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전혜진] 여성, 귀신이 되다

일루젼 2022. 8. 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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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전혜진
출판 : 현암사 
출간 : 2021.05.10 


       

한 번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귀와 신과 여성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저자는 설화와 민담, 신화 속의 여성과 당대의 시대상을 재조명한다. 어린 시절 한 두번은 들어봤음직한 옛이야기 속의 여성들은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등장했던 걸까, 그리고 그들은 과연 안식을 얻었을까. 

 

흥미로운 주제와 탄탄한 자료 조사는 '으레 그러려니' 해왔던 이야기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다. 구전으로 채록된 이야기들, 설계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원래의 형태를 더듬어 이해하지 않으면 전혀 다르게 들릴 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조각들을 가만 가만 더듬고 털어내어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어떤 학자들은 저자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이런 관점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다양한 시각이 늘어날수록 사고와 사상은 폭넓어진다.

 

'집(執)'을 가지고 이런 책을 내놓은 저자에게는 그저 박수만을 보낸다. 기담과 환담들도 그렇지만, 무(巫)에 대해서도 이렇게 깔끔하게 조사하고 정리된 책은 많지 않다.

 

감사하게 읽었다. 

 

 

사족) 자청비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바리 공주와 흔히들 혼동하곤 하지만, 나는 처연한 바리보다는 왈가닥 자청비를 더 사랑한다. 바리가 꾸역꾸역 아픈 아버지를 위해 노역을 살아냈다면 자청비는 연애도 하고, 꾀를 부려 사람도 죽였다 살렸다 하고, 사랑도 쟁취한다. 제주 신화의 스타이자 당대의 팜므파탈인데... 관심이 간다면 한 번 찾아보시라.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상이 아니라 자기 주장이 확실한 점이 무척 매력적이다.

 

한을 품어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 취지에서는 벗어났을 수 있으나, 마고 할미와 설문대할망과 바리데기와 천지왕본풀이까지 나온 마당에 자청비만 쏙 빠진 것이 조금 아쉬워 떠들어보았다.         

 


   

- 그렇다면 다시, 귀신들은 왜 직접 복수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원님을 찾았을까. 물론 직접 복수에 나서는 귀신들도, 뱀으로 환생해 직접 원한을 풀러 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 귀신들은 수많은 원님들이 놀라 죽어 나가는 가운데에도 끈질기게 원님을 찾아간다. 왜 이들은 죽어서야 원님을 찾았을까. 바로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당시는 여성이 집 밖으로 나와 관청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특히 성폭력에 대해서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집안의 수치가 되었다. 그저 목숨을 끊는 것만이 명예를 지킬 방법이었던 시대, 여성은 살아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다. 

-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했어도 자식이 없는 젊은 여성들은 죽어도 조상이 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유교식 제사를 받지도 못한다. 그렇게 성리학의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이들은 성리학의 질서 밖에 놓인 존재, 원귀가 된다. 죽어 귀신이 된 다음에야 이들은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성리학과 가부장제의 억압을 넘어, 국가의 권력, 즉 원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원님의 방에 나타나 조용조용 흐느끼며 말하는 것이든, 무시무시한 귀곡성과 함께 온 마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든 상관없이. 즉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여성 원귀담은 여성으로 태어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서도 쉬쉬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억압에서 벗어난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하지만 이들은 정말로 억압에서 벗어났을까? 

 

- 공안 이야기란?

공안 소설(小說)은 중국 고전 소설의 장르 중 하나다. 공안이라는 말 자체는 원래 공문서라는 의미로, 조정이나 민간과 관련된 민·형사 사건을 관청에서 주도하여 조사하고 판결을 내리는 이야기를 말한다. 공안 소설에서는 특히 법에 따른 공정한 판결을 강조한다. 법이 모든 경우를 대비할 수 없다면 덕이 높고 지혜로운 사람이 신중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즉 공안 소설은 현실 세계의 관리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귀신이나 염라대왕에 호소하여 저승의 관청에서 판결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명판관이나 귀신의 지혜를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는, 법률 자체가 공평하지 못하고 명관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던 당대 백성들의 소망을 반영한다. 

-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점 중 하나가 현실의 관료제 사회가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보이는 현상으로, 유교의 애민정신, 중앙집권체제의 발달, 법치주의 등이 반영된 결과다. 하다못해 도사나 무당, 음양사 등이 잡귀나 악령을 내쫓을 때 쓰는 주문에도 그런 흔적들이 남아 있다.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즉 율령(법)에 따라 빨리빨리 행하라는 그 말 자체가, 중국 전한 시기 공문서의 서식으로 정해진 용어였으니까. 요즘으로 치면 공문서에 흔히 붙는 "위 관련 다음과 같이 시행하고자 하오니 협조 바랍니다."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각종 고전은 물론 판타지 소설에까지 이 주문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대 동아시아의 관료제는 나라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다 못해, 저승의 귀신들까지 관공서의 힘으로 다스리려 한 듯하다.

 

- 배 좌수가 장씨 부인 생전에 첩을 두거나 양자를 들이지 않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배 좌수가 장씨 부인을 극진히 사랑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재산분할 문제가 얽혀 있다. <장화홍련전>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평안도 철산이다. 평안도는 고조선 이래 한반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교통과 군사의 요지였으며, 인구가 많고 비옥한 평야 지대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 발전할 여건을 두로 갖추었다. 서북 지방이 차별을 받아 과거에 합격하고도 요직에 나가기 어려워지자, 이 지역의 사대부들은 경제활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 허씨 부인의 음모에 넘어간 배 좌수가 장화에게 결혼 전에 외가에 다녀오라고 속여 장쇠와 함께 보내는 이야기에서, 장씨 부인의 친정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며 딸이 죽은 뒤에도 손녀들과 교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집안 재산 중 상당 부분이 장씨가 결혼하며 가져온 재산에서 유래했다면,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해도 배 좌수가 장씨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씨 부인이 죽고 후처인 허씨 부인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허씨는 여러 판본에서 못생겼다고 언급된다. 장씨가 낳은 딸들은 양반 집안의 적자답게 장화와 홍련이라는 한자 이름이 붙었는데, 허씨가 낳은 아들의 이름에는 낮은 계층에서 주로 쓰이던 '쇠'가 들어가 있다. 그러니 장씨가 신분이 낮다는 짐작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허씨는 배 좌수와 결혼했지만, 부인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후처인 허씨는 자신과 아들들이 집안에서 권리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전처소생 딸들을 구박한다. 배 좌수는 이 갈등을 집안일로 여기고 딸들이 시집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딸의 결혼을 모친이 주관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딸들 역시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으며, 특히 모친의 재산은 그 소생의 자녀들에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 조선 중기까지는 여성도 부모의 유산을 균등하게 물려받았다. 집안의 재산이라 해도 남편이 상속받은 재산인 부변(夫邊)과 아내가 상속받은 재산인 처변(妻邊)이 나뉘어 있어, 친정 부모에게 물려받은 처변은 여성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명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자기 몫의 재산을 남편과 별개로 매매하거나 거래할 수 있었다. 이기빈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이 죽은 뒤에도 처변은 다른 부인이나 첩의 자식에게는 가지 않고, 온전히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자식 없이 죽으면 재산은 친정으로 되돌아갔다. 

