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에블린 에예르] 유전자 오디세이

일루젼 2024. 3. 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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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에블린 에예르 / 김희경
출판 : 사람in
출간 : 2023.04.28


       

주제가 흥미롭긴 했지만 다소 실망스러웠던 책.

저자는 유전자 자체보다는 그 분석을 통한 인류학 연구가로 저서 전반에 걸친 가설 수립과 반증례들을 살펴보면 그 특성이 두드러진다. 

 

<유전자 오디세이>는 DNA와 계통분석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류의 기원과 시기에 따른 인종적 대이동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내용이 아직 완전한 검증이 되지 않은 가설 및 저자 자신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독자들은 어느 정도는 흘려 읽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들은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부분과, 수렵 채집인들의 영양 상태는 농경 정착인들의 것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그 외 특정 시기에 특정 Y 염색체가 두드러졌다는 주장 역시 흥미로웠으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연구는 현생 인류와 표본 채집을 통한 DNA의 비교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표본이 존재하는' DNA에 관해서만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복 전쟁을 주도했던 왕이나 황제의 Y 염색체가 넓게 퍼져나가는 현상은 틀림없이 존재했겠지만, 반대로 그들의 혈족이었기에 표본이 보존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생 인구에게서 특정 하플로 집단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저자의 연구 결과는 타당성 및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자/난자 은행을 통한 인공 수정이 활발해진다면, 이에 따른 유전적 풀의 변화와 계승은 어떻게 변해갈지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수명이나 신체 변이에 대해 가볍게 언급하는 것보다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다루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들은 대체로 저자가 동의하는 내용이 먼저 소개되고,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이론이 덧붙여 소개되며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없다'고 부연되는 형식이다. 이는 정확한 내용을 전하고자 하는 학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로서는 결론적으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은 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를 일이다' 정도의 정보밖에 얻지 못한다는 점. 

 

물론 전혀 접하지 못했을 분야에 관한 흥미와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었으니 책 자체의 의의는 충분하다. 다만 <DNA 오디세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추천할 만한 책이었는가에 관해서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글쎄. '오디세이'가 더는 신화의 영역에 머물지 않게 되었을 때, 새롭게 쓰여진다면 그 책은 새로운 성서가 될 수 있을지도.  

        


   

 

- 전날 어느 집 담벼락 앞에 걸려 있던 가장자리가 붉게 장식된 종교의식용 북이 생각났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 이 말을 덧붙였다.

"샤머니즘에 관한 일은 절대 아닙니다."

이 지방은 종교적 특성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알타이에서 가장 높은 벨루하산은 주민들에게 일종의 마력을 발휘한다. 나는 이 산이 '강력한 치유력이 있으며', '여러분의 DNA 깊숙한 곳까지 작용한다'라는 이야기를 인터넷 사이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무거나 유전학과 연관 짓는 세태라니!  

 

- 나는 인류의 모험을 추적하며 네안데르탈인 Neanderthal과 데니소바인 Denisova처럼 사라진 종들뿐만 아니라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초기 농민들,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신비한 스텝의 민족, 현재 중국과 몽골 인구 10퍼센트의 조상인 칭기즈칸, 현대 캐나다 퀘벡인 대부분의 선조인 왕의 딸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유전자 검사로 출생지가 밝혀진 노예들의 자취도 따라갈 것이다. 

 

- 사람들은 유전자에 기록된 긴 역사에 열광한다. 약간의 타액으로 자신의 유전자 계보를 추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 검사에서 가끔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해석하는 법도 살펴볼 것이다.

 

- 과거를 돌아본다는 말이 미래를 계획하지 말자는 의미인 것은 아니다.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까? 환경의 영향을 계량화하는 방법이 있을까? 무엇보다 인간의 역사가 지구와 조화롭게 지속되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이제 여행을 시작하자!

 

- 유전자 암호는 보편적이지만 글자들의 배열 순서에 따라 게놈의 특징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인간의 DNA에는 30억 개의 뉴클레오티드 nucleotide가 줄지어 있다. 이름은 A·C·T·G 분자의 연결에 따라 정해진다. 그 정보의 양은 유명한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야드 총서 750권 혹은 75만 쪽에 맞먹는다. 200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물학자들이 이처럼 기나긴 이야기를 구성하는 문자들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 유전학자의 작업과 대형 유인원에 관한 기획들 덕분에 많은 연구자가 인간이 대형 유인원과 어느 정도 유사한지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다. 생물 계통에서 두 종이 가까울수록 DNA 배열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 비교는 무척 중요하다. 그럼 과학자들은 어떻게 결론 내렸을까? 인간의 DNA는 침팬지의 DNA와 98.8퍼센트 비슷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 유전자의 1.2퍼센트만이 침팬지와 우리를 구별해 준다! 

 

- 아주 작은 동시에 큰 차이다. 인간의 DNA에는 30억 쌍의 뉴클레오티드가 있다. 그중 1.2퍼센트에 해당하는 3천5백만 쌍의 뉴클레오티드가 시간이 흐르며 우연히 달라졌다. 두 종을 구별하는 유전자의 차이는 항상 뉴클레오티드와 관련된 변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A가 T로 변하거나 다른 조합으로 변하는 현상인 변이는 자연선택을 통해 곧 걸러진다.

 

- 반면 어느 변이가 한 개체에 우월한 형질을 부여하면, 미래 세대에 더 잘 전달되고 세대가 거듭될수록 발현하는 빈도수가 많아질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변이는 DNA 중 아주 작은 부분이 단백질로 바뀐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이는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고 중성적이라는 것이다. 변이는 세대가 거듭되면서 남거나 서서히 사라진다. 

 

- 한 종에 있는 몇몇 게놈이 다른 종엔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DNA 조각 추가를 '삽입', 조각 상실을 '결실'이라고 한다. DNA 사슬에서 이러한 차이들이 변이보다 자주 나타나진 않지만, 이중나선 구조의 분자인 뉴클레오티드의 배열이 길기 때문에 게놈에서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총 9천만 개의 뉴클레오티드 중 50만 개의 삽입과 결실이 침팬지와 다른 우리의 특이성을 드러낸다. 

 

- 우리 종은 지구 전체에 퍼져 있지만 유전자 다양성은 가장 낮아서 99.9퍼센트가 동일하다. 두 사람의 DNA를 한 글자씩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1천 개 중 한 글자로 두 사람이 구별된다. 다른 대형 유인원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중앙아프리카의 침팬지는 유전자 차이가 인간보다 대략 2배 높다. 보르네오 오랑우탄의 유전자 다양성은 인간보다 3배 높다. 

 

- 유전학은 과학적으로 이 질문에 계속 답했다. 첫 번째 새로운 국면을 이해하려면 훌륭한 연대 추정 기술인 분자시계 molecular clock에 주목해야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두 계통을 낳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각 계통의 게놈은 변이가 거듭되며 달라진다. 변이가 규칙적이라고 가정하면, 시간 단위로 나타난 변이의 비율을 추정하여 두 종의 분기점까지 거슬러 갈 수 있다. 

- 이 과정을 거친 생물학자는 인간과 오랑우탄이 적어도 150만~130만 년 전에, 그리고 인간과 침팬지는 6백만~5백만 년 전에 분기됐다고 추정했다. 그러자 고인류학자들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들고일어났다! 그들의 자료로는 이러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리지트 세뉘 Brigitte Senut와 마틴 픽퍼드 Martin Pickford가 발견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 중 하나로 여겨지는 오로린 투게넨시스 Orrorin tugenensis는 약 6백만 년 전 살았다고 추정된다. 미셸 브뤼네 Michel Brunet가 발견한 또 다른 '더 오래된 인류' 후보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 Sahelanthropustchadensis 투마이 TolToumai도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7백만 년 전 생활했다고 추정된다.

 

- 아이들의 DNA와 부모의 DNA를 비교하면 각 세대에 나타나는 변이의 수를 계산할 수 있다. 각 개인에서는 약 70개의 새로운 변이가 나타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DNA에서 나타나는 변이는 각각 20~40개다. 이 수는 매우 가변적이어서 때로는 1백 개가 넘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나이와도 관계있다. 아버지의 연령이 높을수록 변이가 많아지는 반면 어머니의 나이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따라서 나이 많은 아버지의 아이들은 젊은 아버지의 아이들보다 새로운 변이가 더 많다. 그렇다면 이것이 자폐증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 아버지의 나이가 많을수록 자폐증 위험이 높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자폐증의 원인은 아버지 나이에 따라 전달되는 새로운 변이가 증가하기 때문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상관관계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변이가 영향을 미치는 게놈이 매우 적다는 중요한 요인을 간과했다. 한 가지 작용과 관련 있는 게놈은 5퍼센트 미만이다. 따라서 이 변이들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이 가설은 자폐증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침팬지 무리를 관찰하면 또 다른 특이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난 늙은 암컷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몇몇 고래류를 제외하면 인간은 암컷이 생식 가능한 시기를 지나서도 생존하고 완경기가 있는 유일한 종일 것이다.  
(리뷰자 주 : 코끼리는 어떨까?)

 

- 이름표는 화석을 평가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턱의 존재, 둥근 두개골 등 현생인류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 유골을 사피엔스라고 명명하거나, 몇몇 특성이 비슷한 유골들을 모아 같은 이름으로 명명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제벨이르후드의 두개골은 얼굴이 '사피엔스' 유형이지만 형태가 더 오래되었다. 어느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가장 오래된 '사피엔스'라는 자격을 30만 년 전의 제벨이르후드 유골에 부여할 수도 있고, 19만 5천 년 전의 에티오피아 오모키비시 유골에 부여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 종은 점진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출발점을 찾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점은 어떻게 정의하는 초기 사피엔스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나왔고, 유일한 발생지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사피엔스', 굳이 말하면 오래된 '사피엔스들'이다.

 

-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은 확실한 것 같지만, 최근까지도 모든 과학자가 동의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 유전학이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아프리카 유일 기원설을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여러 진화 과정을 거쳐 각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현재의 사람종이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유럽에 국한해서 이야기하면 유럽인은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첫 번째 가설이고, '사피엔스'가 사촌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는 것이 두 번째 가설이다. 

 

- 에너지를 생산하는 작은 세포 소기관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이 DNA는 유전형질의 미세한 부분을 구성한다. 흥미로운 점은 개인들 간의 차이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기준으로 혈족 관계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 DNA의 또 다른 특성은 여성만이 후손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어머니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고, 어머니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고, 그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 식으로 계속 세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전 세계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하여 공통 모계 조상인 일종의 '미토콘드리아 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현생 사피엔스의 공통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을 추정할 수 있다. 사람과 침팬지의 분기 연대를 추정하는 데는 분자시계 원리가 사용된다.  

 

- 여기서 이브라는 용어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우리 조상이 미토콘드리아 DNA를 지닌 여성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DNA는 한 개인 가계의 아주 작은 부분인 모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한 개인은 4명의 조부모가 있지만 1명의 조모만 우리의 미토콘드리아 조상이고, 8명의 증조부모와 16명의 고조부모가 있지만 각 세대의 미토콘드리아 조상은 1명뿐이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여성의 후손이지만, 단 1명만 자신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남겨 우리에게 도달했다. 다른 모계 조상들은 딸이 없었거나 그들의 딸의 딸, 그들의 딸의 딸의 딸이 없었다는 의미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세대가 거듭되며 소실됐다. 하지만 모든 조상처럼 그들도 세포핵 속의 DNA인 핵 DNA의 일부를 우리에게 전했을 것이다. 

 

- 동료 연구자들과 나는,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가 어떤 경로로 유라시아까지 퍼졌는지를 이 연구로 설명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얘기한 것처럼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듯했다. 머리를 흔들며, 자신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왔을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피부색 차이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사람 계통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또한 우리와 이어진 네안데르탈인의 특성은 자폐 혹은 조현병 같은 몇몇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이 지닌 이 유전자들의 변이는 사피엔스에게서 나타나는 변이와 달라서 어떤 영향을 발휘하는지 짐작할 수 없다. 요컨대 이처럼 반복된 변이들이 네안데르탈인과 우리의 뇌를 다르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큰 도전은 그 차이들의 정확한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다. 

 

- 독일 고유전자 연구팀은 비아프리카인 전체의 낯선 혈통을 발견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도달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피엔스와 아프리카를 벗어난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혼혈이 태어났다. 사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은 아프리카인보다 유럽인이나 아시아인의 게놈과 더 유사하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를 벗어나 살고 있는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의 DNA 조각이 있는 유전형질을 물려받았다. 초기에 아프리카를 떠난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많은 육체관계를 맺었다. 유럽인, 아시아인, 오세아니아인의 핏속에는 턱이 없는 먼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다. 최근 몇몇 아프리카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대륙에서 아프리카로 반대의 길을 갔을 사피엔스로부터 받은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이 매우 적게 검출됐다. 

 

- 유럽인의 게놈에 포함된 네안데르탈인의 DNA 조각은 약 2퍼센트다. 이 유산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중 현재 유효한 유전자가 있을까? 

 

- 답변하기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받은 2퍼센트의 DNA는 게놈이 우리의 유전자와 99.87퍼센트 동일하다는 것이다. 1만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진 기다란 조각의 경우 두 사피엔스의 DNA는 10개의 뉴클레오티드만 다르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같은 방법으로 비교하면 13개의 뉴클레오티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게놈 조각은 1만 개 중 3개만 추가로 다르다.  

 

- 또 다른 가설은 추위, 미미한 일조량, 병원체 등 네안데르탈인이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 유전자를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네안데르탈인의 축복은 사피엔스가 유럽의 고위도 지역에서 맹위를 떨치던 추위와 적은 일조량을 견디고 병원체에 저항하는 능력을 높여줬을 것이다. 

 

- 사피엔스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조각이 대칭적으로 통합된 DNA는 네안데르탈인도 사피엔스의 DNA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것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발견된 사피엔스의 DNA가 현생 인류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네안데르탈인과 만난 특이한 사피엔스는 현대의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 어쨌든 유전학은 그 사건을 잘 밝혀내고 심지어 육체관계의 최소 횟수를 꽤 정확히 예측했다. 횟수는 매우 적은 150회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의 DNA 2퍼센트를 갖게 된 원인은 후손을 얻은 150회의 성교였다. 아프리카를 떠난 사피엔스들은 몇 명이나 될까? 아프리카를 벗어난 우리 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단지 수천 명의 개체만으로 결정됐을까? 

 

- 이들이 사랑의 감정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을지 아닐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개체가 다른 종의 구성원에게 매력을 느꼈을까? 아니면 지금도 전쟁 중에 종종 발생하는 것처럼 부족 간의 습격 때 성폭행으로 혼혈이 이루어졌을까? 대답하기 어렵더라도 이 문제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서도 유전학은 할 말이 있다. 최근 네안데르탈인의 DNA 해독에 성공함으로써 약간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 네안데르탈인의 X 염색체를 분석해서 우리 염색체와 비교해 보니 우리의 X 염색체가 다른 비非성염색체들보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조각을 확실히 적게 가지고 있었다. 모든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X와 Y 성염색체가 한 개인의 생물학적 성을 결정한다. 여성은 XX고, 남성은 XY다. 우리의 X 염색체는 네안데르탈인의 영향을 받지 않았거나 거의 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  다시 말해 인간의 X 염색체는 자연선택에 의해 ‘두드러지기' 때문에 결함 있는 X 염색체를 지닌 개체는 생존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생식이 어렵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잡종의 경우 수컷이 암컷보다 생식력이 떨어진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공동 후손도 이 현상을 겪었을까?  

