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나가키 에미코] 퇴사하겠습니다

일루젼 2023. 10. 7.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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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나가키 에미코 / 김미형
출판 : 엘리
출간 : 2017.01.17 


       

표지가 너무 귀엽다!

 

9월 말 문화의 날에 이나가키 에미토의 저서들을 대출해 왔다. 다른 읽을 책들도 많아서 대출 가능 권수를 꽉꽉 채우는 편은 아닌데, 그날은 어쩐지 곧 연휴라는 생각에 욕심을 부려봤다. (공휴일이어도 정상근무를 하는 직종이라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연휴였는데, 기분이 이렇게 무섭다)

 

우선 일본과 한국의 직업 환경적 차이점에 시선이 갔다. 28년 근무 후 자진 퇴사했다는 저자의 말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저자는 정년 은퇴가 정직원과 계약직원의 차이인 것처럼 설명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정직원이라고 해서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한 직장에서 20년 이상 근속이 가능하다는 점이 여러모로 인상 깊었다. 

 

저자는 회사-직장이라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해서 사회가 운영된다는 의미로 회사 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흔히들 직장인의 지갑은 유리지갑이라고 농담을 할 만큼 중요한 세수원임은 분명하지만, 타국의 독자로서는 그 의미 외에도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연금의 지급 주체가 회사라는 점인데 (주소지 변경 시 총무과로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회사가 도산하게 되면 연금 지급도 중단되는 것일까? 건강보험증 실물을 지참해야 한다거나, 서류 제출을 위해 직접 관공서를 가야 한다는 설명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다. 회사용 휴대폰과 컴퓨터를 반납하면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도 사라지게 되니, 연락을 취하고자 하면 편지를 써야 한다는 설명도 그렇다.

 

어쨌거나,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는 자신의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의식하지 않고 지낼 때는 몰랐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기본적인 삶의 구조가 기형적일 만큼 '회사'라는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좋건 싫건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만 한다. 당연히 회사라는 소속이 사라지고 나서도 '삶'은 이어진다. 어쩌면 그런 삶이야말로 진짜 삶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회사'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뒤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시점을 결정하는 것이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이 될 수는 없을까? 

 

<퇴사하겠습니다>는 파이어족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적인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저자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바들을 주관적으로 주장하는 에세이라고 보는 쪽이 적절하다. 한국의 독자로서는 저자의 설명이나 주장에 이입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틀림없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 매몰되지 않은 자연인으로서의 '나'를 찾고자 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물론 아프로 헤어를 한다거나, 냉장고를 버린다거나 하는 저자의 선택들은 순수하게 충격적이다)

 

저자의 주장과 삶에 100%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저자가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씩 실제로 실천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완전히 같은 결의 삶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어떤 면들은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즐겁게 읽었다. 

        

 


   

- "아프로 헤어와 회사를 그만둔 것이 관계가 있나요?"
관계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스스로에게 핀잔을 주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음. 어쩌면 정말로 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찬찬히 생각해 보니 관계가 있는 걸 넘어 아프로 헤어를 하지 않았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우등생이었고, 운 좋게 좋은 시절을 만나 좋은 학교에, 좋은 회사에, 부족할 것 없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안정적 수입과 보람 있는 일과 미래의 연금까지 얻었고요. 그런데 아프로 헤어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빼앗아간 것입니다. 너 뭐냐, 아프로 헤어. 

 

- 그러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 생활이란 게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입니다. 뭐, 대체로 나쁜 일이 더 많지요. 

 

- 미래는 어두웠습니다. 원래 회사에 도움이 될 만큼 훌륭한 사원도 아니었고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앞으로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우울했습니다.  

 

- 그런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 하자! 아프로 헤어." 

 

- 그 후 내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십 대도 중반이 지나, 세상에 이런 일이, 대인기를 누리는 리즈 시절이 찾아온 것입니다.

