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집 1

일루젼 2023. 1. 1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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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  햇살과나무꾼

빌헬름 페데르센 / 에드먼드 뒤락 / 윌리엄 히스 로빈슨 / 카이 닐센 / 해리 클라크
출판 : 시공주니어 
출간 : 2010.08.15 


       

황금기의 일러스트와 함께 즐겨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다. 펜드로잉도, 컬러 일러스트도 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는데, 기대보다는 적은 수의 일러스트들이라 다소 아쉬웠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카이 닐센(또는 카이 닐슨)의 경우 특징이 드러날 법한 일러스트는 실려있지 않았던 점. 1권에서의 컬러 일러스트는 뒤락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무척 아름다웠지만 개인적인 기대에는 맞지 않았다. 

 

안데르센의 동화가 그림 형제나 오스카 와일드 같은 다른 작가들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정받지 못하고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찬미가 두드러진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때때로 형태를 바꾸어 가며 등장하는데, 급작스러운 신분의 상승이나 공주와의 결혼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보답받지 못하는 순수'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부분을 안데르센이 자기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도 그 해석에 동의한다. 

 

오히려 놀라운 점은 그에 비해 간간히 드러나는 잔인함이나 비공평성이다. <부시통>의 경우 병사는 아무렇지 않게 최초의 약속을 어기고 부싯돌과 통을 빼앗는다. 자신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을 추구하지 말라거나 남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교훈으로 삼기에는, 그 자신은 아이의 도움을 통해 부시통을 되찾는다. 이는 '적합하지 않은 상대'로부터의 취득은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과연 그러한지는 독자들이 판단해볼 몫이다. 

(부모의 원수이자 납치범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니,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묘한 느낌이다.)

 

그러나 저작들은 그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또 초기의 각색 동화와 후기의 창작 동화는 색채가 많이 달라진다는 점도 고려해보면, 일단은 흥미로운 부분에 집중해서 읽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즐겁게 읽었다.  

        

 


 

(좌) 해리 클라크 - 행복의 덧신 (우) 빌헬름 페데르센 - 인어공주

 

 

    

- 하지만 오늘날 '동화의 임금'의 어린 시절은 달콤하지 않았다. 안데르반은 지독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으며, 어디 한 군데 의지할 곳 없어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이끌어 줄 후원자를 찾아 나서야 했다.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 어머니는 남의 집에서 세탁 일을 하는 청소부였으며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해 아들 교육에는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여기에 할아버지는 정신병원에서 오랫동안 투병을 했고, 할머니는 자신을 귀족의 후예라고 주장하던 몽상가였다고 전해진다. 소년 안데르센은 할아버지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거리를 쏘다닐 때는 친구들에게 들켜 놀림감이 될까 봐 늘 두려워했으며, 할아버지의 병이 유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도 한다.

 

- 이런 불안한 환경 속에서 자란 안데르센은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채,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대부분 혼자 공상하거나,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짓거나, 인형 옷을 만들어 연극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의 이런 남다른 가족사는 <엄지 아가씨>, <인어 공주>, <꿋꿋한 주석 병정> 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들과 다르다는 소외감 속에서 상처받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안데르센 자신의 이야기와 다름없다.

 

- 수많은 좌절과 고난 속에서 안데르센의 이름을 세상 곳곳에 알린 건 그의 문학 작품이다. 안데르센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철자와 문법을 틀려 비웃음 사기 일쑤였고, 별 볼일 없는 시골 출신이란 멍에에 갇혀 늘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불운했던 환경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1835년 30세에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발표한다. 

 


 

- "나더러 저 나무 안에 들어가서 대체 뭘 하라는 거요?" 
"돈을 가지고 오는 거지. 잘 들어 봐. 나무 밑에 내려가면 넓은 복도가 나올 게야. 아주 환하지. 등불이 수백 개나 밝혀져 있으니까. 거기에 문이 세 개 보일 테니 그 문을 열어 봐. 열쇠는 열쇠 구멍에 꽂혀 있어. 먼저 첫 번째 방문을 열면 한가운데 커다란 상자가 보일 거야. 그 위에는 눈알이 찻잔만 한 개가 앉아있지. 하지만 겁먹을 건 없어. 내가 푸른색 바둑판무늬 앞치마를 줄 테니, 그 앞치마를 바닥에 깔고 잽싸게 그 위에 개를 옮겨놓으라고. 그러고 나서 상자를 열고 갖고 싶은 만큼 돈을 꺼내면 돼."

 

- "이 부시통은 대체 어디 쓰려는 거요?" 
요술쟁이 할멈이 대꾸했어요.
"그런 건 알 거 없어! 당신은 돈을 손에 넣었잖아. 어서 부시통이나 내놔!"
"잔말 말고 어디에 쓰는 건지나 빨리 말해! 안 그러면 이 칼로 목을 날려 버릴 테다!"