 

- 이 추론 외에도 우리의 X 염색체가 다른 염색체들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의 지분이 적은 이유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가설이 제기되었다. 인류학자들은 대부분 여성 사피엔스들(성염색체 XX)과 남성 네안데르탈인들(XY)이 혼혈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따라서 같은 비율로 사피엔스의 X 염색체들이 네안데르탈인의 X 염색체들보다 흔하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성별이 불균등한 혼혈에 관한 추측은 이 주기에 사피엔스 집단에서 나타난 현상과 일치한다. 예컨대 앞으로 언급할 농경인 집단과 수렵채집인 집단의 만남 등이다. 

 

- 다양한 집단이 만났을 때 한 집단의 성이 다른 집단의 다른 성과 더 많이 생식하는 불균형한 현상은 흔하다. 이 경우 여성 사피엔스는 남성 네안데르탈인에게 더 호감을 가진 반면, 여성 네안데르탈인은 남성 사피엔스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수렵 채집인과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농경인 사이의 비대칭적 생식 사례에서는 성폭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균등한 선호로 인해 불균등한 혼혈이 나타났다. 그러나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만남을 증언해 줄 증인은 없다. 

 

- 2010년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 지방의 초르니아누이 마을 인근 동굴에서 고인류학자들이 손가락뼈 조각을 발견했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들도 발견됐지만, 손가락 뼈의 DNA를 해독한 결과 데니소바인은 네안데르탈인도 아니고 사피엔스도 아니라는 놀라운 정보가 밝혀졌다! 

- 데니소바인의 게놈은 동남아시아인과 특히 오세아니아인에게서 높은 비율로 발견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뉴기니섬 주민과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에게서 발견되는 데니소바인의 게놈은 최대 6퍼센트 정도다. 하지만 데니소바인이 알타이에서 발굴된 단 하나의 개체를 통해 알려진 데다, 게놈을 지닌 사람들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세아니아에 산다는 사실은 이 수치에 의구심을 품게 한다.

 

- 유전적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 게놈의 6퍼센트에 이르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데니소바인은 그저 쓸모없는 뉴클레오티드들이 배열되어 유전 코드가 없는 DNA를 심어놓은 것이 아니다. 티베트 주민들이 고도가 높고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도 살 수 있도록 변이한 원인은 데니소바인의 DNA 덕분이다. 특히 이 변이는 출산 시 산모와 아기의 사망 위험이 중국 대륙 출신 주민에 비해 적어지도록 돕는다. 수치로 따지면 3분의 1로 낮춰준다. 이러한 장점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만 유익하다. 그래서인지 아시아의 다른 주민에게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적응에 도움이 되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놈에 DNA 조각을 삽입한 유전자 이입의 좋은 사례다. 

 

- 데니소바인의 게놈을 분석한 학자는 또 다른 당황스런 문제와 마주쳤다. 핵에 없는 DNA 부분이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보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데니소바인의 핵 게놈은 자신이 네안데르탈인과 근연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인류 계보의 유연관계를 나타내는 계통수에서 이 두 종은 사피엔스와 인접한 같은 가지에 속한다. 한편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먼 화석종과 데니소바인을 연결하는 훨씬 오래된 유연관계를 확인해 준다. 사실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더 오래된 다른 인간의 흔적인 스페인 시마데로스우에소스 유적지의 것과 유사하다! 

 

-  지구에서 우리가 유일한 사람종이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유일한 사람종일까?

 

- 안타깝게도 이들의 연구는 이 집단들의 방언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줬을 뿐이다. 피그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집단은 피그미족이 아닌 이웃 부족의 언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프리카 서부 피그미족과 동부 피그미족의 사냥 기술을 비교한 학자들이 적게나마 공통 기층 언어를 발견했다. 고대 피그미 언어일까? 이 부족들의 기원이 하나라는 증거일까? 

 

- 우리의 목표는 여러 피그미 부족과 그들의 역사를 유전학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많은 표본을 추출하기 위해 중앙아프리카를 두루 돌아다녀야 했다. 다행히도 유전학 외의 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수십 년 전부터 피그미족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자들 중 특히 파리 인류박물관 연구실의 민족학자들이 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 민족학자들은 피그미족에 관해 어떤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줬을까? 이들은 놀라운 특징을 밝혀냈다. 예를 들면 피그미족은 사냥한 식량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체계에 기반하고 우두머리가 없는 집단을 형성했다. 평등한 성향은 남녀 관계에서도 나타나는데,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는 일을 중시한다. 피그미족 마을에 갔을 때 무엇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광경이 있다. 오후에 가보니 여성들이 모여 담배 피우며 이야기하는 동안 남성들은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안고 있었다. 

 

- 피그미족의 또 다른 특징은 열대 삼림에 대한 지식이 매우 해박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녀가 함께 무리 지어 사냥한다. 코끼리 사냥은 예외적으로 남성들만 한다.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 채집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으로 한다. 숲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주요 식량을 얻는 이들은 2~3세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다른 피그미족이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과 식량(재배한 전분질 채소)을 교환한다.

 

- 또 다른 특징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같은 생태계의 피그미족이 아닌 사람들과 많은 교환을 한다는 것이다. 숲에서 얻은 산물을 철기나 도기, 농산물과 교환하고, 사회 관습, 공공 의례도 교환한다. 이들의 언어가 혼합된 현상은 사회관계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피그미족과 이웃 주민이 혼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민족학자들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피그미족은 뛰어난 치료사와 주술사로서 다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고, 수많은 약초 사용법을 잘 안다. 

 

- 유전자 정보는 집단의 실제 인구, 교환 수준과 방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피그미족 집단에 관해 알아보려는 호기심을 넘어 전 세계에 분포하는 구석기시대 수렵채집인 집단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참고자료다. 

 

- 피그미족이 그때 이후로 진화하지 않은 유산 같은 집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모든 집단처럼 이들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유전적, 문화적으로 진화했다. 한편 이들은 음악학자들을 통해 가장 큰 명성을 얻었다. 피그미족은 특유의 가창법과 극도로 정교한 음악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유럽 음악의 극치로 여겨졌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가 최절정으로 발전시킨 대위법을 완벽히 숙달했다! 

 

- 여러 사회의 진화 단계가 각각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던 1970년대부터 음악학자들은 피그미족에 관심을 가졌다. 사회는 덜 진화한 사회에서 가장 진화한 사회로 발전한다. 덜 진화한 사회는 무리 지어 사는 수렵채집인 사회일 것이고, 가장 진화한 사회는 국가를 낳은 문명이다. 중간 단계는 지도자의 지휘를 받으며 무리 지어 살고 농사짓거나 가축을 기르는 사회다. 하지만 피그미족은 현대적 기술 같은 분야는 덜 발달했지만 다른 분야의 능력은 뛰어난 듯하다. 음악이 그렇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회보다 더 진화한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가 각자 다른 길을 간다.  

 

- 현재 수렵채집인 집단은 지구상에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과 중앙아프리카 피그미족 외에 흡착음을 사용하여 말하는 아프리카 남부 코이산족, 그린란드와 북극지방의 이누이트, 아시아의 네그리토가 있다. 이 집단들은 가축 사육이나 농사에 유리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지구의 구석으로 내몰렸지만 무척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우리 종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 다양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기술적 쾌거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적응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들의 게놈을 분석하면, 진화 과정에서 탈수증에 적응한 징후인 혈청 요산염 관련 유전자, 그리고 사막의 추위에 적응하여 갑상선 계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남서부의 수렵채집인 코이산족의 게놈을 분석하면 형태, 골격의 발달과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적응했음을 알 수 있다. 

- 중앙아프리카 피그미족의 작은 키는 습한 열대 삼림에서 적응한 결과지만 모든 관련 유전자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작은 키와 관련된 몇몇 희귀 유전자가 탐지됐지만 대부분의 다른 유전자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적응을 제외하면 각 지역에 특화한 수렵채집인 집단에게서 면역 체계와 관련 있는 유전자 변이가 나타난다.  

 

- 차이를 비교하면 대부분의 현대 유럽인 집단 간의 유전자 차이와 비교할 때보다 차이가 크다. 하지만 수렵채집인 집단 간의 차이와 비교하면 비슷하다. 무슨 의미일까? 초기 유럽인은 현재의 수렵채집인보다 발달한 사회구조 속에서 살았다. 10여 명의 구성원이 소집단을 이루고 살았고, 약 수백 명의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른 집단과 혼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냥 같은 활동을 할 때 이동이 제한받지는 않았다. 

 

- 초기 유럽인의 뼈대를 기반으로 크기와 형태를 묘사할 수 있지만, 해골은 자신의 외모에 관해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피부색은 어땠을까? 눈과 머리색은? <불을 찾아서> 같은 영화나 자료를 보면 유럽의 초기 사피엔스를 언제나 백인으로 묘사한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연구자들은 유럽 사피엔스들이 꽤 오래도록 피부색이 짙고 눈이 파란색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작품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 왜냐하면 세포분열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자 배아 발생 embryogenesis(신경계 형성)과 정자 형성에 중요한 엽산 folate이 자외선에 파괴되지 않도록 멜라닌이 보호해 주기 때문이다. 멜라닌은 자외선 유형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UVA를 잘 막아주므로 태양이 강하게 내리쬘 때는 짙은 피부가 훨씬 유리하다! 

- 반면 고위도에 사는 사람의 밝은 색 피부의 장점은 또 다른 문제다. UVB는 피부에 더 깊숙이 침투해서 비타민 D 생성을 유발한다. 신진대사에 필요한 비타민 D의 하루 필요량이 부족하면 구루병이 발병할 위험이 있다. UVA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비타민 D를 생성하는 2가지 기능은 일조 시간에 따라 피부색이 변화한 원인이다. 

 

-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초기 사피엔스는 피부색이 짙었다. 아프리카인의 게놈을 연구하면 일조량에 적응한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적응 시기는 약 12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때부터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준 털이 사라진 듯하다. 

 

- 초기 사피엔스가 유럽을 점령할 때의 환경은 햇볕이 적었다. 따라서 피부색이 더 옅어지는 변이가 일어났다. 멜라닌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150개다. 이제는 피부색이 달라지는(선탠 제외) 부분적 원인인 여러 유전자가 밝혀졌다. 현 유럽인들에 관한 지식에 기반하면 초기 유럽인의 피부색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현재의 개체에 존재하지 않는 피부색에 관여하는 유전자 변이들을 가지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의 피부색을 더 밝게 만드는 2개의 유전자가 밝혀졌다. SLC24A5와 SLC45A2다.  
 

- 연구자들은 10여 개에 못 미치는 유골에서 유전자 변이를 연구하기에 충분한 양질의 DNA를 추출했다. 이탈리아 빌라브루나와 체코공화국 돌니베스토니체 정착지의 유골 등이었다. 연구 덕분에 초기 서구인들의 피부색이 짙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다.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됐을까? 

 

- 고대 DNA를 연구하기 이전의 학자들은 사람들이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밝은 피부색 선택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런던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이 선사시대 후기까지 사람들의 피부색이 짙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실제로 체더인 Cheddar man은 9천1백 년 전에 살았다. 사람들이 영국으로 이주한 시기는 유럽 대륙에 비해 매우 늦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피부색이 구릿빛인 유럽인이 많았다. 또한 연구자들은 덴마크 여성의 DNA를 함유한 자작나무 수지 껌을 분석한 후 짙은 피부색이 5천7백 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태양빛뿐만 아니라 음식도 피부색을 결정한다. 북극권에 사는 현대 이누이트도 피부색이 밝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색이 짙다. 비타민 D가 풍부한 해산물을 섭취하여 표피에 작용하는 선택압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특히 바다 포유류를 많이 먹는다.

- 마찬가지로 초기 유럽인의 음식은 생선 기름, 바다 포유류 고기와 순록 고기 덕분에 비타민 D가 풍부했을 것이다. 이후 비타민 D가 적은 음식을 먹으면서 피부색이 점점 밝아졌을 것이다. 혹자는 이 시기를 기원전 15000년에서 기원전 10000년 사이로 추정한다. 선택압이 시작되는 시기와 이에 따라 유전적 특징이 발현하는 빈도가 증가하는 시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피부색이 밝아지는 과정은 더 일찍 시작됐을 것이다.

 

- 1만 년 전에 유럽을 여행했다면 머리 색깔이 빨간 사람을 포함해서 외모가 무척 다양한 개체들을 만났을 것이다. 지금은 보기 드문 이 매력적인 머리 색의 역사는 이제 겨우 알려지기 시작했다. 빨간 머리 색도 앞에서 언급한 멜라닌과 관련 있다. 멜라닌은 피부색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체모, 눈동자 색에도 작용한다. 멜라닌은 피부색을 짙게 만드는 데 작용하는 유멜라닌 eumelanin과 노란색에서 붉은색까지 띠게 하는 페오멜라닌 pheomelanin 2가지가 있다. 

 

-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은 유멜라닌이 많은 반면, 금발이나 빨간 사람은 주로 페오멜라닌이 많다. 피부에 작은 입자로 존재하는 페오멜라닌은 주근깨를 만든다. 주근깨는 유전자에 코드화되어 있다. 이것이 MC1R 유전자다. 현생인류의 빨간 머리카락을 만드는 변이는 10만~5만 년 전에 나타났을 것이다. 

- 빨간 머리였다고 추측되는 네안데르탈인 2명의 DNA에서 MC1R 유전자가 발견됐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과 혼혈한 인류가 이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그렇지만 현재 머리카락이 빨간 사람들과 변이가 같지 않고 MC1R 유전자의 형태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이 변이는 DNA를 분석한 모든 네안데르탈인 중 단 한 개체에게서만 확인됐다. 그러니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 현재 알려진 현생인류 피부색과 관련된 것 중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밝은 피부색과 밀접한 변이 대부분은 네안데르탈인이 가졌다고 보기에는 최근에 나타났다. 이 변이들은 사피엔스의 특성이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더 오래된 변이는 일부의 밝은 피부색, 다른 일부의 어두운 피부색과 연관 있다. 이 변이는 네안데르탈인도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피부색은 밝은 색과 짙은 색의 중간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네안데르탈인에게 우리가 모르는 영향을 미친 변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발한 방법이 있다. DNA를 활용하여 이 부족들의 혼혈 시기를 추정하면 된다. 인간이 후손에게 전달하는 DNA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길이가 짧아지고 재결합한다. 생식세포가 만들어질 때 염색체들이 섞이기 때문에 유전자 정보를 이용하여 공통 조상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보토쿠도족이 폴리네시아인에게서 받은 DNA의 길이를 측정하면, 이 부족을 낳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폴리네시아인의 혼혈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 보토쿠도족에 관한 유일한 연구에 따르면 추정 연대와 포르투갈인이 식민지화한 연대가 겹친다. 이 연구는 추출한 DNA의 질이 좋지 않고 표본이 적다는 결함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연구들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브라질 동부는 폴리네시아와 놀라울 정도로 거리가 멀다. 거기까지 가려면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 전 세계 사람들처럼 남아메리카인들도 매우 다른 환경에 적응했다.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안데스산맥의 어느 부족은 티베트인처럼 고지대의 삶에 생물학적으로 적응했다. 놀라운 점은 독극물로 여겨지는 비소에도 적응한 것이다. 안데스 산맥에서는 화산 암반 지하수로 흐르는 비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안데스산맥에 사는 이 부족의 10번 염색체에는 비소를 변형하여 제거하는 변이 유전자 AS3MT가 있다. 수천 년을 거스르는 놀라운 적응이다. 

