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조해진] 단순한 진심

일루젼 2024. 6. 3.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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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해진

출판 : 민음사
출간 : 2019.07.05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이제는 외워버릴 정도지만. 

나는 오늘도 늘상 해오던 이야기를 늙은이의 넋두리처럼 풀어놓으려 한다.

 

언제, 왜 샀는지 모를 책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두세 가지 정도의 정형화된 반응을 보인다. 

어떤 책들인지 알려달라고 하거나,

왜 그랬는지를 묻거나,

믿지 않거나. 

 

자신의 경험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마주친 이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해서 받아들일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미처 볼 수 없는 것까지도 그대로 포용하고자 노력하는 이들만이 세계를 확장해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확장 자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악의를 이해하게 되면, 그 이후에는 당연하게 선의로 해석했던 많은 행동들 앞에서 멈칫거리게 된다. 어쩌면 진짜 용기는 그런 '가능성'들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직시해 나가는 힘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진심> 또한 그렇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한국을 방문한 나나 -문주- 는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볼 수 있었던 것들과 알지 못하기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경험해 나간다. 그녀는 자신이 미지의 영역인 엄마 -생모-를 간절히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녀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내면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그 이미지로부터 그녀를 구원했던 '기관사'의 해체로부터 시작된다.

 

문주는 '기둥'이었다가, 다시 '먼지'가 되었다가, 휘경과 문경을 만나 다시 '무늬'가 되었다. 그렇게 몇 차례고 스스로를 바꿔가며 바라본 그녀의 과거는 흐릿한 기억들의 덧칠이나 조각모음보다는 만화경을 더 닮아 있었다. 내용물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바라볼 때마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사실 이번이 문주의 첫 번째 시도는 아니었다. 단체를 통한 모임, 연결고리를 위한 인터뷰... 그러나 30여 년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그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생모를 찾았지만, 자신이 원하던 건 이게 아니었다며 슬퍼하던 두 사람. 그중 한 사람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문주가 'lucky'하다고 말했다.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서도 다시 한국으로 향했던 건, 역시 그녀의 '우주' 때문이었다. 서영의 메일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자신과 이어진 '우주'에게, 자신 이전의 것들을, 더 오래전 과거로부터의 이어짐을 연결해주고 싶어서.

자신에게 전해진 것들을 전해주고 싶어서. 

 

작품의 초반, 그녀의 바람은 의사의 말을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수정된 난자는 대략 280일 동안 수십억 년에 이르는 생명 진화의 역사를 밟아 갑니다. 단세포인 수정란은 끊임없는 분화를 통해 양서류와 파충류를 거쳐 포유류가 되고, 포유류 중에서도 다시 생물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인간으로 진화하는 거죠." 

 

그리고 작품의 후반, 문주는 자신의 과거뿐 아니라 여정 중에 새롭게 만난 이들의 과거까지 받아들인다.

 

"그들 사이에, 두 세계의 무게 중심에, 나는 서 있었다."  

 

한 개인의 역사는 오롯이 개인의 것이면서도 한 사람만의 것은 아니기에. 

흔들리는 수많은 나뭇잎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연희가 복순과 복희와 이어졌던 것처럼. 

 

<단순한 진심>을 다 읽고 덮었던 그 순간에는 '괜찮다' 정도의 감상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읽고 정리하며 며칠이 흐른 지금. 

그 순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많은 단상들이 어지럽게 일어난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하나로 정리된 생각을 남길까 싶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문주가 철도로 내려가 서영들을 응시했던 그 순간처럼.

 

차례로 변화하는 것들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님을. 

 

끝. 

 

  

           

   


   

- 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테두리에 갇힌 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방향성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홀로 그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때 내 형상은 둥글고 단단한 씨앗 같았을까, 아니면 가늘게 이어지는 희끄무레한 연기 같았을까. 어쩌면 작은 반동에도 속절없이 무너지거나 흩어지는 가변의 물질이었는지도 모르고 아예 형상조차 없는 한 줌의 에너지였는지도 모른다.

- 암흑에서 형성되어 암흑을 찢고 태어났으므로 내게는 부모가 없고, 내가 형성될 때의 태몽이랄지 세상으로 나올 때의 울음소리를 기억해 두어 이야기해 준 부모의 부모도 없으며, 기고 앉고 서고 말문이 트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준 친척이나 이웃의 어른도 없다. 부모의 신상 정보가 기록된 호적등본, 나의 출생 일시를 공식화한 출생 신고서, 내가 태어난 병원의 진료 차트 역시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내 입양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급조한 단독 호적과 대리인의 입양 동의서, 국제 예방접종 증명서와 여행 허가서, 양부모의 통역과 편의를 돕는 코디네이터 비용 청구서, 그리고 입양 알선 수수료 -신체에 장애가 있는 경우엔 할인이 적용된다고 알려졌으니 비장애 아동이었던 내게 부여된 수수료는 정가(定價)였을 것이다- 를 처리한 영수증 같은 것은 한국의 입양 기관이나 입양을 관리하는 정부 산하기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 탯줄은 있었을까. 가끔 그런 의문이 들 때면 반사적으로 두 손을 배에 얹고 가만히 배꼽 근처를 더듬어 보곤 한다. 그러나 내 배꼽은 생모의 흔적일 뿐, 그녀의 손끝하나 재현할 수 없다. 무력한 증거, 고유성 없는 기호, 닫힌 통로... 나는 그녀의 생김새와 인상, 체취와 촉감, 말투와 목소리의 느낌, 웃고 울 때의 표정, 잠버릇과 징크스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런 종류의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게 그녀는 또 하나의 암흑이다.

- 지난 6월, 나는 오랜만에 그녀를 생각했다.
그날 나는 파리 시내에 있는 소규모 산부인과 병원 침대에 누워 초음파 기기 화면에 떠오르는 작은 움직임을 눈이 아프도록 뚫어지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면엔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로 짐작되는 덩어리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꿈틀대는 중이었다. 닥터 주베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백발의 의사는 축하의 말과 함께 새로운 생명이 내게 온 지 9주 차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 의사는 말했다.
"아세요? 수정된 난자는 대략 280일 동안 수십억 년에 이르는 생명 진화의 역사를 밟아 갑니다. 단세포인 수정란은 끊임없는 분화를 통해 양서류와 파충류를 거쳐 포유류가 되고, 포유류 중에서도 다시 생물학적으로 가장 복잡한 인간으로 진화하는 거죠. 이제 9주 차니 3주 정도가 더 지나면 몸의 각 기관과 성기까지 완성될 거예요. 한마디로 지금은 진흙이 빚어지는 시간이라는 의미죠. 조심해야 합니다." 

