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태지원
출판 : 가나출판사
출간 : 2021.07.07
수도꼭지를 꽉 잠근 듯이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내가 남기는 리뷰가 '글'이라고 부를 정도로 뭔가 대단한 것을 품고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그 순간 꼭 쏟아내고 싶었던 것들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내부에서 뭔가 찰랑이고는 있는데도 손가락이 영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꼭 이번 주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뭔가 희뿌옇게 가리워진 것 같은 10월이었다.
이 책을 왜 읽기로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제목에 끌렸던 것 같다. 어딘가 지친 듯한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고,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집어 들었던 책의 저자가 얼마 전 읽었던 <최소한의 경제 법칙>과 같은 저자였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발췌문을 정리하는 지금, '한 우물만' 팔 필요는 없다는 저자의 말이 좀 더 깊게 다가온다.
언젠가를 기점으로 과거 관심을 두었었지만 제대로 빠져들어 보지는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건드리는 중이다. 예전에도 나는 이것저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아이였지만, 보통 덕심을 품으면 그것에 준 전문가가 되곤 하는 '진짜' 덕후가 되지는 못했다. 늘 어딘가에 다른 한 발은 걸쳐두고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빠져들고,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설레었던 기억만 간직하곤 했었다.
이제는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나이는 지나갔고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다-, 약간의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났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핑계를 대지 말고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만큼 즐겨보고 싶다. 그리고 화가의 삶과 미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보듬는 저자의 글을 통해, 어쩌면 저자의 의도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 내가 받고 싶었던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이렇게 수 많은 이들이 다들 자신만의 과정과 답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미술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상념이 많아진다. 어느 한순간에는 그 작품 하나만이 진정한 세계인 것 같다가도, 잠시 옆으로 눈을 돌리면 어느 작품 하나만이 절대적인 정답일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림은 인간의 삶을 닮았다. 강렬한 한 순간을 포착했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전체 그림은 어느 부분 하나 빼고 더할 것 없이 조화롭게 완성되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붓터치가 정답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몇 부분을 가리더라도 -혹은 그 편이 더- 아름답다. 완벽한 생은 없듯이, 완벽한 그림도 없다.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순간들이 쌓여 드러낼 무언가- 삶의 작은 부분 부분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절망하기보다 그것들이 모여 그려낼 더 큰 그림을 기대하며 삶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보고 있으면 그가 자기 인생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한물 간 화가'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자신의 자화상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꾸미려 하지 않았다. 화려했던 젊은 시절에 비해 노년으로 갈수록 명성과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초라해졌으나, 그림을 놓지는 않았다. 후일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의 화가'로 미술사에 의미 깊은 이름을 남겼다. <34세의 자화상>을 그릴 즈음에 렘브란트는 자신이 말년에 어떤 모습의 자화상을 그리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자화상은 끊임없이 변했다.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듯 그림을 그린 시절도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모습을 담백하고 꾸밈없이 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날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본다. 자기 모습을 외면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렘브란트의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과거에 꿈꾸던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현재의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 현실 속 내 자화상이 멋지지 않고 초라해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다른 이들의 화려한 자화상과 비교해 슬퍼지는 순간도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내 모습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꾸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현재를 버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나를 담담히 받아들일 때 나온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내가 아니더라도 상념 없이 바라보아야 지금을 견딜 수 있다. 자화상이 나이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 역시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49세나 59세에는 어떤 모습의 내가 될지 모르겠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니까. 다만 구태의연하고 뻔한 모습의 장년이 되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을 체념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내 삶을 억지로 미화해가며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저 배우는 마음으로 사는 내가 되고 싶다. 누가 그려주는 내 초상화를 받아 들지 않고, 내 자화상을 스스로 그리고 싶다.
- 마니에리슴은 르네상스에 그려진 작품에 비해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고 다소 비정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후대에 이르러 서양미술사의 큰 줄기가 되었다. 아니, 애초에 그 균형 잡히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건 누군가가 만들어낸 잣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보는 사람의 시각과 해석에 따라 충분히 의견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괴상하고 균형에 맞지 않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 내가 초라하고 하찮게 느껴져 견딜 수 없는 날, 나를 귀하게 대해주면 힘이 생긴다. 오로지 나를 위한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예쁜 그릇에 담아 대접해주는 행위,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행위, 혼자만의 평화로운 티타임을 가지는 행위 등 나를 위하는 사소한 행동은 살아갈 힘을 준다. 나를 제대로 챙겨줄 시간이 없다면 하다못해 밥이라도 꼭꼭 씹어 먹는 게 좋다. 그런 행동은 구차한 것도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당연한 행위다. 혹시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행위,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를 찾아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홀로 외출하거나 여행하면서 스스로에게 원하는 바를 끊임없이 물어봐주는 것도 좋다. 오늘은 무엇을 먹고, 어떤 일을 하기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취향 탐구를 해본다.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깨달아 갈 수 있다.
