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이수경
출판 : 미진사
출간 : 2020.03.10
고양이의 날, 고양이는 그리지 못하고 인체 드로잉만 열심히 그렸다. 색연필화 수업을 이번 달만 소묘 수업으로 교체해서 수강하기로 했는데, 연필로 톤을 쌓으니 색연필에서는 티가 나지 않던 선 벌어짐이 눈에 확 들어와 서글펐다. 면과 선 중에서는, 현재로서는 선 드로잉이 더 맞는 것 같은데 면을 써본 적이 거의 없으니 판단이 어렵다.
인체 비율이 잘 맞는 편인데 따로 인체 공부를 했었냐고 물어봐주셔서 살짝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본격 해부학까지는 아니어도 관련 과목을 수강하긴 했으니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만화책을 많이 본 게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싶었다. 좋아하는 그림체도 극화체 스타일이라 알게 모르게 눈에 남은 모양이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하는 분들이 주로 공부하는 인체 드로잉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지만, 초보자와 숙련자를 가르지 않는 '기본기'에 충실한 책이라는 느낌이다.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사용한 드로잉 기법과 자세들을 수록해주어, 차근히 따라하다 보면 한 가지 정도는 자신과 잘 맞다고 느낄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전체 얼굴을 3등분 하여 눈, 코끝, 그리고 턱과 코 사이 중간을 입술이라고 잡는 식의 정해진 비율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체를 기본 도형들로 구조화 해서 보는 방식과 실제 사진에서 선을 보는 연습을 알려주기 때문에 무척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소장할 만한 책이라고 본다.
추천!
1주차. 손과 발 드로잉
2주차. 인체 드로잉
3주차. 누드 크로키
4주차.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
5주차. 네거티브 드로잉
6주차. 제스처 드로잉
7주차. 무브먼트 드로잉
8주차. 기억 연상 드로잉
9주차. 퀵 드로잉
10주차. 구조 드로잉과 인물 드로잉
11주차. 여러 가지 재료와 누드 크로키
12주차. 비포 앤 애프터
<드로잉을 대하는 10가지 자세>
1. 열정 갖기 :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의욕적으로 드로잉에 뛰어들기를 바랍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리라고 기대하지는 말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열정적으로 탐구해가기를 바랍니다. 그림 실력이 늘도록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봅시다.
2. '왜 나만 못하지?' 하는 생각 버리기 : 여러분 중에서는 그림 교육을 처음 받는 사람도, 이전에 그림을 그려봤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크로키 교실에 다니기로 했다면, 처음 배울 때는 다른 클래스메이트들과 같은 실력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잘 그리는 사람도 있고, 못 그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남들이 자꾸 내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 그림이 창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내 눈높이는 이미 산꼭대기에 있는데 실력은 저 아래인 경우도 많습니다. 부끄럽지만 차차 좋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조금씩 남들에게 보이는 습관을 들여봅시다. 못나 보여도 자기 그림입니다. 애정을 주고 좋아해 주면 좋겠습니다. 잘 안 되는 부분에 너무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드로잉은 즐거운 탐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좀 못 그리더라도 계속 연습하다 보면 나중엔 처음 그림을 보며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나에게 맞는 재료 찾기 : 처음에는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드는 재료가 나타납니다. 내 손에 딱 맞는 재료를 찾았다면 이제 방법을 다르게 해서 그려봅시다. 한 가지 재료의 성질을 다각도로 파악하고 나면 다른 재료들도 다루기가 쉬워집니다. 재료를 찾는 과정도 실험한다는 자세로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4. 몸으로 그리기 : 제가 만나본 학생 중 도저히 그림을 못 그리겠다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그림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제일 못해 보이고, 소질이 없는 것 같은 비관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이론적으로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로잉은 감각으로, 몸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따라서 왜 안 되는지 이론으로 따지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이렇게 좌절하는 학생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아무래도 연습량이 많기가 어렵습니다. 잘 그리지 못하는 스스로와 마주해야 하는 어려움을 좀처럼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잘 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입시다. 그냥 웃으면서 묵묵히 그리고 또 여러 번 실패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잘 그린 그림이 눈앞에 있을 것입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 많이 넘어져야 잘 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넘어져서 크게 다친다면 그 트라우마로 평생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뒤에서 단단히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넘어져도 계속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5.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기 : 무조건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서 드로잉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연습을 많이 하다 보면 본인이 편한 대로 그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독학을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칠 수 없는 습관이 몸에 새겨져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편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많이 그리는 것보다 적게 그리더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많이 망쳐보기 : 드로잉을 처음 배울 때면 잘하려고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한 장을 망쳤다면 다음 장을 기약하면 그만입니다. 만약 그다음 장도 망친다면, 또 그다음 장을 기약해보세요. 