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태지원] 최소한의 경제 법칙 - 융합형 인재를 위한 가장 쉬운 교양서

일루젼 2022. 10. 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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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태지원
출판 : 꿈결 
출간 : 2020.10.26 


       

고등학교 교과정만큼 이해하기 까다롭고 복잡한 영역은 드물 것이다. 몇 년을 주기로 깜짝 놀랄 만큼 바뀌어가는 과정들은 관련자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이미 졸업한지 하세월이 흐른 나로서는 문과와 이과가 통합되고 있다는 정도만 주워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들었던 것이 '경제' 과목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비록 수능 과목에는 채택되지 못한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학생 때 배워두었다면 가장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경제학이었다. 졸업 후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서도 기본적인 경제 지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지금은 재테크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고, 경제적 자유인을 목표로 20대부터 치열하게 달리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자본 경쟁과 사유 재산의 축적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깜냥은 못 된다. 틀림없이 허점이 존재하는 시스템이지만, 일단 그 안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라면 어떤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의 경제 법칙>은 경제 교과서 수준의 기초 이론과 현상들을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일상례들로 설명해준다. 대다수의 '경제'가 붙은 일반서들이 '재테크'와 '자산 증식'에 집중하고 있는데 반해 <최소한의 경제 법칙>은 정말 경제 법칙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대중 교양서로 처음 접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요즘, 경기 침체 극복을 위한 각국의 유동성 완화 정책이 등장하였다. 국내 주가와 환율의 변동도 변화무쌍하다. 세계 경기의 흐름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경제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나 역시 최근에는 인터넷에 접속해 경제 기사들을 가장 먼저 클릭하게 된다. 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경제 과목을 가르쳤음에도 예전에는 현실 경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귀찮은 마음에 신문의 경제란을 읽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취업을 한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점차 경제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비 트렌드, 경기의 흐름, 실업과 물가동향, 이 모든 것이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경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더 좋았을걸 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 알고 보면 우리는 매일 다양한 경제적 상황과 맞닥뜨린다. 수많은 소비자들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넘어가 상품을 구매한다. 이 마케팅 전략의 밑바탕에는 경제학의 기본 개념들이 깔려 있다. 금리나 실업률, 물가지수 등의 경제 지표 역시 우리의 삶과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에서 결정하는 기준금리는 대출과 예·적금 금리뿐 아니라 물가와 부동산 가격, 주가의 동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정책과 지표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경제적 여유와 생활 모습,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 국내 경제뿐 아니라 국제 경제 상황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다. 미국 - 중국 간 무역 분쟁이나 OPEC의 석유 생산량 결정이 국내 기업과 근로자들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톱니바퀴와 같이 각국의 경제 상황과 개개인의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 이 책은 까다롭게 느껴지는 경제학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교양서다. 어려운 주제보다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알아 두면 좋을 만한 '최소한의 경제법칙'들을 추려 내용을 구성했다. 또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경제 원리를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책을 집필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정말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아무런 대가 없이 즐기고 있는 것일까?

 

 

- 유튜브를 운영하는 기업은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이 앱을 통해 돈을 번다. 우리가 모바일 앱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본다면 동영상 재생 전이나 중간에 삽입된 기업 광고를 적어도 5초는 보아야 한다. 이런 광고 수익으로 유튜브는 서버 운영 비용이나 회선 비용을 벌 수 있고, 동영상을 올리는 크리에이터들도 창작에 따른 대가를 얻는다.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는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광고 시청'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심지어 광고 시청 시간뿐 아니라 동영상을 감상하는 시간에도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 유튜브의 경우와 같이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심지어 그것이 공짜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경제학의 명언 중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There is no free lunch"라는 말이 있다. 이 명언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술집들의 마케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술집에서는 일정량 이상 술을 마시는 손님들에게 점심을 공짜로 주었다. 겉보기에는 술집에서 선심을 써 공짜 식사를 제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손님들이 치르는 술값에 이미 점심 값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대가 없는 완벽한 공짜는 없다는 것, 이것이 경제학의 중요한 기본 원리다. 

