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벨마 월리스] 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일루젼 2022. 10. 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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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벨마 월리스 / 짐 그랜트 / 신은정 / 김남주

원제 : Bird Girl and the Man Who Followed the Sun  
출판 : 이봄
출간 : 2021.12.01


       

짐 그랜트의 일러스트를 무척 매력 있게 감상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한글 판본에서는 그의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벨마 월리스의 글에는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진짜'의 느낌이 있다. 틀림없는 '이야기'이면서도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은, 어딘가에서는 틀림없이 '있었던' 일인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어슐러 르 귄이 평한 "읽은 후에는 읽기 전보다 조금 나아진 인간이 된다"는 표현은 이 미묘한 느낌을 정확하게 나타낸다. 읽는 동안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은 것을 경험하고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세소녀>의 원제는 <Bird Girl and the Man Who Followed the Sun>이다. 새소녀와 해를 쫓는 남자. 본문은 어째서 Girl과 Man인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 여성에게 꿈은 소녀 시절에만 쫓을 수 있는 무엇이며, 남성에게 꿈은 책임과 안정을 얻은 뒤에야 쫓을 수 있는 무엇이다. 그러나 둘 모두에게 '꿈'이란 전통과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그 과정과 결과 역시 처음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에 그들이 돌아온 곳은 그들이 떠나왔던 바로 그 자리다. 하지만 그때는 떠났어야만 했음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후회나 슬픔은 없었다. 다구와 주툰바는 자신들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으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것들은 다면성을 가진다. 처음부터 분리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하나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제자리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빚어내는 경험은 시작부터 완결되어 있었으되, 최초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가 아닌 '바로 지금' 모든 방향에서 함께 겪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행하는 자이며 행함 당하는 자이며 보는 자이며 경험하는 자이다. 그 모두를 경험하고 이해할 때, 다시 합쳐지는 순간들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벨마 월리스.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다.         

 


   

- 그위친족은 그 땅에서 사는 동물을 소중히 여겼고, 그들이 경탄하는 동물의 힘과 기술을 아이들이 닮기를 바랐는데, 뇌조도 그중 하나였다. 아이가 뇌조처럼 날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많은 부모들이, 식물즙으로 염색한 호저의 가시를 엮어 뇌조의 발 모양 장식을 만들어 아이들의 모카신 위에 달아주었다. 다구의 부모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이에게 뇌조라는 뜻의 다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 야영지에 머물러 있을 때면 이 호기심 많은 소년은 어른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쏟아내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한 가지 질문에 여러 어른들이 웃음 지었다. 겨울에는 해님이 남쪽으로 도망치는 것 같다고, 날이 갈수록 하늘에 점점 낮게 떠오르다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져 버리지 않느냐고, 도대체 해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었던 것이다. 아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른들은 일 년 내내 태양이 비치는 남쪽의 따뜻한 나라인 '해의 땅' 이야기를 해주었다. 

 

- 다구가 속한 무리가 야영을 하고 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을 돌아다니는 다른 그위친족 무리 중에 주툰바라는 소녀가 있었다. 주툰바란 그녀가 달고 다니는 장신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주툰바가 아기일 때부터 어머니 나주는 딸을 위해 장신구를 만들었다. 그녀는 무스의 정강이뼈를 구슬 모양으로 갈아 곱게 물들인 다음 한데 엮어 만든 목걸이와 팔찌로 외동딸을 치장해주었다.

 

- 딸을 아름답고 여자답게 보이게 하려는 나주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툰바는 아버지와 세 오빠들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아버지 조흐는 자식들이 각자 무기를 만들어 쓰도록 훈련시켰다. 그위친족 남자가 아들에게 그런 훈련을 시키는 것은 당연했지만, 딸을 그런 식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아이들이 사냥을 하고 짐승을 찾아다니는 훈련을 받았다면, 여자아이들은 요리를 하고 아이를 기르고 가죽을 무두질하고 바느질을 하고 식용 식물과 약초를 채취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조흐는 자신과 아들들이 하는 일에 흥미를 보이는 딸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딸이 달리기와 사냥을 익히도록 은근히 부추겼다. 

