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조세영] 외교 외전 - 보통사람이 궁금한 외교 그리고 외교관의 모든 것

일루젼 2022. 8. 2.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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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세영
출판 : 한겨레출판 
출간 : 2022.04.25 


       

신간 코너에서 발견해 읽어보았다. 외교적 비하인드나 외교관들의 생활상이 궁금해서 선택했는데, 딱딱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우려와는 달리 수월하게 읽혔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일화들도 흥미로웠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국가 정상 회담이나 의전에 관한 내용들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최근의 흐름인 유명 밈을 활용한 드립들은 없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많은 부분들이 대중에게 공개되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지금, 국제 외교와 협상에 관한 부분은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있다.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며, 협상이라는 특성상 서로의 카드를 공개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도 큰 이유일 것이다. 그에 더해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에 밝지 않은 상태에서의 여론이 지나치게 영향력을 가질 경우 해당 국가와의 문화적 정서 차이로 인한 오해도 일어날 수 있고, 어떤 선택이 진정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인지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국민들의 정서와 이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외교 또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균형, 밸런스인 모양이다.

 

읽다보니 '외교'를 국가 간의 관계 정도로 나와는 상관 없는 먼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 사이의 조율, 합의, 엄밀한 단어 선택 같은 것들은 국가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누구나 일상 속에서 매일 행하고 있는 것들에 가까웠다.

 

나의 삶부터 국가의 삶까지, 눈에 보이는 것의 이면에는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습관.

차마 드러내지 못한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그려낼 수 있는 이해력과 추론력.

최선의 결론을 위해 각자의 입장을 다듬어나가는 인내력과 기술력.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집단 간의 이해득실이 부딪치는 교류의 장이라는 측면에서, 외교야말로 인간 관계의 정수가 아닌가 싶은 -다분히 저자에게 세뇌된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은 외무고시 같은 '외교관이 되는 법'에 관한 내용은 일절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외교관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해외 파견 대사와 국내의 본부 근무는 어떤 식으로 다른지 등을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권말 즈음에 다룬 워싱턴 스쿨과 재팬 스쿨, 차이나 스쿨에 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텃세가 심하다는 이미지는 이런 내부 조직화된 문화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한 국가에 관해 '통'으로 활약할 수 있는 외교관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조직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점도 수긍이 된다. 

 

<외교 외전>에는 이런 '외전'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즐겁게 읽었다.  

 


    

 

 

 

- 외교라는 세계가 어느새 보통사람들의 영역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외교'를 어차피 나와는 관계없는 일, 몰라도 그만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국만큼 외교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나라도 없다. 강대국들이 각축하는 틈바구니에서 분단된 한반도에 평화를 세우고 통일을 이루어내는 일이 바로 한국 외교에 주어진 역사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어느 외신이 곧바로 '한반도의 상황이 대재앙의 가능성에서 외교의 힘을 입증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제 한반도의 미래가 한국 외교의 어깨에 달렸다는 의미다. 우리가 외교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의 가벼운 글이 한국 외교를 함께 고민해보는 작은 재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외교관은 은퇴할 때까지 2~3년마다 국내 근무와 해외 근무를 되풀이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나도 외교부에서 일했던 30년 동안 해외 근무를 한 게 7차례이니, 14차례 국제이사를 한 셈이다. 국제이사는 국내 이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 집에서 내보낸 이삿짐은 컨테이너에 넣은 채로 선박에 실려 해외로 운송된다. 항구에 도착 후 트럭에 옮겨 육상으로 운송하므로 현지에서 다시 이삿짐을 받을 때까지 1~2개월이나 시간이 걸린다. 국내이사와 비교해서 제일 불편한 것이 바로 이 기간 동안 살림살이도 제대로 없이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다. 집을 빌릴 때 기본 가구가 붙어 있는 나라는 괜찮지만, 덜렁 집만 빌려주는 나라에 부임하면 입주 뒤 이삿짐이 도착할 때까지 밥을 먹을 식탁이나 앉을 의자도 없이 지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 호텔에서 편하게 지내다가 이삿짐 도착 날짜에 맞추어 입주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호텔 생활을 하는 동안은 식사를 해결하는 게 여간 문제가 아니다. 4~5인 가족이 매번 식당에 가서 사 먹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려니와, 무엇보다 집밥을 못 먹고 2~3주일 이상 지낸다는 것이 큰 고역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학교다. 일단 새 임지에 도착했으면 얼른 학교에 다니도록 해주어야지 비좁은 호텔방에서 시간을 보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삿짐이 도착할 때까지 불편하더라도 하루빨리 집을 구해서 입주하고 그 주소에 맞는 학군의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리뷰자 주 : 나라면 2-3주 호텔 생활 괜찮을 것 같은데...) 

