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융 푸에블로]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 진실한 나로부터 솟아나온 이야기

일루젼 2023. 8. 3.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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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융 푸에블로 / 김우종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022.08.10 


       

간결한 문장들이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때때로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자주 빠졌던 함정은 이런 것들이었다.

 

지금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겠다고 의도했으나 실제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참기. 그래도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진심으로 허용해주지 못하니 자꾸만 타인의 의견을 빌어와 '괜찮다'는 인정을 듣고 싶어 했다.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면 화가 치밀었다. 나는 나로서 온전한데, 왜 타인 또한 나라는 제약으로 스스로를 억제해야만 하는가. 두 가르침이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보다 타인을 우선시해야 더 큰 사랑인 것 같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 경우에는 주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들이 타인의 모습으로 돌아오거나,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타인에게 듣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체화되어 자연스러워지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훨씬 편안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 타인 또한 그러하다. 누군가의 선택과 행동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 서로가 다름을 인지하고 부드럽게 그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족하다. 매 순간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런 불일치의 순간들은 줄어든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지금 이대로를 긍정하는 것'과 '더 나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 사이의 괴리였다. 지금의 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는데 왜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가? 혹은 이상적인 나와의 불합치를 느끼면서 어떻게 지금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었는데 <킹크>와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를 읽으면서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다. 지금의 자신을,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진심으로 사랑하고 바라봐주는 것이 보다 이상적인 자신 -또는 변화한 자신- 으로 가는 길이다. 현재의 나는 어느 누가 나 대신 살았더라도 이 이상 좋아질 수 없었을 최고의 나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줄 수 있을 때, 죄책감이나 질책이 아닌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에서야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다음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봐야지. 그전에 내가 왜 그것을 원하지 않는지를 살펴봐줘야지. 

 

다음 기회가 반드시 있을 거라는 믿음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옅어지게 만든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다보면 '선택'의 직전, 잠시 틈이 생긴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어떤 것들이 있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내 안의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지?' '지금 나는 이 선택을 원하나?' 같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틈. 그리고 그 순간의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하면 된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더라도, 그것에 더 이상적인 것 같더라도, 지금의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갈망과 욕망은 충족되지 않지만 스스로에 대한 허용은 그것들을 조금씩 씻어준다. 그리고 나면 어째서 다른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었는지'를 살펴볼 여유가 찾아온다. 

 

'잘 되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며 '잘못'도 아니다. 온전히 '지금'에 녹아드는 것이 먼저다. 변화는 지금이 완전해진 다음 찾아온다. 

 

라고 써보지만 여전히 일렁이고 있다. 

내가 괴롭게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올 것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즐겁고 기쁜 순간들만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떤 상황과 감정을 경험하게 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이 나름의 경험이라는 것, 그러므로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이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해 보는 중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함과 고요함을 느끼며 나눌 수 있기를.

 

그리고 그전에, 내가 행복해하는 것들을 즐기면서 신나게 놀기를. 

  


 

   인류가 21세기에 꼭 배워야 할 두 가지 교훈 :

남을 괴롭히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것은 세상을 돌보는 것이다.

 

 

 

- "자신의 힘을 되찾으라" "자신을 돌보라"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알라"

왜 이런 말들을 여기저기서 자주 보게 되는 걸까요. 바로 그것들이 자유와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내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내려놓기 위해 나는 먼저 그것의 존재를 존중해야 했습니다.

 

- 나 자신에게는 사랑을 주지 않고서 남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것은 기초공사 없는 집짓기와 같습니다. 

 

-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감춰둔 고통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서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가슴을 닫고 살았습니다. 

 

- 자신을 돌보려면 놓아버릴 수 있으려면 우리 깊숙이 곪아 있는 그곳을 바깥으로 드러내야만 합니다.

 

- 실제와는 거리가 먼 색색의 가면을 만드는 데 나는 참 많은 시간을 써버렸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맞추어 내가 연기해 온 역할들 말이에요. 자신감이 없고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허락지 아니한 사랑을 남에게서 얻어내려 불쾌함을 감수할 때 내 안의 들썩임을 덮어 감추어준 겉싸개들 말이에요.

