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스티브 벤보우] 도시 양봉 - 도심 속 양봉가의 즐거움

일루젼 2022. 7. 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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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스티브 벤보우 / 이은주

원제 : The urban beekeeper : how to keep bees in the city 
출판 : 들녘 
출간 : 2013.07.03 


       

양봉 관련 유튜브 채널 중 프응TV를 즐겨 보고 있다. 말벌 조지워싱턴 시리즈가 인기를 끄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쪽보다는 꿀벌과 양봉에 관한 내용 위주로 정주행을 완료했다. 

 

양봉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겨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찾아 읽었는데, 이 책은 놀랍게도 런던 한 복판에서 -그것도 유명 백화점의 옥상이나 미술관 등에서- 양봉을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영국은 벌을 죽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는데, 국가 차원에서 양봉을 육성 사업으로 선택한 모양이다. 또 유명 브랜드 회사들은 계약을 통해 자체 브랜드 꿀을 생산하기도 하는데, 그중 바디샵도 존재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제품에 사용하는 꿀 전체를 자체 생산하지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긍정적인 이미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책 전체는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나뉘어져 있다. 해당 월에 신경 써야 할 양봉 작업과, 저자 자신이 그 시기에 직접 체험한 일화들을 섞어서 진행하는데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특히 꿀을 이용한 레시피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더 즐겁게 읽었다. 

 

한 해를 시작하며 그 해 사용할 물품들을 정비/구매하는 1-2월부터 벌들이 본격적으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3월, 그리고 분봉을 조심해야 하는 본격적 유밀기인 4-5월로 정신없이 달려간다. 꿀을 채취하고 판매하는 일은 1년에 여러 번 진행되는데 시기와 지역, 또는 벌통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이 난다는 게 새삼 신선했다.

 

개인적으로는 장미 꿀을 좋아하는 편인데, 가끔 회생시키기 힘든 차에 조금씩 섞어마시는 정도다. 사양꿀과 농축꿀, 천연꿀 같은 용어만 겨우 들어보았었는데, 양봉에 관심이 생기니 아무래도 눈이 한 번은 더 가게 된다. 한국에서도 도시 양봉이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런던에서 가능했다면 희망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드닝 문화가 시작된 영국과는 문화적 사회적 여건이 꽤 차이가 나지만, 벌들을 완전히 소모재로 대하는 미국보다는 동반자로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영국 쪽에 가까운 시각이 자리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즐겁게 읽었다. 

 


 

- 나는 벌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좋아한다. 민첩하게 날아다니지만 나른하게 느껴지는 모습과 들릴 듯 말 듯 윙윙거리는 소리(졸린 듯한 그들의 강한 비트가 들린다면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이 다가왔다는 신호다)도 좋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달콤하고 다채로운 꿀이야말로 당연히 좋아한다. 조금만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채취해도, 꿀의 풍미가 감칠맛 나는 밤부터 달콤한 라임과 부드러운 장미향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해서 늘 놀라움의 원천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조그만 생물체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벌들이 전부다. 나는 그들의 다양한 성격을 무척 좋아하며, 그들의 훌륭한 직업의식에 감탄해마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벌통 한 개에 들은 벌들이 1년 동안 날아다닌 거리를 합하면 달까지 다녀올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겸손함에 경외심을 품고 있다.

 

- 지난해에는 양봉용 트럭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비롯한 작은 버너와 꼭 필요한 통조림 몇 개, 텐트와 침낭을 싣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며 지냈다. 개울에서 씻고 옷은 주유소에 있는 핸드 드라이어로 말리고,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을 먹기도 하며, 가능한 한 자급자족하다 보니, 편안한 잠자리와 따끈한 목욕물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지금은 사업규모가 더 커지면서 생활이 다소 달라졌다. 올해에는 연휴가 지나자마자, 내가 꿀을 납품하는 수많은 레스토랑과 식품 코너들이 재구매하려고 열을 올렸다. 크리스마스에 호황을 누려진 열 장의 상품이 싹 팔렸기 때문이다. 남은 꿀을 채취해서라도 내 재정 상태 향상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1월에는 꿀을 채취하는 일이 거의 없다. 1년 중 이 시기는 너무 추워서 자연적으로 꿀을 모을 수가 없으므로 분별 있는 양봉업자라면 대부분 몇 개월 전인 늦여름이나 초가을 따뜻한 날에 이미 다 채취했을 것이다. 혹은 아예 양봉철이 지난 뒤에 숙성한 꿀을 채취하기도 한다. 

 

- 그러나 나는 런던이야말로 장차 벌들이 건강하게 지내며 양질의 꿀을 생산해내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것을 안다. 또한, 우리가 지내던 시골에 점점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염려하던 터이니만큼 내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미 포트넘앤메이슨(Fortnum&Mason) 건물 옥상에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벌통들을 갖추어놓고, 사업을 수도 런던 전역으로 확장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작년에 이 유명한 백화점에서 벌통 네 개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한 결과다. 벌통이 백화점에 도착한 이래로 벌들은 꽃과 벌통 사이를 성공적으로 왕래하고 있으며, 벌들의 움직임을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웹캠 두 대를 설치해놓았다.

 

- 시골에서는 주로 한 가지 꽃을 밀원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벌들은 끊임없이 농약으로 말미암은 위험에 직면한다. 특히 유채씨에 사용하는 농약은 대부분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해를 벌들에게 끼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런던의 밀원은 42퍼센트가 공공용지이고 24퍼센트는 사유 정원이다. 게다가 철도 가장자리의 녹지와 옥상정원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며, 사람들은 창가에 으레 꽃을 심은 화분을 놓아두고 공원에는 꽃밭을 더 많이 조성하고 있다. 꽃가루가 다양하므로 꿀맛 또한 환상적이다. 웨스트 웨일스와 슈롭셔는 시골인데도 그곳의 벌들은 아직 농약 위험은 거의 없다. 그래도 미래 세대의 벌들을 위해서는 도시양봉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 벌은 0도에서도 날 수 있다. 하지만 벌통 밖으로 나갔다가 잠깐이라도 어딘가에 멈춰서 날개를 움직이는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8도 이하의 기온에서는 다시 날아오를 에너지를 얻을 가망이 없으므로, 벌은 십중팔구 죽는다. 가장 먼저 꽃피는 아네모네와 그에 이어서 피는 크로커스(crocus)는 벌들에게 최초의 꽃가루 공급원이 되어줄 것이다. 특이하게도 벌들은 꽃가루를 뭉친 덩어리를 다리에 붙여서 벌통으로 돌아오는데, 이것은 새끼들의 성장에 중요한 단백질을 공급한다. 양봉철 초기의 꽃가루는 새로운 벌들의 생육에 꼭 필요하다. 

 

- 여러모로 볼 때, 벌통을 선정하는 것은 몇 달 전에 계획해서 연초에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 중의 하나이다. 나는 삼나무로 만든 벌통을 추천한다. 삼나무는 벌레가 침투하기 어렵고 쉽게 부패하지 않으며 별다른 보존처리를 할 필요가 없다. 삼나무의 천연 기름 성분은 나무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가진 삼나무 벌통 중에는 60년이 넘은 것들도 있다. 무리 없이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양봉하기 위해서, 구하기 쉬운 미송(Douglas fir)이나 흔하고 부드러운 다른 나무들로 만든 벌통들을 널리 이용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음에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보존처리와 보호관리를 해야만 한다. 

 

- 1월이 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일은 벌통에 옥살산 처리를 하는 것이다. 꿀벌을 공격하는 기생 진드기인 꿀벌응애 때문에 봉군을 잃는 치명적인 위험을 줄이려는 방법이다. 옥살산 처리를 하면 벌의 유충까지 죽일 수도 있으므로 여왕벌이 본격적으로 알을 낳기 시작하기 전에 즉 휴면기인 1월에 해야 한다. 옥살산은 벌통 안의 수소이온 농도를 변화시켜서, 어른 벌의 등에 달라붙은 진드기들을 죽이거나 등을 꽉 붙잡고 있던 힘이 빠져 벌통의 그물망 사이로 떨어지게 한다. 옥살산은 벌에 기생하는 진드기만 죽이지 어느 정도 자라서 벌방을 막은 유충에 붙은 것들은 죽이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유충이 생기기 전이나 아주 조금만 있는 상태에서 옥살산 처리를 해야 한다. 