 

- 그녀가 생각난 건 그 순간이었다. 기억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생각했고, 그 생각은 곧바로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 낯선 질감의 열망은, 뜻밖에도 크고 둥글고 섬세했다. 
그때껏 그런 열망 없이도 그녀를 궁금해하고 찾으려 했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 병원을 나온 뒤엔 집으로 가지 않고 병원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걸으며, 두 개의 가능한 선택을 가상의 천칭 양쪽에 올려놓고 정확하게 생각을 확장하려 애썼다. 머리 위로는 나뭇잎을 통과한 햇살이 빛으로 만들어진 그물처럼 방사형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한껏 뒤로 꺾은 채 출렁이는 나뭇잎들을 올려다봤다. 키가 큰 가로수가 연달아 서 있었는데, 생명을 품은 나를 보호해 주기 위해 나뭇잎 하나하나가 긴밀하게 엮여 연초록색의 그늘을 드리우는 듯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하늘의 끝은 우주와 맞닿아 있을 터였다.

 

- 우주...
우-woo-주-joo, 라고 나는 다시 한번 한국어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 순간 이전까지의 혼란은 모두 흩어지고, 단지 '우주'라는 이름만이 내 마음에 남았다. 프랑스인이 발음하기에도 어렵지 않은 데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품는 우주라면 무형의 암흑과는 가장 먼 의미를 갖는 셈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아니, 고민은 이미 끝났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는 연약한 심장으로 피를 돌게 하고 끊임없이 세포 수를 늘리며 기적적인 속도로 진화의 과정을 밟고 있을 내 안의 작은 생명체는 자연스럽게 우주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 나는 생각했다. 바람의 방향, 나뭇잎의 색깔, 금세 헝클어질 구름의 모양까지, 그래서 우주에게도 언어가 생기면 이 순간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 주리라. 이제부터 나는 우주의 모든 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와 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이자 그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게 될 전령이며, 동시에 우주가 자라나는 과정을 증언해야 하는 증인이니까. 나는 그 역할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단 한순간도 우주에게 암흑 따위를 상상하게 하지 않을 터였다. 그날 산책로의 나무 아래서 오직 그것만이 내 삶의 확실성이 되었다. 

- 인터뷰는 8월 둘째 주 화요일, 서울의 광화문에 위치한 커피숍 2층에서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입양되기 전까지의 일들과 입양될 무렵의 상황을 길게 설명했다. 철로, 나를 구한 기관사, 그의 인상과 짐작되는 나이, 내가 문주라 불리며 1년 동안 살았던 그 기관사의 집 분위기, 그리고 그 뒤 입소하게 된 고아원의 이름까지... 마지막으로 나는 34년 전 프랑스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간직해 온 단수 여권을 가방에서 꺼내 사진이 부착된 페이지를 펼쳐 보였다. 입양되기 직전 급하게 만든 여권이었는데, 혹여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나에 대한 단서를 모두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가져간 것이었다. 노트북에 열심히 타이핑을 하던 기자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 말고도 해 주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셨는데 소회도 좀 부탁드리고 싶고요."

- 나는 물끄러미 기자를 건너다봤다. 기자가 마지막 판돈을 거는 마음으로 그 인터뷰에 응한 내 심정을 짐작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제어하기 힘든 서운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적의에 가까운 서운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는 또 다른 일정이 있다며 먼저 커피숍을 떠났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나는 그 커피숍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유리창 밖 광화문 광장에 늘어선 천막들도 하나둘 어둠 속에 묻혀 갔다. 프랑스에서 뉴스로 접한 적 있기에 나는 그 천막들이 누구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저곳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외신 특보로 그 뉴스를 보던 날 저녁엔 비가 내렸고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샤워를 해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 저녁을 생각하니 더 외로워졌다.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았지만 아무도 찾아 주지 않아 정처 없이 표류하는 사람이 어느새 내 외로움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을 무대처럼만들어 상상으로 빚어진 배우에게 내게 닥친 외로움을 전가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전가된 외로움은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었기에 깊이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는 좋았다. 

- 예상했던 대로 입양되기 전까지의 내 정보보다는 현재의 모습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세 페이지짜리 기사였다. 그 무렵에 나는 프랑스의 한 문화 재단에서 수여하는 희곡상을 받았는데 그 이력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내가 실어 달라고 부탁한 여권 사진은 지면에 없었다. 광화문 커피숍에서 찍힌 현재의 내 얼굴을 보고 내가 철로에 버려진 아이였다든지 한때 문주였다는 걸 알아차리긴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걸었던 마지막 판돈은 내게 문주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과 생모를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껏 나는 그들의 전화를 받아 보지 못했다.

- 한참 동안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다가 서영의 이메일을 체크하여 삭제 버튼을 눌렀다. 나는 서영을 모르고, 문주를 생각했다는 그녀의 시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어느 날 우연히 시사 잡지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를 읽은 뒤부터 상상을 부풀리며 한 편의 영화를 구상하기까지의 시간, 그 시간의 형질과 밀도는 내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 그대로 노트북을 닫으려는데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과민할 필요 없어.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 질문에 대한 서영의 대답을 확인한 뒤에라도 이메일은 영구적으로 삭제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여 방금 전삭제했던 이메일을 복구한 뒤 거기에 적힌 문장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내가 서영의 이메일을 끝내 복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서영이 기획한 영화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나는 한국에서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을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고 그 삶은 가장 중요한 페이지가 없는 책처럼 공허했을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내가 어떤 현재를 살든,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 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 정체성, 존재감, 집, 예의... 서영이 선택한 단어들은 일단 내 관심을 끌었다. 아니, 관심을 끌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그 단어들은 내가 삶에서 그 무엇보다 간절하게 희구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어느새 소파에 기댔던 등허리를 바로 하고는 서영의 이메일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 기관사의 어머니는 평소엔 나와 눈만 마주쳐도 혀를 끌끌 차곤 했지만, 앞이 트인 마루에 나란히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그 음식을 나눠 먹을 때만큼은 친할머니처럼 다정하기만 했다. 반죽 안에 달콤한 팥을 갈아 넣고 기름에 부쳐 낸 뒤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린 그 음식의 이름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조차 잊었고 한국을 떠나온 뒤로 다시는 접해 보지 못했는데도 며칠 전부터 그 맛이 혀끝을 맴돌곤 했다. 프랑스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그 음식을 먹게 된다면 시시 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매스꺼움이 단박에 해결될 것만 같았다.