 

- 나는 내 어둠을 피해 달아나기만 했습니다. 
정작 그 어둠 속에 내 자유가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요.

 

-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타인처럼 대하며 지냅니다. 그냥 지켜본 뒤 놓아버리기에는 너무 거슬리는 경험과 생각을 억누르는 데 정신이 팔려, 진실이 무엇인지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 알지 못하지요.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부터,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부터, 정답을 모르는 문제로부터 도망치기만 하는데, 그렇게 자신에게서 멀어질수록 자유로부터도 멀어진다는 것이 우리 마음의 모순이에요.  

 

-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판단하지 않고 정직하게 인정하면, 가슴엔 벽을 치고 마음엔 망상을 일으키는 긴장을 확 풀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는 진정 우리의 어둠 속에 있어요. 안을 향한 알아차림의 빛으로써 그 어둠을 바라볼 때, 에고는 무로 흩어지고 억눌려 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지요. 

- 마음은 그림자들로 가득하지만, 그것들은 지치지 않고 묵묵히 비추는 빛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늘의 별들처럼 순수한 빛의 향연이 될 수 있어요. 치유된 마음은 앎과 지혜로 채워진답니다.

 

- 자신의 고통을 외면할 때 우리의 성장은 멈춥니다. 
자신의 고통에 지배당할 때 우리의 성장은 멈춥니다.
자유란 고통을 직면하고 놓아버리고 다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 그들이 원하는 것이 오직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게 하는 것뿐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 당신이 자신을 찾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벽이 당신의 감옥이 되지 않게 하세요. 
 
- 더 나은 대안이 없다면, 우리 마음과 가슴속에 세워진 그 벽은 쓸모가 있습니다. 누구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지요. 하지만 그 벽이 과연 우리를 보호하는지 아니면 구속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보는 연습은 위와 정반대의 존재 상태를 만들어줍니다. 마음의 벽을, 고통을 일으키는 패턴을, 트라우마와 정신적 압박을 해체하고 우리 안에 있는 우주를 발견하게 하지요. 이러한 안으로의 여행, 스스로 세웠던 장벽의 철거는 자연히 더 넓고 신선한 앎으로 이어집니다. 내 안에 더 큰 시공간이 확보되었으니, 바깥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낡은 패턴을 맹목적으로 반복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내 반응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 우리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담긴 에너지로 무조건 표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 결점이 있단 이유로 자신을 벌하려는 시도가 멈추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이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가진 혼란과 슬픔의 대부분은 내 안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여행은 나로부터 소외된 나를 찾아 없애고, 내 빛과 내 어둠을 연결하고, 알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로 합친 경험입니다. 오직 이 진실하고 통합된 느낌만이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깊은 안식을 내게 주었습니다.  

 

- 행복을 향해서 자신을 몰아가는 태도는 순수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습니다.

- 고요한 알아차림 속에서 모든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우리의 진짜 과제입니다.

 

- 고난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 치유의 길에서는 우리가 놓아버릴 필요가 있는 해묵은 감정과 패턴이 솟아오르곤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 자신의 감정을 부추기거나 억누르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존중하되, 지금 여기에 있는 그것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분명히 아는 태도는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 안에 폭풍이 몰아쳐도 끄떡없는 이런 고요한 공간이 생겨나면, 폭풍도 어찌 알고 더 빨리 물러간답니다.

 

- 자신에게 철저히 정직해지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인생이 안팎으로 모두 편해집니다. 정직함 없이는 자유로울 수 없고, 정직함 없이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 치유는 엄청난 행복을 끝없이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행복을 향한 집착도 우리를 제약하긴 마찬가지예요.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대신 우리 존재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두려 하기 때문에 늘 역효과를 불러옵니다.

- 오늘날의 사랑에는 참 많은 조건이 붙는데, 그건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완벽함을 바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기대나 희망이 그런 조건부 사랑임을 깨닫지 못하곤 해요. 다 그들 잘되라고, 그들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믿으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내줄 수 있는 가장 순도 높고 강력한 형태의 사랑을 제한해 버립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독려하는 이타적 사랑 말이에요.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들의 대부분은 집착과 기대에 불과합니다. 주는 데 초점을 맞추는 습관을 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거든요. 내면의 힘이 필요하고, 반복 연습이 필요하고, 마음의 치유도 필요하고, 이타적 본성을 불러내어 그걸 나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야 하지요. 그리하여 주는 데 초점이 맞춰진 사람들끼리는 특별한 조화 속에 머물게 됩니다. 섬세한 교감과 확장된 알아차림이 그들 서로의 행복을 든든히 지지하지요.   

