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고수리 / 김민철 / 김신지 / 무과수 / 스탠딩 에그
이랑 / 이연 / 이유미 / 임현주 / 정문정 / 정지우 / 정지음
출판 : 위즈덤하우스
출간 : 2023.03.22
<요즘 사는 맛>을 2권까지도 읽게 될 줄이야.
이랑과 이연, 그리고 스탠딩 에그라는 내가 편애하는 이름들을 보자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창 무더워지고 있는 요즘에 어울리는 산뜻한 표지가 기분이 좋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부나 모의 글, 바쁜 프리랜서의 글,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글... 저자명의 ㄱㄴㄷ 순에 따라 실린 글들은 개인적으로 딱 마음에 드는 순서로 읽을 수 있었다.
<요즘 사는 맛> 1권이 조금 더 발랄하고 가벼운 느낌이었다면, 2권은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저자 개인의 음식 기호나 최근의 식생활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를 통해 조금 더 먼 지점을 바라보고자 한 느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내면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주부로서의 애환이었으며, 또 어떤 이에게는 '삶'이라는 것을 버텨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맞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그러니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살지, 살기 위해 먹을지 먹기 위해 살지, 지금은 뭐가 제일 먹고 싶은지 같은 것들을 자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더 많은 이들에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절박감에 짓눌려 손 닿는 대로 먹어야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엇을 먹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서 혼란보다는 기쁨과 힘을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때로는 새로운 도전도 해볼 수 있는 충만감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생각한다.
먹을 것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야만 하는 품과, 사라져야만 했던 것들을.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위해 요리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에게 맛있는 한 끼를 먹이는 것에 더 기쁨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정성들여 나를 먹여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즐겁게 읽었다.
- 종종 그런 날 있지 않나요? 분주히 하루를 보내느라 밥 한 끼 챙기지 못하는 날요. 이상하게 그런 날은 배도 별로 고프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의 일, 해결해야 할 과제에 온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겠죠. 겨우 일과의 문제를 해결하면, 일상의 문제가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와 함께 참 요란히도 모습을 드러내죠. 하루 종일 바깥에 시선을 두고 몰두했다면 이제는 나를 살펴야 하는 순간임을, 참다못한 몸과 마음이 알려주는 듯합니다.
그렇게 오늘의 첫술을 뜹니다.
그러자 불현듯 익숙한 문장 하나가 떠오릅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 지금 와서 보니 옛 어른들의 말씀이 다 맞다고 느끼는 건, 제가 그 어른의 나이가 됐기 때문일까요? 그런 거라면 조금 슬프겠지만 사실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제가 밥 한 술에서 얻는 삶의 위로는 진짜니까요. 무얼 위해 하루가 이리 고된지 나조차도 납득하지 못할 때, 저는 그 해답을 이렇게 식탁 위에서 찾기도 합니다. 별것 없는 밥상이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그토록 열심히 사는 이유이자, 바라고 바라던 행복의 종착지 아닐까요.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먹기 위해 살고, 먹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먹는 시간은 매일 반복되는 별거 아닌 일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하루하루를 성실히 지탱해 줍니다.
- 배달의민족 배짱이팀 드림
- 노래를 틀고 한밤에 우동을 삶았다.
'어두운 밤이 다 지나갈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줘- ... 튀김우동이 다 익을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줘-'
- 다시, 노래 같은 대화를 나누며 마주 앉아 따뜻한 우동을 먹었다.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고 우리만의 생활을 꾸려나가며 서로가 서로의 일상이 되는 이런 담백하고 따뜻한 삶이 좋아.
- 입하가 지난 어느 하루, 시장에서 얼음물에 담겨 있는 콩물을 발견했다. 1리터에 6천 원. 달콤하고 진한 고소함이 진득하게 퍼지는 상상만으로도 배가 고파졌다. 저녁엔 콩국수를 만들어 먹어야지. 차가운 콩물을 소중히 껴안고 돌아왔다. 소면을 삶아 그릇에 담고, 오이 토마토 고명 올려 콩물을 부었다. 얼음 몇 알 넣고 그 위에 깨 솔솔 뿌리자, 너무도 간단하게 콩국수가 완성되었다.
- 콩국수의 세계에는 소금파와 설탕파가 나뉘어 있다지만, 우리 집은 땅콩버터파. 콩국수와 땅콩버터가 혼합된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사람들은 안다.
- 호록호록. 다 같이 콩국수를 먹는 사이 해가 길어진 하늘은 분홍으로 저물고 있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연한 풀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산들산들 초록초록. 무언가 흔들리고 자라나는 냄새. 초여름이구나.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나른함.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고마운 하루였다.
- 1초 만에 진짜 좋아하는 사람 알아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방법이라기엔 너무 단순해서 머쓱하지만.
그냥 진짜 맛있는 걸 먹으면 된다.
- 한여름처럼 더운 한낮에 서교동 뒷골목 어느 라멘 집에서 우리는 만났다. 익숙한 골목을 들어서자 낡은 차양 아래 옛날식 유리미닫이문을 단 조그만 가게가 보였다. 외벽에는 '시오' しお, 소금을 뜻하는 일본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시오라멘만 파는 라멘 집. 준과 나는 작업하다가 종종 여기서 만나 시오라멘을 먹었다. 따뜻한 라멘 한 그릇 먹고 나면 이상하게도 속이 편하고 마음이 순해졌다. 다시 평범한 날들 열심히 살아가다가 '아, 시오라멘 먹고 싶다' 문득 떠올리게 되는, 그런 다정한 라멘집이었다.
- 닭을 고아 육수를 내고 소금으로 간한 시오라멘 가늘고 부드러운 면발 담고, 두툼한 차슈와 반숙 달걀 올리고, 간간하니 맑은 육수 부어 그 위에 고슬고슬 다진 파를 뿌려 내어 주는 한 그릇. 따뜻한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었다.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둥둥 뜬 기름이나 눅눅한 튀김 같은 건 없고, 말간 국물로 담아낸 간소한 라멘 차림이 참으로 깔끔하게 담백했다. 이다지도 정갈한 한 그릇이라니.
- 호로록 호로록, 우리는 시오라멘을 먹었다. 사방에 조로로 놓인 부엉이들이 꼭 우리를 지켜봐 주는 것 같았다.
"여기 오면 부엉이가 많아서 좋아요. 일본에선 부엉이를 '후쿠로'라고 부른대요. '후쿠로' 발음이 복을 뜻하는 '후쿠'랑 비슷하대요. 그래서 고생하지 말고 잘살라고 빌어주는 마음으로 부엉이를 선물한다고 해요. 아마 할머니도 부엉이 같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가마 있어 보그라. 준아, 너무 마음고생하지 말고 잘살아라' 하고요."
- 밥 하다가 울어본 적 있다. 너무 하기 싫어서. 글 쓰다가 울어본 적도 있다. 너무 쓰고 싶어서. 실은 설거지하다가도 울어봤다. 살림 안 하고 글만 쓰고 싶어서. 댓바람부터 솔짝솔짝 잘도 우는 나는 일곱 살 쌍둥이 형제를 키우며 글 쓰는 엄마 작가다. 글 쓰다가 해 질 무렵이면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며 초조해한다. '오늘저녁은 뭘 해 먹이지' 하고서.
- 모름지기 특식 요리란 이름부터 길고 멋진 법이니까.
- 우유우유치즈라면 : 냄비에 면을 먼저 끓인다. 꼬들하게 익었다 싶을 즈음 면발을 건져낸다. 그사이 웍에는 우유 많이 라면수프 반만 슬라이스 치즈 두 장 넣어 끓인다. 부르르 국물 끓어오를 때 면이랑 달걀 넣고 휘그덩휘그덩 저어 마저 끓이면, 속 깊은 고소한 맛이 인상적인 우유우유치즈라면 완성!
- 대파대파라면 : 냄비에 면이랑 수프 넣어 끓인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 낙낙히 둘러 냉동실에 소분해 둔 대파 크게 한 줌 넣고 파기름을 낸다. 지글지글 소리가 나면 코끝 간지러울 때까지 후추를 갈아 넣는다. 그날의 스트레스 극복 희망 지수에 따라 페페론치노도 부숴 넣어 파기름을 마무리한다. 보글보글 끓는 라면에 달걀 넣고 마지막으로 파기름 빙 두르면, 속 깊은 매콤한 맛이 인상적인 대파대파후추라면 완성!
- 하도 많이 해봐서 여러 재료와 조리 도구들이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과정도 숙련된 셰프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척척 해낸다.
- 고수리
-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평생의 원수를 이국의 땅에서 만나면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는 걸까. 싹싹 다 비웠다. 40년 만에 멸치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여행이 부리는 마법인 걸까. 이국의 땅에서 조금이라도 취향에 맞는 음식을 만나면 늘 같은 결론이다. 이거 먹으러 여기 다시 와야겠네. 덕분에 나에겐 먼 곳에 두고 온 사랑이 너무 많다.
- 음식이 여행의 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높은 확률로 이 책을 읽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내게 있다.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나본 적 없는 사람은 음식 이야기를 책으로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여러분 쪽입니다.(찡긋)
- 하루키가 말했다.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고. 좋은 음식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말의 허풍에 살짝 기대서 다음 여행을 계획해 본다. 어디 가서 뭘 먹지?
- 아무리 가보고 싶었던 호텔이라도 가격을 아는 순간, 전혀 가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돌변한다. 한 번쯤 먹어볼까 싶었던 요리도 메뉴판을 보는 순간, 절대 그 가격만큼 맛있을 리가 없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어쩔 수 없어서 과한 소비를 했을 때에는 뒤따라오는 죄책감이 어마어마하다.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방법을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나를 공격한다. 이 집요한 공격의 이유를 알고 싶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 심지어 통장의 잔고와도 상관없는 마음의 반작용이다. 놀라울 정도로 즉각적이고, 심각할 정도로 공고한.