잘하려고 해도 자꾸만 망치고 만다면, 아예 처음부터 망쳐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대충 그리고 망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서 망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100장 정도 망쳐보면 그중 하나쯤은 쓸 만한 그림이 나옵니다. 실력이 쌓이면 100장 중 두 장, 그다음엔 세 장, 이런 식으로 잘된 그림의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갖고 아예 망치겠다고 작정하면서 그려보세요. 의외의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7. 상징체계를 버리기 : 그림을 그릴 때 흔히 상징체계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래서 사과를 그리라고 하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사과의 기호를 그리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과를 들여다보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상징과 똑같이 생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징체계를 벗어던지고 면적으로 인지해봅시다. 수직과 수평이 어떤지, 이 부분의 면적은 무엇과 비슷하게 생겼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입니다. 다음의 그림을 참고해봅시다. 위의 그림 ①은 손이지만 전체의 면적으로 보면 ②와 같이 의외로 단순하게 그릴 수 있고, 어떤 모양과 닮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 ③처럼 재미나게 공간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8. 인체를 단순하게 생각하기 : 아주 빠른 크로키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체를 단순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체의 포즈를 곡선으로 된 '사람 인' 자나 '큰 대' 자로 생각하고 그려봅시다. 그런 후에 구조로 파악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9. 인체를 구조로 이해하기 : 처음부터 인체를 잘 그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먼저 인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해부학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의사가 아니므로 해부학을 너무 자세히 공부하지는 않아도 괜찮습니다. 인체의 뼈대와 근육의 모양, 그리고 작동 원리만 알아두어도 인체를 그리기가 더욱 쉬워집니다.
10. 모든 과정을 즐겁게 하기 : 그림을 배울 때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잘하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그림은 한순간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실력이 쌓이다가 갑자기 늡니다. 따라서 제자리걸음인 시간을 즐겁게 버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재료를 시도해보고, 낯선 관찰 방법들을 연구해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열정을 갖기란 쉽지만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즐겁게 그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열정이 식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림 그리기는 하나의 철학적 사유와도 같습니다. 본질은 결국 즐거움입니다. 즐거움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여유와 함께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시름을 잊고 노는 것처럼 즐겁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 흔히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말은 어찌 보면 틀린 말입니다. 본인이 상상하는 머릿속 영상이 명확하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려낼 수 있는데, 문제는 생각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며,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 생각은 상징성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상상이나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몇 가지의 상징을 시각적으로 해석해내려면 미술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결국 그림 그리기는 머릿속 상상을 그림으로 걸러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때 그림 그리기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 기술은 손기술이 전부가 아닙니다. 손기술도 중요하긴 하지만 관찰하는 것(보는 방법)이 훨씬 중요합니다. 물론 미술가의 눈으로 보아야겠지요. 손기술은 그 이후의 문제입니다.
- 크로키(빠른 드로잉)는 보는 방법을 바꿔놓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은 그림 그리는 시간을 점점 줄여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를 그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대상을 그리려면 보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크로키를 배우게 되면 전체를 보는 습관이 생깁니다. 또한 그림의 구성 능력이 한층 좋아지고, 스케치 속도도 빨라집니다. 직관적으로 사물의 형태를 판단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크로키 실력은 이 같은 다양한 시각적 트레이닝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나중에는 흘러가는 생각을 종이 위에 잡아두는 것도 가능해지겠지요? 무엇보다 어디서나 스케치북을 펼 수 있는 배짱이 생깁니다. 왜냐고요? 얼마든지 빠르게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이 빨라졌기 때문에 행동력이 생깁니다. 그릴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그리고 싶어집니다. 물론 주저 없이 스케치북을 펼칠 용기는 스스로 내야 할 것입니다.
- 이 책에서는 인체 드로잉에 특히 주목합니다. 여러분이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는 인체나 동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러하지요. 그러므로 인체 드로잉을 잘하게 된다면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쉬워집니다. 인체를 그릴 줄 알면 동물 그리기에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동물은 인체처럼 뼈와 근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뼈와 근육을 파악하고 움직임의 원리를 알면 인체는 물론, 뼈대가 있는 동물들도 손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움직이는 것을 잘 그리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도 쉽습니다.