 

- <장화홍련전>이 전동흘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배경이 되는 시대는 조선 전기다. 이 시대에는 아들, 딸, 출생 순서에 상관없이 적실 소생의 자녀들은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받았다. 단 제사를 모시는 아들에게는 다른 형제들의 1/5을 더 주었으며, 양첩 소생의 자녀들은 적실 소생의 1/7, 천첩 소생의 자녀에게는 1/10을 주도록 되어 있다. 또한 부부 사이에서도 재산 관리나 상속은 따로 관리되었다.

 

- 여성의 가정 내의 취약성은 임신과 순산, 아들과 남편의 건강과 장수에 대한 기원으로 이어졌다. 여성들은 기원 의례인 굿이나 나름의 비방을 대책으로 내놓는 만신(무당)에게 기대고 위로받았다. 이렇게 여성의 삶은 무속 신앙과 이어졌으며, 자궁 가족을 통해 신령과 조상들, 죽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의례가 대물림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회 사학자들은 조선의 '유교화'가 인위적인 개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사대부들은 유교, 특히 성리학에 기반해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시도했는데, 이는 기존의 사회 질서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 우리는 흔히 조선 시대의 여성이라고 하면 딸에게는 재산도 물려주지 않고, 과부가 재혼하지 못하고, 족보에는 딸 대신 사위의 이름이 오르거나 아예 딸은 기록되지 않고, 결혼하면 출가외인이 되어 시가의 귀신이 되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통'은 상당히 오랫동안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사대부의 딸들은 땅과 노비를 상속받았고, 딸과 외손자가 제사를 지낼 수도 있었다. 딸은 물론 그 자식들까지 친정의 족보에 기록되기도 했고, 결혼하고도 남편이 오랫동안 부인의 친정에서 지내기도 했다. 즉 본래 여성이 며느리로서 시어머니의 자궁 가족에 편입되었다가 장차 그 자리를 물려받는 것뿐만 아니라, 친정에서 지내며 자신의 어머니 슬하에서 가정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출가외인'이라고, 여성의 친정 가족이 여성의 결혼 생활이나 시가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속 신앙을 살펴보면 여성이 제주가 되어 굿을 올릴 때, 여성들의 친척과 신령, 조상들도 등장한다.  


- 한편 영물이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에서 영물은 대개 여성으로 그려진다. <지봉유설>의 <나무 요괴 이야기>에도 귀매가 사람을 유혹할 때 귀신은 남자가 되고 여우는 여자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주체가 남성이기 때문에 다른 성별인 여성에게 이류(異類)의 이미지를 씌운 것이기도 하고, 여성의 육체가 자연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인간보다 강하고 우월한 존재인 영물들은 매력적인 여성으로 변해 더 이상 인간 남성에게 위험하지 않은 존재, 지배하고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동등하게 인간 사회에 편입될 수는 없는 존재가 된다. 이들은 고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슬퍼하는 대신, 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저승으로 돌아가거나, 때가 되면 사라지거나, 인간이 되는 데 실패해 비통해한다. 중매를 통해 정식 혼사로 맺어지는 '부인'이 아닌, 충동적인 연애 상대인 여자들이 사대부 사회와 가부장제에 온전히 편입되어 보호받지 못했듯이. 

- 어쩌면 남성 사대부들은 이와 같은 이류의 이야기나 승화형 상사뱀의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편리한 여성들을 제멋대로 상상해 그려낸 것인지도 모른다. 손쉽게 몸을 허락하면서도 지고지순한, 그러면서도 자신을 출세시켜주거나 보물을 안겨 주거나 신적 존재가 되어 내조하면서도 번거롭지 않게 알아서 사라져 주는 여성들 말이다.

 

- 신선이나 귀신, 요매, 변신한 영물 등의 이야기는 일찍이 중국의 신화나 설화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남북조 시대에 이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당 시대 이후 인간이 아닌 여자, 즉 이류와 인간 남자의 애정사를 다룬 이야기들이 등장했는데, 이를 이류혼련(婚戀) 이야기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꽤 많고, 또 인기가 있었는지,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상대의 성격에 따라 인신련(人神戀), 또는 인귀련(人鬼戀), 인요련(人妖戀) 등으로 세분하기도 했다. 이 인간이 아닌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신비로운 존재이자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지만, 인간 이상으로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나며 인간다운 심성을 가진 이상적인 형태로 묘사된다. 

- 죽은 사람의 혼백을 위로하는 방식이 불교 의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유교에도 죽은 자를 위한 의례들이 있다. 하지만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유교에서 제사의 대상이 되는 데는 까다로운 조건이 따른다. 너무 젊거나 어려서 죽지 않아야 하고, 제사 지내줄 자손이 있어야 한다. 객사해도 안 되니 집에서 죽어야 하고, 죽은 뒤에는 제대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 소위 통과의례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장례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의식에 가깝다. 하지만 옛사람들에게 장례란 정상적으로 죽었음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 통과의례는 사회 구성원이 사회에서의 자기 위치와 정상성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관례를 통해 자기 몫을 다하는 성인임을 증명하고, 혼례를 통해 가족을 이룬다. 장례와 제례도 마찬가지다. 장례를 통해 사람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인정되며, 제례를 통해 영혼은 조상으로서 후손과 이어진다. 죽은 사람이 자신, 혹은 함께 죽은 가족들의 장례를 청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나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장례란 온전한 죽음을 뜻하며 그 이전에 안식이란 없다. 

