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다이애나 애실] 어떻게 늙을까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

일루젼 2022. 10. 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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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다이애나 애실 / 노상미

출판 : 뮤진트리
출간 : 2016.01.27 


       

누군가가 내게 책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망설임 없이 좋아하는 편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독서가 나의 최우선 활동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독서는 내게 정신적인 만족감을 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드물지 않게 '책태기'를 겪곤 한다. 아무것도 읽고 싶지 않으면서도 뭔가 아주 재미있는 걸 읽고 싶어지는 증상인데, 보통은 이럴 때 가벼운 소설이나 만화를 읽다 보면 다시 조금 더 무거운 책들로 관심이 옮겨가곤 한다. 이럴 때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면 갑자기 그쪽으로 훅 빠져드는 -그리고 다시 질리는- 패턴이다.

 

이 책은 슬금슬금 책태기가 오고 있던 차에 직장 동료가 추천해주었다. 이전까지 책을 읽는 줄 몰랐던 동료라 읽어보라며 빌려줄 때는 좀 놀랐지만, 완전히 처음 접하는 저자인데다 무척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다. 전혀 관심이 없던, 혹은 몰랐던 분야에 새로운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저자의 약력을 제대로 살펴보지는 못했기에 그녀가 어째서 '전설적인' 편집자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활자 중독자의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세계를 활자로 바라보는 시선은 한때 내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것이기도 했다. 여전히 글자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코딩이 있다) 그 힘이 나오는 근원은 '글자'로 인식되기 이전의 파형 -글자보다는 그림이나 감각에 가까운- 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이 나와 저자의 생각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노년의 삶과 자신이 겪어온 경험담들은 진솔하고 재치있다.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아 농담을 던지는데, 그것들은 신랄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녀가 정말 자신을 '농담'으로 삼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니라고 위로해 줘'라거나 '그러니까 난 정말 불쌍해' 같은 자조가 없는 건조함이 마음에 든다. 이것은 그녀의 성향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꽤 좋아하는 편이다.

 

신체 노화에 따라 조금씩 겪게 되는 불편함, 이전과는 달라진 관심사와 생활상, 때로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과 새롭게 얻는 것들을 자신의 생을 반추하며 이야기해준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교조적인 문체는 전혀 아니고, 감정적인 공감 위주의 글도 아니지만 무척 매력적이다. 누군가는 그녀의 삶과 종교관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저자는 고인이 되었으니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불쾌감을 표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크게 없다고 본다. 지금 이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가는 쪽이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이 아닐까.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있음을 알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들 중에서 보다 '자신과 맞는' 것들을 선택해나가는 과정들은 현재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그 영역'에서는 스스로 정한 한계선이 있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내 생각에는 독자 내면의 결핍된 뭔가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의식적 반응의 기저나 옆에서 텍스트가 제공하는 뭔가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기에 앞서 '나'의 한계선을 감각하고 스스로에게 보다 부합하는 가치관을 선택해나갈 때, 그때의 자아상이야말로 자기 기만이나 환상이 아닌 진정한 '자아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것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그렇게 '찾아내고' '다듬은' 것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자기 초월이 아닐까. 

 

여러 면에서 의미있는 독서였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끝. 

  


   

 

-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카네티, 그리고 최근에 고령의 나이로 사망한 어머니가 그녀의 인생을 소진시켜 이제 빈 껍질만 남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마리루이즈는 전혀 공허해 보이지 않았다. 메리의 말로는 마리루이즈가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고 했는데, 얼마 후 내가 햄프스테드에 있는 그녀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 흥미로운 물건과 그림은 가득했지만 그녀의 작품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 나한테는 그냥 바보 같은 소리였다. 인생이 개체 단위가 아니라 종족 단위로 돌아간다는 건 너무 분명한 사실이다. 개개인은 그저 나고 자라서 아이를 낳고 시들다 후손에게 자리를 내주고 죽는다. 저마다 어찌 생각하든 인간이라면 예외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시들어가는 노년기를 성장기보다 늘이려 애써왔다. 그러니 노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노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청춘에 관한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출산같이 힘들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경험을 다룬 책들도 갈수록 쏟아져 나오는데 저물어가는 노년을 다룬 책은 별로 없다. 노년에 이른 지도 한참 지났고 강아지와 나무고사리 때문에 내가 늙었다는 사실이 자꾸만 떠오르니, ‘그런 책을 내가 한번 써보면 어떨까?' 그래, 한번 해보자.

 

-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코레르 박물관 Museo Correr에서 예기치 않게 디리크 바우츠 Dieric Bouts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발견했을 때 기쁨을 누를 수 없었는데, 피카소나 메리 커샛 Mary Cassatt 이 그린 엄마와 아기를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또 내 기억에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Piero della Francesca. 가 그린 <예수의 탄생>만큼 강렬한 감동을 준 작품도 없었다.

 

- 그런 마법, 바우츠의 경우에는 작품을 관통하는 매력이고 델라 프란체스카의 경우에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인 그런 마법을 부린 건 예술가의 솜씨가 아니다. 우리가 그런 예술 작품에 끌리는 건 거기에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청동 불상이나 중세의 천사 목조각이나 아프리카 가면처럼 그 작품을 만든 이는 그 자신을 표현하거나 대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외부에 있는 뭔가를,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거나 두려워하는 뭔가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그 놀라운 것을 자신처럼 우리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순수한 의도를 어떻게 인공물에서 느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 14세기나 15세기에 만들어진 그런대로 훌륭한 성모자상과 근대에 만들어진 최고의 성모자상을 비교해보면 저절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술가가 자신이 표현하는 것이 진실임을 당연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17세기 이래로 종교 예술은 아무리 화가의 솜씨가 뛰어났어도 늘 감상이나 과잉 반응이 묻어났는데, 20세기에 와서는 그런 성향이 전면화되어 버렸다. 쓸데없이 호화롭고 우쭐대는 '에릭 길 EIC GIII'의 작품을 보라!  

