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박한진, 손인균] 주술과 세뇌 - 점쟁이와 무당에게 휘둘리는 사람들

일루젼 2023. 7. 2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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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한진 / 손인균
출판 : 다크아트
출간 : 2017.02.01 


       

'A'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단점이며 사실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A'에 너무 깊게 빠져들어 자기 통제력을 잃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A에 빠지는 상태는 통제력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되지 않은 상태에서 A를 적절히 이용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에 관한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외부로부터 오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스스로를 종속시킬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세뇌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와 더불어 그런 상태에 빠지기 쉬운 원인으로 합리성이 결여된 주술적 사고를 꼽는다. 그러나 현대 과학이 추구하는 원인과 결과의 연결이 주술적 사고가 갖는 연결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에 관해서는 의도적으로 간단한 인용문만을 소개하는데 그쳤는데, 보편적 재연성이라는 확률의 문제에 달려있다는 점을 다루는 것은 여러모로 저술 취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내부에서 외부를 받아들이는 힘이 없다면 비단 점술이나 주술뿐 아니라 모든 것들에 종속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의견, 타인의 취향을 소라게처럼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그들 간에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 껍질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일, 그것이 저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메타인지이자 현순간의 명확한 감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지막 인용문은 초반의 다소 공격적인 서술 내용과 상충되지 않나 싶은데,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했으면 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됩니다."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것들에 적용된다. 

 


   

- 왜 사람들은 주술과 점술을 찾는가? 

 

-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분명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징크스 혹은 주술적인 행위들은 우리 주변에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거기에 완전히 빠져버려서 일상생활조차 방치하고 주술적 행위에 몰두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일까?

-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주술적 사고에 빠져있을 때 일어난다. 주술적 사고란 사람들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초자연적, 주술적 현상과 개념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전개되는 사고를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 복싱 선수가 최초로 챔피언이 되었을 때 끼고 있던 글러브는 그가 인생을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글러브를 끼면서 당시의 자신으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이렇게 합리적인 사유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술적 사고이다. 

- 이러한 주술적 사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교육을 잘 받지 못했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쉽게 빠져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의 오움 진리교 사건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도쿄대 출신의 공무원이나 의사 등 고학력자였음을 보면 알 수 있듯 주술적 사고에 빠져드는 것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지적 능력의 높고 낮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우리는 누구나 그럴 상황이 갖추어진다면 주술적 사고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 

 

- 이렇게 본다면 주술적 사고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기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주술적 사고는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기능 중 한 가지로 자리해 왔다. 왜냐하면 주술적 사고는 우리에게 위험을 무릅쓸 힘을 주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주술적 사고에 빠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개별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외부 환경, 상황과 그 사람이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다루는지와 같은 삶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이러한 외적 요소에 따라 주술적인 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정해질 뿐 지성적, 합리적 사고를 통해 주술적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 동일한 형태에는 동일한 속성을 지니게 된다는 주술적 사고는 우리의 삶 속에 만연해있다. 

 

- 이러한 주술적 관계가 도식화된 것이 바로 상징이다. 상징이란 유사성의 법칙과 대표성을 이용한 기호를 말한다. 이 둘을 통해 특정한 기호와 특정 관념을 연결시키게 되면 그 기호가 바로 상징이 된다. 

 

- 흔히 징크스(Jinx)를 이야기하곤 한다. 간단하게는 시험 보기 전에는 꼭 머리를 감지 말아야 한다거나 아침에 고양이를 보면 운이 없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다. 분명히 이런 징크스가 생겼을 때에는 그렇다고 여길만한 연결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반복하여 행하면서 점점 더 이러한 연결성을 강화시켰다고 본다면 징크스의 진위 여부에는 의심이 든다. 

 

- 그렇다고 저주가 완전히 작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저주가 주술적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저주가 사람들의 행동과 인식을 제약한다고 보아야 한다.  
 

- 그러면 다시 컵스의 저주로 돌아가 보자. 분명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저주를 헛소리로 치부하며 아무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승이 좌절되면서 사람들이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던 와중에 저주의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이 팬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점차 사실로 여겨지기 시작하면 점점 저주의 힘이 강력해지게 된다. 

 

- 그렇기에 저주 해소의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저주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저주에 걸려있다는 생각이 행위능력을 제약하기 때문에 그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형태는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유사성의 원리에 의해 저주 해소의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제약을 풀어내고 본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실제로 종교적 혹은 사상적 이유로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은 매우 평범하다. 심지어는 가정을 가지고 배우자와 자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매우 높은 학력의 소유자인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중년의 여성인 경우도 있다. 흔히 생각하는 테러리스트가 젊은 독신 남성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추측에 비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 이들의 행동은 이들이 컬트 집단에 들어갈 때 이미 조종당하게 되어 있다. 앞에서 실존적 공허에 의해 이를 채우기 위한 방안을 찾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때 그들이 선택한 방안이 바로 그들을 조종하는 열쇠가 된다. 만약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가진 재테크 집단이라면 <돈을 많이 번다>라는 목적을 위해서 뭐든지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실존적 공허를 해결할 것이라고 여기는 [보편무의식]이기 때문이다. 