 

- 옛사람들은 원한을 품고 죽은 이들은 귀신이 되어 세상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범죄의 피해자나, 억울한 누명을 쓴 자살자만이 재앙을 가져오는 귀신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연유로 조상이 되지 못한 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통과의례를 제대로 갖춰 죽은 이들은 집안을 돌보는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제사를 지낼 자식이 없거나, 집 밖에서 돌연히 객사하거나, 전쟁과 재해, 전염병과 기아로 비참하게 죽은 이들도 그 만족스럽지 못한 죽음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이런 귀신들을 무속에서는 영산(靈山)이라 불렀다.  

 

- 가정 신령들 중에 본래부터 신령이지 않았던 이들이 있다. 바로 말명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말명은 넓은 의미에서 조상들이고, 보통은 죽은 여자의 영혼, 특히 집안의 여자 조상들의 영혼을 가리킨다. 말명에는 여러 신령들이 있다. 노란 몽두리에 방울과 부채를 든 할머니를 대신할머니나 대신말명이라 부르며 무당의 조상으로 섬겼다. 굿을 청한 제가집의 조상 중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당이었던 이들은 말명으로 모셨는데, 점점 대상이 확장되었다. 여기에 조상 중에 한이 있어 가족의 꿈에 자주 나타나는 이들, 만신의 신도인 단골이었던 이들이 더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말명을 섬기는 굿인 말명거리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말명으로 호명된다. "대신말명, 제당말명, 상산말명, 용궁말명, 사신말명, 서낭말명, 부군말명, 반장말명, 불사말명, 대전말명, 도당말명, 업위말명, 조상말명, 부리말명" 등이다. 

 

-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을까. 멀리서 이 땅으로 와 새 나라를 세운 이들은 누구였을까. 한국에는 어떤 신화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흔히 하늘 천제의 아들 환웅이 내려와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사람이 된 웅녀를 아내로 맞아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하늘이 왕이 될만한 신령한 사람, 신의 자손을 내려주었다는 주몽이나 혁거세, 수로왕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전에, 하늘이 왕을 내리기 전, 환웅이 이 땅에 내려오기 전에, 이 땅은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 신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주도에 전승되는 <천지왕본풀이>를 떠올릴 것이다.

 

- 이런 이야기만 듣고 있으면 이 땅에는 마치 신도 인간도 남자뿐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껏 언급한 신화들은 모두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것들이 우리 신화의 전부였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여러 다른 문화권의 창세 신화에는 적지 않은 수의 여신이 등장한다. 소위 지모신(地母神)들이다. 우리 땅에만 유독 여신이 없는 것일까? 기록 속에서, 혹은 설화 속에서, 만신이 부르는 무가 속에서, 토막 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엄연히 이 땅에 자리했던 여신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고할미며 설문대할망, 바리공주는 물론, 이 땅의 모든 무당들의 시조가 되는 여덟 딸을 낳은 성모천왕, 관군과 함께 적을 물리친 산신 다자구 할매처럼, 이 땅 구석구석에 깃든 여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찾아보자. 

 

- 가야의 어머니 정견모주. 정견모주가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왕들을 낳았다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가야 건국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 이와 같은 차이는 가야 연맹의 역사와 이어져 있다. 가야연맹은 전반에는 금관가야를 후반에는 대가야를 맹주로 삼았다. 대가야가 새 맹주가 될 때 이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가야산의 위대한 산신인 정견모주가 낳은 맏이가 대가야의 왕이라고 못을 박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신라에도 시조를 낳은 여신의 전설이 전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박혁거세와 알영의 전설과는 조금 다르지만,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선도성모 사소(蘇)의 이야기다.
 

- 월간 <산(山)>에 <한국의 산신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던 데이비드 메이슨 경희대 교수는 1,500여 장의 산신도를 촬영했는데, 이 중 여신이거나 남신과 여신이 함께 있는 것은 50점도 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잊힌 여산신들 중에 가장 유명하며, 우리나라 무당들의 조상이 되는 이가 있다. 바로 지리산 성모다. 지리산 성모의 유래에 대해서는 천신의 딸인 성모 마고에서 유래했다거나, 선도성모의 딸이라거나, 혹은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인 위숙왕후나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고가 지리산에 좌정해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시대에 따라 존경의 대상이 달라졌는데 그때마다 경모의 대상을 지리산 산신에게 대입했다고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리산 성모가 여덟 딸을 낳았으며, 이 딸들이 무당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 성모천왕의 여덟 딸은 금방울과 부채를 쥐고 춤을 추었다. 반야가 그들의 아비라 부를 때 반드시 아미타불을 함께 불렀기에 세상 만신들은 신을 부를 때 부처의 이름을 함께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무업(巫業)의 시조가 되어 팔도 무당들이 다 이들에게서 나왔기에, 세상의 큰 무당들은 반드시 지리산에서 성모천왕께 기도했다고 한다. 

 

- 여신이 주관한 것은 삶과 죽음이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마땅히 돌보신다는 삼신할미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조신이 바로 그들이다. 삼신할미는 무속의 농경신인 제석신 삼 형제의 어머니요, 무조신은 저승 시왕의 어머니였다. 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고난을 겪어내고 마침내 신이 되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보살피게 되었다.  

 

- 수풀당과 살군당, 양지당은 왕십리 일대의 아기씨당이다. 공주 아기씨들은 나라를 잃고 피난을 왔다가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고 말았다. 이들이 죽고 난 뒤 사람들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짓고 마을 신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던 것이 지금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공주들은 찔레꽃을 입에 물고 죽었다. 찔레꽃은 당시 천연두에 쓰던 약재 중 하나였으므로, 다섯 공주는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피난 온 왕십리 일대는 본래 사대문 안의 시신을 내보내던 광희문,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던 활인서, 공동묘지 등이 자리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죽음은 일상이었고,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활인서에 오거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이 오가며 병이 쉽게 번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런 이유로 다섯 공주는 전염병, 특히 천연두를 관장하는 호구신으로 여겨졌다. 