 

- 두 개체의 공통 조상이 활동한 시대를 가늠하려면 게놈 안의 같은 위치에 있는 DNA 부분을 비교해야 한다. 이 영역을 구분하는 차이의 수는 이들이 하나가 된 후 경과한 시간과 관련 있다. 차이는 어떻게 발생할까? 무작위로 발생하는 변이뿐 아니라 각 세대를 나타내는 이른바 '유전자 재조합 genetic recombination'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 유전자 재조합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형질이 도서관이고, 도서관 안의 책은 염색체라고 상상해 보자. 한 개체는 자기 게놈의 조각을 이중으로 가지고 있다.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다른 하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다. 생식하기 위해 성세포를 만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머니와 아버지의 책들이 섞인다. 어머니의 책에서 페이지들이 뜯어지고 아버지의 책에 삽입되며, 아버지의 책에서도 페이지들이 뜯어지고 어머니의 책에 삽입된다. 재조합으로 유전자들이 섞이고 '오래된 것'에서 '새 것'을 만드는 유성생식이 이루어진다.

- 각 세대에서 발생하는 재조합의 수는 종에 따라 다르다. 인간의 경우 수십 개가 재조합한다. 인구유전학자는 그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여러 민족 DNA의 재조합을 밝히려 했다. 단순한 통계적 효과를 보면 한 개체의 책에서 2페이지 이상 멀어질수록 페이지들 사이에서 재조합이 발생할 기회, 즉 아버지의 페이지와 어머니의 페이지가 전달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반대로 인접한 2페이지는 재조합하지 못하고 함께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여러 세대가 지날수록 재조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각각의 DNA 조각, 즉 1권의 책을 이루는 전체 페이지마다 이야기가 다르고 조상이 다르다. DNA는 과거 조상들의 모자이크다. 

- 공통 DNA 조각의 길이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정보는 변이다. DNA 조각으로 알아낸 공통 조상이 오래전 인물이라면 그 조상 이후 같은 DNA 조각에 변이들이 축적됐을 것이다. 따라서 두 DNA 조각을 비교한 결과 재조합하지 않은 긴 조각들이 발견되고 변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면 공통 조상이 최근 인물이라는 의미다. 재조합하지 않은 DNA 조각의 길이가 짧지만 변이가 많다면 공통 조상은 오래전 인물이다.

 

- 이처럼 두 개체 혹은 같은 개체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DNA와 어머니에게서 받은 DNA를 비교한다. 비교하는 두 개체는 그의 부모다. 한 개체의 완전한 게놈으로부터 각 게놈 조각의 조상의 연대를 추정한다. 각각의 게놈 조각에는 최근의 공통 조상 most recent common ancestor, MRCA이라고 불리는 조상의 흔적이 있다.

 

- 과거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정보는 또 있다. 많은 게놈 조각이 같은 시기의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 인구수가 감소했다는 의미다. 한 마을을 상상해 보자. 이주가 자유로운 대도시에서 우연히 두 개체를 선택하는 것보다, 마을에서 우연히 두 개체를 선택하면 이들이 최근의 공통 조상을 지닌 친척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인구가 적으면 공통 조상을 지닐 가능성이 더 높다. 

 

- 비슷한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을 활용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장거리 이동성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은 계절에 따라 이동해야 했지만 매년 같은 장소로 돌아왔다. 다른 집단은 한 해 내내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 또 다른 집단은 먼 거리를 이동했기에,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데 몇 해가 걸렸다. 

-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농경인-목축인이 이러한 생활 방식으로 전향한 후 인구 증가가 빨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인구 증가에 유리한 점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 중 하나는 출생 간격 감소다. 실제로 파라과이의 아체족 Aché과 쿵족 Kung (칼라하리사막의 코이산족) 같은 현대 수렵채집인 인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출산 간격은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햇수와 동일한 4년이었다. 이러한 간격은 수유 기간이 길어지며 수유하는 여성의 출산율이 감소하여 조절됐을 것이다. 농경과 목축 사회에서 규칙적으로 제공되는 음식은 여성들이 더 빈번히 출산할 수 있게 해 줬을 것이다. 

 

-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몇 가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피그미족 같은 수렵채집인 사회의 출산 간격은 이웃 농경인 사회보다 길지 않다. 현대에 관찰한 피그미족의 생활은 과거의 표준과 같지 않을 것이다. 출산 간격이 최근에 감소했을 수도 있다. 

 

- 또 다른 문제는 수렵채집인이 식량 부족으로 힘들어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듯한 현대 피그미족이나, 유골을 통해 분석한 신석기시대 직전의 수렵채집인 모두 영양 결핍에 시달린 흔적이 없었다. 게다가 농경인은 자신의 '식량'을 따라 이동할 수 있었던 수렵채집인들보다 기후변화에 훨씬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농경인은 가뭄, 서리, 병충해 등으로 수확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신석기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에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지식으로 그 원인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 새로이 이주한 사람들은 유럽인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 노르웨이와 리투아니아 등의 북유럽처럼 이들과 60퍼센트의 게놈을 공유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처럼 비율이 30퍼센트 정도인 지역도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이들이 도착했을 때 유전적으로 크게 변화한 듯하다. 분석 자료가 있는 청동기시대 말기 영국 유전자풀의 80퍼센트 이상이 같은 시기 유럽 대륙 인구의 유전자와 유사하다. 당시 유럽에는 이른바 종 모양 토기 문화가 존재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자가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화가 서유럽 전체에 전파됐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다시 말하면 유전자와 문화라는 2가지 요소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 유럽에 신석기 문화를 가져온 이주자들과 청동기시대에 온 이주자들의 성별은 어땠을까? 여성이 다수일까 남성이 다수일까? 유전학 덕분에 이주자들의 성별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23쌍의 염색체 중 한 쌍인 23번째 염색체다. 남성은 XY 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여성은 XX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 여성들이 남성들 없이 이주했다면 이들이 지리적 원거주지에서 보유한 X 염색체는 전체 X 염색체의 3분의 2를 차지했을 것이고, 이들이 보유한 다른 게놈은 전체 게놈의 2분의 1을 차지했을 것이다. 나머지 2분의 1은 원주민 남성의 것이었을 것이다. 이주자들이 남성이었다면 X 염색체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떠났기 때문에 전체 X 염색체 중 남아 있는 X 염색체는 현지에 남은 여성들이 가진 3분의 2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X 염색체와 다른 게놈을 비교하면 이주자들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혹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 
 
- 고대 DNA 논증법을 적용한 결과 신석기 문화를 가져온 사람들이 부부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들의 성비는 비슷했다. 그에 반해 유럽 수렵채집인과의 혼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혼혈 과정이 불안정했다. 북유럽에서 진행한 연구는 수렵채집인 여성과 농경인 남성이 혼혈했다고 하는 반면, 유럽 남동부에서 진행한 다른 연구는 신석기시대 말기에 수렵채집인 남성과 농경인 여성이 혼혈했다는 반대의 결론을 제시했다.  

 

- 이처럼 현대의 몇몇 유럽 민족은 유전적 관점에서 신석기시대 말기유럽인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들은 청동기시대 스텝 사람들과의 혼혈을 교묘하게 피했다. 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유럽인은 다음의 3가지 기원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구석기 유럽인, 중동에서 온 신석기인, 그리고 스텝에서 온 청동기시대 사람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고대의 두 민족도 사르데냐인처럼 청동기시대 이주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바로 크레타를 지배했던 미노스인과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인이다.  

 

- 고대 민족들 중 우리에게 꾸준히 강한 인상을 주는 집단은 스키타이족 Scythai이다. 그리스인들이 두려워했던 이 '야만인들'은 헤로도토스의 저서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이들이 이란어를 사용하고 유라시아 중앙에서 활동한 목가적 유목 기병이라고 설명했다. 

 

- 오늘날 스키타이는 고고학자들이 물질문화와 연관된 무덤, 그리고 몽골, 알타이, 톈산산맥에 있는 여러 쿠르간(봉분을 의미하는 러시아어)에서 발견한 암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기마 민족이다. 최초의 기마 흔적은 약 3천2백 년 전의 몽골 유적지에서 발견됐다! 

- 스키타이 무덤의 독특한 양식은 중앙 유럽에서 시베리아까지 확장됐다. 우리는 러시아 투바공화국에서 아르잔 1, 아르잔 2 등의 왕자들의 화려한 무덤을 발견했다. 카자흐스탄 베렐 유적지에서는 놀라운 말 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문화는 동물 모양의 조형예술이 지배적이다. 스키타이는 비단길을 따라 값비싼 섬유와 말 등을 교환하는 무역에도 참여했다. 이 길을 통제하고, 여러 도시에 필요한 사치품과 곡물을 공급하는 한편 필요한 식량을 보충했다. 

 

- 스키타이의 등장은 역사학자들에게 오래도록 의문이었다. 여러 집단으로 이루어진 스키타이에 단 하나의 기원만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동쪽(시베리아)에서 왔을까, 서쪽(헝가리)에서 왔을까? 
 

- 여러 유적지에서 가져온 유골의 유전자를 연구한 결과는 해답을 제시한다. 사카라고 불린 헝가리 스키타이는 더 동쪽에서 살았던 다른 스키타이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스키타이는 부분적으로 청동기시대 스텝 목축인들의 후손이다. 또한 청동기시대 후기 신타슈타인들의 후손이기도 하다. 하지만 캅카스 초원에서 처음 대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은 아니다. 

- 유전자 정보 외에도 언어는 이주 움직임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럼 유전자와 언어는 항상 함께 움직일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자와 언어가 함께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사만 왕조와 다른 중앙아시아 언어의 예에서, 언어 유사성과 유전학의 관계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함을 알 수 있다. 

 

- 1990년대부터 대략적이지만 꽤 다양한 생물학적 표지를 이용한 연구자들은 세계적 규모로 볼 때 '언어적 거리'와 '유전적 거리'가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가까울수록 언어적으로도 가까웠다. 이를 기반으로 다음 논리를 내세울 수 있다. 이주하는 개인들은 언어와 유전자를 가져가고, 같거나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우선적으로 만난다. 이 논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같은 방식으로 발음하면 더 쉽게 결혼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언어와 유전자의 밀접한 관계를 단순히 지리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결과를 비판했다.  

 

- 이 지역 주민들의 어휘에 없는 단어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가장 놀라운 예는 '바다'라는 단어였다. 대부분의 마을이 사막이거나 히말라야의 지맥이어서 이들에게 바다는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바다를 표현한 단어 중 '바다'는 극히 드물었고 '늪', '웅덩이', '물'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미리 채취한 DNA로 이 자료를 보완하여 다양한 화자 간의 언어 차이를 계산하고 유전자 차이와 비교했다. 이처럼 상세한 연구로 지방 고유의 역사, 폭넓게는 문화와의 상호작용 같은 다양한 결과를 얻었다. 

 

- 첫 번째 결과는 뜻밖이었다. 이 지방에서 유전자는 지리와 거의 관계가 없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사는데도 불구하고 유전자가 매우 유사한 반면, 이웃 마을 사람들임에도 유전자가 매우 다르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외딴 지역에서 이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반면 언어는 집단 간 유전자의 유사성의 원인이기도 하고 차이의 원인이기도 하다. 튀르크어 사용자들 사이의 유전자가 유사한 것처럼 인도 이란어파 언어 사용자들 사이의 유전자는 유사하다. 그러나 두 그룹 사람들 간의 유전자 차이는 크다. 

 

- 이처럼 밀접한 유전자와 언어의 관계에도 예외는 있다.  

 

- 2년 후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고, 우리는 이 지방으로 출장 갔을 때 랍비에게 부하라 유대인 공동체가 조지아 등의 캅카스에 있는 다른 유대인 공동체와 유전적으로 유사하다는 결과를 알려줬다. 이들은 모두 미즈라힘(미즈라흐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다. 

- 각각의 유대인 공동체 집단은 유전적으로 다르다, 아슈케나짐(아슈케나즈 유대인)은 미즈라힘, 북아프리카 유대인, 인도나 예멘의 유대인들이 포함된 스파라딤(15세기 이베리아반도에서 추방당한 유대 민족의 후손)과 구별된다. 각 집단은 자신들만의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공동체들의 뿌리는 분명 동방에 있다. 스파라딤 유대인 공동체, 모로코 유대인 공동체, 그리고 미즈라힘은 지역의 비유대인 주민들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다. 하지만 중동 기원에서 예외인 두 집단이 있다. 바로 아라비아반도(예멘,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주민과 가까운 예멘 유대인, 그리고 이란, 중앙아시아와 관련 있는 인도 유대인이다. 현지 주민으로 동화되거나 동방에서 온 개인들이 이주한 경우도 있다.

-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Y 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사한 결과 Y 염색체보다 미토콘드리아 DNA에 의한 혼혈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혼혈이 남성보다는 현지 비유대인 여성 공동체에 의한 통합이었다는 의미다. 여성들이 전파한다는 종교에 대한 직관적 통념에 반하는 결과다. 

- 지역 주민들에 대한 개방성을 알 수 있는 척도인 혼혈 정도는 모든 공동체가 같을까? 아니다. 유럽 아슈케나짐은 유전적으로 중동 사람들과 유럽 사람들의 중간 정도로 혼혈이 빈번했다. 반면 부하라의 미즈라힘은 지역 주민보다는 동방의 주민들과 더 가깝다. 미즈라힘은 아슈케나짐에 비해 현지 주민들과의 혼혈이 적었을 것이다. 미즈라힘의 폐쇄성은 이 공동체의 인구 과소와도 관련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유전자 샘플을 연구하여 캅카스의 미즈라힘 집단과 우즈베키스탄의 미즈라힘 집단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러시아에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모든 아슈케나짐 집단은 유전적으로 유사했는데, 여러 공동체 간에 혼혈이 반복된 결과다. 

- 동일한 문화 척도, 특히 이들의 종교가 유전자에 기여하는 한 집단의 개방성 혹은 폐쇄성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추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러 집단이 캅카스와 우즈베키스탄에 도래한 시기가 언제인지 추산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역사가 구전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구전에 따르면 첫 번째 집단이 2천 년 전에 유입됐지만, 최근에 정착한 새로운 집단이 이들 공동체의 주요 현대적 유전적 계보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이 경우 현지 주민들과 다른 유전자는 족내혼이 빈번했다는 신호라기보다는 혼혈이 이루어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만큼 최근 유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 한마디로 세밀한 유전자 분석은 우리 모두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 공동체가 이웃 집단들과 유전자를 교환할 정도로 개방될 수 있을까? 