- 물론 인체 드로잉이나 크로키를 배우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주로 취미생들을 가르치는데, 대부분 그림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습니다. 취미로 시작해서 실제로 그림을 잘 그리게 된 분도 있고, 심지어 진로를 바꾸는 분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막연하게 재능 있는 사람만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을 잘 그리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위로를 삼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 실력은 한 단계, 한 단계 뛰어넘으며 계단식으로 발전합니다. 수많은 연습이 쌓여야 갑작스럽게 늘게 됩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더라도 꾸준히 해나가려면 실력이 향상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던 사람들도 곧 한계를 느끼고 지겨워하면서 슬퍼하게 됩니다.
- <12주 드로잉 워크숍>에서는 인체 드로잉과 크로키의 기초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크로키는 원래 빠르게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에 정확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비례감, 순발력, 시각적 직관력을 키우게 해주는 드로잉 분야입니다. 직관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본인의 개성을 개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크로키를 가르치며 재능보다 트레이닝을 통해 발전하는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나쁜 습관 없이 제대로 그림을 익힌다면 생각보다 쉽게 접근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 크로키와 인체 드로잉의 세계입니다. 8년 동안 12주 강좌인 '드로잉 워크숍'에서 학생들에게 인체 드로잉과 크로키를 가르치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수업 내용은 물론, 수업을 통해 발전한 학생들의 사례를 수록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즐겁게 크로키와 드로잉을 익히고, 그 과정에서 크로키가 주는 최고의 선물인 몰입감과 리듬의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 드로잉 연습을 할 때 다양한 기법을 이용하고, 여러 가지 재료를 써보는 것은 여러분의 드로잉이 고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늘 생소한 방식으로 관찰하고, 새로운 재료를 접해야 습관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림을 그릴 때 손에 익숙해지고, 속도가 빨라져 능숙하게 그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능숙하게 그리게 되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습관이 되어 더 이상은 관찰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됩니다. 항상 생소한 방식으로 관찰합시다. 손에 맞지 않는 재료를 써보며 재료에 대해 더 면밀히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본인이 관찰하는 방향대로 재료를 다룰 수 있습니다.
- 양초를 이용해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해보도록 합시다. 무의식 중에 자신의 그림을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그림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어린 시절 흰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색칠을 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려보는 것도 즐거울 것입니다. 다 그린 후에 먹물을 평붓에 묻혀 화면에 칠하면 형태가 드러나게 됩니다.
- 위의 그림은 네거티브 드로잉으로 형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것을 그렸는지 대략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잡하게 사물을 그리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그려내면 오히려 형태의 본질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형태의 구조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바깥 공간의 형태를 눈으로 인지해봅시다. 해당 공간의 모양에 집중하게 되어 집중력과 관찰력이 향상됩니다.
- 이런 식으로 형태를 그려나가면 생각보다 손쉽게 완성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집중력도 생기게 됩니다. 이때는 사용하는 두뇌의 모드도 바뀌는데, 평소에는 좌뇌를 사용하다가 이렇게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면 우뇌를 사용하게 됩니다. 좌뇌는 언어나 상징체계 또는 숫자의 연산과 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처리를, 우뇌는 공간 지각 또는 직관적, 감각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 이제 여러분은 네거티브 드로잉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관찰을 다른 방법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생소한 공간을 만들고, 그 조합으로 형태를 잡는 방법을 통해 그림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이는 상징성에 의해 생각하고 그리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머릿속 상징이 개입된 형태가 아닌, 보이는 형태 그대로를 인지하려고 노력해봅시다. 개체의 상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상징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이 장의 목표입니다. 여백을 그린다고 생각합시다. 이제부터는 공간도 형태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 동세를 먼저 그리지 않고 윤곽만 따라가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인체가 딱딱하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시 그림을 보면 제스처 드로잉이 컨투어 드로잉보다 더욱 역동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체 드로잉에서 동세 gesture는 뼈대와 같은 것이고 윤곽 contour은 살과 같은 것입니다. 윤곽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세를 먼저 표현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윤곽을 그리며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크로키를 연습하는 것은 동세를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빠르게 동세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인체 드로잉, 혹은 누드 크로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세가 없는 세부 묘사는 무의미합니다.
- 동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리듬을 가지고 그리는 것이 좋습니다. 인체는 곡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체의 곡선을 통해 우리는 리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리듬감 있는 선을 위해서 음악을 틀어놓고 그리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여 그려봅니다. 최대 1분으로 드로잉 연습을 해봅시다.
