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오노레 드 발자크] 골짜기의 백합

일루젼 2022. 10. 2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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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노레 드 발자크 / 진형준

원제 : Le Lys dans la vallée
출판 : 살림 
출간 : 2018.02.01


 

10월 들어서는 리뷰를 미뤄놓고 쓰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래서인지 이미 썼다고 생각했는데 누락된 책들이 생겼다. 

 

<골짜기의 백합>은 <미지의 걸작>과 연이어 같은 날 읽었던 책으로 '걸작'에 비해 발자크다운 만연체가 돋보인 글이었다. 그럼에도 주제나 인물의 경우는 다소 상궤를 벗어난 행보를 보이는데, 발자크가 다른 작품들에서 주로 다루던 '욕망'으로 움직이는 인물들과는 조금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가 <인간 희곡>에 등장시킨 2천 명에 달하는 인물들 중 가장 이질적이며 이상적이라고 평가받는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 바로 그 인물이다.

 

이 책의 시작은 펠릭스 드 방드네스 백작이 연인 나탈리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그녀가 자주 캐묻곤 했던 그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고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녀가 궁금해해서 말해주는 것이므로 이 내용으로 그를 탓하지는 말라고 부탁한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 모정에 굶주린 이야기부터 20세 초반 만나게 된 모르소프 백작 부인과의 교감, 그리고 이어지는 더들리 후작 부인과의 관계까지 이어진다. 당 시대의 프랑스 분위기를 고려하더라도 그가 맺은 관계가 모두 누군가의 부인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가 그와 어머니와의 냉정했던 어린 시절이 아닌가 한다. 

 

참고로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에 따르면, 해당 시기에는 오히려 유부녀들이 애인을 두는 것에 더 관대했으며 진지한 사랑보다는 유혹 그 자체가 하나의 유흥이었다고 한다. 서서히 그런 궁정 연애가 사그라들며 가정과 아이라는 가치가 강조되던 시기였으므로 '결혼'이라는 계약 관계를 맺기 전까지 엄격하게 순수함을 지켜야했던 영애들과의 스캔들이 없었다는 것은 펠릭스의 출세의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펠릭스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한 젊은이의 순결함 가득한 정신적 첫사랑과 굴복할 수밖에 없는 육체적 정열에 휩싸인다. 이는 질책할 사항도 비난할 사항도 아니다. 펠릭스라는 인물은 이전까지 발자크의 작품들에 등장했던 인물 군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한 가지 가장 강렬한 특질이 있다면 모성애적인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그의 앙리에트와 레이디 더들리 사이에서 이중적인 관계를 맺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그런 사랑과 육체적 갈망을 동시에 채워주는 경우는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남성의 본능적인 갈망이며 동시에 기멜과 달레트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다음 차원으로의 이동은 기멜을 통해서만이 가능함을 암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한창 그에게 몰입해있던 독자들은 현재의 펠릭스인 방드네스 백작에게 쓰여진 나탈리에 편지에서 깊은 배신감이나 허탈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편지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이다. 그가 겪은 일들과 사랑이야말로 일생에 다시 없을, 마치 '세기의 사랑' 같은 '흔한 사랑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때때로 타인의 것이 심금을 울리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쉽게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 한 둘쯤은 품고 살아간다. 그것을 드러내어 지금의 사람마저 떠나가게 하느냐 아니냐는, 그 이야기가 자신 안에서 각색되고 채색되며 실상과 얼마나 동떨어지게 되었는가 와는 또 다른 문제다. 나탈리가 전해주는 애정 어린 충고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그 또는 그녀의 현재 연애력과 깊게 상관이 있을 것이다. 

 

발자크가 창조한 여성상들 역시 남성 작가가 묘사한 여성 특유의 색채를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다양한 인간성들을 표현했던 그에게도 이성의 존재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상을 고려할 때 놀라울 정도로 깊은 이해와 관찰을 통한 구현이라는 점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내가 체감하지 못할 뿐 여성 작가들이 창조하는 남성상들도 그런 부분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드라마나 연애 소설 등에 등장하는 이상향적인 남성상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발자크라는 '생생한 인물 창조의 마법사'조차 여성 인물을 창조하는 데에는 일말의 미진함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는 맥락이다.)

 

흥미롭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지의 걸작>이 더 인상깊게 남았다.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면 나는 당연히 펠릭스를 선택하겠다. 여기에는 여성적인 사랑이나 남성적인 사랑으로 구분되지 않는 시혜와 수혜의 관계만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을까? 남들에게 주는 것을 받는 것보다 기뻐하는 자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성인의 영역에 속한다. 적어도 상호 관계를 기대할 것이다. 시혜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이는 부모-자식의 관계를 자처하게 되는 거라고 보는데, 그런 관계성이 주는 한계를 이해하고 대등한 이성 관계를 선택하는 편이 더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상대도 건강한 편이라면, 아이가 필요했다면 자식을 낳았지 이성을 자식 삼지는 않을 테니까. 