 

- 교회 제단 위의 세 폭짜리 그림을 그린 화가는 교리적인 내용을 그렸겠지만 그의 그림은 가르치는 데는 말보다 적합하진 못했다. 그림이란 교리를 전하기에는 무딘 수단으로 백합, 황금 방울새, 석류나무, 비둘기, 어머니, 아이 등은 모두 그것들이 전하는 메시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당혹스러운 역설이긴 하지만, 그런 대상들을 그린 예술가가 그 메시지의 진실성을 믿기에 그 대상들이 영향력을 갖게 되지만 말이다.

(리뷰자 주 : 무언가를 전달할 때는 감정과 직관을 이용하는 방식과, 논리와 설명을 이용하는 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외에도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이 두 가지다. 저자는 직업적인 면에서도 물론이고 가치관적으로도 후자에 강하게 이끌리는 것 같은데, 나 역시 그러했기에 이 단락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다만, 현재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림은 말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정확하다.) 

 

- 내 생각에는 독자 내면의 결핍된 뭔가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의식적 반응의 기저나 옆에서 텍스트가 제공하는 뭔가를 취하는 것이다

- 일례로 나보다 훨씬 젊은 샐리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자기 아이들이 막 글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아이들이 보는 책 대부분이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짜증스러워했다. 엄마 말을 안 들어 곤란에 처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생쥐이고, 텃밭에 몰래 들어가 망쳐놓는 건 토끼이고, 왕이 되는 건 코끼리라면서. 그녀는 왜 아이들에게 현실적이지 않고 이런 공상 같은 애들 책을 읽어줘야 하느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는 아주 어릴 때는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알아내고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동물 주인공에게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리뷰자 주 : 이 단락은 '그림은 가르치는 데 말보다 적합하진 못했다'와 연결된다. water와 air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 <푸 모퉁이의 집 The House at Pooh Corner>에 나오는 피글렛과 티거를 보면, 피글렛은 걱정도 많고 겁도 많은 소심한 성격이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용기를 발휘하고, 티거는 너무 원기 왕성하고 활기가 넘쳐서 귀찮을 수도 있는 성격이다. 그 둘은 어린아이가 즐겁게 발견하고 깨닫는 것들을 표현하는데, 이는 그런 것들이 어린아이 안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특성들이 한 어린이를 통해 종이 위에 표현된다면, 그 특성들은 그 아이의 것이 되면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 비판 같은 것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공'의 동물들을 통해 표현되면(동물이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는 걸 잘 모를 만큼 둔한 아이는 만나본 적이 없는데), 그런 비판적인 요소가 빠르게 처리되어 이해해야 할 감정들에 슬쩍 묻혀버린다. (아주 어린아이들에게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가 인기 있는 경우-가령 <행복배달부 팻 아저씨 The Postman Pat stories〉처럼-그 이야기 속 사람은 차라리 동물인 게 나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샐리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지각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만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많은 것을 두루두루 접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 눈에 비춰 자신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까 분별 있어 보일까, 바보로 보일까 똑똑해 보일까, 좋은 사람으로 보일까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섹시해 보일까 매력이 없어 보일까... 답은 적극적으로 찾아보지도 않고 늘 사람들 눈을 의식해 자신감을 잃고 움츠러들기도 하고 우쭐해지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 망가지기도 하고 구원받기도 한다. 

 

-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하던 어머니를 봐서인지, 칠십 대 중반에 재봉 강좌가 폐강되자 나도 어머니처럼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학창 시절에 늘 미술 시간이 좋았고 한때는 일요화가 노릇도 잠시 즐기다가 직업상 그럴 여유가 없음을 깨닫고 그만두긴 했지만, 뭔가를 그리고 싶다면 언제든 한번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실제 모델을 그리는 '라이프 클래스 Life Class'를 들은 건 아직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75세가 돼서야 은퇴를 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되었다. 

 

- 돈이 많다면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싶다. 드로잉과 회화 모두 회화도 여러 가지로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늘 인생의 한순간을 포착한 드로잉이다. 드로잉이란 위대하든 아니든 예술가들이 뭔가를 이해하려 하거나 보존하고 싶은 뭔가를 포착하려 할 때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렇게 즉시성과 소통하며 시간을 폐기할 수 있다. 내게는 빅토리아 시대 예술가가 그린 드로잉이 한 점 있는데, 아내가 어린 딸에게 촛불 옆에서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또 15세기에 살았던 피사넬로 pisanello에 관한 어느 책에는 목 매달린 남자들을 재빠르게 스케치한 그림이네 점 있는데, 숨넘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린 것으로, 이 드로잉들을 그린 사람의 눈을 통해 마치 현장에서 그 광경을 생생히 보는 것만 같다. (이상하게도 예술작품으로 내놓은 드로잉들은 사적인 기록이나 연구보다 이런 환각적인 효과가 덜한 것 같다.)

 

- 두 눈과 두 손이 있다고 해서 그걸 제대로 사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처음에는 서투르지만 교육과 연습을 거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라이프 클래스의 목적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보는 법과 눈에 보이는 것을 손으로 재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러다 마침내 손으로 그리는 선들 자체가 무엇을 그린 건지 설명할 뿐만 아니라 만족을(아니, 어쩌면 깊은 행복감이나 두려움, 아니면 뭐든 간에) 줄 만큼 자신 있게 그럴 수 있게 해주는 것 말이다. 일단 그 정도의 솜씨를 갖게 되면 나가서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건 뭐든 그럴 수 있을 테고, 그렇게 그린 작품은 살아 있을 것이다. 
 