- 무브먼트 드로잉을 할 때는 그냥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춤을 추는 사람을 그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무래도 동작이 크고 움직임에 패턴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필이나 목탄보다는 붓처럼 부드럽고 빠르게 그릴 수 있는 재료가 움직임을 따라가기에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붓은 천천히 그리는 것은 어렵지만 빠르게 그리는 것은 쉽습니다. 춤같이 큰 동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을 보고 붓과 먹으로 연습해봅시다. 만약 여의치 않다면 붓펜을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 10초 기억 연상 드로잉은 동작에 대한 인상을 그려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보고 그리기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인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의외로 대상을 보고 그릴 때보다 더 인체답게 그릴 수 있습니다. 크로키를 빠르게 하게 될수록 인체를 그리는 것이 점점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리기 익숙한 포즈들은 외워서 그린다고 할 정도의 습관도 생겨나게 됩니다. 사실 이렇게 외우게 되는 것은 관찰에 있어서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 본인만의 패턴을 갖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렇게 나만의 패턴이 생겨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됩니다.
- 여러분이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인체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체를 관찰하여 그리고, 관찰 방식에 따라 수십, 수백 장의 인체를 그리다 보면 인체의 구조를 몸으로 익히게 되고, 그것이 지식으로 저장됩니다. 마치 운동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 훈련을 많이 하게 되면 자신이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는지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깨지기도 합니다. 실제에 다가가기 위해서 짧은 시간에 더욱 면밀한 관찰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발력도 생깁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대상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같은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리는 사람의 시선이 개입되게 됩니다. 이처럼 드로잉은 본인의 개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 기억해내려고 하면 기억은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그리게 될까요?
- 아무리 복잡한 개체도 구조를 알고 도형화할 줄 알면 그리기가 쉬워지고 그릴 때 자신감도 생기는 법입니다.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물을 잘 그리려면 두개골의 구조를 먼저 파악하면 쉽습니다. 일단 해부학적 구조를 파악하고 도형화를 시켜 봅니다. 두개골을 흔히 계란 모양이라고들 합니다. 정면의 경우 눈의 위치는 전체 세로 길이의 절반 부분에 위치합니다. 그것을 기준 삼아 그려나가 봅시다. 한 번쯤 두개골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연습합시다. 아래 그림처럼 단순화시킨다면 조금 더 쉬워질 것입니다.
- 도형화와 동시에 시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얼굴을 정면에서 봤을 때 눈과 코의 기울기가 90도를 이룹니다. 이 중심선을 잘 기억해둡시다. 만약 고개를 숙인다면 이 가로 중심선은 아래로 내려가고, 고개를 든다면 가로 중심선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 미술은 머리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을 통해 훈련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훈련한다면 단시간에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접한 분들은 대부분 먼저 이론을 습득한 후에 실기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은 실기입니다. 따라서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지만 그중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던 분들의 사례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릴 분들은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했던 분들입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세요. 자신에게 해당되는 유형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드로잉 워크숍'이라는 수업을 8년 넘게 해오면서 여러 유형의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림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 그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절대적인 연습량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잘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림을 머리로만 익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몸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관찰'과 '몰입'입니다. 두 가지 모두 몸의 감각을 이용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그림이란 깨달음과 깊은 연관이 있는 분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드로잉은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깨닫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는 본인의 몸과 습관을 이해하는 부분도 포함됩니다.
- 제가 어린 시절에 그림은 눈으로 그리는 것이라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몸으로 그리는 것이더군요. 그림을 그릴 때 눈이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인 것은 맞지만, 사실은 손과 팔, 어깨를 포함한 몸 전체가 중요합니다. 또한 몸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므로 그림은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림도 불안하게 표현되고, 마음이 편안하다면 그림 역시 편하게 느껴집니다.
- 새로운 그림 기술을 배우는 것은 용기 있는 시도를 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도전입니다. 물론 잘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화가 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잘 배우는 사람들은 그 시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편하게 시도하고 실수를 기억했다가 방향을 바꿔 다시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실수는 교훈을 낳습니다. 실수해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발전 또한 없을 것입니다.
- 그림을 가르쳐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수강생을 만나고 다양한 그림을 접했습니다. 비슷한 케이스는 있지만 같은 케이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분 한 분 그림에 대한 자세도,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당연히 그림도 다르게 나오고, 깨닫는 지점 역시 모두 다릅니다. 어쩌면 이 책은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다른 접근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챕터 정도는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랍니다. 그 한 챕터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면 전체를 한 번에 관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책 전반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전체적인 흐름과 근본을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인체는 뼈대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 살이 붙습니다. 인체의 근본은 뼈대입니다. 그런데 그 뼈대는 근육과 이어져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리듬을 만들고 인체를 만듭니다. 인체를 그린다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고 그림을 공부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 본의 아니게 그림을 공부하라고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림은 공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론만 습득해서도 안 되지만 그냥 실기만 가지고서도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좋아하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좋아하고 싶다면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연필을 깎고, 스케치북을 열고, 선 하나 긋는 것에 설렘을 갖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을 빼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저의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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