 

- 혼자 선술집에 들어가면 생면부지 아저씨가 "이 언니, 진짜 맘에 든다! 한 잔 사줄게! 안주도 하나 시켜!" 하질 않나. 어느새 점원이 "이건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하고 삶은 풋콩을 슬쩍 상에 내오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빌딩 위에서 나의 아프로 헤어를 목격한 샐러리맨이 느닷없이 나타나 "재미있는 사람이 있다 싶어서 뛰어왔습니다" 하고는 "오늘 저녁 술 한잔 같이 하시죠!" 하고 집요하게 청한 일도 있었습니다. 

 

- 외국인들까지 나서서 "유어 헤어, 나이스! 차 마시러 안 갈래요?" 하고 말을 거는가 하면, 종종 다니던 길목 가게 주인이 엄청난 기세로 뛰어나와서는 "언제쯤 오시나 손꼽아 기다렸죠" 하고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귀갓길 밤에 선술집에서 웬 아저씨가 뛰쳐나와 "함께 마십시다!" 하고 들이댄 적도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 여자들 사이에서의 인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철을 타면 아주머니가 "그 헤어스타일 좋네. 나도 젊었을 땐 그런 거 해봤는데"라며 (설마 그럴 리가) 말을 거는 일은 일상다반사. 단골 카페 여주인은 내 초상화를 그려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젊은 여자가 "혹시 괜찮으시면 저와 친구가 되어주시겠어요?" 한 적도 있습니다. 

- 대체 뭘까 싶었죠. 이 알 수 없는 인기의 정체는.

 

- 그건 그렇고 현실적으로 따져서 이렇게나 인기가 좋으니 혹시 이걸로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술이니 커피니 여기저기서 사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유라는 것이 고작 '아프로 헤어'라는 것뿐이니... 음, 어쩌면 인생이란 의외로 엄청나게 심플한 것이 아닐까요? 

 

- 우리는 자기 인생에 대해 늘 무언가를 두려워합니다. 약해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치열해야 한다며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진지하고 심각하게 열심히 산 만큼 보답이 돌아오느냐 하면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 사실에 우리는 상처받고 불안해하고 노력이 부족하다며 또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하지요. 그런가 하면 이런 반복 속에서 인생이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무서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행복이란 노력 끝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의외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게 아닐까요?

 

- 그렇게 생각했더니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어쩌면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그렇게 해서 실제로 회사를 그만둔 셈인데... 그 결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을 읽어주시기로 하고, 한 가지 꼭 말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어떻게든 된다'는 것입니다.

 

-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줄을 붙잡은 사람은 그저 어떻게든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줄이 끊어지지 않기를 비는 데에만 열중합니다. 그러나 줄을 놓고 "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보면 웬일인지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다른 줄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줄이 많았는데 내가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떨어져 죽지 않으려면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줄에는 굵은 것도 가느다란 것도 있지요. 하지만 가느다란 줄도 세 가닥만 모이면 튼튼해지는 법입니다. 

 

- 회사라는 굵은 동아줄을 놓아버린 나는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발견한 줄을 붙잡고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이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것도, 어떤 별난 분이 던져준 동아줄 중 하나인 셈이지요.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세상이란 각박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친절함이 넘쳐나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줄을 놓아버리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세계였습니다.

 

- 아니, 정말로 행복이란 아무 데나 굴러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도 다들 그걸 알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굴러다니는데 보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 설마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진짜 정말 몰랐습니다. 적어도 10년 전에는. 
대학 졸업 후 28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입니다.
50세, 남편 없고, 의지할 자식도 없고, 게다가 무직. 말 그대로 '끈 떨어진 연'이 되었습니다. 결코 젊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나날이 노화를 느끼는 나이대입니다. 잔글씨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기억력이 명백히 감퇴해 가는 것도 두렵습니다. 

- 그렇지만 말입니다, 나는 지금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라. 정말이라니까요...

 

-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제 그 '이득'들로부터 도망쳐 나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득이 있다'는 것은 사실 무서운 겁니다.  

- 왜냐하면 큰 행복은 자그마한 행복을 보이지 않게 하니까요. 자신도 모르는 새에 큰 행복이 아니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마니까요.