- 처음으로 나체를 그리려고 시도해보니, 드로잉의 질을 결정하는 건 독창성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에 바치는 화가의 관심과 경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대상의 참된 본질을 탐색하려면 가능한 한 기술이 숙련되어야 한다. 물론 그런 탐색에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 때로는 대상들 안에 구현된 하나의 주제가 필요하다. 고야의 <전쟁의 참화>나 투우 연작을 생각해보라. 평면을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볼거리로 만들려면, 그러니까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들고 화가 자신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감동이나 즐거움을 주는 예술품으로 만들려면 색채를 이해하고 패턴이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그건 흔한 능력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매우 진지하게 대하는 일인 경우도 꽤 있다. 가령 엄청난 자존심을 가진 사람만이 지루해 죽는 일 없이, 단조롭고 평범한 색 한 가지나 두 가지 아니면 세 가지만으로 많은 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비재현 미술이 그런 경우다. 또 실내장식으로 제격일 듯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은 주제를 탐색하고 찬양하고 공격하는 작품들과 달리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두 번째로 다니던 라이프 클래스가 재밌긴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매일같이 열심히 그려야 그림이 더 나아질 것 같은 데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나란 사람은 이미지보다는 말을 다루는 사람이라 결코 일러스트레이터 이상은 못 될 것 같아서였다. 최선을 다해도 일류는 못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관심을 잃은 거라면 일종의 허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직도 간간이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데, 그럴 힘이 좀 더 자주 있었으면 싶다. 그림에는 아직도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 수업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던 것은, 화가는 못 됐어도 내 빈약한 시도가 남긴 긍정적인 결과가 있어서다. 이젠 예전보다 사물을 훨씬 잘 보게 됐다. 이는 그림을 그려본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는 늙어서도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덕분에 인생이 조금이나마 더 즐거워지니까. 

- 얼마 전부터는 그 정원일 대부분을 남의 손을 빌려야 해서, 이제 잔디를 깎고 울타리를 다듬는 일은 사촌이 고용한 청년이 하고, 나는 그동안 차례로 세 명의 정원사를 고용했다. 셋 모두 여자로, 나보다 아는 게 훨씬 많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훌륭하게 정원을 꾸며주었다. 내 형편상 일주일에 딱 하루만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데, 그들이 해놓은 일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처음의 두 사람은 엄청난 규모의 골조공사를 해치웠고, 지금의 내 소중한 정원사는 세련된 원예가로 어디다 무엇을 심을지 선택하는 즐거운 시간을 나와 함께해주는데 내가 정원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도 그곳에 갈 때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일을 해보려고 한다. 
 

- 편안하게 펴주는 건 정신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일이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되어 자의식으로부터의 놀라운 해방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보자면 그냥 정원에 앉아 바라보기만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 병원 측에서는 현대의 수술이 어떤 건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는지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데, 사실은 백내장만 제거하고 만 게 아니라 백내장이 시작되기 전부터 있었던 내 시야의 결함을 교정하는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렌즈를 삽입해 내게 새로운 눈을 주었던 것이다. 평생 근시로 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매처럼 볼 수 있게 되니 안경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원시'인 노인에게 꼭 필요한 돋보기 말고는, 그 후로 백내장 수술이 잘못된 슬픈 사례를 두세 번 듣긴 했지만, 나 자신의 수술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리뷰자 주 : 백내장 수술은 대체로 혼탁해진 수정체를 인공물로 대체해주는 방식이다. 내 경우에는 근시와 난시가 심해 렌즈삽입 시술을 받은 상태인데 이렇게 관련 내용을 읽기 전에는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 노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좀 더 기분 좋은 측면들, 이를테면 죽음을 받아들인다거나 젊은 사람들과의 끈을 놓지 않는다거나 새로운 일들을 해본다거나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노년의 상당 기간을 나보다 더 나이 들었거나, 혹은 더 나이 든 건 아니지만 늙음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사람들을 돌보거나 (더 나쁘게는)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보냈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속도로 나이가 드는 건 아니라서 결국 대다수는 누굴 돌보거나 누구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전자가 후자보다는 분명 낫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즐거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딱히 나만 몰랐던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만 그런 지도 모르겠다. 남 돌보기를 좋아하는 사심 없는 사람들이 확실히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좀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직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으니, 나 같은 사람들은 그쪽으로는 젬병이다. 

 

- 우리는 다시 슬프고도 지루한 생활로 돌아갔다. 가끔씩 나 자신에게 묻는다. 무엇이 나를 버티게 하는 걸까? 분명 다른 수많은 노부부들이나 부부처럼 사는 커플들도 상황이 비슷할 텐데 매일같이 이렇게 기계적으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까? 한 가지 답변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이렇게 비유해볼 수 있겠다. 식물을 보면 뿌리와 그 뿌리에서 자라난 줄기 끝에 달린 꽃이나 열매는 전혀 비슷한 구석이 없어 보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같은 식물의 부분이다. 그렇듯 사랑과 그 사랑에서 자라난 의무감도 정말이지 비슷한 구석이라곤 없지만 그 역시 같은 것의 부분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두 가지가 그렇게 쉽사리 엮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달갑지 않은데? 이런 경우에는 대안들 중에서 선택하는 게 아니다. 대안이 있는 것 같지 않으니까 매우 헌신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의무를 훌륭히 수행하는 데서 만족을 얻을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의무를 행하면서도 되도록 많은 탈출구와 보상을 마련하면서 버텨나갈 테고, 썩 훌륭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런 것에 기대는 늙은이가 나 하나만은 아닐 것 같다. 

 

- 나의 탈출구는 정원 가꾸기, 그림 그리기, 빈둥거리기, 그리고- 책이었다. 책은 내가 가장 애용하는 탈출구로,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또 책을 썼다(이 특별한 직업의 새로운 용도라고나 할까), '새로운 용도'라고 했지만 내게 새롭다는 의미일 뿐이다. 지금 제니 우글로 Jenny Uglow가 쓴 <개스켈 부인의 생애>를 읽는 중인데, 책 쓰기를 탈출구로 이용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구사한 사람이 있다면 개스켈 부인일 것이다.   