- 권선경은 천연두신이 젊은 여성신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여성과 천연두신 모두 외부에서 온 위험한 존재로 보았고,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통과의례로 자리매김시켜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은 태어난 집에서 죽지 못했다. 가문의 입장에서 여성은 외부에서 왔거나 언젠가 혼인해 다른 집으로 가야 하는 존재였다. 젊은 여성과 천연두신은 언젠가 결혼과 마마배송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제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로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 결혼하지 못한 여성들만이 호구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굿에서 종종 중요한 호구로 모셔지는, 화주당의 송씨 부인과 유씨 부인(혹은 나씨 부인)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  

 

- 천연두신의 여러 이름.

천연두신은 두신, 호구별성, 마마(媽媽), 별, 객성, 손님 마누라, 서신국 마누라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다. 마마는 본래 왕의 가족들의 칭호 뒤에 존칭으로 붙거나, 고관대작의 첩이나 상궁에게 쓰던 말이었다. 마누라는 신분 높은 여성을 가리키던 말이다. 이런 단어가 천연두신의 이름이 된 것은 사람들이 천연두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많은 지역에서 천연두신을 여성, 그것도 젊은 여성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별성이나 객성, 손님 같은 이름은 천연두신이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이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 서울굿의 순서 
서울·경기 지방에서 가정의 안녕을 비는 재수굿을 벌일 때, 만신은 먼저 부정거리로 굿판을 정화하고 가망거리로 신령들을 청해 술잔을 올린다. 그다음은 높은 순서대로 신령을 호명한다. 불사거리라 해 부처나 제석, 옥황상제와 같은 천신을 모신 뒤에는 호구거리라 해 천연두신, 혹은 억울하고 한스럽게 죽은 젊은 여성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한다. 본향에서는 자신의 성과 씨를 준 고향의 산신을 불러들인다. 이때 내외 4대 조상과 노란 옷을 입은 대신할머니도 모신다. 전안거리에서는 관운장과 같은 중국의 장군신을, 상산거리에서는 최영 장군을 모신다. 별상이라 해 광해군이나 사도세자와 같이 왕위를 지키지 못하거나 계승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불러들이고 대감이라 해 벼슬한 조상이나 집안의 터줏대감, 만신의 몸주신을 불러 놀기도 한다. 제석거리에 성주거리로 천신과 집을 지키는 가신들을 모시며 그 지역을 지키는 장군신들을 부른다. 창부거리라 해만신이 광대놀음을 하고 나면 뒷전거리라 해 마당에 뒷전상을 차리고, 굿판 주변으로 물려 놓았던 잡귀잡신들을 불러 놀게 한다. 사람의 잔치로 치면 먼저 주요 인물들이 나와서 인사한 뒤 잔치를 구경하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대접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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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귀신이 된 여성들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랑의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로서 딸을 보호할 의무가, 밀양 부사로서 딸의 시신을 찾아내고 범인을 잡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딸이 사라지자 자신이 딸을 잘못 가르쳤다고 자책하며 밀양을 떠난다. 아버지로서도 부사로서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앞으로 살펴볼 다른 이야기에서도 아버지들은 비슷하다. <장화홍련전>의 아버지 배 좌수는 계모의 부추김에 넘어가 귀신은 끝없이 민원을 넣는다. 딸을 의심하고, <콩쥐팥쥐전>의 최만춘은 이름만 등장할 뿐 서사 내에서 거의 하는 일이 없다. 이렇게 여성 귀신 이야기 속 아버지들은 상당수가 이미 죽어 없거나 무기력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혹은 딸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방관하거나 딸의 살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한다. 

- 다시 말해 여성의 죽음에 아버지들이 한몫했다고도 할 수 있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딸은 가부장제에서 억압받는 약자였고, 어머니마저 없다면 최소한의 보호막마저 없는 셈이었다. 이들은 아버지의 방관과 무관심 속에서 누명을 쓰거나 범죄 피해자가 되었다. 이들은 아버지의 무능함 때문에 입은 피해를 더 큰 아버지에게 호소한다. 여성 귀신들이 원님 앞에 나타나는 것은, 유교적 세계관에서 임금과 국가는 더 큰 아버지요, 중앙집권체제 국가에서 원님, 즉 지방관은 임금과 국가의 대행자였기 때문이다. 

 

- 살아서는 가부장제에서의 약자였고, 죽어서는 성리학 질서 밖의 존재가 된 이 귀신들은, 자신의 누명을 벗고 원한을 푼 뒤 다시 그 정상적인 세계의 질서와 규범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찾고 싶어 한다. 시신을 찾아 제대로 매장하고, 제사를 받고, 나아가 열녀로 기려져 정상성 안에 편입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들은 국가를 대행하는 원님에게 집요하게 호소하는 것이다. 

- 원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방관했던 사회의 얄팍한 평화를 걷어내고 현실의 모순을 일깨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만이다. 이상적인 사대부인 원님이 그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나면, 원귀는 감사를 표한 뒤 자발적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원귀가 사라지면 현실이 복원되고, 모든 것은 다시 기존의 질서인 국가와 원님과 아버지가 통제하는 가부장적 세계 안에 들어온다.

 

- 그러니 사실 여성 원귀들의 이야기는, 귀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원님의 이야기다. 원님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귀신들을 정상성 안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그들을 평화롭게 내쫓은 뒤 현실을 복원하고 가부장적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다. 현실에서 약자들이 받는 억압은 바뀐 게 없고, 아버지는 처벌받지 않으며, 권력자인 원님은 명관이 된다. 이 얼마나 체제 수호적이면서도 당대의 사대부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을까. 