 

- 하지만 여관의 하인은 병사의 장화를 닦으면서 부자 나리의 장화치고는 너무 낡았는 걸 하고 생각했어요. 그야 당연하죠. 아직 새 신을 사지 않았으니까요. 

 

- 개는 공주님을 등에 업고 병사네 집 벽을 뛰어올랐어요. 궁전에서부터 줄곧 메밀가루가 솔솔 떨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에요. 아침이 되자 임금님과 왕비님은 간밤에 딸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당장 병사를 붙잡아 지하 감옥에 처넣었답니다. 병사는 지하 감옥에 앉아 있었어요. 아, 얼마나 어둡고 음침한지요! 게다가 "내일이면 너는 사형이다!"라는 소리마저 들었으니!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죠. 더구나 부시통은 집에 두고 왔지 뭐예요. 

 

- "얘, 꼬마야, 그렇게 서두를 거 없어. 내가 가기 전에는 시작하지 않을 테니까. 그보다 우리 집에 가서 내 부시통 좀 갖다 줄래? 그럼 4 스킬링(덴마크의 옛 화폐 단위)을 줄게. 하지만 빨리 갖다 줘야 돼!" 
구둣방 꼬마는 스킬링이 갖고 싶어서 쌩하게 뛰어가 병사에게 부시통을 갖다 주었지요. 자,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 임금님이 말했어요. 
"아, 안 돼. 살려 줘!"
하지만 가장 큰 개가 임금님과 왕비님을 붙잡아 다른 신하들처럼 휙 날려 버렸어요. 그러자 병사들은 잔뜩 겁을 먹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어요. 
"병사님, 우리 임금님이 되어 주세요! 부디 아름다운 공주님을 왕비로 삼아 주십시오!"

- 공주님은 구리 궁전에서 나와 왕비님이 되었는데, 그게 영 싫지만은 않았죠. 결혼 잔치는 무려 일주일이나 이어졌어요. 그동안 개 세 마리도 잔칫상에 둘러앉아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답니다. 

 

- <부시통>

 

- "밖에 있는 마차에 타고 있어요. 그런데 이리로 모시고 들어올 수가 없어요. 미안하지만 우리 할머니한테 벌꿀술 한 잔만 갖다 주시겠어요? 귀가 먹었으니까 큰 소리로 말해야 할 거예요."
"아, 그러지요."
주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커다란 잔에 벌꿀술을 따라 마차 안에 있는 죽은 할머니에게 들고 갔어요.
"할머니, 손자가 벌꿀술을 갖다 드리라는군요."
하지만 죽은 할머니는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어요.

 

- <작은 클라우스와 큰 클라우스>

 

- "다들 성안에 있단다. 임금님이 신하들을 데리고 도시로 돌아가시면, 정원에 있던 꽃들은 당장 성안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즐겁게 놀거든. 아, 이다한테도 한번 보여 주고 싶어!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장미꽃 두 송이가 임금님과 왕비님이 되어 왕좌에 앉지. 붉은 맨드라미들은 양쪽에 죽 늘어서서 인사하고. 이 꽃들은 왕의 시종이거든. 이윽고 아름다운 꽃들이 줄줄이 들어오면 무도회가 시작되는 거야. 젊은 해군 사관후보생인 푸른 제비꽃은 히아신스랑 사프란한테 '아가씨!' 하고 말을 걸고는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지. 튤립이랑 커다란 노란 백합들은 나이 많은 부인들인데, 꽃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무도회가 우아하게 치러지도록 신경을 쓴단다."

 

- "하지만 임금님의 성안에서 춤춰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
학생이 대답했어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걸. 물론 밤이면 가끔씩 늙은 성지기가 커다란 열쇠 꾸러미를 짤까닥거리며 둘러볼 때도 있지. 하지만 열쇠 소리가 들리면 꽃들은 금세 쥐 죽은 듯 조용해져서 기다란 커튼 뒤에 숨거든. 그러고는 얼굴만 내밀고 있는 거야. 늙은 성지기는 '웬 꽃향기지?'하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단다." 

 

- "와, 신기해라! 그럼 나도 꽃을 볼 수 없겠네?" 
그러자 학생이 말했어요. 
"넌 볼 수 있어. 이다음에 거기 가거든 잊지 말고 성의 창문을 들여다보렴. 그럼 틀림없이 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오늘 들여다봤을 때는 늘씬한 노란 수선화가 소파 위에 기다랗게 누워있더라. 자세히 보니까 시녀였어."