 

- 내전이 발생한 뒤 가족과 교민들을 철수시킬 때까지의 닷새는 나의 30년 외교관 생활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주요국들이 자국민 철수를 시작하자 우리도 일찌감치 철수 방침을 정했지만 민간 여객기 운항이 중단된 상황이라서 항공편 마련이 문제였다. 예멘 외교부를 찾아가서 이야기해봤으나, 내전으로 자기 코가 석자인 형편에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본국에서 군용기를 파견해 자국민을 철수시키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대사관을 찾아가서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각자의 채널을 총동원했다. 

 

-  철수시켜야 할 25명의 명단을 손에 들고 이 대사관에서 저 대사관으로 무작정 뛰어다녔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러시아 7개국의 대사관을 돌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선 자기 국민부터 모두 철수시킨 후에나 외국인의 수송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제관례상 당연한 이야기여서 더 이상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가져간 명단을 건네주면서 나중에라도 꼭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 1980년대 초반 외교부(당시에는 외무부)에 들어와 국립외교원(당시에는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신규채용 직원 연수를 받을 때만 해도 나는 짙은 남색 양복바지와 검은 구두에 흰색 면양말을 종종 신고 다녔다. 그것이 촌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깔끔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수과정에서 이것저것 배워보니 국제 매너에 어긋나는 대표적인 경우가 양복바지에 흰 양말 차림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창피하지만 그때 처음 양복 정장 차림에는 짙은 색 양말이 예의에 맞다는 걸 알았다. 연수생 가운데는 대학 졸업 후 몇 개월 먼저 외교부에 들어와 일을 하다가 연수를 받으러 온 경우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였는데, 하루는 싱글 재킷이 아니라 콤비 재킷 차림으로 출근했다가 고참 선배 사무관한테 "여기는 콤비 입고 일하는 곳이 아니야"라고 한마디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외교부에서 콤비 재킷을 입을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 최근에는 여름철 에너지 절약이라는 목적도 있고 해서 노타이의 간소복 차림이 공무원의 정식 근무 복장으로 허용된다. 정치인이나 장차관들도 회의 때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하는 모습이 TV 화면에 많이 나올 정도로 복장에 대한 통념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외교부에서도 콤비 재킷 차림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젊은 직원들은 공무원 복장 간소화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편하고 자유로운 옷차림을 많이 한다. 나도 2000년대 초반 과장 시절에는 외교부 들어와서 처음으로 반소매 와이셔츠와 남방을 사서 입고 출근했었다. 

 

- 원래는 김대중 대통령보다 장쩌민 주석이 한 달 먼저 9월에 일본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중국에 대홍수가 발생해서 장 주석의 방일이 11월로 연기되는 바람에 김 대통령이 먼저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만일 예정대로 장 주석이 먼저 방일했으면 중국 측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신경 쓸 일도 없었을 테고, 중일 양국 간의 방일 준비 작업도 원만히 진행되어 인민복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장쩌민 주석의 인민복 차림에 중국 측의 특별한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본 측의 반발은 오해에 기인한 셈이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어떤 사건의 실제 의도보다 그로 인해 당사자들이 갖게 된 인식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장 주석이 인민복을 입고 국빈만찬에서 만찬사를 읽는 장면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중일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는 현상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이미 일본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버렸다. 