 

- 파리가 불탄다! 스칸디나비아 전사 무리가 배를 타고 파리 센강까지 올라왔다. 때는 845~885년이었다. 바이킹은 7~11세기에 여러 번 파리에 와서 약탈하거나 주민들에게 조공을 요구했다. 상인이면서 동시에 약탈자이기도 했던 바이킹은 무엇보다 뱃사람들이었다. 오래된 사가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5백 년 앞선 1000년경 이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모험담을 이야기한다. 뉴펀들랜드섬은 대륙으로 가던 그들이 잠시 거쳐 간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 바이킹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섬은 아이슬란드였다. 현재 아이슬란드인들의 조상은 1천여 년 전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온 소집단으로 그 수는 8천~1만 6천 명이었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수 세기 동안 고립됐다.

 

- 10여 년 전 아이슬란드는 현재의 주민 30만여 명의 계보를 복원한다는 거대한 작업을 기획했다! 한 민족 규모의 이 계보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자세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바이킹은 이 지방의 식민화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 섬의 유전형질은 역사가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했을까? 과학자들은 자원자 수천 명의 DNA 배열로 한 민족 전체의 유전자 초상화를 그렸다.  

 

- 2018년 아이슬란드 연구자들은 아이슬란드 형성 시기인 1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러 인간의 유골에서 추출한 고대 DNA를 배열했다. 발견된 35개의 DNA 중 27개를 분석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게도 유골의 79퍼센트가 남성이었다. 초기 아이슬란드인들은 성별에 따라 죽은 자들을 달리 처리했다. 

- 치아의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은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초기 세대 사람들이었다. 치아가 형성될 때 법랑질은 생활환경의 스트론튬 동위원소를 끌어모은다. 유아기에 구성되는 법랑질의 스트로튬과 아이슬란드에서 발견되는 스트로늄을 비교하면 그 사람이 아이슬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 초기 아이슬란드인들과 현대 아이슬란드인들을 비교해서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식민지 개척자들 중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바이킹은 56퍼센트였다. 나머지 44퍼센트는 영국제도(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출신인 게일족 Gaeil이었다. 현대 아이슬란드인의 유전자 풀을 분석하면 바이킹 유전자가 70퍼센트 이상이다. 세월이 흐르며 바이킹이 게일족보다 많은 후손을 남겼다. 

 

- 이처럼 성공한 생식은 무슨 의미일까?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에 온 상당수의 게일족은 노예였다. 지위가 낮았던 이들은 바이킹보다 적은 자손을 낳았을 것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 1380~1944년 아이슬란드를 점령했던 덴마크인들도 아이슬란드인의 유전자에 스칸디나비아의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는 가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덴마크인의 수가 많지 않아서 이 가설은 인정받지 못했다. 1930년 이들의 인구는 아이슬란드인 8만 명 대 7백 명에 불과했다. 따라서 바이킹이 세대를 거듭하며 생식에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다. 현대 아이슬란드인에 관한 첫 유전자 연구는 미토콘드리아 DNA와 Y 염색체에 집중됐다. 이 연구로 모계의 62퍼센트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유래한 데 반해, 부계의 75퍼센트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이킹과 그 후손들의 생식의 우월성은 부계에게서 전달됐다.

- 이들의 시조가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인지 게일족인지도 추정할 수 있었다. 이미 두 유전자 풀이 혼합된 이들도 많았다. 사실 바이킹은 아이슬란드를 정복하기 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도 정복했다. 아일랜드에서 진행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현 아일랜드 유전자 풀의 20퍼센트는 바이킹의 유산이라고 추정된다. 바이킹의 유골은 여전히 드물지만 앞으로 더 많은 표본을 분석하면 식민화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의 유골이 부족한 상태다. 

 

-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고립됐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인들은 유전자 부동(유전자의무작위적 변화)을 겪고 원집단과 유전자가 달라졌다. 따라서 현 아이슬란드인의 유전자 풀은 스칸디나비아인과도 스코틀랜드인과도 혹은 아일랜드인과도 겹치지 않는다. 반면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의 유전자 풀은 스칸디나비아인이나 게일족과 일치한다. 

- 유전자 부동은 인구수가 적을 경우 몇 세대 만에 나타날 수 있다. 한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무작위적 전달이 유전자 차이의 원인이 된다. 일부 개인들의 생식력이 왕성하면 속도가 더 빨라지는데, 아이슬란드에서 바이킹이 이러했다. 유전자 부동은 퀘벡에서도 많이 연구되었다. 한 민족 단위의 계통을 재구성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퀘벡은 아이슬란드 연구에 길을 열어주었다.

 

- 12세기에 칭기즈칸의 부족은 바빌로니아 입구까지 갔다. 대단한 전략가인 이 부족장은 몽골의 여러 씨족을 자기 주변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위력적인 몽골 군대는 서쪽으로 진군하며 도중에 만난 여러 부족을 통합했다. 칭기즈칸은 오늘날 특히 몽골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온통 그에게 할애된 울란바토르 국립박물관 앞 광장에는 왕좌에 앉은 그의 동상이 있다. 이 전시에서 인상적인 것은 역사적 수집품들 한가운데에 유전자가 초대되었다는 것이다. 2003년 과학 논문 하나가 이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 유라시아 여러 민족의 Y 염색체를 분석한 유전학자들은 옛 몽골제국의 영토에 거주하는 남성들의 10퍼센트(현대 유라시아인의 3퍼센트)가 약 1천 년 전 공통 조상의 유전자 변종을 가지고 있다고 추산했다. 12세기에 칭기즈칸은 수많은 아내와 자식을 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따라서 유전자가 비슷한 이 남성들은 칭기즈칸의 후손일 것이다. 

 

-  게다가 다양한 사회계급이 마트료시카처럼 끼워 맞추어져 있다. 같은 가계의 일원들은 부계 조상을 공유하고, 여러 가계는 공통 부계 조상을 둔 씨족을 형성하며, 씨족들이 모여 부족을 이룬다. 부계사회에서 계급과 재산, 사회적 지위는 부계로부터 계승된다. 각 개인은 특히 친가를 중요시한다. 사회적 계보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는 계보를 기록한 일지를 쉽게 볼 수 있다. 한 번은 키르기스스탄의 어느 관청 벽에 마을 사람들의 완전한 가계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상당수 지방의 개인은 친가 족보를 10여 세대까지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누구와 혼인할 수 있는지 혹은 혼인할 수 없는지를 정한 규범을 강요한다. 간혹 같은 가계나 씨족 외부 사람과 혼인할 수 있지만 그래도 같은 부족일 가능성이 높다. 

 

- 부계사회가 유전자 다양성에 영향을 미칠까? 또한 무척 빈번히 나타나는 하플로 그룹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기록된 가계가 생체 가계와 일치해야 한다. 즉, 두 사람의 조상이 같다고 가정할 때 공통 조상은 실제로 같은 인물일까, 아니면 그저 신화일까? 

- 우리 팀은 유전자 정보와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가계 기록을 비교하고, 가계가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부계와 가깝다는 것을 증명했다. 씨족에서도 약하지만 동일한 관계를 관찰했다. 반면 부족 단위에서는 그 영향력이 적었다. 달리 말하면 서술된 소단위의 가계들이 그저 단순한 사회구조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들은 생물학적 연합이기도 하다. 반대로 부족은 생물학적 관계가 아니고, 인척관계가 아닌 집단들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결합한 더 큰 집단이다. 

- 이와 같은 부계 체계는 유전자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부계사회를 이루는 중앙아시아, 알타이, 몽골에서 특정 Y 염색체가 과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즉, 많은 남성이 같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모든 유형의 Y 염색체가 존재하는 프랑스 사람들과는 반대다. 게다가 이들의 Y 염색체 유전자 계통수는 약간 독특했다. 각각의 가지들에 작은 가지들이 달려 있는 반듯한 나무와 달리 작은 가지들이 무성하고 비대칭적이어서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 이러한 비대칭은 왕성한 생식력이 유전됐다는 표시다. 많은 아들을 낳은 조상들을 둔 사람들은 그들 역시 다수의 아들을 낳는다.

- 결과적으로 이들 사이에 특정 Y 염색체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왕성한 생식력이 대물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사회적 특권을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와 많은 아들을 남기고, 같은 식으로 대가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1970년대 남아메리카 야노마미족 Yanomami에서도 나타났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은 많은 아내를 두었고, 하위 계층 사람들보다 자식이 많았다. 그들의 아들들은 부계의 사회적 지위를 물려받았고, 역시 일부다처인 경우가 많았다. 

 

- 이 같은 구조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의 경우 특권을 가진 계층이 여성들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들은 권력이 있었고, 그들의 아이들은 오래 살아남아서 지위를 딸들에게 대물림했다. 여성들의 생식력이 왕성한 경우는 여성에서 여성에게만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로 특유의 유전자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중앙아시아를 연구한 우리는 구전된 가계와 유전자 정보를 비교하여 부계사회가 유전자 다양성에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증명했다. 문화적 행위가 인구 다양성과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일례다. 이제는 부계나 모계도 진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유전자 정보로 직접 왕성한 번식력의 계승을 측정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의 Y염색체 정보를 통해 부계 유전자가 어느 정도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DNA로는 왕성한 생식력이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계승됐는지도 알 수 있다.  
 
- 우리는 유전자 계통수에 근거하여 다른 사회에 관한 통계 실험을 했다. 실험을 위해 수렵채집인, 유목민, 농민 등 생활 방식이 다양한 주민 40여 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사했다. 분석에 따르면 수렵채집인 사회에서 여성들의 왕성한 생식력이 계승됐다. 특정 유형의 미토콘드리아 DNA에 다산에 유리한 유전적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1백 퍼센트 배제하지 않더라도,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달되는 사회적 지위 또는 생식과 밀접한 자원에 대한 접근의 이점 등 몇 가지 사회적 메커니즘이 이러한 전달과 양립할 수 있다. 

- 중앙아시아의 경우 생식력은 분명 부계를 통해 계승되었다. 몇몇 가계 혹은 씨족이 생식에 최적화된 사회적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부계를 통해 계승됐을 것이다. 그렇게 한 씨족이 너무 커지면 분화된다. 이 같은 핵분열은 우연이 아니라 부계 관계에 따라 발생하고, 이때 유사한 Y 염색체들이 집중된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집단에서 특정 Y 염색체들이 과하게 나타난다. 

- 물론 수많은 민족이 부계를 통해 많은 유전자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혈족 관계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고대 DNA로 혈족 제도를 알아내려면 같은 시대 사람들의 DNA를 분석할 표본이 많아야 하는데 현재는 양이 적다. 머지않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현대인의 Y 염색체들을 실마리로 추적했다. 하플로그룹이란 유사한 돌연변이를 공유하는 Y 염색체들의 특정 돌연변이에 기초하면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유라시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 그룹 대부분은 두 시기에 시작됐다. 칭기즈칸 하플로그룹 같은 젊은 그룹은 1천 년 정도 됐고, 다른 그룹은 3천~4천 년 정도다. 이 연대에는 수백 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오래된 하플로그룹은 청동기시대에 시작됐다. 이 시기에 국가가 성립하고, 지배층이 출현했으며, 사회계급이 탄생했다. 따라서 이때 사회적 지위와 남성들의 생식력의 상관관계가 시작됐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특권 때문에 후손을 더 많이 가졌고, 특권은 여러 세대에 대물림됐을 것이다. 이 현상은 부계사회 출현과 관련 있을 수 있다.  

- 생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으로 세분화된 계급사회에 살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보다 일반적이고, 부계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서양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들은 평균적으로 후손이 더 많다. 사회적 지위는 부분적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승계된다. 칸 행세를 하기 위해 몽골에 갈 필요는 없다. 

 

- 몽골부터 중앙아시아까지 확인된 칭기즈칸 하플로 그룹을 통해 지역사회의 사회조직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알 수 있다. 역사가들에게 잘 알려진 두 지역 남성들은 이주 과정에서 여러 후손을 남겼다. 우리는 그 이주, 특히 성 문제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고 싶었다. 남성들만 이주했을까, 혹은 여성들도 포함됐을까? 

 

- 대학교 학장은 우리에게 공화국 보안청장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그는 모스크바의 승인 없이 특별 이동허가증을 발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고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우리와 연락을 주고받는 대학교 관계자는 투바의 샤먼 대표와의 만남을 주선해 줬다. 지역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샤먼은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를 불러 작은 뼈들과 향을 사용하여 혼령들을 부르는 의식을 치렀다. 그다음 우리는 웅장한 절에 초대되어 큰스님을 만났는데, 그는 우리를 위해 영적 존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곳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신앙과 소련 체제의 합리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도 놀라운 곳이다. 고고학 유적은 오랜 역사의 증거다. 사람들이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던 땅을 생각할 때 시베리아 남쪽 알타이 지방을 떠올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네안데르탈인 유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점거 흔적들이 발견됐다. 명백히 밀도 높은 점거였다. 암각화 계곡 옆에 다른 무덤들(쿠르간)이 가득한 유적이 이어졌다. 수백 킬로미터에 펼쳐진 왕들의 계곡이다.  

 

- 몇몇 민족, 특히 몽골인, 카자흐인, 그리고 키르기스인에게서 (칭기즈칸이나 기오창가의 것으로 여겨지는) 그 유명한 Y 염색체들이 자주 발견됐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Y 염색체를 보니 민족들 간의 차이가 극단적이라는 것이었다. 매우 높은 빈도로 하플로 그룹들이 나타나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매우 적은 민족도 있었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은 지리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가까이 사는 민족들 간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나타나는 반면 지리적으로 먼 민족들 간에는 빈도가 유사하다.  

 

- 이처럼 심한 차이는 여성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로 측정하는 다양성과 분명히 대조된다. 일정한 지역 민족들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여성들이 지역 내에서 반복하여 이동했다는 표시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혹은 시베리아-서몽골로 확대해 보면 이 민족들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유사할 정도로 여성들의 이동이 매우 잦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들 간의 미미한 차이를 발견했다. 여성들의 교환은 국지적으로는 빈도가 매우 높지만, 규모가 확대되면 빈도가 낮아졌다.  

 

- 반대로 지리적 규모와 상관없이 남성들의 이동은 중요도가 크게 떨어진다. 민족들 간의 Y 염색체는 매우 다른데, 이웃한 민족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은 적게 이동하지만, 일단 이동하면 칸 하플로 그룹에서 볼 수 있듯이 멀리 간다. 사람종의 경우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이 이동한다.

 

- 원숭이와 개코원숭이의 경우 수컷이 무리를 떠난다. 이들 역시 모든 구성원의 거주 규칙이 같다. 다른 종은 이처럼 엄격한 데 반해 인간의 관습이 유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 16~19세기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이주의 시기였다. 약 3백만 명의 유럽인이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1천만~1천2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아메리카로 강제 이주됐다. 인류의 최선(신대륙 발견으로 인한 열기)과 최악(인간의 인간 착취)이 뒤섞인 양면적 시기의 퀘벡 식민지 개발은 유전학자인 나로서는 매우 흥미롭다. 나는 역사학자 제라르 부샤르 Gérard Bouchard가 설립한 시쿠티미 소재 연구소에서 이곳 민족을 몇 년간 연구했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 Jacques Cartier의 소형 함대에 소속된 3척의 선박 중 하나인 그랑드 에르민에 올라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해 보자. 