 

- "갈 수 있고말고! 마음만 먹으면 날아갈 수 있으니까. 이다도 나비 본 적 있지? 빨강 나비, 노랑 나비, 하양 나비, 마치 꽃 같잖아? 사실 그건 원래 꽃이었어. 꽃이 줄기에서 떨어져 높은 하늘로 올라가, 꽃잎을 작은 날개처럼 파닥이면 공중에 뜨는 거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만 있으면, 낮에도 날아다녀도 되고 집에 돌아가 줄기 위에 앉아 있지 않아도 돼. 그러면 꽃잎은 진짜 날개가 된단다. 이다가 본 건 바로 그거야. 하지만 식물원의 꽃들은 아직 성에 한 번도 안 가 봤을지도 몰라. 밤마다 성에서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를 수도 있고, 자, 내가 이다한테 좋은 걸 가르쳐 줄게. 아마 식물학 선생님이 깜짝 놀라실 거야. 이다도 그 선생님 잘 알지?"

 

- 그때 탁자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어요. 이다가 보니까, 그건 사육제(기독교에서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열리는 축제, 사순절은 참회하고 금욕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사육제 때 신나게 먹고 마시는 전통이 있다)의 자작나무 다발(꽃과 인형으로 꾸민 자작나무 가지 다발. 덴마크에서는 사육제의 월요일 아침에 아이들이 이것으로 부모님을 깨우는 관습이 있다)이 뛰어내리는 소리였어요. 자기도 꽃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 <어린 이다의 꽃>

 

- 옛날에 마음씨 곱고 친절한 늙은 시인이 있었어요. 폭풍이 몰아치고 장대비가 퍼붓는 어느 날 밤이었어요. 늙은 시인은 따뜻한 난롯가에 편안히 앉아 있었죠. 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사과가 칙 소리를 내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었고요. 

 

- <장난꾸러기>

 

- 늙은 임금님은 슬픈 일이 거듭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일 년에 한 번씩 자신의 모든 병사들과 함께 하루종일 꿇어앉아 공주가 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도통 효과가 없었지요. 이곳 할머니들은 술을 마실 때 새까맣게 만들어 마셨어요. 그만큼 다들 슬퍼하고 있다는 표시였지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거든요. 

 - "정말 몹쓸 공주네요! 그런 사람은 회초리로 맞아야 돼요. 맞아도 싸. 내가 늙은 임금님이었다면 호되게 때려 줬을 거예요." 
그때 집 밖에서 만세 소리가 들렸어요. 공주가 지나가고 있었던 거예요. 공주는 소문대로 빼어난 미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주의 고약한 성격도 잊어버린 채 만세를 외쳤답니다. 새하얀 비단옷을 입고 황금 튤립을 든 아름다운 소녀 열두 명이 먹물처럼 새까만 말을 타고 공주를 따르고 있었어요. 공주는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꾸민 눈처럼 새하얀 말을 타고 있었어요. 금실로 짠 옷을 입고 태양처럼 빛나는 채찍을 들고서요. 또 머리에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금관을 쓰고, 아름다운 나비 날개를 수없이 이어 만든 망토를 두르고 있었죠. 하지만 공주는 그 아름다운 옷보다 훨씬 아름다웠답니다. 

- 요하네스는 공주를 본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공주의 얼굴은 아버지가 죽던 날 밤 꿈에서 본, 금관을 쓴 아름다운 소녀와 똑같았거든요. 공주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요하네스는 그만 첫눈에 반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공주가 답을 맞히지 못한 사람의 목을 매달거나 내리치는 못된 마녀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 요하네스가 문을 열자, 늙은 임금님이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자수가 놓인 슬리퍼를 신고 나왔어요. 임금님은 머리에 금관을 쓰고 한 손에는 왕의 지팡이를, 또 한 손에는 황금 구슬을 들고 있었어요. 

 

- "틀림없이 잘될 거예요. 저는 아름다운 공주님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말을 탄 공주가 몸종들을 거느리고 궁전 정원으로 들어왔어요. 왕과 요하네스는 공주를 맞으며 인사를 했어요. 아름다운 공주가 손을 내밀자, 요하네스는 공주가 더욱 좋아졌어요. 사람들 말처럼 공주가 마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죠.

 

- 요하네스는 앞일을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걱정은커녕 설레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공주만 생각했죠. 요하네스는 하느님이 자기를 도와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도와주실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요. 그래서 아예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춤을 추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동무가 기다리는 여관으로 돌아왔답니다. 

 

- 새로운 청혼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벌써 온 도시에 퍼졌고 도시 전체가 깊은 슬픔에 빠졌어요. 극장은 문을 닫고, 과자 가게 아주머니들은 아기 돼지 설탕 과자에 검은색 깃을 달고, 임금님과 모든 성직자는 교회에서 기도를 올렸죠. 어디를 둘러봐도 슬픔뿐이었어요. 요하네스가 다른 청혼자들보다 나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 공주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눈알을 잊지 않겠다고 했어요. 괴물은 산을 쩍 갈라 공주를 궁전으로 날려 보냈어요. 이번에도 길동무는 공주를 쫓아가며 회초리를 마구 휘둘렀고요. 공주는 지독한 우박이구나 생각하고 한숨을 푹 쉬며 서둘러 날아가 자기 방 창문 안으로 들어갔죠. 한편 길동무는 요하네스가 자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날개를 떼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어요.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금세 곯아떨어졌답니다. 