(최기숙은 <처녀 귀신 조선 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2010)>에서 "남자 귀신이 조상신으로 영원히 기려지는 데 비해, 여자 귀신은 권력자가 억울함을 풀어주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 <장화홍련전>의 배 좌수가 딸을 죽이려 해도, <콩쥐팥쥐전>의 최만춘이 콩쥐가 당하는 학대를 묵인해도, 아버지들에게는 비난이 돌아가지 않는다. 가부장은 전처 자식과 후처 사이의 갈등이나 가정불화를 뒷짐 지고 구경할 뿐 책임을 지지 않고, 자식들은 설령 학대를 당해도 친부모의 일을 관에 고발할 수 없다. 부모의 그릇된 판단으로 죽어도 원인이 친부모라면 이야기에서조차 귀신이 되어 복수하지 못한다. 복수의 대상은 오직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계모뿐이다. 

-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계모에게 가정 내 차별과 학대의 죄를 몰아놓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른 차별과 학대를 못 본척 봉합해버린다. 용기를 내어 내 부모가 나를 학대한다고 호소하더라도, "계모도 아닌데 설마 그러겠느냐."라는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말과 함께, 불효자식이라는 오명이 돌아올 뿐이다. 모든 불화와 잘못은 계모의 몫으로 전가해 놓고, 마치 계모가 없는 가정은 그런 일 없이 평화롭다는 듯이 문제를 봉합해버리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종 가정폭력이나 아동 학대, 재혼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뉴스를 본 사람들은 흔히 그 어머니를 비난한다. 어머니가 계모일 경우에는 당연히 계모니까 아이를 학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 자궁 가족(uterine family)은 사회학자 M. 울프가 중국 여성들의 삶을 연구하다 제시한 개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갓 결혼한 여성은 새로운 가정에서 낮은 지위와 미약한 권력만을 가진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자식들, 특히 아들들을 낳고 키우면서 집안에서의 권력이 점점 커지고, 나름의 세력을 형성한다. 마침내 아들이 장성하고 며느리를 맞아 시어머니가 되면 이 여성은 자신이 낳아 만들어낸 사적인 가족, 자신의 자식들과 며느리들, 손자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정점에 서서 집안의 주도권을 잡고, 젊은 시절 시집살이로 고생한 보상을 받는다. 이것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남성 중심의 가족과는 별개의 것이며, 남편은 자궁 가족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 이와 같은 자궁 가족은 농경문화와 유교적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문화에서, 효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여성은 새로운 가족에 편입되어 인내하고 봉사하며 효를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아들이 성공하면 그 성공이 어머니의 권력으로 이어지며 보상을 받는다. 여성은 가부장제 속에서 아들을 훌륭히 키우는 것으로 자신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중국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는 황제의 후궁들이 저마다 권력 다툼을 하고, 황후 역시 이 싸움에서 무관할 수 없다.  

 

- 야담 중에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청혼해 혼인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스스로 전도유망한 남성을 골라 출세시킨 이 이야기들의 여성들은 남달리 뛰어나고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인(異人)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청혼을 거절당한 이야기 속 여성들은 대체로 자살을 택했고 저주를 내린다. 사람들이 남성이 훗날 겪은 고난을 귀신의 저주라고 생각한 것은, 도덕적 명분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양반들의 형식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간곡한 부탁을 재고의 여지도 없이 외면하고 남의 생사가 걸린 문제에 뒤도 돌아보지 않는 냉혈한이라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당대의 생각이 반영된 부분이다. 

- "나리, 보통 사람 같으면 처녀가 상사병으로 죽어간다니 행실이 단정치 않다고 꾸짖으셨을 텐데, 나리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나리께서 여기까지 와주신 것만으로도 제 딸은 그 마음을 풀 것입니다." 
"아니오. 뱀이 되었다고 해도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오."

처녀의 부모가 만류했지만, 이순신은 처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순신이 방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구렁이가 다가와 그의 몸을 칭칭 감았고, 이순신은 밤새 구렁이와 함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뱀은 스스로 몸을 풀더니 스르르 밖으로 나왔다. 이순신과 처녀의 부모가 그 뒤를 따라가 보니, 뱀은 이순신이 목욕하던 연못 속으로 들어가 용이 되었다. 이후로 용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도록 도왔다. 

- 이 이야기는 조식의 경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앞서 보았던, 간절히 소원하는 데도 꾸짖기만 하거나 정을 통하고도 버리고 도망치던 남자들에 비하면 이순신의 태도는 시종일관 훌륭하다. 이순신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던 처녀의 짝사랑을 이해하고 만나주려고 했다. 다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가지 못했을 뿐이다. 이순신은 최선을 다했고,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으며, 원한을 살 만한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뱀이 된 처녀와 하룻밤을 보냈다. 이것으로 상사뱀의 한은 풀리고, 뱀이 된 처녀는 호국용이 되어 장차 나라를 구할 명장을 수호한다. 영웅 이순신의 훌륭한 인품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그를 연모한 여성마저도 영웅의 출세와 승리를 돕는 신격, 혹은 내조자로 설정한 것은 남성 화자들의 욕망이 반영된 것에 가깝다. 파국형 상사뱀을 만나 몰락하는 남성 이야기보다 승화형 상사뱀을 만나는 영웅의 이야기가 필기·야담에 더 많이 기록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여성이 뱀과 같은 괴물로 변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영험한 산짐승이 여성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도 있다. 당장 단군신화만 보아도 호랑이와 곰은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수도한다. 그리고 세 이레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수도한 곰은 여성으로 변신해 환웅과 혼인해 단군을 낳는다. 신령한 곰은 이 땅에 원래 살고 있던 토착민이자 자연과 땅을 상징하는 존재다. 환웅과 곰의 결합은 이민족과 토착민의 결합이자, 천신과 지신의 결합을 상징한다. 물론 인간으로 변하는 영물이 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본래는 짧은 전승으로 이어지다가 근현대에 와서 TV 드라마 등으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해진 구미호 설화는 물론, <삼국유사>에도 전해지는 호랑이 낭자 이야기도 있다.
 

- 호랑이 낭자나 구미호는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수백 년을 살아온 영물이다. 이들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도를 닦아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호랑이 낭자나 구미호는 인간이 되는 데 반드시 실패한다. 호랑이 낭자는 오라비들의 죄를 대신 받아서, 구미호는 100번째 간을 먹지 못하거나 인간이 되기 하루 전날 그 정체가 드러나서 죽거나 인간 세계에서 쫓겨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물들이 인간 세계에 편입되지 못하는 것은, 낯선 외부인이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경직성을 상징한다.