- 그러던 어느 날, 이따위 감각으로 평생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나를 스쳐갔다. 그건 좀 지겹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생각은 점점 덩치를 키워갔다. '내가 아는 나 자신을 존중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은 왜 존중 안 해? 1 년에 한두 번쯤은 나의 성향을 무시해 버리자, 고급 레스토랑을 가는 거야. 안 해본 경험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맛을 느껴보자. 그러다 보면 또 새로운 감각이 깨어날지도 모르니.'
-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결론은 단순해졌다. '그래! 모험을 하는 거야.'
- 우선 통장의 이름부터 바꿨다. 통장 이름은 무려 '사치 통장'. 죄책감이 입도 뻥긋 못하도록 아예 통장 이름부터 사치 통장으로 못 박아버렸다. 이 통장에 입 사치를 위한 돈을 따로 모으는 거다.
- 그렇게 6개월을 모았던 어느 날, 나는 고급 레스토랑의 스시 오마카세를 예약했다. 마침 결혼 10주년이었으니 딱 사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 스시 한 점의 크기를 우습게 보지 말라. 그 크기는 거대한 우주와 맞먹는다. 스시 한 점에 우니가 몇 개 올라간 거지? 심지어 종류도 달라. 우니 맛이 이렇게 다양한 거였나. 평소 내가 별로라 생각했던 오징어 스시가 이런 맛이었다고? 전갱이의 맛이 이렇게나 깨끗한 거였다고? 나 알고 보니 장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그나저나 이 컵 좀 보라지. 이 그릇 좀 보라지.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존재하다니. 스시 한 점이 나를 이렇게나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다니.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맛의 시간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머물고 싶었다. 배가 터져도 좋을 것만 같았다. 아니, 이 정도 음식 앞에서의 예의란 모름지기 한껏 나온 배를 보여주는 일일 것만 같았다.
- 사치 통장 덕분에 한옥에서 스시 오마카세를 먹는 경험도 할 수 있었고, 서양 옷을 입은 희한한 된장찌개도 경험할 수 있었다.
- 회사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고서야 나는 이제 돈 쓰는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버는 것도, 모으는 것도, 투자하는 것도, 투자로 성공하는 것도 모두 중요하지만,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돈 쓰는 법을 아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치통장을 타고 나는 낯선 맛의 세계를 모험하는 중이다. 이 모험은 맛있고, 실은 너무 맛있고, 그래서 계속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엔 어디에서 우리 사치해 볼까?
- 멸치 육수를 빡빡하게 우려내고, 푹 익은 김치를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육수를 붓고, 콩나물을 넣고, 젓국을 넣고, 다진 마늘도 한 스푼 듬뿍 넣고, 밥까지 넣어 조금 걸쭉하게 푹푹 끓여낸 김치 콩나물 국밥. 후후 불어서 먹어도 필연적으로 입안 어느 구석이 화상을 입는 음식. 덜 식히고 먹었다가는 또 화상 입을 걸 알면서도 자석처럼 이끌려 다음 한 숟가락을 입속으로 들이밀 수밖에 없는 음식. 여행 중에 먹은 서양 음식 중에서는 그런 온도를 자랑하는 건 없었다. 입으로 호호 불어야만 하는 뜨거움의 맛을 모르다니. 그건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는 시원함의 맛을 모르는 것과 빡빡 때를 미는 개운함의 맛을 모르는 것과 나란히 놓고 싶은 안타까움이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한국은요, 뜨거운 국밥을 뜨거운 돌솥에 넣어서 먹어요. 안 뜨겁냐고요? 너무 뜨겁죠. 근데 안 뜨겁게 먹으면, 그게 또 맛이 안 나거든요. 그 맛을 모르신다고요? 정말 너무 안타깝네요."
-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는 날은 명절 당일이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가는 콩나물을 못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집을 비운 한 달 동안 우리 집에 와서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콩나물 한 봉지만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주세요. 감사해요!'
- 김민철
- "여러분, 명심하세요. 지금부터 2주간만 맨투맨에 반바지를 입을 수 있는 날씨입니다."
"트렌치코트를 꺼내셔야 합니다. 지금 안 꺼내면 또 1년 내내 못 입어요."
- 토끼 모양 반도에 짧게 허락된 쾌적한 날씨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늘 옷차림보다 심각한 생각에 빠져 있다.
'오늘인가?'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초조한 눈으로 창밖의 날씨를 살피고, 회사에서는 노트북 우측하단의 현재 시각을 틈틈이 훔쳐보며,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해 낭패인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한다. 지금 나가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좋은데. 창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 나의 가을 친구 '테맥이', 테라스 맥주 말이다.
- 나무 그늘이 운치 있게 드리운 바깥자리에 앉아, 지브리 애니메이션 재질의 구름이 부풀어 오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인생을 낙관하게 만드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건배를 나눌 수 있는 계절.
- 계절은 정말 짧다. 다음을 기약하는 사이 날씨는 금세 추워져버리고, 옷깃을 여며야 하는 기온 아래선 누구도 선뜻 바깥자리에 앉자고 하지 않으니까. 더위를 타는 이도, 추위를 타는 이도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날씨는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딱 한 달 반정도만 우리에게 허락된다. 그중 비가 오는 궂은날,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친 날, 바쁜 일이 몰린 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 등을 다 제하고 나면 그나마 보름도 되지 않을 것이다.
-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둬야 한다. 기회가 되면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셔야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정말 드물다고 여겨지는 날이면, 어떻게 해서든 그날을 테맥의 날로 만들어야 한다. 일기예보 앱을 성실하게 들여다보며 '테맥 길일'을 찾아 미리 약속을 잡아두는 정성도 필요하다. 시간도 계절도 우리를 기다려주진 않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오늘을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 한다.
- 가끔 북토크에서 만난 독자들이 물어올 때가 있다. 그간 맥주에 대한 글을 많이 써왔는데,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무엇이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습니다."
- "오늘 마시는 맥주예요."
사람들은 와르르 웃는데, 나는 늘 진심이다.
- 그래서일까. 시골에서 살았던 시간과 도시에서 산 시간이 비슷해져 가는 지금도 내게 계절은 신선한 제철 재료와 함께 온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반팔을 꺼내 입고 서늘해지면 외투를 꺼내듯이, 새로 도착한 계절이 몸이란 옷장을 열어 알맞은 기억을 꺼내는 느낌이다. 언 땅이 포슬포슬해지는 봄이면 냉이를 넣은 된장찌개가 생각나고, 봄비가 내리는 날엔 꼭 미나리전이 먹고 싶어 진다. 초여름엔 산나물을 종류별로 넣은 비빔밥이 먹고 싶어 동네 반찬집을 헤맨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까 당연히 떠오르는 게 많아진다. 밤이 익었겠네, 두 발에 야무지게 힘줘서 밤송이를 벌린 다음 매끈한 밤을 꺼낼 때의 기분이 정말 좋은데. 아직 푸르스름한 빛깔이 남아 있을 무렵의 아삭거리는 대추가 먹고 싶고, 출출한 밤에 먹을 고구마가 그리워진다.
- 계절이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을 찾아 먹을 때면 인스턴트와 조미료에 절여진 몸이 순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라, 계절에 맞춰 변하는 자연에 따라, 그 일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 햄버거에는 없는 그 감각이 미나리전에는 분명히 있다. 동시에 뭔가 어른스럽게 생활을 꾸리는 것 같아 조금 으쓱해지기도 한다.
- 어렸을 적 만난 어떤 어른들은 만물박사 같았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산나물들의 이름을 정확히 호명하고 탈 나지 않게 손질하는 법을 알 때 어떻게 저런 것을 구분하지, 저런 상식을 알고 있지 싶어서 고개를 들고 좀 우러러봤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나 역시 자라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신선한 재료에서 가장 좋은 맛을 뽑아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어른.
- 그런 얘기를 으스대지 않고(으스대면 멋이 없다) 자연스레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세상이 무엇으로, 어떤 것들로 이루어진 곳인지 잘 아는 사람의 말일 테니까. '나’ 하나만 알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놓여 있는 세상의 맥락과 배경지식에까지 관심을 기울인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근사한 일이다. 참기름은 어디서 뚝 떨어져 마트 선반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름내 밭에서 참깨를 기르고, 쉼표 같은 깨를 줄기에서 탈탈 털어 모으고, 체에 쳐서 불순물을 걸러낸 다음, 방앗간에서 힘껏 짜낼 때 나오는 것이니 그 과정을 알 때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은 더 넓어지지 않을까.
- “그냥 내가 안 좋아하는 것만 먹으면 안 돼?"라고 부탁까지 했었는데, 같이 장을 보는 사이 맘이 바뀌었다. 대리만족이라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강과 나는 끊임없이 음식을 차려냈다.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만든 라자냐와 새우버터볶음으로 시작해, 표고버섯으로 국물을 낸 다음 엄마표 만능간장인 '청양장'을 넣어 끓인 매콤한 어묵탕, 손질한 양파와 무순,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여서 두툼하게 썰어낸 생연어회, 술자리의 마무리는 어묵탕 남은 국물에 끓인 라면과 입가심용 설향 딸기 요리를 하나씩 내어갈 때마다 나는 테이블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손님들에게 맛있어? 얼마나 맛있어? 방금 그건 어떤 맛이야? 집요하게 말을 걸었다. 간을 안 보고 만든(그렇다. 간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요리가 저번보다 훨씬 맛있다고, 앞으로도 쭉 간을 보지 말라는 칭찬(?)도 들었다.
- 자려고 누웠지만 온갖 음식이 아른거려 잠이 안 왔다. 강에게 아까 먹은 맛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묘사해 달라고 했다. 연어회 식감은 어땠어? 그래? 두껍게 썬 게 아무래도 맛있지? 무순하고 양파 중에 뭐가 더 입을 개운하게 해 줘? 무순은 정말 소중한 존재였어, 그치? 와사비 간장이랑 타르타르소스 중엔 뭐에 찍어 먹을 때가 더 맛나? 질문이 거듭될수록 강의 맛 묘사 실력도 늘어갔다.