 

-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단지 특정 음식을 먹기 위해 임신 초기에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이란 걸, 의사의 말대로 모든 것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나는 그쯤에서 서영의 이메일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형식적인 거절의 문장을 써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언젠가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책자에서 읽은 내용 -한국에서는 많은 임산부들이 일정 기간 친정에 가서 영양을 보충하며 출산을 준비한다는 내용이었다- 을 되새기며 마음이 흔들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서영의 영화를 통해 기관사나 그의 어머니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 모든 부정적인 여건을 압도하고 있었다.  

- 결과적으로 나는 그 행사를 통해 아무도 찾지 못했지만, 대신 그때 만난 두 명의 입양인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 한 명은 나와 같은 방을 쓰던 덴마크 국적의 수지였다. 언제나처럼 밤 산책을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오자, 수지의 침대는 비어 있는데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났다. 수지가 수도를 틀어 놓은 채 잠시 외출한 거라 여기고 무심코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이미 반쯤 물이 찬 욕조에 외출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수지가 보였다. 수지는 갓 스무 살로 열다섯 명의 입양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고 발랄했으며, 한국에 있는 가족도 쉽게 찾아서 그때까지 거의 매일 생모와 언니들을 만나러 외출을 나가곤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제야 수지가 날 올려다봤다. 물이 찬지 입술이 파랬다. 나는 일단 욕조의 수도를 잠그고는 수지에게 수건과 목욕 가운을 챙겨 주었다. 잠시 뒤 가운을 걸친 채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부축하여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자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그녀가 말했다. 가족을 만나는 게 즐겁지 않다고, 다만 기쁜 척 가장하는 것뿐이라고, 모든 것이 가짜 같다고... 
"함께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하다가도 어느새 내 영혼은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다시 만난 가족'이라는 콘셉트로 연기를 하고 있는 그들과 그들 속에 있는 나를 냉담하게 지켜보는 거예요. 늘 그런 식이죠. 내가 그리던 가족이 아니에요. 실은 그들이 비참할 정도로 가난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그들에게는 집과 자동차가 있었어요. 언니들은 둘 다 대학 교육을 받았고, 심지어 엄마는 늙은 개까지 키우고 있더군요. 뻔뻔해, 낳아 달라고 애원한 적도 없는데 낳아 놓고는 내 동의나 허락도 없이 먼 나라로 보내 버렸죠. 그랬으면서 개를 키우고 있다니... 그들은 모를 거예요,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들을 칼로 찌르고 그 시신을 짓밟고 유기하는 상상을 한다는 걸 말이에요." 
그날 수지는 잠들 때까지 흐느꼈다. 나는 그 곁을 지키고 앉아 가끔씩 들썩이는 그녀의 등을 쓸어 주었다. 수지는 동틀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이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는 나쁜 꿈을 꾸는지 인상을 쓰며 쌔근거리는 수지를, 나는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 또 한 명의 입양인은 미국 국적의 스티브였다. 197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입양된 스티브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았고 한국말은 간단한 인사의 표현 외에는 전혀 할 줄 몰랐다. 키는 작지만 어깨가 다부지고 눈동자가 형형해서 어쩐지 퇴역 복서가 연상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실제 직업은 요리사라고 했다.  

-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그렇게 무턱대고 아이들을 사들인 거였어요. 그야말로 퍼킹 쉿 (fucking shit)이었죠.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도시로 도망쳤어요. 빌딩 청소부터 선착장 하역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엄마 -그는 그 단어만큼은 한국말로 '엄마(umma)'라고 했다- 가 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신분증 번호와 주소 같은 걸 모르니까 찾지는 못했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도 했고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 나이가 됐어요. 거의 포기한 채 살고 있었는데, 작년에 내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아이를 보니 엄마를 찾아야겠다는 의지가다시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되었고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 가까스로 엄마의 행방을 찾긴 했어요. 그런데, 오 세상에, 그녀는 남쪽 도시에 있는 노숙자 시설에 방치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더 끔찍한 건 오랫동안 정신병을 앓아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40년 만에 드디어 엄마를 찾았는데 보러 가지 않았어요. 내가 찾던 사람은 생물학적인 엄마가 아니라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감정적인 차원의 엄마였나 봐요. 아니, 어쩌면 나는 그 이상의 엄마를 만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아이를 버린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엄마 말이에요. 엄마는 곧 죽겠죠. 나 외에는 자식을 더 낳지않았고 부모와 남편도 없으니, 아마도 혼자서. 나는 이제 아무도 용서할 수 없어요. 영원히."
긴 이야기를 끝낸 스티브는 잔에 남은 맥주를 한번에 들이켰고 빈 잔을 들여다보며 나직이 덧붙였다.
"You're lucky."

- "찾아봤는데, 문주에는 문기둥 외에 '먼지'의 의미도 있더라고요. 한국의 동북 지역에서 먼지의 사투리로 쓰였대요."
나는 서영의 휴대폰을 건네받은 뒤 그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긴 터널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고 공항의 소음도 엷어져 갔다. 영화에 필요한 신(scene)이라고 판단했는지 서영이 황급히 카메라를 켜더니 촬영을 하는 게 언뜻 보였다. 카메라의 붉은색 온(on) 표시가 불편하게 의식됐지만 그 감각은 이내 무뎌졌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오직 하나, 먼지라는 글자뿐이었다.  