 

- 어린 소녀는 열의에 찬 학생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평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내는 소리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사냥꾼들이 높이 평가하는 기교였다. 새소리를 이용해서 근처에 있는 동물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주는 주툰바에게 요리와 바느질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집안 남자들이 딸을 훈련시키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남편과 아들들이 주툰바를 '새소녀’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 세월이 흘러 조흐와 나주의 딸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다. 새소녀는 노련한 사냥꾼이 되었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으며, 물살이 몹시 빠른 강에서도 헤엄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야영지의 청년들과 경주를 하고 몸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종종 그들을 이겼다. 그녀의 가족은 강인한 그녀가 능숙하게 기술을 익히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경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 "아들아, 내가 가만히 앉아서 저 산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한다고 해서 우리한테 먹을 고기가 생길까?"

치진추가 진지한 어조로 아들에게 물었다. 

 

- 새소녀가 모든 점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의 가르침이 뛰어나다는 걸 증명해주는 일이기도 했다. 오늘 사람들이 그에게로 와서 불평을 말하기 전까지 조회는 그것이 자신의 실수였음을 깨닫지 못했다. 남자들 몇몇은 가족에게 새소녀가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혼인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몇몇 남자들이 한데 모여 지도자에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했다. 

 

- "당신 딸은 혼인할 나이가 되고도 남았소. 남자와 짝을 지었어야 할 때가 오래전에 지났단 말이오. 우리는 당신이 그녀에게 남편감을 골라주기를 바라오." 
조흐는 침묵을 지켰다. 여기 온 사내들이 자기 딸에게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딸은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질문이 많았으며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반면 다른 여자들은 남자들의 말을 조용히 들었고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말에 복종했다. 

- 조흐는 딸을 변호하고 싶었고, 혼인을 받아들일 시간이 그녀에게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동료 사냥꾼들과 입씨름을 벌일 수가 없었다. 그는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러 세대 동안 엄격한 규칙을 따라 살아왔고, 전통이 모든 것에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깨서는 안 될 하나의 규칙을 자기 딸이 깨뜨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용인했다. 아내가 해야 할 일을 떠맡아 스스로 딸을 교육했던 것이다. 이제 새소녀는 아비의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를 터였다. 
 

- 다구는 자신에 대한 무리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화가 나서 생각했다.

'이러다간 모두의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될 수도 있겠는걸.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저들은 나를 거부하고 협박하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할 때만 나를 인정해주는 거야.' 

 

- 걸음을 옮기면서 그는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었다. 다구는 자신이 가족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그가 사냥꾼이 되기를 바랐고, 어머니는 손주를 원하고 있었다. 부모가 원하는 모든 일이 그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으며, 그로서는 그런 부담감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잠자리에서 팔다리를 뻗고 문간 바깥의 하늘을 내다보며 천천히 지는 해를 지켜보았다. 해는 여름이면 하늘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났지만,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서서히 떠나가 이곳을 춥고 어둡게 만들었다. 

 

- '어떻게 하면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는 자문했다. 다구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이 땅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기소침해졌다. 그는 다음날 순록 사냥을 마친 다음 아버지에게 혼자 떠나겠다고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부모님은 슬퍼할 테지만 그는 자신이 계속 부모의 바람을 따라 산다면 무리의 생활 속에 깊이 휘말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조상의 흔적을 따라 해의 땅에 대한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 다구는 항상 지니고 다니는 무스 가죽에 그려진 지도를 꺼내 손가락으로 해의 땅으로 가는 길을 더듬어보았다. 밤이 되어도 춥거나 어둡거나 황량하지 않은, 푸르고 무성한 나무들이 있는 땅을 상상 속에서 그려보았다. 그 땅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은 한밤중 울부짖는 배고픈 늑대의 외로운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리라. 그곳에서의 삶은 훨씬 편안하고, 자취를 감춘 무스 떼를 찾아 높이 쌓인 눈을 뚫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놓을 필요도 없으리라. 그런 곳은 반드시 존재할 터였다.  
 