 

- 세상 모든 것에 대가가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소성 때문이다. 세상 대부분의 자원은 인간의 욕구에 비해 존재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려면 반드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TV를 구입한다면 우리는 그와 동시에 TV를 사는 데 드는 돈과,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포기하는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여가시간에 TV를 시청한다면 운동이나 취미 활동 등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포기하는 것들 중 가장 큰 것의 가치를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이라 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은 '명시적 비용'과 '암묵적 비용'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본전 찾기 심리를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매달리는 본전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비용, 즉 '매몰비용 Sunk Cost'이기 때문이다. 매몰비용은 예전에 이미 지출했기 때문에 지금 어떤 선택을 해도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어차피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기에 의사결정을 할 때 매몰비용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을 혼동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 이러한 가성비의 열풍에는 합리적인 선택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숨어 있다. 합리적 선택은 경제학에서 추구하는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다. 합리적인 인간은 선택을 통해 얻는 만족을 최대화하고, 선택으로 나가는 비용은 최소화하려 한다. 우리는 머릿속에 양팔저울을 가지고 있다. '편익, Benefit'과 '비용 費用, Cost'의 무게를 재는 양팔저울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마다 이것을 사용한다. 여기서 편익이란 경제적 선택의 결과 얻게 되는 이득이나 만족을 금전으로 표시한 것을 말한다. 비용은 선택을 하는 데 따르는 비용, 즉 기회비용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상품을 선택하기 전에 미리 상품의 소비에 따른 편익과 비용을 양팔저울에 재어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한다. 그리고 되도록 '편익 > 비용'인 선택지를 택하려 한다. 이때 편익은 클수록 좋고, 비용은 적을수록 좋다.  

 

- '가성비'의 세상에서는 무조건 싼 것이 최고일까? A 가수가 무료로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공연에 가면 나는 10만 원만큼의 편익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B 가수의 유료 공연이 있다. 이 B 가수의 공연을 보면 15만 원의 돈이 들지만, 30만 원만큼의 편익을 누릴 수 있다. 이때 좋아하는 B 가수의 공연을 포기하고 공짜인 A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 
답은 '아니요'다. A 가수의 공연에 가면 10만 원의 편익을 누리지만, 이 경우에도 기회비용이 있다. 공짜 공연이니 당연히 명시적 비용은 없다. 

 

- A 가수의 공연에 갈 때 얻을 수 있는 편익은 10만 원이다. 기회비용 15만 원보다 작다. 편익이 기회비용보다 작으니 이 공짜 공연에 간다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짜라거나 값이 저렴한 상품을 선택한다고 해서 무조건 경제적으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이 상품이 나에게 주는 편익과 들어가는 기회비용을 정확히 견주어 보고 선택해야 합리적인 선택이다. 

 

- 왜일까? 사람들은 보통 이득보다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해 손실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기 때문이다. 이를 '손실 기피 loss Aversion 성향'이라 한다. 이 현상에 따르면, 사람들은 '신제품을 체험할 기회를 얻는 기쁨'보다 '이런 기회를 놓쳐 느끼게 되는 상실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위의 예와 같이 동일한 정보나 상황이라도 이를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프레이밍 (Framing, 구조화) 효과'라고 한다. 

 

- 행동경제학은 본격적으로 연구 성과를 낸 지 40년 정도 된 비교적 젊은 학문이다. 그러나 앵커링 효과, 프레이밍 효과, 손실 기피 성향 등 행동경제학의 현상 분석은 경제학뿐 아니라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 국가 정책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행동경제학이 앞으로 어떤 연구 성과를 내며 발전할지 지켜볼 일이다. 

 

- 베블런 효과는 사람들의 소비에 얽힌 진실을 알려 준다. 구매자들은 항상 비용과 편익만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 소비를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돋보이게 할 만한 소비를 한다. 이와 같은 비합리적 소비가 베블런 효과와 같은 특이한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 "그들이 1년에 1억씩 쓰면서 원하는 건 딱 두 가지야. 불평등과 차별.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저히 차별받길 원한다고. 그게 그들의 순리고 상식이야." 
김주원의 대사는 상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다. 상류 계급은 다른 계급과 철저히 구분되기를 원하고, 다른 계급과 섞이기를 꺼린다. 경제학에는 이러한 심리에서 발생하는 소비 현상이 존재한다. 바로 '스노브 효과(Snob Effect, 백로 효과)'다. 

 

- 스노브 효과가 고급 상품의 소비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은 소비자가 평범한 제품을 거부하고 비싸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제품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는 음악을 찾아 듣거나 책의 희귀본을 수집하는 등 대중적인 상품보다는 특별한 상품을 찾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장식품이나 구두, 액세서리 등을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주문 제작해 소비하는 것 역시 이러한 경향을 보여 준다.  