- 가족이나 친구 등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만큼 나를 알아서 챙겨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나만큼 내 욕구를 정확히 알고 챙겨줄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보다 타인을 챙기는 데 에너지를 먼저 쓰다 보면 가끔 은근한 바람이나 억울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도 한다. '내가 아무개를 그렇게 챙겨주었는데 걔는 이토록 무심하네', '내가 그렇게 신경 써줬는데 아무도 날 챙기지 않아'라는 식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돈다. 물론 순수하게 이타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보살피고 챙기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보다 남이 우선순위가 되면 가끔 인간관계의 대차대조표가 머릿속에 펄럭거린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도 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도울 수 있다.
- 내 욕구와 취향을 알아채고 맞춤형으로 챙겨줄 사람은 결국 나다. 나한테 박하게 굴지 말자. 자존감은 내 욕구를 챙기고 보살피는 '행동'에서 솟아나기도 하는 법이다. 스스로를 열렬히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행동으로 그 사랑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탓하고 미워하며 과거를 바라보는 행동은 '반성'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미워하고 싫어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반성이 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현재를 버틸 힘도 생긴다. 예전의 나를 미워하는 데 오랜 시간 마음을 쓰고 있다면 이제 과거의 나를 그만 구박하고 마음에서 놓아주어야 한다. 약간 어리석고 바보 같았을지라도 과거의 당신이 옳지 못한 것은 아니다. 바꾸고 싶은 과거를 생각할 때 기억해두자. 그때 당신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 과거의 상처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휩싸일 때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아르테미시아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화가였다. 그녀는 로마에서 화가인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화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배웠다. 일찍이 딸의 재능을 알아차린 아버지는 다양한 그림 기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버지의 동료였던 바로크 시기의 대가 카라바조에게 그림을 배운 적도 있었다. 당시 미술학교는 남성에게만 허용된 장소였다. 아르테미시아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입학 허가를 받지 못했다.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딸을 위해 아버지는 원근법 표현에 탁월했던 동료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Agostiono Tassi)에게 딸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다. 배움의 기회는 얼마 뒤 불행한 사건으로 바뀌었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만난 타시는 아르테미시아를 성폭행했다. 성폭행 직후 타시는 아르테미시아와 결혼을 하겠다며 아버지 오라치오를 진정시켰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그에게는 이미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타시는 얼마 가지 않아 아르테미시아의 관계조차 부인했다.
- 하지만 이제 시간은 흘렀고 상황은 달라졌다. 나는 원가족에서 물리적·경제적으로 독립했고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다. 가족들이 나에 대해 내린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모든 결정은 내 스스로 내릴 만큼 나이를 먹었다. 과거의 일이 현재의 내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애착 관계에 중점을 두어 한 인간의 행동이나 태도, 심리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심리학에도 문화심리학,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며 눈치 보고 있다면 그건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지금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적 상황과 조건에 처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과거의 상처, 나의 결핍, 콤플렉스를 바라보는 건 중요한 과정이다. 나는 인생의 각 지점에서 힘들었지만 고군분투했던 스스로를 위로해주었다. 그러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상처를 드러내고 약을 발라주기 위해서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야기의 맥락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억지로 상처를 벗어나려고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발버둥칠수록 마음만 힘들어졌다. 나에게 상처를 준 가족에게 사과를 받아야 어린 시절의 결핍이 채워지는 건 아니다. 지금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이야기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가져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감정을 보듬어주고, 앞으로의 내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중요한 건 앞으로 넘길 책장 속 이야기다.
- '그래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생각해본다.
'과거의 나는 상처받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
이 문장 속에는 과거의 나만 있다. 문장 속에 현재의 나는 없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다. 접속사를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의 나는 상처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야기를 바꿀 힘이 있다.'
- 이야기의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오게 하는 것이다. 책장을 앞으로 넘겨 다시 이야기를 쓰는 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맥락을 바꿀 수는 있다. 이제는 상황과 조건이 달라졌으므로 과거의 상처가 나를 덮쳐올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해보자. 새로운 책장의 이야기는 나만이 쓸 수 있으니까.