- 한순간 새소녀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나주의 부드럽고 이해심 많은 미소와 그녀가 만들어주는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자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어머니의 독자적인 생각이나 생활 방식은 무엇이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어 무리의 남자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다. 새소녀는 벌떡 일어나 반항적인 태도로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혼인을 할 수 없었다. 

 

- 그녀가 순록을 한두 마리 잡는다면 그들은 감명을 받고 이 문제를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봐줄지도 몰랐다. 새소녀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계획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위친족, 특히 남자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뭔가를 결정하면 그렇게 되어야 했다. 사냥을 하도록 허락했을 때조차도 그녀의 부모는 생리 중일 때는 사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고집했다. 무리 전체에게 나쁜 일이 닥칠까 봐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동물의 세계와 정령의 세계와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새소녀는 여러 차례 마음속으로 그런 규칙들이야말로 커다란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전통이 또다시 그녀의 삶에 장애가 되고 있었다. 그런 전통에 대해 새소녀는 경멸감만을 느낄 뿐이었다.

 

- 새소녀는 모닥불을 피웠다. 마른 나뭇가지 두 개를 비벼 불씨를 만들고 거기에 마른 잎과 풀을 쌓아 올려 불꽃이 타오르게 했다. 그런 다음 마른 나뭇가지를 더 얹어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불길을 키웠다. 그녀는 큼직한 자갈을 주워와 불속에 넣었다. 자갈이 뜨거워지자 나뭇가지 두 개를 이용해 불속에서 자갈을 꺼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물그릇 안에 넣었다. 그릇 안의 물이 뜨거워지자 강가에 있는 줄기가 긴 식물에서 따온, 끝이 황금색인 잎을 넣고 차를 만들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모닥불을 찍었다. 무스 고기를 말린 육포를 씹으면서 주위의 어둠을 밝혀주는 모닥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저녁 추위로 등이 차가워지자 몸을 옹송그리며 모닥불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마치 그 작은 불꽃이 주위의 냉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는 듯이. 박하 맛이 나는 차를 마시며 새소녀는 밤의 으스스한 기을 잊기 위해 무리 속에서 살던 때를 떠올렸다.   

 

- '이게 이제부터 내가 져야 할 짐이겠지. 난 내가 잃어버린 것에 슬퍼할 시간이 없어. 내 앞에 놓인 이 과제를 수행해야 해. 개인적인 감정은 나중에 추스르자.'  

 

- "네가 행복하지 않다는 건 줄곧 눈치채고 있었단다."

슈린야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그러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 사람들은 방문객이 하는 말을 온 힘을 기울여 알아들으려 애쓰면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길로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째서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알지 못하는 장소를 탐사하려는 걸까? 이 틀링기트 족도 그위친족처럼 전통과 밀착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틀링기트가 전통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분노와 경멸의 대상이 될 터였다. 하지만 다구는 틀링기트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특이함은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해의 땅을 찾겠다는 그의 꿈은 존중할 만했다. 

 

- 다구는 틀링기트들이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았다. 그는 그들의 지도자에게 노래 한 곡을 먹을거리와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수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일찍이 들은 것 중 가장 괴상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구가 진지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제안을 고려해보기로 했다.

(리뷰자 주 : 이영도의 <나를 보는 눈> 속의 소리꾼들이 생각난다.)

- "당신 무리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노인이 간곡히 말했다.