- 컬트 멤버를 조종하는 것은 컬트 리더의 가르침도 아니고, 교전에 쓰여진 교리도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컬트의 배경에 위치한 [보편적 무의식]의 원형이다. 이 원형을 인지하고 다룰 수 있는 컬트 리더는 컬트 멤버 그 누구라도 어떤 일을 시킬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보편 무의식의 원형을 사용하는 한 컬트 멤버는 자신의 행동이 숭고한 대의를 위해서 행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자아가 무너진 사람이 컬트에 몸을 담게 되면 보편 무의식의 원형인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그의 마음을 잠식한다. 그리고 그의 몸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사상을 위해 마치 로봇과 같이 행동하도록 조종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조종하는 것은 심리 조작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한 의도와 많은 사람들을 위한 헌신의 태도가 오히려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을 가로막게 된다. 

 

- 공의존을 통해 의존성 인격장애에 들어가게 되면 무언가에 의존하고 의존받지 않으면 불안함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이때 자신이 의존하고 의존받을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된다면 그 집단 이데올로기를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그 집단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 그러므로 세뇌는 현란한 교리나 교주의 카리스마에서 오지 않는다. 세뇌는 관계성으로 이루어지며 이 관계성이 마치 거미줄과 같이 읽어 매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뿐이다. 

 

- 지금까지는 주술적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분명히 주술적 사고는 사람의 자아를 붕괴시키고 보편적 원형에 지배당하도록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의식 상태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을 잘 활용한다면 자신의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뿐더러 여러 가지 분야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도록 할 수 있다.

 

- 실제로 많은 백만장자들이 자신들만의 주술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만지작거리는 책이 있다거나, 잠들기 전에 기도하는 제단을 가지고 있다거나, 중요한 협상 자리에서 행동하는 징크스와 같은 행동들이 있다거나 한다.

 

- 물론, 이들이 이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만장자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술적 사고에 의한 행동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담과 압력의 일부를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있다.

 

- 이러한 주술적 행동들이 주술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러한 주술적 행위를 한 뒤에는 스트레스 완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주술적 행위를 그 의미를 파악한다거나 그 배경에 있는 사상에 집중하지 않고 그 기능적인 부분에 집중한다면 분명히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그 기능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주술이 본래 행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 주술적 사고를 이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힘을 가진 물체에 접촉하여 그 힘을 자신에게 가져오는 것이다. 이는 주술적 사고 중 접촉주술적 사고를 이용한 것으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제한에 갇혀 있을 때 그 제한을 깨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 첫 번째는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이다.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평가이다. 즉, 자기 자신을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능력이라고 못 박아버린 자신의 모습으로, 대다수의 경우 이 자기 효능감은 실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낮다. 즉, 실제로 제자리높이뛰기를 했을 때 본래의 신체 능력이라면 40cm가 가능한 사람이지만 자기 효능감이 낮을 경우 30cm가량의 높이밖에 뛰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셀프 이미지가 자신의 한계를 마치 유리천장과 같이 막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자기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판단할 때에는 실제의 능력보다 낮추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도구와 접촉하는 것을 통해 그 힘의 영향에 의해 자기 효능감을 넘어선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행했던 기억력 실험에서 자신만의 행운의 부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를 보게 되면 부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 두 번째로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효과이다. 이는 대부분의 자기 계발 서적 등에서 의미를 잘못 전달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이 부분을 우선 짚어두고 넘어가고자 한다. 여러 가지 자기 계발 서적에서 이 자기실현적 예언을 말하면서 간절히 생각하고 상상하던 것들이 미래에 이루어진 것을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자기실현적 예언은 능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저 미래 연상을 강렬하게 하는 것으로는 주술적 사고가 그다지 강렬하게 일어나지 못한다.

 

- 자아도 휴식이 필요하다. 항상 긴장하고 자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자아에게 과도한 긴장을 유발하고 자아가 쉽게 지치는 원인이 된다. 자아가 지치게 되면 오히려 자주, 쉽게 퇴행을 하게 되며 이렇게 퇴행하게 되면 다시 자아를 유지하는 힘이 약해지므로 점차 퇴행하는 빈도가 높아지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 이렇게 악순환에 빠지기 전에 자아에게 휴가를 주어서 쉬게 만드는 것을 적극적 퇴행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퇴행의 부정적 면만을 이야기했지만 퇴행은 쾌락 작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퇴행을 하게 되면 즐거움을 느끼고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오히려 퇴행이 없는 삶이 되면 온갖 규율과 현실의 사건들로 인해 자아는 말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따금 자아에게 휴가를 주고 쉬어야만 다시 자아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 이 자아의 휴가가 바로 적극적 퇴행이다. 퇴행을 할 때에는 자아가 해리되면서 보편적 원형들과 만나게 된다. 이때 만나게 되는 보편적 원형들이 내가 선택했던 원형이거나 내게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보편적 원형이라면 자아는 오히려 힘을 얻고 돌아온다. 즉, 다른 누군가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행하는 주술 행위는 오히려 놀이와 같아서 자아에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준다. 