- 신화 속에서 상황을 풀어가는 것이 실타래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후 어려운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해 실타래를 풀듯 하나씩 상황을 풀어가는 것이 주요한 해결 방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아드네의 살은 어려운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해결 방법이나 그 도구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자리 잡았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적용하는 구체적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기록을 통해 과거의 일을 되짚어가다 보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얻게 된다. 가령 장기나 바둑을 둘 때 과거의 시합을 기록해두고 복기하는 건 다음 시합을 이기기 위한 중요한 열쇠, '아리아드네의 실'이 된다.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말을 되짚어보면,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일을 덮어두지 않고 구체적인 언어로 적어두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오듯, 현실 속 미궁을 빠져나오는 일은 어쩌면 구체적 언어의 기록으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 당시의 발레리나들은 상류층 여성들이 아니었다. 노동 계층 출신의 1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소녀들이 가난을 벗고 부와 명성을 쌓기 위해 무용수의 길을 걸었다. 발레리나의 후원자로 나선 상류층 남성들도 있었다. 이때 무용수와 후원자 사이에는 성 상납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후원자들에게는 자신이 후원하는 무용수의 모습을 무대 안쪽에서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드가가 그린 무용수 근처의 남성들은 대부분 이 후원자들이다. 드가는 발레라는 장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어두운 이면 역시 화폭에 담아낸 것이었다.
- 사실 드가는 냉소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 혐오증을 가진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혐오하는 주요 대상은 여성이었다. "여자의 수다를 들어주느니, 차라리 울어대는 양 떼들과 함께 있는 게 낫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는 했다. 드가는 동료 화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부부의 모습을 그려서 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는데, 부인의 얼굴을 흉측하게 표현하여 마네가 그 부분을 찢어버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 새로운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어떻게 가족이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음속 말이 조금씩 거두어졌다. 세상에는 행복한 가족도 많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가족도 많다. 겉보기에 정상 가족으로 보이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자존감을 깎아먹는 부모의 발언과 차별에 상처받는 사람도 있고 사춘기 아이가 내뱉는 말에 상처받는 부모도 있다. 배우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이들도 존재한다. 가족 역시 '내'가 아니라 타인이며, 가족관계도 인간관계의 일종이기 때문이리라. 나와 내 가족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묘한 위로를 주었다.
- 드가가 일관되게 여성을 혐오하는 방식의 태도만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가난한 무용수를 도와달라 부탁하기도 했고, 무용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보였다. 부모와의 양육 방식이나 경험으로 인해 한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 양식이 완벽하게 결정되는 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 그 영향권을 벗어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 피를 나눈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주는 상처가 치유되고 용서가 가능하다는 논리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무조건적인 용서보다는 마음이라는 감정 속에 숨겨진 내 마음과 욕구를 먼저 알아주고 보듬는 것이 먼저다. 가족에 대한 미움을 거두는 것, 이해하고 용서하는 건 그다음이다. 그동안 애쓰고 살아온 나 자신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 상처를 준 가족을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마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먼저다. 이해와 용서는 그다음에야 논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을 돌보는 게 먼저다.
- 마녀사냥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이나 괴로움, 권태와 외로움을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하거나 힘들 때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자기중심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다. 나의 내면이 아닌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뒷담화를 끊임없이 일삼는 사람들의 행동도 비슷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 타인의 뒷담화를 일삼는 이들은 제3자의 작은 결점이나 단점을 지적하며 타인과 결속력과 연대감을 쌓고 친밀감을 쌓아간다. 내면의 외로움을 잠재우기 위한 행위다. 물론 이렇게 쌓은 친밀감은 '나 없으면 내 욕을 할까 봐' 마음대로 화장실도 못 갈 만큼 매우 부실하다는 한계가 있다. 타인의 단점이나 불행, 비밀을 이야기함으로써 내 불행과 권태, 슬픔 등을 일시적으로 잊을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타인을 잘못을 지적하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순간적인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령 사람들은 스스로가 게으르거나 형편없다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지만 이런 사실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타인의 게으름과 형편없음을 지적하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순간적인 안도감을 느낀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지적하는 악플러들의 심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보이나 결국 근본 원인은 같다. 불행하거나 신기하게 심심하거나, 괴롭지만 자기중심이 없는 그들의 내면에 그 원인이 있다. 뒷담화의 대상에 주요한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뒷담화 대상이 되었다고 자책을 한다거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안도하는 게 무의미한 이유다. 어차피 그들의 불행과 권태와 두려움 혹은 또 다른 뒷담화의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 더불어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뒷담화가 아니더라도 대화의 소재로 타인의 이야기만 반복할 때가 있다. 남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완벽한 성인군자나 도덕적인 인간이 되자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가 남의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면 불행하거나, 재미없거나 외로운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외부로부터 눈을 돌려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먼저 궁금해하는 게 좋다. 