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병완
출판 : 다산북스
출간 : 2019.01.14
추천은 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아마도 "진정한 공부란 '배움' 그 자체에 몰두하는 것이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든 예시와 부연 설명들이 오히려 핵심 주장을 흐려지게 만든 듯하다.
처음 저자가 주장한 내용은 '공부의 이익은 그 실효성이나 실익에 있지 않다. 무용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에서 기쁨을 얻는 자체가 중요했다'이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예시들은 대체로 공부를 통해 업적을 남기거나, 성공하거나, 실용적 가치를 얻는 등의 '결과'가 따르는 예시들 중심이었다. 아마도 이는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당근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 또한 결국은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을 놓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나의 수단으로 바라보느냐, 그 자체를 '즐거움'으로 보느냐는 완전히 다르다. 후자를 이야기하며 자꾸만 전자를 예시로 들어 전체 논지를 흐려지게 한 점이 다소 아쉽다. 오히려 제야에서 수신제가를 이룬 예를 든다거나, 전자에 해당하는 예시들은 또 다른 길로 '공부'를 해왔던 일종의 반례로 드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뜻하지 않았으나 성공까지 따라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에는 그런 예시가 너무 많았다.
공부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을 통한 공부- 즉 독서를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최대한 정제된 생각을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내재화시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즐겁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장되어 가는 비주류 활동이 된 듯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렇다 해서 내가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용한 것들의 아름다움이 지켜질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란다.
어떤 방식이건, 보다 많은 분들이 삶 속에서 새로운 자극과 깨달음에 민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켜가시길 바라며.
끝.
-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쓸모없는 잡학 지식만 꾸역꾸역 쌓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는 공손홍과 같이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바로 '공부하는 기쁨'이었다. 공부를 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할 때 돈이나 명예를 얻을 때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만족감과 희열을 느꼈다. 이 온전한 공부의 기쁨이 나를 10년간 행복한 공부의 길로 이끌었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공손을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셈이다.
- 최근에 나온 공부와 관련한 책들을 살펴보면, 공손홍과 내가 느꼈던 '공부의 기쁨'에 대해 논하는 책을 찾기가 어렵다.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방법이나 시험에 합격하는 비법, 맹목적으로 공부의 신이 되는 경지에 대해 떠벌리는 책만 보일 뿐 정작 공부의 본질적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공부의 기쁨'을 다루는 책은 없다. 물론 실용적인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자발적으로', '오래', '꾸준히' 공부를 즐기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그런데 왜 이런 책들이 유행하게 된 걸까? 어쩌다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보며 공부를 '오해'하게 되었을까?
- 맹자는 그릇된 인습에 젖은 백성의 무지를 깨닫고, 시대를 개혁하는 데에 일생을 바친 혁명가였다. 그래서 그는 '측은지심 惻隱之心(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 '수오지심 惡之心(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 '시비지심 是非之心(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사양지심 辭讓之心(겸손하여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가리키는 인간의 네 가지 도덕적 본성인 '사단'과 함께 '인', '의', '예', '지'와 같은 인간의 네 가지 덕을 널리 알리고 가르쳤다.
- 맹자는 어머니의 삼천지교를 통해 공부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의 혜택을 누렸고, 자연스럽게 가르침의 중요성에 대해 체득할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서 공부할 마음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한계를 극복하며,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른 가르침을 통한 인의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했다. 맹자에게 공부란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기 위한 인격 수양의 토대였다.
- 약 25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껏 많은 사람이 공자와 맹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쌓은 학식의 양이 방대해서가 아니다. 공부를 통해 그들이 참된 삶의 모습, 즉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얼마나 많이 배우고 알고 있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공부한 것이 과연 내 삶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며 완성되었느냐다. 단순히 배운 게 많다고 하여 혹은 학벌이 높다고 하여 우리는 그 사람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에게 인생의 본보기가 될 때 진정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의 삶은 지행합일의 표본이자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공부의 자세다.