 

-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이가 들면서 나는 소설에 흥미를 잃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다른 노인들도 많이들 그러는 것 같다. 젊었을 적에는 소설 말고는 다른 건 거의 읽지 않았고 출판인으로 일한 오십 년 내내 소설은 나의 최우선 관심사여서 재능 있는 소설가의 첫 작품만큼 설레는 것도 없었다. 물론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되는 소설도 많고 경외감으로 기억되는 소설들도 있다. 그리고 아직도 감탄하면서 읽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잘 썼다거나 재미있다고, 아니면 독창적인 솜씨라고 인정받는 작품일지라도 아주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계속 읽고 싶은가?'를 자문하게 되는데,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 소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독자를 붙든다. 스릴이나 이국적인 것을 제공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해주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를 던지기도 하고, 몽상의 소재들을 제공하고, 인생을 돌아보게도 해주고, 자신과는 다른 삶들을 보여주고, 인생을 판타지로 볼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 소설은 우리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놀라움에 숨 막히게도 한다. 또 최고의 책들은 독자를 완벽히 현실처럼 보이는 세계로 데려가 생생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미들마치 Middlemarch>를 처음 읽었을 때, 끄트머리 몇 장을 남겨두고 내 기분이 어땠는지 생생하다. '아, 안 돼, 곧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니, 정말 싫어!!' 

 

- 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도 두 번이나. 이런 일은 흔치 않은 듯한데, 글을 쓰는 게 자신이 원하는 바임을 작가 대부분이 인생 초반에 깨닫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십 대 초반부터 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친구들 사이에 편지 잘 쓰는 아이로 통했지만,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없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는 '책' 하면 '소설'을 의미했는데 내겐 소설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상상력, 다시 말해 인물과 사건은 물론이고 (천재의 경우)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만들어 내는 그 능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좋아해 편집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은 내가 지난 창조적 에너지가 뭐건 간에 그 에너지의 대부분이 내가 매일같이 하는 일을 통해 분출됐다는 의미였을 테니,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압력이 형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 그러나 압력은 형성됐고, 처음에는 화산 지대 여기저기서 끓어오르는 작은 온천들처럼 조금씩 분출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아홉 편의 단편들, 그중 어떤 것도 계획한 게 아니었다. 뭔가 기분 좋게 근질거리다가 난데없이 첫 문장이 떠오르고 그러다 깜박거리며 이야기 하나가 나오곤 했다. 
 
- <옵서버 onserver>지의 단편소설상을 수상했는데 그 덕분에 내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가슴 설레고 도취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하지만 열 번째 단편이 두 페이지를 채우고 흐지부지 돼버린 이후로는 이야기가 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잠잠하다가 거의 열어보지 않던 서랍에서 뭔가를 찾다 그 두 페이지를 발견해 읽게 되었다. 다음날 이 두 페이지로 어쨌거나 뭘 좀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타자기에 종이를 끼웠는데 이번에는 깜박이며 등장하는 게 아니라 쉭 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나의 첫 책인 <편지를 대신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는 나의 무의식 속에 쌓여 있던 것을 암시하는 힌트에 불과했는데, 그때까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무의식 속에 쌓여 있었던 이유는 치유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 이제 그 책으로 할 수 있는 한 거의 정확하게 그때의 일을 털어놓게 되자 치유가 된 것이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도 놀라웠는데, 처음에는 사무실에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수 있기만을 온종일 갈망했음에도 다음 단락을 어떻게 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건 정말 사실이다). 나는 전날 써둔 두세 페이지를 재빨리 읽고 바로 써나갔다. 이렇게 아무 체계 없이 글을 썼는데도 완성된 책은 신중하게 구성한 작품처럼 보였다. (당시 그런 유의 작업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상당 부분 진행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놀라웠다. 책이 일단 완성되자 실패자라는 느낌이 영원히 사라졌고, 내 평생 어느 때보다 행복했으니까. 또 글쓰기야말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고 더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 그런데 생각보다 운 좋은 이들이 많다. 우리가 누리거나 시달리는 운이 오직 외부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니까. 물론 그중 많은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하거나 줄 수도 있고 또 바이러스나 기후, 전쟁이나 경기 침체 같은 것들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중 많은 것들은 유전적으로 주어지는데, 모든 행운 가운데 최고의 행운은 타고난 회복력이다. 

 

- 이 문제를 생각하려던 차에 우연히 <가디언 Guardian>지에 실린 앨런 러스브리저의 기사를 봤다. 알리스 헤르츠 좀머라는 103세 여성을 인터뷰한 그 기사는 타고난 회복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우 잘 보여준다.

 

- 알리스는 프라하에서 종교적이지 않으며 말러와 카프카를 알았던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커서는 리스트의 제자 밑에서 공부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역시 매우 재능 있는 음악가와 결혼했다. 1939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을 때 그녀는 행복하고 바쁘고 창조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생활은 순식간에 박살나 버렸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전시용' 수용소인 테레지엔슈타트로 보내졌다. 그 수용소는 다른 수용소들보다 생존자들이 더 많았는데, 나치가 그곳을 적십자에서 나온 조사관들에게 자신들의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용도로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알리스의 남편을 포함한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송되어 죽었다. 알리스는 전쟁이 끝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곳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남편의 가족 전부와 그녀 자신의 가족 대다수, 그리고 그녀의 친구 모두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거기서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첼리스트가 되었고, 그녀는 아들이 졸라 이십 년 전 영국으로 이주했다. 2001년 그녀는 예순다섯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아들의 죽음을 견뎌야 했다. 지금 그녀는 런던 북부에 있는 한 원룸에서 홀로 살고 있는데, 아마 침울하고 쓸쓸한 노인네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인터뷰 기사에 알리스의 사진 세 장이 실려 있었다. 1931년 눈부신 신부의 모습, 전쟁 직전 눈부신 젊은 엄마의 모습, 그리고 103세인 현재의 눈부신 늙은 여인. 그 기쁨에 찬 표정이 긴긴 세월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 또 말하는 걸 봐도 그랬다. 그녀는 자기 가족이 수용소로 실려가던 그날 유일하게 친절했던 사람이 나치였던 자신의 이웃이었음을 기억했고, 이스라엘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서 얼마나 좋았는지, 그리고 영국과 영국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더욱 중요한 건 그녀가 아직도 매일 세 시간씩 피아노 치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는 거였다

 

- "일은 최고의 발명이에요. ... 뭔가를 하면 행복해지지요." 그녀는 창의력을 타고난 사람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잘 보여준 마리루이즈 모테시츠키와 놀랄 만큼 닮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영감을 준 건 종교가 아니었다. "시작은 이렇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하지요. 우리 모두가 그래요. 그리고 선함이 나오는 상황이 있고 악이 나오는 상황이 있지요. 그래서 인간이 종교를 만든 거라 믿어요." 그러니까 그녀 자신은 종교를 지지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지만 종교에 투사된 희망은 존중한다는 것이다. 