- 1534년, 생말로 출신의 이 유명한 탐험가는 세인트 로렌스만에 접안하고 캐나다를 '발견'했다. 그는 즉각 프랑스 국왕의 이름으로 현재의 퀘벡을 점령하고 누벨프랑스를 건설했다. 순식간에 본국에서 온 식민지 개척자들이 정착하고 영토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들 중에는 도시에서 온 젊은 남성이 많았다. 대다수가 수공업자였고, 드물게는 농촌지역 주민들도 있었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이주한 것이 아니었다. 고증에 따르면 번영의 시기에 주요 출발 항구였던 라로셸에서 이주민들이 더 자주 떠났다. 개척자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큰 부자가 되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 여성들 역시 도시에서 왔는데, 계층은 더 다양했다. 퀘벡에 발을 들여놓은 전체 2천 명의 프랑스 여성 중 가난한 소녀들은 850명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왕의 딸들'로서 이곳을 속령으로 만들기 위해 누벨프랑스로 왕이 보낸 고아들이었다. 이들은 가정을 이루고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정착했다. 환경은 만만치 않았지만 영아 사망률은 프랑스보다 낮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가족이었다. 혹독하게 춥고 긴 겨울 덕분에 전염병 확산이 억제되었다. 따라서 연간 인구 성장률이 1천 명당 25명으로 같은 시기 1천 명당 3명인 프랑스보다 높았다. 특히 1681~1765년 자연 증가로 인구가 1만 명에서 7만 명이 됐다.

 

- 1608~1760년에 정착하러 온 프랑스 이민자는 대략 1만 명이다. 1763년 프랑스는 영국에 누벨프랑스를 뺏겼다. 이로써 프랑스의 식민지 개발은 끝났다. 이후 도착한 이민자들은 영국인 개신교도나 아일랜드 가톨릭교도였다. 두 공동체는 프랑스인들과 섞이지 않았다. 따라서 프랑스인들이 이들에게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성직자가 '요람 전쟁'을 시작했다. 가톨릭을 믿는 프랑스가 비록 영토를 뺏겼지만 교회가 나서서 인구 증가 정책을 시작한 것이다. 
 

- 퀘벡에서 태어난 한 여성 친구는 1950년대에도 상황이 비슷했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그의 어머니는 6명을 낳았는데, 막내가 태어날 때 난산으로 목숨을 잃을 뻔해서 의사가 다시 임신하는 것을 만류했다. 하지만 지역 주임 신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님의 뜻이라며 아이를 더 가지라고 부추겼다. 부부가 거절하자 신부는 그들을 파문하고 미사에 오는 것을 금지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프랑스어권 퀘벡인들은 성직자의 규칙을 버림으로써 '조용한 혁명'을 했다. 따라서 이 지방은 인구통계의 과도기를 겪었다. 한 가정당 자녀가 평균 6명 내지 7명이던 것이 2명 이하로 대폭 줄었다. 요람 복수라고도 불린다. 주요 목적은, 당시 대거 몰려오는 영국 이민자보다 수적 우세를 점하거나 적어도 프랑스어권 사람들이 적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영국인보다 많이 출산하는 것이었다. 

- 당시 교회의 통제는 유용한 면이 있었다. 소교구 등록부에는 출생, 결혼, 사망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보관되고 있었다. 인구통계학자에게는 금광이었다. 하지만 기록을 활용하여 이 지방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기록을 전사하고, 연결하는 지난한 작업을 해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번호를 부여해서 아이디를 만들고 모든 개인 신상 기록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계통학 전문가라면이 과정을 잘 알 것이다. 

 

-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간단한 방법은 결혼증명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각각의 증명서에는 부부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양가 부모 이름도 있다. 이 정보로 각 개인의 부모를 확인하고 세대를 거슬러 조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인구학으로 연구하기에는 조상들의 계보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각 개인이 평생 몇 명의 자녀를 몇 살에 가졌는지, 자녀들이 몇 살에 사망했는지, 결혼 전에 사망했는지 등도 알아야 했다. 정보들을 얻으려면 모든 신상 명세를 보강하고 '모집단 파일'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몇 살에 사망했는지, 결혼했다면 누구와 몇 살에 했는지, 자녀들이 있다면 몇 살에 얻었는지, 그리고 그 자녀들은 결혼했는지 등등의 자료는 개인의 인구통계학적 일대기를 보여준다. 

 

- 이 파일이 있으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맺은 혈족 관계를 알 수 있다. 또한 부모가 사촌인지, 배우자가 사촌인지, 손주가 있다면 몇 명인지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인간 집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역사인구학은 프랑스에서 시작됐지만 퀘벡에서 자동화하고 이례적으로 발전했다. 아일랜드인들은 인구 파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퀘벡인들로부터 노하우를 배웠다. 

 

- 어느 시기의 퀘벡 주민 파일이 만들어졌을까? 첫 번째 파일에서는 퀘벡 인구가 약 20만 명이었던 17세기 식민지 개발 초기에서 1800년까지의 모든 프랑스어권 퀘벡인을 조사했다. 두 번째 파일에서는 1838~1971년 사그네락생장과 샤를부아 지역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후 두 번째 파일은 퀘벡의 다른 지역까지 확대됐고, 현재 2천9백만 명의 신상 명세 파일이 만들어졌다. 

- 샤를부아와 사그네락생장 지역에 집중된 두 번째 파일이 만들어진 계기는 역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의학적 문제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이 지역의 50세 이상 주민에게서 나타나는 몇 가지 유전병을 특정했다. 대부분 열성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에서 동시에 해로운 돌연변이를 수용할 때만 나타나는 질환이다. DNA는 2가지 버전의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데, 이것을 동형접합체 돌연변이 유전자라고 한다. 이 지역의 질환 발현 빈도는 1천6백 분의 1로 상당히 높았다. 

 

- 열성 질환 보유자의 존재는 보통 가까운 혈족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왜 그럴까? 근친 관계인 부모가 있는 사람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직접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혈족 관계가 아니라면 그들 중 1명이 우연히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가능성이 희박하다.  
 
- '아랍 결혼'이라고 불리는 사촌 간의 결혼을 선호하는 지중해 주변에서 열성 질환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혼인으로 태어났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친척 간 결혼의 결과가 잘 알려져 있다. 사촌 간에, 시기에 따라서는 6촌 혹은 8촌과 결혼하려면 교회법의 면제 증명서를 받아야 했다. 면제 증명서들을 분석하면 19세기나 20세기 초까지의 프랑스 인척 관계도를 그릴 수 있다. 근친혼은 지방마다 상당히 달랐다. 근친혼의 결과는 프랑스와 유럽 왕가의 가계도에 잘 드러난다. 왕족들이 반복되는 사촌 간의 혼인에서 기인한 열성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 퀘벡에 관련 질환들을 가져온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최초 보균자를 찾으면 잠재적 보균자인 그의 후손들 모두를 확인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개인 신상 자료들 덕분에 조상들의 가계도를 쉽게 복원할 수 있었다. 한 질환을 보유한 환자 1백여 명의 가계도를 살펴봤다. 1700년 이전의 2천6백 명의 조상들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들 중 공통 조상은 50여 명이었다. 환자들 중 95퍼센트의 가계에 이 최초 확진자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 최초 보균자는 50여 명 중 1명이다.  

 

- 이어서 우리는 시쿠티미 연구팀과 함께 다른 질환을 같은 방식으로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앞에서 찾았던 50여 명의 조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 질환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표본 중 하나를 무작위로 택해도 연구자들은 동일한 50명의 공통 조상에 도달했다! 요컨대 모든 사그네락생장 주민의 공통 조상은 이 50명이다. 몇몇은 프랑스어권 퀘벡인 대부분의 조상이기도 하다.  

- 이들은 수많은 후손의 공통 조상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프랑스어권 퀘벡인의 자녀인 주민들 중 무작위 20여 명의) 가계도가 서로 다른 현대인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에게 미치는 유전자 기여도가 높다. 사실 한 가계도에서 단 한 번 발견된 먼 조상은 현대의 한 개인의 유전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세대수에 따라 계산한 결과다. 우리는 유전자의 2분의 1을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게서, 4분의 1을 조부에게서, 8분의 1을 증조부에게서 받는다. 따라서 10대조가 우리 유전형질에 미치는 영향은 2분의 1의 10 제곱인 0.1퍼센트다. 반면 가계도에 20회 등장하는 조상이라면 유전자 기여도는 몹시 높아질 수 있다. 

 

- 유전자 기여도는 무엇일까? 한 조상의 특정 게놈을 후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다. 기여도는 그 조상에게서 유래한 개인의 게놈의 평균 백분율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50명의 공통 조상 모두가 현대인 유전자 풀의 40퍼센트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시조의 60퍼센트가 현대인의 유전자 풀에 끼친 기여도는 10퍼센트 미만이었다.  

 

- 여러 세대에 걸친 유전자 전달 모의실험 결과 우리는 시조들이 현재 주민에게서 흔히 발현하는 질환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예상 밖의 일이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닌 이유는, 우리 모두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이 후손 중 1명에서 2개의 복사본(하나는 아버지에게서,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발견될 때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섬 혹은 화성에 하나의 새로운 집단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돌연변이들은 퀘벡에서처럼 10세대 뒤의 후손들에게 질환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이 새로운 집단의 창시자들은 자신들이 속했던 집단의 부표본인 유전자 풀을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간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창시자 효과다. (프리드라이히 운동실조처럼) 프랑스에서 자주 발현하는 몇몇 유전질환이 왜 퀘벡까지 건너가지 않았는지, 또한 반대로 퀘벡에서는 흔한 질환들이 왜 프랑스에는 없는지를 창시자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 예를 들어보자. 자카리 클루스티에와 그의 부인 생트 듀퐁은 1930년대에 혼인한 퀘벡인들의 가계 81퍼센트에서 나타나고, 심지어 동일한 한 가계에 50번이나 등장한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의 후손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또 다른 기록은 1657년 퀘벡에서 안느 아숑과 혼인한 피에르 트랑블레다. 퀘벡의 모든 트랑블레의 기원인 그는 동일한 가계에 92번이나 등장함으로써 최다 기록의 소유자가 되었다! 

- 시조 50명이 퀘벡 주민에게 미친 기여도가 왜 이처럼 불균형하게 높을까? 모든 시조가 여러 세대 이후 평균적으로 같은 수의 후손을 두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시조 50명이 사그네락 생장 주민 유전자 풀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불균형한 유전적 기여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 몇몇 시조만 이토록 크게 기여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인구통계 자료와 출산율을 살펴봐야 한다. 자녀가 적은 가족은 드물었지만, 유전학에서 중요한 것은 한 집단 안에 정착한 자녀들이다. 자손을 낳기 전에 사망하거나 이주한 사람들은 집단의 유전자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유전자 풀에 기여한 사람들을 '유효한 아이들'이라고 한다. 만약 당신에게 7명의 자녀가 있는데 그중 1명은 어려서 사망하고 다른 6명은 집단을 떠났다면 당신은 그 집단의 다음 세대에 유전적으로 기여하지 못한다. 반대로 당신에게 7명의 자녀가 있는데 그중 6명이 성인이 되도록 살면서 그 집단 안에서 자식을 낳았다면 당신의 유전적 기여는 6명의 자식이다. 그렇다면 몇몇 가족이 다른 가족들보다 유효한 아이들의 수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 인구통계 자료를 보면 뜻밖의 결과에 도달한다. 몇몇 가족은 이 집단 안에 살며 결혼한 자녀가 많고, 이 자녀들도 이 지방에 살며 결혼한 자녀가 많다. 이러한 도식이 반복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생식력의 상관관계를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계는 결혼한 자녀에게만 해당된다. 성년이 되기 전에 사망한 자녀들과 특히 다른 곳으로 떠나 결혼한 자녀들을 포함한 전체 자녀를 계산하면 이러한 생식력의 상관관계는 없다. 

- 간단히 말해서 자녀들이 지역에 남아 결혼한 대가족이 있었고, 자녀들이 지역을 떠난 대가족도 있었다. 이 지역은 개척 전선이었다. 따라서 몇몇 가족은 모든 자녀가 정착할 수 있도록 사그네락 생장 근처에 머물면서 지역 삼림을 개간하러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지방에 터전을 잡은 손주들의 가족이 1백여 명에 이르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말하자면 17세기에 살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불균형하게 기여한 것은 그곳에 정착해서 결혼하는 전통을 몇몇 가족이 지켜온 덕분이었다. 이 성공적인 생식의 문화적 계승은 전통적으로 남성만이 성공적 생식을 계승하는 중앙아시아에서도 관찰된다.  

 

-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모든 역사 자료로 많은 부부의 출생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계곡은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인의 30퍼센트는 이방인과 이루어졌다. 심각한 부동이 있으려면 집단이 폐쇄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돌연변이는 이전에 발생했고, 집단은 이동이 자유로웠다. 맞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여러 가계도를 자세히 분석하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집단에 뿌리내린 사람들, 즉 조상 대부분이 이 계곡 출신인 사람들은 현지에 남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것이다. 상관관계가 깊은 일이다. 한 세대의 개인에게 이 집단 출신의 조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곳에 정착한 자녀가 더 많았다. 한마디로 한 가계의 정착은 생식에 유리하다. 반대로 부모 혹은 조부모 중 한두 사람이 이 계곡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생식이 불리했다. 이 집단의 중심인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정착한 안정된 사람들이었고, 계곡에서 1, 2세대만 거치며 이동하는 사람들은 주변인이었다.

 

- 이유는 오직 땅에 있었다. 중심인물은 들과 방목장을 소유했고, 후손들에게 양도했다. 토지 소유권이 없는 이주민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정착하기 힘들었고, 더 쉽게 떠났다. 생활이 안정된 중심인물들이 그들보다 생식에 유리한 것은 순전히 사회·경제적 이유였다. 재산을 물려주기 때문이다.  

 

- 이제 오슬러-웨버-랑뒤 증후군을 상기해 보자. 집단에서 이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안정된 중심인물들이었다. 이들의 유리한 사회 조건은 이 질환과 관련된 불리한 조건을 상쇄한다. 적어도 유전적 진화의 관점에서 사회문제가 생명현상을 상쇄하는 좋은 사례다! 

 

- 결과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겨우 5천 년 전에 같은 조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계통학에서도 전 인류의 첫 공통 조상은 불과 3천 년 전에 나타났다고 추산한다. 대륙 간의 이주 비율이 다소 높은 것을 고려해도 이 모델은 믿을 만하다. 

 

- 계통학에 따르면 우리의 첫 공통 조상은 3천 년 전에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5천 년 전에 같은 조상들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한번 언급하면 5천 년 전 살았던 사람들 중 모두가 현재까지 후손을 남긴 것은 아니고, 후손을 남긴 사람들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다. 현재까지 후손을 남긴 사람들은 표본에 따라 60퍼센트에서 80퍼센트 사이를 오간다. 달리 말하면 여러분이 5천 년 전의 한 마을이나 도시로 들어간다면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전 인류의 공통 조상일 것이다. 
 