 

-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 John Galbraith는 1958년 자신의 저서 <풍요한 사회 The Affluent Society>에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갖는 욕망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현대인들의 필요 Need와 욕구 Want를 구분했다. 여기에서 '필요'는 생리적 욕구를 말한다. 만약 의존 씨가 너무 배가 고파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면 이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필요에 해당한다. 이렇듯 필요는 주변 상황과는 아무 관련 없이 자신의 본능에 의해 느끼는 것을 말한다. 반면 의존 씨가 꼭 새로운 폰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광고에 홀려 최신 스마트폰을 샀다면 이는 외부에서 주입된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 사람들이 자신의 주체적 필요나 의지와 상관없이 광고나 선전 등에 의존해 소비하는 것을 '의존 효과 Dependence Effect'라고 한다. 갤브레이스는 오늘날과 같은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존 효과가 나타나기 쉽다고 주장했다. 

 

- 영화관들은 '소비자의 가격 선택 폭을 넓혀 주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며 탄력요금제의 취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요금제가 소비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일까? 사실 탄력요금제를 시행하면 영화관 역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탄력요금제를 통해 '가격 차별 Price Discrimination'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으로 차별한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가격 차별이란 기업들이 똑같은 상품에 대해 고객에 따라서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영화관의 탄력요금제, 항공사가 성수기와 비성수기에 고객들에게 다른 가격에 비행기표를 파는 것, 놀이공원에서 성인과 청소년, 어린이의 입장요금을 다르게 받는 것, 가정용과 기업용 수도요금이 다르게 매겨지는 것 등이 모두 가격 차별에 해당한다. 

 

- 물론 어떤 시장에서나 기업이 가격 차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가격 차별을 하려면 첫째, 판매자가 어느 정도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둘째, 가격 차별을 할 때 서로 다른 고객들의 구분이 쉬워야 한다. ... 셋째, 두 개로 구분되는 시장에서 구매자들끼리의 거래가 불가능해야 한다. 

 

- 공유지의 비극을 일으키는 자원이나 재화가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런 재화들은 일단 생산이 이루어지면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이를 소비할 수 있다. 즉 누구도 이 자원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다. 이러한 특성을 '비배제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 자원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사용에는 제한이 생긴다. 한 사람이 공중화장실의 휴지를 많이 쓰면 다른 사람은 이 휴지를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경합성'이라고 한다. 이렇게 비배제성과 경합성을 가진 재화를 경제학에서는 '공유 자원 Common Resources'이라 부른다. 비배제성과 경합성이 있는 공유 자원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빠르게 고갈되기 쉽다. 

 

- 아이폰의 사례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 Jean Baptiste Say가 이야기한 '세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라고 주장했다.   

 

- 세의 법칙에 따라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공급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의 흐름도 이를 따라갔다. 세가 살던 시기는 산업자본주의가 꽃을 피워 생산력이 한창 발전하던 때였다. 공급을 하면 자연스레 수요가 따라온다는 세의 법칙은 산업자본주의의 대량 생산에 불을 지폈다. 자본가들은 할 수 있는 한 공급을 계속 늘렸다. 특히 거대한 자본을 축적한 독점 기업들은 자본이 받쳐 주는 만큼 최대한 많이 생산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훌쩍 건너뛴 21세기에도 세의 법칙을 증명하듯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 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에서 예로 든 애플의 아이폰이나 그 외 여러 혁신적인 IT 기업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 이처럼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친 세의 법칙이지만, 사실 그 논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 법칙이 전제하고 있는 가정의 문제점이다. 세의 법칙에 따르면, 생산자들은 상품을 만들어 팔아 벌어들이는 돈을 전부 시장에서 무엇인가를 사는 데 써야 한다. 그래야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일이 가능하다.

 

-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화폐의 가치가 안정되면서 사람들은 돈을 저축해 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공급은 늘어나지만 수요가 충분히 따라 주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가정의 한계로 인해 세의 법칙은 20세기 들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1930년대에는 세의 법칙이 지닌 한계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벌어졌다. 경제 대공황이었다. 

 

- 낙수효과는 분배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커지게 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낙수효과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나온 개념으로 분수효과 噴水效果, Trickle-Up Effect, Fountain Effect라는 것이 있다. 분수효과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먼저 증가시키면 이것이 경기 활성화로 이어져 고소득층의 소득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분수효과를 주장하는 이들은 낙수효과와는 정반대로 부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갈 것이라 믿는다. 이들은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매기는 세율을 높이고, 저소득층의 소득과 복지 정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민층이나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주면 이들의 소비 증가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보는 것이다.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성장도 따라온다는 관점이다. 