 

- "뭐라고 대답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아마 아저씨가 꾼 꿈은 틀리지 않을 거예요. 난 하느님이 늘 나를 도와주실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해 둘게요. 만일 답을 맞히지 못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테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입맞춤을 했어요. 

 

- <길동무>

 

- 인어 공주는 왕자님 때문에 가족과 고향,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버리고 날마다 한없는 고통을 참아 왔어요. 하지만 왕자는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어요. 왕자와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도, 깊은 바다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에요. 이제 인어 공주를 기다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는, 영원히 깜깜한 밤뿐이에요. 인어 공주에게는 영혼도 없고, 영혼을 얻으려던 꿈도 깨어졌으니까요. 

 

- 사람들은 자정이 넘도록 배 위에서 떠들썩하게 즐겼어요. 인어 공주는 마음으로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웃으며 춤을 추었어요. 왕자는 아름다운 신부에게 입 맞추었고 신부는 왕자의 검은 머리를 어루만졌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아름다운 천막 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지요. 

- 단도를 쥔 인어 공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그 순간 인어 공주는 단도를 바다 멀리 던져 버렸어요. 단도가 떨어진 곳 주위가 붉게 빛나며 바닷속에서 핏방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인어 공주는 벌써 반쯤 흐릿해진 눈으로 다시 한번 왕자를 바라본 뒤 바다에 몸을 던졌어요. 자기 몸이 녹아 거품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 그때 바다 위로 해가 떠올랐어요. 햇빛이 죽음처럼 차가운 바다 거품을 포근하고 따사롭게 비추었어요. 인어 공주는 죽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반짝이는 해를 올려다보니 하늘 한복판에 뭔가 투명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수없이 떠다니고 있었어요. 그 너머로 배의 흰 돛과 하늘의 붉은 구름이 보였고요. 투명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악이었지만, 영혼의 음악이라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어요. 그것들의 모습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것들은 날개도 없이 공기처럼 가볍게 하늘을 둥둥 떠다녔어요. 인어 공주는 자신의 몸도 점점 가벼워져서 거품 속에서 빠져나와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 "공기의 딸들이 있는 곳이죠! 인어 아가씨에게는 죽지 않는 영혼이 없어요.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결코 영혼을 얻을 수 없죠.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다른 힘에 의지해야 해요. 우리 공기의 딸들도 죽지 않는 영혼이 없어요. 하지만 좋은 일을 하면 얻을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찌는 듯이 뜨거운 공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가는 더운 나라로 날아가 시원한 바람이 되어 줘요. 꽃향기를 흩뿌려 사람들 기운을 북돋워 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300년 동안 꾸준히 좋은 일을 하면, 우리도 인간처럼 죽지 않는 영혼을 얻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답니다. 가엾은 인어 공주님, 당신도 우리처럼 온 마음을 다해 노력했어요! 그리고 고통을 참고 견뎌 공기의 정령의 세계로 올라왔죠. 앞으로 착한 일을 계속한다면 300년 뒤에는 당신도 죽지 않는 영혼을 얻을 수 있어요." 


- <인어공주>

 

- "나, 이 얘기도 꼭 해야겠어요. 사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선물로 덧신 한 켤레를 받았어요. 그리고 그걸 인간 세상으로 가져가라는 분부를 받았죠. 그 덧신은 신는 순간 그 사람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시대로 데려다주는 신비한 힘을 가졌어요. 때와 장소에 대한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준답니다. 이제 드디어 인간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러자 슬픔의 요정이 말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자유지만, 덧신을 신은 사람은 행복하기는커녕 불행해져서 덧신을 벗었을 때를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게야."
"어머, 무슨 그런 말씀을! 좋아요, 그럼 이 덧신을 문 옆에 놓아두자고요. 자기 것인 줄 알고 이 덧신을 신은 사람은 분명히 행복해질 테니까요!"

 