- 진드기가 벌통에 얼마나 심하게 우글거리는지 알려면, 그물망 아래에 끈적끈적한 판을 두어 진드기 군단을 잡으면 된다. 끈적끈적한 판은 진드기가 벌에게로 다시 기어 올라가지 못하도록 두꺼운 흰색 종이나 플라스틱판에 간단하게 올리브유와 바셀린을 섞어 발라서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떨어진 진드기들을 세어보기도 전에 바람에 날아가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이 진드기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놔두면 봉군을 다 죽여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진드기가 있는지 벌들을 정기적으로 살피는 것은 양봉가로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엄연한 사실을 일찍 깨닫는 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   

 

- 몇 년전 어떤 경매에서 <히블라산의 꿀단지(A Jar of Honey from Mount Hybla, 1859)>라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1부 시작 부분에 포트넘앤메이슨사의 창밖을 지나가다가 쇼윈도에 진열된 작고 파란 시실리 꿀단지를 바라본다는 표현이 나온다. 포트넘은 언제나 자기네 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 벌들의 후각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벌들도 우리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쾌한 냄새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이 언짢아져서 관리하는 사람을 쏘기 쉽다. 그러므로 벌들과 잘 지내려면 청결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유목생활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 벌에게 다른 벌이 채취해온 꿀을 절대로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벌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비축해놓은 꿀을 갖고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위해서 시럽을 만들어주면 된다(93쪽 참조). 나는 몇 년 전, 미들랜드(Midlands)의 교구 목사가 자기 벌들에게 끈적끈적한 것을 대접하기로 하고 슈퍼마켓에서 남아메리카 꿀을 사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여름에 벌통을 점검했는데, 벌들이 모조리 아메리카 부저병(AFB:American Foul Brood)에 감염되었다. 이것은 벌통뿐만 아니라 꿀에도 수년 동안 잠복해 남아있을 수 있는 아주 끔찍한 유충병이다. 질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그는 벌통들을 모두 완전히 소각해야만 했다. 그런 다음 혹시라도 불탄 벌집에서 흘러나온 꿀에 다른 벌들이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땅 몇 피트 아래에 묻었다. 일단 아메리카 부저병에 걸리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유럽 부저병(European Foul Brood)은 그나마 덜 치명적이어서, 항생제로 치료하거나 혹은 '벌떼 흔들기 (Shook Swarm)'라고도 불리는 방법으로 벌들을 새틀에 흔들어 넣음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벌들이 아메리카 부저병이나 유럽 부저병에 걸린 게 의심되면, 반드시 국립양봉협회(National Bee Unit)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면 그곳에서 감독관을 파견할 것이다. 이것은 모두를 위해서 정말 필수적인 절차다. 

 

-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과 4월 초에는 배설물의 축제가 벌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1년 중 처음으로 벌들이 대규모 비행에 나서는 모습이 장관이긴 하지만, 벌들이 날아다니면서 몇 달 치 배설물을 한꺼번에 방출할 테니 그 아래에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 위생적인 동물은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응가를 꾹 참는다.

(리뷰자 주 : 특히 그 주변에 주차된,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진 차에 폭격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대개 여왕벌들에게는 3년째가 마지막 해가 된다. 생식능력이 없어진 여왕벌은 봉군을 강건하게 유지하기 위해 벌들이 직접 교체하기도 하고, 양봉가가 교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왕벌이 남긴 유산은 계속될 것이다. 만약 여왕벌이 특출난 특징, 즉 좋은 기질을 가졌고 새끼도 순하고 부지런하면, 양봉철 후반에 훌륭한 딸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알을 개량한다. 종봉 씨벌로 사용할 여왕벌들은 몇 가지 특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정한다. 

 

- 벌통을 옮길 때의 불문율은 이동 거리가 3피트 이내이거나 3마일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벌들은 중력에 민감하다. 또한, 그들은 여러 가지 지표를 이용해서 자기 집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갈 능력이 있다. 겹눈을 사용하여 좋지 않은 날씨에도 구름을 관통해서 해를 볼 수 있고, 이것을 위치를 찾는 지점으로 사용한다. 만약 벌통을 3피트 이상에서 3마일 이내로 옮기면, 당황한 수천 마리의 벌들이 예전에 자기 벌통이 있던 곳 주변으로 모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무작정 그곳에서 머물면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다. 예전에 벌통이 있던 장소에서 당황한 벌들이 기다리는 모습은 비극적이다. 벌들을 정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옮기고 싶거나 옥상에서 정원으로 옮기고 싶다면, 새로운 위치에 배치하기 전에 먼저 최소한 3마일 이상 떨어진 곳으로 며칠 동안 옮겨놓아야 한다. 그래야 벌들의 뇌리에 박힌 자기들의 원래 위치를 잊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대단히 법석을 떨게 되므로, 애당초 벌통 위치를 극히 신중하게 선정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는 가장 좋은 위치를 찾을 때 오래된 낡은 나침반을 사용한다. 겨울에는 태양이 높이 뜨지 않고 때로는 나무나 담벼락에 가려질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 믿기지 않겠지만, 햇볕이 조금만 들어도 벌들이 잘 자라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벌통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벌통 내부의 습기를 말리고 공기가 잘 통하게 한다. 성충 벌들의 창자를 공격하는 노세마(Nosema)병 같은 끔찍한 질병도 예방할 수 있어서 좋다. 태양은 벌들의 비행 근육을 따뜻하게 해 주고, 아침 일찍 벌들을 깨워서 밖으로 나가게 해서 우리를 위해 더 많은 꿀을 생산하도록 해 준다. 인간에게 그런 것처럼, 햇빛은 벌들도 행복하게 해 준다. 

-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벌집에 방이 너무 적으면 벌들은 빨리 분봉하고 싶어 할 것이다. 여왕벌이 알을 낳을 방이 아직 충분한가? 아니면 전부 꿀과 어린 벌들로 가득 차 있는가? 만약 가득 차 있다면 여왕벌을 위해 공간을 더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소초장을 더 많이 넣고 꿀이 저장된 벌집은 꺼내든지, 아니면 벌통 위에 벌통을 더 얹어서 육아공간과 꿀을 저장할 공간을 늘리도록 하라. 만약 공간이 너무 비좁아진다면, 벌통의 벌집을 두 군데로 나누어서 새로운 봉군을 형성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 왕대가 생기지 않았는가? 이 점검은 복잡하지만, 필수적인 일이기도 하다. 만약 벌통을 아예 점검하지 않는다거나 벌통에 이상하게 보이는 방들이 있는데도 제대로 못 보고 지나친다면, 결국 분봉은 양봉가 책임일 것이다. 왕대를 찾아내서 처리하는 방법은 바로 아래쪽 '왕대'라는 항목에서 따로 논하겠다. 유충 점검을 마쳤다면, 벌통을 닫기 전에 다음번에 점검하러 올 때 가져와야 할 것은 무엇인지 확인한다. 먹이를 비롯해서, 더 많은 벌집틀이나 계상 등 아주 많은 품목이 있으므로 메모를 해두도록 한다. 지금부터 한여름까지 정기적으로 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필요한 품목을 깜박해서 양봉장에 또다시 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 왕대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그렇다. 이는 키우는 벌들이 식구가 늘어나서 살림을 내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동시에 벌들이 왕위찬탈을 노리며 새로 옹립할 여왕벌을 키우는 중일 수도 있다. 이는 여왕벌의 활동이 저조해 알 낳는 기계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고 벌들이 느낄 때 일어난다. 만약 왕대의 숫자가 적다면, 경험으로 미루어 막 살림을 내려는 벌통과 왕가를 무너뜨리려는 벌통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벌통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는 개입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마라. 어차피 왕대가 발달하는 데 16일이 걸리므로 어떤 선택을 할지 숙고할 시간은 있다. 일반적으로 벌들은 왕대에 봉개(蜂)를 덮은 지 9일 후에야 분봉을 고려할 것이다. 

(리뷰자 주 : 어떤 선택을 하건 여왕벌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만약 실수로 기존 여왕벌과 왕대 모두를 잃는다면 -그리고 3일령 이하 애벌레도 없다면- 혼란에 빠진 벌들은 동봉산란을 시작할 수도 있다. 동봉산란은 여왕벌이 아닌 일반 일벌 중 하나가 여왕벌처럼 산란을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일벌은 무정란밖에 낳지 못하므로 태어나는 벌들은 죄다 노동력/벌침이 없는 숫벌뿐이다. 활동기의 일벌들의 수명은 30-60여 일이므로 세대를 교체하지 못한 봉군은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문제점은, 동봉산란이 시작되면 산란을 시작한 일벌은 이미 '여왕벌'로 인식된 상태라는 것이다. 양봉업자는 수많은 일벌들 사이에서 '누가' '여왕벌'인지 찾아낼 수가 없다. 또 해당 벌통에는 여왕벌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므로 새 여왕벌을 넣어주어도 봉군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여왕벌이 있는 상태로 다른 봉군에 합사 시키면 전쟁이 일어날 테니, 해결 방법이 거의 없다.)  