    


 

- 리얼리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발자크의 작품은 에밀 졸라 찰스 디킨스, 귀스타브 플로베르, 잭 캐루악, 헨리 제임스 등 유명 작가뿐 아니라 구로사와 아키라, 에릭 로메르 등 영화감독, 그리고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사상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발자크는 보수 정통주의자로, 민주 공화주의자인 빅토르 위고와는 많은 면에서 관점이 반대였다. 그럼에도 당시 사회 현실과 노동계급에 대한 그의 예리한 통찰은 여러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발자크의 작품을 계속 언급했으며, 엥겔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발자크를 꼽았다.   

 

- 1836년 출간한 소설 <골짜기의 백합>. 한쪽에 발자크가 한가득 교정을 보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발자크는 강박적으로 원고를 수정하는 습관이 있어서, 교정쇄에 고치거나 추가한 내용이 수두룩했다. 때로는 책 출간 중에도 이 과정을 되풀이하여 자신은 물론 출판업자까지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 그 결과 최종 완성된 작품은 흔히 원래 원고와 달랐다. 이런 그의 집착에 가까운 수정 작업 때문에 일부 책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 작업 습관도 독특했는데, 오후 5~6시쯤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자정까지 잠을 잔 다음 일어나 커피를 계속 마시며 다음 날까지 작업했다. 대개 15시간 이상 쉬지 않고 집필했다. 한 번은 도중에 3시간만 쉬고 48시간 내리 작업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글 쓰는 속도도 무척 빨라서 일부 소설은 현대 타자기로 분당 30자를 치는 것과 맞먹는 속도로 집필했다.

 


 

-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이다. 내게 무슨 정신적 육체적 결함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냉정하게 대했던 것일까? 나는 우연히 생긴 아이였던가, 아니면 무슨 죄의 결과였던가? 나는 태어나자마자 시골 보모에게 맡겨졌고 3년 동안 가족들에게 잊혀졌다.

 

- 하지만 나는 약해지지 않았다. 겁을 내고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정신이 타락하고 결국 노예근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대로 나는 끊임없는 불행에 단련되었다. 나의 불행이 나의 정신에 저항력을 키워주었다.

 

- 어린 나이에 나는 내 삶을 저주했다. 내 삶을 저주한 죄를 고백한 날 고해 신부가 하늘을 가리키며 "눈물 흘리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위로해주셨다. 첫 영성체 때 나는 종교적 가르침에 매혹당했다. 고통에 빠진 어린 영혼을 정신적인 낙원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이었다. 그 황홀감 속에서 나는 내 꿈들을 싹 틔웠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내 상상력을 키우고 감수성을 자극하고 사고력을 연마했다. 그 결과 나는 풍부한 표현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게 생기면 머릿속에 그 글이 바로 떠올랐으며 달변의 화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리뷰자 주 :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어떤 상처나 고통을 겪을 때 종교적인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춘기였다. 학업에 몰두하느라 내 또래들처럼 제때 사춘기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내 남성다움은 이제 갓 피어나려 하고 있었다. 어떤 젊은이도 나만큼 이 세상 만물을 느끼고 사랑할 태세가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이야기는 아직 그런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입에 거짓말을 담을 줄 몰라야 한다. 욕망을 억누르는 수줍음의 무게로 눈꺼풀이 내려앉아 눈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눈꺼풀에 덮인 눈빛은 솔직해야 하며, 세상의 위선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가슴속에서는 두려움과 용기가 서로 힘을 겨루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인생의 꽃다운 시절로 돌아가야만 한다.

 

-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해도 정확히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신비스러운 광채를 그려낼 줄 아는 뛰어난 화가만이 그녀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그녀의 모습을 내가 여기서 글로 그려내려 하다가는 오히려 그녀를 왜곡시키게 되리라. 

(리뷰자 주 : 나는 여기서 프렌호퍼를 본다.)

 

- 나탈리, 우리가 전에 함께 꺾은 히드의 순결하고 야생적인 향기를 떠올려보라. 당신은 검정과 분홍빛이 어울린 그 꽃의 색을 극찬했었지. 이 여인을 분홍빛과 검은빛을 동시에 지닌 꽃으로 상상해보라. 사교계와 그토록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얼마나 맵시 있고, 그 표정은 얼마나 자연스러우며 세련된 것인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몸은 갓 펼쳐진 잎사귀들만큼 신선했고, 그녀의 생각에는 야생의 간결함, 깊이를 간직한 그런 간결함이 있었다. 그녀의 감정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을 이해할 줄 아는 진지함이 있었다. 

(리뷰자 주 : 히드는 히스 꽃을 말하는 것 같다.)

