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Drawing Book

[아서 L. 겁틸] 펜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

일루젼 2022. 8. 1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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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아서 L. 겁틸 / 권루시안

원제 : Rendering in Pen and Ink: The Classic Book on Pen and Ink Techniques for Artists, Illustrators, Architects, and Designers 
출판 : 진선출판사 
출간 : 2019.10.29 


       

와. 빡빡했다. '마스터 컬렉션(Classic Book)'이라는 제목이 전혀 과하지 않았다. 본문글이 주로 3단으로 편집되어 있어서 눈으로 보기에는 무척 아름다웠지만 읽기에는 수고로웠다. 또한 설명하고 있는 그림이 같은 페이지에 실려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앞뒤로 넘겨가며 읽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점들을 모두 감안하고서도 이 책은 훌륭하다. 이렇게까지 파고들어 설명해주는 책은 정말 드물 것 같다. 

 

딥펜의 펜촉을 고르는 법부터 잉크병을 간수하는 법, 원근 잡는 법과 그리는 자세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설명 잔소리 한다. 특히 연필이나 페인팅과는 다른 펜만의 특성을 강조하며, 그것을 장점과 단점 양쪽의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인물화, 풍경화, 장식화와 건물 구조도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펜 작품을 예시로 싣고 있으며 특히 선과 점을 이용한 질감 표현이 다채롭다. 강조를 위해 어떤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정말 상세하게 보여주는,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선 드로잉과 면 드로잉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던 터라, 스스로의 취향/적성을 확인해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읽었는데 솔직히 압도되고 말았다. 드로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교양 차원에서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훌륭했다.  

        


   

- 어떤 미술 매체보다도 많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펜은 유달리 불리한 매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선을 그리는 도구인 펜은 크레용이나 목탄이나 연필과 달리 그 자체로는 색이나 톤을 표현할 수 없다. 오로지 잉크를 병에서 종이로 옮겨 놓는 수송 수단으로만 작용하는데, 이렇게 보면 붓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붓과는 달리 펜은 끝이 가늘고 딱딱하여 아주 적은 양의 잉크만 머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종이의 넓은 면적을 칠하는 용도로는 실용적이지 않다. 

- 이런 제약점은 직접적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한다. 펜화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이하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고, 다양한 명도의 톤을 적용하거나 톤을 넓은 면적에 적용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펜으로 그린 선은 하나하나가 흰색 종이를 배경으로 완전히 검은색을 띤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드물지만 색이 있는 잉크를 쓰는 경우는 예외). 이것은 필연적으로 색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종이의 흰색 또는 검은색 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색을 암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밝고 어두운 톤 또한 무시하거나 비슷한 방법으로 암시해야 한다. 어떤 밝기의 톤을 넣으려면 거의 쓰이지 않는 점찍기 기법으로 종이 면에 점을 찍거나, 여러 개의 검은색 선을 나란히 또는 교차로 그어 원하는 톤의 효과를 내야 한다. 그렇게 넣은 톤의 밝기를 더 어둡게 하고 싶으면 이미 그려 넣은 선이나 점을 하나하나 더 굵게 그리거나 그 부분에 선이나 점을 더 많이 그려 넣어야 한다(이것을 워시와 비교해 보면, 워시로는 거의 어떤 밝기의 톤이든 빠르고 쉽게 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넣은 톤에 덧칠하여 더 어둡게 만들기도 쉽다). 한번 넣은 톤을 밝게 고치면서 그 부분을 깔끔하게 유지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너무 어두우면 지우거나(펜 작업에서는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 부분에 종이를 오려 붙여 다시 그리는 수밖에 없다.  

- 흰 종이에 검은색 잉크를 가느다란 펜촉으로 그려 넣을 때 이처럼 여러 기술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명도를 재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덜 중요한 명도는 무시해야 하고, 그 나머지는 단순화하거나 그저 암시하는 수준에 그친다.

- 색이나 톤을 무시한다면 그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형태를 잃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윤곽선이라는 표현 양식에 의존하는데, 특히 밝은 물체의 배경에 다른 밝은 물체가 있을 때 이를 구별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펜은 이런 윤곽선 작업을 할 때 특히 섬세한 도구이다.   

- 앞서 1장에서 실제 물체에는 윤곽선이 없으며, 선으로 나타나는 명확한 테두리도 가장자리도 없다는 점을 다루었다. 우리가 한 물체를 다른 물체와 구별하여 보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주위보다 더 밝거나 어둡거나, 색이 다르거나, 그 물체 또는 주변에 그늘이나 그림자가 생기거나, 그 물체의 윤곽을 명확하게 만들거나 그 물체를 주위로부터 분리시키는 조명 효과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고정 관념을 지운 상태에서 물체를 바라보기 바란다. 때에 따라 첫눈에는 윤곽선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찬찬히 분석해 보면 빛, 그늘, 그림자, 또는 색을 띠는 영역이 극도로 좁기 때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체를 둘러싸는 명확한 윤곽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 역으로 말하면 물체에는 실제로 그것을 둘러싸는 명확한 윤곽선이 있다고 생각하기가 매우 쉽다는 뜻이다.

- 어떤 물체를 그릴 때 이런 상상의 윤곽선을 그려 준 다음, 그 물체의 각 부분을(또는 톤이나 색을) 서로 구분해 주는 비슷한 선을 그려 넣으면 그 물체의 윤곽선 그림이 완성된다. 이것은 비교적 간단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에, 윤곽선은 그림으로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면 어린아이의 그림을 관찰해 보자. 아주 어린아이도 자연스레 윤곽선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원시인들도 그랬다. 그림 53의 스케치는 이를 잘 보여 주는 한 가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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