- 벌들에게 즉각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 육아용 벌통을 더 얹거나, 계상을 올리고 격왕판을 그 위에 설치해 여왕벌이 알을 낳을 방을 더 만들면 된다. 만약 왕대가 성장한다면 두 벌집 사이에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발견하기가 아주 쉽다. 그래도 벌들은 분봉할 수도 있다. 최선의 방책은 인공적으로 분봉을 장려하는 것이겠지만, 이 방법을 초보자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 보통 4월에 발생하는 또 다른 현상은 여왕벌들의 능력이 감퇴하는 것이다. 여왕벌은 산란능력이 절정일 때 하루에 1,500개의 알을 낳지만, 때때로 녹초가 되기도 한다. 만약 벌통을 열었을 때 여왕벌이 벌방 하나에 알을 다섯 개씩 낳았다면, 이는 '후추 뿌리기'라고 불리는 무작위 산란 패턴으로 여왕벌이 정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또한 (무정란에서 태어난) 수벌이 될 유충이 증가하는 것은 여왕벌이 짝짓기 비행에서 축적한 정자가 다 고갈되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여왕벌이 제대로 알을 낳지 못한다면 봉군이 휘청거릴 것이다. 벌 숫자가 심각하게 감소할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나는 런던 꿀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을 뻔했다. 일반적으로 상업적 양봉을 한다면 봉군을 강건하게 유지하기 위해 여왕벌을 몇 년마다 교체한다. 내가 아는 양봉가 중에는 심지어 여왕벌을 계절마다 부지런히 바꾸는 사람도 있다. 

(리뷰자 주 : 국내 양봉업계에서는 대체로 1년마다 교체한다고 한다.)

 

- 때로는 벌통을 열었을 때 여왕벌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여왕벌이 없으면, 벌들은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래서 지붕을 들어 올리자마자 대번에 이런 상황을 알 것이다. 아무리 침착하게 대처해도 벌들의 못마땅한 심정을 가라앉히지는 못한다. 올해 내 벌통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다. 벌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봉군의 세력이 약해서 비롯된 일이지만, 여왕벌이 나이가 많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 벌통에 여왕벌이 없을 때, 새로운 여왕벌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벌통에서 꺼낸 알이 들은 벌집을 넣어주고 벌들이 기존 유충을 여왕벌로 모시도록 두는 것이다. 이것은 비상 왕대 혹은 급조 왕대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태어난 여왕벌은 제대로 양육한 여왕벌보다 크기도 조금 작고 약간 열등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또 다른 여왕벌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임무를 잘 해내며, 철 내내 만나게 될 것이다.

(리뷰자 주 : 이렇게 하는 방식은 처음 알게 되었다. 대체로 성체 여왕벌이나 왕대가 없는 경우는 다른 벌통으로 봉군을 나누어 합사시키는 것 같았다. 아마 국내 양봉장에서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새로 여왕벌을 길러내고 그 여왕벌이 교미 비행을 마치고 알을 낳기 시작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진되기 때문일 것이다. 유밀기에는 하루하루 시간이 소중하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을 때 벌들이 날개를 흔드는 것은 '우리 집에는 여왕벌이 없어'라는 의미로 일종의 항복 표시라고 한다. 여왕벌을 잃었을 때 해당 봉군 내에 3일령 이하의 애벌레가 있는 경우에는 알을 넣어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왕대를 만들 수 있는데, 여왕벌이 되는 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일벌들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일 때 3일까지만 로열젤리를 먹이지만, 여왕이 될 애벌레는 번데기가 될 때까지 쭉 먹이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한다.)    

 

- 물론, 분봉이 벌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분봉할 때는 잠시 육아활동을 멈춰서, 꿀벌응애의 자연적인 순환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자연양봉신뢰협회(The Natural Beekeeping Trust)는 분봉이 벌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데 견해를 함께한다. 이것이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런던에서 벌들을 건사하는 사람은 다른 측면에서 고려할 사항이 있다. 분봉 광경을 보면 많은 사람이 공황상태에 이를 정도로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혼잡한 도시지역에서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거니와 최소한, 미리 방지하려는 시도는 해야 한다. 아마도 나의 무능함에서 비롯한 일을 모두 뒷감당하게 될 동료 도시양봉가들 사이에서, 끔찍한 평판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뒷부분을 좀 더 읽다 보면 알겠지만, 나는 벌들이 분봉하지 않도록 항상 온갖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봉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못 한다. 

 

- 거의 대부분 사람에게 5월은 통상적으로 즐겁고 명랑하게 환호하며 지내는 달이다. 마침내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5월은 지옥의 형벌이나 다름이 없으며, 밤잠조차 제대로 못 이루는 가혹한 시기이다. 분봉의 달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도 런던을 누비고 다니는 것은 모두 벌의 행동에 좌지우지된다. 벌들이 달아날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지 점검하기 위해 이 양봉장에서 저 양봉장으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한다. 늦게까지 일하며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심지어 삶은 달걀을 까먹는 일조차도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여길 정도다. 트럭에서 잠이 들거나, 혹은 런던 북부의 양봉장 숲 속에서 방수포를 덮고 자거나, 심하게는 옥상에서 잠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야만 일을 다 끝마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떠돌이 생활을 유지한다 해도 충분히 잘 수 있는 건 아니다. 잠이야말로 이렇게 정신없이 분주한 5월에 정말로 필요한데 말이다. 

 

- 나무와 좀 더 늦게 꽃피는 야생 자두나무에서 짙은 꿀을 생산한다. 가장 성공적인 벌통들은 첫 주에 꿀을 반 상자나 만들어낼 수 있다. 꿀이 일찍 모일 조짐이 보였던 벌통을 일주일 후에 들여다보고 나서, 어떤 악마 같은 존재가 꿀을 훔쳐갔다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벌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먹이를 먹어야 하는 배고픈 입들이 많아서 빚어진 결과이므로, 게다가 꿀은 원래 벌들의 소유다. 만약 일주일간 맑았다가 일주일 동안 악천후가 이어지면, 꿀이 순식간에 바닥날 가능성이 있다. 틀림없이 벌들은 꿀을 더 가지고 들어오려고 하지 않고, 저장된 꿀을 오물오물 먹으면서 벌통 안에 머무를 것이다. 

 

- 벌들이 좋은 날씨를 활용할 수 있으려면 조건이 알맞아야 한다. 벌통 지붕을 들어 올렸을 때 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꽃이 평년보다 일찍 피고 벌통이 겨울에 손실을 입어 회복 중이라 벌들의 숫자가 여전히 적은 경우가 종종 있다. 유밀기에 벌통을 열었는데 벌들이 보글보글 넘쳐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은 벌꿀을 얻기는 어렵다. 미묘한 균형이 맞아야만 한다. 꿀을 충분하게 많이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봉군이 커지기를 바라지만, 벌이 벌통 지붕 꼭대기까지 잔뜩 들어있으면 분봉하기 더 쉽다. 분봉하려는 본능을 촉발시키지 않으면서, 가장 크고 생산적인 봉군을 만드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 작년에는 내 벌들이 젊고 강건했기 때문에 꿀을 굉장히 많이 수확했다. 재작년에 많은 공을 들인 덕분에 많은 꿀로 보답을 받았다. 문제는 작년에 내가 꿀을 수확하느라고 너무 바빠서, 올해 생산의 기틀이 될 새로운 봉군을 만드는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모가 대폭 감소한 봉군에서 그 결과를 인정하는데, 내년 꿀 수확이 더 나아지도록 하려면 반드시 봉군을 증강해야 한다. 한해의 수확이 좋으면 그다음 해 수확이 부실한 것은 대단히 정상적인 상황이며, 특히 양봉가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들이 주어질 때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꿀 수확이 좋으려면 이상적인 기후조건과 주도면밀한 계획 수립, 세심한 관리가 어우러져야 한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 내내 한결같이 꿀 수확이 좋기는 어렵다. 나는 기껏해야 두 계절을 그럭저럭 해나가는 편이다. 

 

- 벌들이 과열해 질식사한 흉한 장면을 보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두 번이나 목격했다. 최악은 웨일스에 있는 헤더 황야 지대로 가는 길에 일어났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울퉁불퉁한 길을 너무 빨리 지나간 바람에 벌들이 벌통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공기 통풍구가 막혔던 것 같다. 벌통을 열자, 녹아내려 찐득찐득한 밀랍과 수천 마리의 조그만 시체들이 뒤범벅된 채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너무도 비극적인 광경이었다. 벌통이 과열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한다. 