 

-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을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지극히 아름답지요. 그리고 늙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게 돼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지요. 모든 것에." 또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로지 선한 것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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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그녀 입에서 그녀 자신의 작품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나는 좀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청했다. 부탁하면서도 내심 몹시 불안했다. 보여준 그림들이 끔찍하면 그만큼 난처한 일도 없을 테니까. 그녀는 나를 자기 침실로 데려갔는데 -이건 나쁜 징조였다- 크고 천장이 높은 그 방은 한 벽면 전체가 붙박이장이었다. 그녀가 그 장을 여니 그림들로 꽉 찬 선반들이 보였고, 그녀는 거기서 작품 두 개를 꺼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사랑스럽고 재미있고 연약한 노부인은 정말 화가였다. 막스 베크만 M Max Beckmann과 오스카 코코슈카 Oscar Kokoschka에게 뒤지지 않는 진짜 화가.  

 

- "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고, 또 당신이 죽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냉정하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달리 정말로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었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너무 자주 쓰는 말이라 진부한 상투어가 돼버렸는데, 그건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는 과정이 무섭다'는 말이다. 죽어가는 광경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그 말이 정말 실감 난다. 내 어머니는 죽는 건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협심증이 닥치면 숨을 쉬지 못해 매우 겁을 냈다. 나도 어머니가 죽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건 겁이 났다. 

 

- 나는 그때까지 죽은 사람을 딱 한 번 보았다. 칠십 줄에 들어 선 여자가 시신을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죽음에 관해 현대인이 갖고 있는 금기만큼 말이 안 되는 금기도 없는 게 분명하다. 
 

- 그런 아내를 떠난다면 그는 잔인하고 무책임한 남자일 텐데,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나는 충실함이니 충성이니 신의니 하는 미덕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안드레 도이치가 하도 그 말을 남용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 출판사를 떠나는 작가들을 '신의가 없다'며 비난하곤 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출판해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여기는 회사에 신의를 지켜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다. 회사가 일을 잘해주면 감사와 애착 정도야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충성의 유대가 형성되는 건 아니다. 그런 유대가 존재한다면 -예를 들면 가족이나 정당에 대한 신의가 그렇다- 상대가 배신하는데도 그 유대를 깨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만일 형제가 살인자라는 게 밝혀졌거나 지지하는 정당이 정책을 바꿨을 경우, 그래도 시종일관 그 편을 든다면 내가 볼 때 그건 아무 생각이 없는 짓이다. 공짜로 얻은 충성은 봉건제도 하에서 두목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나 좋으라고 생긴 허세 가득한 개념이다. 배우자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친절과 배려이지 신의나 충실은 아닌 것 같다. 정절을 안 지킨다고 친절과 배려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킨다는 의미의 충실함은 존중하지만, 그것을 섹스에 대한 생각과 단단히 결부하는 건 내가 보기에 짜증 나는 일이다. 아내는 반드시 남편에게 충실할 의무가 있다는 믿음의 기저에는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깊은 뿌리가 있다. 아내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알아야 할 남성의 필요성뿐 아니라 그보다 더 깊고 더 사악한 생각, 즉 여자는 남자의 소유라는, 신은 여자를 남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는 생각이 바로 그 뿌리이다. 이런 생각은 과연 근절될까? 상상하기 힘들다. 

 

- 더 좋은 건 개개인과 그 상황에 맡기는 것이고, 내가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은 이 질문뿐이다. 부정한 아내를 죽이지 않으면 온 가족의 명예가 더러워진다는 극단적인 생각과, 성적 부정이라는 게 아무리 봐도 칭찬할 만한 행동은 아니라도 적절히 처신한다면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프랑스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방식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프랑스 만세다!

 

- 신앙이란 믿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작정하는 것이고, 그런 결정으로 믿음이 생겨나고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건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인간들이 자신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과 관련해 신이니 창조니 영원이니 하는 개념을 들먹이는 게 참새들의 지저귐보다 더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나는 전적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우주는 우리가 뭘 믿건 간에 지금처럼 존속할 것이고 늘 그래 왔듯 앞으로도 계속 우리 존재의 조건일 거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안에 사는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사고하는 일이 왜 지루할까? 지루한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두려운 걸까?

 

- 우리가 달에 관해 아는 것이 많건 적건 간에 달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태양빛을 계속 반사한다. 우리 영역 안의 삶이라는 부분, 인생이라는 그 단순한 실상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신비롭고 흥미롭지 않은가? 또 삶의 잔혹함은 최소화하고 인생의 아름다움은 최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건, 신이 우리에게 부과한 의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긴급하고 필요한 일이 아닐까?

 

-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신을 믿거나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쓸어버리고 싶을 때, 자기들의 삶에 의미를 주는 신이 그 명분에 단골손님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수시로 잊는 것 같다. 나 자신의 믿음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과는 좀 다르고(나는 우리가 이 우주의 일부, 그러니까 이 덧없는 행성에 사는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우리 이해력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는 무한히 신비로운 이 우주의 일부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해 누군가를 끌어 모으게 하는 일도 결코 없다. 그것은 흥미롭고 유쾌한,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느낌이다. 딱히 위안은 안 되어도 사실이니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것이랄까. 그리고 이 믿음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의 가장 무서운 측면을 생각해야만 할 때도 변함이 없다. 결국 우리 인간도 공룡처럼 멸종하게 될 거라는 사실 말이다. 

 

- 내가 이웃에게 기대하는 일을 이웃에게 베풀고, 화가 나도 눌러 참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고, 아이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물질적인 소유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상당 부분 수용했는데, 어린 시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가르침이 늘 이치에 닿았고 그런 걸 잘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더 좋았기 때문이다(그 사람들이 그런 가르침을 칼같이 지켰다거나 계속 잘 지켰다는 얘기도 아니고 내가 그랬다는 얘기도 아니다). 