 

- 셰셀 씨는 겉보기와 달리 야심 때문에 옹졸해졌다. 능력 있는 자들에게는 야심을 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야심을 겉으로 드러내 놓고 그것을 이루지 못해 남들의 조롱을 받기 마련이다. 셰셀 씨는 능력 있는 자의 직선 코스를 밟지 못했다. 그는 하원의원을 두 번 지냈고 선거에서 두 번 낭패를 보았다. 예전에는 국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공과 패배를 이어서 맛보면서 그의 성격은 망가졌고 좌절된 야심가가 그렇듯이 모질어졌다. 그는 예의 바르고 재치 있으며 큰일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시기심과 질투가 강한 투렌 사람의 특성 때문에 상류층에서 배척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욕심을 덜 냈다면 더 많은 것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는 내게는 흠잡을 데 없이 잘해주었다. 이전까지 내가 집안에서 받았던 대접과 너무 비교되어 나는 그에게 순수하게 감사했다. 셰셀 씨는 부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몇몇 이웃사람들은 이를 아니꼽게 여겼다. 고급 마차도 언제나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고 그의 아내는 항상 세련된 차림을 했다. 그는 성대한 파티를 열었고 그 지역 그 누구보다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거대한 프라펠 영지에서 거의 공작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 이렇게 호사스럽게 살고 있는 이웃에 비하면 모르소프 백작은 그저 시골뜨기 귀족에 불과했다. 그는 역마차 정도 수준의 가족용 이륜마차를 타고 다녔고 재산이 보잘것없어 클로슈구르드에서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그가 나를 후하게 대접한 것은 내가 재산을 잃어버린 귀족 가문의 후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귀족이 아니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웃 사람의 재산과 숲, 밭과 목장을 초라해 보이게 만들고 그에게 굴욕감을 주고 싶었다. 세실 씨는 그것을 곧 알아차렸다. 셰셀 씨는 내게 모르소프 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 모르소프 씨의 고독한 삶은 반드시 질투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교계 예법이나 궁정의 규범을 배우는 것은 학교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왕실에서 직책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것이다. 백작은 두 번째 교육이 시작될 시기에 망명했다. 콩데 공의 군대에서 그는 용맹을 떨치며 가장 충성스런 신하의 하나로 꼽혔었다. 그 군대가 해산되자 그는 망명의 길에 올랐다. 왕정 복구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은 그는 나태한 망명 생활을 했다. 곧 끝나리라고 생각했던 망명은 오래 지속되었다. 궁핍한 생활이 그의 마음을 지치게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이나 불행이 어떤 이에게는 활력소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마음과 몸의 기력을 녹여버리는 용해제가 되기도 한다. 백작은 후자에 속했다.  

 

- 그가 예상외로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유식한 사람들을 두려워해 멀리했고, 뛰어난 재능을 부정했다. 그는 콤플렉스가 많았기에 나는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다. 그와의 긴 대화는 정말로 정신적인 노동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첨했다. 

"플라펠이 크기만 큰 은제품 세트라면 클로슈구르드는 보석함입니다!"

그날 백작은 집에 들어가며 부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펠릭스 군, 정말 괜찮은 친구야." 

 

- 그녀는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해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아픔을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아들들이 죽어버린 가족에서 딸로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큰 죄였는지,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미움을 받으며 자랐는지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에 대해 원한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자신을 나무랄 뿐이었다. 의당 사랑해야 할 어머니를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나무랄 뿐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나를 위해 그렇게 엄격할 수도 있었다고 이 천사 같은 여인은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나기 전에도 이미 같은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다만 서로 여기까지 온 방향이 다를 뿐입니다."
그녀는 절망적으로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어요. 당신 앞에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고 나는 고통 속에서 죽어갈 거예요. 남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지만 내 삶은 이미 결정되어 있어요."

 

- "내가 없으면 백작은 아무것도 못 하고 헤맬 거예요. 여기가 온통 엉망이 될 거예요. 나는 아이들 보호자이면서 가정교사예요. 게다가 이곳 집사이자 관리인인 셈이에요. 농사짓고 수익 관리하는 일, 모두 내가 하고 있어요. 내가 집을 비우면 우리는 파산할 거예요." 
그녀는 체념한 여인의 미소를 띠며 길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신앙심이 깊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수난이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들의 말을 빌려 그녀에게 말했다.
"부인,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같은 별을 따라온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제 성스러운 아이가 태어나게 될 구유 앞에 있는 것 아닐까요? 그 아이는 세상에 기쁨을 주고 삶에 보람을 부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매 이상의 사이가 아닐까요? 하늘이 맺어준 사이가 아닐까요? 부인의 고통은 가장 찬란한 수확물을 얻기 위해 신께서 아름답게 뿌리신 씨앗입니다! 저와 함께 한 잎 한 잎 그것을 따지 않으시렵니까? 아아, 도대체 무슨 힘으로 제가 감히 부인께 이런 말을 드리는 걸까요?" 

- 나는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내게 다시 손을 내밀면서 애원하듯 말했다.
"내가 내 손을 내드릴 때만 잡으세요. 내 자유의지를 존중해주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난 당신의 소유물처럼 되어버릴 것이고 그건 옳지 않아요."

 

-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제 친구이지요. 당신의 얼굴을 보면, 특히 당신의 눈을 보면 언제고 높이 날아오를 사람임을 누구나 알 수 있어요. 도약을 하세요. 그런 후 제 사랑하는 아들을 보호해주세요. 파리로 가세요. 우리 가문 특히 어머니가 당신을 도울 거예요. 우리의 영향력을 이용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어떤 길을 택하든 내가 아낌없이 후원해 드릴게요."

