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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민음사 판본으로 읽게 되었다.
결과론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순서로 읽게 되어 정말 기쁜 일이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사는 것이 그저 고달프고, 모든 게 귀찮고 싫은 그런 순간이었다.
큰 기대 없이 펴든 시집이 속삭여주는 단어들이 몽롱한 머리에 너무 좋아서,
고개를 가로저어가며 같은 줄을 몇 번이고 읽고 다시 읽은 시집이었다.
문구들마다 눈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움 하나로 폐허를 견디는 것은 나의 일일 뿐]
[환멸은 나무 껍질 같아서 떼어내면 다시 새살이 돋는구나]
'아, 이런 게 시지!!!'
하고 만족하고 돌아왔으니, 참으로 좋은 때에 만난 좋은 책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점점 더 좋은 글들, 덮으면서 마음 속 깊이 기뻐지는 글들을 읽어나가리라 생각하면 무척 설렌다.
내가 읽을 것들이 무한에 가깝게 존재한다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황홀한 일이다.
결과론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순서로 읽게 되어 정말 기쁜 일이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사는 것이 그저 고달프고, 모든 게 귀찮고 싫은 그런 순간이었다.
큰 기대 없이 펴든 시집이 속삭여주는 단어들이 몽롱한 머리에 너무 좋아서,
고개를 가로저어가며 같은 줄을 몇 번이고 읽고 다시 읽은 시집이었다.
문구들마다 눈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리움 하나로 폐허를 견디는 것은 나의 일일 뿐]
[환멸은 나무 껍질 같아서 떼어내면 다시 새살이 돋는구나]
'아, 이런 게 시지!!!'
하고 만족하고 돌아왔으니, 참으로 좋은 때에 만난 좋은 책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점점 더 좋은 글들, 덮으면서 마음 속 깊이 기뻐지는 글들을 읽어나가리라 생각하면 무척 설렌다.
내가 읽을 것들이 무한에 가깝게 존재한다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황홀한 일이다.
[구름의 운명]
푸른 보리밭을 뒤흔들며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처럼 만져지지 않는 사랑이 나를 흔들고 지나갔다
지나간 바람은 길을 만들지 않으므로 상처는 늘
송사리 눈에 비친 오후의 마지막 햇살
그 짧은 머뭇거림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탱자나무 꽃은 온통 세상을 하얗게 터뜨리고
산다는 것은 매순간 얼마나 황홀한 몰락인가
육체와 허공이 한 몸인 구름,
사랑이 내 푸른빛을 흔들지 않았다면
난 껍데기에 싸인 보리 알갱이처럼
끝내 구름의 운명을 알지 못했으리라
[세상의 모든 저녁 1]
여의도로 밀려가는 강변도로
막막한 앞길을 버리고 문득 강물에 투항하고 싶다
한때 만발했던 꿈들이 허기진 하이에나 울음처럼
스쳐간다 오후 5시 반
에프엠에서 흘러나오는 어니언스의 사랑의 진실
추억은 먼지 낀 유행가의 몸을 빌려서라도
기어코 그 먼 길을 달려오고야 만다
기억의 황사바람이여, 트랜지스터 라이도 잡음같이 쏟아지던
태양빛, 미소를 뒤로 모으고 나무에 기대 선 소녀
파르르 성냥불처럼 점화되던 첫 설레임의 비릿함, 몇 번의 사랑
그리고 마음의 서툰 저녁을 불러모아 별빛을 치유하던 날들......
나는 눈물처럼 와해된다
단 하나 무너짐을 위해 생의 날개는 그토록 퍼덕였던가
저만치, 존재의 무게를 버리고 곤두박질치는 물새떼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에
오래 견디어 낸 상처의 불빛은
그다지도 환하게 삶의 노을을 읽어 버린다
소멸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낸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쓸쓸하게 허물어진다는 것,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저녁이 나를 알아보리라
세상의 모든 저녁을 걸으며 사랑 또한 자욱하게 늙어 가리라
하지만 끝내 머물지 않는 마음이여, 이 추억 그치면
세월은 다시 흔적 없는 타오름에 몸을 싣고
이마 하나로 허공을 들어 올리는 물새처럼 나 지금,
다만 견디기 위해 꿈꾸러 간다
[젖은 노을 속으로 가는 시간]
비가 세상을 내려앉히면
기억은
노을처럼 아프게 몸을 푼다
부리 노란 어린 새가 하늘의 아청빛 아픔을
먼저 알아 버리듯
어린 날 비 오는 움막이여
왜 노을은 늘 비의 뿌리 뒤에서
저 혼자 젖는가
내 마음 한없이 낮아
비가 슬펐다
몸에 달라붙는 도깨비풀 씨 무심코 떼어 내듯
그게 삶인 줄도 모르고
세월은 깊어서
지금은 다만 비가 데려간
가버린 날의 울음소리로 비 맞을 뿐
아득한 눈길의 숲길, 말들의 염전
시간은 길을 잃고
나그네 아닌 나 어디 있는가
추억을 사랑하는 힘으로
세상을 쥐어짜
빗방울 하나 심장에 얹어 놓는 일이여
마음이 내려앉아 죽음 가까이 이를 때
비로소 시간의 노을은 풀어 논 아픔을 거두고
이 비의 뿌리 한 가닥
만질 수나 있을 것인가
덧.
이 시인 유하가 영화감독 유하와 동일인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비열한 거리', '쌍화점', '하울링'의 감독.
솔직한 심정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잠시 말을 아끼겠다.
이 시인 유하가 영화감독 유하와 동일인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비열한 거리', '쌍화점', '하울링'의 감독.
솔직한 심정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잠시 말을 아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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