"당신은 해의 땅을 찾아냈고 행복을 경험했지만 이제 빈손이오. 이제 다시 돌아가 다시 자신을 채워야 하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시오. 당신 어머니는 틀림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실 거요." 
여전히 다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 이상으로 그를 몰아붙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만약 사람을 잡아먹는 회색곰이 네 앞에 서서 금방이라도 너를 죽이려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에게 묻겠니? 아니, 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넌 곰과 싸워 살아남는 것을 선택할 거야. 너는 이런 식으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른 누가 하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네 마음을 들여다보고, 네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이건 네 인생이다. 네가 어떤 무리를 선택하든 나는 너를 따를 것이다." 
다구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아버지처럼 어머니도 언제나 그에게 자유를 주었고 지혜로 가득 찬 말을 들려주었다. 

 

 


 

- 당신이 지금 막 읽은 이 이야기는 오래전 우리 어머니가 내게 들려준 두 개의 전설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나는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주툰바와 그녀의 시련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잊지 않은 것을 보면 내 성격에도 그런 면이 있는 듯하다. 

 

- 한 가지 중요하게 덧붙인 것은 다구의 아내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다구의 아내를, 후에 멕시코와 캘리포니아가 된 지역에서 살던 야키족 여인으로 설정하고 싶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야키족은 나에게 알래스카 해안을 따라 살던 부족을 연상시켰다. 나는 그들의 끈기에 탄복했다. 하지만 다른 부족의 문화를 자세히 묘사해 이 소설을 두꺼운 책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부족의 문화유산에 관해서는 암시하는 정도로 그쳤다. 

 

- 노래와 물자를 교환한다는 아이디어는, 내가 1982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스미스소니언 미술 축제에 참가한 원주민 공예인 팀의 인솔자로서 그곳에 갔을 때 만난 사람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 틀링기트 족 남자는 그위친족과 맞바꾼 노래가 그의 부족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 노래가 어떻게, 왜, 물자와 교환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 부족들은 그 노래를 다시는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노래나 춤이 일단 물자와 교환되고 나면 그것을 취득한 무리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 이렇게 말하면 당시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끊임없이 서로 싸운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이누피아크 족과 아타바스카족은, 알래스카 전역의 부족들을 포함하는 물물교환 제도를 통해 서로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누피아크 족과 아타바스카족이 서로에게 해온 행위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적대시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어린 우리가 에스키모인들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어른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 이 책이 그런 기억을 자극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쓴 것은 오랫동안 덮어둔 상처를 다시 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깊이 뿌리내린 관습에서 벗어난 자신들의 때를 누리기엔 너무 일찍 태어난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이유로 고향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것은 진실이다.  

 


 

 

- 이누피아크 족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새소녀>에서 재조명된 아타바스카 원주민의 전설에서 우리 부족이 악인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불편하고 난처했다. 북극권인 알래스카 해안지대에서 성장한 내가 유년기에 들은 이야기 중에는 내륙지방의 아타바스카족과 이누피아크 족 간의 분쟁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이 두 부족은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고 살아왔고, 그러므로 사냥 지역을 둘러싸고 서로 충돌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가 들은 이야기에서 아타바스카족은 의뭉스럽고 믿을 수 없는 부족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들을 상대할 때는 무척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이 작품에서 벨마 월리스는, 아타바스카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그 문화의 관점에서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알래스카에서 살던 이들의 삶에 대한 하나의 초상을 그려냈다. 

- 오랜 옛날 이누피아크족과 아타바스카족이 서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두 부족의 관계에는 몇몇 긍정적인 면이 있다. 교역의 확장, 동맹, 부족 간의 혼인 기술의 공유가 그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누피아크 족과 아타바스카족이 외부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조상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연대해서 싸워오면서 보여준 협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두 부족은 언어와 전통 방식을 되살리기 위해 일한다는 공동의 목표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두 문화 모두를 위협하는 공통의 적은, 쇠락해가는 알래스카 원주민 정신, 현대적 생활로 인한 해이, 정체성의 혼돈 그리고 고유 언어의 상실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부족의 전설은 이런 문제에 희망의 전갈을 건네준다. 온갖 시련과 슬픔 속에서도 다구와 새소녀는 각자 품고 있는 희망과 꿈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마음과 의지를 따르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미래를 믿는 능력을 결코 잃지 않았다. 