나는 부인의 말을 끊었다.
"부인, 잘 알겠습니다. 야망을 애인으로 삼겠습니다. 하지만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당신의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 덕분에 무슨 특권 같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되기는 싫습니다. 저는 저 혼자 힘으로 서겠습니다." 

 

- "숙모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주세요. 당신은 그분이 내게 사용하시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래요, 저는 하느님을 섬기듯 부인을 사랑하겠습니다. 저는 사제가 되어 자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겠습니다. 제 사랑은 종교처럼 성스러운 것입니다. 저를 사로잡았던 남자로서의 열정은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화된 순결한 사랑을 부인께 바치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펠릭스,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은 당신의 행복에 걸림돌이 될 약속을 하고 있는 거예요. 철없는 사람 같으니... 좌절된 사랑을 사명으로 삼다니... 인생을 결정하기 전에 인생의 시련을 겪어야만 해요. 내가 감히 명령하겠어요. 교회와도, 여자와도, 그 무엇, 그 누구와도 굳게 맺어지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스물한 살입니다. 미래가 이제 겨우 흐릿하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나이일 뿐이에요." 
"그렇다면 저보고 어디에 희망을 걸라는 말씀이신가요?"
"친구여, 내 도움을 받아들여 성공하세요. 높은 곳에 오르고 출세해요.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이 말했다. "마들렌의 손을 놓지 말아요." 

 

- 모르소프 백작이 나를 공작 부인에게 소개해주었다. 부인은 나를 냉정하게 관찰했다. 르농쿠르 부인은 56세였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그녀는 격식을 차리는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즉시 나의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는 나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차가운 피를 가진 족속이었다. 그녀가 나를 관찰하고 있는 사이 백작이 내게 와서 손을 잡더니 말했다. 

 

- 공작 부인이 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저녁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내 가족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녀는 외교관인 방드네스를 혹시 아느냐고, 그가 내 친척은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제 친형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내게 다정해졌으며 나를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 사실 나는 우리 가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공작 부인은 내게 내가 이름도 모르는 내 종조부가 국무회의 일원이라는 것, 내 형이 승진했다는 것, 아버지가 다시 방드네스 후작이 되었다는 사실 등을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국무회의 가지도 몰랐고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도 완전한 무지 그 자체였다. 내게는 앙리에트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 야심도 없었다. 공작 부인은 내가 그런 일에 무관심한 것을 알고 나를 어린아이 취급했다.

 

- 그다음 날 나는 클로슈구르드에 갔다. 백작은 구매 계약서 작성을 위해 새벽에 투르로 갔다. 나는 공작부인과 딸 사이의 갈등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공작 부인은 딸에게 파리에 가서 살자고 했다. 백작 부인은 아이들 건강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맞섰다. 그녀는 모르소프 백작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계산적이고 욕심이 많은 한 여인과 한없이 부드럽고 애정으로 가득 찬 그녀의 딸 사이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실감하려면 강철로 된 기계 톱니바퀴 사이에서 으깨지는 백합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리뷰자 주 : 후술된 부분을 고려한다면 이 표현은 사실적 묘사이지만, 이 지점에서는 의문스러운 표현이기도 하다. 마들렌과 자신을 위해 '날아오르라'고 말하며 젊은이의 미래에 투자하는 여인은 '계산적이고 욕심이 많은' 여인인가 '한없이 부드럽고 애정으로 가득 찬' 여인인가?) 

 

- 그녀는 자신의 손등에 내 입맞춤을 허락했다. 하지만 손바닥은 허락하지 않았다. 두 영혼은 서로를 갈망하며 열정적으로 엉켰지만 육체적 욕망은 철저히 억압했다. 나는 젊었다. 더욱이 그녀가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을 할 때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그녀의 아이들이 곧 내 아이들이었으며, 그녀의 집이 곧 내 집이었다. 그녀의 이해관계가 다 내 이해관계였고 그녀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었다. 나는 곧 그 집안의 식구가 되었고 처음으로 느끼는 그 행복감에 내 영혼은 위안을 받았다. 남의 집에서 은밀히 안주인의 총애를 받으며 그녀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을 때의 행복은 그런 일을 겪어본 남자만이 안다. 

 

- 한편 나는 견디기 힘든 백작의 성격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는 사소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푸념을 일삼았고 언제나 불만족에 가득 차 있었으며 항상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 끝에는 항상 아내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으며 그런 한심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어른이면서도 자크와 마들렌을 질투하고 그들처럼 보살핌을 받기를 원했다. 나는 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행복해했다. 백작의 사악함을 모두 참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곁에 있기 위해 그의 폭력에 자발적으로 몸을 맡겼다. 