내 이야기에 집중할 시점이다.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힘들어질 때면,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가 그린 삼중 초상화를 떠올려본다. 플랑드르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반 다이크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인 그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작업실을 열였으며,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일도 돕게 된다. 반 다이크는 특히 루벤스의 그림 작업 중에서 인물의 얼굴 부분을 도맡아 그리고는 했다. 인물의 얼굴 속에 모델의 고귀함과 우아함, 지적인 품위 같은 긍정적인 매력을 불어넣는 데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상화 화가로서 그의 명성은 유럽에 널리 퍼졌다. 반 다이크가 런던에 들렀던 시기, 당시 잉글랜드의 왕 찰스 1세가 궁정화가의 자리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미술 수준이 뒤처져 있는 상태였다. 찰스 1세는 최고의 화가를 궁정에 두기 위해 루벤스에게도 궁정화가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찰스 1세는 기사 작위와 집, 연금 등을 보장하며 반 다이크를 영국의 궁정화가로 초빙하는 데 성공한다. 영국 왕실에 간 반 다이크는 어색하고 경직된 모습으로 그려지던 왕실 초상화 시대를 끝냈다. 찰스 1세의 자연스럽고 우아한 초상화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 다음 작품은 반 다이크가 그렸던 찰스 1세의 초상화 중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한 화면 안에 세 명의 인물이 꽉 차 있는 삼중 초상화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명의 인물 모두 찰스 1세의 모습이다. 이렇게 기묘한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찰스 1세는 자신의 대리석 흉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반 다이크에게 삼중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이탈리아에 있던 조각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에게 흉상을 제작하기 위한 자료로 보냈다. 당시 서양에서는 흉상을 제작하기 위한 자료로 삼중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삼중 초상화에서 왕의 얼굴은 정면, 옆면, 그리고 4분의 3 정면으로 담겨 있다. 원래 흉상을 제작하는 데 손 부분은 굳이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반 다이크는 작품 속에 찰스 1세의 손을 그려 넣어 기존의 삼중 초상화와는 차별화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왕은 자신감에 찬 시선과 품위 있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중이다. 마치 한 명이 여러 자아로 분열되어 있는 듯 보이는 모습이다. 작품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나의 자아가 셋으로 나뉘어 내가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삼중 초상화 속 찰스 1세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 둘러싸여 있다. 가끔 이 작품을 볼 때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근본적으로 내가 의식하고 있던 건 타인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비친 나'였다.
- 만약 당신 곁에 이런 말을 자주 내뱉는 사람이 있고, 그 때문에 당신이 힘들어지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다 당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될 수 있다. 가장 빨리 손절해야 하는 관계다. '인간관계의 손절'이 간단하고 쉬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잡아먹는 사람과의 관계는 물리적·심리적으로 끊어내는 게 좋다. 가해자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두려움, 자격지심,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에 있는 불안과 열등감을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수는 없다. 관계에 대한 '최선'이나 '책임감'을 추구하다가 내가 잡아먹히는 수가 있다.
- 당신은 절대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당신을 형편없이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당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그가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먼저 피해야 할 상대다.
- 한편, 경제적 성공까지 거머쥔다. 랭글리의 활동에 감동을 받은 하기들 여럿이 뉴런으로 거처를 옮겨 작품 활동을 벌인다. 이 기억은 프랑스의 바르비종처럼 화가들이 모여 작품 세계를 키워나가는 곳이 되었으며 뉴린파(Newlyn School)라는 말도 생겨났다. 랭글리의 명성은 유럽 곳곳에 퍼졌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 Nikolaevich Tolstoi)는 랭글리의 그림을 "아름답고 진실한 미술 작품"이라 칭송하기도 했다.
-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신의 두 발로 설 줄 알며 모든 문제를 스스로 헤쳐 나가는 인간형을 선호한다. 나도 항상 동경해온 인간형이다. 나 스스로를 '쿨하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착각이었고 오만이었다. 힘든 상태를 드러내는 건 여러모로 민폐라 생각했다. 그럭저럭 초연한 인간의 표정을 짓고 살아왔기에 민낯을 드러내는 일에도 인색했다. 타인에게, 심지어 나에게조차 깊은 상처를 드러내고 울지 못했다. 덕분에 자립적 인간을 넘어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처절하게 외로웠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의 두 발로 삶을 버티어나가는 사람은 멋지지만 늘 쿨하고 멋질 순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 역시 외롭고 서럽고 때때로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러나 외로움이 깊어져 상아로 여인의 모습을 조각하여 만들고, 자신의 피조물에 '갈라테이야'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후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조각상을 짝사랑하기 시작한다. 열의를 다해 갈라테이아를 돌보지만 피그말리온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현실 속에서 갈라테이아와 비슷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해 달라며 애정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한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효과를 발휘했다.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마음에 감명받아서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갈라테이아는 사람으로 변신하여 피그말리온과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 제롬의 작품은 갈라테이아가 생명을 얻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갈라테이아의 다리는 상체와 다르게 상아색이다. 생명을 얻으며 그녀의 상체는 이미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하체는 조각대에 고정된 상태다. 그림 속에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갈라테이아의 적극적인 자세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환희의 순간을 상징한다.