(리뷰자 주 : 그러므로 햇살이 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절대 직사광선이 쏟아지는 위치에 벌통을 두어서는 안된다. 겨울에 너무 춥지 않되, 여름에도 너무 뜨겁지 않아야 한다. 겨울 시즌에 월동 준비를 할 때도 평균 기온보다 따뜻한 날 벌들이 일찍 깨어 활동하지 못하도록, 적절히 추울 정도로만 주의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한다.)

 

- 그녀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 작업복과 복면포, 얇은 양말만 착용하고서 그렇게 오랜 시간 일했음에도 한 번도 벌침에 쏘이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성품을 천성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뷰자 주 : 벌들은 두려워 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 하지만 벌침은 두려울 만큼 아프다.) 

 

- 분봉의 목적은 간단하다. 봉군을 번식하려는 것이다. 늙은 여왕벌은 더 큰 무리의 일벌, 대개 봉군의 약 60퍼센트에 해당하는 일벌들을 데리고 나간다. 새로운 여왕벌이나 최근에 태어난 여왕벌과 나머지 일벌들을 원래의 벌통에 남겨두고서, 집을 만들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 날아가 버린다. 벌통에 이상한 모양의 왕대들이 생겼다는 것은 분봉이 임박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분봉하는 벌들은 여행을 떠나려고 꿀을 잔뜩 먹어 배가 불러서, 대개 자기들이 원래 있던 벌통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일단 무리 지어 있다. 그런 다음 약간 멀 수도 있는 새롭고 안전한 거주지를 찾기 위해 정찰병을 내보낸다. 만약 운이 좋다면, 벌들은 원래 장소에서 몇 시간 가량 머무를 것이다. 소음이나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거나, 특히 날씨가 나빠지면 근처에 좀 더 머문다. 때때로 모두 튀어 나가고 싶어서 정원이나 건물 둘레를 몇 바퀴 돌고 난 다음 결국 떠나왔던 벌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휴!

(리뷰자 주 : 확인이 필요한데, 새로운 여왕벌이 나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 벌들이 분봉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봉군의 규모가 커서이다. 나는 꿀을 엄청나게 많이 수확할 정도로 봉군을 거대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여왕벌이 더 이상 알 낳을 공간이 없이 과밀한 봉군은 분봉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개 모험을 하면 성과를 올릴 수가 있는데, 나는 분봉의 징후를 보여주는 벌들을 조심스럽게 머무르도록 설득한다. 

 

- 여왕벌의 나이와 벌의 품종도 분봉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이다. 다른 품종보다 분봉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는 벌 품종도 있다. 카니올란종(Carniolan)을 주로 키우는데, 이것은 서양 꿀벌의 변종으로, 슬로베니아가 원산지이며, 거의 매년 5월 3일경에 분봉을 한다. 이 벌들은 '유괴'를 방지하기 위해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 

 

- 날씨도 한몫하는데, 찌는 듯이 무더운 날이 계속되면 벌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흥분하는 모습을 종종 볼 것이다. 비 오는 날에는 벌들이 분봉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경험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곤 했다.

 

- 그때와는 완벽히 대조적으로 오늘날에는 따사롭고 맑은 날들이 이어지면, 양봉가들은 벌통 앞쪽에 움직임이 증가한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벌들의 교통량이 늘어난 것은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결과다. 여왕벌은 분주하게 알을 낳고, 봉군은 날로 번창한다. 산란율은 대개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인 6월 21일에 절정에 달하지만, 알이 부화하는 데 3주가 걸리기 때문에, 벌통의 개체 수가 가장 많아지는 때는 7월 중반일 것이다. 벌통 밖에서 그런 벌 무리를 보면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초보 양봉가에게는 그것이 마치 벌들이 분봉하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걱정 마라. 완전히 정상이다. 단지 새로이 출현한 벌들이 자기 벌통 입구의 위치를 익히며 주위 환경을 알아가는 중일뿐이다. 이것은 벌들이 소위 '한낮'의 비행'을 수행하는 것으로, 벌통 밖으로 첫 번째 여행을 나서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위성항법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이다. 곧 먹이를 찾아 나서는 탐험에 착수한 내 벌들은 런던을 일주할 것이다. 

 

- 이런 만남은 모든 것을 가치 있게 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처음에 벌통 가까이에 사는 것을 경계하다가도 일단 벌들이 삶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깨달으면, 대개는 금방 지지해준다. 또한, 보통 꿀벌은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다고 설명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말벌과 달리 꿀벌들은 별로 공격적이지 않다. 그들은 1년 중 시기에 따라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취하느라고 너무 바빠서, 일반적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거의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리뷰자 주 : 얼마전 경험한 일인데, '롬브로단로'를 뿌리고 나가면 꿀벌들이 달려든다...) 

 

- 서양지치는 밝은 꿀을 생산하는데, 갓 채취해 신선할 때는 거의 반투명하다가 굳어지면 새하얗게 변한다. 서양지치 꿀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많지만, 유감스럽게도 생산은 대부분 중국으로 옮겨가서 영국산 꿀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 3시 방면에 내놓은 접시에는 솔즈베리 평원(Salisbury Plain) 꿀을 담았는데, 이것은 살짝 약 냄새가 난다. 맛있으면서도 형언하기 어려운 오묘한 맛이다. 시골에 유채꽃이 들어와서 대부분 벌의 먹잇감으로 군림하기 전까지 이런 맛의 꿀이, 아마도 맛 때문에 영국에서 사랑받았을 것이다.

 

- 6시에는 내 런던 꿀 중 하나이자 복고풍을 내놓았다. 8년 전에 버몬지의 옥상에서 채취한 마지막 꿀이다. 사탕 같아서 큰 인기를 끌었다. 

- 마지막으로 9시에는 모든 꿀 중에서 가장 강력해서 가장 나중에 시음해야 하는 꿀을 내놓았다. 단백질이 풍부한 영국산 헤더 꿀인데, 내 생각으로는 과대평가된 마누카 꿀(manuka honey)보다 이 꿀이 훨씬 더 좋다. 헤더 꿀을 모으려면 대단히 힘든 탐험을 해야 해서, 우리 꿀 중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다. 이 꿀을 모으려면 아무리 고단해도 헤더 꽃이 피는 아주 짧은 기간을 놓치지 않도록 매처럼 날씨를 지켜보면서, 척박한 고지대의 꼭대기를 샅샅이 훑고 다녀야 한다. 

- 꿀 시식회는 와인 시음회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은은한 맛에서 시작하고 가장 강한 맛에서 끝내서 미각을 파괴하지 않도록 한다. 꿀 냄새를 천천히 들이마신다. 먼저 냄새를 충분히 맡지 않고 다짜고짜 먹기부터 하면 절대 안 된다. 꿀마다 놀라울 정도로 미묘하고 섬세하며 극적인 차이가 있다. 그래서 꿀을 종류에 따라 아주 신중하게 배치했다. 손님들에게는 한 가지 꿀을 먹었을 때마다 물을 한 컵 마셔서 입가심하라고 조언했다. 

 

- 지금껏 나는 자기네 정원에서 호박벌의 벌집을 제거하고 싶다는 전화를 종종 받아왔다. 사람들이 왜 호박벌의 벌집을 발견하자마자 제거하려고 하는지 늘 의아했다. 몇몇은 그것을 말벌의 집이라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두 가지를 구분하기는 굉장히 쉽다. 말벌의 집은 종이 같은 물질로 만들었으며, 갈색과 회색이고 농구공 모양이 아래로 늘어져 있다. 반면에 호박벌의 집은 오히려 새의 둥지에 더 가깝다. 아주 작은 꿀단지 같은 집으로 일반적으로 땅 밑이나 덤불 속에 짓는다. 말벌은 공격적이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호박벌은 일반적으로 윙윙거리며 돌아다닐 뿐이다. 특히 호박벌의 집이 장작 더미나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을 어떤 곳에 있다면, 정원에 벌집이 한 개 정도 있는 것도 특권이라고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만약 벌집이 집에 너무 가까이 있다면 분명히 근처 숲으로 옮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벌을 죽이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대신 다른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리뷰자 주 : 꿀벌들이 사라지는 것이 위기 신호라는 뉴스는 많이 봤지만, 국가적으로 벌을 보호하는 정책을 편다는 것이 신기했다.) 