 

-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월급, 좋은 대우에 익숙해지면 거기서 벗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좀 더, 좀 더"라고 요구하게 되고, 나아가 무섭게도 그 좋은 환경이 행여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와 분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자유로운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인생은 공포와 불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 그런데 그 말이 예기치 않게 내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며 좀처럼 밖으로 나가주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
이제까지 언덕을 올라갔다고 한다면, 지금부터 슬슬 내려가기 시작할 때라는 말.

- 언덕을 내려간다. 그때까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반환점'에서 마주한 공포. 
세상에는 '반환점'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반환점은 결코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인생에도 찾아온다!

- 그걸 깨달았을 때,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왠지 모를 불안... 같은 그런 뜨뜻미지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또렷하게 암울한 미래'였습니다.

 

- 다시 말해 나는 능력 면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에 제외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는 못해도, 평균점 이하라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 확인할 길도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차별이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해답 없는 질문이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 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음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겐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좀 더 노력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아니,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그 결과 다시 '제외'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내 정신이 그걸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 보답 없는 싸움과, 아무리 애써도 불식시킬 수 없는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차별 따윈 없다'는 회사.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아니라면 이를 두고 달리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지독하게 악질적인 덫에 걸린 느낌.  

 

- 고도 성장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며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인생'이라는 황금방정식을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온 나는 어느새 '황금만능주의'(돈으로 뭐든 사려는 생활 태도), '우월감추구'(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정신 상태), '욕망 풀가동'(넘쳐날 정도로 갖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손에 넣지 못한 것들을 끝없이 원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 욕망은 노력에 동기 부여를 한다, 노력의 결과로 얻은 것들은 당연히 향유해야 하며, 아무리 향유하고 있더라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으니 나는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 올라가야 한다...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 마트에는 어느 계절이든 채소들은 대체로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직거래 장터에서 채소를 사면서는, 채소라는 것은 본디 그것들의 계절이 오지 않으면 수확할 수 없다는 점을 좋든 싫든 알게 됩니다. 

- 무를 예로 들어보지요. 자랑일리 없지만, 무철이 언제인지 난 전혀 몰랐습니다. 언제든 어묵이니 조림이니 무즙이니,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직거래 장터에서는 무는 찬바람이 불지 않으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무가 없네, 아직도 안 나왔네, 아, 언제 나오나, 무 하고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제철이 되어 만나는 기쁨. 돌연 직거래 장터 선반 여기저기가 큼직한 무로 꽉 들어차게 됩니다. 

 

- 이제야 드디어...  왔구나, 왔어! 그렇게 들뜨는 순간입니다. 그러면 우리 집 식탁에는 실컷 무 요리가 나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사라지고 말 테니 필사적으로 먹습니다. 배추도 그렇죠. 대파도 그렇습니다. 물론 여름이 와야 등장하는 채소도 많지요. 토마토, 가지, 피망, 채소는 인간들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자기 속도에 맞춰 세상에 나옵니다. 

 

-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음, 불편해, 곤란한데... 그렇게 느끼시겠지요?
근데요, 제철에만 겨우 만나는 무, 이게 놀랍게도 나한테는 엄청난 호사로 느껴진 겁니다. 

 

- 언제든 채워진다는 것은, 물건이 없던 시절에는 엄청난 호사였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든 무엇이든 다 있는 지금, '있다'는 것을 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 오히려 '없다'는 게 훨씬 사치스럽습니다. 훨씬 더 호사입니다. 그러니까 직거래 장터는 내게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었을 뿐 아니라, '없다'는 것이 '있다'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그때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는 곳이 되었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그때까지의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게 그래서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 하지만 나는 다카마쓰에서 받는 만큼 쓰는 생활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위해 꾹 참았던 게 아닙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 아니 오히려 그 편이 더 즐겁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뜻하지 않게 '받는 돈'과 '쓰는 돈'이 분리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마음 편한 독신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선택지로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한 것 같습니다.

 

- 과거 종교학자인 야마오리 데츠오 선생님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고대 인도 사람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무척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네 단계란 '학생기 學生期' '가주기 佳佳期' ‘임주기 林佳期’ '유행기 遊行期'입니다.