 

- 김용식 전 장관의 회고록에는 암호 전문을 해독하지 못해서 애를 먹은 이야기도 나온다. 홍콩에서 영사로 근무하던 중에 본부로부터 암호 전문을 받았는데 몇 시간이나 씨름해도 해독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Re Your Cable Unable Decode Please Advise" (수신 전문을 해독할 수 없으니 가르쳐달라)라고 영어로 전문을 만들어서 본부로 보냈다. 본부에서는 "Please Disregard" (그냥 무시하라)라고 아주 간단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김 영사는 수신 전문을 해독할 수 없다고 본부에 문의하는 내용 자체는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암호가 아닌 평문으로 전문을 발송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본부가 암호 전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전문을 평문으로 회신해주었다면 한국의 암호 작성법이 외부에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앞서 발송된 암호 전문과 나중에 보낸 평문 전문을 서로 대조해보면 암호작성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본부에서는 그냥 무시하라고 했던 것이다. 

- 이 경우에는 본부에 전문의 내용을 가르쳐달라고 평문으로 문의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 해독에 실패했던 암호 전문의 내용은 한국 정부가 공군의 재건을 위해 홍콩에 거주 중인 미 공군 장성 클레어 리 셰놀트를 초청하려고 하니 그를 만나서 초청에 응하도록 하라는 지시였다고 한다.

 

- 외교관의 하루는 '읽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외교관의 일상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투입하게 되는 일이 바로 문서와 자료 읽기다. 초년병 시절부터 은퇴하는 그날까지, 매일 읽고 소화해야 하는 수많은 자료들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는 운명이다. 읽는 게 싫은 사람에게 외교관이란 결코 행복한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반드시 원문 자료를 구해서 읽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외교 문제에 관한 중요한 합의문이 발표되거나 공동선언이 채택되었을 때 보고 전문이나 언론 보도만 봐서는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대개 핵심만 요약하거나 중요 내용만 선별해서 보도해 세부 내용이 많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한 외교관이라면, 그리고 장차 능력 있는 외교관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따로 발표문 원문을 구해서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그 속에서 양쪽이 서로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애쓰고 타협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행간에 숨어 있는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읽을거리들을 매일 밀리지 않고 읽어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전 세계의 수많은 외교관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 읽어야 할 자료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외교관은 좌우간 '읽어야 산다'. 

 

- 나는 서기관 시절에 대통령 통역을 담당했기 때문에 나중에 대통령 일본어 통역 후보자를 뽑는 자리에 면접관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다. 실제로 통역을 시켜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후보자들이 모두 동시통역 전공자들이라 어학 능력은 아주 뛰어났지만 발언 내용을 조금씩 빼먹고 통역을 했다. 그래서 그런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동시통역에서는 단어에 집착하지 말라고 배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속도가 중요한 동시통역에서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다 보면 대화의 흐름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중에 합격자에게 외교 무대에서의 회담은 일반 회담과는 달라서 정확성이 생명이니 단어 하나도 빼먹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통역은 어학 실력도 중요하지만 순간적인 기억력이 더 결정적이다.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면 신경을 곤두세워 메모해야 하고, 메모에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은 기억력에 의존해 발언 내용을 최대한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 통역할 때 사용하는 기억력은 컴퓨터의 램 메모리와 닮았다. 램 메모리는 데이터를 순간적으로 기억창고에 저장했다가 바로 불러내서 사용하지만, 일단 전원을 끄고 나면 기억된 정보가 저장되지 않고 날아가버린다.  

 

-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에는 대통령의 숙소가 곧 청와대의 역할을 한다. 방문국에서 영빈관을 제공하면 그곳에서 숙박한다. 미국은 백악관 맞은편의 블레어 하우스가 국빈 전용 영빈관이다. 중국은 베이징의 조어대(댜오위타이)를 외국 정상의 숙박시설로 제공한다. 일본은 1909년 도쿄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한 화려한 석조 건물을 영빈관으로 사용한다. 2005년에는 교토에 일본 전통 건축양식의 영빈관을 추가로 개관했다. 영빈관의 건물이나 실내 장식, 각종 전시품과 제공되는 서비스를 보면 그 나라의 국력 수준과 문화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와대에 영빈관이라는 이름의 시설이 있지만, 그곳은 대규모 연회나 회의를 위한 공간이다. 외교용 시설로서의 영빈관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영빈관 건설을 검토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 대통령이 영빈관에서 묵는 것은 방문국으로부터의 전상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수행원들의 입장은 다르다. 영빈관은 품격이 있는 대신 국가가 운영하는 탓에 아무래도 일반호텔보다는 지내기가 불편하다. 경비가 엄중하다 보니 마음대로 바깥출입도 어렵다. 숙소 내에 레스토랑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가볍게 칵테일 한잔할 곳도 마땅치 않다. 룸서비스를 이용하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수행원들은 영빈관이 아닌 일반 호텔에 숙소를 배정받는 게 더 편하다. 영빈관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대통령과 공식 수행원 이외에는 근접 경호원이나 부속실 근무자 등 필수요원들로 수용인원이 제한된다. 나머지 대표단은 가까운 호텔에 묵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차량을 타고 영빈관을 출입한다. 