- 물론 이 모든 공통 조상은 사는 장소에 따라 가계도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달라진다. 스웨덴인의 가계도에는 유럽인의 공통 조상들이 자주 나타나겠지만, 가봉인의 가계도에는 아프리카인 조상들이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 모두 조상들 중 적어도 1명은 양쯔강 유역에서 쌀농사를 짓던 농부, 시베리아의 곰 사냥꾼, 아프리카의 코끼리 사냥꾼, 바빌로니아의 학자 혹은 파푸아의 돼지 먹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표본으로 얻은 5천 년이라는 연대는 과거의 이주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데, 상당히 먼 이주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표본이 가까운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점진적으로 이주한 집단이라면 공통 조상들의 추정 연대는 수만 년 더 빨라질 것이다. 분명 가까운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의 이주와 장거리 이주 2가지가 혼재돼 있을 것이다. 

 

- 따라서 우리 모두는 친척이고, 한 집단에서 여러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내 같은 조상들을 만난다. 계보 연구자들의 가장 큰 모임인 뉴잉글랜드 역사 계보 협회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와 버락 오바마는 친척이고, 버락 오바마도 브래드 피트와 직접적인 친척 관계다. 또한 특정 시점에 모든 개인이 다음 세대의 후손을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혈통은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의 조상인 개인의 작은 집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사람의 조상은 모두의 조상이다!  

 

- 하지만 모든 조상이 현재의 우리에게 게놈 조각을 전달한 것은 아니다. 부모는 각각 자기 게놈의 2분의 1만 자녀에게 전달하고, 조부모는 각각 4분의 1만 전달한다. 더 먼 조상은 그만큼 적은 게놈을 전달할 것이다. 6세대까지 게놈 조각이 전달되지만 더 이전의 세대는 기여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10대조는 2분의 1의 확률로 10세손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여러분의 조상 4,096명 중 12대조는 82퍼센트의 확률로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보의 조상이 반드시 유전자 조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로랑은 처음 유전자계보학에 대해 들었을 때 회의적이었다. 그는 유명인들과 유전자를 비교할 것을 제안하고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와 혈연관계가 있는지 등도 알려주는 사이트들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서비스를 이용한 그의 친구들 대부분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혈연관계가 있다고 했다! 애초에 이 분석은 모계의 혈연관계 복원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만 근거로 했고, 그마저도 판별하기 쉽지 않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은 흔하기 때문에 적어도 5명 중 1명에게서 발견되고, 심지어 당시 오스트리아 여성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적 유형도 아니다. 따라서 검사하면 마리 앙투아네트와 먼 혈연관계라고 나온다. 

- 유전자계통학 검사의 새로운 점은 오늘날 미토콘드리아 DNA(부계 역사로는 Y 염색체)뿐만 아니라 게놈도 분석한다는 것이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하여 게놈 전체를 약 70만 표지로 나눈다. 사람들 간에 변이성이 있는 게놈 부분들 중 선택된 이 표지들은 사람들 간의 다름과 닮음을 보여준다. 로랑의 관심을 끈 것은 이 표지들 덕분에 이미 검사한 다른 사람과 우리가 공통 조상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시대의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규칙에 따라 두 사람의 DNA 조각을 비교하면 된다. 갈라진 DNA 조각이 길수록 공통 조상은 가까운 과거에 존재한다.
 

- 이 규칙의 기원이 명확한 것 같지만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리 DNA를 4가지 색의 구슬로 만들어진 기다란 목걸이라고 생각해 보자. 구슬은 4개의 뉴클레오티드 A, C, T, G이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에게서 1개, 어머니에게서 1개로 2개의 목걸이를 받았다. 각각의 목걸이는 개인의 소소한 특성들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독특하다. 이론적으로 이 정보를 활용하면 두 사람의 공통 조상이 오래됐는지를 알 수 있다.

 

- 하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재조합은 예측 불가능한 과정이다. 따라서 먼 조상이 우연히 매우 적은 양의 긴 DNA를 전달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조상은 작은 조각만 전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이 혈연관계가 있는지, 공통 조상이 있는지를 밝히려면 모든 게놈 조각을 살펴봐야 한다. 동일한 게놈 조각의 수와 길이로 혈연관계를 계산할 수 있다.  

 

- 이 계산법은 유전계통학에서 많이 활용된다. 여러분의 DNA를 데이터베이스에 이미 저장된 다른 DNA와 비교하여 유전적 혈연을 밝혀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분 가계의 조상들이 유전자상 조상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3종형제 혹은 4종형제 이상의 먼 혈연관계에서 이들 중 1명은 여러분과 DNA를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고조부모를 공유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DNA를 물려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 특히 '골든스테이트 킬러'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범인은 1976년에서 1986년 사이 13건의 연쇄 살인과 성폭력을 저질렀다. 수사관들은 범죄 현장에서 채집한 DNA 덕분에 데이터베이스에서 그의 먼 친척 형제를 발견했다. 이어서 계보학 조사관들은 친척 주변의 계통수를 복원했다. 채집한 DNA 프로필과 나이와 성별이 합치하는 후손들만 남겨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쓰레기통에서 찾은 빨대로 DNA 검사를 한 후 살인자를 확인했다. 이후 수십 건의 미제 사건이 이 방식으로 해결됐다. 

 

- 이 새로운 도구는 미국에서 사적 재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 사용자가 재미로 가계도를 복원하거나 친척을 찾기 위해 데이터베이스에 자신의 DNA를 맡긴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가깝거나 먼 친척 관계 모두를 경찰 수사에 노출시킨 셈이다. 실종자나 범죄자를 찾는 데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 준다면 계통학 유전자 정보로 모든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중요한 유전학 공공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익명으로 DNA를 제공한 미국인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 위험한 것은 가족들이 이 검사를 할 때 거짓 부모자식 관계가 본인도 모르게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형제와 자매가 자신들이 이복형제자매 혹은 이부형제자매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족의 비밀이 드러날 수도 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정보는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페이스북 그룹 'DNA NPE Friends'는 '생물학적 부모로 예상되지 않는 사람들'의 원치 않는 정보를 관리하도록 돕기 위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인터넷에는 가족 드라마와 비슷한 행복한 이야기, 예상치 못한 혈연관계 발견 이야기 등이 가득하다. 쌍둥이의 경우를 제외하면 여러분의 DNA는 여러분의 유전자 신분증이다. 하지만 그 DNA는 친척들과 공유하는 것이므로 여러분만의 소유가 아니라 친척들의 소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DNA 활용법은 유전자 정보 저장과 관리, 접근권에 관한 미묘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잠재적 상업화는 말할 것도 없다.

 

- 앞서 언급한 유전자 검사보다 기초적인 유전자 계통학 검사가 있다. 바로 기원 검사다. 로랑은 2015년 성탄절 선물로 이 검사를 받았다. 그는 설명서에 따라 타액을 채취하여 작은 통에 넣어 우편으로 보냈다. 몇 주 후 받은 결과는 그가 25퍼센트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가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프스 너머 (이탈리아)의 조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4년 후 같은 검사를 다시 했는데 놀랍게도 이번 결과에 따르면 2퍼센트 이탈리아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검사 결과로 새로운 기원이 등장했는데, 23퍼센트 프랑스인이었다. 2퍼센트 이탈리아인 혹은 23퍼센트 프랑스인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결과는 왜 바뀌었을까? 

- 답을 알려면 검사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여러분의 타액에는 DNA를 지닌 세포들이 있다. 기원을 검사하는 회사가 여러분의 DNA를 받으면 인구 집단에 따라 가변적이라고 알려진 부분을 읽고 기준이 되는 DNA와 비교한다. 수백만 개의 DNA 조각들을 비교하는 작업으로 백분율을 계산할 수 있다. 'DNA의 25퍼센트가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은 기준 집단과 비교했을 때 4분의 1은 합치한다는 의미다. 검사 결과가 다른 점을 이해하려면 초기 자료들이 중요하다. 이 검사들은 여러분의 DNA를 그 회사들이 구성할 수 있었던 기준 집단의 DNA와 비교한다. 과학 논문에는 집단을 구성하는 방식이 잘 정의되고 설명되어 있지만, 기준 집단 형성은 테스트를 제공하는 회사의 블랙박스가 된다. 

 

- 예를 들어 여러분의 조상이 북프랑스 출신이고 프랑스인 기준 집단이 남프랑스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벨기에 사람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조상이 이탈리아 북부 출신인 사람이,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과 프랑스 남동부 사람들을 이탈리아인의 기준 집단으로 삼는 다른 회사에서 검사하면 분명 이탈리아인이 아닌 프랑스인으로 분류될 것이다. 지역을 넓혀 여러분에게 시베리아인 조상들이 있고, 시베리아인이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을 포함한 북아메리카인을 기준 집단으로 하는 검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조상들 중 아메리카 땅을 밟은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여러분의 기원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1만 5천 년 전 시베리아를 떠나 아메리카에 왔기 때문이다. 

- 문제는 이 회사들이 전 세계의 몇몇 지역을 포함한 여러 기준 집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여러 회사에 검사를 의뢰한다면 분명히 다양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 일반적으로 기원에 관한 여러 회사의 검사 결과들은 대륙 차원까지는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아시아 기원의 백분율은 일치한다. 반면 대륙 안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결과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사람들 간의 유전자 다양성은 매우 적지만 유전자의 유사성이 다른 지역에서는 '기원 집단' 분할은 훨씬 임의적이고 기준표본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민족과 유전자의 다양성이 큰 지역은 과소평가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연구했던 중앙아시아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민족 집단에 따라 유전자가 다양한데, 기준 집단은 이러한 특성이 없다. 유전자 검사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중국 기원 50퍼센트' 같은 결과는 기원 지역을 아시아에서 찾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윤리적 측면에서,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검사 기회를 선물 받는다면 그저 재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검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고,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거의 없다. 

-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 민족주의 정당이 선거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인종주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사람종의 유전자와 역사를 거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전학은 '인종'이라는 위험한 개념에 대해 할 말이 많을까? 유전자 기원 검사의 발전이 불러온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이 검사들이 사람들을 분류함으로써 인종주의를 자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 집단 분류로서의 인종은 모호해서 경계가 임의적이고 가변적이다. DNA는 우리 모두의 기원이 아프리카고, 유전자는 99.9퍼센트 동일하며, 지리적 기원과 관련하여 유전자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을 이론의 여지없이 보여준다. 지구의 양쪽 끝에 있는 두 사람은, 조상이 같은 지역에서 온 두 사람보다 아주 조금만 다르다. 따라서 조상들의 지리적 기원을 찾는 검사는 별 의미가 없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 역사적으로 사람종은 지구 전체에 퍼졌다. 사람들은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과 혼인하며 가까운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계속 이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녀들은 부모 가까이에서 살았다. 유전자 기원 검사는 이주와 지리적 안정이라는 역사의 2가지 요인을 드러냈다. 지리적 안정 없이는 티베트인들이 고지에 적응한 것처럼 환경에 유전적으로 적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 이유는 티베트인들이 여러 세대 동안(수천 년은 됐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고지에 머물러 살았기 때문이다. 

- 반대로 집단들을 가르는 미미한 유전자의 차이는 인류가 모험하며 전개한 이주사의 특징이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 이주사가 강조되기도 하고 현지 적응을 통한 안정이 강조되기도 한다. 유전학은 자료들을 제시하고 작용 원리를 설명하지만, 우리의 DNA의 차이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는 문제는 윤리적 관점, 시대의 사회 규범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집단의 DNA가 구분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차이가 관련성 있을까? 이것을 '인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지리적 기원에 근거한 분류가 의학적으로 의미 있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의학과 인종 혹은 민족 집단들에 적절한 부분 집합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전성 빈혈인 지중해 빈혈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중해 주변, 동남아시아에서 자주 발생하지만 동아프리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중해 빈혈은 아프리카 기원 표지가 아니고, 반대로 아프리카 기원은 이 질병이 발병할 위험이 있는 집단을 알 수 있는 충분한 정보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테이삭스병은 아슈케나즈 유대인 집단에서만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권 퀘벡인도 앓는다. 성인에게 우유 소화 능력을 선물한 적응은 북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중동의 몇몇 집단에서도 볼 수 있다. 

 

- 유전자의 몇몇 특이성과 관련된 분류는 매우 한정된 집단에 적용된다. 고지 적응은 아시아인 전체가 아닌 티베트인들에게만 해당된다. 무호흡 능력은 바다의 방랑자인 인도네시아 바자우족 Bajau에게는 흔하지만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요컨대 인종 분류가 생물학적 정보와 관련해서 믿을 만한 정보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각 집단은 살아온 역사에 따라 우연히 혹은 자연선택에 의해 유전자 특이성이 발달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유전자 특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사회적 인종 분류와 일치하진 않는다. 인종이라는 개념의 정치적·역사적·사회적 측면을 제외하고 생물 다양성에 따른 분류만 생각하더라도 의학적 인종 분류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 인종 개념은 확인하거나 추정한 기원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18세기에 이러한 유형화가 개발되자마자 분류법은 집단 간의 우열을 정하고 나누었다. 여성보다 남성을 우위에 두는 것처럼 인종 유형화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보다 유럽인을 우위에 뒀다. 이 계층적 유형화에,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확고한 정신적·지적·심리적 격차에서 생물학적 특이성이 생겼다고 믿는 본질주의가 더해졌다.

- 본질주의는 개인을 가둔다. 전제가 정해진 기원에 따라 개인의 모든 것을 식별한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방할 권리가 있는데, 본질주의는 꼬리표를 달고 자주성을 박탈한다. 성차별주의의 구조도 같다. 나는 성차별주의자 앞에서 식물과 여행을 좋아하는 과학자라고 나 자신을 소개해도 될지 알 수 없다. 나의 의견은 결국 내가 여성이라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 계층화와 본질주의는 노예무역, 몇몇 집단의 노예화 혹은 민족 말살 같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정당화하며 오래 지속됐다. 계층화와 본질주의는 여전히 사람들의 지리적·민족적·종교적 기원을 문제 삼는 범죄로 나타난다. 개인을 유전적 유사성에 따라 나눌 수 있더라도, 집단과 우리 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인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인종 개념에서 파생된 3가지 개념(범주화, 계층화, 본질주의)은 기원 검사의 잠재적 일탈을 예고한다. 이 검사들은 대체로 현대인의 다양한 기원을 밝히고 사람종의 이주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반면, 우위에 있다고 추정되는 지리적 기원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데 사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는 얼트라이트 Alt-right 같은 미국 극우 정치 집단에서 유행했다. 이 집단 회원들은 유럽, 가능하면 북유럽 기원 조상을 내세운다. 이들은 자신의 유당 내성에 자부심을 느낀다. 실제로 북유럽인은 유당 내성 비율이 높지만, 투치족 같은 아프리카 일부 주민들은 90퍼센트에 달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분명 모를 것이다. 

- 유전자 검사는 이따금 본질주의를 선도하기도 한다. 유전자 기원에 따라 음악을 제안하는 음악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마치 유전자 기원이 음악 취향을 좌우한다는 듯이! 이 검사들은 정체성 개념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학적 접근 방식인 유전학은 실제로 우리의 정체성을 밝혀줄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을 표본화함으로써 그 안에 갇혀 경직될 위험이 있다. 표본화한 정체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 유전자 정체성은 각 개인이 스스로를 규정할 자유가 있는 현대성과 반대된다. 사람종의 유전자 다양성에 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기원 검사가 종종 인종주의 사고를 강화하기 위해 혹은 다른 이유로 활용되고 해석된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 기원 검사 자체가 인종주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인 눈으로 감시하자. 