- "경계 없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배워라." - 혜강 최한기(1803~1879년)
- "학문이란 생활에 놓여야 진짜고, 생활에 놓이지 않으면 가짜다." -기학
- 조선의 지식인 중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다산 정약용이 5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현존하는 책의 양으로 봐도 정약용이 단연 앞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남아 있지는 않지만 대략 1000권의 책을 썼다고 알려진 인물이 있다. 그 신화적인 학자는 대체 누구일까? 바로 19세기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과학 사상가인 혜강 최한기다. 참고로 그가 쓴 저술은 현재 10분의 1 정도만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다.
- 최한기의 사상과 공부는 정약용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정약용이 옛 경전을 재해석함으로써 개혁의 논리를 이끌어냈다면, 최한기는 현재를 중시했다. 그가 항해술이나 수학, 천문학 등 서양의 과학을 적극적으로 공부하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최한기가 주장한 기학은 다양한 학문을 분리하지 않고 통섭적으로 접근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의 공부는 오늘날로 치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을 망라한 공부로 학문의 경계 없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 평생에 걸쳐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과학을 하나의 학문 체계로 접목시키고자 노력한 최한기는 조선의 다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학문은 반드시 형체가 있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하며, 반드시 이론으로 증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뷰자 주 : 이는 학문의 '실용성'을 중시한 것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공부의 즐거움' 그 자체를 역설하는 글쓴이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예시다.)
- 그는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공부하는 방법과 대상이 달라져야 함을 강조했다.
- 20대에는 분야를 가리지 말고 폭넓게 공부하며 탐색해야 한다.
30대에는 취사선택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얻을 것은 얻어야 한다.
40대에는 세계와 자신을 연결해야 한다. 모든 경험과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뒤 그것을 다시 바깥으로 쏟아내야 한다.
50대 이후에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보다는 이미 공부한 분야의 내용을 간추려야 한다.
- 독창적인 기의 세계를 열어젖히며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최한기는 인간이 처음부터 뛰어난 지식과 기능을 갖추고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에게 공부란 어느 한 시점에 끝낼 수 없는, 평생에 걸쳐 적절한 방법을 택해 배워나가야 하는 삶의 동반자와 같은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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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탁상공론에만 치우쳐 말뿐인 학문을 경계했던 홍대용이 자신의 시문집 담헌서에 남긴 구절이다. 중화의 질서가 바뀌고 사농공상이라는 기존의 신분 질서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격변기 속에서 홍대용은 많은 사람에게 보탬이 되면서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공부를 실천했다. 지구 중심설을 거부하고 조선에서 처음으로 지전설 地轉說을 주장한 것도, 톱니바퀴를 활용한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발명한 것도 모두 이러한 그의 선한 공부에서 비롯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읽기는 다 읽었으나 또 읽고 싶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그 내용을 성찰하지 않았으면서 지레짐작으로 책의 뜻을 헤아리려 하는 것은 책을 한 장도 읽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더 해롭다."
<세종실록>에 남아 있는 세종의 말이다. 세종처럼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수불석권 手不釋卷'의 자세가 공부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태도일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어도 공부의 근원은 독서뿐이다.
- 오랜 시간 인도 수학의 독창적 사고 체계를 연구한 엔도 아키노리는 독창적인 발상과 빠른 계산력을 자랑하는 인도 수학의 기초를 소개하는 책 <사고력 인도수학>에서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다 보면 숫자를 가지고 노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과 의사소통할 때 '언어'를 사용한다. 즉,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여기에 더해 인도 사람들은 '숫자'를 일상생활에서 말과 글처럼 사용하고 있다.
- 인도인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공부를 지향한다. 정답만을 찾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문제의 의미와 풀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정해진 답을 찾아내기 위해 공식만 달달 외우는 공부는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다. 인도인들처럼 사고력을 강화시키는 공부를 할 때 생각의 범위가 더욱 확장될 것이다.
-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심리가 학습된 결과다. 이것을 일컬어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말한다.
- 이런 모습은 우리 인간에게서도 자주 발견된다. 유리판과 기둥으로 상징되는 막막한 현실로 인해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기 일쑤다. 자신의 한계마저도 스스로 명확하게 설정해 버린다. 내면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 채,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 그저 주어진 삶에만 안주한다.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거듭 도전하지 않는다.