 

- 폴과 유부남 다음으로 만난 사랑은 싱글인데다 신랑감으로도 나무랄 데 없었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남자였다. 그는 나를 많이 좋아했다. 한동안 그는 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할 뻔하기도 했지만 그런 적은 없었고, 나는 거의 처음부터 우리 사이가 눈물로 끝나리란 걸 예감했고 그래서 더욱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진짜로 우리 사이는 눈물로 끝났다. 함께 했던 마지막 날 저녁에 우리는 둘 다 울면서 위그모어 거리를 오르내렸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가 헛된 희망을 품지 않게 해 준 그의 용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하자면 큰 용기가 필요하니 고마워할 일이다. 실연의 아픔은 서서히 목이 졸리기보다는 결정적인 한 방을 맞을 때 훨씬 치유가 빠르니까. 내 말을 믿기를. 두 경우를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나는 그를 더욱더 사랑했고, 자학에 가까운 포기를 했다.

 

- 그것으로 낭만적인 사랑은 끝이었다. 마흔넷에 배리 레코드를 만날 때까지 때로는 매우 짧고 때로는 긴 연애가 이어졌다. 그 관계들은 늘 우호적이었고(두 번은 정말 그랬다) 삶의 활력소가 되었지만 (소소한 관계 중 두 경우에는 그런 기분을 못 느꼈지만) 어떤 연애도 상처를 입을 만큼 진지하진 않았다. 그런 연애를 하다가 상대가 결혼을 원한 건 세 번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루초 막스 Groucho Marx가 흔쾌히 자신을 받아들이겠다는 클럽에 대해 느꼈을 법한 그런 감정을 느꼈다. 모멸감 말이다. 나는 그 감정이 좀 더 이성적인 거라고 믿으려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몇 건의 고통 없는 연애 사건은 다른 여자들의 남편들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누군가의 결혼 생활을 망치려는 의도나 희망 같은 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즐겁게 간단한 저녁을 만들어 먹은 다음 침대로 가는 것 말고는 둘이서 한 일이 거의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섹스를 좋아하는 것 빼고 공통점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샘은 더 적절한 예의를 따지는 감각은 구식이었지만 머릿속에서 섹스를 죄책감과 연결 짓는 일은 없었다. 그의 침대에는 늘 장미 십자회와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관련된 소책자들과 찰스 디킨스의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 The Pickwick Papers>과 W. S. 길버트의 <밥 발라드 The Bab Ballads> 같은 책들이 나뒹굴었는데, <카마수트라> 역시 그것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또 우리는 둘 다 발이 아팠는데 그건 우리 둘 다 섹스를 좋아한다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했다. 나이를 실감하기 시작할 때 몸 상태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위로가 되니까. 서로가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걸 굳이 계속 얘기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아픈 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 그저 기회만 되면 얼른 신발을 벗어던져버렸을 뿐이다.

 

- 좀 더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우리의 진짜 중요한 공통점은 우리 둘 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거나 누군가의 마음의 평화를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자주 만날 필요도 없었다. 그게 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 배리와 나는 1960년에 만났다. 당시 그는 아직 결혼한 상태였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늘 의심했으면서도 어리석게도 무시하려 했던 사실을 확신하게 되어서였다. 자신은 기질적으로 결혼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리는 소유하고 소유당하는 걸 몹시 싫어했다. 그냥 머리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가 그랬다. 다른 여자들을 좋아하거나 사랑한다고 아내를 덜 사랑하는 건 아님을 확신했기에, 자신과 뜻이 다른 아내의 생각을 타당하다고 여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내를 속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그로서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남들보다 강하긴 했어도 사실상 불성실한 남편의 전형이었던 배리는 누군가의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최우선시되는 욕구를 강박적이고 건강하지 못하며 수많은 질병을 낳는 원인이라 굳게 믿었다.

 

- 그리고 당시 마흔셋(내가 배리보다 여덟 살 연상이다)이었던 나도 그와 생각이 비슷했다. 나는 크게 안도하며 낭만적인 사랑에 등을 돌렸고, 결혼하지 않은 것에 너무 익숙해져 대안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상상할 수 있다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우리는 결혼 생각 따윈 전혀 없이 만났다. 그저 서로를 좋아하고 육체적으로 끌렸고, 무엇이 좋은 글이고 좋은 연기인지(배리는 희곡을 썼다)에 대한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둘 다 명료함과 자연스러움을 가장 중시했다. 그 시절 우리는 많은 것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눴다. 배리가 말하기를 아내와 헤어지면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했는데, 그걸 듣고 내가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서였다. 어쨌거나 당분간 그의 빨래를 해주고 밥을 차려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놓이기까지 했다. 푸딩을 처리할 필요 없이 사랑이라는 건포도만 쏙 빼먹을 수 있었으니까. 

 

- 내가 느끼기에 병원의 진짜 문제점 하나는, 그곳이 간호를 더 잘하기 때문에 죽으려는 순간 다시 삶 쪽으로 끌려올 가능성이 많아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비참함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그렇게 가까스로 회생하면 매번 기뻐했다. 그때가 되면 다 그럴까? 나도 그럴지 어떨지 알 때가 되면 알려주고 가겠다. 죽음이라는 사건과 죽음을 앞둔 내 심정에 대해 할 말은 이게 전부이니, 이제 다른 문제로 넘어가야겠다. 주제를 '바꾼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인데, 그렇다면 말년의 삶은 어떤 것일까?