 

- 아스파라거스 수프에 이어 생선구이, 비둘기 요리, 거위 간 요리, 송로버섯을 곁들인 안심 요리에 양다리 구이까지 다섯 가지 요리가 나오고, 마무리로 치즈와 디저트 모둠, 커피와 코냑이 제공된다. 어느 유명한 프랑스 식당의 코스 메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한말인 1905년 9월 19일 고종이 주최한 궁중만찬의 메뉴다. 지금부터 100년도 전에 이렇게 본격적인 서양 요리를 외교행사에 내놓았다니 선뜻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고종의 황실 의전관으로 초빙됐던 독일 여성 에마 크뢰벨이 남긴 기록을 보면, 조선의 궁중 관리들은 상당수가 영어 이외에도 프랑스어나 독일어까지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외교행사에는 마치 유럽의 궁정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본격적인 프랑스 요리가 나왔는데, 송로버섯 파이와 굴, 캐비아는 흔한 요리에 속할 정도이고 샴페인은 오히려 본고장에서보다 더 풍족하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19세기 말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화를 추진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조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다지만, 이 정도 수준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2014년 4월에는 도쿄 긴자의 유명한 스시집 '스키야바시 지로'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함께 저녁을 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아베와 오바마가 넥타이를 풀고 스시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서 담소하는 사진만으로도 미일관계의 긴밀함을 홍보하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번화가의 빌딩 지하 1층에 자리한 스키야바시 지로는 카운터 자리 10개가 전부인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정도로 정평이 난 곳이다. 그런데 만찬 직후 일부 일본 언론에 오바마가 20개 정도 나온 스시를 절반이나 남겼다는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여러 가지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이 스시집의 주인으로 당시 89세이던 스시 명인 오노 지로가 외국특파원협회 초청 강연에 나와서 오바마 대통령이 스시를 남기지 않고 다 맛있게 먹었다고 해명하는 일까지 있었다. 

(리뷰자 주 : <스시 장인 : 지로의 꿈>을 인상 깊게 봤었다.)
 
- 보도사진을 즐겨 보는 취미 때문에 해외에서 근무할 때도 짬이 나면 책방을 돌면서 사진책을 찾아보는 일이 잦았다. 일본은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도쿄에는 진보초라는 유명한 책방거리가 있는데 한국의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인 산세이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서점들이 몰려 있다. 한국에선 점점 찾아보기 힘든 헌책방도 180여 개나 된다. 헌책방 밀집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1960년 이래 매년 가을에 열리는 진보초의 헌책방 축제 때는 100만 권 정도의 헌책이 특별 할인 가격으로 쏟아져 나온다. 진보초에 가면 제일 부러운 것이 중국 관련 서적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도호 서점과 우치야마 서점이다. 중국 관련 서적만 가지고도 번듯한 책방이 운영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는 중국에 관한 출판물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하다. 

 

- 그리고 만에 하나 이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가서 기자들이 질문을 해온다면 그때는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이때도 개인적인 아이디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어느 정도 내부에서 검토를 끝낸 경우가 많다.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라고 해도 최소한의 검토조차 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불쑥 상대국에 제안하는 일은 없다. 국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어렵게 낸 제안인데 만일 상대측에서 수용하지 않으면 국내의 반대파들로부터 공격만 받게 된다. 자칫 이러한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 국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위험도 있다. 이럴 경우에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반응만 먼저 타진해보기 위해 '개인적인 차원의 아이디어'라면서 운을 떼는 것이다. 

