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죠반니노 과레스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세트

일루젼 2012. 2.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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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세트 (전10권)
국내도서>소설
저자 : 죠반니노 과레스끼 / 주효숙,김효정역
출판 : 서교출판사 200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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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1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2
돈 까밀로와 빼뽀네
돈 까밀로의 사계
돈 까밀로와 뽀 강 사람들
돈 까밀로의 양 떼들
돈 까밀로의 작은 세상
돈 까밀로와 지옥의 천사들
힘내세요, 돈 까밀로
돈 까밀로 러시아에 가다


죠반니노 과레스끼. 평생 모를 수도 있었던 이 사람의 글을 알려주신 분께 우선 감사를 드린다.
투닥투닥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뭉클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이탈리아 시골의 어떤 마을.
기독교 당 측인 덩치 크고 힘센 신부 돈 까밀로와 공산주의자로 시시건건 돈 까밀로와 부딪치면서도 급할 때는 서로를 챙기고 돕는 마찬가지로 덩치 크고 힘센 읍장 빼뽀네. 그리고 돈 까밀로와 함께 함께 하시는 그의 예수님.

서로에게 서로의 입장이 있음을, 하지만 그 안에는 선량한 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이토록 유쾌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당시 첨예하게 부딪쳤을 정치적 입장도, 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소소한 사건들도, 모두 조용한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이야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빼뽀네와 돈 까밀로들이 나이를 먹어 그들의 아이들과 조카들이 나타나고, 결국은 러시아까지 여행하게 되는 그 이야기들은 간혹 조금 어긋나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기도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그 이야기 하나 하나가 던지는 다정함이란 것은, 과레스끼가 전쟁과 수용소를 겪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난다.

[아무런 훈장이나 메달도 없이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나는 승리자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이 소용돌이를 헤쳐나왔으니까.  ㅡ 비밀일기 중]

과레스끼의 다정함이 유독 진한 무게를 가지는 것은 그가 아무 것도 모른 채 세상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은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는 '순진'과 '순수'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것은 '순진'이다. 
깨지기 쉽고 더럽혀지기 쉬운, 언제고 깨질 수 있는 것. 누구나 환경만 갖춰준다면 가질 수 있는 손 쉬운 것.
반면 추악한 것을 보거나 괴로운 일을 겪고서도 그 마음의 깨끗함을 잃지 않는 것이 진정 '순수'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닌, 정말 귀한 것이므로 그것을 갖춘 자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순진은 때에 따라 비웃음을 얻지만 순수는 언제나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인데.
과레스끼가 보여주는 따스함은 단단하고 힘이 있어서. '순수'한 다정함에 가까워서. 그래서 정말 좋다.




[고해성사]

돈 까밀로는 입이 매서운 사람이다. 
마을의 늙은 지주와 젊은 여자들이 놀아난 추잡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그랬다. 돈 까밀로는 미사 도중 보통 때처럼 점잖고 의젓하게 강론을 시작했다. 그런데 소문의 주인공인 방탕한 지주 한 명이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게 눈에 띄자 열이 확 받쳤다. 

그는 당장 강론을 중단하고, 예수님이 듣지 못하도록 제단 위의 십자가에 보자기를 뒤집어씌웠다. 그러고는 두 주먹을 허리에 갖다대고 특유의 웅변을 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찼던지 작은 성당의 지붕이 들썩일 정도였다.

선거철이 다가왔다. 돈 까밀로는 공산당 입후보자에게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그 덕에 어느 날 저녁, 마을에 나갔다가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습격을 받았다. 온몸을 외투로 감싼 괴한이 느닷없이 울타리 뒤에서 튀어나왔다. 돈 까밀로는 자전거를 타고 있어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손잡이에는 70여 개의 달걀이 든 보따리가 매달려 있었다. 괴한은 돈 까밀로가 꼼짝달싹할 수 없는 그 상황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몽둥이 세례를 퍼부었다. 그러고는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돈 까밀로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사제관에 도착하자마자 달걀을 무사히 내려놓고 곧바로 성당으로 달려갔다. 의심쩍은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예수님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어찌 이럴 수가 있냔 말입니까?`

돈 까밀로가 열을 내며 예수님께 따졌다.

