 내서 했더니 아기는 대답이라도 하듯 꾸릉 소리를 냈다(재채기는 어느새 멈추었다).
"그런 소리 내지 마, 그건 예의 바른 표현이 아니야." 앨리스가 말했다.
- "그래서 그렇구나." 모자장이가 말했다. "시간은 맞는 걸 싫어해. 네가 시간하고 친해지면, 시간은 시계를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거야. 예를 들어 지금이 오전 아홉 시라서 수업을 시작할 때라고 해보자. 네가 시간한테 가볍게 속삭이기만 하면, 시계가 휙 가서 점심시간인 한 시 반이 된단다!"
("그렇기만 하면 좋겠네." 3월 토끼가 혼자 조용히 속삭였다.)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러면 점심시간에 배가 고프지 않을 거예요." 앨리스가 곰곰 생각하며 말했다.
- "내 생각도 그래." 공작이 말했다. "이 교훈은 '생긴 대로 살자'야.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명심하고, 그들이 생각하거나 예상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으로 보일 생각은 할 만한 생각이 아니고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지."
"글로 읽으면 더 잘 이해할 것 같은데, 말로 들으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예의 바르게 말했다.
- 얼마 가지 않아서 멀리 모조 거북이 보였다. 거북은 작고 평평한 바위에 서글픈 모습으로 외로이 앉아 있었는데, 어느 정도 가까워지니 큰 슬픔을 당한 듯 한숨을 쉬는 소리도 들렸다. 앨리스는 거북이 불쌍했다. "거북은 왜 슬픈 거야?" 앨리스가 그리핀에게 물었다.
그리핀은 방금 전과 거의 비슷한 말로 대답했다. "다 착각이야. 거북에게 슬픈 일은 없어. 가자!"
- "우리가 어렸을 때 말이야." 마침내 모조 거북이 말했다. 아까보다는 차분했지만, 여전히 흐느낌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우리는 바다에 있는 학교에 갔어. 선생님은 나이 든 바다거북이었지만, 우리는 인도거북님이라고 불렀어..."
"인도거북이 아닌데 왜 인도거북이라고 불렀나요?" 앨리스가 물었다.
"그분이 우리를 가르쳐서 인도했으니까. 너 정말 멍청하구나!" 모조 거북이 발끈하며 말했다.
(리뷰자 주 : 인도거북이라. 신선하다.)
- "추화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게 뭔가요?" 앨리스가 물었다.
그리핀이 놀라서 두 앞발을 모두 들고 소리쳤다. "뭐라고! 추화를 못 들어봤다고? 미화가 뭔지는 알겠지?"
"네, 무언가를 더 아름답게 한다는 거잖아요." 앨리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추화를 모른다면 너는 바보야." 그리핀이 말했다.
앨리스는 그것에 대해 더 질문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모조 거북을 보고 물었다. "그리고 또 뭘 배우셨나요?"
"신비학이 있었어." 모조 거북이 앞발로 과목을 하나씩 꼽으면서 대답했다. "고대 신비학과 현대 신비학, 해수욕학이 있고, 미술도 있었어. 미술 선생님은 붕장어였는데, 그분이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냉수채화, 삼세판화, 유들유들화도 가르쳐주셨어."
"유들유들화는 어떤 거였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 "그러면 하루에 수업은 몇 시간이었나요?" 앨리스가 화제를 바꾸려고 얼른 말했다.
"첫날은 열 시간, 다음 날은 아홉 시간, 그런 식이었어." 모조 거북이 말했다.
"이상한 시간표네요!" 앨리스가 소리쳤다.
"그래서 수업이라고 하는 거야." 그리핀이 말했다. "수가 하나씩 없어지니까."
- 앨리스는 하얀 토끼를 본 순간부터 자신이 겪은 모험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두 동물이 양옆에 바짝 붙어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쫙 벌리고 있는 게 조금 불편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용기가 생겼다. 거북과 그리핀이 조용히 듣는 가운데 앨리스는 애벌레에게 늙으신 신부님을 읊는데 말이 완전히 다르게 나온 부분까지 이야기했고, 모조 거북이 숨을 길게 들이쉬고 말했다. "아주 신기하군."
"최고로 신기해." 그리핀이 말했다.
"말이 다르게 나오다니!" 모조 거북이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난 이제 얘가 무언가 낭송하는 걸 들어보고 싶어. 얘한테 한번 해보라고 해." 그러고 나서 모조 거북은 그리핀을 보았다. 마치 그리핀이 앨리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일어나서 게으름뱅이의 목소리를 암송해봐." 그리핀이 말했다.
'동물들은 참 명령을 좋아해, 암송도 시키고!' 앨리스가 생각했다. '학교에 가는 게 차라리 낫겠어.' 하지만 앨리스는 일어나서 암송을 시작했는데, 머릿속에 바닷가재 카드리유 생각이 가득해서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말은 완전히 멋대로 나왔다.
(리뷰자 주 : Father를 신부님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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