  

-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 명의 부인을 맞았다. 납채(納采)·문명(問名)·납길(納吉)·납폐(納幣)·청기(請期)·친영(親迎)의 여섯 절차인 육례를 치르고 어엿하게 맞이한 부인의 소생이 가문의 대를 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사대부들은 첩을 들였다. 

 

- 육례. 절차에 따른 혼인의 예법이다. 납채는 신부 측이 신랑 측의 혼인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 문명은 신랑 측이 신부의 외가 가계를 확인하는 것, 납길은 혼인의 길흉을 점치는 것, 납폐는 폐물을 주고받아 혼인의 성사를 표시하는 것, 청기는 혼인 날짜를 정하는 것,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다. 

 

- 성주신. 성주신은 집을 수호하는 가정 신령들의 대표 격이자 집안의 어른으로 집안의 길흉화복을 두루 관장한다. 성주는 대청이 있는 집에서는 대청 상량 밑에, 대청이 없는 집에서는 안방 윗목에 흰 종이와 쌀 단지의 형태로 좌정하고 있으며, 함경도 등에서는 주방과 소 우리 사이에 둔 제석 단지에 모셔져 있다. "성주는 대주(大主)를 믿고, 대주는 성주를 믿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성주는 한 집안의 남성 가장인 대주를 위한 신령이다. 성주는 대주에게 상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성주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남성 가장의 밥그릇에 곡식을 담아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고사를 지낼 때 성주신은 터줏대감과 함께 제일 큰 팥시루떡을 받기도 한다.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새로 성주를 모신다. 안택(安宅)을 하다 보면 간혹 성주가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성주신을 새로 받아 모시기도 하는데, 이때 남성 가장이 성주를 받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의례에서 성주를 불러내는 사람은 집안의 주부이다. 남성 가장이 직접 성주를 불러서는 안 된다. 

 

- 터주신. 터주신은 땅의 신이자 집주인으로, 집터를 지키고 집안의 재물을 보호해 흔히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지역에 따라서는 터주를 지신(地神)으로 부르고, 터주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신제라고 하기도 한다. 터줏대감은 집 뒤편 굴뚝 아래나 장독대 부근에 짚으로 덮은 곡물 단지를 터주단지로 두어 모신다. 곡물 단지를 덮은 짚 속에 업신의 신단지를 함께 넣어두거나 칠성을 함께 모시는 집도 있다. 

 

- 조왕신. 조왕신은 부엌을 관장하는 불의 신으로, 조신, 조왕대신, 부뚜막신, 조왕각시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일반 가정에서는 이른 아침에 샘물을 길어다 조왕주발에 떠서 부뚜막 뒤편에 설치한 대에 얹어놓았고, 사찰에서는 조왕각을 따로 지어 탱화를 안치해 모시기도 했고, 규모가 작은 절에서는 부엌에 탱화를 걸기도 했다. 조왕신은 아침에 밥 짓는 연기를 타고 올라가서 하늘의 복을 받아오는 신이자 부뚜막 뒤쪽에 머무르며 집안의 온갖 사실을 낱낱이 적어 하늘로 보내는 신이다. 그래서 부인들은 불을 때면서 악담을 하지 말고, 부뚜막에 걸터앉지 말고, 부엌을 청결하게 사용해야 했다. 명절날이나 굿을 하거나 고사를 지낼 때 목판에 떡과 과일을 차려 조왕의 몫으로 부뚜막에 놓기도 하는데, 이를 조왕상이라고 했다. 

 

- 삼신. 삼신은 한 집안의 생명력을 형상화한 임신, 출산, 육아의 수호신으로, 흔히 삼신할머니로 불린다. 삼신은 흔히 안방 윗목에 선반을 달고, 그 위에 보시기 세 개를 놓고 종이로 덮어 모신다. 간혹 제석과 함께 삼신제석으로 불리며, 종이봉투에 돈과 곡식을 담고 고깔을 씌워 안방 벽에 걸어두기도 한다. 아이가 태어나거나 집안의 어린아이가 아플 때, 아이의 생일등에는 삼신을 위하는데, 삼신상을 차릴 때는 밥 세 그릇과 미역국 세 그릇, 혹은 맑은 물 세 그릇을 올리기도 하며, 굿을 하거나 고사를 지낼 때는 흰떡과 맑은 물, 사탕 등을 올리기도 했다. 삼신상에 올려놓은 제물은 남에게 주지 않고, 가족들, 특히 아이와 아이 엄마가 먹었다. 한편 집안의 여성들이 혼인을 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으면 삼신을 새로 받기도 했다. 산중의 샘이나 계곡 물가에서 산의 산신과 물의 용왕에게 삼신을 받아달라고 빌어 받기도 하고, 달에게서 받기도 했다. 

 

- 칠성신. 칠성은 하늘의 북쪽에 떠 있는 북두칠성을 의미한다. 생사와 화복, 빈부 등 사람이 살면서 겪는 일들을 맡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수명장수를 관장한다. 대개 불교 신앙과 결합해 제석굿이나 불사굿에서 함께 모셨다. 굿을 하지 않더라도 정월 안택을 할 때나 칠석날 저녁에 칠성을 모시기도 했다. 이때 주부는 목욕재계하고 떡과 과일 등의 제물을 올려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 이를 칠성고사, 칠성공이라고도 한다. 혹은 집안에 근심거리가 있을 때 집안 여성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칠성신에 비는 것이었다. 간혹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 칠성신에 기원했다. 태어난 아이의 사주에 명이 짧다고 나오면 만신을 불러다 칠성신에게 아이를 바치고 무당과 아이 사이에 수양(養) 관계를 맺는 명다리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이때 종이에는 아이의 생일과 태어난 시간, 이름과 "수명장수 재수발원(壽 財數發願)" 등의 기원을 적고 무명천에 타래실을 넣어 만신에게 바쳤다. 아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안주인의 권리였다. 