 

-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른 시각에 클로슈구르드로 갔다. 거실의 화병에 꽃이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들판으로 나가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꽃을 찾아다녔다. 꽃들을 꺾으며 나는 새삼스레 꽃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색과 잎의 조화가 나를 감동시켰다. 색들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자크와 마들렌과 함께 나는 두 개의 꽃다발을 만들었다. 나는 그 꽃다발 속에 내 감정을 담으려고 애썼다. 흰 장미와 은색 백합을 바탕으로 수레국화, 물망초, 지치과 등이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 그것은 그대로 두 종류의 순수함이었다. 하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순수함이었다. 아이의 순수함과 순교자의 순수함이었다. 백작 부인은 꽃다발을 받고 그 모든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수치심과 기쁨을 동시에 보여주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 눈빛은 내게 큰 보상이었다. 동방에서는 꽃의 색과 향기가 글을 대신한다. 사랑의 빛을 받고 피어난 꽃들, 태양의 딸들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이었다. 나는 곧 들꽃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리뷰자 주 : 보는 순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한때 나는 순진과 순수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정의대로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함'은 "순진", '모든 것을 다 아는 순수함'은 "순수"였다.) 

 

- 그때부터 프라펠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1주일에 두 번씩 그렇게 꽃들로 시를 짓는 일을 계속했다.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라 시인의 자세로 식물들을 깊이 연구했다. 나는 꽃을 찾기 위해 물가, 바위 꼭대기, 작은 계곡, 광야 한복판 등 어디든지 갔다. 나는 몽상가들만 알 수 있는 재미에 몰두했다. 자연의 무한한 의미, 거기 깃든 깊은 사상을 이해했다. 나는 꽃들의 침묵에서 화음을 들었다. 꽃다발 하나를 만드는 데도 최소한 세 시간은 걸렸다. 그 꽃들에는 그 꽃들을 피운 장엄한 자연이 함께 들어 있었다. 어떤 사랑의 고백도, 어떤 열정도, 꽃들의 교향곡만큼 강한 전염성을 지니지는 못할 것이다. 꽃들은 베토벤의 교향곡과 같은 힘을 발휘했다. 그녀는 그 꽃들을 보며 그 꽃들 속에서 내 모든 생각들을 읽었다. 우리는 꽃다발을 통해 화려하게 교감했다. 

 

- 프라펠로 돌아와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서서히 진행되는 살인이었다. 처벌을 받지 않을 뿐 명백한 죄악이었으며 잔인한 고문이었다. 나는 밤을 꼬박 새워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서너 번을 썼지만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를 염려한다고 하면서 내 이야기만 늘어놓은 꼴이 되어서 모두 없애고 서문 하나만 남겨놓았다.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 심정은 잘 보여준다. 

 

- "사랑하는 펠릭스, 당신은 사회에 발을 들여놓게 될 거예요. 나도 당신과 함께할 거예요. 물론 생각 만으로요.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그 자체로 세상 경험을 많이 한 셈이랍니다. 고독한 영혼들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거예요. 당신 가슴속에서, 당신 양심 속에서 거북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에게 어머니가 아들에게 해주는 충고를 해주고 싶어요. 사랑하는 아들, 당신이 떠나는 날, 아주 긴 편지를 주겠어요. 세상에서 만나게 될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들을 적어줄 거예요. 대신 약속해주어야 해요. 파리에 도착한 후에 읽도록 해요."

 

- 그녀의 어깨에 탐욕스럽게 달려들게 만들었던 내 열정은 그녀의 순수함에 비해 너무 얼룩져 있었다. 그녀는 나의 얼룩진 날개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런 그녀를 잡으려면 그런 얼룩진 날개가 아니라 천사의 하얀 날개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그 어떤 일에 있어서건, '나의 앙리에트는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나는 자문하겠습니다."
"좋아요. 나는 당신의 별이자 성소(聖所)가 되겠어요." 
 

- 우선 간결하게 한마디 하겠어요. 당신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이상, 당신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조건들에 불만을 가지면 안 돼요. 앞으로 그 조건들과 당신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맺어질 것이니까요. 오늘날의 사회는 개인에게 이득을 주기보다는 사람들을 이용한다고 말해도 될까요? 사실일 거예요. 하지만 사회가 개인에게 주는 것보다 요구하는 게 더 많다고 해도 당신은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주 단순한 원리이지만 실천은 아주 어려워요. 이런 건 책에 씌어 있지도 않고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요. 이건 숨겨진 사회의 법칙이에요. 그걸 어긴다면 당신은 사회를 지배하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그 밑바닥에 머물게 될 겁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출세와 치부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랍니다. 그건 범죄자가 되는 것과 같아요. 그런 행동에 대해서는 당신이나 나나 혐오감을 느낄 거예요. 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 그래요,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서로에게 의무를 지니고 있어요. 출세를 한다는 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큰 의무를 지니게 되는 걸 뜻해요. 따라서 성공한다는 건 각자 자기 방식으로 빚을 갚는 걸 뜻하기도 해요. 당신에게 당신의 지성과 재능에 걸맞은 위치를 부여한 사회에 대해 당신은 그런 의무를 지닌 채,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우선 사적이건 공적이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해요. 정직, 신의, 의리와 예절이 가장 확실한 출세의 도구입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겁니다. 이 이기적인 세상에서 도덕적인 원칙을 너무 지키다 보면 앞으로 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이에요. 맞는 말일 수도 있어요. 출세가 더뎌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기반은 더욱 단단해질 거예요. 남들이 무너질 때 든든히 버틸 수 있어요. 