 

- 그렇다면 인종주의는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악일까?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종주의가 사회 규범이 되는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역사의 어느 순간에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위정자, 엘리트 지식인 등 모든 사회 계층에 인종주의가 형성됐을까?

- 인종주의적 사회는 식민지화와 노예제도처럼 지배적인 상황이나, 극단적인 예를 만든 나치 체제처럼 순수 인종이라는 개념을 확대한 민족주의에서 싹튼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나치주의가 어떤 토양에서 자라는지 이해하고 경계할 수 있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인종주의적이라는 믿음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몇몇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인종주의자가 될 가능성은 있다. 반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선호하는 자민족 중심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특성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회에는 자신의 집단(내부 집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여 정의하고 다른 집단을 경멸적으로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사회심리학은 이것을 '최소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최소 규모의 집단이다. 

- 자신의 집단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성향을 보여준 획기적인 실험이 있다. 어린아이들의 교실에서 붉은색과 파란색 두 그룹을 임의로 나누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게 해 보자. 그룹은 불과 몇 분 전 임의적으로 정해졌지만 아이들은 자기 그룹의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사탕을 줬다. 단지 '그룹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기호가 드러난다.

- 역사는 이러한 자민족 중심주의가 외국인 수용과 더불어 언제나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문화적 이유로 단절된 인간 집단은 없다. 있더라도 아주 드물다. 우리의 게놈에는 혼혈, 심지어 네안데르탈인 같은 아종과 혼혈한 흔적이 있다그렇다면 사람종은 왜 자기 민족을 중요시할까? 진화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설명은 자기 집단의 사람과 자원을 나누는 것이 이로우며, 그래야 여러분도 미래에 똑같이 나눠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협동 성향은 공동의 이익을 개발하는 데 자양분이 된다. 이것이 조세의 원리다. 이 원리는 조세가 제도로 자리 잡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신석기시대 유럽인은 협동이 필요한 건축물인 거석을 세웠다. 


- 공동 재산이라는 개념은 '사기꾼'이 벌 받는 구조가 존재할 때만 작동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의 실험이 증명하듯 우리는 공평성과 사기꾼을 탐지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카롤린과 소피를 예로 들어보자. 연구자가 카롤린에게 1백 유로를 주며 소피와 나눠 가지라고 한다. 소피는 카롤린이 주는 돈을 받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소피가 거절한다면 둘 다 돈을 갖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소피는 카롤린이 주는 돈이 얼마가 됐든 받아야 한다. 카롤린이 1유로를 주고 본인이 99유로를 갖더라도 소피는 1유로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피는 돈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모든 걸 잃는다 해도 거부했다. 거절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떠났지만 카롤린이 주머니를 채우는 것을 막았다. 각 실험 집단이 공정하다고 생각한 분배금액은 20유로에서 50유로까지 달랐다. 여러분이 믿든 안 믿든 소피는 20유로 이하의 금액을 거절했다! 공정성에 대한 감정은 불평등과 '배신' 앞에서 침묵, 분노로 표출된다. 

- 자신의 집단에 대한 선호가 다른 집단을 비하하거나 지배하거나 증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부정적 감정들이 발현하려면 정치적 상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인종주의가 아니라 본질주의와 함께 하나의 요인일 뿐이다. 본질주의는 성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지적 순응주의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기원의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LGBT 같은 또 다른 집단을 수용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서 성차별주의자다.

 

- 현대 생물학이 이러한 본질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친절, 도덕, 믿음 등 한 사람을 형성하는 수많은 성격은 유전과 아무 관계가 없다. 
둘째, 유전적 요인이나 변이와 관련된 특징은 개인이 성장하는 환경과 상관있다. 유전자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키를 예로 들어보자. 유전적 요소가 증명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의 성장 환경도 중요하다. 그 증거는 지난 세기 유럽에서 관찰된 키의 성장이 양호한 건강과 위생 상태의 결과였지 유전자와는 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피부색의 경우 유전적 변이는 색소 형성 유전정보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특성들의 정보는 없다!

- 개인의 피부색이 윤리적·지적·심리적 능력을 결정할 것이라는 상상은 지나치게 짧은 생각이다. 본질주의라는 단순한 도구 상자는 개인의 기원이 그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기원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은 현대에도 존재한다. 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문화의 중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문화가 불변하며 동일한 문화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결정론에 갇혀 있고, 정체성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 한 개인의 정체성이 이미 결정됐다는 생각은 집단에도 적용된다. 어떤 사람은 피부색이 '역사의 대행진'에서의 발전 정도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본질주의 패러다임에 의하면 생물학이 문화를 결정할 수 있다. 새로운 생물학에 자극받은 사람들의 집단은 '문화 수준'이 서로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진행 중인 여러 집단에 대한 유전학 연구들은 반대로 문화가 유전자 다양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 사람들의 일부 유전자 차이는 족내혼, 결혼 규범, 혈족의 규율 등과 같은 문화의 결과다. 유전자 차이가 문화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 차이가 유전자 차이를 만든다. 이 연구들은 생물학이 문화의 원인이라는 관계의 패러다임을 뒤엎었다. 

 

- 나는 인종주의 요인들을 설명함으로써 인종주의를 파괴할 수 있고, 다양성을 부정하기보다는 수용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유사하지만 다르기도 하다. 이 차이의 일부는 조상들의 지리적 기원과 관계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아야 한다. 

 

- 왜 그렇게 많은 이동이 지구상의 인구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까? 또한 이주는 사람종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책을 집필하는 내내 이 물음이 무언의 압력이 되어 머리를 맴돌았다. 이제 물음에 직면할 시간이다. 

- 첫째, 현대의 이주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여러 선입견을 타파했다. 직관에 반하는 교훈에 따르면 남반구 국가들에서 이주민이 더 많이 발생했다. 국제연합에 따르면 남반구 국가는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1억 명의 이민자가 남반구 국가에서 태어났고 남반구의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는 이주자는 8천4백만 명, 북에서 북으로는 5천7백만 명이었고, 나머지 1천2백만 명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주했다. 

 

- 둘째,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도망가는 사람에 관한 이미지는 잘못되었다. 연구를 전 세계로 확대하면 이민자들이 가장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중간 정도 잘 사는 나라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많이 발전한 몇몇 국가는 자국민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인 이주민의 75퍼센트가 아프리카 국가로 이주한다. 게다가 개발과 이주의 관계가 기계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한창 개발 중인 에티오피아는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사람이 줄고 이민국이 됐다. 

 

- 세계적인 연구들의 세 번째 교훈은 인구 과잉과 이주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주 때문에 인구 과잉 국가가 인구 감소 국가가 되지는 않는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발칸 국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발칸 국가들의 국민은 20퍼센트 이상이 외국으로 이주한 반면, 인구가 한창 증가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민율은 평균 3퍼센트에 그친다. 요컨대 아프리카에서 온 젊은이들이 유럽의 구대륙으로 물밀 듯이 들어온다는 생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 사람들은 왜 이주할까? 새로운 나라로 가는 이주민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시간을 초월한 현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 상황 외에 보편적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집단 전체를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이주는 생물 다양성에 기여한다. 생물계에서 이주가 없는 폐쇄적인 집단은 여러 세대가 흐르며 다양성을 잃는다. 이러한 손실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은 변이가 낳은 새로운 유전자뿐이다. 변이는 계속 발생하고 진화에 중요하지만 강도가 매우 약한 사건이다. 

- 폐쇄된 집단은 유전자가 빈약해진다. 반대로 이주로 인해 유전자 교환이 개방된 집단은 이주자들이 유입됨으로써 유전자가 풍부해진다. 한 집단이나 종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양성이 중요하다. 이것은 자연선택이 적응을 위해 끌어올 수 있는 잠재력의 저장고다. 환경 변화, 새로운 병원균, 새로운 식량 공급원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한다. 반대로 과도한 이주는 현지 적응에 불리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자연선택으로 적응하려면 한 집단의 일부가 여러 세대에 걸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 1930년대부터 이러한 이주/안정이라는 이중성은 한 집단 전체가 가장 잘 적응하도록 보장하는 균형을 설명하는 모델로 사용됐다. 이 모델은 상대적으로 고립된 하위 집단에 관해 설명해 준다. 각 하위 집단은 규칙적으로 이동하고 지역 환경에 적응한다. 이것이 사람종의 진화사에 적용된 패턴이고, 장기적으로 이족보행과 큰 뇌 같은 대혁신을 일으켰다.

 

-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집단 차원에서 이주의 긍정적인 면을 이해했다면, 개인 차원에서는 이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현지 환경에 적응한 한 개인이 앞으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새로운 환경과 만날 위험을 무릅쓰고 이주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일까? 몇 가지 진화생물학적 추론을 제안한다. 하나는 이주를 통해 원집단 구성원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집단생활은 경쟁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협동도 강화한다고 반박할 것이다. 이주가 지나치게 가까운 혈족과의 혼인을 막아줬을 것이라는 설명은 논리가 더 견고해 보인다. 요컨대 근친교배 예방 수단이라는 것이다. 암컷 침팬지들이 자신의 공동체 밖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거다. 수컷 침팬지들은 자신과 다른 유전자풀 출신의 암컷들과 번식한다. 같은 원칙을 인간 집단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먼 거리에 있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이 인척 관계를 제한하고 유전자 다양성의 기여도를 높이는 효과적인 방식일까? 

- 항상 그렇지는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절반 이상의 남성들이 다른 마을 여성과 혼인하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 중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 출신의 부부들이 같은 마을 출신의 부부들보다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그 이유는 이들이 지리적으로 먼 곳까지 찾아가서 가까운 친척과 혼인하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됐다. 일부 미국인들이 1800년에는 10킬로미터 내에서, 19세기 중반에는 20킬로미터 내에서 배우자를 구했다. 이후 19세기말에 반대 경향이 나타났다. 

 

- 이 사례들은 현재의 연구 표본들이 이주와 혈족 관계 혹은 유전자 유사성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인간이 지나치게 가까운 유전자의 연관성을 제한하는 방법은 이주 외에도 많다. 인류학은 결혼할 수 있거나 없는 사람을 지정한 온갖 친족제, 그리고 지나치게 가깝거나 멀지 않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수많은 방법을 설명해 준다. 
 
- 모든 전문가는 이주 현상과 동기가 매우 다양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현재의 표본에 따르면 정치, 경제, 인권에 관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외에도 경제적 이유이든 가족 문제이든, 혹은 개인적 역량을 실현하기 위해서든 목적지 국가를 선망해서든 모두가 이주 동기다.

 

- 오랜 역사는 이주 동기에 발견의 즐거움과 호기심을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험과 탐험의 부름에 응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10만 년 전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정착하여 사는 집단들의 안정성이 부각된다. 자료를 살펴보면, 수십 년 전 자신이 태어난 국가에서 사는 개인의 비율은 95퍼센트 이상을 꾸준히 유지한다. 이 수치는 많은 사람이 거주지 근처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근처에 정착한다는 사실, 즉 장소, 환경, 사회 연결망에 대한 애착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주 외에 미래의 변화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을까? 이 질문을 생물학자에게 던진다면 대답은 분명하다. 그렇다! 모든 생명이 그렇다. 우리의 게놈에는 우연이든 자연선택이든 각 세대마다 새로운 변이들이 나타나고 어떤 것들은 사라지며, 어떤 것들은 빈도수가 증가한다. 한마디로 사람종의 유전형질은 변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모습도 변할까?'라고 궁금해한다.  

- 집단적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미래 인간에 대한 이런 유형의 묘사가 흔하다. 하지만 몇 가지 잘못된 생각에 기초한 예측이다. 그중 하나는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이 전달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상상은 자주 사용하거나 반대로 불필요해진 기관이 새로운 형태로 후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했다. 근육이 발달한 사람이 자신의 힘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이라는 생각과 같다.

 

-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형질이 가변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 이 형질이 생존이나 번식을 좌우해야 하며, 셋째, 이 형질이 자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이 틀로 해석하면 신빙성 있는 가설을 판단하기 쉽다. 

- 3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추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기관이 유용성을 잃으면, 기관 상실을 야기하는 변이들이 자연선택으로 제거되지 않고 세대의 흐름 속에서 기관 상실을 야기하며 축적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현상은 우리가 속한 대형 유인원 집단이 이제 꼬리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수백만 년 전 꼬리가 필요 없어졌을 때... 꼬리를 잃었다! 

 

- 후성유전학이 발전함에 따라 후천적 형질 전달에 대한 개념이 부분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후성유전은 환경에 따라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모든 메커니즘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 발현의 변화 중 일부는 어머니에게서 자녀에게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기아를 경험했던 여성들에게서 나타났다. 이들의 자궁 내에서 아기가 나중에 최소한의 가용 자원을 최대한 축적하여 '지방을 만드는 데 사용할 후성유전적 특징'이 발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만약 이 아이들이 유복하게 자란다면 열량을 과도하게 축적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비만 위험도 매우 높을 것이다.

 

- 인간의 후성유전에 관해서는 여러 팀이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되는 증거를 보면 이러한 전달은 극히 드물다. 달리 말해서 후성유전학은 개인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자연선택에 의해 적응한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 사람은 여전히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할 수 있을까? 얼핏 보기에 우리의 진화는 끝난 듯하다. 우리는 포식자들을 모두 물리쳤고, 여성을 가장 괴롭혔던 출산으로 인한 사망은 선진국에서는 사라졌거나 무척 드물어졌다. 게다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영아 사망률이 극히 낮아져 0에 가깝다.  

 

- 17세기에는 한 가정이 5명에서 7명의 자녀를 낳는 게 정상이었고, 그중 절반은 15세까지 살지 못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자녀들 중 반은 태어나면서 사망하거나 어린 나이에 사망했고, 그의 많은 형제자매도 같은 운명을 겪은 사실을 상기해 보자. 출산할 때 사망할 확률은 2퍼센트였고, 어머니들은 그때마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출산전후의 문제들로 사망할 위험성도 30퍼센트나 됐다! 따라서 사망률만 보면, 적어도 유럽인은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자연선택은 생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전형질을 전달해야 하고 배우자를 찾아야 하고 후손을 낳아야 한다. 마지막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1961년에서 1965년 사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남녀의 코호트를 연구한 국립통계경제연구소 INSEE에 따르면 남성의 20.6퍼센트, 여성의 13.5퍼센트는 자녀가 없었다. 어떤 유전적 요인이 후손의 부재와 부분적으로 관련 있다면 자연선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예컨대 Y 염색체의 유전자 변이가 그렇다. 덴마크에서는 생식 연령인 젊은 남성들의 약 30퍼센트가 불임이다. 불임 남성 집단의 Y 염색체를 세밀히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몇몇 Y 염색체가 과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같은 환경 조건이 지속된다면 이들 하플로 그룹은 몇 세대 후 사라질 것이다. 출산율 감소는 Y 염색체를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오염 물질 같은 환경 요인들과 관련 있다. 부분적으로 의학이 불임을 보완할 수 있겠지만 1백 퍼센트의 치료는 힘들 것이다. 