- 공부는 우리를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그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 설정한 내면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생각의 벽을 허물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공부의 진정한 기쁨이 있다.
- 진짜 공부가 시작되면 자신의 무지가 보이고, 아집이 보이며, 편협된 생각들이 보인다. 끝없는 자만에 빠졌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비뚤어진 자아의 실체가 정확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억눌리고 뒤틀린 과거의 나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성장하게끔 이끌어주는 수단이 바로 공부다.
- 프랑스의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는 1943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 <존재와 무>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갖는다."
- 하나같이 비합리적인 꿈을 꾼 사람들이었다. 당시에는 미쳤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고 언론과 이웃, 심지어 가족에게까지도 비난의 말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라이트 형제 Wright brothers가 처음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들을 향한 비판 아닌 비난의 여론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게 가능하겠어?", "사람이 하늘을 난다니 이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인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해서는 안 돼!"라며 그들의 실패를 단정 짓기도 했다.
- 1860년, 안토니오 메우치 Antonio Meucci가 몸이 마비된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침실과 자신의 작업실을 연결하는 발명품을 연구할 때에도 세간에서는 비난이 거셌다. "도대체 저 장난감 같은 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저 사람 헛물켜고 있구먼!"이라며 순수한 의도를 무시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1854년에 자신의 연구를 완성시켰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쓰는 '전화기'의 시초가 되었다. 흔히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한 이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Alexander Graham Bell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메우치가 21년이나 더 앞서 전화기를 발명했다. 당시에 그는 돈이 없어서 임시 특허만 등록한 상태였고, 결국 벨에게 전화기 특권을 내주고 말았다. 최근에 와서야 미국 의회는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 벨이 아닌 메우치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 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 Larry Page가 차세대 검색 엔진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여러 대기업에 소개했을 때에도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도대체 그런 게 왜 필요하죠?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는데"라며 그들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는 핵심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 두 젊은이는 결국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 Google'이라는 혁명적 기업을 탄생시켰다.
- '왜 지금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나는 열심히 해도 정말 안 되는 걸까?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은 항상 밝은데 왜 나는 우울할까?'
이런 종류의 질문을 마음속에 품은 채 사는 사람은 자신이 던진 질문만큼의 삶만 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지금 처한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처럼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그가 던진 질문처럼 늘 생동감 있는 삶을 살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 문제는 인간이란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만큼만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 딱 그 질문만큼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고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수양을 쌓은 만큼 질문의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자,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 그래서일까? 질문하는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질문의 차이가 곧 생각의 차이고, 결국 태도와 마음가짐까지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집중해야 할 초점과 앞으로의 목표를 구체화할 수 있다.
- 인간은 언제나 상반된 특성이 서로 버티고 경쟁하는 길항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또 자신을 쉽게 정의할 수 없고 늘 변화하는 미확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서 성장해야 한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카를 융 Carl Jung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치열한 질문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게 된다."
-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향한 치열한 질문은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선사해 준다.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주어진 삶의 모든 과정이 나의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인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와 같은 선택지에서 좋은 답을 내릴 수 있다면 그만큼 성공에 가까워지지만, 단 한 번이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면 영영 돌아올 수없는 깊은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 시중에는 10분, 10개월, 1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선택하라는 자기 계발서가 많이 나와 있다.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위기를 회피할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도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해진 공식만으로는 살 수 없는 복잡한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전망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삶이 가장 가치 있는지 단지 미래지향적인 사고만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좀 더 깊은 마음공부를 통해 고민해야 한다. 세계곳곳의 역사를 간접 경험하고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인성과 감성과 지성을 완성시켜야 한다. 눈앞의 이익이나 물질, 권력 등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자제력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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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류에 편승하는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셈이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월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은 자신의 에세이 <자기신뢰>에서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세상의 많은 사람이 너무나도 쉬운 방법, 편한 방법, 시류에 따라가는 방법을 선택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무작정 누군가를 따라 살아가기보다는 직접 선택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선택했던 작은 행동들이며,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는 "우리의 삶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해왔던 행동의 결과 그 자체이며, 그것은 사실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행동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이런 작은 습관이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 우리가 모든 순간에 올바르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주관과 비전을 분명하게 세워두어야 할 것이다.