- 작고 쓸모없는 물질, 청결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것, 모든 생명체가 덧없이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형태.
먼지를 정의하면 할수록 먼지야말로 문주의 진짜 의미 같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 갔다. 한곳에 정주하는 일 없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흩날리며 지금껏 나는 살아왔으니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할 때마다 세상 곳곳을 누비는 먼지를 떠올리던 날들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 기관사는 내게 각인된 여러 감각과 달리 속내는 가혹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과장된 배신감이 이내 뒤따랐다. 철로 같은 곳에 버려진 아이라면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 그는 여겼을 수도 있으므로. 그렇다면 문주는 선의가 아니라 무시와 조소로 빚어진 이름이었던가. 맞은편 차창을 건너다봤다. 열차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인천과 서울에 걸쳐 있는 선명한 여름의 일부였는데도, 내 눈에는 유해한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멸망하기 직전의 도시가 보이는 듯했다. 

- 공항에서 서영은 노파의 식당을 찾던 아동복지회 직원에게 길을 안내해 주면서 노파에게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노파와 그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내 인터뷰 기사를 읽었을 무렵 노파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을 때 노파는 돌연 차가워진 얼굴로 남의 뒤를 캐지 말라며 불쾌히 반응했고, 그날 이후 서영도 다시는 노파의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 지금 식당 안 노파는 입을 반쯤 벌린 채였고, 티셔츠 위로 덧입은 꽃무늬 앞치마는 후줄근해 보였다. 파리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데도 노파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 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희는 노파의 이름일까. 아마. 외롭고 뚱뚱한 노파가 거주하는 간판에 기록된 이름. 나는 운동화 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 그건, 육아와 관련된 지루한 노동을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감당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순하고 앳된 외모의 여자를 상상하곤 했다.
고립되고 밀폐된 방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아기에게 젖을물리거나 이유식을 먹이고 따뜻한 물로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고 트림을 하도록 등을 두드려 주고 잠들 때까지 배를 만져 주는 일을 반복했다는 건 선한 인내가 전제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조차 없을 것 같은 여자, 아기를 안은 채 습관처럼 기도를 하는 무구한 인상의 여자가 상상하기 편했다. 
그러나 죄를 모른다는 건, 그 순진함 때문에 언제라도 더큰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나를 낳아 키웠지만, 동시에 철로에 버린 사람이었다. 자신의 딸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무심한 악이 철로라는 공간에는 함의되어 있는 것이다. 무지해서 더 무서운 여자, 밤이 되면 우는 아기를 방에 가두고 거리로 나가는 여자, 내가 태어나기 이전과 그 이후에도 부주의하게 임신을 반복하고 여러 번에 걸쳐 낙태를 하고 낙태가 실패하면 태어난 아기를 마음 내키는 곳에 유기했을 여자, 그러니까 누구라도 돈을 지불하면 살 수 있는 여자, 타인에게서 인간다운 존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여자...

- 그는, 혹은 그녀는 어디로 갔는가. 대체 어디에서(시나리오에는 없는 미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앙리는 스크린의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을 또 다른 이야기에 마음이 뺏겨 있었다. 스크린과 평행을 이루며 존재하지만 증명되지는 않는 상상의 영역, 카메라의 욕망이 은닉된 공간이자 영원히 미완으로 남는 곳, 마치 선택되지 못한 우리의 가능한 또 다른 생애처럼... 극장을 나왔을 때, 앙리는 이제 영화를 모르던 시절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 순탄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는 절대적으로 불운했다. 그의 어머니는 터키 태생의 이민자였고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집을 나간 프랑스인 아버지는 양육비를 보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앙리는 사춘기 무렵부터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대학에 진학하여 영화를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은 가슴속에 묻어 두어야 했다. 대신 식당과 세탁소와 공공기관의 화장실을 돌며 일하는 틈틈이 영화 이론서를 읽었고, 주말엔 혼자 극장에 가서 두세 편씩 영화를 관람했다.

- 앙리가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자 나나, 그것이 인생이야, 앙리는 뒤이어 말했다. 암세포는 아직 발견조차 되지 않았던 40대 중반의 젊은 앙리는 이내 아주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날 나는 끝내 그를 따라 웃지 못했다.
앙리는 몰랐겠지만, 그날 이후 내게도 스크린의 바깥을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바라보는 스크린엔 영화가 아니라 내 삶이 투사된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앙리의 영화 유전자를 물려받은 셈이다. 

- 스크린의 바깥, 그러니까 내 삶의 바깥엔 문주가 있었다. 프랑스로 떠난 나와 달리 한국에 남은 문주가 한국에서 살며 나와 같은 속도를 나이를 먹어 왔을 거라고 가정하면 평행하는 두 개의 삶이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특별한 날, 기분이 좋은 날, 기분 좋은 상태를 의심하다가 결국 비참한 기억에까지 가닿는 날, 아무런 근거나 맥락도 없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리란 예감이 드는 날, 나는 비상약을 찾듯 스크린의 바깥에 있는 문주를 소환하곤 했다. 문주를 상상하는 게 나는 좋았다. 아니, 상상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상상했다. 

- 문주의 성장 과정과 직업의 종류, 사랑을 처음 시작한 시점과 연애의 횟수, 결혼과 출산의 유무는 상상할 때마다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문주에 대해 많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면이 아니라 바닥을 보며 걷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집은 녹슨 반지나 부러진 안경처럼 쓸모없는 사물들로 늘 어질러져 있으리란 것, 활자중독이 있어서 책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으며 책이 없을 땐 전단지나 식료품 포장지 뒷면의 레시피라도 읽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도. 문주와 나의 공통점이라면 그 외에도 끊임없이 나열할 수 있었다. 문주 역시 공복에 찬물을 마시면 하루 종일 배앓이를 할 것이고 참치나 청어,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을 먹은 날엔 턱과 목에 두드러기가 날 터였다. 끝으로 갈수록 고음이 되는 웃음소리, 둥글고 작아지는 절망의 자세,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 생겨도 미리 관계의 끝을 상정하는 작은 마음도 모두 문주의 일부일 터였다. 