- 로렐 켄달은 여성이 가정 신령들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중국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신령을 위한 음식을 따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신령의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산 사람을 먹이듯이 신령을 먹인다.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집안의 불단에 죽은 가족을 모시고, 꽃이나 과일, 가끔은 식사를 올리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도 여기 해당된다. 한국에서는 신령을 위해 가족에게 내가는 음식과는 다른 음식을 준비하며, 제사가 끝난 뒤 가족들이 음복했다. 중국과는 여성이 가정 신앙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조왕신을 모실 때조차도 남성 가장의 권위를 드러냈지만, 한국에서는 남성 가장과 동일시되는 성주를 모실 때조차도 남성 가장이 아닌 주부의 권위로 모셨다.

 

- 이렇듯 한국의 가정 신령 제사는 여성이 주도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남성이 가정 신령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때도 여성이 빠지지 않았으며 동등한 위치에서 제를 주관했다. 남성이 성주를, 여성이 조왕을 대접하거나, 부부가 함께 가택신과 지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식이었다. 제주도의 일부 마을에서는 남자들은 토신제를, 여자들은 집에서 안제라는 의례를 행하며 부부 양주가 상호 보완적으로 제사를 올렸다. 조선에서 연장자이자 주부인 여성은 남편을 대신해 제사를 지내는 대리인이 아니라, 이 성리학과 무속으로 이원화된 세계에서 가정을 대표하는 한 축이었다. 

- 마고할미는 세상을 만든 창조신이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영조 47년(1771년) 장한철이 쓴 <표해록?에는 "아득한 옛날 선마고(麻姑)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서 한라산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국문소설 <숙향전>에서는 마고할미가 위기에 처한 숙향을 구해준다. 마고할미는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놓인 가장 높은 산인 천태산에 정좌했는데, 서사무가 <바리데기>에서는 길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가 바리데기를 시험해본 뒤 도와주기도 한다. 

- 마고할미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다. 심지어 <중국 신선전>에 기록된 도교 계통의 마고 선녀로 오인받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을 만든 지모신의 존재가 잊히거나 축소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바빌로니아의 지모신이자 풍요의 신이었던 이슈타르는 고대 페니키아에서 죽음과 재생을 관장하는 아스타르테로 불렸으며 지중해 여러 곳에 그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기독교의 전파 이후 악마인 아스타로트로 전락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모든 만물의 어머니 신이었던 티아마트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포세이돈, 또는 헤라의 권속인 괴물이 되었고, 성경에 나오는 악마 레비아탄의 기원이 되었다. 마고할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창조하며 온갖 자연물을 만들어낸 이 거대한 할머니 여신은, 나중에 각 지역의 특정한 산을 쌓아 올린 산신으로 남았다. 다행히도 이 마고할미의 원래 이야기를 짐작할 만한 자세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바로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다. 

- <표해록>에는 표류하던 일행이 한라산을 보자 백록선자와 선마선파(說麻仙婆)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선마선파의 선파(仙婆)도 선마고의 고(姑)도 할머니를 뜻하는 말이니, 이는 '선마할미', 즉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국의 선녀로, 종종 서왕모와 동일시된다.

 

- 이 이야기에서는 유화부인이 단순히 해모수의 자손을 낳았기 때문에 여신인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농경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백은 물을 다스리는 신이니, 하백의 따님인 유화부인 역시 물을 다스리는 수신 계통일 것이다. 주몽이 부여에서 떠나던 중 대소에게 쫓길 때, 엄사수가 앞을 가로막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몽을 도왔다는 이야기에서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 데다 유화부인이 오곡의 종자를 싸서 보냈다는 점에서 농경을 주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유화부인은 물을 다스리는 농경신이니, 그 자손인 주몽이 새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것은 당연했다는 이야기다. 유화부인은 살아서는 부여 금와왕의 후비였다. 대소와 일곱 왕자들의 친어머니는 아니었으나, 그들의 계모이자 금와왕의 왕비였던 것이다. 부여의 왕비이자 고구려 시조의 어머니인 유화는 죽어서는 부여와 고구려, 두 나라의 태후가 되었다. 이는 유화부인이 부여계 집단 공동의 시조 어머니이자 농경신으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다.

 

- 한편 가야에도 왕을 낳은 어머니 여신이 있었다. 바로 가야산의 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다.

 

- 옛날 가야산에는 정견모주라는 여신이 살고 있었다. 정견모주는 가야 땅의 백성들이 착하고 부지런하나, 그들을 다스릴 이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누군가 저들을 지혜롭게 다스린다면 백성들이 더욱 살기 좋아질 텐데.'
정견모주는 가야 땅에 현명한 지도자를 내려달라 하늘에 빌었다. 그 정성을 갸륵하게 여긴 천신 이비가가 오색구름으로 된 수레를 타고 가야산에 내려왔다.
"이 가야의 땅을 다스리는 그대가 하늘을 다스리는 나와 연분을 맺고 왕을 낳아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정견모주는 이비가와 부부의 연을 맺고, 뇌질주일과 뇌질청예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동생인 뇌질청예는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되었다.  

 

- 고대부터 많은 산신은 여신이었다. 이들은 산각시, 산마누라, 산신할머니 등으로 불렸다. 많은 학자들은 소수의 몇몇 산신만이 남자였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최근 300여 년간 그려진 산신도에서는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조선의 주류 사상이었던 성리학과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아 여신보다는 나이 많은 남신에게 권위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 삼신이 된 당금애기. 
조선 제일 부자인 만년장자에게는 아홉 아들 밑으로 고명딸 당금애기가 있었다. 당금애기는 마치 선녀처럼 맑고 고운 얼굴에 선한 마음씨를 지닌 아름다운 아씨로 자라났는데, 만년장자는 명산대천에 빌어 얻은 그 딸을 지극히 사랑했다. 어느 날 만년장자 부부는 산천 유람을 떠나고 아홉 오라비는 벼슬을 하러 집을 비운 사이, 한 시주승이 나타나더니 굳게 잠긴 열두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무관세음보살. 금불암의 화주승이 당금애기께 시주를 청합니다."
"스님, 부모님은 산천 유람을 가셨고 오라버니들도 집을 비워 곳간이 꼭꼭 잠겨 있습니다. 오늘은 시주를 드릴 수 없겠습니다."
그러자 시주승은 주문을 외워 곳간 문을 열었다. 당금애기는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시주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주승은, 아버지가 드시던 쌀은 누린내가 난다, 어머니가 드시던 쌀은 비린내가 난다, 아홉 오라버니가 먹던 쌀은 땀내가 난다며 당금애기가 먹던 쌀을 서 말 서 되 서 홉 달라했다. 