- '학생기'란 사회에 나오기 전을 말하는 거죠. 부모의 보호 아래 자라고 학교에서 그다음 '가주기'에는 사회에 나아가 일을 하고, 개인사적으로는 가정을 꾸려 아이들을 키웁니다. 배우고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일 것입니다. 다른 건 그다음입니다.

- 보통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은 정년퇴직할 때에 일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정년 후'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고령 사회가 되면서 이 시기를 '제2의 인생'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만, 아무튼 다들 '학생기' '가주기' '정년 후'의 세 단계로 인생을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요?

 

- 그러나 고대 인도인들은 이걸 다시 두 단계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세 번째 '임주기'입니다.

 

- '임주'란 다시 말해 숲에 사는 것을 뜻합니다. 출가지요. 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일단락되면 가정을 떠나, 세속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숲에 들어가 삽니다. 세속을 떠난다고 해도 완벽하게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마지막 '유행기'에서는 완전히 종교적 세계로 들어가는데, 임주기는 거기까지는 아직 아닙니다. 퇴로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게 아니라, 비유하자면 '종교 생활 맛보기'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어중간하다면 어중간한 거고, 무책임하다면 또 무책임한 거죠. 
 
- 하지만 수명이 이렇게나 늘어난 지금, 이 '임주기'라는 사고방식은 앞으로의 인생관에 커다란 힌트가 되리라는 게 야마오리 선생님 말씀이셨습니다.

-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흥미로우면서도 여전히 남의 일처럼 느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 '임주기'가 조금씩 나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고 보니 '회사원' → '정년 후'라는 것은 너무 난폭한 기어 변속입니다.
정년이란, 어디까지나 회사가 임의로 구분한 물리적 시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2의 인생'이라지만 그건 덤으로 얻은 인생도, 2류 인생도 아닐 터. 회사원은 정신없이 일하고 정신없이 버는 게 인생의 '황금기'이고 가장 빛나는 시절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생에서 겉이니 속이니, 본방이니 연습이니, 그런 게 있을 리 없습니다. 모든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자기 인생입니다. 

 

- 그렇게 생각하니 '제2의 인생'이란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고, 나름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찾아야만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임주기'란 어쩌면 그 소중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그럼 그걸 대체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마침내 그런 의문이 마음 한편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 '언제부터'에 대한 답은 적어도 정년 이전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물론 정년 후여도 상관없겠지만, 다른 사람이 멋대로 정한 정년이라는 시기를, 이런저런 잡일에 쫓겨 준비도 결의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다가는, 결국 멍한 상태에서 '노후'라는 시간으로 돌입할 것만 같았습니다. 

- '그래, 그게 뭐' 하는 식이 된 것입니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 그게 뭐.
왜일까. 이유는 아마도, 단 하나.

'돈'입니다.

 

- 이렇게 내 억지는 '실험'이라는 형태로 어찌어찌 출범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전국의 총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하고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시도가 지방의 구조조정에 이용되었다는 측면도 없지 않아, 회사란 참으로 무서운 곳이로구나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훨씬 지난 후에 알게 된 일입니다. 어쨌든 당시의 나로서는 이 도전이 정말이지 신선하고 즐거운 사건으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 회사란 조직을 두려워하다 보면, 이상하거나 부조리하다 싶은 부분이 있어도 조직의 힘 앞에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을 겨를이 있다면 정면에다 대고 목소리를 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밑져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 뜻밖의 발견도 있었습니다.
힘없는 입장이라도 용기 내어 말하면, 자기와 같은 의견을 가진 동지가 누군지 자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힘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협력한다고 무슨 이득이 생기는 게 아닐 테니까요. 그 결과,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누구에게 의논하면 좋을지 분명해졌습니다. 

- 요는,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지위가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결코 아닙니다. 저는 아사히 신문사 사장이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사장보다 더 내 생각대로 회사를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 텔레비전도 켜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집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들 있지 않나요? 하지만 '전기는 없는 것'이니 텔레비전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곳에 어둠과 고요함이 나타납니다. 이게 실로 마음이 차분하고 고즈넉해지는 거예요. 어두우니 오감도 예민해집니다. 집 안에 소리가 없으니 창밖에서 바람 소리며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것 참, 풍류가 따로 없구나 싶지요. 