 

- 양봉하면서 지금까지 장거리 이동 중에 아주 끔찍한 재앙을 몇 번 겪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쾌했던 일은 고환에 벌침을 쏘였던 때이다. 바보같이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상자에서 탈출한 벌 한 마리가 다리를 쏜살같이 올라와서 나를 쏘고 말았던 것이다. 아, 얼마나 아프던지(게다가 나중에 얼마나 심하게 부었던지...)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운전했다. 정말로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때, 믹 재거가 음경 크기를 키우려고 고의로 벌에 쏘였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1982년 영화 <피츠카랄도 Fitzcarraldo>를 촬영하면서 전해 들은 대로 고대 아마존의 결혼 의식을 시행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나고도 남을 만큼 아프겠지만, 실제로 벌에 쏘였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장소는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은 바로 귀 안쪽과 코끝이다. 특히 꽃가루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중이라면 더욱 괴로울 것이다. 

(리뷰자 주 : 어느 곤충에게, 어디가 쏘였을 때가 가장 아픈지가 궁금하다면 '이그노벨 상(Ig Nobel Prize)'을 수상한 저스틴 슈미트의 연구를 참고하시라.)

 

- 미국에서는 방대한 아몬드와 멜론 밭을 수분하기 위해 벌을 한꺼번에 몇천 상자씩 옮긴다. 대개 화물운반대에 얹어서 지게차로 대형트럭에 실어서 옮긴다. 벌들은 그 안에 갇힌 채로 며칠을 지내며, 결과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들은 벌을 잃더라도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상업적 물품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벌들이 질병에 많이 걸려 사정이 많이 나빠졌다. 결국, 지금은 붕괴한 봉군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벌을 마분지 통에 담아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비행기로 수입하는 실정이다. 이 모든 정황은 벌을 옮길 때는 무척 조심스럽게 돌보는 것이 이치에 바르다고 일깨운다.

(리뷰자 주 : 벌들을 꿀 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농업을 위한 수분 작업자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천 평에 이르는 밭들이 결실을 맺게 하려면 인위적인 수분 작업이 필요할 것도 같다. 다만 소비품으로 인식하기보다 지속적인 양봉을 지향하는 쪽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 갓 따온 화밀은 때때로 발 위에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벌집을 수평으로 기울이면 화밀이 물처럼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그것은 숙성되지 않았거나 밀랍 덮개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벌들이 힘들게 마련한 소중한 꿀을 채취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꿀이 숙성했는지는 묽었던 꿀의 농도가 걸쭉해진 것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다. 꿀은 절대 상하지 않는 유일한 음식물 중의 하나이다. 천연 당분이 엉겨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성은 변할 수 있어도 썩지는 않는다. 벌들이 밀랍으로 방을 각각 덮기 전에 양봉가가 꿀을 채취하지 않는 한 그렇다. 봉개 전의 꿀을 채취하면, 매우 빠르게 발효한다. 소비자들은 발효해서 거품이 부글부글 이는 꿀을 음미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뷰자 주 : 그래서 채밀 작업에서는 뜨거운 물에 데운 밀도로 봉개된 밀랍을 베어낸다. 해당 영상은 ASMR적인 즐거움이 있다.) 

 

- 이 일을 하면서 종종 드는 의문은 말벌의 목적이다. 우리 대부분은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말벌들이 노천 맥줏집을 공포에 떨게 하는 사악한 생물체들이라고 느낀다. 따뜻한 날에 야유회를 나온 어른들을 괴롭혀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양팔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게 하는 존재들이다. 사실 그들은 화분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폭발물을 탐지하는 데 쓰일 정도로 상당히 똑똑하다고 한다. 또한, 말벌은 벌통 입구 밖에 버려진 죽은 벌을 먹어치우거나, 살아있는 진딧물을 먹어서, 정원사들을 기쁘게 해주기도 하는 유용한 육식동물이다. 

(역자 주 : 말벌은 뛰어난 후각 능력이 있어서, 설탕 한 방울과 특정한 냄새를 10초씩 세 번만 맡게 하면, 그 특정한 냄새를 기억한다. 훈련한 냄새, 즉 폭발물을 찾으면 음식으로 착각해서 더듬이를 내린다. 이것을 컴퓨터로 모니터링해서 폭발물 여부 판단한다.) 

 

- 1년 중 이 시기에는 맛없는 단일 밀원식물인 유채꽃 사방에 널려있다. 유채꽃으로는 대풍작이라고 할 만큼 꿀을 많이 생산할 수 있어서 추앙하는 양봉가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생산한 꿀 품질은 형편없다. 유채꿀은 맑고 양배추 냄새가 나며, 맛의 깊이가 없어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점은, 유채꽃이 벌들에게 상당히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벌들은 유채꽃이라면 무조건 지나치게 흥분한다. 유채꽃은 강력한 자석처럼 벌들을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벌들의 넋을 빼앗아버린다. 근처에 아무리 맛있는 꿀을 생산할 수 있는 블루벨과 클로버 밭이 있어도 무시하고 유채꽃을 향해 달려가도록 한다. 금방 지치고 날개가 너덜너덜해져도, 벌들의 작은 시스템은 과하게 흥분해서 더 많은 꿀을 찾으러 돌아가기를 멈출 수가 없다. 유채꽃은 벌에게 마약과도 같은 존재(그만큼 해롭다)이며, 거기다 쉴 새 없이 뿌리는 살충제와 농약 때문에 죽을 위험성도 크다.

 

- 또한, 그는 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훈연기에 인도 대마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벌들을 미친 듯이 화가 나게 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몽롱해진 벌들이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꿀을 잔뜩 먹고 약간 피해망상증을 보일 거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 데이비드의 서리 키즈 양봉장은 그 당시만 해도, 여피족(yuppie) 혁명을 기다리는 버려진 지역이었는데 보라색 부들레아가 지천으로 펴서 특출한 꿀을 생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복잡한 심경으로 또 다른 꿀을 생산해내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당분이 많고 끈적끈적한 물질인 감로(甘露, honeydew)를 모아 짙은 갈색이다 못해 거의 거무스름한 꿀을 생산하려는 계획이었다. 감로 꿀은 대단히 높이 평가되는데 특히 벌들이 그것을 모으는 방법이 꽤 독특해서이다. 감로 꿀은 벌들이 꽃가루를 수정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꽃이 생산하는 화밀이 아니라, 곤충의 등에서 나오는 분비물로 만든다. 영국에서 이 곤충은 대개 진딧물이다. 엄청나게 많이 생산된 이 지나치게 달콤한 액체는 꿀벌과 개미가 수집한다. 또한, 여름에 자동차 창문에 아주 끈적끈적한 얼룩들을 만들어 과일 맛이 나는 감로는 7월에 생기며, 꿀 수확이 좋지 않을 때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습한 날씨에는 진딧물 떼가 더 많이 분비한다. 감로는 다른 지역보다 런던에서 더 많이 나타나며, 초목의 건강상태가 허약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로 본다. 요컨대, 식물이 진딧물이나 질병에 걸렸음을 시사한다.

(리뷰자 주 : 개미 중 일부 종은 이 감로를 얻기 위해 진딧물을 양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감로수'는 이걸 물에 희석한 단물을 말하는 것인가?!) 

 

- 개인적으로 나는 감로를 좋아한다. 송로버섯처럼 독특하고 찾기도 쉽지 않은데, 벌통에서 검은 벌집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더욱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감로꿀 생산 자체가 연금술 같다고 생각해서 다른 벌집들과 구분하여 특별히 취급하려고 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은 꿀이 그런 특이한 물질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은 나무나 풀에 피는 꽃이 없으면 벌이 꿀을 생산할 수 없을 거로 추정한다. 사실은 곧 충 분비물에서 꿀을 생산하는 마법이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 감로 꿀은 곰팡이 맛과 냄새가 난다. 괜찮다. 어차피 잘 팔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감로는 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화밀이 거의 없을 때, 다른 데에서 꿀을 모을 기회를 준다.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점은 대량 생산했을 시, 벌들에게 상당히 독이 될 수 있다. 효모 함유량이 많아서 벌들이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거의 술에 취한 것처럼 된다. 

 

- 고국으로 돌아오자, 그 여행은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았다. 바디샵 측에서는 우리가 찍어온 사진들을 보고 매우 흡족해했으며, 우리에게 리틀햄프톤에 있는 본사에 벌통 네 개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그곳에서 펼쳐질 더 큰 그림의 일부였다. 직원들이 점심때 할당량을 맡아서 벌을 직접 키워보는 체험을 할 뿐만 아니라, 지붕 위에 있는 태양열 전지판으로 환경에 관해 배울 기회도 얻도록 했다. 다음 단계는 양봉에 관심을 둘 것이 분명했다. 거대한 프랑스계 화장품 회사인 바디샵이 벌통을 소유한 것은 회사의 설립 취지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경영철학과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바디샵의 양봉장이 도시뿐만 아니라 경사진 목초지와도 가까웠으므로 이것도 또 다른 유형의 도시양봉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아주 훌륭한 웨일스 벌들을 배치했다. 개인적으로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여행을 통해서 데이비드의 회사가 매스컴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동시에 데이비드와 내가 끝내주게 좋은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리뷰자 주 : 기업이 '벌통'을 소유하고 관리자를 임명해 꿀을 생산해낸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홍차 브랜드 포트넘앤메이슨 뿐 아니라 화장품 브랜드 바디샵과 기타 다른 백화점 브랜드 들에서도 자체적인 계약 벌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닐까 싶다. 개인사업자들의 자체 브랜드가 아니면 기업적 꿀 브랜드는 동서식품 정도가 유일한 것 같다.) 