`몸을 씻고 등에다 기름을 살짝 바르려무나. 그리고 잊어버려라.`


제단 위의 예수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를 모욕한 사람을 너는 용서해야 한다. 이것이 율법이니라.`


`좋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몽둥이찜질이었습니다.`


돈 까밀로가 대들듯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육신이 받은 모욕이 정신이 받은 모욕보다 더 치욕스럽단 말이더냐?`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도인 저한테 몽둥이찜질을 한 건 예수님을 모욕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이러는 겁니다.`

`하느님의 사도 노릇은 내가 너보다 더하지 않았느냐? 그래도 나는 십자가에 나를 못 박은 자들을 모두 용서했느니라.`

`예수님과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돈 까밀로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예수님 말씀이 어제나 옳습죠! 예수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용서합지요.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그자가 저의 침묵에 자신감을 갖고 제 머리통을 박살낸다면, 그 책임은 순전히 예수님이 지시는 겁니다. 구약의 말씀을 인용해보면...`


`돈 까밀로, 내 앞에서 구약을 들먹이는 거냐? 나머지 일에 관해선 내가 모든 책임을 지마.`


예수님은 속삭이듯 계속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끼리 말인데... 너도 매질을 당했으니 잘 알겠지만 말이다... 우리 집에서는 정치 문제를 들먹거려서는 안 되느니라.`


돈 까밀로는 얼굴도 모르는 그 범인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무척 찝찝했다. 누가 자신을 때렸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돈 까밀로는 고해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고해실 창살 너머로 공산당 두목 뻬뽀네의 얼굴이 보이는 게 아닌가! 뻬뽀네가 고해성사를 보러 오다니 입이 쩍 벌어질 사건이었다. 돈 까밀로는 속으로 굉장히 기뻐하였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대와 함께하기를! 자네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성스런 축복이 필요한 사람 아닌가? 고해성사를 본 지가 얼마나 됐나?`


`1908년 이후로 처음이오.`


뻬뽀네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럼 28년 동안 지은 죄를 생각해 보게. 자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못된 공산당 사상과 함께 말일세. 너무 많아 한 번에 생각해내기가 어려울까?`


돈 까밀로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렇소, 좀 많쇠다.`


뻬뽀네가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예를 들면?`


`두 달 전에 신부님을 몽둥이로 때렸소.`


`심각한 일이군. 하느님의 사도를 때린 건 하느님을 모욕한 거나 다름없어.`


돈 까밀로는 이를 앙다물며 말했다.


`회개하고 있소. 하지만 난 하느님의 사도가 아니라 정치선동가인 신부님을 때린 거요. 인간적인 욕망에 빠진 순간이었소.`


`흠... 그 일과 극악무도한 공산당에 가입한 것 말고 다른 중죄는 짓지 않았는가?`


뻬뽀네는 생각하고 있던 죄를 깡그리 털어놓았다. 하지만 뭐, 별 볼일 없는 것들이었다. 돈 까밀로는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스무 번 반복하라고 보속(고해성사 뒤에 신부가 주는 일종의 벌-옮긴이)을 주고 그의 죄를 사해 주었다. 뻬뽀네는 보속을 하기 위해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돈 까밀로도 십자가상 아래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예수님, 용서하십시오. 아무래도 저놈을 한 대 때려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꿈에도 그런 생각 마라. 나는 저자를 용서했다. 너도 용서해야 한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아니더냐?`

`예수님, 공산당 놈들을 믿지 마십시오. 그놈들은 음흉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 저놈을 좀 보십시오. 불한당 같은 저놈의 낯짝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보통 사람의 얼굴과 똑같은 모습이다. 돈 까밀로야, 네 마음은 원한으로 가득 차 있구나!`

`예수님, 제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잘 섬겨왔다면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적어도 저놈의 등짝을 큰 양초로 딱 한 번만 내리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양초로도 안 될까요?`

`안 된다. 네 손은 축복을 내리라고 있는 거지, 사람을 때리라고 있는 게 아니니라.`

돈 까밀로는 한숨을 지었다. 그는 머리 숙여 절하고 제단에서 물러났다. 성호를 그으려고 제단 쪽으로 다시 돌아서니 뻬뽀네의 등짝이 보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한창 기도에 몰두해 있었다.

`정 그러시다면...`

돈 까밀로는 두 손을 모은 채 예수님을 바라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손은 축복하라고 있는 것이지만 발은 아닙니다.`

`그건 그렇구나.`

제단 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돈 까밀로, 부탁이다. 딱 한 번만 차라.`

예수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돈 까밀로는 번개처럼 날아가 뻬뽀네의 등짝을 걷어찼다. 뻬뽀네는 제단 앞으로 발랑 나자빠졌다. 그런데 뻬뽀네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몸을 일으키며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10분째 이걸 기다리고 있었소. 나도 이제야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소이다.`

뻬뽀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그렇다.`

돈 까밀로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마음도 맑게 갠 하늘처럼 후련하고 시원했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분도 속으로는 흡족해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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