- 몸이 비워지자 미각과 후각이 섬세하게 되살아났다. 후각은 거의... 마약 탐지견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강이 회식을 하고 온건 이틀 전인데 아직도 집 안에서 알코올 냄새를 맡을 정도였으니. 왜 집에 계속 술 냄새가 떠도나 했는데 그건 강이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하게 나와서 공기 중에 퍼지는 냄새였다. 외출 나가서는 길거리의 거의 모든 냄새를 감지해 냈다.
아, 원두 볶는 냄새 너무 좋다!
쌀국수, 쌀국수 냄새야 이건!
방금 저 골목 지날 때 맡았어? 올리브오일에 마늘 볶는 냄새 말이야. 침 고였어...
- 어떤 일에서든 교훈 얻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 디톡스 사건으로도 교훈을 얻었다. 잃었을 때를 생각하면 소중한 것을 눈치챌 수 있다는 것. 음식 먹는 자유를 잃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다양한 맛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 것처럼, 일상을 채우고 있던 평범한 음식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처럼.
- 비단 음식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일상을 잃어본 우리는,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것들 중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걸 4년에 걸쳐 체감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일종의 디톡스였을지 모르겠다.
- 김신지
- 프라하에서는 'Remember'라는 가게를 자주 갔었다. 이곳은 노란색 벽과 브라운색 테이블의 조화가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복층으로 된 구조로 아래 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2층을 좋아했다. 깊고 깔끔한 국물맛은 물론 토핑도 아낌없이 올려져 나오는데, 맛과 양 그리고 가격 모두 만족스러워 현지인에게도 사랑받는 곳이었다.
-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역 근처에는 유명한 쌀국수집이 두 개 정도가 있는데, 하나는‘Com Viet'이고 또 하나는 'monsieur vuong'이다. 두 가게는 분위기뿐만 아니라 쌀국수의 맛도 확실히 달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 스스로 조금 신기하게 여기는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집에서 라면을 잘 끓여 먹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빵을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좋아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생각보다'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 "그래서 최고의 크루아상은 어디인가요!"
하나는 홍대의 '올드크루아상팩토리'. 빵집 아오리토리(이곳은 마요에그 추천) 근처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항상 긴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있었고, 긴 웨이팅이 필수인 곳이었다. 내부는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곳곳에 놓인 오브제와 굿즈들이 이곳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해 주었고, 가장 중요한 건 크루아상이 정말 맛있다는 것.
- 자칫 잘못하면 크루아상이 퍽퍽하거나, 너무 기름져 느끼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곳의 크루아상은 정말 밸런스 좋은 맛을 선보이는 곳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면서 버터의 향이 너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 정도. 정말 오래전에 맛을 봤는데도 그 맛이 생생할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닌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 그 뒤로 크루아상 유목민으로 방황하면서 살다가 부산에 있는 '디저트 시네마'를 만나고 다시 한번 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름처럼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 차분한 다크우드 톤에 앤티크한 분위기로 기대가 한껏 올라가고,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물자마자 그 기대는 충족이 된다. (특히 뺑오쇼콜라는 진한초코맛까지 더해져서 극강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 자주 가다 보니 단골 가게 (다시 이야기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두 번 이상 가면 단골 가게라 부른다)도 생겼다. 매번 새로운 곳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타지의 어떤 공간에 추억이 겹겹이 쌓이는 기분은 참 묘하다.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라는 문장에는 괜히 애정과 취향과 관심이 뚝뚝 묻어난다.
- 도쿄 메구로에 있는 '톤키'(とんき). 이곳은 일본에 갈 때마다 일정에 무리가 없으면 꼭 들르는 곳인데, 이곳과 가까운 숙소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예약을 할 정도다. 2층짜리 가게인데, 이곳은 꼭 1층 바에 앉아야 한다. 그 이유는 오픈 키친으로 되어 있어 돈가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지난번 크루아상 편에서 '시식'은 맛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행위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오픈 키친도 마찬가지로 맛과 청결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구조다. 누가 어떤 장면을 보게 될지 모르기에,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 종종 밀크셰이크에 감자튀김을 푹 찍어 먹고 싶은 날도 있다. 사이드 메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이쯤 되면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사이드 메뉴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 무과수
- 스테이크를 굽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잘라보니 고기는 제 계획보다 조금 더 익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엥? 너무 익어버렸네?' 정도의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고기는 그래도 맛있으니까요. 조금 더 익었다고 해서 갑자기 괴상한 맛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질겨졌을 뿐입니다. 우습지만 이것이 제가 고기 굽기에 진심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 이 세상에는 실패하더라도 크게 상관없는 일, 그래서 도전하는 것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고, 내가 목표한 곳에 정확히 도달하는 일도 흔치 않습니다. 낙담하는 일 투성이고,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하는 생각도 종종 찾아옵니다. 그래서 '섣부른 도전'은 늘 두렵습니다. 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그 재료마다 익는 시간도 다르기에 굉장히 예민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양념들 중에 무엇 하나가 빠지거나 잘못 들어가면 맛이 확 변하고, 심지어 도저히 못 먹을 음식이 되기도 하죠. 식물을 키우는 일도, 몸매를 가꾸거나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 하지만 스테이크는 다릅니다. 고기 굽기에 실패해도 그저 '조금 덜 익은 고기'가 되거나 '조금 더 익은 고기'가 될 뿐입니다. 덜 익은 고기는 다시 조금 더 구우면 되고, 조금 더 익어버린 스테이크는 천천히 씹으면서 고소한 맛을 더 느끼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더 잘 구워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 될 일입니다. 성공했을 때의 기쁨도 있지만 그보다는 실패했을 때 덜 아픈 도전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 고기 굽기에 열중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새해를 맞아 여러 다짐을 해보지만 올해라고 작년보다 훨씬 근사한 인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누군가가 나를 앞서가는 것만으로 내가 뒤처졌다고 느끼는 시대니까요. 뭐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고기 정도는 저도 잘 구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오늘도 고기를 굽습니다. 아내와 맛있게 나눠 먹는 것만으로 소소한 저녁식사의 행복을 느끼기엔 충분하니까요.
-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날이면 저는 고기 한 덩이를 정성스레 구울 겁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어야 세상살 맛이 나는 법이니까요.
- "매형, 혹시 이 식당 가보셨어요? 여기 꽤 괜찮더라고요."
며칠 전에 저희 집에 놀러 왔던 처남이 한 끼에 인당 10만 원 정도 하는 레스토랑 한 곳을 추천해 줬습니다.
"오호... 파인다이닝이구나..?"
- 대충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30대 초반의 나이에 이제 막 입사한 사회초년생'인 처남이 추천하는 식당의 '격'에 꽤나 센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 식당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가격'만으로 1차 충격을 받은 셈이지요. 물론 저도 한두 번쯤 '격'이 있는 레스토랑에 가본 적이 있지만 그건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였고, 그럴 때마다 아무리 맛이 있는 음식이어도 '밥 한 끼'에 이런 큰돈을 지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온 터라 처남의 파인다이닝 어택은 상상조차 못 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 저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맛이고 뭐고... 햄버거를 2만 5천 원씩이나 주고 사 먹는 사람이 어딨냐고!"
그는 지지 않고 다시 한번 다그치듯 물었습니다.
"그래서 맛은? 맛은 어땠냐고! 너는 이미 그 돈을 주고 먹어버린 거잖아. 이왕 먹었으면 맛이라도 기억해야 할 거 아냐? 그것도 다 경험인데..."
"맛? 맛은... 기억도 안 나...!"
- 그날 K와의 이 짧은 대화는 저의 미식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순간으로 남았습니다.
- 미식의 세계는 단지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미식의 세계는 '취향'의 세계입니다. 세상이 아는 만큼 보이듯, 음식은 먹어볼수록 맛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지금껏 몰랐던 다양한 맛들을 느끼고 즐기게 되는 법이지요. 생각해 보니, 한 번쯤은 나에게 호사라고 생각될 정도의 저녁 코스 요리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단, 음식 가격을 잊고 오로지 '맛'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요! 그렇게 조금씩 음식의 '맛'에 예민해지고, 여러 가지 맛들 중에 당신이 유독 편애하는 '어떤 맛'을 발견한다면 그때부터 당신은 새로운 호칭을 획득하게 됩니다.
미식가.
- 주변에서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면 점점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도 늘어납니다. 저는 와인 맛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라 주변에서 특별히 좋은 와인을 마실 일이 생길 때면 꼭 저를 부르더군요. 물론 한 잔 마신 후에는 항상 똑같은 질문이 돌아오긴 합니다.
"그래서 맛이 어때? 어떤 맛이 느껴져? 뭐가 달라?"
-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제게 특별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생긴다는 점이 참 재밌습니다.
- 의식의 흐름은 여기까지. 이제 막 그날 먹었던 뇨끼에 대해 설명을 마무리하던 처남에게 제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그래서 맛은? 맛은 어땠어?"
"맛! 어디 보자,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 그날 먹었던 뇨끼의 맛을 다시 떠올리며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는 처남의 모습이 왠지 조금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미식의 세계를 다녀온 경험담은 계속 이어졌고 저는 저의 부끄러운 '수제버거 스토리'를 오늘 이후로는 영원히 기억에서 지우기로 했습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은 반길 것! 그리고 이왕 특별한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다면 중요한 것은 맛! 그리고 경험!
내가 먹는 것이 곧 나 자신을 나타낸다
-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음식의 언어>라는 책을 읽게 됐습니다. 거기서 발견한 문장 - 저명한 식품 역사학자 에리카 피터스(Erica J. Peters)의 말은 저에게 꽤나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 [사람들이 먹는 것은 그들이 어떤 존재인가 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가를 반영한다.]