- "괜찮으니 지금 찍어요. 어서."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소율이었다. 소율이 긴 막대 모양의 마이크를 내 쪽으로 기울이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전광판과 나를 번갈아 보던 서영이 이내 무언가를 감지한 듯 카메라를 들고 철로로 내려와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이고 뭐고 어서 올라오라고 다그치던 은은 지체할수록 위험하다는 서영의 말에 그제야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조명판을 들어 올렸다. 그들도 모를 수 없을 터였다. 먼지처럼 살아온 떠돌이에게는 플랫폼보다는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철로가 더 어울린다는 걸. 게다가 그 떠돌이에게 철로는 정체성을 대변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철로를 지나가는 여름 바람에서 떫은 풀 냄새가 났다.

- 첫 촬영은 무사히 끝났지만 플랫폼을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역무원의 제재를 받기 전에 촬영이 끝나서 다행이라고 서영이 말한 순간, 현장의 위험 요소를 통제하지 않는 것은 감독이 범하는 가장 큰 실책이며 때로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고 은이 버럭 화를 냈기 때문이다. 서영은 화를 내는 은에게 더 화를 냈고, 소율은 피로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내가 버려지고 발견된 곳은 플랫폼이 아니라 철로였으므로 그 순간 철로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지만 상의 없는 돌발적인 행동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흩어져 앞서 가는 서영과 은을 불러 세워 옳지 않았어요, 사과한 뒤 내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자 그들은 똑같은 표정으로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의 의미는 당혹스러움과 미안함, 그 중간에 있는 감정인 듯했다.

- 다정했던 분위기가 완전히 복구된 건 아니지만 점심은 함께 먹어야 했다. 촬영 날에는 배우와 스태프에게 밥을 사는 것이 감독인 서영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청량리역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우동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자마자 소율은 극장에서 티케팅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급하게 버스를 타러 갔다. 은과 나는 소율이 빌려온 마이크와 녹음기를 하나씩 손에 들고 서영을 따라 지하철에 올랐다. 카메라를 제외한 촬영 장비는 충무로에 있는 영화인 조합에서 빌리는데, 대여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용도 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반납하는 게 옳다고 은이 말했다.

- "맞아, 예산을 낭비하는 건 옳지 않지."
은 곁에 서 있던 서영이 바로 대꾸했다. 그제야 나는 그들이 이미 화해했으며, 그들에게 '옳다'는 말이 나를 놀리는 하나의 장난스러운 코드가 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자신이 빌린 조명판뿐 아니라 소율의 마이크까지 대신 반납하기로 한 은이 4호선 환승역에서 내리기 전, 반듯하게 접힌 냅킨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식당 상호가 찍힌 냅킨엔 한자 '銀'이 적혀 있었다. 한자의 뜻은 액세서리나 동전의 재료가 되는 백색의 광물, 그러니까 실버(silver)라고 그는 설명했다. 청량리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내가 그에게 은의 의미를 물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덜컹거리는 지하철 벽면에 등을 기댄 채 은에게서 받은 냅킨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 사전에 의하면, 합정엔 조개가 유독 많이 서식하던 큰 우물이 있었는데 조개를 의미하는 '합(蛤)'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비교적 쉬운 한자인 합(合)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합정(合井)이 된 거라고 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생활용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는 칼을 갈고 씻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판 우물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이 끝나갈 무렵엔 이교도를 믿는 것이 사형으로 다스려야 하는 중죄였던 모양이다. 커피숍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서영에게 어젯밤에 인터넷에서 찾은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었고, 서영은 합정에 순교자를 기리는 성당과 기념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의 유래는 자신도 처음 들어 본다고 대꾸했다. 하긴, 나도 파리에서는 행정 구역의 이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혹시 그 큰 우물터가 합정에 남아 있다면 가 보고 싶다고 내가 말하자 서영은 그런 것이 남아 있을 리 없다고 대꾸했다. 서울처럼 땅값이 비싼 도시라면 벌써 흙으로 메운 뒤 그 위에 아파트나 빌딩을 지어 올렸을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 마침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영은 보지 못했겠지만 그때 나는 잠깐 웃었다. 아니, 웃었을 것이다. 커피숍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서 여름 햇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작은 질그릇 안에 퍼지는 녹색의 잉크처럼 당분간 내 몸속으로 번져 들어오는 여름은 그 농도가 더더욱 짙어질 터였다. 그건, 우주의 뼈와 피, 장기와 피부가 열매처럼 익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뒷자리에 앉자마자 나른한 졸음이 밀려왔다.

- 푸른색에 가깝게 창백해질 땐 수치심을 감추고 있다는 걸 알아 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그의 손은 아무것도 쥐지 않았고, 붉거나 창백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던 손, 그건 더없이 확실한 이별의 증표였다. 그러나 헤어진 뒤에도 그와 나는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중 어떤 날엔 기대나 전망 없이 함께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날 이용한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외로움에는 솔직했으나 그것을 볼모로 서로에게 희망을 걸지 않았고, 나는 그런 관계가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 한국으로 오기 며칠 전, 그러니까 내가 우주의 존재를 알게 된 뒤에도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우리가 공동으로 아는 노배우의 은퇴 공연에서였다. 공연이 끝난 뒤 로비로 나가자 나를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데니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멀찍이 서서 그를 바라보다가 나는 극장 후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주가 비밀의 아이가 되는 건 바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먼저 그 비밀을 밝힐 마음은 없었다. 가족 없이 독신으로 살겠다는 그를 선택한 건 나였고, 사랑은 이미 지나갔다. 내 생각에 데니스와 우주와 나의 관계는 공평했다.  


- 소율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애써 내 시선을 피했지만 나는 그녀가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는 걸 분명 보았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소율과 비밀을 공유하게 된 셈이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서영이 또다시 질문을 해 온다면 귀찮은 일들이 생길 것 같아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소율이 배웅을 하겠다며 나를 따라 일어났지만 나는 아이 취급은 싫다고 사양한 뒤 혼자 커피숍에서 나왔다.