 

- 사람들은 걱정하곤 해요.

"어떻게 해야 내 소망을 확실히 이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어쩌면 다음의 질문이 더 필요한 건지도 몰라요.

"소망을 이루려 애써왔지만 과연 그게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마음속 조건화와 갈망을 정화하는 데 성공한 이들입니다.  

 

-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자연의 법칙을 알고 지혜롭게 따르자는 거예요. 모두가 사심 없이 내어주려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받게 될까요. 

 

- 그들의 말은 틀렸어요. 이 괴로움, 이 골칫거리, 이 파괴적인 습관들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가슴은 불로 만들어졌고 마음은 물로 만들어졌기에 그 본질상 늘 변화하니까요. 
치유를 향한 의지만 있다면 영혼 깊숙이 배어든 얼룩도 지울 수 있습니다.

 

- 성장한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폭풍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지나가는 동안 고요를 유지합니다. 

- "사랑 속에서 산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판단하려는 마음을 뛰어넘어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지혜가 우리의 행동을 지휘하도록,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려는 사려 깊은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우리의 모든 발걸음이 인류라는 대양을 평화롭게 만들도록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가슴을 열고 살아감으로써 그 선의와 온정이 모든 사람과 공유되도록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사랑으로써 이 상황을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자신에게 묻는다는 뜻입니다.

 

- 한때는 끝이 없어 보이는 지독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평화가 가슴의 치유 능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나란 존재가 원한 것은 지혜였지만

나는 내내 지식만을 찾아 헤매며 살았습니다. 
내 마음을 채워줄 정보가, 논리와 근거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내 존재를 채워줄 경험이, 자유와 치유와 통찰의 빛이 필요하단 걸 몰랐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았더니 수없이 많은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 많은 생의 사연들이 내 몸에 저장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지금 그 모든 공간, 그 모든 시간 속에 동시다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 나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한 것을 판단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제로 놓아버리고 해방시킴으로써 새롭게 태어난다. 

- 우리는 늘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단 그 변화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려면 치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힘을 적극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집니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갈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 마음을 고요한 집중으로 이끄는 모든 방법은 우리를 짓누르던 낡은 짐을 벗겨내고 정화해 줍니다. 그냥 자기 내면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가의 명상법, 수행법처럼 검증된 기법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해갈 때, 우리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 물론 기법들마다 그 지향점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힘들어도 해볼 만한 난이도에 실질적인 이로움까지 경험하게 해 준다면, 그 기법은 지금 당신에게 알맞은 것입니다. 나중에는 더 깊은 치유를 위해 더 예리한 도구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요. 마음 깊숙이 억눌린 것들을 치유하고 사랑이 들어갈 자리를 창조해 내는 기법들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력합니다.

 

- 한순간 왔다가 가버리는 감정들에 매달릴 때 우리의 삶은 무거워집니다. 놓아버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 집착밖에 없을 때는 더욱 그렇지요. 놓아버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우리는 이런저런 것들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의 순간을 길게 늘여버립니다.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이 변화 그 자체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놓아버리기는 망각도 아니고 포기도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과거의 일 또는 미래의 희망사항에 의해 깎여나가지 않게 지키는 거예요. 

 

- "어떻게 자유로워지셨나요?"
그녀가 답했습니다.

"나 자신의 힘을 받아들였습니다."

 

-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녀는 답했습니다
"진정한 행복과 나 사이의 모든 장애물을 발견하고 해방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모든 측면을, 특히 어둠 속에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사랑하고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감추지 않고, 나 자신을 늘 관찰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자기 이해의 폭을 넓혀서 내면의 평화를 위한 지혜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 자기애는 우리의 개인적 진화를 위해 쓰이는 에너지이자, 두 가지 핵심 지향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과 이상적인 나로 스스로 변모해 가는 것- 사이의 교차점이자 균형점입니다. 이 두 지향점은 서로 반대되는 듯 보이지만, 둘 다 우리의 궁극적인 성취에 꼭 필요합니다. 