- 밤이 깊었습니다. 크나프 고문관은 한스 왕 시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그만 자기 덧신 대신 행복의 덧신을 신고 잔칫집을 나와서 익스터 거리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덧신의 마법으로 한스 왕 시대에 와 있었던 터라, 고문관은 이내 진창에 발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 시대에는 아직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 고문관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반쯤 열린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지난날 술집을 겸하던 여관이었습니다. 실내는 독일 홀스타인 지방의 집처럼 흙바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뱃사람과 코펜하겐 사람, 몇몇 학자들이 맥주 거품을 튀기며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터라 고문관이 들어온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 "실례합니다. 사실은 제가 많이 아파서 그러는데, 크리스티안하운까지 가는 마차를 불러 주실 수 있을까요?" 
여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문관을 빤히 바라보더니 독일 말로 말을 걸었습니다. 고문관은 여주인이 덴마크 말을 모르나 보다 생각하고 자기도 독일 말로 다시 한번 부탁했습니다. 여주인은 고문관의 이상한 옷차림과 이상한 말씨로 미루어볼 때 외국인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어딘가 아프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물 한 잔을 떠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집 밖 우물에서 떠 온 물은 소금기가 있어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 여주인은 고문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무튼 종이를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독일 쾰른에서 벌어진 하늘의 이변을 묘사한 목판화였습니다. 고문관이 말했습니다.
"이건 아주 오래된 그림이잖아!"
고문관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렇게 오래된 목판화를 보자 기분이 확 좋아졌습니다.
"이 귀한 그림을 어떻게 손에 넣었죠?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네요. 물론 그림의 내용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지만, 이런 하늘의 이변을 요즘 말로는 오로라라고 하죠. 전기 작용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더군요."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고문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오, 이런, 당신은 위대한 학자시군요!" 

 

- 고문관은 지금껏 이토록 야만적이고 무식한 사람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전 이교도들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죠. 
'이렇게 끔찍한 꼴을 당하기는 난생처음이야!'

- 2분 뒤 고문관은 크리스티안하운으로 가는 합승 마차에 앉아 있었습니다. 고문관은 방금 전까지 겪었던 불안과 공포를 떠올리며 지금의 행복에 가슴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이런저런 나쁜 점이 있지만 조금 전까지 고문관이 있던 시대에 견준다면 훨씬 좋은 시대입니다. 고문관은 현명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 "세상은 참 요지경이야. 중위는 따뜻한 침대에 눕고 싶으면 얼마든지 누울 수 있는데도 저렇게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저런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겠지. 저 사람은 딸린 아내도 자식도 없어. 또 밤마다 잔치를 즐기지. 아,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 야경꾼이 소원을 말하는 순간 덧신이 효력을 나타냈습니다. 야경꾼이 중위의 몸과 영혼 속으로 들어간 거죠. 야경꾼은 조그만 장밋빛 종이를 들고 이 층 방 안에 서 있었습니다. 종이에는 시가, 그러니까 중위가 직접 지은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쯤은 시를 짓고 싶어지게 마련이죠. 그리고 그럴 때 마음에 품은 생각을 글로 쓰면 그것이 바로 시랍니다. 중위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이런 시가 적혀 있었습니다.  

 

- 어린 시절 수없이 되뇌었던 말,

"아, 내가 부자라면!"

만약 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군인이 되고 싶네.

칼을 차고 깃털을 단 용맹스러운 군복 차림은 얼마나 멋진지!

마침내 때가 되어 나는 바라던 군인이 되었네.

하지만 역시 부자는 되지 못했네.

신이여, 부디 은총을! 

하지만 이 생각은 역시 가슴에 묻어 두려네. 

가난한 내 앞에는 어두운 운명의 높이. 

신이여, 부디 그녀에게 은총을!
 

- "차라리 저 가난한 야경꾼이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해. 저 사람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를 거야. 저 사람은 가정도 있고 슬플 때 함께 울어 주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아내와 자식도 있잖아? 아, 될 수만 있다면 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 사람이 나보다는 훨씬 행복하니까."  

 

- 바로 그 순간 야경꾼은 다시 야경꾼이 되었습니다. 행복의 덧신 덕분에 중위가 되었지만 정작 되고 보니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원래의 자신이 더 나은 것 같았죠. 이렇게 해서 야경꾼은 다시 야경꾼으로 돌아왔답니다. 

 - "흐음, 별이 떨어지는군. 하지만 아직 많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특히 달을! 달이라면 떨어지지는 않을 텐데, 마누라가 빨래하러 다니는 집의 대학생은 우리가 죽으면 모두 이 별에서 저 별로 날아다닌다지만 그건 순 거짓말이야. 재미있기는 하겠어. 한번 폴짝 뛰어 달에 닿을 수 있다면 몸뚱이는 이 계단 위에 두고 간들 무슨 상관이겠어!" 
세상에는 함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행복의 덧신을 신고 있을 때는 더더욱 신중했어야죠. 자, 그럼 야경꾼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증기의 힘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기차로는 뭍을 달리고 증기선으로는 바다를 달리죠. 하지만 빛의 빠르기에 견준다면 인간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나무늘보나 꾸물꾸물 기어가는 달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은 가장 빠른 경주마보다 1천9백만 배나 빨리 달리니까요. 그런데 전기는 빛보다 더 빠릅니다. 인간이 죽는 것은 우리 심장이 전기 충격을 받기 때문인데, 육체를 떠난 영혼은 전기의 날개를 타고 날아갑니다. 햇빛은 1억 5천만 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하는 데에 8분 남짓 걸릴 뿐이지만, 전기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영혼은 같은 거리를 더 빠른 시간에 날아갈 수 있죠.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네 집과 자기 집,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운 바로 옆집과 자기 집 사이의 거리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그 대신에 심장이 전기 충격을 받으면 이 세상에서는 더는 몸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야경꾼처럼 행복의 덧신을 신지 않았다면 말이죠. 