- 노숙자와 빈민, 마약 중독자와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철학과 시, 문학과 역사, 미술사와 논리학 등 '살아 있는 인문학'을 가르쳤다. 얼 쇼리스는 다양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클레멘트 코스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운동은 1983년 미국의 빈곤 문제를 주제로 책을 내려던 그가 집필 도중 뉴욕의 한 교도소에 복역하던 비니스 워커라는 여성중범죄자와 마주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 (얼 쇼리스) "사람들이 왜 가난하다고 생각하나요?"
(비니스 워커) "누려야 할 정신적인 삶이 없기 때문이에요."
(얼 쇼리스) "그렇다면 그 정신적 삶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비니스 워커) "극장과 연주회, 박물관, 강연 같은 거죠. 그냥 인문학이에요."
- 언뜻 생각하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은 빵과 돈일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정말로 간절히 원했던 것은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정신이 궁핍했던 그들의 삶에 인문학 공부라는 연료를 채워주자 하나둘 삶이 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기적과 같았다.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 얼 쇼리스는 이 운동의 목표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과 불운이라는 포위망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포위망에 갇히면 생존을 위한 즉각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죠. 하지만 즉각적인 대응 대신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이들의 삶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성찰을 돕고 그들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클레멘트 코스의 목표이자 인문학 공부의 목표입니다."
- 삶 속에서 우리를 진정으로 옭아매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집착, 성공을 향한 야망,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걱정, 인간관계의 불화 등 수없이 부닥치는 난관 속에서 우리는 나약하고 완전하지 못한 존재임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그 틈에서 아등바등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 역시 "하루 종일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정해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말고, 나약함을 뛰어넘은 강한 자신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곧 공부다. 환경 때문에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제임스 앨런의 말을 빌려 이야기해주고 싶다.
"상황이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상황으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만족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내가 삶의 목적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도 주변의 평가가 좋지 못하다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옳지 않은 말이다.
- 심리학에는 '대상조회 object-referral'라는 용어가 있다. 참자아가 아닌 다양한 외부 대상에 영향을 받는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이 대상조회에 빠져 있으면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즉, 초점이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다. 그 때문에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고, 자신의 주장이나 소신을 쉽게 굽히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의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소문에 얽매여 살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대상조회의 반대 개념인 '자기조회 self-referral'는 외부 대상이 아닌 참자아에 초점을 맞추는 마음 상태다. 우리의 삶이 흔들리는 돛단배와 같지 않으려면 세상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는 대상조회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와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자기조회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일을 그만둔 후 갑자기 늙고 쇠약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일도 일종의 공부라고 볼 수 있는데, 퇴직 후 공부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자 기력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일을 관둔 후에라도 새로운 분야에서 배움을 찾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 '이제 내 인생에서 지식을 채우는 일은 모두 끝나버렸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몸은 성장을 멈추고 급격히 노화하기 시작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열정을 쏟을 곳은 여전히 많다.
- 공부는 마음을 맑게 해 주고 건강을 유지시켜 주며, 욕심과 두려움을 없애준다. 과거 서양의 과학자들은 몸과 마음을 분리된 것으로 보았으나, 이제는 몸과 마음이 하나의 밀접한 통합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고 불행하면 몸도 그대로 따라간다. 반대로 몸이 힘들다면 마음을 다지는 것만으로도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
- 결국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집중도 안 되고 공부도 할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은 옛말이다.
- 공부를 하면 우리의 뇌는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므로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고 쾌감을 느끼게 된다.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은 뇌가 잘 퇴화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뇌세포의 양도 늘릴 수 있다. 공부를 하면 뇌 속의 회로는 더욱 복잡하고 세밀하게 재편성된다. 경험과 노력에 따라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도 일으킬 수 있다.
- 이를 인지과학적 용어로 '뇌 가소성 Brain Plasticity'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이러한 뇌 가소성의 발달이 유아기나 청소년기에만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견해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인간의 뇌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뇌과학 연구팀은 교육의 정도가 좋은 사람들, 즉 꾸준히 공부를 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뇌를 관찰해 보았는데, 전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일수록 뇌의 신경 세포가지가 많이 나뉘어져 있었다고 발표했다.