- 피그말리온의 흥미로운 일화는 심리학과 교육학에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이름을 남겼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간절히 기원하고 긍정적 기대를 가지면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심리적 효과를 뜻한다. 비슷한 뜻을 담은 용어로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이 정의한 개념으로, 강력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면 실제 기대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어 성취를 이루기 쉬운 현상을 뜻한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효과를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은 실험을 통해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한 초등학교 교사 집단에게 특정 아이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이들의 지능지수가 높기 때문에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사실은 무작위로 선정된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8개월 후 이루어진 학년 말 평가에서 해당 학생들의 성적은 실제로 상위권이 되었다.
- 예전에는 실력을 인정받고 만인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참가자들을 마냥 부러워했다. 젊은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고 살아가는 기분은 어떤 걸까? 저 재능은 노력의 산물일까, 타고난 것일까? 궁금증과 동경의 눈빛으로 프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달라졌다. 실력과 노력이 충분하지만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며 활동해온 참가자에게 몰입한다. 그들이 인정받으면 내가 인정받은 것처럼 기뻤고, 그들이 실수를 하거나 지적을 받으면 내 일인 양 슬펐다. 오디션의 한 장면에 감동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몇 년 전, 내가 하고 있던 일이 모두 실패했을 때,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삼킨 적도 있다. 노력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참가자가 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끔은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능력이 출중하고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도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뭘까? 참가자에게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는 걸까? 단순히 그의 시기가 오지 않은 걸까?
- 인간사를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화폭에 담아낸 예술가가 있다.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 1833-1898)는 성서나 신화, 고전주의 작품 등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 19세기 영국의 화가다. 그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라는 집단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르네상스 시기의 천재 화가 라파엘로 이전, 즉 르네상스 이전의 화풍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라파엘전파는 주로 고전 문학이나 신화, 성서의 이야기 등 스토리를 중요시하며, 낭만적이고 화려하며 사실적인 그림을 화폭에 담아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Dante GabrielRossetti),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등이 라파엘전파에 속하는 화가들이다.
- 에드워드 번 존스 또한 화려한 색채와 사실적인 그림으로 신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 그가 그린 <운명의 수레바퀴> 역시 이런 경향을 보여준다. 작품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 포르투나는 영어로 운을 뜻하는 포춘 fortune의 어원이 된 말이기도 하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포르투나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가지고 있었다.
-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오랫동안 재미없고 무기력한 상태인지. 책임과 의무를 위한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육아나 살림, 글쓰기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었다(글쓰기는 좋아하는 일임에 분명하나 지금은 일의 영역으로 반쯤 들어왔다. 설렘보다 책임감으로 쓰는 날이 많다). 어떻게 해야 다시 설레는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재미있는 나날은 영원히 내게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갑자기 삶에 생기가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 세상의 모든 문제는 노력과 의지라는 한 가지 원인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기질이나 적성이나 운, 타이밍 모든 것이 결합되어 복합적인 이유로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마네의 경우처럼 시대의 맥락과 맞지 않아 많은 비난을 받은 화가가 있는 것처럼, 그저 세상의 맥락과 맞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한 세계에 적응하고 오랫동안 몸담는 건 어찌 보면 큰 행운이다. 그 세계의 맥락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레 그 세계의 규칙을 내면화하여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고무적인 일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 브룩스의 이야기처럼 한 세계에 오랫동안 적응하여 몸담고 있는 건 오히려 그 사람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세상에서 적응하여 그 세상의 논리로만 살아온 사람이 다른 세상에서는 적응하기 힘든 인간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논리를 뒤집어 말하자면 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다른 규칙과 문법을 가진 집단이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한 세계에 적응하기 힘들 때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세상, 나와맞는 다른 맥락을 지닌 세계를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이것 역시 하나의 기회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일이나 부엌, 취미생활이나 배움으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주부로서의 생활이 나의 기질과 맞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라는 이야기일 수 있다. 당신이 특정한 세계의 부적응자라고 해서 세상 전체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물론 힘껏 노력해보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시간이 부적응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력으로도 적응할 수 없는 일이 간혹 존재하는 법이다. 부적응이 반드시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당신 내면의 규칙과 기준이 완전히 잘못되거나 틀린 것도 아니다. 살아가다 보면 나와 맥락과 문법이 맞지 않는 세상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부적응의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시기와 세상을 건너는 일, 그저 그런 일일 뿐이다.