 

- 내가 예절을 강조하면 당신은 웃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강조하는 예절은 당신이 기숙학교에서 배운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게 아니에요. 진정으로 세련된 예절과 아름다운 매너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개인의 자존심에서 나오는 것이랍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은 귀족이라도 기품이 없는 건 그 때문이에요. 의젓한 어투와 말속에 시심이 녹아 있다면 얼마나 매력적이겠어요?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겠어요? 진정한 예절에는 그리스도 정신이 녹아 있답니다. 나는 당신이 그러기를 원해요. 진정한 예절이란 자신을 감추는 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며 높은 정신을 보여주는 데 있답니다. 앙리에트를 기억해서라도 당신은 정신과 형식을 동시에 갖춰주세요.

 

- 호감을 사고, 붙임성도 있고 의리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은가요? 그러려면 상대방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요.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어봐요. 그들의 이마는 환해지고 입술에는 미소가 떠오를 거예요. 당신이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그들은 당신을 칭찬할 거예요. 

 

- 벗이여, 당신은 젊어요. 그러니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쉬워요. 하지만 스스로 기특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라도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답니다. 옛날엔 젊은이들에게 침묵을 가르쳤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교육이 사라졌어요. 자기만의 칼날로 남들의 글, 생각, 행동을 날카롭게 재단하는 법만 가르치지요. 그런 나쁜 버릇은 익히지 말아요. 그런 판결은 주위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어요. 젊은이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관용을 베풀 줄 몰라요. 나이가 든 평론가는 자비롭고 온화한 반면 젊은 평론가는 무정하기 마련이지요. 후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자는 모든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모든 복잡한 생각과 행동은 인간이 쉽게 판단할 수 없어요. 하느님만이 최종 심판을 내릴 수 있을 뿐이에요. 당신이 엄격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예요. 

 

- 하지만 나의 어머니에게는 한 치도 양보하지 말아요. 그분은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자는 더 짓밟는 분이고 자기에게 맞서는 자의 자존심에는 감탄하는 분이랍니다. 그분은 강철 같은 분이에요. 자기보다 약한 물질은 모두 부수어 버리지요. 어머니와 잘 사귀어봐요. 어머니가 당신에게 호의를 갖게 되면 여러 살롱으로 안내할 거예요. 거기서 당신은 사교계에 필요한 처세술들을 배우게 될 거예요. 듣고, 말하고, 대답하고, 자기 소개하는 기술과 언변을 배우게 될 거예요. 물론 옷을 잘 입었다고 그 사람이 천재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언변이 그 사람이 뛰어나다는 증거는 될 수 없어요. 하지만 훌륭한 언변이 없다면 아주 탁월한 재능을 지닌 사람도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어요.

 

- 당신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해요. 그건 헛된 환상이 아니에요. 그만큼 나는 당신을 잘 알아요. 당신은 꾸밈이 없고 말투는 온화한 사람, 거만하지 않으면서 자존심이 강한 사람, 노인들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당신은 유치하지 않으면서 친절하고 신중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신중한 건 아주 중요해요. 재치를 발휘해야 하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들 광대 노릇을 하면 안 돼요. 내가 이야기한 모든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덕도 높아야 한다)'라는 옛말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답니다. 

 

- 비열한 사람에게는 정당한 방법으로 맞서야 해요. 적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아가게 될 그 세계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적이 없는 사람이랍니다. 줏대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당신은 최종 결정을 할 때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만 해요. 그래야 존경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어요. '어떤 술책이나 속임수는 결국 탄로가 나서 해를 끼치게 된다.' 정직함을 견지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전하다는 거지요. 다시 한번 강조할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예요!' 그래요. 당신은 선과 덕을 베풀어야 해요. 그러나 고리대금업자가 돈을 빌려주듯이 선을 베풀라는 건 아니에요. 선은 그 자체로 아무 보상 없이 행해져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도저히 갚기 힘든 그런 덕은 베풀지 말아요. 그러면 상대방은 오히려 당신의 적이 될 겁니다. 너무 무거운 은혜도 사람에게 절망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 어쨌든 그는 나를 사교계에 소개해주었다. 아마 어리석은 나와 비교하여 자기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어리석은 상태였다면 나를 보호해주는 척하는 그의 오만한 태도를 나는 형제애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 다정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클로슈구르드에서 돌아온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게는 비교할 대상이 생긴 것이다. 내 분별력은 더욱 예리해졌다. 나는 샤를의 속을 빤히 다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맏이의 우월감으로 나를 짓누르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 상류층 사교계에 처음 진출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나는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얼떨떨함에서 벗어나 사교계가 제공하는 것들을 터득하고 즐기게 되면서 나는 앙리에트의 충고들이 얼마나 심오하며 올바른 진리를 담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진리들은 적용하면서 즐거워했다.  

