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이면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일루젼 2012. 2. 8.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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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이면우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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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눈길을 잡아 끌었다.
그 어떤 밤에도, 어디선가에는 울음이 터져나오고 있으리라.

시인은 참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도 원망이나 증오가 없다. 세상을 향한 분노가 없다.
그저 고요히,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는 자세가 엿보이는 시들이었다.
차마 못 누른 한숨 한 자락이 새어나오듯 딱 그만큼 아파해서 더 아린.

나는 시를 많이 읽지 않지만, 근래 읽은 시집 중에서는 제일 좋았다.




[꿈에 크게 취함]

술 끊고 한 열 달 지나 꿈속에서 술 마시고
아이고 십년계획 도로아미타불이라고 엉엉 울다 깼다
깨어 꿈인 걸 알고 기뻐서 방바닥을 쳤다.

술 끊은 지 이제 십년이 지났다 남들이 독하다고
그래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꿈에 크게 취했다 꿈속에서
이건 꿈이니 기왕에 마시려면 잔뜩이라고
왕사발로 거푸 들이켜던 애달픈 밤이 여럿 지나갔다.




[소쩍새 울다]

저 새는 어제의 인연을 못 잊어 우는 거다
아니다, 새들은 새 만남을 위해 운다
우리 이렇게 살다가, 누구 하나 먼저 가면 잊자고
서둘러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아니다 아니다
중년 내외 두런두런 속말 주고 받던 호숫가 외딴 오두막
조팝나무 흰 등 넌지시 조선문 창호지 밝히던 밤
잊는다 소쩍 못 잊는다 소소쩍 문풍지 떨던 밤.




[화염 경배]

보일러 새벽 가동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씁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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