- 상상이 잘 안 된다면 물이 든 컵에 달걀 흰자위를 떨어뜨려 보세요. 딱 그것처럼, 이 마을은 몰랑몰랑했습니다. 탑도 둥근 지붕도 돛 모양을 한 발코니도 모두 옅은 공기 속에서 투명하게 아른거렸고요. 그리고 까마득히 먼 뒤쪽에 새빨간 큰 공 같은 지구가 떠 있었답니다.  

 

- 하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영혼은 육체 없이 혼자 뭔가를 할 때는 더없이 현명한 법이니까요. 영혼이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 건 언제나 육체 때문이랍니다. 

 

- 우리 할머니는 매우 지혜로운 분. 
'옛날' 같으면 영락없는 화형감.
뭐든 모르는 게 없고
내년 일도 훤히 보시지.
아니, 몇십 년 앞의 일까지도

굉장한 분이라네.
하지만 결코 말씀해 주시지 않네.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까요?
뭔가 진기한 사건이라도? 너무 궁금해요!
나의 운명이, 예술과 나라의 미래가.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

 

- "그래도 자네 족쇄는 빵나무에 매여 있잖나. 그러니 자네들은 내일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 나이가 들면 연금도 나오고 말일세." 
서기가 말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네는 행복한 사람이야. 집 안에 틀어박혀 시를 짓는 건 얼마나 즐거울까? 세상 사람들한테 사랑도 받고, 누구한테 굽실거릴 필요도 없잖은가. 자네도 한번 법정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받아 적어 보라고." 
시인은 고개를 내저었고 서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쪽 다 자기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죠. 

 

- 그렇다고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시인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랍니다. 보통 사람 중에도 세상에 알려진 위대한 시인보다 훨씬 더 시인다운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다만, 시인은 영혼의 기억력이 좋아서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이 시인과 보통 사람의 차이죠. 하지만 보통 사람이 하루아침에 천재가 되는 것은 분명 굉장한 변화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젊은 서기가 그 굉장한 변화를 일으킨 거예요. 

 

- 서기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길가의 벤치에 앉았습니다. 머릿속은 갖가지 생각으로 얽혀 있고 마음은 아주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서기는 저도 모르게 가까이에 있던 꽃 한 송이를 꺾었습니다. 흔해 빠진 데이지였죠. 하지만 이 꽃은 식물학자가 몇 시간씩 강의를 해야 겨우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단 1분 만에 가르쳐주었습니다. 자신의 탄생 비밀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꽃잎을 펼쳐 향기를 뿌릴 수 있게 해 주는 햇빛의 힘을 칭송했습니다. 서기는 문득 살기 위한 투쟁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것도 우리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죠. 공기와 빛은 둘 다 꽃의 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꽃은 빛에게 끌렸고 빛을 바라보았습니다. 빛이 사라지면 꽃은 꽃잎을 닫고 공기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습니다.

 

- 꽃이 말했습니다. "나를 아름답게 꾸며 주는 건 빛이에요!"

시인이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하지만 네가 숨을 쉴 수 있는 건 공기 덕분이야." 

 

-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하지만 정말 신기해.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꾸면서 이게 꿈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다니. 내일 아침 눈을 뜬 뒤에도 이 꿈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 내 기분은 여느 때와 너무 달라. 모든 것이 이토록 또렷이 보이고 생생하게 느껴질 수가 없어. 하지만 내일이면 이런 생각들이 어리석게 여겨질 게 뻔해. 지금까지도 신물 나게 겪어 봤잖아. 꿈속에서 보고 들었던 근사한 물건이나 현명한 지혜는 땅속에 사는 작은 요정들의 보물과도 같은 거야. 요정이 갖고 있을 때는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지만 밝은 곳에서 보면 돌멩이거나 파삭파삭 마른 나뭇잎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 아아!" 

 

- 서기는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노래에는 '시'가 깃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시인의 기질이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죠.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한 번에 한 가지만 해야 하듯이 덧신은 한 번에 한 가지씩밖에 하지 못했답니다. 서기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새가 되고 싶어 하자 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가 되는 순간 그전에 가졌던 시인 기질을 잃어버린 거죠. 