-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라는 질문 속에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라는 엄청난 의미가 숨어 있었다니! 그렇다면 더 이상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복잡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밥 먹을 땐 그냥 밥만 먹으면 안 될까 싶다가도 막상 밥을 먹을 때가 되니 고민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제가 먹는 음식이 저를 반영할 테니까요.
- 어느 누구도 자신의 답을 남에게 강요할 수 없고, 반대로 누구나 각자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음을 이해해야겠지요. 하지만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만큼은 끼니때마다 질문을 던져보는 게 어떨까요?
- 우리가 고르는 한 끼의 식사가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반영하는 거라면 한 번쯤은 대답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한 끼에는 어떤 가치가 최우선이 될까? 나의 건강? 자연과 환경보호? 스트레스 해소 혹은 기분 전환? 노력에 대한 보상? 가족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
- 스탠딩 에그
- 라멘 집 앞에서 각자의 일정을 위해 인사하고 헤어지기 전, 현은 나에게 "다음번에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좋아하는 음식을 알려 달라"라고 말했다. 나는 몇 초간 잠시 생각한 뒤 "아이스 카페라테"라고 대답했다. 현은 내 대답에 폭소를 터트렸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이스 카페라테'를 말하는 사람도 처음이고, '아라'나 '라테'가 아닌 풀네임으로 말하는 사람도 처음이라면서.
- 나에게 아이스카페라테는 오랫동안 주식(主食: 주된 먹거리)이었고, 지금도 그렇기에 현이 왜 웃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 보통 서울 망원동 카페들은 오전 11~12시 사이에 문을 열지만, 여긴 망원동 카페답지 않게 오전 8시부터 문을 연다. 부지런한 이 카페는 에스프레소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라 오전부터 만석이다. 비좁은 에스프레소 바의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바 안쪽의사장님에게 "아이스 카페라테 테이크아웃 하나요"라고 매일 똑같은 대사를 읊는다. 커피를 받아 들고 카페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다시 준이치가 투병 중인 집으로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나의 오전 루틴이다.
- 아침에 사 온 아이스 카페라테를 오후까지 몇 시간에 걸쳐 천천히 나눠 마신다. 오랫동안 마시기 때문에 얼음이 녹아도 커피맛이 괜찮은 카페를 선호한다.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 양도 조금씩 늘어나기에 시간이 지나도 양이 줄어들지 않는 마법 커피인 양, 천천히 변하는 맛을 즐기며 마신다. 이렇게 아이스 카페라테만 마시면서 오후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일을 한다. 빈속에 커피가 좋지 않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20대 때부터 현재 (37세)까지 쭉 이렇게 살아오면서 어디에 안 좋은지 딱히 체감하지는 못했다.
- 수년간 같은 말을 반복하니 나중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아이스 카페라테를 만들기 시작했다.
- 거기에 배달팁까지 붙으면, 총금액 2만 원이 넘어가는 비싼 아이스크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시켜 먹을 순 없고 이렇게 보상심리가 차오르는 외부 일정을 마치고 난 뒤, 스스로에게 해방감을 선사하기 위해 '요아정' 타임을 가진다.
- 요아정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고 프로젝터를 켜 OTT 플랫폼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둔다. 그리고 기다리던 요아정이 현관 앞에 나타나면 침대 위에서 쓰는 테이블을 펼치고, 그 위에 거대한 2인분 요정으로 상차림을 한다. 밥숟가락보다 좀 더 커다란 숟가락을 들고 덜 마른 머리를 털며 요아정을 양껏 퍼 먹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의 해방 일지' 아니 '나의 해방 요아정 일지'다.
- 요아정 2인 세트에 들어가는 벌집꿀을 처음 맛보았을 때, 그 신기한 식감과 달콤한 맛에 놀랐다. 꾸덕꾸덕하고 쫄깃하면서 달달한. 익숙하지 않은 식감이기도 하고 당도도 너무 높아서 이름만 '벌집꿀'이고 실제 벌이 만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설탕을 굳혀 틀에 찍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벌집꿀이 충격적으로 맛있어서 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인터넷 세상을 뒤져가며 찾기 시작했다.
- 양봉 전문가에 따르면, 벌이 직접 만드는 벌집은 구멍의 크기도 다르고 (아래로 가면서 점점 커진다고 한다) 꿀을 채우기 전에 벌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의 에너지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양봉업자들은 밀랍과 파라핀으로 미리 만들어둔 일정한 규격의 벌집틀을 벌통에 넣고, 벌은 벌집을 만들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꿀을 모으고 채우는 데만 전력을 다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 벌집꿀을 만드는 법을 찾다 취미 양봉 블로그, 브이로그, 꿀벌 다큐멘터리를 지나 환경 다큐멘터리까지 점점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 나의 해방 요정 일지를 쓰고 싶은, 지친 어느 저녁이 또 찾아와도 요즘엔 요아정에 벌집꿀을 추가할지 말지 손가락이 선뜻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일단 팔고 있으니 사서 먹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소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계속 무리하게 생산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깊어져 간다.
- 문득 내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내 취향 중에 완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 않나 싶다. 일례로 내 옷장엔 내가 직접 고르지 않은 옷이 반 이상이다. 친구가 입던 옷, 언니와 엄마가 물려준 옷, 선물 받은 옷.
- 냉장고 속도 내 입맛도 마찬가지다. 현 연인, 헤어진 연인, 친구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까지. 그들이 내게 전해준 입맛이 지금의 먹는 취향을 만들었다. 나는 함께 즐기고 좋아했던 음식들로 그들 모두를 기억한다.
- 그때는 만 원쯤 하는 쌀국수 한 그릇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친한 친구와 둘이 한 그릇을 시켜 나눠 먹는 게 당연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사리 추가'가 엄청난 사치였다. 다른 테이블에 놓인 호화로운 월남쌈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우리는 언제쯤 월남쌈을 먹어볼 수 있을까" 하고 친구와 함께 부러워했다. 그때는 고수를 전혀 먹지 못해서 쌀국수에 고수를 넣는 사람들을 보면서 괴물을 본 것처럼 놀랐었다. 지금은 고수를 움켜쥐고 한입 가득 우적우적 씹어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고수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무엇에든 고수를 듬뿍 넣어 먹는 걸 즐기는 다른 친구의 입맛 덕이다.
- 고수, 낫토, 평양냉면, 청국장.
- 전부 20대 후반쯤 돼서야 먹을 수 있게 된 것들이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이 맛들에 익숙해지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평양냉면은 사람들이 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차가운 물에 국수를 넣은 이 음식을 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사 먹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름만 되면 이걸 먹겠다고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는 친구들이 있어 같이 있다가 한 입, 두 입 먹다 보니 어느 날 여의도의 한 냉면 집에서 갑자기 '혀가 트였다'. 이 같은 표현을 다른 사람들도 쓰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이 표현이 딱 맞다고 생각한다. 혀가 트이기 직전까지는 입에서 불쾌함만을 주거나 무(無)맛이던 것이 한순간 '펑' 하고 온갖 흥미로운 맛이 느껴지기에 그야말로 '터졌다'는 감각이었다.
- 내게는 먹는 것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중요했고, 먹는 데 시간을 쓰면 수치심과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잘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친구들이 생겼고, 그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여러 맛을 체험할 기회가 늘어났다.
- 이랑
- 생각해 보면 그간 내가 무엇을 먹는지 고민하고 챙길 일이 없었다. 집에서는 엄마가 따뜻한 밥을 차려주고, 학교에서는 균형 있는 식단의 급식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당연히 도시락통에도 그런 것들이 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깍두기는커녕 텅 비어 있을 수도 있는 건데 말이지.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처음으로 장을 봤다. 고추참치나 김, 소시지 같은 것을 담았다. 그런 것들은 당장 맛은 있어도 어딘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몸과 마음도 항상 어설픈 상태였다.
- 그래, 이거야. 입천장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바삭한 튀김옷, 두툼하면서도 질기지 않은 등심, 소스 없이도 느껴지는 적당한 밑간, 함께 곁들일 수 있는 겨자, 그리고 얇게 채 썬 양배추까지. 이 모든 돈가스 정식의 가격이 4,500원. 나는 그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가게의 이름은 허수아비 돈가스, 깍두기로 다친 마음속 설움을 달래주는 곳이었다.
- 하지만 지치는 날이면 '역시 오늘은 돈가스를 먹어야겠군' 하면서 돈가스 가게를 가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가 최고인 줄만 알다가 그보다 더 많은 돈가스를 먹어본 돈가스 블로거를 발견하고 나의 세계가 넓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 그는 나에게 새로운 스승님이 되어서, 나는 그가 극찬한 돈가스가 최고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 원래 뭐든 어설프게 알면 자기가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법이다. 친구들이 돈가스를 추천할 때면 “네가 돈가스를 아냐"라며 거들먹거렸다. 그러다 직접 먹어보니 생각보다 더 맛있어서 숙연해졌다. 하지만 맛있는 돈가스로 혼나는 건 사실 즐거운 일이다. 이런 반성이라면 더없이 환영이며, 자주 나를 놀라게 해 줄 돈가스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 연어장은 나오자마자 잘못 나왔다고 말씀드려서 덮밥으로 바꿔서 먹었지만 치킨가스는 외형이 튀김이라 돈가스와 비슷했다. 베어 문 자리에 눈부신 흰 살이 눈에 띄었다. 닭이었다. 근데 그게 어이없을 정도로 맛이 있다면? 클레임을 걸기에 사장님이 너무도 서글서글하게 생겼다면? 그리고 수줍게 웃으면서 손에 묻은 물을 앞치마에 닦으며 음식이 입에 맞냐고 물어본다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여도 그냥 잘못 나온 음식을 먹을 것이다.