- 거듭되는 불행 속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예술가가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는 그리스 신화와 전설, 문학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다. 특히 문학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전형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특유의 매력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은 팜므파탈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에로틱한 특징을 지닌다. 2018년에는 맨체스터 미술관에 소장된 <힐라스와 님프들>이라는 작품이 여성의 신체를 '수동적인 장식' 혹은 '팜므파탈'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전시장에서 떼어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미술관의 결정을 비판하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 별로인 상황을 좋게 받아들이라고 긍정적이 되라고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왜 긍정적인 해석법을 모르냐고 스스로를 탓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눌러두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면 우울감이 생기기 쉽다. 가끔은 혼자 있을 때 분노를 터트리고 욕을 내뱉어도 된다. 흔자 있을 때 욕을 좀 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분노의 일기를 쓴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 입히는 건 아니니까. 분노를 밖으로 꺼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별로인 상황은 별로라고 인정하고 화낼 건 화내고 슬퍼할 일은 슬퍼해도 된다. 지나칠 정도로 '남 탓'과 '내 탓'만 하지 않으면 된다. 감정을 다 터트린 후 마음을 비워내고 나면 보인다. 판도라의 상자 바닥에 가라앉은 희망이. 현재 상황이 괜찮다는 억지 왜곡도 아니고,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헛된 망상도 아니다. 상황이 좋아진다는 기대를 걸지 않아도 그저 내 길을 걸을 수 있는, 괴상하지만 작은 희망. 역설적이게도 "망하면 어때”에 담긴 희망과 용기가 우리의 하루를 버티게 할 수 있다.
-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어.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친구가 푸념하듯 말했다. 30대 후반이 되자 갑자기 길을 잃은 기분이라고 했다. 남들이 안정적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마음이 헛헛하다 말했다. 좋아하는 일,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릴 때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며 그것이 심각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마흔에 가까워진 지금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는 친구들도 많고, 현재 하는 일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나는 그 주인공처럼 한 가지 분야에 열정을 바쳐 최고가 되는 이들이 부러웠다.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하는 일이 있다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정을 쏟아붓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만화 속 주인공도 아니었고, 천재도 아니었다. 열정도 재능도 충분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미래의 직업을 명확히 생각한 적 없이 공부했다. 교실 한구석에 앉아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그림에 재주가 없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에야 진로에 대해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상태임을 깨달았다.
- 다빈치가 소묘한 <인체 비례도(비트루비우스적 인간)>를 보면 그의 관심이 얼마나 다양하고도 비상했는지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Pollio)가 쓴 <건축 10서>의 3장 [신전 건축] 편을 다빈치가 읽고 그려낸 작품이다. 비트루비우스는 세계의 축소판인 인체의 비례에 따라 신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글을 남긴 바 있었다. 다빈치는 그 원문을 보며 실제 모델을 데려다 눈금자를 들이댔다. 측정한 결과를 글로 적어둔 다음, 이를 그림으로 옮겼고 자세한 메모도 남겨두었다. 다빈치의 메모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배꼽을 중심으로 한 컴퍼스와 같다. 배꼽을 중심으로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이 원처럼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는 비트루비우스의 원문을 응용해 사람 몸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나타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인체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기하학, 건축 등 전반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다빈치의 폭넓은 지식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대목이다.
-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관심이 다방면으로 뻗치는 바람에 약속한 그림을 끝마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은 미완성작으로 끝났다. 그래서 다빈치는 뛰어난 재주에도 일을 끝내지 못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한마디로 산만했다. 그가 남긴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나 <동방박사의 경배> 등 많은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았다. 다빈치는 무려 60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그가 완성한 회화 작품은 많이 잡아도 20점을 넘지 않는다. 한 우물만 파지 못했던 다빈치의 특성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산만함 때문에 완성작은 적었지만 다양한 관심사가 그림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해부학에 미술을 융합해 수준 높은 작품을 남겼다. 자신이 발명한 과학적 성과를 자세한 기록으로 남기는 데 훌륭한 스케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림 그리는 행위에만 집중했다면 이루어내지 못할 결과물을 후대에 남긴 것이다.
- 일생 동안 집중할 만한 일, 열정을 바칠 만한 일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행운아다. 그런 일을 어릴 때부터 단번에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넘치는 재능을 지니고, 엄청난 업적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좋아하는 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생계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행복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극히 소수의 이야기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단번에 찾아내지 못한다. 수많은 분야를 살펴보며 실패와 오류를 거듭하고, 몇 가지 우연을 거친 후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끊임없는 곁눈질과 고민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 그리고 이것저것 곁눈질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세상 모든 행위를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지 않는 일', 단순히 두 부류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 '좋아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 버릴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싫은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 가지 행위를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권태기도 온다.