 

- <행복의 덧신>

 

 

 

- 이튿날 아침 일찍 왕비는 폭신폭신한 쿠션과 더없이 아름다운 융단이 갖춰진 대리석 목욕탕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두꺼비 세 마리를 잡아 입맞춤을 하고는 그중 한 마리에게 말했어요. 
"엘리사가 탕에 들어오면 그 애 머리 위에 올라앉아라! 너 같은 굼벵이가 되도록 말이다!"
이번에는 두 번째 두꺼비에게 명령했어요.
"너는 그 애 이마에 달라붙어라! 너처럼 흉측해져서 아버지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지막으로 세 번째 두꺼비에게 속삭였어요.
"너는 그 애 가슴에 앉아라! 그 애가 나쁜 마음을 품어 그 때문에 괴로워하도록 말이야."


- 왕비가 두꺼비 세 마리를 깨끗한 목욕탕 안에 풀어놓자 물이 금세 초록색으로 변해 버렸어요. 왕비는 엘리사를 불러 옷을 벗기고 탕에 들여보냈어요. 엘리사가 목욕탕에 몸을 담그자 두꺼비 한 마리가 머리 위에, 또 한 마리가 이마에, 나머지 하나가 가슴에 앉았어요. 하지만 엘리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엘리사가 탕 밖으로 나오자 물 위에 붉은 양귀비꽃 세 송이가 떠 있었어요. 만약 두꺼비들한테 독이 없고 마녀가 입을 맞추지 않았다면 셋 다 붉은 장미꽃이 되었겠죠. 그래도 꽃이 될 수 있었던 건 엘리사의 머리와 이마와 가슴에 앉았기 때문이에요. 엘리사가 워낙 믿음이 깊고 마음이 깨끗해서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 거죠. 

 

- "오빠들을 구할 방법을 알 수 있는 꿈을 꾸고 싶어!" 
엘리사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엘리사는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기도했어요. 문득 엘리사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신기루의 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눈부시게 아름다운 요정이 엘리사에게 다가왔어요. 요정은 언젠가 숲 속에서 나무딸기를 나눠 주며 금관을 쓴 백조 이야기를 해 주던 할머니와 닮아 있었어요.

 

- <들판의 백조>

 

- 아, 동굴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신비롭게 생긴 갖가지 커다란 바위들이 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며 천장에 매달려 있었어요. 어떤 곳은 기어가야 할 만큼 좁았고 어떤 곳은 동굴을 빠져나왔나 싶을 만큼 천장이 높고 넓었죠. 그곳은 소리가 나지 않는 파이프 오르간이나 깃발마저 화석이 된 지하 납골당 같았답니다. 

 

- "우리는 죽음의 길을 지나 낙원의 뜰로 가는 건가?"

동풍은 대답은 하지 않고 앞쪽만 가리켰어요. 왕자가 앞을 보니 더없이 아름다운 푸른빛이 자기 쪽으로 뻗어 오지 않겠어요? 머리 위의 커다란 바위가 서서히 안개처럼 변하더니 마침내 달 밝은 밤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처럼 투명해졌어요. 언제부턴가 동풍과 왕자는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산들바람 속에 서 있었어요. 공기는 높은 산꼭대기에 와 있는 듯 상쾌했고 사방에는 골짜기에 피는 장미꽃 향기가 감돌았죠. 거기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물이 어찌나 맑던지 꼭 공기처럼 보였어요. 시내에는 금물고기와 은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고, 밑바닥에서는 새빨간 뱀장어가 몸을 꿈틀댈 때마다 푸른 불꽃을 튀기며 놀고 있었어요. 물 위에는 커다란 수련이 떠 있었는데 잎이 무지개 색으로 반짝였어요. 불꽃같은 오렌지색 꽃잎은 기름을 먹고 타오르는 등잔불처럼 물을 먹고 타오르고 있었고요. 시내에 놓인 대리석다리는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한지 레이스나 유리로 만든 것 같았죠. 그 다리 건너에 행복의 섬이 있었어요. 바로 그곳에 풍요로운 낙원의 뜰이 있답니다. 

 

- 동풍은 불사조의 글이 적힌 종려나무 이파리를 요정에게 건네주었어요. 그러자 요정의 눈이 금세 기쁨으로 빛났죠. 요정이 왕자의 손을 잡고 궁전 안으로 데리고 갔어요. 궁전 벽은 햇빛을 담뿍 받고 있는 아름다운 튤립 꽃잎 색을 띠고 있었어요. 천장은 빛나는 커다란 꽃이었는데,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으면 꽃받침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았죠. 왕자는 창가로 가서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뱀이 휘감겨 있는 지혜의 나무와 그 옆에서 있는 아담과 이브가 보이지 않겠어요?  

 

- "저 두 사람은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았나요?"

요정이 빙긋이 웃으며 시간이 각각의 창에 그림을 아로새겨놓았다고 말해 주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림과 달리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림 속의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대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움직인다는 거예요. 마치 거울에 비치는 풍경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죠. 왕자는 또 다른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거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꿈이 보였어요. 사다리가 하늘까지 곧장 뻗어 있고 커다란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죠. 세상에 일어난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유리창 안에서 살아 움직였어요. 오직 시간만이 이처럼 신비로운 그림을 유리창에 새겨 놓을 수 있지요.  