 

- 하지만 태어난 일곱 번째 아이는 딸이었다. 오구대왕은 그 소식에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내가 전생에 죄가 많아 딸만 일곱을 두었으니, 이 나라를 누구에게 물려주라. 일곱째 딸이라니 보기도 싫다. 함에 넣어 열두 바다에 띄워 버려라." 
길대부인은 갓 태어난 딸을 안고 통곡했지만, 왕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길대부인은 일곱째 공주에게 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옥함에 옷가지와 생년월일을 적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바리를 실은 옥함은 열두 바다를 지나, 서쪽 바다에 사는 비리공덕할아비와 비리공덕할미에게 발견되었다. 바리는 할아비와 할미의 손에 고이고이 자랐지만, 어찌해 자신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지 궁금해했다. 
"제 부모는 누구입니까."
"네 아비는 하늘이요, 네 어미는 땅이지."
비리공덕할아비가 둘러대자, 바리는 고개를 저었다.
"어찌 하늘과 땅이 사람을 자식으로 두겠습니까. 제 부모는 대체 누구입니까."
"네 아비는 앞뜰 왕대나무요, 네 어미는 뒷동산 오동나무다."
비리공덕할미가 그리 말한 뒤로, 사람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대나무 지팡이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게 되었다. 

 

- "그대가 오구대왕의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만큼 같이 살았으니 나와 혼인하여 일곱 아들을 낳아주십시오." 
바리는 그 말대로 했다. 마침내 일곱 아들을 낳고, 이제는 아버지를 살리러 돌아가야 한다고 하자 무장승은 바리가 찾던 것들을 알려준다. 
"그동안 그대가 길어 온 물이 약수이니, 아버지 입에 흘려 넣으면 됩니다. 계속 베어오던 풀이 개안초이니 눈에 넣어드리면 눈을 뜰 것이고, 뒷동산 후원의 꽃이 숨살이, 살살이, 뼈살이 꽃이니 품에 넣어드리십시오." 
마침내 바리는 무장승과 일곱 아들들과 함께 불라국으로 돌아갔다. 성으로 들어가려는데, 오구대왕의 상여가 나오고 있었다. 오구대왕은 이미 숨을 거두었지만 바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3년 만에 장례를 치르던 중이었다. 이때 3년 동안 바리를 기다렸기에, 사람들은 사람이 죽고 3년 동안 대상을 치르게 되었다. 바리는 달려가 상여를 붙잡고 소리쳤다. 
"바리가 왔습니다. 저승 동대산의 약수를 구해 왔으니,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여섯 언니들이 그 말을 믿지 못하는데, 길대부인이 바리를 불러들였다. 관 뚜껑을 열어보자 오구대왕은 뼈만 남아 있었다. 숨살이, 살살이, 뼈살이 꽃을 오구대왕의 몸에 얹자 죽은 몸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약수를 그 입에 흘려 넣자 오구대왕이 숨을 쉬고, 개안초를 눈에 넣자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듯 일어났다. 오구대왕은 바리공주에게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말했지만, 바리는 대답했다. 
"저는 저승에 다녀오는 동안 가엾고 불쌍한 오갈 데 없는 혼들을,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저는 만신의 왕이 되어 그 불쌍한 혼들을 인도하는 신이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바리는 무조신(巫神)이 되어 언월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들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인도하게 되었다. 바리를 주워 키운 비리공덕할아비와 비리공덕할미는 영혼의 길 안내를 맡는 신이 되어 저승 노자돈을 길 삯으로 받으며 살게 되었다. 바리의 아들들은 저승 시왕이 되었고, 남편인 무장승도 신이 되었다.

- 6장에서 이야기했지만, 호구말명은 혼인하지 못했거나 젊은 나이에 세상 떠난 여성들의 혼령이다. 이들은 조상이 될 수 없는 잡귀 잡신이지만 집안에서는 가족으로, 조상으로 대접받았다. 이들은 굿판에서도 당연히 호명된다. 그것도 굿을 베푸는 집안의 본향과 조상들을 불러들이기 전에. 호구말명은 젊어서 죽은 여성 신령인 동시에, 마을 신이나 천연두 신이기도 하다. 서울굿의 호구거리에서 언급되는 수풀당 아기씨 호구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젊은 여성의 혼령과 천연두신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 수풀당 아기씨 호구. 
먼 옛날 북쪽 나라에 다섯 공주가 살았다. 나라가 망하자 이들 다섯 공주는 남쪽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왕십리 근처에 이르러 다섯 공주는 지쳐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이 근처에는 수풀도 많고 나무도 많아, 다섯 공주는 이곳에 몸을 숨긴 채 풀 같은 것을 뜯어먹으며 배를 채웠다. 그러던 어느 봄날, 다섯 공주는 산찔레를 뜯어먹다가 찔레꽃을 입에 문 채로 죽고 말았다. 이곳은 원래 공동묘지로, 사대문 안에서 장례 행렬이 나오던 광희문이 있었던 지역이었다.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자, 다섯 공주는 사람들의 꿈에 나타났다. 
"우리 다섯 공주는 이곳에서 원통하게 숨을 거두었다. 부디 우리를 위해 이곳에 당을 지어 다오." 
사람들은 다섯 공주의 꿈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런 데다 동네에 흉한 일이 있고 전염병이 돌자 이들은 세 곳에 당을 지었다. 행당동 살군당에 한 분, 양지당에 한 분, 수풀당에 세분을 모시고, 사람들은 산찔레가 피는 4월을 공주들의 기일로 여겨 4월 보름마다 탄신제와 기제를 올렸다. 공주들은 용궁대신, 산신호구, 큰아기씨, 작은아기씨, 당아기씨로 불렸는데, 과거에는 세 당에 따로따로 모셔져 있던 것을 현재는 수풀당에서 함께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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