 

- 그녀가 우리와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았고, 그건 실제로도 좋았다. 사람들 눈에 우리의 '삼자 동거 ménage a trois'가 이상하게 비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낼만큼 무례한 사람이 주위에 없었기에 내가 관대하다는 과분한 칭찬을 받았는지 문란하다는 욕을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기 입으로 대놓고 소유욕을 비난하진 않았더라도 적어도 그런 비난을 듣지 않고 1960년대를 살았던 사람은 없었을 거란 점을 감안하면 욕보다는 칭찬 쪽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소유욕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도 누가 뭘 즐기는 꼴을 못 본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소유욕이 강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는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도를 닦아서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건 운이지 미덕이 아닌데, 질투로 인해 비참한 일들이 벌어지는 꼴을 자주 봐서 그런 운을 타고난 게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샐리가 들어와 함께 살게 되자 소중한 옛 친구하고 사랑스러운 새 친구하고 함께 사는 기분이었고, ... 

 

- 젊은이들이 곁에 있어 정말 좋은 점은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냥 곁에 있기만 해도 노년의 유쾌하지 못한 면들이 중화된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경계 안의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기 때문에 모든 게 나빠질 거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귀는 더 안 들리고, 눈은 더 침침해지고, 식욕도 갈수록 줄어드는데, 아프기는 더 많이 아프고, 친구들은 떠나고, 나도 곧 죽게 될 것이고... 그러니 당연히 남은 인생 전반을 비관하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사는 게 매우 지루해지고 그렇잖아도 쓸쓸한 말년이 더욱 쓸쓸해진다. 그런데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해 모든 가능성이 열린, 앞날이 창창한 이들을 간간이 보게 되면 우리는 그저 가느다란 검은 선 끄트머리에 있는 점이 아니라 시작과 성숙과 쇠락, 그리고 새로운 시작으로 가득한 광대하고 다채로운 강의 일부라는 사실, 아직도 그 일부이며 우리의 죽음 역시 아이들의 젊음과 마찬가지로 그 일부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아니, 실제로 그걸 다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아직 이것을 볼 수 있는 정신이 남아 있는 동안은 징징대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그리고 나처럼 운이 좋아서 이따금 젊은이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때로 이런 생각을 젊은이들에게 쉽게 전해줄 수 있다. 

 

- 그를 씻기고 변기와 바닥을 청소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깜짝 놀란 건 그 일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는 거였다. 움찔거리지도 않았고 역겹다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그런 일을 애쓰지도 않고 직업 간호사처럼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나 자신을 지켜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이 놀라웠고, 사실 아직도 그런 기분이다. 그런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을 수고스럽지 않게 했다는 것이. (배리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서는 내가 거기 있었던 게 참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좀 신랄하게, 간호사 하고도 화장실에 아주 잘 갔을 거라고 대꾸해줬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덜 좋았겠지!!!") 그 일을 겪고 나자,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내가 아내의 역할로 옮겨갔음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다행스럽게도 오랫동안 그런 일을 면제받았으니 이제 푸딩의 맛을 보는 게 공평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더 이상 '내 멋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든 그런 의무감에서 벗어나 내 멋대로 사는 건 얼마나 좋은지!

 

- 하지만 지방을 끊으라고 커피에 엄청난 양의 더블크림을 못 넣게 하는 일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만큼이나 배리를 잘 알았던 샐리와 그녀의 딸 제서미도 배리를 통제할 수 없었고,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줘 다소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결국 떠맡게 된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히 지울 수가 없다.

 

- 배리의 주된 문제는 그가 기운이 없다는 것이다. 배리 자신이 그렇게 말했는데, 어찌나 기력이 쇠했는지 거의 만사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 지적인 남자가 범죄소설 말고는 아무것도 읽지 않았고 그마저도 끝까지 읽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면 서가에서 그런 책들만 대충 골라 와서는 다음 날이면 반납하고 싶어 한다.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며"(세상에나!) 다른 책을 갖다 줘도 "굳이 읽고 싶지 않다"고 한다. 텔레비전도 스포츠 말고는 '굳이'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점점 덜 보게 되었다. 그의 방에 들어가면 텔레비전은 켜져 있는데 그는 누워서 딴 데를 보고 있는 경우가 요즘 들어 부쩍 잦다.

 

- 다행히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데려가 주는 소설들은 얘기가 다르다. 나이폴 V. S. Naipaul이나 필립 로스 Philip Roth의 책이 그렇다. 그리고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 역시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 엘리엇, 디킨슨, 프루스트, 플로베르, 트롤럽 Anthony Trollope(그렇다, 나는 트롤럽도 그 반열에 올린다. 내 생각에 지금까지 그는 심하게 저평가되어왔다)과 같은 문학의 거인들 말이다. 그런 작가들은 매우 보기 드문데, 그건 그들이 천재적인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가사의하다고 표현해도 그리 과하지 않을 탁월한 상상력을 가졌다. 현대 소설가들은 정말 어쩌다 한 번 그런 작가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비록 읽다가 기진맥진하긴 해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David Foster Wallace가 <인피니트 제스트 Infinite Jest>에서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싶다.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도 종종 그 경지에 들어서고 팻 바커 Pat Barker도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연작 소설들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또 힐러리 맨틀 Hilary Mantel도 <혁명 극장 A Place of Greater Safety>에서 확실히 그런 능력을 보여주었다(프랑스혁명을 로베스피에르, 카미유 데물랭, 그리고 당통의 입장에서 보는 그 배짱이라니!).  
 

- 또 물론 그들이 쓰는 작품과 무관하게 그 정신에 반하게 되는 소설가들도 있다. 나한테는 체호프 Chekhov, 제발트 W. G. Setaid 그리고 앨리스 먼로 Alice Munro가 그런 작가들인데, 매우 다른 이 세 작가의 매력을 분석하지는 않겠다. 그러려면 또 다른 책의 세 개의 장이 필요할 테고, 게다가 나는 어쨌거나 한 사람의 독자이지 비평가가 아니니까 설령 하고 싶대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소설이 '시들해졌다'는 내 말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놀랍고도 부러운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드니까 내가 까다로워졌다는 얘기다. 식욕이 줄어서 보기 드문 진미가 아니고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 까다로움은 논픽션에까지 미치진 않는다. 논픽션의 매력은 저자의 상상력보다는 주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 내 정신이 돌아다닐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해주는 책들은 여전히 보고 싶다. 가장 좋은 예로 내가 산업혁명 초기에 대해 잘 알게 된 건 다음의 세 권, 아니 네 권의 책 덕분이다. 