- 나는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얀 배꽃이 지붕 위로 떨어지는 역원의 마구간을 상상했다. 빗물이 찰랑찰랑 차오로는 합정의 큰 우물과 아현의 젖어 가는 애기 무덤들도 상상했다. 그런 상상을 이어 가자 서울이 보이는 것 위로 보이지 않는 것이 겹쳐 있는 입체적인 도시처럼 느껴졌다. 보는 각도에 따라 풍경의 선들과 빛의 색깔이 달라지던, 어린 시절 앙리가 선물해 준 워터볼 안의 도시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 리사의 목소리는 귓속말처럼 편하기만 해서 우리 사이의 거리가 무색할 정도였다. 표준시를 기준으로 한 프랑스와 한국 사이의 시차는 순식간에 제로가 되어 버린 듯했고, 리사가 나의 엄마로 살았던 35년의 세월은 얇은 판 하나로 압축되어 그 매 순간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리사가 진심을 전했으니, 이제 내가 리사에게 우주에 대해 말할 차례였다. 일단 우주라는 이름과 그 의미, 그리고 우주가 내게 온 시점과 세상에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짜, 내가 한국에 온 이유까지, 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리사는 프랑스로 돌아오면 몽펠리에로 와서 출산을 하라고, 자신이 곁에 있겠다고 말해주었다.
통화를 마친 뒤에야 리사가 우주의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닷새 전에 내 전화를 받은 날부터 그녀는 내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마음을 기준으로, 하고 싶은 말과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정리했을 것이다. 

- 여전히 기관사는 닻을 내리지 못하는 조각배에서 건너다본 도시의 조명처럼 희미하고 멀게 느껴졌지만, 나는 서영을 올려다보며 좋은 기회라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어떻게든 기관사를 추적하여 영화를 완성하려는 서영은 앙리를 떠올리게 했고, 나는 그런 열정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가만히 올려다보는데, 흙에 묻힌 지하의 관 속에서 시간과 함께 응고되어 가는 영혼의 외로움이 상상됐다. 해가 뜨면 사라질, 한낱 빛의 입자로 축약된 생을 내려다보는 바로 나의 영혼이...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그 시절이 떠올랐을까.

- 끊임없이 죽음만을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대학 시절 심리 상담을 받은 이후였다. 상담 시간은 불과 30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거의 3년 동안 나는 단 하루도 상담사의 말을 잊지 못했다. 상담사의 진단대로 내가 철로에 버려지기 전에 감당하기 힘든 환경에 방치되거나 학대받은 게 사실이라면, 나를 구성하는 그 최초의 세포는 분명 비참한 상황에서 빚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내 모든 정신을 지배했다. 그러니까 돈이 오가거나 폭력적인 상황에서 오로지 생리적인 행위로 생겨난 아이,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초대장 없이 이 세계로 건너온 불청객... 어쩌면 내내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도 몰랐다. 상담은 그저 일종의 기폭제처럼 애써 모른 척했던 가능성을 확신으로 이끌었던 것뿐인지도.

- 배우가 된 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연기를 하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으로 다른 생을 살 수 있다는 게 나는 마음에 들었다. 아니, 무대야말로 내게 주어진 생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 "불쌍한 얼굴로 기다리는 척 연기했던 거잖아요. 안 그래요?"
노파는 대답하는 대신 빤히 날 건너다봤다. 침묵이 깃든 허공에서 노파와 나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혔다. 잠시 뒤, 노파는 새 소주잔을 가져오더니 내 앞으로 한 잔을 따라 주었다. 
"복희, 그러니까 이 식당 할매 복희가 애를 낳아 입양을 보냈다는 말을 하는 거야, 지금?"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 확실하냐고 내가 묻자 노파는 대단히 흥미로운 말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갑자기 내 쪽으로 상체를 쓰윽 기울이더니 "확실?"하고 되물었다.
"확실이라니, 무슨 법관님처럼 묻네. 그래, 그런 이야기는 들었지. 복희가 스물두 살인가, 스물세 살 때 시집을 가서 바로 딸을 낳았는데 돌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고, 그 뒤론 무슨 수를 써도 애가 들어서지 않아서 남편이랑 시집 식구들한테 쫓겨났다고. 근데, 이봐..."
"..."
"이게 다 50년 전 일이야. 50년쯤 되면 말이야, 내가 어떤 놈이랑 엮여 뭘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진탕 처마시고 물 좋고 바람 좋은 데서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세상이 날 보고 늙어빠진 할망구라고 하대. 그러니 둘 중 하나지, 하나만 남지. 더 마셔서 꿈에서 깨든지, 아니면 다시는 깨지 않을 잠을 자든지."

- 노파는 뜻밖에도 달변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노파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뒤늦게 노파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노파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 왔을까.

- "... 할머니, 저에 대해 알고 있죠?"
"3층에 살잖아. 3층에 사니까 3층이라고 내가 불렀고 말이야. 맞잖아, 3층, 아니야?"
"또요? 또 뭘 아시는데요?"
"복희가 변했다는 걸 알지. 나는 이전까지 노인네가 식당 차려 놓고 염불하나, 그랬네."


- 복희 식당을 나와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장면을 외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상상으로 빚어진 그 장면 속에서 죽은 딸을 끌어안고 있는 연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한순간에 희망이나 의욕을 잃은 사람은 그런 얼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딸의 피가 식고 근육이 경직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연희는 동생을 잃은 순간의 고통을 떠올렸을 테고 악착같이 생명을 앗아 가는 자신의 삶에 모든 전의를 상실했을 것이다. 그날부터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자기 삶을 향한 환멸 어린 항복... 

- 백복순과 백복희를 만나기 전까지, 연희는 대학 시절의 나와 비슷한 질감의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나 의지와 상관없이 사는 것일 뿐, 근원적인 마음의 끝은 죽음에 닿아 있던 그 암전의 시간 말이다. 그랬으므로, 연희는 아픈 백복순과 백복순이 낳은 백복희를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외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 모녀는 연희에게 두 번이나 지켜 주지 못한 생명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고 다시는, 어떤 생명이든, 차갑게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을 테니까. 생명은 연희에게 위로이자 구원이었을 테니까. 

- 돌아가라는 말은 끝내하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필요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병실에 불이 꺼지고 병실 너머 복도가 조용해지자, 폭이 좁은 보조 침대에 담요를 덮고 누운 서영이 물었다. 나는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연히 뭐든지 물어도 된다고 대답하며 서영 쪽으로 돌아누웠다.

- "왜 철로라고 확신하는지, 그게 궁금했어요."
"확신이요?"
"철로에 버려진 게 아니라 청량리역 근처를 헤매다가 철로까지 간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세 살이나 네 살 아이라면철로가 위험한지도 몰랐을 테니까요. 근데 애초에 버려진 곳이 철로라고 단정해 버리면..."