 

- 1년 중 이 시기에 외진 황야 지대에서 구할 수 있는 벌들의 먹잇감은 헤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런던에서 먹이를 구할 때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상황이다. 라임 개화기가 다가오긴 했지만, 런던에서 순수하게 한 가지 화밀만을 받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이곳 황야 지대에서 생산한 꿀이 그나마 유기농 꿀에 가장 가깝다. 영국에서 생산한 꿀 중에는 유기농 꿀이라고 공식 인증받을 수 있는 꿀이 없다. 벌통마다 5만 마리씩이나 되는 벌들이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보증할 수 없다. (만약 영국 내 상점에서 유기농 꿀을 발견한다면 이 사실을 상기하자 라벨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필시 수입 꿀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오직 한 가지 꽃만 핀 고립된 황야 지대에서는 그나마 유기농에 가장 근접한 꿀을 산출할 수가 있다.

(리뷰자 주 : 영국에서 도시 양봉을 장려할 수 있는 건 '가드닝' 문화가 자리잡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국은 가드닝 스타일도 선도하는 국가로, 소박한 앞마당 같은 코티지 스타일부터 '영국식 정원'으로 알려진 잉글리쉬 랜드스케이프 가든이나 빅토리아 가든 같은 포멀 스타일, 도시화된 어반 스타일이나 컨템퍼러리 스타일 등 다양한 정원 양식이 존재한다. 도심이라도 다양한 '유기농 꽃'들이 이미 존재하기에 도시 양봉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자동차와 인간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회색의 도시에서도 도시 양봉이 가능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 양봉가들은 전통적으로 뇌조 사냥철이 시작되는 '영광의 12일(Glorious Twelfth)'인 8월 12일에 자기네 벌들을 헤더 밭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광대하게 펼쳐진 요크셔 황야 지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뇌조를 상업적으로 잘 관리한다. 이것은 데이비드나 나처럼 양봉하는 처지에도 좋은 일이다. 어린 뇌조들이 먹는 초록색 새싹이 잘 나오도록, 헤더를 짧게 잘라주기 때문이다. 헤더 꽃이 필 무렵이면,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순이 많아서 싱그럽다. 보랏빛 헤더의 물결을 순식간에 불그스름하게 녹슨 것처럼 망쳐버리는 헤더 딱정벌레만 침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벌들에게 휴가를 주고, 떠나기 전에 격왕판을 제거했다. 지금까지는 여왕벌이 산란실에만 있도록 하고 계상에 올라가서 알을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격왕판을 사용했지만, 격왕판이 없어야 더 효과적으로 꿀을 생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격왕판이 있으면, 벌들이 계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물망 입구를 통과하느라고 지나다니는 속도가 떨어진다. 이맘때에는 여왕벌이 어차피 알을 적게 낳으므로 웬만해선 계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설사 여왕벌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6주 후에 계상을 제거하기 전에는 새끼 벌들이 출방해서 조금이라도 운이 좋으면 새끼 벌이 있던 자리도 꿀로 채워질 것이다. 날씨만 거칠어지지 않는다면, 요크셔 이동 양봉은 영광스러운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우리는 헤더 탐험의 두 번째 단계에 착수했다. 벌통을 이곳의 반대쪽과 웨일스 북부에 있는 헤더 황야 지대로 옮기는 것이다. 이렇게 벌통을 분산함으로써 실패의 위험성을 줄이려고 한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양쪽 지역의 날씨가 동시에 좋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리뷰자 주 : 계상(덧집)을 올리고 격왕판으로 나누는 이유는 그 공간이 있어야 꿀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벌들은 군세를 확장하고픈 본능이 있으므로 공간이 많을수록 알을 더 많이 낳는다. 따라서 꿀 자체의 저장량이 줄어드는 것이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소비장에 알과 애벌레, 꿀이 뒤섞여 있어 채밀이 힘들어지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저자가 말하는 상황은 이미 가을로 접어들어 군세를 확장하기보다는 월동 준비를 대비하는 시기이므로, 거의 마지막 이동식 양봉인 지금은 자주 와서 들여다볼 수도 없으니 벌들의 활동성을 고려해 자유롭게 열어두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 벌들이 일단 분봉하면, 그 벌들의 소유권을 단정 짓기가 애매해진다. 게다가 분봉한 벌을 원래 주인이 즉각 데려가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 그들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일단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봉군을 모아들였을 때는 벌들을 되찾기가 매우 어렵거니와, 이미 다른 벌통에 정착했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킹이는 수년 동안 상황 대처를 무척 빨리해서 자기 벌들의 숫자를 늘려왔는데, 대부분 양봉가는 이런 방법으로 벌을 구하는 것을 용인한다. 

(리뷰자 주 : 줍는 사람이 임자.) 

- 킹이는 벌들을 아주 잘 돌봐서 봉세가 꽤 강한 편이다. 각각의 벌통마다 그의 인큐베이터에서 기른 완전히 새로운 여왕벌을 넣어준다. 이 인큐베이터는 원래는 달걀 부화용으로, 킹이가 실제로 꿩을 기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젊은 여왕벌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왕대를 자기 부인 쥴리의 헤어 롤러 속에 넣은 채로 인큐베이터에 넣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출방한 여왕벌들이 십중팔구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다 혹시라도 동시에 출방한 다른 여왕벌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싸움이 벌어진다. 이는 여왕벌들이 손상을 입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여왕벌은 왕대에서 출방한지 30분 이내에 꿀을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헤어 롤러를 벌통 안에 넣어서, 다른 벌들이 가능한 한 빨리 여왕벌에게 먹이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리뷰자 주 : 이미 번데기 상태가 된 왕대는 온/습도만 잘 관리가 되면 부화까지 벌집 외부에서 따로 보관할 수도 있다. 이점을 이용해 왕대틀에서 인공적으로 왕대를 여러 개 만든 후 새로 여왕을 만들어줄 벌통에 부화(출방) 직전에 붙여주는 방식으로 여왕벌을 교체하기도 한다. 지금 이 부분은 자연스러운 교체보다는, 판매를 위해 최대한 많은 여왕벌 개체를 확보하는 방법을 설명 중인 듯하다.)

 

- 응애가 벌들에게 침투한 비율을 모니터 하기 위하여 과학자들이 개발한 방법이 바로 '설탕 흔들기 법'이다. 먼저 여왕벌이 벌통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여왕벌을 분리해서 안전하게 있도록 한다. 그런 다음 돌려서 뚜껑을 여는 병을 준비해놓고, 육아 소비에서 표본으로 사용할 벌들을 두 손으로 퍼올린다. 이 별들은 먼저 건조하고 깨끗한 플라스틱 양동이에 넣는 게 상책이다. 양동이 표면이 반질반질해서 벌들이 기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동이를 짧게 재빨리 한번 두드리면 양동이 바닥에 있던 벌들이 단번에 병으로 들어가는데, 깔때기를 사용하면 좀 더 편하다. 병 속에 설탕 1 테이블스푼을 넣고, 촘촘한 그물망을 덮은 다음, 병뚜껑을 돌려서 닫는다. 그러고 나서 가루 설탕이 골고루 묻도록, 벌들이 들은 병을 상당히 거칠게 흔든다. 벌들이 이 시련을 다 끝마치고 나면 마치 유령같이 보일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어지러워하지만 곧 괜찮아진다. 이 모든 과정이 표본용 벌들에게는 꽤 가혹하게 여겨지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봉군뿐만 아니라 다른 벌들에게도 더 큰 이익이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꿀벌응애에 대한 정기적인 관찰이야말로 치명적인 침입을 당했는지 알 수 있는 잠재적인 열쇠다.  

- 그물망을 씌운 병 속의 설탕을 바셀린을 바른 두꺼운 흰 종이에 뿌려서 분석한다. 그러면 방탄복을 입은 것처럼 생긴 불길한 애들을 발견하기 쉽다. 응애는 핀의 머리 크기만 하며, 갈색을 띠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악한 이 녀석의 다리와 턱까지도 볼 수 있다.