 

- 이렇게 들으면 적극적 퇴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적극적 퇴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재미있는 적극적 퇴행 방법을 소개해 본다. 미리 주술적 사고에 빠져들기 전에 주의를 주자면, 이것은 단순한 정신적인 상상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현실에 일어나거나 하는 일도 없다. 그저 우리의 정신을 퇴행시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다. 

- 눈을 감고 사방이 흰색인 방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는 수많은 색의 크레용이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 크레용 중에서 원하는 색을 가지고 흰 벽에 크레용으로 선을 그려본다. 처음에는 짧은 선을 그리고 나중에는 점점 긴 선을 그려본다. 벽 한 면을 여러 가지 색의 크레용을 이용해서 색을 칠해본다. 점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익숙해지면 바닥이나 다른 벽도 그림을 그리도록 한다.

- 처음에는 간단한 선에서 시작해서 도형, 나중에는 동물이나 곤충 혹은 상상의 동물들도 그려보도록 한다.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흰 벽에 그려보도록 한다. 그림이 아니라 말을 써도 좋고 단순히 손이 가는 대로 움직여서 알 수 없는 무늬를 그려도 좋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억압 없이 마음대로 흰색 벽을 그리도록 한다. 

- 충분히 만족할 만큼 그림을 그렸으면 천정에 검은 블랙홀을 상상하고 그 블랙홀에 지금까지 그렸던 모든 것들이 빨려 들어가 사라지도록 한 뒤에 블랙홀을 사라지게 한다. 그렇게 하면 다시 이 방은 흰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게 될 것이다. 이 상태에서 다시 눈을 뜨도록 한다.

- 이것을 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스스로가 즐겁게 퇴행하여 어렸을 때 낙서를 했던 것 같은 체험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또한, 마지막에 모든 낙서를 없애는 것으로 그 낙서가 내 정신에 남아있지 않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신에 대한 영향도 소거할 수 있다. 만약 마음이 지치고 피곤할 때에는 이런 식으로 적극적 퇴행을 충분히 한 뒤에 돌아오면 세상이 전보다는 더 맑게 보일 것이다.

 

- 이제는 이러한 심리적 조종과 주술적 사고로 이끌어가는 여러 가지 환경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키는 세뇌 방어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은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넘어섰다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며 아직 여기를 넘어서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지키는 것으로 자신을 회복할 수 있다. 이 마지노선은 [실존적 공허]이다.

 

- 자아의 건강함이란 인지 능력과 오감 능력의 연동 정도에 따른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그러므로 해리된 자아를 되살리는 것 역시 이자아의 인지 능력과 오감 능력의 연동성을 되살리는 것으로 가능하다. 즉,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흐려짐 없이 느낄 수 있게 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자아를 되살리는 훈련이 된다. 

 

-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스스로가 항상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오감을 항상 신경 쓰게 되고, 보이는 것, 맛보는 것, 느껴지는 것, 들리는 것, 냄새 맡는 것 모두에 의식을 향하게 된다. 그 결과 오감과 자신의 인지 주체 사이의 연결성이 튼튼해지며 퇴행을 한다 할지라도 다시 되돌아오는 힘이 강해지게 된다. 

- 즉, 자아의 건강함은 근육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근육은 쓰면 쓸수록 견딜 수 있는 힘이 강해진다. 이와 같이 인지 주체와 오감의 연결을 훈련하면 훈련할수록 자아의 연결성이 견딜 수 있는 힘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자아의 힘이 강해지면 외부의 사건이나 초자아의 단죄 등 자아를 퇴행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이 연결이 끊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정도까지 해리된다.

  

- 하지만 자아의 힘을 키워놓았다면 자아의 퇴행이 일어났다 해도 자아가 분리될 정도로 퇴행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물론 긴장과 흥분 상태는 이어지지만, 자신의 기억이나 인지적 능력이 명료하게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큰 실수 없이 사고를 수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아의 힘이 강력하다면 자아를 퇴행시키는 세 가지 요소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사실상 자신이 느끼는 것에 책임이 있으며 다른 사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최우선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며 그다음에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건강한 관계란 두 아이 간의 관계나 한 아이와 한 부모 간의 관계가 아니라 두 성인 간의 관계입니다. 만약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을 돌보고 있을 때, 이는 두 사람 모두의 힘을 없애버립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돌보아야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린 아이나 희생자, 무력한 사람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이나 펼쳐진 일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통제하려 할 때, 우리는 사랑이 아닌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관계가 마음대로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조종하기를 포기하며, 그들의 선택을 조종하기를 포기하고 일어난 모든 일들은 완벽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 우리가 스스로의 순위를 가장 아래로 두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중시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기애가 부족한 것에서 오는 패턴으로, 빈 우물에서 무언가를 주기 위해 끌어 쓰면 스스로를 채우지 못하고 풍요롭지 못한 곳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분노와 후회만 남게 됩니다. 

 

- 자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내면에 있으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연결하는 것을 계속 훈련하면 내면의 진정한 원천에 연결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행복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사랑이란 자유입니다. 
규칙과 제한은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했으면 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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