"..."
"그럼 어린 시절의 자신이 너무 가여워지잖아요."

-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다시 정자세로 몸을 돌려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철로는 내가 발견된 곳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버려지는 과정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고, 나를 발견한 기관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게다가 나는 그날뿐 아니라 그날 이전까지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철로 바깥의 풍경은 말해질 수 없는 영역 속에 있는 것이다.

 

- 오랫동안 나는 그저 상상했다. 내가 생모와 함께 철로를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생모의 손을 놓치는 장면을, 나를 철로에 버려둔 채 멀리 달아나는 생모의 흐릿한 실루엣과 눈물로 범벅된 어린 내 얼굴을, 기차의 급정거 소리와 나를 번쩍 들어서 안은 기관사의 안도의 숨소리를, 마치 객석에 앉아 무대나 스크린을 올려다보듯 거리를 둔 채... 

- 서영의 말대로 철로에 버려졌다는 단정은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 연민은 생이라는 표면에 군데군데 나 있는 깊고 어두운 굴 같은 것이어서 발을 헛디더 그곳에 빠질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영원히, 그 굴 안에서만 머물지 못한다. 고립이 필연적인 자기 연민에 침잠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나 그 마음의 상태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 어쩌면 철로는 생모를 미워하기 위해 내가 구축한 관념의 공간인지도 몰랐다. 그건, 단순한 미움이 아니라 이해와 용서를 봉쇄하는 근원적인 미움이었을 것이다. 철로라는 매정한 공간이라면 그녀의 순진한 악도 그곳에 남게 되니 그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은 내가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녀를 미워하는 힘으로 살아왔으며, 그녀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고 나를 버린 선택을 용서할까 봐 두려워했던 건지도 모른다. 서울의 산부인과 병실이라는 내 삶의 뜻밖의 공간에서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생모의 한 조각이라도 복원할 수 있는 단서를 찾고 싶어 했으면서도 타협 없이 그녀를 미워하면서 생의 일부를 다 살아 버렸다는 것을... 

- 그제야 플랫폼 아래 철로에서 나와 평행을 이루며 걷는 문주를 느낄 수 있었다.
뒷짐을 진 채 허밍을 하며 문주는 음표처럼 걸었다. 나를 닮은 여자, 아니 나와 똑같은 한 사람. 그녀가 지금 이곳에 와 있다고 느낀 순간부터 철로에 깔린 자갈을 밟는 가상의 발소리만이 내 감각의 전부가 되었고, 그 규칙적인 발소리는 이렇게 눈을 감고 걸어도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할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스크린의 바깥에 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내 삶의 바깥, 문주의 영역인 것이다. 

- 문주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언제까지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플랫폼이 끝나는 지점에서 내 걸음도 멈췄다. 플랫폼 끝에서 눈을 뜨고 바라본 철로의 저편은 굴 속처럼 어두웠고, 어둠 속 철로는 대전이나 부산 같은 도시가 아니라 무형의 차가운 공허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문주는 멈추지 않고 그 어둠을 향해, 이번엔 전투적일 정도로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도 늘 그랬듯 나는 그녀를 돌려세우지 않았다.

- 조금씩 멀어져 가던 문주의 뒷모습이 내 시야가 닿는 가장 먼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을 때, 나는 그녀가 철로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다시는 이 공간에 있는 모습으로 상상되지 않으리란 걸 예감했다. 그토록 긴 세월 나의 정체성인 동시에 고통이 은닉된 장소이기도 했던 철로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대변할 수 없을 것이다. 철로가 불확실해지자, 순진하게 악하다는 생모에 대한 단정도 무의미해졌다. 암흑 속의 여자, 까만 봉지에 봉합된 한 생애,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 무덤조차 알려지지 않을 사람. 나는 이제 그녀에 대해 그 무엇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 마침 빗방울 하나가 콧등에 떨어졌다. 입체적인 공간으로 다시 입장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인 듯, 빗방울의 차가운 감촉이 살갗에 닿은 뒤에야 여러 소음이 들렸고 비 냄새도 맡아졌다. 빗방울이 늘어 갔다. 그건, 물이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담은 자연의 시계였다. 뒤를 돌아봤다. 평평한 사각형 모양의 세계는 그곳에 없었다.

- "일곱 이후론 안 셌어. 그치만..." 

"..."
"그치만 난 알지.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알아. 전부..."

"..."
"열하나야. 열하나를 지웠어."

-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병째로 들이켠 뒤 소매로 거칠게 입술을 박박 닦으면서도 노파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노파의 말이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깨진 유리문을 등지고 선 채 노파를 건너다봤다. 노파와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헐겁게 얽혔다가 풀렸다.

 

- 노파는 곧 연희나 백복희가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노파는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으니까. 내가 연희의 생애를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하는 것에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감추지 못했으니까. 노파도 연희만큼 늙었다. 노파의 좋거나 좋지 않은 무언가를, 아니, 그저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그 사실만이라도 다른 사람이 기억해 주길 욕망할 만큼은 충분히. 이제 복희 식당은 무대가 될 것이고 식당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은 배우를 비추는 조명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텅 빈 객석을 지키는 관객인 것이다.

 

- "거기 보광사인가 하는 절에 그이가 백복순이 위패를 하나 놨어. 위패라고, 죽은 사람 이름이랑 죽은 날짜 적어 놓은 나무야. 그 나무가 죽은 사람 영혼이라 여기고 제사도 지내 주고 기도도 해 주는 거라고."
알 것 같았다, 그 모든 상황을. 내가 연희의 방에서 통화한 여자는 파주의 절에 기거하는 관리자일 것이다. 연희는 죽어서도 보호받지 못한 백복순을 위해 나무 조각 하나에 그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작은 거처를 마련해 준 것이다. 연희는 주기적으로 그 위패를 보러 갔을 것이고 그때마다 백복순의 평온과 자유를 빌었을 것이다. 