(리뷰자 주 : 이 방법은 영상으로 보지는 못했는데... 누군가 시도해준다면 좋겠다.)

- 내가 이번 달에 수확한 꿀은 포트넘 앤 메이슨 백화점에 있는 벌통에서 채취한 것밖에 없다. 백화점 측에서 가능한 한 빨리 꿀을 얻고 싶어 했다. 그들은 소밀이 아니라 채취한 꿀을 전부 사들인다. 나는 이 독특한 꿀을 위한 기막힌 계획이 있다. 전에도 항상 이 포트넘 꿀 수요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올해도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식품 구매팀이 이미 대기자 명단을 다 확보해놓은 상태다. 온갖 언론매체에서 보도해서 아주 작은 포도밭에서 생산한 고급 포도주처럼 열광하는 골수팬이 많이 생겼다.

(리뷰자 주 : 소밀은 벌집 자체를 소분한 형태를 말하는 듯하다. 즉, 벌꿀 아이스크림 등에 얹어주는 벌집 형태가 보이는 꿀 상태.)

- 포트넘 백화점은 옥상양봉 프로젝트에 전력투구한다. 이런 식의 벤처사업은 런던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인데,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생산한 꿀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다. 꿀단지 꼭대기마다 각각 맛을 나타내는 라벨을 달아서 벌들이 어디에서 먹이를 찾아온 것인지, 무슨 맛이 나는지를 가늘고 긴 서체로 적어 넣었다. 나는 꿀의 출처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점에 매료되었다. 작년 꿀이 맛은 더 좋았지만, 올해 꿀에서는 정확한 원천을 확실히 알지는 못해도 감귤 맛이 난다(자몽 맛 같기도 하다). 이렇듯 런던 꿀은 해마다 다양한 맛을 선보인다. 

- 벌통마다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양봉가의 진정한 능력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경험과 기술이 있고 좋은 날씨와 행운이 따라준다 하더라도, 여름 내내 꿀을 아주 조금밖에 만들어내지 않고 더 이상 만들려고 하지 않는 벌통들도 더러 있다. 별의별 책략을 써보고 조작을 해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또한, 젊은 여왕벌이 통치하기 시작한 첫해에도 식탁에 올릴 정도로 많은 꿀을 생산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럴 때는 다음 해 봄이 될 때까지는 벌들이 꿀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벌들을 잘 길러서 여름을 맞으면 수확이 좋을 것이다.  

 

- 수확기가 오면 벌통마다 생산하는 꿀 양도 각기 다르고 색깔도 아주 멋져서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유형마다 견본을 채취하도록 하라. 나는 뒷맛이 부드러운, 밝고 은은한 꿀들을 좋아한다. 여왕벌들의 나이와 품종도 같고 벌통들도 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벌통마다 생산한 꿀 양이 판이할 수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벌통마다 직면한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것은 또한 여왕벌들의 유전적 요인 때문일 수 있어서 나는 항상 꿀 생산량이 많은 벌통의 여왕벌을 장래의 종봉으로 삼으려고 한다.

(리뷰자 주 : 종봉 개념은 처음 접했는데, 일리가 있는 것 같다.) 

 

- 나는 크레타 섬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사는 삶을 늘 꿈꿔왔다. 한 쪼가리 척박한 땅에 채소를 기르고 산양 몇 마리를 키우면서, 빵 굽는 오븐과 선명한 색깔의 벌통 한 쌍과 함께. 따사로운 지중해 햇살을 받으며 앉아서 상큼한 요구르트와 과일에, 진하고 향이 풍부한 그리스 꿀을 듬뿍 얹어 음미하는 상상을 해본다. 날이 눅눅하거나 벌들이 번성하지 않아서 우울할 때면, 나는 이렇게 소박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기운을 낸다. 10년도 더 된 녹슨 꿀 통조림을 따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어느새 크레타 섬으로 돌아가서, 로즈메리를 곁들여 구운 토끼고기와 감자칩을 먹고 있고 벌 모양 폭죽에 불을 붙인다. 벌 폭죽은 그리스에서 별도의 허가 없이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불을 붙이면 미친 벌처럼 정신없이 돌며 날아가서 대단히 위험한데, 말할 것도 없이 유치해도 진짜 재미있다. 기내 반입금지 물품이라서 영국에 가지고 올 수 없어서 정말 유감이다. 

 

- 크레타 섬은 양봉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장소이다. 매우 한가롭고 평온하다. 이곳 벌들은 향이 강하지만 아주 맛있고 색이 진하며 당밀 농도가 균일한 백리향 꿀을 만들어낸다. 오래전부터 나는 매년 여름마다 크레타섬에 다녀왔다. 힘든 시기를 겪을 때면, 훌쩍 떠나서 그곳에 조그만 오두막이나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본 적도 있다. 잔인한 현실은 아직 영국에 집 한 채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럴 만한 목돈을 가져본 적도 없고, 혹시라도 돈이 생기면 늘 양봉사업에 재투자하거나 혹은 그 생명체들을 구제하는 데 쓰곤 했다. 그런데 마침내 새로운 양봉 기지로 임대할 장소를 발견했다. 

 

- 지금은 이번 달에 해야 할 일이 잔뜩 있어서, 현실적으로 따뜻한 지중해의 태양은 한낱 허황한 꿈일 뿐이다. 최우선으로 할 일은 꿀 수확이다. 크리스마스 성수기를 대비해 꿀을 채취하고, 최종 생산물을 꿀단지에 담든지 아니면 벌집 째로 냉동 보관하든지 해야 한다. 벌집은 판지로 만든 상자에 담아서, 습기가 차지 않게 가방에 넣고 밀봉한 다음에 얼릴 것이다. 올해는 소밀을 예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려고 한다. 소밀은 수익성도 좋고, 그 인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요즘은 밀랍을 먹어도 괜찮으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지난 몇 년간 고객들에게 벌집의 장점과 먹는 방법에 관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한 결과다. 

(리뷰자 주 : 밀랍은 먹어도 된다 안된다 말이 많지만 '까눌레'를 좋아한다면 이미 잘 먹고 있는 것이니 안심하라.)

 

- 두 벌통을 합치면 봉군이 강해져서 꿀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겨울나기에도 더 좋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벌들끼리 서로 싸워서 죽일 염려가 있다. 봉군을 합치려면 먼저 육아 상자 위에 신문 한 장을 펼쳐놓고, 그 위에 바닥을 떼어낸 다른 벌통을 올려놓는다. 이렇게 임시로 장벽을 만들면 벌들의 다툼을 방지하면서도, 따로 지내는 동안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지게 한다. 그 후 며칠만 지나면 벌들이 신문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벌통 입구 근처에 버려진 작은 신문 조각들이 보이면, 이 일이 일어났다는 증거다. 그러면서 벌통이 점차 합쳐진다. 하이브 툴로 구석에 작은 흠집을 만들어주면, 벌들이 입으로 뜯어내서 길을 내기 수월하다. 나중에 벌통을 열면 벌들이 찢어서 만든 창조적인 예술작품을 발견할 것이다.

(리뷰자 주 : 여왕벌을 잃은 통을 이런 식으로 다른 봉군에 합쳐주는 영상을 몇 개 보았는데, 묘한 중독성이 있다.) 

- 날씨가 더 선선해져서 풀과 나무들이 더 이상 매혹적인 화밀을 제공하지 못하면, 벌들은 다른 벌통의 꿀이라도 훔쳐오고 싶어 한다. 이것은 양봉가의 처지에서는 무척 걱정스러운 일이다. 사실 벌통은 양봉철 내내 언제든지 다른 벌들에게 털릴 수 있다. 더욱이 도시에서 양봉한다면, 더더욱 이런 도둑들을 끊임없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떼 지어 오는데, 어린애들처럼 다리로 뒤에 매달려 같이 다닌다. 이것은 그들의 꿀주머니가 비어서 먹이를 찾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봉세가 약한 벌통들은 자신들의 식품 저장실을 충분히 방어할 수 없으므로 이웃 벌통의 벌들이 침입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엄청난 규모의 싸움이 벌어지면서 수백 마리가 죽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벌통 거주자들이 죽어가고 있거나 질병으로 이미 죽은 벌통일수록 다른 벌들이 마음 놓고 드나들어서, 유충 전염병이 쉽게 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약한 벌통 입구를 최소한으로 틈만 남겨놓고 발포고무 조각을 밀어 넣어서 막아버린다. 야외에 있는 양봉장이면 풀로 막아도 된다. 볼품은 없지만, 효과는 좋다.