- 그렇게 내게는 아직 그 가게에서 먹어보지 못한 돈가스가 신비롭게 남아 있다.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웠던 닭고기의 상태로 보아 분명 돈가스도 그만큼 맛있을 것이다.
- 돈가스에도 달인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사장님처럼 튀김요리를 유난히 잘해서 완성도 있는 돈가스를 만드는 사람, 그 가게를 추천한 돈가스 블로거처럼 그 맛과 가치를 알고 분별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다음 자리에 나처럼 평범하게 돈가스를 사랑하는 사람까지. 나는 모두가 돈가스 달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이제는 이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조카와 아이들에게 더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종종 맛있는 돈가스도 사줘야지. 돈가스는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 2020년 2월. 퇴사를 하려던 계획이 산산조각 났다. 단순한 감기인 줄 알았던 코로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킨 것이다. 회사 앞에는 5천 원짜리 마스크를 파는 매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환멸을 느끼던 찰나, 회사가 전 직원에게 매일 마스크를 주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택근무를 전면적으로 확대하고, 출근을 이틀만 해도 된단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 재택근무를 하라는 건, 메신저로만 싹싹하게 일하는 척하고 대답을 마친 후엔 넷플릭스를 봐도 된다는 뜻 아닌가? (아님) 이런 때는 출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전보다 한산해진 아침 지하철과 텅 빈 사무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연봉 인상보다 더 행복한 워라밸 인상이라니...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천국 같은 상황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회사가 힘들어서 다니기 싫은 줄 알았는데 편해져도 다니기 싫은 이 기분은 뭘까. 나만 진짜 몹쓸 인간인 건가. 왜 천국을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 샌드위치 만드는 법.
1. 도마에 랩을 깔고 준비한다. 통밀빵 단면에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바른다.
2. 계란은 삶아서 으깬 후 마요네즈랑 섞는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마요네즈는 조금만. 물론 많이 넣으면 더 맛있다.
3. 머스터드를 바른 빵에 에그마요를 올린다. 그 위에 토마토, 양파, 오이, 양상추, 상추 순으로 쌓는다.
4. 맨 위를 통밀빵으로 덮고, 랩으로 샌드위치를 감싼다. 그다음 칼로 조심히 단면을 자르면 끝.
- 이제는 샌드위치 만드는 게 익숙하다. 과연 사장님 말에 힌트가 있었다. 샌드위치는 재료만 좋은 걸 써도 실패 확률이 거의 없는 요리라는 것. 모양을 잡거나 조합을 찾는 건 직접 시도해 보면서 발전시키는 맛이 있다.
- 2020년 7월. 티어는 날이 갈수록 올라가지만 내 마음은 혼란하기만 하다. 회사는 내게 여전히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고맙다고 사랑할 수는 없다. 이게 뭔 나쁜 남자 같은 대사인가 싶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고맙다고 내가 행복한 건 아니었고, 나는 도리어 그 고마움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 끊임없이 도망만 치고 있었다. 오죽하면 게임에 접속한 지 여덟 시간이 넘었으니 빨리 현실로 돌아가라는 안내문이 떴을 정도였다.
- 일기장을 펴고, 또박또박 글을 적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코로나가 나아질 것 같니?'
'아니, 이번 건 달라, 훨씬 어려울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서 안주하면 달라질까?'
'아니, 차라리 빨리 나와서 적응해야지.'
- 내가 무엇을 하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할 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좋은 재료를 쓰는 게 맛의 비결이라는 사장님의 말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샌드위치 레시피가 아니라 라이프 레시피라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양상추, 부드러운 계란, 오늘 만든 빵. 나는 그런 말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잘하는지 보려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 된다.
- 무언가를 잘한다고 오만한 건, 지금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옛날에 많이 해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잘하는 사람들은 그걸 지금까지도 하면서 감각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아닌 상태에서 잘한다고 말하는 건 허상에 가까우며,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라테는..."까지 가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한때 파스타를 많이 만들어보고 스스로 만족했다고 나는 지금의 내 파스타가 괜찮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달간 많은 일들 때문에 요리를 거의 하지 못하면서 나의 감각은 한없이 무뎌져 있었다. 오죽하면 먹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내가 그사이에 똥손이 됐나?'였다.
- 하지만 어떤 일이든 좌절하면 거기까지다. 더 나아가 좌절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면 다음 무대가 펼쳐진다. 나는 잃어버린 '파스타의 달인' 영광을 되찾고 싶어졌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자칭일지라도 말이다.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는데 앞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파스타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꽤나 잘한다고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차근히 파스타를 다시 만들어보기로 했다.
- 그렇게 차근히 단계를 밟아가며 파스타를 만들었다. 요리를 끝내고 주방을 바라봤다. 어제처럼 지저분하게 벽에 튄 소스가 없다. 그저 고요히, 그렇게 평온한 음식이었던 것처럼 말끔할 뿐이다.
- 늘 주방에서 요리를 했던 엄마 생각이 난다. 나는 너무도 혼자 산 세월이 길었기에 그런 감각이 무뎌진 것이다. 그 모든 무심함을 나도 모르게 먹고 있었다는 생각에 조금 슬펐다. 그래서 앞으로 무언가를 만들던 그 과정에서 사람을 생각하기로 했다. 유튜브 콘텐츠도, 그림도 요리도, 지금과 같은 글에도 말이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정직하게 맛있는 파스타가 내게 준 귀한 선물이다.
- 이 글은 당신을 생각하며 썼다. 정성만 있다면 언제든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멋진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생각하며 만든 무언가가 내게 온다면 나 또한 너무 행복할 것 같다.
- 실제로 우리가 샐러드를 먹는 본래 목적, 건강을 생각하면 더욱 살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드레싱은 가볍게 기본으로 세팅하는 것을 추천한다.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면 충분하다. 실제로 올리브유에 돈을 좀 많이 투자하면 그게 드레싱보다 더 비싸다. 하지만 돈을 낸 만큼 정직한 가치를 주는 것 중 하나가 올리브유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영양 손실 정도가 다르고,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올리브유를 경험한 바로는, 비싼 올리브유가 맛없던 적은 없었다. 좋은 올리브유, 고급 소금, 통후추를 사용하면 이미 샐러드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 야채를 여러 가지 구비해야 색도 예쁘고 영양도 더 잘 챙길 수 있는데 통으로 구입해서는 관리하는 게 더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일상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에 맞는 형태로 구매하는 것이 좋다. 각 재료마다 보관법이 조금씩 다르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대로 된 보관 방법을 숙지하는 것을 추천한다.
- 그리고 고급 올리브유를 사자. 종종 말하는 "이 올리브유는 요리용으로 쓰긴 아까워요"가 바로 그런 올리브유다. 오로바일렌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피쿠알을 추천한다. 스페인에서 먹었던 고급 올리브유와 맛이 가장 흡사하다.
- 준비가 됐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매일 다른 샐러드를 만들어보자. 거기에 빵을 곁들이면 샌드위치가 되고, 파스타를 곁들이면 브런치가 된다. 나중엔 더 좋은 샐러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다. 그때 레몬 드레싱이나 오리엔탈 드레싱 등을 직접 만드는 단계에 닿는다.
- 어떤 일이든 늘 그렇듯 나는 시작할 때는 항상 서툰 편이다. 연식당 초창기에는 손님에 대한 기본기가 거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우선 식기가 부족한 것부터 시작한다. 메뉴로 부대찌개를 준비했는데 그릇이 없어서 접시를 내왔다. 친구는 국물을 떠먹게 그릇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없으니까 그냥 먹으라고 말했다. 훗날 친구들과 이날을 '여우와 두루미 사건'이라고 회상한다. 두루미에게 납작한 그릇으로 음식을 대접한 어느 우화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해 생일선물로 유난히 그릇을 많이 선물 받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메뉴 구성도 일관성이 없었다. 그냥 주인장이 당장 먹고 싶은 것을 어설프게 만들어서 내놓는 식이었다.
- 한 번은 여행에서 트러플오일을 사 온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먹는 법을 몰라서 그냥 그릇에 담아서 빵과 함께 손님께 내왔다. 미트볼 파스타를 만들었을 때에는 미트볼이 겉만 따뜻하고 안쪽이 싸늘했다. 사려 깊은 손님들이 파스타로 이불을 덮어주면 된다고 하면서 이해해 준 기억이 난다.
- 하지만 내 친구들은 타박을 하지 않았다. 접시를 사 오거나 음식을 따로 사 오는 방법 등으로(?) 연식당을 개선시켰다.
-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특별한 건, 누군가를 위해 초대 자리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손님이 오기 전, 그의 취향에 맞춰 좋아할 것 같은 메뉴를 선정한다. 샐러드, 식전 빵, 메인요리 두 가지, 안주, 가벼운 디저트까지 빼곡하게 준비한다. 술과 고기와 음악이 흐르는 연식당, 이제는 아무도 음식이 적다는 타박을 하지 않는다. 편안한 조명을 세팅하고, 어디든 기댈 수 있게 푹신한 쿠션을 여러 군데 둔다. 간혹 시간이 길어지면 깨끗한 잠옷 제공과 숙박도 가능하다. 성실한 주인처럼 아침에 손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식사를 내온다. 그렇게 산뜻하게 연식당에 온 손님의 마무리까지 책임진다.
-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기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하고, 몰라서 날카로운 말을 던지거나 무딘 경우가 많았다. 다행인 건, 내 친구들은 나보다 다정한 사람들이었고 내게 끊임없이 다정을 알려준 것이다. 나를 키운 게 꼭 부모님만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연식당을 하면서 어설펐던 내가 사람들에게 좋은 배려를 주는 방법을 해보고 익히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연식당은 나의 다정함 최신판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대접을 받을 때마다 연식당의 퀄리티는 점점 더 올라간다. 나는 사람들을 내게 준 것 중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는 연습을 했다. 이를테면 꽃이나 편지, 예쁜 앞접시, 멀리서 사 온 귀한 디저트, 여행에서 당신이 생각나서 사 온 선물 같은 것들.