-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보여주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내가 팔 수 있는 우물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 인간의 유한하고 부질없는 생애를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한 화가가 있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은 17세기 고전파의 대표 화가다. 그가 살던 당시는 바로크 시대로 화려한 장식과 극적인 스타일을 선호했다. 반면 푸생은 이전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에 추구했던 화풍을 따랐다. 그리스·로마 신화, 또는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하여 균형감 있고 안정된 분위기의 작품을 남기는 데 주력했다. 그의 고전주의적 경향은 당시의 예술적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때문에 푸생은 가난을 면치 못했다. 푸생의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이라는 작품 역시 고전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그림이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네 사람이 있다.
- '조건부 행복'은 때로 꿈과 희망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건이 충족되지 않거나, 조건을 이루어도 그 만족이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 대단히 허망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행복이란 하루 중에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루 중에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불행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행복은 만족할 만한 순간을 많이 만드는 것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 푸생의 작품을 접하고 카너먼의 행복론을 알게 된 후, 이제 조건부 행복보다 '시시하고 즉각적인 행복'을 떠올린다. 시간 속에 흩어질 조건이 충족될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미래의 행복보다 지금 움켜쥘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현재의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의 리스트를 작성해본 적도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요리할 때 유튜브로 노래를 켜놓고 신나게 따라 부르기, 하루의 글쓰기를 마친 후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킬킬대며 감상하기, 주말에 홀로 외출해 차 안에서 여유롭게 커피 마시기.
- 집단 초상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회화 양식의 하나로, 현대의 단체 사진과 같이 특정 집단이나 모임의 구성원을 한 화폭에 담아낸 초상화)를 그리며 암스테르담의 인기 화가가 되었다. 더불어 1634년에는 시장의 딸이자 많은 재산을 지닌 여성, 사스키아(Saskia)와 결혼하여 부(富)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인생이었다.
-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 자화상을 꾸준히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자화상 속 렘브란트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면 그가 겪은 인생의 변화 역시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자화상은 '화가의 자서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음 그림은 렘브란트가 그린 <34세의 자화상>과 <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욱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이다. <34세의 자화상>에서 젊은 렘브란트는 팔을 난간 위에 올려두고 자신감 있는 눈빛으로 감상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값비싸고 품위 있어 보이는 옷, 굳게 다문 입술과 또렷한 얼굴선은 자신감을 드러낸다. 당시 렘브란트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돈도 명성도 모두 그의 것인 시대였다. 위엄 있는 표정과 자신감 있는 포즈가 그의 전성기를 짐작하게 한다.
- 그러나 영광의 시대는 영원하지 않았다. 이 그림을 그린 지 2년후 아내인 사스키아는 한 살 된 막내아들을 남기고 하늘로 갔다. 렘브란트와 사스키아는 네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대부분 어린 나이에 죽고 막내아들인 티투스(Titus)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훗날 티투스마저 렘브란트보다 먼저 사망한다. 렘브란트에게는 어려움이 계속 닥쳐왔다. 집단 초상화 <야경>이 분위기가 어둡고 인물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림 주문자에게 외면당한 이후, 그림 주문이 점차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감각이 없이 돈을 낭비하며 생활하다 1656년 결국 파산하였다. 가지고 있던 집과 재산도 모두 빼앗겼다. 죽은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길러주던 유모와 함께 살기도 했지만 재혼하면 유산 상속권을 박탈한다는 아내의 유언 때문에 결혼하지 못했다. 렘브란트를 둘러싼 스캔들은 그의 명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경제적 어려움은 갈수록 더해져 1662년에는 아내 사스키아의 묘지 터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극빈한 생활이 이어졌다.
- 그럼에도 렘브란트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화상도 매년 그렸다. 그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렘브란트의 노년기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어둠 속에 있는 화가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 듯한 자세로 기괴하게 웃고 있다. 이 그림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을 제욱시스(Zeuxis)와 동일시하고 있다. 제욱시스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노파를 그리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숨이 막혀 죽었다는 그리스의 화가다. 자화상 속 주름진 얼굴과 무너진 얼굴 선, 기묘하게 웃는 표정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젊은 시절 자신만만했던 자화상 속 인물과 같은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러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젊은 시절과 다르게 달관한 표정이 눈에 띈다. 34세의 자신만만하던 화가는 거친 붓질의 그림 속에서 눈빛을 번득이는 노인이 되었다.