 

- 그러나 저소득층에게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 반드시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복지 증대로 국가 예산 부담이 늘어나고, 서민층이나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오히려 떨어뜨려 국가 경제 성장에 해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낙수효과와 분수효과 모두 어느 한쪽이 옳다기보다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이루기 위해서 정부는 두 개의 카드를 시기에 따라 적절히 활용해 가며 사용할 필요가 있다. 

 

-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 Albert Hirschman 이 말한 터널 효과 Tunnel Effect라는 이론이다. 그는 한 나라의 경제가 후진국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과정을 2차선의 길에 비유해 설명했다. 순행하는 차선은 부유층, 대기업 등 경제 성장의 혜택을 먼저 받는 이들을 의미하고, 정체되는 차선은 서민층과 저소득층을 상징한다. 경제 성장 초기에 부유층이나 대기업이 경제 성장으로 돌아오는 부를 먼저 누리면 서민층과 저소득층은 처음에는 인내한다. 자신들에게도 분배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도 계속 서민층이나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들의 좌절은 분노가 되어 간다.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체된 길의 운전자들은 터널 앞의 교통경찰을 믿지 않게 되고, 급기야는 교통법규를 무시하게 된다. 그 결과, 터널 속 교통 상황은 엉망이 된다. 이런 상황은 국가 경제에도 벌어질 수 있다. 분배를 받지 못한 이들은 정부나 국가를 불신하게 되고, 이는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 피케티가 2019년에 펴낸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and Ideology>에서 이야기한 부의 재분배 방법 역시 흥미를 끈다. 엄청난 부자들에게는 자산의 90퍼센트까지 세율을 매겨 세금을 걷고, 소규모의 재산에는 0.1퍼센트의 세금을 걷는 강력한 누진세 정책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또 25세가 된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이 아니라 '기본 자본'을 나누어 주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이들에게 자립 기반을 마련해 주자고 주장했다.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려 공공성을 강화하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마련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기본 자본을 청년층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25세가 되는 남녀에게 일정한 돈을 지급해 주면, 청년들은 이 종잣돈으로 집을 구입하거나 사업을 시작해 자본을 늘려 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경제 성장기에 계층 이동이 활발했던 한국에서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부자가 되려면 금수저로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지고 있다. 앞으로는 능력과 노력을 통해 경제적 부를 쌓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피케티의 말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일 수도 있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맥주의 비밀: 열등재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라는 현실을 꼬집은 작품이다. 디테일한 연출에 뛰어난 봉준호 감독답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작은 소품까지도 모두 의미를 담아 선택된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는 여러 종류의 술이 등장하는데, 이 술에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숨어 있다. 

영화의 첫 부분, 기택 (송강호 분)의 가족은 네 명 모두 무직 상태다. 이때 가족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발포주 (맥주와 비슷하지만 맥아 비율이 낮은 내용 술)와 과자 안주를 먹고 있다. 영화 내용이 전개되면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취업에 성공한다. 이를 축하하는 밥상에서 가족이 먹고 있는 것은 발포주보다 비싼 일본의 수입 맥주와 소고기다. 이후 부자인 박 사장(이선균 분)의 저택에서 잠시 풍요로운 휴식을 즐길 때, 기택 가족은 양주를 마시며 상류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기택 가족이 먹는 술은 영화의 흐름에 따라 발포주 → 수입 맥주 → 양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기택 가족은 수입이 늘어나면서 점차 더 비싼 술을 즐기게 된다. 원래 먹고 싶었지만 경제 사정 때문에 즐기지 못했던 것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가난할 때 먹었던 발포주의 소비는 자연스레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대부분의 재화는 그 수요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원래 소고기를 월 1회 먹던 사람도 소득이 늘어나면 이를 월 2회씩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소득이 늘어날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재화를 '정상財, Normal Goods'라 한다. 

그러나 소득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예전에 쓰던 저렴한 상품의 수요를 줄이고 대신 품질이 더 좋거나 고급스러운 재화로 소비 성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생충> 속의 발포주와 같이 소비자의 실질 소득이 증가하며 오히려 수요가 감소하는 재화들이 생긴다. 이를 '열등재, Inferior Goods'라 한다. 예를 들어, 실업자일 때 컵라면만 먹던 청년이 취업에 성공해 수입이 생기면 컵라면을 예전보다 덜 먹을 수 있다. 이때 컵라면은 열등재가 된다. 과거 난방용 연료로 널리 쓰였던 연탄도 마찬가지다. 한때 연탄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생활수준이 개선되면서 연탄 대신 기름이나 가스보일러가 일반화되었다. 연탄은 예전에 비해 소비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어떤 재화도 항상 '정상'나 '열등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정상재와 열등재는 개인과 시대, 상황에 따라 분류가 달라질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기에는 보리가 열등재로 취급된 적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소득이 늘어날수록 보리의 소비를 줄이고 흰쌀의 소비를 늘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웰빙 바람이 불며 보리는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제 보리는 소득이 높고 건강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재화로 자리 잡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열등재에서 정상재로 그 위치가 바뀐 것이다. 