- 이레이그루크(윌리엄 헨슬리)

 

 


 

- 식량을 확보해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꿈은 무리의 역할 질서를 흩뜨리고 생존을 위협한다. 노래와 먹을 것을 서로 교환하고 불가침 규칙을 세우기도 하지만, 다른 무리, 다른 생각, 다른 삶의 방식은 늘 위협이 되어왔다. 개인의 꿈이 생존을 위협할 때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같은 무리들이다. 누군가 대열에서 이탈하면 그렇잖아도 무거운 내 어깨에 그 사람의 짐을 나눠 얹어야 하는 공동체가 가진 당연한 자기 방어다. 

 

- <두 늙은 여자>로 1993년 몇 개의 상을 휩쓸며, 어슐러 르권으로부터 "읽은 후에는 읽기 전보다 조금 나아진 인간이 된다"는 찬사를 받은 벨마 월리스는, 알래스카 원주민 중 하나인 그위친족으로 포큐파인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나뭇가지와 가죽으로 눈신발을 만들고 호저 가시로 만든 바늘로 옷을 짓고 자작나무로 카누를 만들며 성장해 부족의 정체성과 전설을 토대로 글을 쓴다. 그녀의 두 번째 책인 이 소설은, 전설과 설화에 대해 독자가 예상하는 일반적인 궤적을 벗어난다. 다루는 소재는 '옛날 옛적에 일어난 일'인데, 줄거리가 아니라 소설의 흐름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투박한 표현과 거친 전개 이면에 자리 잡은 단단한 사실적 핍진성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늘 우리의 정신을 긴장시킨다. 

 

- 꿈의 추구가 늘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아니, 꿈을 추구한다는 것은 거의 언제나 일상의 안전망 밖으로 나서는 모험을 담보한다. 그리고 문학은 그 실패의 도정에 더 비중을 둔다. 같지만 다른 두 아웃사이더의 삶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편안하지 않다. 맑고 착하고 무구하게 출발했다가 어둡고 격렬하며 신랄하게 전개되면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삶의 명암을 환기한다. 그러나 바다코끼리 가죽을 정교하게 이어 만든 커다란 담요 한가운데에서 도움닫기를 하며 더 높이 뛰어올라 아득한 저 너머를 일별한 사람이라면 그 그리움을 어찌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작은 소설 속에 도도하게 흘러내려오는 어떤 흐름이, 역사의 줄기에 틈을 낸 어떤 힘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당신의 꿈에 접속되기를! 

 

- 김남주



 

 
 

 

     

 
새소녀
1993년 「두 늙은 여자」로 여러 상을 휩쓸며 어슐라 르 귄으로부터 “읽은 후에는 읽기 전보다 조금 나아진 인간이 된다”는 찬사를 받은 벨마 월리스의 두 번째 소설 「새소녀」가 출간되었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전설을 바탕으로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한 작품을 완성한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온갖 시련과 슬픔 속에서도 각자가 품고 있는 희망과 꿈을 따라가는 두 젊은이의 모습을 그린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때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의 선택이 무리의 생존과 연결된다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곧 무리에서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이기도 하니까. 벨마 월리스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던 두 젊은이의 삶을 혹독한 추위가 지배하는 땅을 배경으로 밀도 높게 구성해낸다. 그녀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소설 속 인물들과 우리 사이에 하나의 선을 만들어 읽는 이들을 순식간에 알래스카의 겨울로 이끌며, 꿈과 생존이라는 그 치열한 순간으로 우리를 옮겨놓는다.
저자
벨마 월리스
출판
이봄
출판일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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