 

- "당신에게는 천리안이 있는 것 같아요." 
"편지에 내가 이미 쓰지 않았던가요? 내 아이들과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고해 신부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신의 은총이라고 하더군요. 내 아이들 건강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승과는 다른 곳이 보여요. 거기서 자크와 마들렌이 광채를 띠고 있으면 그 아이들 건강이 좋아요. 걔들이 안개에 휩싸여 있으면 곧바로 앓아눕고요. 당신은 언제나 광채를 띠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해야 할 바를 가르쳐주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고요. 오직 내 아이들과 당신을 위해서만 내게 이런 초능력이 생기는 건, 어인 일일까요?" 

 

- 나는 비록 죄를 지은 죄인이었지만 그녀의 말들은 모두 비수가 되어 내 아픈 곳을 찔렀다. 더욱이 그녀는 내 아픈 곳을 골라 찌르는 듯했다. 그녀의 마음이 섬세한 만큼 고통도 더 컸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상냥한 여자는 자신이 자비로웠던 것만큼 오히려 잔인해진다.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 "앙리에트, 나를 용서해줄 수 없겠소?" 
"나를 더 이상 앙리에트라고 부르지 말아요. 그런 여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대신 모르소프 부인은 여전히 존재해요. 모르소프 부인은 여전히 당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당신의 헌신적인 친구로 남을 거예요. 우리 나중에 이야기해요. 나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내가 당신을 보는 것,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게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줘요. 당신이 하는 말들이 내 가슴을 조금 덜 괴롭게 할 때, 그때 이야기해요." 


 


 

펠렉스 드 방드네스 백작님께 나탈리가

친애하는 백작님, 당신 말대로 저 가엾은 모르소프 부인의 편지는 당신이 세상에 진출하고 출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그렇다면 제 편지는 당신 교육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제발 한심한 버릇을 버리세요. 제발, 두 번째 남편 앞에서 죽은 첫 번째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죽은 이를 칭찬하는 과부처럼 굴지 마세요. 사랑하는 백작님, 저는 프랑스 여자랍니다. 저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결코 모르소프 부인과 결혼하고 싶지는 않답니다. 

당신 편지를 읽어보니 당신은 두 여인을 모두 괴롭혔군요. 레이디 더들리 앞에서는 모르소프 부인의 미덕들을 자랑하면서 그녀를 성가시게 했고, 백작 부인 앞에서는 영국식 사랑의 기교를 과시해서 백작 부인을 상심하게 만든 것 아닌가요? 게다가 저라는 가엾은 여인, 당신 맘에 들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 장점도 없는 저는 조금도 배려하지 않으셨더군요. 제가 앙리에트나 아라벨처럼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지적하신 셈이지요. 

...


소중한 친구여,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친구일 테니까요- 앞으로 이런 고백은 그 누구에게도 제발 하지 마세요 당신의 환멸 앞에 사랑은 꺾이고 말 것이며, 당신을 사랑하려던 여인은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요. 백작님, 사랑은 신뢰가 생명이랍니다.  

 

...

 

좋은 상대가 있어요. 사랑에 대해, 열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레이디 더들리나 모르소프 부인에게 무관심한 여자, 당신 혼자 우수에 빠져 지루하게 내버려 두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여자, 당신이 바라는 수녀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그런 여자와 결혼하세요. 아마 소설 속에는 그런 여자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친애하는 백작님, 말 한마디에 몸을 떨면서 행복을 기대하는 여인과 사랑을 주고받는 일, 열애의 폭풍을 경험하면서 사랑하는 여인의 작은 허영심을 채워주면서 행복을 맛보는 일, 이런 것들은 포기하세요. 

당신은 젊은 여자들에 관한 당신의 수호천사의 조언을 아주 잘 따르고 지켰어요. 하지만 그녀들을 너무 잘 피한 나머지 그 속은 알 턱이 없게 되었지요. 모르소프 부인이 당신을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히기를 정말 잘했어요.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여성들이 당신에게 앙심을 품고 달려들어 당신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을 거예요. 출세는 물 건너갔겠지요. 

 

당신이 여자에 대한 공부를 지금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요. 우리 여성들이 듣고 싶은 말 하는 법을 배우기에도 늦었고 필요할 때 아량을 베푸는 법, 우리가 옹졸해졌을 때 그 옹졸함마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이보세요, 백작님, 우리 여자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바보가 아니랍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는 우리가 선택한 남자를 모든 것들 위에 놓지요. 함께 우월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우월하다는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의 사랑도 흔들린답니다.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를 치켜세워야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도 함께 올라가는 거지요. 

사교계에 계속 드나들면서 여성들과의 교제를 즐기고 싶다면 제게 이야기해준 것들을 꽁꽁 숨기세요. 여성들은 바위 위에 사랑의 꽃을 심는 것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해요. 상대방의 병든 가슴을 치유해준다고 어루만져주는 일에도 별 관심도 없고요.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모든 여자들은 당신의 가슴이 메말랐음을 눈치채게 되겠지요. 그러면 결과는 뻔해요. 당신은 외로워지고 불행해지는 거지요. 저처럼 이런 이야기를 해드릴 만큼 솔직한 여자, 당신과 친구로 남자고 하면서 원한을 갖지 않고 이별할 만큼 마음씨 좋은 여자는 거의 없을 거예요. 