- 이제는 집이 아니라 사무실에 오는 손님에게도 특별한 대접을 하려고 한다. 보통 미팅이 오후 3시이기 때문에 애프터눈 티를 가볍게 준비한다. 우리 동네는 여대 앞이기 때문에 디저트 맛집이 많다. 정성껏 고른 디저트를 세팅하고, 손님이 오면 홍차를 내린다. 설거지가 귀찮기 때문에 원래는 종이컵을 썼는데, 이제는 정성을 위해 유리잔을 쓰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고급 레스토랑 재즈라고 치면 나오는 BGM을 틀면 정말로 사무실이 호텔처럼 바뀐다. 손님들은 미팅으로 왔지만 도리어 힐링받고 간다고 했다. 그 말에 또 힘을 얻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방법들을 또 찾아본다.
- 음식이라는 건 굉장하다. 단순히 맛을 넘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그 또한 해봐야 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이 받아보기도 해야 한다. 호텔에서 난생처음 애프터눈 티를 맛보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사무실에서 티세트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친구 집들이를 갔을 때 메뉴판을 손수 적어준 걸 보고 나도 파인다이닝처럼 손으로 연식당 메뉴를 코스로 구성하여 적어둔다. 경험이 중요하고, 그 경험을 직접 해보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연식당은 내게 사람과 잘 연결되는 방법을 공부하는 장인 셈이다.
- 당신의 집이 궁금하다. 그곳에서 어떤 다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그간 파티를 많이 열었으니 이제는 내가 더 찾아가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뿐인 식당에서 만나길 바란다.
- 이연
- 그날 그 모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이 맛을 모르고 살았을 거란 생각에 순간 아찔해진다.
- 때가 되면 운명처럼 또 다른 메뉴가 내게 닿겠지.
- 그날 저녁, 두통이나 열은 사라졌지만 기침이 심한 나는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침대와 하나가 되어 누워 있었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는데 뭘 먹지, 하며 고민하는데 친정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이따가 엄마가 전이랑 만두 만들어서 갖다 줄게. 기운 없겠지만 그거라도 끓여 먹어.'
- 그런 와중에 엄마는 독감 전파가 너무너무 무서웠는지 우리와 아무런 접촉 없이 만두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내가 사는 빌라 1층에서 음식을 엘리베이터에 태운(?) 뒤 나에게 전화를 해 "지금 만두를 올려 보냈다"라고 한 것. 비밀스러운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먹이려는 엄마와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와 접촉을 피하려는 두 얼굴의 엄마가 기발하게 감사했다.
- 승강기 한가운데 놓인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그 안에 담긴 동그랑땡, 굴전, 물김치, 만두소와 만두피를 꺼냈다. 완성된 만두가 아닌 걸 황당해할 때쯤 엄마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엄마가 음식 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만두를 못 만들었어. 네가 직접 만들어 먹어.'
참 우리 엄마답다. 자식들에게 내 할 도리는 한다. 그러나 다 해줄 순 없다!
- 이유미
- 특히, 방송하기 전 빈속에 아메리카노는 절대 금기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진정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 사실을 깨닫기 전 몇 번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마셨다가 사달이 날 뻔한 적이 있다.
- 적당한 스윗함과 건강함의 완벽한 조화를 갖춘, 바닐라시럽 0.5 펌프를 넣은 두유라테가 그래서 내게 선물 같은 존재다. 첫 모금을 마실 때마다 누가 이렇게 부드럽고 심적인 위안을 주는 음료를 만들었을까 감탄하며 절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의 존재는 또 얼마나 반가운지, 음료를 고를 때 똑같이 두유라테를 부르는 동료를 만날 때면 친밀감을 느끼며 언제 입문하게 됐는지 묻는다. 나는 맛으로 먹기 시작했지만 비건식을 찾으면서 이 음료를 좋아하게 된 동료들도 있었다. 훗날 나도 비건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두유라테를 더욱 전파하게 됐는데, 좋아하는 음료가 의미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 그러면서 출근과 비건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언가를 지속하게 하는 비결은 '의무'보다 '의미'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고. 일도, 비건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의무처럼 느껴지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의 스위치를 의미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본래 지속 가능함 속에는 '기복'이 숨겨져 있다. 하루 망했다고 느낀 방송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스스로에게 실망한 날도, 비건의 실천이 완벽하지 않아 부끄럽게 느껴지는 날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큰 물결 안에서 여전히 나는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니까.
- '나'를 보여주지만 결코 현실의 나와 똑같을 수 없다는 점에서 SNS는 흥미롭고도 동시에 피로한 것이다. 만날 수 없던 사람과 연결되고 커리어와 생각의 무궁무진한 확장이 가능하지만,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고민하게 될 땐 시간과 감정의 소모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까.
- 당신의 포스팅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음식 사진은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준다. 매일 하루에 두세 끼를 먹으면서도 대부분은 음식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음식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이 있다면 무언가 특별함을 느꼈거나 의지를 갖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흔하게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인증하는 경우다. 얼마나 '힙한' 곳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포스팅은 때로 보는 이에게도 유용하다. 뭘 먹을까, 어딜 갈까 하는 고민을 덜어주고, 애초에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해 팔로우하는 사람이라면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 하지만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진에서 과도한 자아도취나 헛헛한 느낌을 받게 될 때다. 사진을 보며 상상하게 된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인증샷을 찍으러 온 것인지 맛을 보러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을 그런 포스팅이 반복적으로 올라올 경우 '과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걸까?' 하는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나는 어떤가 하는 두려움이 깃든 반응일 수도 있겠다.
- 음식은 감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음식을 클로즈업해서 먹음직스럽게 찍거나 소위 '항공샷'을 찍는 게 보통인데 최근 만난 한 후배가 말하길, 정성스럽게 말고 대충 찍어 올리는 것이 요즘 세대의 사진이라고 했다. 대충의 무심함 속에서 감각을 보여주는, 허술함 속의 치밀함이랄까. 요즘엔 '가치소비'를 알리는 포스팅들도 눈에 띈다.
- 임현주
- 그처럼 우리에게도 강렬했던 처음의 맛이 있지요. 난 그게 제일 맛있더라, 호기롭게 말하기도 하고 돈 많이 벌면 자주 사 먹을 거야, 하고 귀여운 투지를 다지던 음식이요.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 그 분야에 관련된 좌표를 찍어나가요. 여긴 5성급 호텔 뷔페 중에선 상급이군, 중식당 중에서는 탕수육에 우위가 있는 집이군, 하는 식으로요.
- 취향이 있다는 건 그런 식의 좌표가 상당히 디테일해진 분야가 있다는 걸 의미하죠. 충격적인 첫맛이라는 건 그런 거예요. 다시는 그걸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굵다란 점을 쾅 어느 지점에 찍는 일.
- 대구에서 시작된 '장우동'이라는 분식집이 있어요. 요즘은 찾기 어렵지만 90년대에는 경상도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죠. 거기선 떡볶이, 우동과 함께 '비빔만두'라는 걸 팔았어요. 초고추장 소스가 뿌려진 양배추가 수북하게 담겨 있고 노릇노릇 구워진 납작만두가 한꺼번에 담겨 나온 모습이 어찌나 화사했는지 지금으로 치면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기 좋은 비주얼이었어요. 만두피가 얇으니 각기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구워져 있어 깻잎김치를 먹을 때처럼 함께 간 사람이 젓가락으로 떼는 걸 도와줘야 했죠. 그렇게 한 장씩 뗀 납작만두 위에 양배추를 올려서 젓가락으로 양옆을 조심조심 접어 들고 먹었어요.
- 매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좀 민망했어요. 납작만두와 삼각만두는 한국전쟁 중 먹을 게 부족해 배급받은 밀가루에 당면만 넣어 먹던 게 시초라고 하는데, 이처럼 허기를 달래려 먹던 짝퉁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고 특별한 재료랄 게 없으니 향토음식임에도 사람들은 막창이나 따로국밥처럼 대구 대표 음식으로 끼워주길 꺼려했어요. 타지 사람들이 먼저 먹어보고 싶다 하더라도 별맛 없다고 말릴 정도였죠. 제가 납작만두나 삼각만두를 먹고 싶다고 할 때 어른들이 퉁명스럽게 말한 적도 여러 번이에요.
"얘는 아직 맛있는 걸 별로 못 먹어봐서 그래." "그거 그냥 간장 맛으로 먹는 거지 뭐가 맛있냐?"
어른들 말마따나 먹어본 음식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진짜로 그런 것 같기도 했어요.
- 제가 중학생이던 때로 기억해요. 대통령 선거 공보물이 왔는데 그때는 눈에 보이는 어떤 글자라도 모조리 읽어치우던 시기여서 제법 두툼한 우편물임에도 꼼꼼히 읽고 있었죠. 판사 출신인 이회창 씨의 프로필 속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붕어빵'이라 적혀 있더군요. 당시 그는 법관 집안 출신으로 엘리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했던 거예요.
- 나나 내 주변 사람들 또한 '붕어빵'이나 '라면'같은 음식을 누구보다 자주 먹지만 그런 걸 남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고 그는 말할 수 있는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어리고 가난한 이가 저렴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할 땐 멸시하던 사람들이 힘 있는 이가 그런 말을 하면 소박하다면서 호감을 갖는다는 걸 이해했죠. 부자인 사람들은 가난해 보일까 봐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진짜로 특별한 사람들은 평범해 보일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도요.
- 취업을 한 후 비싼 음식을 많이 먹어봤어요. 그동안 소고기는 국물 속에 들어 있는 것만 먹어봤는데 불판에 구운 걸 큼직하게 잘라서 히말라야 소금에 찍어 먹어봤고요. 한풀이하듯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점 받은 레스토랑을 도장 깨기 하듯 가본 시기도 잠깐이지만 있었네요. 요즘은 시들해졌지만요.