 

- 큰 방 한가운데에는 탐스러운 가지를 늘어뜨린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었는데, 나무에는 크고 작은 황금 사과가 초록잎 사이사이에 오렌지처럼 달려 있었어요. 바로 이것이 아담과 이브가 열매를 따 먹었던 지혜의 나무였어요. 이파리에서는 반짝이는 붉은 이슬이 똑똑 떨어졌는데 꼭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죠. 

 

- "영원히 이곳에서 지낼 수 있나요?"
요정이 대답했어요.
"그건 당신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당신이 아담처럼 꾐에 빠져 금지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여기 머물러도 좋아요."

그러자 왕자가 말했어요.
"나는 결코 지혜의 나무 열매인 사과에 손대지 않겠습니다. 이곳에는 그것만큼 아름다운 열매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 "좋아요, 스스로를 시험해 보세요. 혹시 자신이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을 이곳에 데려온 동풍과 함께 돌아가세요. 동풍은 이번에 돌아가면 앞으로 백 년 동안은 오지 않을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곳의 백 년이 백 시간쯤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유혹이나 죄를 이겨 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죠. 나는 밤마다 당신과 헤어질 때 당신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은 따라와선 안 돼요. 꼼짝도 하면 안 되죠.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당신의 열망은 점점 높아져 결국에는 지혜의 나무가 자라는 큰 방으로 오게 될 거예요. 나는 향긋한 냄새를 흩뿌리는 늘어진 가지 밑에서 잠을 자고 있을 거고요. 당신은 기어이 몸을 구부려 나를 바라보겠지요. 그러면 나는 미소를 지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의 입술이 내 입술에 살짝 닿기만 해도 그것으로 끝이에요. 그 순간 낙원의 뜰은 깊숙한 땅 밑으로 꺼져 버리고 당신은 낙원의 뜰을 영원히 잃고 말아요. 사막의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차가운 빗물이 당신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게 될 거예요. 당신에게는 오직 슬픔과 고통이 남을 뿐이랍니다." 

 

- "자, 이제 다 함께 춤춰요. 나는 맨 마지막에 당신과 춤출 거예요. 해가 지자마자 당신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할 거고요. 하지만 따라와서는 안 돼요. 나는 백 년 동안 밤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거예요. 내 유혹을 뿌리칠 때마다 당신은 힘이 강해져서 마침내 아무렇지 않게 유혹을 이겨 낼 수 있게 되지요. 오늘 밤부터 시작이에요. 그러니 부디 조심하세요.

 

- 왕자의 귀에는 지혜의 나무가 있는 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랑스러운 얼굴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답니다. 
"모든 걸 알아야 해!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이야!"
왕자의 눈에는 어느덧 지혜의 나무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피눈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 별로 보였어요. 왕자의 귓가에는 여전히 "따라와요. 날 따라오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뺨이 붉어지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했죠. 

- "좋아, 가자! 죄 따위가 있을 게 뭐야! 그럴 리가 없어. 어째서 아름다움과 기쁨을 쫓아가선 안 되는 거지? 나는 그 사람이 잠든 모습을 보고 싶어. 입맞춤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없잖아? 난 그런 짓은 하지 않아. 난 강해. 내 의지는 굳어." 

 

- <낙원의 뜰>

 

- "옳지, 방금 엄마한테 좋은 수가 생각났어. 엄마는 인간의 아기들이 잠들어 있는 연못을 알고 있어. 아기들은 황새가 부모한테 데려다줄 때까지 그곳에서 잠을 잔단다. 두 번 다시 꿀 수 없는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말이야. 아기의 부모들은 모두 귀여운 아기를 갖고 싶어 하고, 아이들은 모두 귀여운 동생을 갖고 싶어 하지.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그 연못으로 날아가 짓궂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 아이나 황새를 괴롭히지 않는 아이네 집에 아기를 데려다주자꾸나." 

 

- 모든 것이 어미 황새의 말대로 되었어요. 그래서 황새는 모두 페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지금도 덴마크에서는 그렇게 불리고 있답니다. 

 

- <황새>


  

 

 
안데르센 동화집 1(양장본 HardCover)
안데르센이 남긴 동화들을 완역한『안데르센 동화집』제1권. 안데르센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선별한 단편집「Eventyr og Historier」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들은 물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작들도 포함되어 있다. 각 작품에는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여 작품의 출처, 의의와 배경 등을 알려준다. 또한 안데르센 동화에 처음 삽화를 그린 천재 화가 빌헬름 페데르센을 비롯하여 20세기 초 일러스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에드먼드 뒤락 등의 고풍스러운 그림도 곁들였다. 제1권에는 <인어 공주>, <황제의 새 옷>, <낙원의 뜰> 등 16편을 담았다.
저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출판
시공주니어
출판일
201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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