- 파르미자니노가 활동하던 시대는 16세기였다. 르네상스 시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와 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이미 엄청난 작품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양식을 본받아 이상적이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인체 비례나 구도가 안정되고 균형 잡혀 있었다.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와 라파엘로의 <성모자>를 비교해보면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파르미자니노가 활동할 당시 미술이 더 완벽해지기 위해 목표로 할 만한 지향점은 없어 보였다.
- 이때 젊은 미술가 중 몇 명이 완벽한 조화를 꾀하던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포기하고 기발하고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파르미자니노와 같이 인체를 위아래로 늘린 듯이 길쭉한 모양, 비뚤어진 원근법,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특이한 포즈나 현실 세계와 다른 색채 등을 특색으로 하는 미술 양식을 선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이 선보인 미술 양식을 마니에리슴(프랑스어로 마니에리 manie rismé, 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스모 manierismo)이라 부른다. 마니에리즘은 시대적으로 르네상스 시기에서 바로크 시대 사이에 위치했던 예술 양식이다. 파르미자니노는 이 마니에리즘의 선구자였으며, 16세기 중반부터 후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 양식이 유행했던 데에는 시대적 배경도 있었다. 신대륙이 발견되며 상업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던 시기였기에 이탈리아의 부흥기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더불어 유럽 전체가 종교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휩싸여 있던 시기였다. 비평가들은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경제적 상황과 예술가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마니에리슴 양식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석한다.
- 마니에리즘 양식은 뒤이은 바로크 시대의 사람들에게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애초에 마니에리즘의 어원 자체가 '손'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마노(mano)'에서 왔다고 한다. 창의성을 발휘하기보다 손재주를 부리는, 기교만 부각된 과장된 수법을 의미하는 사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체 비례나 구도가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점도 이런 비판을 받는 데 한몫했다. 후대의 사람들로서는 르네상스 미술 양식을 모방하는 듯 보이면서도 조화와 균형이 맞지 않는 마니에리즘 미술 양식이 다소 괴상해 보였을 것이다. 이런 시선은 부정적 평가로 이어졌다. 후일 마니에리즘이라는 이름이 관행을 유지하다가 빠지게 되는 '권태로움', '현상을 유지하는 경향'을 뜻하는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영어 단어로 이어지게 된 것 역시 이런 부정적 평가와 관련이 있다. 마니에리즘은 왜곡된 형태를 그린 뻔하디 뻔한 예술 양식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다시 살펴보자. 정통적인 화법을 피하고 싶어 했던 화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성모의 길쭉한 목과 손가락, 포즈는 안정된 형태의 것이 아니더라도 특유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다.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맞춘 아름다움만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 방식이 아님을 <긴 목의 성모>는 보여주고 있다.
- 난 스무 살 무렵부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 같은 키워드에 관심을 가졌다. 내 모습 중 어떤 부분은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때부터 심리학에 끌렸던 듯싶다. 김형경 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는 소설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소설을 통해, 난 어린 시절의 애착 형성이 한 인간의 생애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심리학 책을 찾아볼수록 '과거'라는 말뚝에 매여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과거의 상처를 머릿속으로 헤집다 보면 아득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은 오래전에 겪은 것이고, 이미 넘어간 책장이었다. 발버둥 쳐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무력감이 들었다. 평생 아등바등해도 유년 시절에 생긴 결핍의 구멍을 평생 메꾸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 아이를 키우면서 내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아이의 모습에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겹쳐지면 아이가 너무나 애처로웠다. 또, 아이의 행동에 불쑥 화가 튀어 오르는 순간은 여지없이 내 어린 시절의 상처나 결핍이 연상되는 때였다. 육아 프로그램이나 육아서를 들여다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와 결핍이 육아를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내가 겪은 결핍의 기억을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종종 불안해졌다.
- 무기력감에 휩싸인 내 마음을 잡아끈 작품이 있다. 몰입이 주는 기쁨을 표현한 <아이들의 놀이>라는 그림이다. 이 작품을 그린 피터르브뤼헐(Pieter Burvegel de Oudle, 1525-1569)은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플랑드르는 오늘날의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14세기와 15세기부터 상공업의 발전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룬 곳이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 <플란다스 개>의 배경이 된 곳도 플랑드르 지방이다. 15세기에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한 플랑드르 지역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을 그린 얀 반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 같은 대가들의 활동으로 예술적 전통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브뤼헐이 활동하던 당시 개신교 지역이었던 플랑드르 지역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지배를 받으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스페인은 네덜란드의 신교를 탄압하고, 이곳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브뤼헐은 고국의 힘겨운 현실을 암시적으로 그림에 담아냈다. 때로는 한걸음 물러나 대자연의 풍경이나 농민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특히 농민들의 생활 모습을 주제로 한 풍속화를 많이 그렸기에 '농부의 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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