당신의 충실한 친구, 나탈리 드 마네르빌 
 


 

- 성스러운 여자 곁으로 데려간다. 바로 작품의 여주인공인 모르소프 백작 부인이다. 고리오 영감이 부성애의 전형이라면 그녀는 모성애의 전형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어려운 상황을 인내하며 남에게 헌신하는 성스러운 여자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는 정신적인 교감만을 나눌 뿐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그녀는 늘 하느님께 기도하며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신앙심이 깊은 여인이다. 그뿐인가? 그녀는 소설의 남주인공에게 올바른 삶의 지침을 가르쳐주면서 정신적인 스승 노릇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충고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지위가 높으면 덕도 높아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압축하는 아주 도덕적인 인물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녀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발자크는 그의 방대한 연작 시리즈 <인간극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앵드르 강의 한 계곡에서 모르소프 부인과 정념 사이에 벌어지는 전투는 이 세상 어떤 유명한 전투들보다 더 위대할지 모른다."

 

- 대단한 자부심이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 어느 전투보다 더 위대하고 치열하다고 말하다니! 왜 그 싸움이 위대한 것일까? 그녀가 말 그대로 희생정신으로 충만해 있는 성스러운 여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도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지막에 펠릭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펠릭스를 만난 후 끊임없는 갈등을 겪었고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그녀는 인간적 욕망의 포로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 내부의 싸움은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며 하늘과 땅의 싸움이고 영혼과 육체의 싸움이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크고 치열한 싸움이 있을 수 있을까? 

 

-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힌 순간,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다. 예수님이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때문에 더욱 우리 곁에 가까이 오시게 되고 더욱 위대해진다. 모르소프 부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내적 갈등을 겪지 않은 성녀가 아니다. 그녀는 내적 갈등을 겪었기에 더 위대해진 성녀다. 그녀를 발자크가 창조한 인물들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라고 사람들이 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모르소 백작 부인은 우리가 도저히 범접하기 어려운 성녀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성녀다.

 

- 그녀로부터 사랑을 받은 소설의 주인공 펠릭스는 천상의 사랑을 맛본 행복한 남자다. 그러나 그는 모르소프 부인을 배신한다. 모르소프 부인에게서 영혼의 사랑을 맛보면서 동시에 육체적 욕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서 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는 결국 파리에서 더들리 부인과 관능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는 한 남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경험할 수 있는 양 극단, 지고지순한 사랑과 더없이 관능적인 사랑을 모두 맛본 남자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영혼에게 기쁨을 주고 관능적 사랑은 육체적 쾌락을 가져다준다. 그 둘을 모두 맛본 그는 지극히 행복한 남자일까? 그렇지 않다. 고통스럽다. 그 둘 사이에서 찢기기 때문이다.  

 

- 그런데 아주 묘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래, 이게 바로 바람직한 사랑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는 않는다. '나도 이런 사랑 해봐야지'라고 결심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모르소프 백작 부인의 사랑과 레이디 더들리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던 독자는 작품 마지막 나탈리의 편지를 읽고 당혹감에 빠질 수도 있다. 또는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도 있다. 모두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모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 결국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기보다는 '사랑이 도대체 뭐지?'라고 우리를 질문하게 만든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의 책이 '이렇게 사는 게 올바르게 사는 거야'라고 답을 주기보다는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르게 사는 거지?'라고 질문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왜 그럴까? 삶이나 마찬가지로 사랑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정답을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은 우리에게서 도망가기 때문이다. 연애에 통달하고 있는 사람이 남들 연애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자신은 연애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골짜기의 백합(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22)
제4차 산업혁명 세대를 위한 진정한 독서의 길, 세계문학 ‘축역본의 정본’ 시대를 열다!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 세대, 나아가 부모 세대를 위한 가장 체계적이고 혁신적인 세계문학 축역본의 정본 컬렉션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제22권 『골짜기의 백합』. 사실주의 문학의 시조, 발자크의 색다른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으로 모르소프 부인과 사회 초년생 펠릭스 간의 사랑과 번뇌의 과정을 그렸다.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은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로서 제2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역임한 진형준 교수가 평생 축적해온 현장 경험과 후세대를 위한 애정을 쏟아부은 끝에 내놓는, 1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일리아스』와 『열국지』에서 『1984』와 『이방인』까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문학 고전을 총망라할 계획으로 이미 20권을 선보여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고 계속해서 후속 권들이 출간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교육은 정답만 찾아, 외우고, 시험 치는 식의 구태의연한 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시’와 ‘진학’에만 매달리는 교육은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단언한다. “30년 후에는 인공지능이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공부보다 책을 읽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진정한 독서의 길을 제시하려는 대단히 가치 있고 선구적인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그리고 반드시 ‘완역본’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배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그 작품들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죽은’ 고전이다. 진형준 교수는 바로 그 ‘죽어 있는’ 세계문학 고전을 청소년의 눈높이, 마음 깊이에 꼭 맞춰서 누구나 읽기 좋은, 믿을 만한 ‘축역본(remaster edition)의 정본(正本)’으로 재탄생시켜냈다.
저자
오노레 드 발자크
출판
살림
출판일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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