- 첫 번째 책은 험프리 제닝스 Humphrey Jennings가 여러 해에 걸쳐 자료를 수집해 엮은 훌륭한 기록물인 <대혼란 Pandaemium>인데, 제닝스 사후에 그의 딸 메리루 Mary-Lou가 찰스 매지(Chartes)의 도움을 받아 오랜 시간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출판되었다. <동시대 관찰자들이 본 기계의 도래, 1660-1886, The Coming of the Machine as Seen by Contemporary Observers. 1660-1886>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놀랍도록 다양한 고급 정보들을 탁월하게 엮어놓아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고, 발견과 성취의 기쁨이 점차 이익을 지향하게 되면서 어떻게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지, 이상주의가 어떻게 탐욕과 비열함으로 전락하는지 그 책을 통해 날카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 책을 1985년에 출판했지만 많이 팔지는 못했으니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만일 구할 수 있다면 꼭 손에 넣기 바란다.)

 

-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전기로, 브라이언 돌런 Brian Dolan이 쓴 조사이어 웨지우드 Josiah Wedgwood의 생애와 서신들, 찰스 다윈의 서신들이다. 웨지우드의 삶은 인간이 과학기술적으로 위대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열려라 참깨'와도 같은 열쇠를 발견했음을 갑작스레 알아차렸던 그 역사적 순간을 아주 생생하게 보여준다. 웨지우드와 그의 친구들인 사업가 토머스 벤틀리 Thomas Bentley, 과학자 조지프 프리슬리 Joseph Priestley, 그리고 이래즈머스 다윈 Erasmus Darwin은 그런 위대한 것들이 좋은 것임을 확신했다. 계몽이란 지적일 뿐 아니라 도덕적일 게 분명하기 때문에 웨지우드는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단순한 도자기업을 눈부신 산업으로 변모시켰다. 우선 자기 자신 안에서 과학자의 모습을 찾아냈고, 그다음으로는 (이 점이 더 감동적인데)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뿐 아니라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고 반드시 성공하리라 확신했으며, 마지막으로 기술적 진보란 결국 노동자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런 순진한 비전을 흐리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숨 쉬었던 희망의 대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찰스 다윈의 서신들, 특히 젊은 시절의 서신들을 보면 그의 천재성이 전개되는 과정뿐 아니라 과학이 어떤 식으로 그 시대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시골 의사나 성직자, 대지주나 소매상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 수 있다. 도처에서 사람들이 바위를 두드리고 조개껍질을 수집하고 식물들을 절개하고 새들을 관찰했다.

 

- 과학적 관찰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이런 열의가 토머스 뷰익 Thomas Bevick이 성장한 분위기였는데, 내게 초기 산업혁명에 대해 알려준 네 번째 책은 바로 제니 우글로가 뷰익의 전기로, 완벽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작품이다. 뷰익 자신은 당대의 '모던'한 것을 그다지 열정적으로 끌어안지는 않았다. 그는 전통적인 목판화 기술에 집착했고 실내에 갇히는 걸 질색했으며, 늙었을 때 가능해진 기차 여행보다 청년기나 중년기에 했던 엄청난 원거리의 도보 여행을 훨씬 좋아했다. 하지만 타고난 자연주의자로서의 재능과 예술가로서의 탁월함이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후회하지 않는 일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잠깐이나마 열렬히 아이를 원했고 그러다 아이 하나를 잃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상실감은 여자에게 큰 짐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는 아니었다. 단 한 번이긴 해도 그 사건만 놓고 봐도 나는 보기 드물게 모성이 별로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건 타고난 결함인 듯 싶다. 어릴 적에도 나는 인형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인형이라면 질색했다. 나의 첫 장난감은 하얀 토끼였는데 손때가 탈 대로 타자 내 유아용 침대에서 밀반출되는 운명으로 끝났다. 그다음으로는 장난감 코끼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어린애 모습의 장난감은 좋아한 적이 없다. 열아홉 살 때 한 달 된 갓난아이와 단둘이 있었던 적이 있다. 아이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지 어떤지 보려고 몸을 숙이고 진지하게 아이를 내려다봤지만 그 매력 없는 작은 생명체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든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게 되는 편이 낫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내 반응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내 자식이 생기면 사랑하게 될 거라고 이내 나 자신에게 말했으니까. '원래 다 그렇잖아. 다들 자기 자식은 너무나 사랑하잖아. 그런 건 틀림없이 타고난 본능일 거야.' 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계속 안심시켰다. 폴이 앞으로 우리가 낳게 될 아이들에 대해 행복해하며 이야기할 때면 특히, 폴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고 재미 삼아 아이들 이름을 지어보기도 했다. 나라면 그런 놀이는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티는 전혀 내지 않았다. 이십 대와 삼십 대에는 한 번도 아이를 바란 적이 없고 누군가의 아이에게 막연한 호의 이상을 느낀 적도 없었다. 다른 여자들이 아이를 열렬히 원하면 나는 입을 다물고 내 감정을 감췄다. 또 유아들은 아주 잠깐이라면 모를까 데리고 있으면 따분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이 그런 존재인 것에 대해 비난하거나 한 건 또 아니었다.  

   

    

      

 

 

 

 

 
어떻게 늙을까
『어떻게 늙을까』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75세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필립 로스, 잭 캐루악, 존 업다이크 등 세계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다듬었던 영국의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90세에 쓴 회고록이다. 노년계발이나 죽음에 대한 심오한 철학을 들려주는 대신 90대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기백이 넘치고 열렬하게 의욕적인 한 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50년 가까이 편집자로 일하며 만났던 인생의 책과 남자들, 노년에 느끼는 기쁨과 고통, 생의 마지막까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숙명에 대해 위축되지 않는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특히 70세 이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얘기하며 성과 연애와 결혼, 무신론과 후회와 죽음, 독서와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때로는 예리하고 때로는 위트 있게 풀어 놓는다.
저자
다이애나 애실
출판
뮤진트리
출판일
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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