- 기록하지 말라든지, 잊어달라든지, 전적으로 개인적인 아이디어라든지, 또는 이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라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 외교교섭에서 보다 솔직한 소통을 위해 동원하는 다양한 방법이다. 그러나 자칫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 소시지 만드는 과정과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은 보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이 있다. 정치의 이면에는 수많은 타협과 거래가 뒤따른다. 오늘날엔 외교교섭의 결과가 공개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섭 과정도 일정 부분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외교교섭의 현장에서 외교관들이 유연성을 발휘해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재량은 허용될 필요가 있다. 상호 양보와 타협이 곧 정치와 외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 외교에는 국제법적 측면과 국제정치적 측면이 공존한다. 비합법적으로 성립된 정부에 대한 정부 승인이 국제법적으로는 문제 될 수 있지만,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굳이 정부 승인이라는 행위로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짐에 따라 오늘날은 정부 승인 폐지론이 나올 정도다. 그렇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되지 않은 1961년 당시에는 북한의 침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 승인 문제를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당시에는 정부 승인 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불편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김용식은 일제강점기에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어서 '리걸 마인드 legal mind'가 있었다. 외교 경험을 통한 국제정치적 식견과 법률가로서의 소양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의 혼란 속에서도 국제법적 문제점을 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외교부에서 리걸 마인드를 대표하는 곳으로는 조약국(현재의 국제법률국)이 있다. 반면 국제정치적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대표적인 부서는 동북아시아국, 북미국, 유럽국처럼 개별 국가와의 외교를 담당하는 지역국이다. 어느 나라든 조약국과 지역국은 묘한 긴장관계 속에서 서로 경쟁한다. 조약국은 국제법적 측면과 논리적 정확성을 중시하지만, 지역국은 국제정치적 현실과 실제적인 외교관계를 강조한다. 외교 업무에서 국제정치적 시각과 국제법적 시각이 충돌할 때 대개는 전자의 우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국제법보다는 국가의 힘이 더 중요한 것이 국제관계의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약국이 지역국을 능가할 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 외교부에서는 더 그렇다. 

 

- 외교 입문서의 고전으로 유명한 <외교론>의 저자 해럴드 니컬슨이 법률가는 외교관으로서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지나치게 세부에 집착하고 형식논리에 매몰되기 쉬운 법률가 기질이 외교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 외교는 앞으로도 좀 더 리걸 마인드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의 외교는 모두 탄탄한 리걸 마인드에 기반을 두고 있다. 

 

- 군부를 장악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꼴이 되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그러고는 "나약하게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누명을 쓰는 게 낫다"고 혼잣말처럼 덧붙인다. 아직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네메로프는 정적들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서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체첸 공격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다고 사실대로 설명하면 스스로 무력함을 드러내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명령했다고 한 것이고, 한술 더 떠서 체첸은 러시아의 문제이니 미국은 간섭하지 말라고 의도적으로 강경한 발언까지 했던 것이다. 

- 실제 외교 현장에서도 자국의 내부 사정이나 자신의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렇게 말하는 진짜 의도가 뭔지 속 시원하게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직설적으로 물어보기 힘든 경우가 많은 법인데 하물며 국가들 사이에서는 어떻겠는가. 국가나 지도자 개인의 체면과 위신 때문에 돌려서 말하거나 심지어 반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이럴 때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방의 언행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의도를 구별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채널을 가동하여 상대방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내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외교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절대로 상대방의 눈치를 보거나 상대방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상호 불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불행한 충돌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 조선통신사 황윤길 일행이 귀국할 때 일본에서 따라온 승려 게이테쓰 겐소를 접대한 선위사 오억령은 겐소로부터 내년에 도요토미가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선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조정에 올렸다. 당시 일본의 침공 가능성이 적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던 조정은 보고 내용을 귀중한 참고자료로 삼기는커녕 오억령을 경질 처분했다.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모양이다. 

- 팩트가 하나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상대방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고, 상대방의 시각에도 내 것에 못지않은 나름의 합리성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외교협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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