- 무언가를 없애면 거기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입니다. 그리고요, 그 별세계의 매력이 상당해요.
'없다'는 것 속에 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던 겁니다. 

- 그러나 나는 여태 애써 '있는' 세계를 추구해 왔습니다. '있는' 것이 풍요로운 것이라고 믿고, 그걸 위해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왔습니다. 하지만 '없는' 것에도 풍요로움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는 전자제품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 모두 '있으면 편리한' 혹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입니다만, 놀랍게도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전자레인지는 밥과 반찬을 데우는 정도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찜기로 대용할 수 있습니다. 찜기로 데운 밥은 전자레인지에 비할 수 없이 부드럽게 부풀어 정말이지 맛있습니다. 이제까지 전자레인지를 써온 30년인지 40년인지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고타츠나 전기카펫 대신 탕파를 쓰는데, 포근한 게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닙니다.

 

- 다음은 잊어서는 안 될 것들. 

· 퇴직하면 회사 후생연금에서 빠져나와 국민연금 보험료(매달 1만 5590엔)를 물게 된다. 주소지 주민센터 연금과를 방문해 소정의 절차를 밟을 것(퇴직증명서 필요). 
· 실업보험을 받기 위해서는 퇴직일로부터 2주 이내에 회사가 보내주는 고용보험 피보험자 이직확인서, 고용보험 피보험자증, 운전면허증, 사진 2매(3×2.5센티미터), 인감을 가지고 거주지 관할 직업안정소에 제출하고 구직 신청을 할 것.

· 건강보험증은 퇴직 시에 반환한다. 퇴직 다음날부터 2주 이내에 거주지 관할 주민센터에서 아사히 건강보험조합이 발송한 '자격상실 증명서'와 인감을 지참하고 절차를 밟을 것.
· 주소지 변경 신고, 그 후에도 변경할 때마다 총무과에 반드시 연락할 것(그렇지 않으면 연금이 끊길 수도 있음!!).

(리뷰자 주: 2010년대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일본은 아직도 오프라인 중심이구나 싶어진다.) 

 

- 이것저것 골치 아프긴 한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연금이나 건강보험이 회사 보호에서 떨어져 나와 국가 산하로 이행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벌거벗은 한 개인으로서 국가와 대면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국가의 이런 시책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 완전히 문외한입니다. 나는 회사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내겐 완전히 남의 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정말 최악의 신문기자로구나, 난.

 

- 그러나 '일한다'='회사에 소속된다'는 아니잖아요? 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독립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프리랜서로 승부를 걸어본다거나, 그런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그게 나쁜 일인가요? 비난받을 일인가요?

 

- 그런데 말입니다. 알아보니, 실업보험은 다른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만 받을 수 있고, 개인으로 독립하여 생계를 꾸리려는 사람은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실업보험이란 우리나라 성인들을 '회사'라는 시스템에 끼워 맞추기 위한 제도였던 것입니다!! 회사를 벗어나 자신의 두 발로 서려는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리 열심히 보험료를 냈다고 한들 실업 후에 필요한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 물론 회사에서 일한다는 삶의 방식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 아니, 생각해 보세요. 독립하려는 사람이 취직하려는 사람보다 훨씬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보다 더 보호받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일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재취직하려는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제껏 실업보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보험료를 부지런히 갖다 바쳤으니 말이죠. 
아아, 왜 이렇게나 회사, 회사 하는 걸까요, 대체...


- 회사원이 아니면 우리 사회에선 사람이 아닙니다. 수상쩍은 인간이고, 신용도 얻을 수 없습니다. 국가까지 나서 '징벌'을 내립니다.

 

- 대체 왜, 국가까지 국민에게 '취직하라'고 강요하는 걸까요? '일하라'는 거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하는 것'이 곧 '회사에 소속되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일하라'고 하지 않고 '회사에 소속되라'고 하는 걸까요? 