(리뷰자 주 :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 벌들도 월동 준비로 예민해져서 조금만 단내가 나도 다가간다고 한다. 도봉도 습관이라, 한 번 도봉이 난 곳은 계속 털리게 마련이라 애초에 그런 일이 없는 게 좋다고. 꿀을 도봉해 간 봉군도 계속 쉽게 꿀을 얻으려 하게 되기 때문에 더 문제라고 한다.) 

 

- 오로지 꿀 판매로 얻은 수입에만 의존하는 것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양봉철 성과가 부진하고 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는 저축해놓은 돈도 금세 사라져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꿀과 밀랍으로 만들 다른 제품들을 알아볼 작정이다. 그리고 예전 제품들을 현대적으로 개선해서 활기를 되찾으려고 한다. 테이트 미술관 측에서 열의를 가지고 함께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 한다. 나는 비누와 입술용 크림, 초를 제작하고 싶다. 

(리뷰자 주 : 국내 양봉업자들로부터 생산된 비정제 밀랍을 써본 적이 있는데, 향과 질감이 훌륭했다. 녹여서 쓰는 것이 일이긴 했지만 꽤 만족스러웠다.) 

 


 

- <시장 판매를 위한 황금률>

절대 앉지 마라. 월드컵 경기 중이라 시장이 죽은 듯이 한산할 때, 딱 한 번 앉은 기억이 있다.

항상 바쁜 모습을 보여라. 나는 라벨을 붙일 빈 병들을 시장에 가져간다. 어느 정도는 주중에 일할 시간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또한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가게에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잊지 말고 판매대 앞쪽을 자주 점검하라. 꿀을 최상의 상태로 진열해서 고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사안일에 빠지지 마라. 누구나 매주 똑같은 액수의 돈을 벌지는 못한다. 날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휴일이나 주요 행사로 손님들이 많이 오지 못하는 날들도 있기 마련이다. 

다른 상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마실 차를 가져올 때나 휴식이 필요하면, 서로 번갈아 가판대를 돌봐주도록 하라. 

소비자에게 일관성을 유지하라. 한결같이 좋은 제품을 가지고 시장에 나타나라 손님에 따라 가격을 바꾸어 부르지 마라. 그러나 지역의 부랑자나 주머니에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꿀을 선물로 주라. 

당연히 고단할 거라는 예상을 해라. 시장에서 종일 열심히 일하고 나면 소파에서 벗어나기 힘들 정도로 고단하다. 

친근한 어조로 말하되 과도하게 친한 척하며 건방진 말투로 실언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위생적으로 보이게 하라. 손톱과 작업복이나 앞치마를 청결하게 유지하라. 나도 물건 파는 사람이 지저분해 보이는 가판대에는 가지 않는다(나한테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일을 즐겁게 하되, 이것은 절대로 취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렇게 일을 시작하자마자, 장사에 생계를 의존하는 다른 상인들의 존경을 잃을 것이다.

 


 

-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안토니오 카를루치오가 지은 <버섯에 관한 모든 것 Complete Mushroom Book>이라는 책이다. 여행 다닐 때마다 늘 지니고 다녀서, 손때가 잔뜩 묻고 햇빛에 색이 다 바래버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계절에 상관없이 돈 안 들이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내가 치명적인 재앙을 피하도록 도와준다. 이제껏 나는 운이 좋았다. 이 책 덕분에 몸에 해롭다고 밝혀진 버섯을 결코 먹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 버섯의 왕자격인 그물버섯은 유난히 맛있어서, 그것을 찾아다니는 일조차 비밀로 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을 정도로 악명 높다. 그물버섯이 나는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나를 용서하라. 대개 슈롭셔 황야 지대의 이끼류와 헤더 숲 사이에 나타난다는 것 정도는 말해줄 수 있다. 그물버섯을 하나라도 발견하면 매우 흥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번 철에 처음으로 찾아낸 반구형의 낙타색 예쁜이를 조심스럽게 따자마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것은 나중에 캠프용 버너로 그물버섯 리소토를 만들어서 킹이, 톰과 함께 먹을 것이다. 그물버섯에 버터 한 조각을 넣고 볶은 다음, 풍미가 좋은 그물버섯 우린 물을 넣고 밥을 한다. 누구에게나 변함없이 사랑받는 요리여서, 매년 황야 지대를 떠나기 전에 꼭 만들곤 한다. 

- 기진맥진한 양봉가들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톰의 묘책은 버섯 전문가인 로저 필립스를 통해 알게 된 '불타는 고슴도치(Flaming Hedgehogs)' 버전이다. 톰은 고슴도치버섯을 사용하지만, 그 버섯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하겠다면, 좋은 품질의 밤나무 버섯으로 요리를 만들어도 괜찮다. 약간의 칼바도스에 버섯을 넣고 불을 붙이면 지글지글 거리며 불타는 고슴도치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 다음 크림을 약간 얹어준다. 우리는 대개 그릇과 포크는 생략하고 그냥 프라이팬 둘레에 모여서 빵 조각을 뜯어서 진한 소스를 찍어 먹는다. 

- 북런던에서는 주로 숲 속의 닭고기를 찾아다닌다. 이것은 거대한 책장형 균류로 밝은 주황색과 유황색이며, 마늘을 넣고 요리하면 스테이크 같은 맛이 난다. 놀랍게도 버섯에서 고기 맛이 나는 것이다. 솔즈베리 평원에서 나는 버섯 중에는 크림색의 거대한 댕구알버섯이 최고다.

 

- 뉴욕에서는 양봉장이 황량하고 외딴곳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부분 벌이 겨울을 넘기지 못한다. 혹독한 기온을 견뎌낼 가망이 없으므로 매년 봄마다 새로운 벌을 배달받을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내 일이 다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버몬지로 돌아가서 커다란 밀랍 탱크도 데우고 양초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것이 로맨틱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늘 밤엔 그 모든 일을 나 혼자 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밀랍으로 직접 만든 향초를 가판대에 쌓아놓고 판다. 나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모양을 만들어서, 조금씩 겹치게 올려서 독특한 원뿔 모양으로 쌓는다. 어차피 모든 촛대 크기와 맞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서, 더군다나 핌리코(Pimlico)에서 파는 멋진 은촛대에는 맞지 않으므로 나는 딱 두 가지 크기만 만든다. 시장 가판대에서 처음 팔은 양초는 종이처럼 얇은 밀랍을 간단하게 돌돌 말아서 만든 거였지만, 요즘에는 양초를 실리콘 주형틀에 넣어서 만든다. 

 

- 나의 작은 축제는 수고하며 지냈던 한 해의 마감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했으며, 술을 마시며 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지난 양봉철이 아무리 골치 아팠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지나갔음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그때는 내가 집에서 담근 벌꿀 술로 벌들의 건강과 따뜻한 날씨를 기원하는 건배 제의를 했다. 그 술은 지난 몇 년간 노력해서 재현에 성공한 고대 양조 맥주다. 나는 내년에는 런던 꿀을 이용해서 런던 버전을 만들 작정이다. 꿀마다 다른 독특한 특성을 고려해서 만들면 아주 훌륭할 것이다.

(리뷰자 주 : 미드(꿀술, mead)로는 고드넬스(Gosnells)의 미드들이 인지도가 있는 편인데 영국산이다. 혹시 저자와 관련이 있는 것일지? 확인은 나중으로 미룬다.)    

 

- 혈기왕성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지방보다 런던에서는 양봉가들끼리 송년회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그런 행사가 정말로 그립다. 슈롭셔에서는 내 매력적인 임대 오두막이 있는 크고 오래된 사유지 정원에서 주연했다. 이 의식은 신앙과는 관련이 없는 꽤 독창적인 일이었다. 땅주인과 농부들, 사냥터 관리인들도 벌에 미친 사람이 겨울철에 여흥을 즐기기 위해서 어떤 일을 벌이는지 볼 기회라서 좋아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때 킹이의 조리법대로 만든 따끈한 토디(toddy)를 접대하곤 했다. 

(역자 주 : 토디. 위스키나 럼 같은 독한 술에 따뜻한 물을 타고 설탕·레몬을 넣은 음료)

(리뷰자 주 : 핫 토디 마시고 싶다!!)

 



- <킹이의 따끈한 토디>


부시밀 위스키(Bushmill's whisky) -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 레몬 1개, 정향과 막대 계피 1개, 헤더 꿀 1 티스푼 정도

머그잔에 헤더 꿀 1 티스푼과 부시밀 위스키를 조금 넣는다. 입맛에 따라 레몬즙을 한 번이나 두 번 짜 넣고, 정향 2개와 막대 계피 1개가 있으면 넣는다. 막 끓은 물을 채워 넣고, 레몬 1조각으로 마무리한다. 바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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