 

- 사랑은 이런 게 아닙니다.
"네가 저걸 준다면 나는 이걸 줄 거야."

- 사랑은 이런 겁니다.
"네가 빛이 나도록 나는 이걸 줄 거야."

 

- 집착과 달리, 진정한 사랑은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 사랑은 고통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집착이지요. 어떤 대상이나 사람을 붙잡으려고 할 때, 또는 어떤 일이 입맛대로 되기를 바랄 때 우리는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집착의 절규를 내면에서 느끼지요. 스스로 지어낸 그림과 나 자신을 더 깊이 동일시할수록 절규도 커집니다. 우리 마음이 붙잡고 있는 그림과 반대되는 상황이 일어날 때, 우리는 그 집착이 찢기고 부서지는 고통을 정말로 느낍니다.  

 

- 집착은 사랑의 한 방식이 아닙니다. 조건 없는 사랑, 이타적인 사랑,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은 상위의 존재 상태여서 마음속에 집착이나 그림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그것은 철저히 비어 있는 상태예요. 기대하는 마음과 판단하는 마음도 미숙한 마음이 흔히 만들어내는 집착이어서 우리를 행복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습니다.  

 

- 모든 존재를 조건 없이 사랑하면서도 타인에 의해 고통받는 일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그런 삶의 길이 있습니다.

 

- 두려움은 통제권을 원합니다. 복수심은 고통을 연장합니다. 적개심은 평화를 깨뜨립니다.

연민은 치유를 가속화합니다. 정직함은 짐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놓아버리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 모든 사람이 선생님이라고 해서, 모두가 바른 행동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면 다른 사람들도 연민으로 대하게 되고, 모두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게 됩니다. 누군가 한번 그릇된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가 또 그럴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인식했다 해서 그게 우리가 그보다 낫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을 취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합니다. 

 

-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에고의 제한된 시야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엄격하고 고집스러운 분별심 없이, 그저 순수하게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지혜의 표식입니다. 

 

- 때로 나도 모르게 예전으로 돌아가 뻔한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더 확실히 기억해 두기 위해서입니다.

 

- 나의 힘을 회복하려면 맹목적인 반응이 아니라 성숙한 대응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나에게 주어야 합니다.

 

-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마음의 갈망 대신 몸의 요구를 당신의 건강 길잡이로 삼으세요.


 

악의가 없는 상태가 정상입니다.

 

 

 

- 나는 나의 두려움을 소중히 손에 들고서 고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것이 그어놓은 한계선 너머에 행복이 있음을 가르쳐주었으니까요.

 

- "당신에게 힘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내적 평화의 견고함, 판단하지 않고 자신을 관찰하는 정직함,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의 무한함,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의미합니다. 

 

- 마음의 영역은 우리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광대합니다. 우리가 감정과 기억과 생각을 인식하는 표면의식은 잠재의식에 비해 너무나 작습니다.  

 

- 그렇기에 그저 행동의 제약이 없는 것, 물리적 결핍이 해소된 것, 외부의 압력이 제거된 것을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표면의식이 나는 자유롭다고 스스로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표면의식이 그렇게 믿는다 해도, 잠재의식이 고통과 망상과 불행을 일으키는 반응 패턴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면, 그 날뛰는 마음의 폭정 때문에 우리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 우리가 마음의 치유와 훈련을 시작할 때, 그로써 움켜쥔 것을 놓아버리고 삶의 바다에 몸을 맡겨 고통에서 해방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우리 자신을 깊숙이 관찰하여 잠재의식에 똬리를 튼 집착과 자책을 놓아버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뭔가를 갈구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매 순간 지금 여기에서 자유롭습니다. 

- 과거의 무게, 미래의 갈망을 놓아버릴 때 우리의 마음은 정화됩니다. 내 행복이 내 소유물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더더욱 이렇게 해야 합니다. 에고를 투사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순수하게 관찰할 때, 우리 마음은 명석하고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합니다. 자유는 내 안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자유는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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