사람의 성향이나 선호도에 따라 정상재나 열등재의 분류가 달라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소득이 늘어난 후 이전보다 라면을 더 많이 사 먹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라면을 열등재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정상재는 가격이 내려가면 많은 사람이 더 찾아 수요량이 늘어난다. 가령 소고기의 가격이 내려가면 사람들은 소고기를 더 많이 사 먹는다. 그렇다면 열등재의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는 어떨까?  
 
... 

 

오히려 발포주를 싸게 사고 남은 돈으로 그보다 비싼 맥주나 소주를 사 먹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소고기 가격이 떨어졌다면 기택 가족은 정상 재인 소고기를 당연히 더 자주 사 먹으려 했겠지만, 열등재일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가격이 내려가면서 실질 소득이 늘어나면 오히려 열등재의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재화의 가격이 떨어져 재화에 대한 소비자의 실질 소득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효과를 '소득효과 Income Effect'라고 한다. 

가격의 변화로 나타나는 효과는 대체효과와 소득효과의 합으로 나타난다. 정상재는 가격이 내려가면 대체효과와 소득효과가 모두 수요량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열등재는 다르다. 열등재의 가격이 내려가면 대체효과는 수요량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소득효과는 반대로 수요량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열등재는 가격이 저렴해져도 대체효과가 크냐 소득효과가 크냐에 따라 수요량이 늘어날 수도 있고, 가끔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래서 열등재 중에서는 가격이 낮아질 때 오히려 수요량이 줄어드는 재화가 간혹 존재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기펜재 Giffen's Goods라 부른다. 

 

 



아일랜드 대기근 때 감자의 수요량이 늘어난 까닭, 기펜재



19세기 아일랜드에는 감자 마름병(감자를 말라죽게 하는 식물 역병의 한 종류)이 돌아 감자의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공급이 줄어드니 이내 감자의 가격은 치솟았다.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르면, 감자의 가격이 오를 때 그 수요량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비싸진 감자를 찾는 사람이 오히려 늘어났다. 

감자는 당시 아일랜드에서 하층민이 사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주식이었다. 감자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다른 음식에 비해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하층민은 주식인 감자 소비를 줄일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감자를 사 먹고 남는 돈으로 고기나 다른 채소를 간간이 사 먹을 수 있었지만, 감자 가격이 오르면서 감자를 사고 남는 여윳돈이 없어졌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오로지 감자만 사 먹게 되면서 그 수요량이 늘어났다는 해석도 있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19세기 아일랜드의 감자와 같이 가격이 올라가도 수요량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재화가 있다고 보고, 이런 재화에 영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기펜 경 Sir Robert Giffen의 이름을 따서 '기펜재'라 이름 붙였다. 

기펜재는 열등재와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열등재는 '소득'이 올라갈 때 '수요가 줄어드는 재화'를 말하고, 기펜재는 열등재 중에서 특히 '가격'이 올랐을 때 '수요량이 줄어드는 재화'를 말한다. 기펜재는 열등재 중에서도 무척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리뷰자 주 : 기펜재에 관한 세 가지 정의가 상충한다. 마지막의 "'가격'이 올랐을 때 '수요량이 줄어드는 재화'"는 오타로 보인다. 가격이 낮아질 때 수요가 감소하는 재화라는 정의도 사용되지만, 기펜재의 특성상 '가격이 올랐을 때 수요량이 증가하는 열등재'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다.   



 

 
 

 
최소한의 경제 법칙(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가성비’는 어떻게 유행어가 되었을까? 경기가 나쁘면 립스틱을 많이 산다고?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맥주에도 비밀이 있다고? 미국 사람들이 차 대신 커피를 많이 마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마트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보험에 가입하고 재테크를 시작할 때에도 우리는 경제 법칙을 만날 수 있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경제 법칙》은 우리 일상에 숨어 있는 경제학과 경제 법칙을 쉽게 만나볼 수 있도록 돕는다. 어려운 주제보다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알아 두면 좋을 ‘최소한의 경제 법칙’들을 추려 내용을 구성했다. 요즘 주목받는 경제 키워드부터 꼭 알아야 할 경제 법칙까지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
태지원
출판
꿈결
출판일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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