- 노력할수록 실력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가,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한계와 지능지수 때문에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고 믿는가?
- 발달심리학에서는 전자를 '발달 이론 집단', 후자를 '실체 이론 집단'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두 집단은 공부를 하는 중 실수를 경험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발달 이론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실수를 하거나 문제를 풀지 못해도 '나중에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 자체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반면 '실체 이론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이번에 실패했으니까 다음에도 실패할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자신에게 한계라는 잣대를 드리웠다.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도리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진부한 말 같지만, 분명 생각의 차이가 인생을 좌우한다. 노력을 통해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패가 더 나은 공부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다시는 공부에 손을 대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한번 떠올려보자. 긴가민가했던 사실을 상대방에게 설명해 줌으로써 그 사실이 좀 더 머릿속에 분명하게 박힌 경험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크고 작은 일상의 반복을 통해 기억을 점차 '강화'해 나간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새롭게 이해한 내용을 다시 기억 속에 저장하고, 나중에 그 새로운 기억을 다시 상기해 활용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연속된 동작인 셈이다. 즉, 정보의 '활용'은 단순히 '활용'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마저도 정보가 되어 내 머릿속에 다시 인식된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4단계인 '재고정화' 단계다.
- 기억의 메커니즘이 3단계가 아니라 4단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캐나다 맥길 대학의 카림 네이더 Karim Nader 박사다. 그는 인간의 뇌가 동일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공부할 때 이전에 공부한 내용이 그대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복습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재기억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두 번 세 번 복습할 때 이전에 기억한 내용이 그대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복습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억된다는 말이다.
- 세 번째 근거는 신경 생물학 분야의 최고 입문서이자 정서의 핵심 메커니즘을 생생하게 설명한 책 <느끼는 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뉴욕 대학 신경 과학 센터의 석좌 교수 조지프 르두 Joseph LeDoux는 뇌의 '장기 증강' 또는 '장기 강화' 작용 등으로 불리는 'LTP Long-term Potentiation'를 소개하면서 반복 공부법의 폐해를 주장했다. LTP란 뇌에 높은 진동수의 자극을 단기간에 연속적으로 주면 시냅스 강도가 변하는 현상을 뜻한다. 간단히 말해 LTP가 활성화된 뇌는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그리고 당연히 공부는 LTP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비슷한 강도의 자극으로 비슷한 지식을 반복해 주입하면 LTP가 활성화되지 못해 공부의 효율이 떨어지고 만다.
- 사람들은 흔히 뇌를 생각할 때 '논리'나 '이성'과 같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뇌야말로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기관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뇌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 즉 '기분'이다. 최근 뇌과학자들이 새롭게 밝혀낸 사실은 뇌가 발달할수록 기분이 우리의 사고를 더욱 강력하게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공부와 연결하여 설명하면, 기분이 좋을 때 공부도 잘되고 학습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 우리의 뇌는 각자가 수행하는 기능에 따라 인지적 뇌, 정서적 뇌, 사고적 뇌, 동기적 뇌, 사회적 뇌, 신체적 뇌, 관계적 뇌 등으로 나뉜다. 이들은 서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상호작용하는데 특히 '정서적 뇌'가 공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불행한 일을 겪거나 불쾌한 상황에 처하면 인간의 뇌를 지배하는 '정서적 뇌'가 활동을 거부한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울적해진 '정서적 뇌'가 근처에 있는 '인지적 뇌', '사고적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공부를 회피하게끔 만든다. 이는 정서를 담당하는 뇌 부위와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위치적으로 매우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기억을 주관하는 뇌의 부위는 '해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 '편도체'라고 불리는 신경 집합체가 있다. 이 편도체가 인간의 온갖 정서를 관장하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은 뇌의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에 좋은 자극을 주고, 활성화된 편도체는 바로 옆에 있는 해마를 자극해 기억 효과를 촉진시킨다. 이처럼 '정서적 뇌'가 '사고적 뇌'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뇌과학 및 심리학에서는 '하향이동 Downshifting'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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