 

- 이러한 자연선택의 예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드물다. 자연선택은 느린 과정이기 때문에 생식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효과를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작용'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나 오염 물질 같은 환경 요인에 다양하게 대처하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처 방안을 전달하며, 자연선택이 작용할 수 있을 만큼 환경조건을 유지할 수는 있다. 

 

- 출산율 외에도 성 선택, 즉 배우자 선택은 자연선택의 또 다른 요인이다. 이것으로 생식과 관련된 특정 형질을 가진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도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턱수염, 가느다란 눈, 파란 눈 등이 생식에 어떻게 작용했을지 살펴봤다. 

- 성 선택은 간파하기 어렵지만 신장 같은 몇 가지 예는 분석할 수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키 큰 남성을 선호한다. 키 큰 남성들은 배우자를 찾을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자녀가 많다. 자녀에게 전달되는 이 특징은 자연선택의 이형인 이른바 성 선택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 과정은 무척 느리고 수많은 세대 동안 같은 선호도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 성 선택에서는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거나' 혹은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리는' 등의 임의적이지 않은 배우자 선택 현상도 나타난다. 많이 연구된 사례 중 하나는 백혈구 항원 체계 human leukocyte antigen, HLA다. 백혈구 항원 체계는 면역력에 큰 역할을 한다. 유전자 다양성이 클수록 병원체를 방어하는 능력이 커질 것이다. 백혈구 항원 체계의 높은 유전자 다양성은 게놈의 해당 부분에서 이형접합이 과도하여 발생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DNA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DNA와 다르다. 부부의 백혈구 항원 체계를 비교한 과학자들은 놀라운 발견을 했다. 몇몇 집단의 배우자들은 백혈구 항원 체계가 서로 다른 경향이 있었다. 마치 방어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능력에 온 마음을 바쳐 배우자를 선택한 듯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다른 행성에 사람들을 보낸다면 진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자연선택이든 우연의 결과이든 1백여 세대 후 그들은 지구에 있는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집단을 형성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어떨지 예견하기는 어렵다. 

 

- 우선 우리의 진화 역사를 뒤집어보자. 약 4백만~3백만 년 전 덤불숲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키가 작았다. 매우 드문 화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20센티미터 이하였다. 이후 수백만 년이 흐르며 신장이 커졌다. 오늘날 유럽 남성들의 평균 키는 178센티미터고, 여성들의 평균 키는 168센티미터다. 이러한 진화가 선처럼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구석기시대 선조들의 신장을 되찾은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2만 년도 더 된 옛날 체코 동부 모라바에 살았던 남성은 평균 176.3 센티미터, 지중해에 살았던 남성은 182.7센티미터였다. 이후 신석기시대에는 신장이 줄었다. 기원전 5000년 카르파티아 평원에 살았던 렌젤 문화 Lengyel culture 구성원의 키는 162센티미터 정도였다. 

- 1백 년 전부터 자료에 기록된 민족들 중에서는 이란 남성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성장하여 157센티미터에서 173 센티미터로 커졌다. 여성들의 경우 한국 여성들이 142센티미터에서 162센티미터로 기록적인 성장을 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현상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좋아진 건강 상태가 작용한 덕분이었다. 오늘날에는 소아질병이 크게 감소했고, 우리는 음식을 실컷 먹고 (부자 나라에서는) 있다. 신석기시대 몇몇 집단의 키가 작아진 이유는 구석기 수렵채집인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아 질병의 이환율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환경 요인도 영향을 미치지만, 신장은 주로 유전이 변이를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장 유전자의 유전율은 약 80퍼센트다! 유전자 코드에 관한 연구 결과 게놈에 작용하는 3천 개 이상의 변이(단일염기 다형성 SNP)를 식별했지만, 각 변이의 효과는 매우 약했다. 게다가 이 모든 유전자의 추가 조정은 신장과 관련된 변이의 일부인 25퍼센트만 설명한다.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유전적 요인들이 있다. 과학자들은 실험의 한계에 도달하여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을 관찰해야 했다. 최근 식별한 3천 개의 변이는 70만 명의 게놈을 분석해서 얻은 성과다. 선행 연구에서는 7백 개의 단일염기 다형성을 발견하기 위해 25만 명의 게놈을 분석했다. 유전학 연구 결과의 80퍼센트는 지난 세기의 신장 변화가 환경 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환경에 따라 어떤 특징이 변화할지를 예상하는 것은 유전의 몫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 특징은 유전에 매우 중요하지만 환경에 따라 매우 빠르게 변할 수도 있다.  

 

- 지난 세기 유럽의 환경 개선 덕분에 신장이 유전자의 한계치에 이르도록 성장한 듯하다. 선천적으로 키가 작은 민족들을 보면 최대치 신장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든다. 피그미족의 작은 키는 유전형질에 기록되어 있다. 환경이 좋았다면 더 클 수 있었겠지만, 분명 180센티미터까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몇십 년간 변화한 피그미족의 신장에 관한 자료는 없지만 키가 작은 다른 부족들을 참조할 수는 있다. 과테말라 여성들의 평균 신장은 1994년 140센티미터에서 2014년 149센티미터로 크게 성장했지만, 유럽 여성들의 평균인 168센티미터에는 못 미친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북유럽 사람들은 남유럽 사람들에 비해 크지만 건강과 위생 조건은 비슷하다. 유전적으로 정해진 최고치가 있을 것이라는 또 다른 증거다. 

 

- 또 다른 유전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바로 후성유전학이다. 이 메커니즘에서는 어머니가 사는 환경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DNA 염기 서열을 바꾸지는 못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미 입증된 메커니즘은 특정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을 자궁 내에서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 영향은 여러 세대에 작용할 수 있다. 현재의 신생아는 2세대 동안 환경의 제한을 겪지 않은 사람의 후손이므로, 어쩌면 우리 유전자에 '보류 상태'의 신장 성장 유전자가 여전히 존재할 수도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신장의 진화에 관한 메커니즘은 이미 소개했다. 단기간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있고 장기간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있다. 미래 예측은 복잡한 일이다. 

 

- 사르데냐의 마을 중 하나인 알게로의 작은 광장들에는 1백 세 이상인 마을 사람들의 멋진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르데냐는 전 세계에서 1백 세가 넘은 사람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지난 2백 년 동안 최상의 생활환경이 이곳 사람들의 신장을 성장시키고 수명도 증가시켰다. 현재 여러 나라 여성들의 평균수명은 80세를 넘는다. 언젠가 인류 전체가 사르데냐 사람들만큼 혹은 그보다 오래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성서에 등장하는 므두셀라와 같아질 수 있을까?  

 

- 수명이 증가한 정확한 원인은 무엇일까? 흔히 잊고 있지만 19세기초 전 세계의 평균수명은 40세를 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35세에 사망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낮은 평균수명의 주요 원인은 영아 사망률이었다. 한 집단에서 50퍼센트가 70세까지 살고, 50퍼센트가 태어나면서 사망한다면 이 집단의 평균수명은 35세다. 1850년에서 1950년 사이 1백 년 만에 평균수명이 40세에서 70세로 크게 증가한 이유는 영아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두 번째로 증가한 기대 수명 덕분에 10년이 증가한 (70세에서 80세가 됐다) 원인은 심혈관 질환과 밀접한 성인 사망률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 전반적으로 수명이 증가했지만 상대적 현상이다. 이란의 경우 20년 동안 20세가 증가하는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때문에 수명이 감소했다. 어린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을수록 수명 통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30세에 사망한 사람은 70세까지 사는 사람들에 비해 40년의 평균수명을 '잃는' 반면 65세에 사망한 사람은 5년을 잃는다. 

- 러시아의 경우를 살펴보자. 러시아의 평균수명은 소련이 무너진 이후 낮아졌다. 과도한 보드카 섭취로 40~55세 성인의 사망률이 심각하게 증가했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보드카 가격을 인상하여 중년 사망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뒤집었다. 많은 산업국가의 평균수명은 평준화되고 있다. 반면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비만 증가와 모르핀계 마약 과다복용 때문에 2년 연속 감소했다. 

- 우리 각자는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우리를 구원해 줄, 더 나아가 영생하도록 해 줄 장수 유전자가 존재할까? 프랑스의 경우 1백 세 이상인 여성의 수가 1980년대에 0에 가까웠는데 2015년에는 1만 8천 명으로 증가했다. 1백 세 이상인 일본인은 5만 명 이상이다. 사르데냐, 일본, 그리스의 어느 섬과 코스타리카의 특정 지방 등은 1백 세 이상인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학자들은 1백 세 이상인 사람들이 특이한 유전자 프로필을 지니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안타깝게도 과학자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여러분을 실망시켜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를 1백 세 이상 장수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영생하게 해줄 특이한 유전자는 없었다. 물론 최고 연령에 도달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유전지 변이는 존재하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 장수에 관한 세계 기록은 122세에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 언젠가 이 기록이 깨질까? 이 기록은 너무나 예외적이어서 노파가 딸의 신분을 대신한 것 아닌지 의심하는 연구자도 있었다. 그 시대의 기록보관소를 감안하면 실현 가능하지 않은 기발한 가설이다.

-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희망하는 수밖에 없다. 인구통계학자들은 최근 '건강한 수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현재 자료들에 따르면 선진국 국민은 삶의 80퍼센트를 신체 조건이 양호한 상태로 산다. 프랑스 여성들은 수명이 85세이므로 64세까지는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고, 남성들의 경우 수명이 80세이므로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63세까지다.

- 하지만 이 통계는 측정하기가 무척 민감하다! 모든 건강 손실을 계산한 결과일까, 아니면 자율성 상실만 계산한 결과일까? 고통은 어떻게 평가할까? 만약 '건강'하다고 당사자가 진술한다면 어떻게 국가끼리 비교할 수 있을까? 국가 간 비교 시 고려해야 할 문제는 6개월 이내의 통상적 활동에 제한이 있었는지의 여부다. 스웨덴과 비교하면 프랑스는 불량 학생이다. 태어날 때의 기대 수명은 같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보다 10년 더 '건강하게' 산다. 이 문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신장과 수명이 어느 방향으로 진화할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한편으로 인상적인 것은 최근 수십 년간, 그리고 지난 2백 년 동안 유럽인의 삶의 질이 놀랍도록 나아졌다는 것이다. 

 

- 인구 변화 이전인 1750년에 지금의 영국 주민이 750만 명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런던에서 5세 이전에 사망한 어린이의 비율은 1740년 75퍼센트에서 1820년 30퍼센트로 감소했다. 영아 사망률이 감소하자 인구가 1800년 1천1백만 명에서 1920년 4천4백만 명으로 120년 동안 4배나 성장했다! 이 시기 인구가 2배도 늘지 않았던 프랑스는 1750년 약 2천5백만 명에서 1920년 3천2백만 명이 됐다. 왜 그랬을까? 출산율 감소와 사망률 감소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는 전 세계로 확장됐다. 유럽의 인구 변화가 150년이나 걸린 반면 20세기의 몇몇 국가는 불과 15~20년이 걸렸다. 이란은 1976년 여성 1명당 출산율이 7.2명이었는데, 1991~1996년에 3.7명이 됐다. 아프리카는 국가별로 차이가 크다. 성장이 더딘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와 달리 라틴아메리카는 예상보다 빨리 인구 변화를 겪었다. 

- 인구 변화가 반드시 안정적인 균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몇몇 국가와 일본 등은 변화를 넘어 여성 1명당 2명의 자녀로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경계 아래에 있다. 따라서 인류의 절반 이상이 여성 1명당 2명 이하의 아이를 낳는 국가에 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폴란드, 독일, 한국 등의 일부는 여성 1명당 1명의 자녀에 가까운 저출산 국가다. 현실을 살펴보면 지역에 따라 인구가 매우 대비된다. 적은 아이와 많은 노인으로 역삼각형 연령 피라미드를 나타내는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삼각형 피라미드를 나타내는 국가들도 있다.  

- 사람종의 미래 인구를 예측할 수 있을까? 전 세계의 인구는 계속 증가할 수 있을까? 우선 짚어야 할 것은 인구 증가에서 수명 증가가 차지하는 역할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인구는 2천만 명 증가했는데, 그중 3분의 1은 수명이 증가한 덕분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아이를 가질 20~30세 사람들 대부분이 이미 태어났기 때문에 미래 인구를 부분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여러 인구통계학자에 따르면 모든 국가에 동일한 인구 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인구가 정점에 도달한 후 감소할 것이다. 

- 인구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예상 날짜와 밀도는 다양하다. 혹자는 2050년이라고 하고, 혹자는 2100년이라고 한다. 인구는 90억 명에서 110억 명 사이가 될 것이다. 인구 증가의 정도는 영아 사망률과 출산율의 감소, 그리고 수명 증가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지구에서 보낼 것이다. 어찌 됐든 인구가 가장 크게 성장할 대륙은 아프리카다. 중국 인구는 인도의 2배가 될 것이다. 현안은 '모든 국가가 이런 변화를 겪을까?'다. 

- 또 다른 문제는 '자연과의 관계가 이 수치에 영향을 미칠까?'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약 1만 년 전의 인구 성장은 신석기시대로의 변화, 즉 우리와 자연의 관계가 크게 변한 현상과 밀접했다. 19세기 유럽 국가의 인구 변화는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는 산업혁명에 이끌려 나타났다. 지금의 인구 변화가 새로운 변화, 즉 생태학적 변화와 함께하길 기원하자. 

- 우리는 조만간 막다른 길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수없이 재검토하고 시급히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야 한다. 유럽, 러시아 혹은 미국에 사는 한 사람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가난한 국가에 사는 수백 명과 맞먹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원, 특히 생물 다양성 고갈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 농학자들에 따르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농업을 통해 우리 모두가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다. 관건은 모두가 공평하게 식량을 획득하는 것이다. 글로벌녹색성장기구 GGGI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약 8억 2천만 명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다. 음식의 30퍼센트가 버려지고 성인 20억 명이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것을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환경에 대한 부담(지구온난화로 증가한 부담)과 인구 성장은 이주자들을 더 양산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난민들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인류 역사에서 배운 2가지 사실을 이해하고 해답을 선택해야 한다. 

- 첫째, 우리는 이주하는 종이다. 이 특징은 말 그대로 우리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의 DNA는 우리 조상 중 몇몇은 단거리를 이동했고, 몇몇은 대륙을 건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 모두의 조상에는 이주자가 있다. 이 사실을 미래에 투영하면 현재의 모든 부모는 이주자 후손들을 가질 것이다! 

- 둘째, 가장 공평한 사회는 사람들이 건강한 사회다. 한 집단의 가장 좋은 건강 지표인 신장은 경제 평등 지수와 관계있다! 이 2가지 이유를 통해 사회 형태를 고려하고 협동과 공정이 어우러지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 사람종의 전설 같은 대모험이 계속되기를 바라보자. 시간이 흐르며 우리 종은 생체 변화와 문화 발달로 인한 변화에 적응했다. 우리 종은 놀라운 호기심과 기발함, 그리고 함께 살고 협동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면서 이동하여 전 지구에 퍼졌다. 이제 우리가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 행성에서 여럿이 함께 살기라는 새로운 도전에 이러한 자질을 사용하기를 희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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