- 이제는 알아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게 뭔지 찾아 다녀본 후 결국 내가 가졌던 마음이 옳았음을 알게 된다 해도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는 걸. 나의 취향과 다른 사람의 인정 가운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직접 겪어본 뒤에라야 말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으며 이 같은 확장 후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함이 생겨나는 게 바로 내공이라 불리는 기운이니까요.
- 한편, 어떤 취향을 말했을 때 상대가 나를 평가하는 말하기를 한다면 그건 그의 편견을 증명하는 문제이지 내가 부끄러워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바나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가 바보 같다고 핀잔을 들었다는 김보통 씨도 이후 다양한 과일을 먹어본 뒤 이렇게 확신했다고 해요. "먹어볼 만큼 먹어봤어도 내겐 바나나가 제일이었어!"
- 이 같은 원칙은 일에서도 적용됩니다. 회사에서는 1) 기획 2) 실행 3) 검수 4)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일을 잘하는 사람은 초기 단계에 집중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3단계에 와서 입장을 자꾸 반복합니다.
- 3단계 이후의 수정은 자잘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와놓고 1단계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획안을 보여주거나 중간에 보고했을 때는 별말 없다가 최종본을 가져갔을 때 방향성 자체를 흔드는 요구를 하는 리더가 있으면 담당자는 혼이 나가버리죠. '사실 처음부터 이 기획 마음에 안 들었다'는 식의 멘트를 덧붙이기까지 하면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를 맞이하지요.
- 도대체 왜 저럴까 답답했는데 제가 리더가 되어보고 알았습니다. 실무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 과정에 드는 노고를 예측 못 하거나 쉽게 여기면 결과물을 보고서야 툭툭 말을 보탠다는 걸요. 무슨 일을 하든 초기 단계에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알게 될 때까지 확인하며 가능한 한 서면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아 기록 남기기. 괴로워도 보고 괴롭혀도 보면서 체득한 태도입니다.
-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 답답했겠지요. 원래 그 시기에는 근거 없는 정신승리와 근거 있는 현실 부정을 반복하다가 과도한 자기혐오로 괴로워하는 때잖아요. 교수님이 갑티슈를 통째로 건네주시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내용은 기억 안 나고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만 선명히 남아 있어요.
"일단 밥 먹으러 나가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봐. 너, 먹고 싶은 건 항시 있어야 한다. 먹고 싶은 게 있는 거 자체가 아직 살고 싶다는 거니까. 그럼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
- "지금도 뭔가 답답해서 안 뚫리고 어둠 속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영화인들, 조금만 잘 버티시죠. 버티시면 좋은 날 옵니다."
- "버티시면 좋은 날 옵니다"라고 말하는 감독의 얼굴을 보면서 실은 그 말이 그가 스스로에게 맹세하듯 자주 내뱉었던, 그가 가장 절실히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남에게 행하는 조언이라고 하는 건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자기라도 자기를 믿어주려고 다짐하던 문장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2014년 출간된 책 <데뷔의 순간>에서도 그는 버티는 마음에 대해 말한 적 있습니다. "겁먹지 않는 태도를 키워야 한다. 챔피언은 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내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 되지 못할 거라는 예감 때문에 두려워했어요. 그때 또 간절히 바라곤 했죠. 생일에 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고. 그걸 원하던 20대 초반의 저를 만나면 말해주고 싶어요. 소원이 진짜로 이루어졌다고. 30대가 된 너는 원했던 대로 크리스마스를 바쁘지 않게 보내게 될 거라고. (원했던 소설가는 못 되었지만 그런 이야긴 굳이 해줄 필요 없겠죠.) 만약 그때로 돌아가 이 말을 해줄 수 있다면 그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까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을까요? 아마도 전자일 것 같네요. 어차피 안 믿을 테니 머리나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 오겠어요.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 영화 속에서 감독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런 메시지를 던집니다. 원하던 어른의 모습이 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그저 지금을 받아들이고 삶이 소중하다는 걸 이해한다면 태풍이 지나간 후의 풍경처럼 어느덧 성장할 수 있다고. 저 또한 바라던 걸 모두 이루진 못했지만 '생일에 바쁘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등의 몇 가지는 이루었어요. 그렇다면 남은 소원들도 언젠가 이루어질지도요.
- 서울역에 갈 일이 종종 생깁니다. 고향에 갈 때도 있고 강의를 하러 지역 도서관이나 지역 대학 같은 곳에 가기도 하거든요. 한 달에 한 번은 기차를 타러 가는 것 같아요. 서울역에 갈 일 있으면 예약해 둔 기차 시간보다 최소한 30분 정도는 일찍 도착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입니다. 기차를 타러 가야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거든요. 그걸 위해서 배가 고픈 채 집을 나서요. 승강장으로 가기 전, 제 발길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바로 롯데리아죠. 전국 그 어디에도 없고 서울의 기차역 두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 메뉴가 있기 때문이에요.
- 혹시 알고 계셨나요?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롯데리아 라이스버거, 개그맨 남희석이 "이거 특종인데?"라는 멘트로 광고하던 이 라이스버거는 많은 사람들이 단종된 걸로 알고 있지만 서울역점과 청량리역점 두 곳에서는 아직 판매하고 있다는 걸요.
- 롯데리아에 갈 때마다 그걸 먹는다는 말에 아르바이트를 해봤다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너 그거 시킬 때마다 알바생들이 사실 뒤에서 욕하고 있다? 그거 되게 귀찮단 말이야. 그냥 딴 거 좀 먹어라."
아르바이트생의 노고 때문에 메뉴를 없앴을 것 같지는 않아서 기사를 확인해 보니 실제로 라이스버거는 밥을 점도 있게 붙인 후 흐트러지지 않게 냉동을 시키는 게 핵심 기술인데 대량생산이 어렵다고 합니다. 많이 팔수록 품질을 고르게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 그런 이유라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면서도...
- 하지만 라이스버거의 앞날까지는 제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라이스버거를 볼 때 사 먹는 일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우리는 지금 가능한 일만 하면 되는 거겠지요.
- 좋아하는 것을 지키는 데에는 애정과 관심뿐 아니라 현실의 돈이 필요하더군요. 개탄할 만한 행위를 한 기업에는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듯 좋아하는 것에는 구매운동을 해서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신호를 미약하게나마 계속 흘려보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기업뿐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마찬가지죠.
-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취업을 할 때 결심한 게 있어요. (이쯤이면 눈치채셨겠지만 제버릇은 자주 결심하는 거예요)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은 꼭 책을 구입하는 데 쓴다는 원칙을 세웠고 계속해서 지켜왔습니다. 그동안 못 낸 책값을 돈 버는 동안 할부로 계속 갚아야 하니까요. 이건 독자들이 보내는 전류를 제가 6개월에 한 번씩 전달받듯, 출판사에 보내는 꾸준한 전류이기도 합니다.
-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려면, 아끼는 것들이 최대한 늦게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할 수 있는 한 거기에 꾸준히 돈을 써서 힘을 실어주면 됩니다. 그건 러브레터이기도 하고, 탄원서이기도 하고, 고객의 소리이기도 할 겁니다. 그건 한 업계를, 한 사람을, 한 시도를, 대박까진 못 내더라도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응원이 되어줄 거예요. 당신에게는 그렇게 오래오래 옆에 남아주길 원하는 존재가 있나요?
- 정문정
- 돌이켜보면, 내가 차가운 면을 싫어한 데는 어떤 옳고 그름마저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차가운 면을 싫어하는 게 옳은 거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던 것이다. 면이란 본디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데, 차갑게 먹는 건 뭔가 '정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같은 이상한 무의식적인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 지금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우리 마음에는 그렇게 남은 자기만의 기준들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부모나 교사, 친구 등 누군가가 심어놓은 내 깊은 곳에 나만의 기준이랄 게 몇 개는 숨겨져 있을 법하다. 예를 들어, 곱창이나 돼지 껍데기 같은 걸 혐오하는 사람들도 대개 그런 걸 혐오하는 부모나 주변의 그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랬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기 전에 편견이나 선입관을 먼저 알게 된다.
- 그래서 내게 20대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온갖 음식들을 경험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어릴 적 부산 사람이면서도 회를 먹지 않았었는데, 회를 먹기 시작한 것도 성인이 된 이후였다. 그 외에도 돼지 껍데기, 닭발, 도가니, 곱창, 닭똥집 등 평생 먹어본 적 없는 것들을 먹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나고서는, 급기야 냉면마저 먹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나는 아내를 만나고 서른에 이르러 냉면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에 묘한 의미 부여를 하곤 한다. 뭐랄까, 드디어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고 나만의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 된 느낌이랄까.
-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음식 궁합이 잘 맞게 된 건 태생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보면, 궁합이라는 것도 만들어가는 것인 셈이다.
- 그런데 최근 한 진화심리학 가설에 따르면, 인간이 바삭거리는 튀김 식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거 인류가 벌레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벌레의 바삭거림에 대한 취향이 지금은 튀김에 대한 선호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과연, 아이가 아직 원초적인 존재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벌레라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벌레를 좋아하는 이유도, 사실 잡아먹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아이랑 살아가는 일은, 나와 아내의 삶에 아이 하나가 추가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입장하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내 어릴 적의 세계도 아니고, 이미 경험했다고 하기엔 거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아주 생소한 세계로의 입장인 셈이기도 하다. 혹은 내가 이미 버렸고, 지나왔다고 생각한 세계로의 시간 이동 같기도 하다.
- 그런데 삶이란 오늘 내가 꼭 먹고 싶은 걸 먹거나 지금 꼭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 시절 자체를 긍정하는 마음도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매번 내가 꼭 먹고 싶은 '바로 그것'을 먹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것과 아이가 먹고 싶은 것, 나아가 아내가 먹고 싶은 것 사이에서 조율해야 한다. 그렇게 조율해서 먹는 것이, 일주일 내내 돈가스일 수도 있다.