 

-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하고 나니, 무엇을 하든 혼자서 이 회사 사회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거기에서 드러나는 회사란 것이, 실로 냉정하고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그 일례를 써보고자 합니다.  

 

- 실은 부끄럽게도 휴대전화를 내 손으로 구입해 본 게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전화, 메일, 정보 검색 등, 세상과 이어지는 수단들을 100퍼센트 회사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사에서의 통신수단은 모두 업무와 직결되므로 휴대전화든 컴퓨터든 회사가 대여해 줍니다. 컴퓨터에 보내온 메일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주는 설정도 모두 회사가 해줍니다. 난 그저 거기 편승해, 원숭이라도 할 수 있는 기본 조작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리뷰자 주 : '컴퓨터에서 보내온 메일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는 개념이 낯설다. 아마 보통 사용하는 이메일이 아닌 사내 메신저 같은 개념인 듯 하다.) 

 

- 회사를 그만두었더니 당연히 휴대전화도 컴퓨터도 다 회사에 반납해야 합니다. 그러자 내 전화번호도 메일 주소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되면 아무도 이나가키 씨와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되겠지요. 편지라는 수단도 있습니다만, 주소를 또 어떻게 알리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무래도 이건 큰 문제입니다.  

 

- 다시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노부부 둘이서 사는 부모님 집에는 온갖 전단지와 우편물이 매일 도착하고 그 대부분에 이득이라느니, 급한 연락이라느니, 기회라느니, 중요하다느니 하는 말들이 도배되어 있습니다. 언제 가보아도 부모님은 그것들을 다 모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 이걸 받아보았을 노인네들의 불안을 알기나 하나요, 공무원 여러분. 혹시 카드를 많이 만들게 하면 진급할 때 유리하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 멀지 않은 내 노후를 생각하면 이건 남의 일이 아닙니다. 급증하는 고령자들을 물건이 팔리지 않는 이 시대에 장사하기 좋은 호구로 보는 건 아닐까? 관공서는 물론이고 온갖 세일즈 토크가 고령자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걸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 사람을 속이려면 우선 불안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든다는 건 불안으로 가득한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쩌면 고령자가 사회가 '성장'하기 위한 호구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와 그렇지 않은 '정당한' 장사의 차이가 대체 어디 있을까요?

 

-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믿고 싶은 마음.
조금이라도 풍요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 

지금의 생활수준을 낮추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건 사람이면 누구나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나약함이며 욕망입니다.

 

- 약점이 잡히면 사람들은 쉽게 통제당합니다. 회사의 이익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치우는 사람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그것이 습관이 되면, 더 이상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회사 그 자체가 나약함과 욕망의 집합체가 되고, 회사의 존재의의가 오로지 사원 개개인일 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사원들끼리의 약육강식 같은 경쟁뿐입니다. 그런 것을 악덕 기업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회사든 악덕의 자질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사회가 회사 사회라면 이미 나라 자체가 악덕의 길을 걷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 목표를 향해 무조건 내달리는 상조회 시스템. 절망적인 것은 아무도 나쁘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딘가에 악인이나 적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악덕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금씩 지니고 있는 죄 없는 욕망이고, 이 괴로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노력입니다. 마치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죄어오는 덫과 같습니다. 

 

-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그것이 출구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우리가 악덕의 길에 빠지게 된 것은 물건이 팔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회사가 성장하려고 분발하기 때문에 악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뭔가 얽히고설킨 느낌입니다. 출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성장에 구애받는 한, 덫은 죄어올 뿐이겠지요. 

 

- 경제성장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다시 행복의 사이클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 올지 모를 것에 '자기 인생의 행복'이라는, 한 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을 건다는 건 너무나 위험부담이 큰 일이 아닌가요? 

- 내 제안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자기 안에 있는 '회사 의존도'를 낮추라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돈'과 '인사'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죠.

 

- 부업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생활을 점검하고,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자는 뜻입니다. 돈 들이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뜻입니다. 그렇게 약간이라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쓰지 않고 남는 돈이 조금씩이나마 쌓여갈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회사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 말고 무엇이든 좋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봅시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듭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가치관이 회사에 의해 좀먹는 비율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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