- 그렇지만 나는 일주일 내내 돈가스를 먹더라도 불행하진 않다. 오히려 그런 흥미로운 시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행복이란, 당장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한 시절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행복이란, 이 순간의 쾌감보다 더 넓은 무엇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마 또 그 시절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약간의 고약함, 그 약간의 유머러스함, 그 약간의 어쩔 수 없음이 바로 '함께 살아감'의 증거 같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행복이란, 바로 그러한 서로의 조율 속에서 발맞추어 만들어가는 삶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 나는 오이를 먹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몇 번인가 오이 먹기를 시도해 본 적도 있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오이 먹기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이 맛이 싫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싫은 것도 억지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하기 싫은 것 중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오이 맛을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지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무엇이든 먹다 보면 적응하는 게 사람이기도 하니, 나의 취향이랄 것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표적으로, 나는 어릴 적에는 김치를 전혀 먹지 않았지만, 지금은 종종 먹고 있다. 그 밖에도 싫어했던 것들 중 먹게 된 것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오이에 관해서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닫기로 했다. 아무리 먹어도 더 이상 맛있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 처음에는 나만 유별난 것 같아서 죄책감도 들었지만, 차차 그럴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세상에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였다. 이들은 오이를 강제로 먹이는 사람들을 가리켜 '오이코패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이와 사이코패스의 합성어인데, 굳이 오이 먹기 싫어하는 사람한테 오이를 먹이는 사이코패스라며 이런 명칭을 붙인 것이다. 한때 이 용어가 온라인상에 꽤나 널리 퍼지기도 했다.
- 살아오면서 인생이라는 게 싫은 것들 중엔 하지 않아도 좋은 게 있다는 걸 많이 알아왔다. 이를테면, 꼭 만나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거절하고 만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서 좋은 영향을 받는 사람, 함께하는 시간이 의미 있고 좋은 기분을 주는 사람만 만나더라도, 인생은 짧다. 사람에 대해서도 편식해도 된다는 걸 깨달은 건 꽤나 최근 일이다.
- 또 다른 경우로, 나는 독서 편식을 하며 살아왔다. 20대에 몇 천권 정도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지만, 내 책 취향은 매우 편중되어 있었다. 절반 이상이 고전문학이었고, 읽은 책 대부분이 문학과 인문학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역시 그래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시절 문학을 너무 많이 읽었는지, 요즘에는 사회과학서에도 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시절에는 이 시절의 책 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 먹고 싶은 것 먹고, 듣고 싶은 노래 듣고, 읽고 싶은 것 읽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살아도 인생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 물론, 그런 취향들이 지나치게 편중된다면, 그 나름의 문제랄 것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세상에 절반쯤 되는 음식을 먹는다면, 나머지 절반쯤은 싫어해도 좋다. 무엇이든 그럴 것이다. 나의 가족이나 친구 등 내 곁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의 절반쯤을 내가 싫어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앞으로는 그보다 더 자유롭고 서로의 취향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의 여러 결핍들을 찾고, 욕망을 재점검하거나 수정해 나가면서도, 때론 내 욕망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때로 어떤 음식은 그것을 너무도 먹고 싶었던, 내 안의 어린 나를 달래주는 일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음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나 스스로 고쳐야 할 마음의 병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한 욕망과 자신을 괴롭히는 욕망 사이에서 삶을 보다 균형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에는 그를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삶과 욕망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 정지우
- 패턴이고 나발이고 처음엔 너무나 두려웠다. 나는 평소 '불의 요정'이라는 조롱에 시달릴 만큼 조리에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놀이 손님들은 추로스 맛이나 비주얼에 까다롭지 않았다. 탄 것을 주든 날 것을 주든 토끼 간을 본 용왕처럼 감격하며 우적우적 먹어치울 뿐이었다.
- 이럴 수가...! 우리 부모님도 내가 만든 음식을 꺼리는데 물의 왕국에선 백만 대중이 나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곧 내 파트타임 잡을 사랑하게 되었다. 평화가 깨지기 전까진 참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 "드디어 뒷산에서 조스 대마왕이 내려온 건가요?"
"그게 아니라 누가 물에 응가를 했대요."
"뭐라구욧?!"
당시엔 너무 놀란 나머지 제자리에서 팔짝 뛰어올랐다. 위생면에서는 상어 떼의 습격보다 훨씬 비극적인 일이었다.
- 수영장 측은 '수질 정화 작업으로 인해 당분간 운영을 중지한다'며 부랴부랴 문을 걸어 잠갔다. 나는 그때 꼬마장사꾼으로서 굉장한 억울함과 허탈함을 느꼈다. 하하호호 사 먹고 다닐 땐 요식업이 이토록 변수 많고 외로운 직종인지 몰랐던 것이다. 알 수 없는 변고로 내 가게(?) 매출을 날려도 단지 그뿐, 보상이나 위로를 받을 데가 없었다.
- 내가 울상을 할 때 매점 언니는 옆에서 훌라춤을 췄다. 자기는 컵라면 파트라 너무 너무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라도 쉬어야 살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때 언니는 나를 보며 혀를 쯧쯧 차기도 했다.
"넌 나중에라도 식당은 하지 마라. 단기 알바에 감정 낭비하는 것만 봐도 이 길이 아니다."
"저는 어차피 요리를 못해요."
"그게 다행인 것 같아."
- 수영장 측에서는 열과 성을 다해 물을 정화한 후 영업을 재개했다. 매니저님이 맨날 운영 끝난 풀장에 들어가 노는 걸 보면 수질에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 한낮의 수영장은 여전했다. 손님들은 저마다 행복한 물개처럼 수면 위를 떠다녔고, 코를 벌름거리지 않아도 따스한 햇살과 싱그러운 풀내음을 양껏 느낄 수 있었다.
- 그러나 나는 까닭 없이 추로스 판매에 열정을 잃었다. 최저 시급에 인센티브 한 푼 없어도 오로지 매출, 매출만을 부르짖던 나였는데 말이다. 오랜 후에야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 훼손이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소동 후로는 나도 모르게 손님들이 의심되는 탓이었다. 모두 안 그럴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모두가 급하면 그럴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 느려터진 곰손을 친절 하나로 커버하던 나는 결국 퇴사 길을 걸었다. 손님들은 내 맛대가리 없는 추로스를 미워한 적이 없는데 나는 어느새 손님들을 싫어하고 있었다. 거짓 친절에 죄책감을 느껴 퇴사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소독 후의 수영장 물보다 내 마음이 더 깨끗했던 것 같다. 매점 언니가 왜 나를 걱정했는지도 알겠다. 혹시 언니를 만난다면, 이제 난 누구보다 새까만 어른이 되었으니 염려 말라는 안부를 전하고 싶다. 여전히 요리를 못해 언니 충고도 저절로 지켜지고 있다고, 맹한 나를 잘 챙겨줘서 고마웠다고.
- 그런데 왜일까? 고즈넉한 교실에서 부옇게 부서지는 아침햇살을 쬐며 먹거리를 나누는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함께 먹으니 단출한 김 주먹밥과 계란으로만 볶은 밥, 심지어 편의점 삼각김밥까지도 천상계의 맛이었다. 그것은 수다 맛이기도 하고, 우정맛이기도 하고 우리 엄마들의 새벽 정성 맛이기도 한 것 같았다. 나는 당시에도 내가 오랫동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너무 즐거워서 이 순간도 언젠가 추억이 되리란 상상만으로도 쓸쓸해지는 기분이었다.
- 소박하던 파티는 날이 갈수록 화려해졌다. 공교롭게도 나 이외의 친구들은 모두 이쪽 계열(?) 귀족이었던 것이다. 애들은 제각기 마트, 정육점, 빵집 가문의 영애였고, 어느샌가 우리는 아침부터 등갈비나 삼겹살, 생망고, 케이크 같은 걸 양껏 먹어대고 있었다. 다 같이 힘을 준 날의 메뉴는 흡사 출장뷔페 같았다.
- 광란의 조식 파티가 입소문을 타면서 파티원도 늘어갔다. 처음엔 우리 반 친구들, 나중에는 다른 반 친구들까지 집에서 음식을 집어 와 펼쳐놓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아빠 안주인 쥐포나 땅콩, 오징어 따위를 들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신설이라 매점이나 자판기가 없던 우리 학교에선 먹거리가 일종의 우정 화폐 역할을 했다. 친구에게 한입을 얻어먹으면 다음 날 나도 한입으로 갚는 것이 암묵적 규칙이자 친밀감의 표시였던 셈이다.
- 하지만 나는 곧 다시 담임 선생님의 급박한 호출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이젠 내가 선생님의 인생 고민 1위로 올라섰다는 거였다. 나는 야속함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지각하는 습관을 고쳤는지는 하나도 몰라주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정말 지음이 때문에 미치겠어."
"왜요?"
"너 학교에 흉기 갖고 다닌다며."
"네에?"
- 사실이냐 묻는다면, 사실이었다. 늦게 일어나거나 반찬이 변변찮은 날이면 아쉬운 대로 베란다에서 과일이라도 집어 오기 때문이었다. 나는 과일을 깎지 못해서 다른 애한테 부탁하려고 키친타월에 둘둘 만 부엌칼도 함께 챙겨 다녔다. 그제야 아뿔싸 하는 심정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가져온 건 평소의 과도보다도 무시무시한 진짜 식칼이었던 것이다.
"배, 배 깎아 먹으려고 들고 다니는 건데요."
"잊은 거니? 여기는 학교라는 걸...?"
- 나는 그날 책 한 권 없는 가방에 식칼 한 자루가 덩그러니 들어있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당시 우리 고장 특산물이 배였지만, 배에 대한 나의 참사랑 따위는 참작사유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 정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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