- 나는 주방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싱크대 두 번째 서랍에서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새 행주 하나를 찾아냈다. 행주를 물에 적신 뒤 다시 노파에게 다가가 드러난 팔과 종아리에 맺힌 핏물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닦으며, 나는 노파를 향한 내 강렬한 적의를 인정했다. 그 적의는 노파가 그토록 많은 생명을 저버렸다는 사실에서 기인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 열한 명의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 외면받고 버려지는 과정보다는 나았을지 모른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나 역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노파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적의를 품으면서도 그 선택을 헤아린다는 것이 내 적의의 실체였다. 작은 적의와 큰 적의, 두 겹의 적의...

- "이봐, 이 말을 믿을까?"
내 복잡한 심경을 알 리 없는 노파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노래하고 연애하면서 돈 벌려고 내 발로 이태원으로 왔지. 백복순이하고는 달랐어, 완전히 달랐다고. 이래 봬도 나한텐 특권이 있었어, 알아? 나는 내가 자고 싶어 하는 남자하고만 잤네. 그게 그 당시 이태원 바닥에서 얼마나 대단한 거였는지 3층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속으로는 짐승 취급하고 창녀니 갈보니 비웃던 그 치들이! 다아! 내 발아래에에!" 
"다 내 발아래에 있었다, 다아. 그 시절에 이 대한민국 땅에서 나만큼 자유롭게 산 여자가 있을 것 같아? 나는! 세상 전부를 내 발아래 놓고 실컷 비웃으며 살았네, 근데에에!" 
"..."
"근데..."
"..."
"근데, 이젠 이 몸뚱이 하나가 전부라고 하네. 온갖 오물 썩는 냄새가 나고 아무도 만져 주지 않는 늙은 몸뚱이, 참 신기하다, 나는... 이렇게 순식간에 늙어 버렸다는 게, 여기서 더 외로워질 수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 더 살날이 남았다는 게, 내일도 눈 뜨고 일어나야 한다는 게..." 

- 노파가 검은 입안을 드러내며 웃었다.
웃었고, 동시에 흐느꼈다. 
나는 그저 노파의 팔과 종아리를 마저 닦아 주었을 뿐이다. 여전히 노파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였고, 앞으로도 모를 이름이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노파를 떠올릴 때면 본 적도 없는 젊은 시절의 노파가 가장 먼저 눈앞에 그려지리란 건 알 수 있었다. 가령...
가령 이런 밤의 노파일 것이다.

- 노파, 아니 여자는 팝송이 흐르고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들썩이는 클럽에서 휘청거리며 걸어 나와 벽에 기대선다. 아직 술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때, 지금처럼 얼굴이 까맣지도 않고 치아가 상하지도 않았으며 몸에서는 화장품 냄새만 나던 시절의 여자는 사랑받는 법을 아는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태만해 보인다. 클럽 간판의 깜빡거리는 네온사인이 짙은 화장을 한 여자의 얼굴에 어른거리고, 여자는 벽 틈에서 피어난 노란색 꽃 한 송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숙여 꽃의 목을 꺾는다. 클럽 안에서는 여자와 자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한 목소리로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여자가 꺾은 꽃을 바닥에 버리고는 충만한 슬픔으로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여자는 그들 중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소유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고 믿는다.

- 먼 미래의 어느 날, 아마도 여느 때보다 깊은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 내 외로움은 노파의 오래된 하루를 빌려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 것인지 노파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저쪽으로 전가되었다가 다시 이쪽으로 전가되는 실타래 같은 외로움이. 인생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쏜살같이 지나가고 그 밑바닥에 정제되어 남는 건 외롭고 쓰라린 것... 
미안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생이야, 나의 아가.

- 나는 백복희에게, 연희가 입양 절차를 마치고 몇 년 뒤 이태원을 떠났다가 20년 만에 돌아와 식당을 개업했는데 그 식당의 이름도 복희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백복희는 싱긋 웃으며 식당의 주소를 물었고 휴대폰의 구글 지도로 위치를 찾아보기도 했다. 노파가 들려준 이야기는 전할 수 없었다. 연희와 백복순이 만난 과정이나 노파가 한 계절 동안 백복희를 보살펴 주었다는 걸 이야기하려면 백복순의 직업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건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백복희는 백복순의 직업을 알고 있었다. 이태원이라는 거주지와 백복희의 피부색은 백복순에 대한 너무도 확연한 단서였으므로 누구라도 백복희를 통해 백복순이 했던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의 엄마가 어떻게 불렸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고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을 때 백복희의 아픔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부류의 아픔이...

- "백복순 님의 무덤이 남아 있지 않은 건 유감이에요."
병원에서 나와 중국 식당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나는 백복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내 마음에 걸려 있던 말이었다.
"어차피 무덤 안의 유골도 무기질일 뿐이잖아요. 엄마의 영혼이 컴컴하고 답답한 관이 아니라 빛과 바람에 노출된 위패라는 나뭇조각에 머물고 있다니,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백복희는 그렇게 대답하며 옅게 웃었고, 나는 얼결에 그녀를 따라 웃으면서도 위패조차 남을 리 없는 연희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연희의 위패를 절에 놓아둔 뒤 기일마다 찾아가 그녀를 기억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노파에게는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일시적으로 이 나라에 머무는 백복희와 나는 연희의 사후를 책임질 여건이 되지 않았으며 사실 그래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프랑스로 돌아간 내가 연희를 떠올리게 될 횟수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회의적이었다. 누구든 이 세계와 작별할 때는 벌거숭이 아이처럼 외로운 존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바닥을 내딛는 두 발이 돌연 허청거렸다.

- 중국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난 뒤, 나는 백복희를 시청역 근처에 있는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시청역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백복희를 유심히 쳐다보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백복희가 동의하거나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그 태생의 기원에 배타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무심한 폭력의 시선이었다. 백복희는 그 시선을 견디기 힘들다는 듯 자주 피로한 얼굴로 벽 쪽에 붙어 서곤 했다.

-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한 뒤 캐리어 가방을 끌며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동안 백복희는 여전히 피로한 얼굴로 여러 번 뒤를 돌아봤다. 백복희로 태어났지만 스테파니로 살아온, 나와 넘버 원 닮은 여자. 우리의 닮은 구석은 눈매나 입매만은 아닐 터였다. 삶의 어느 장면에서 우리는 같은 자세로,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하며 투명한 벽 앞에 서 있곤 했을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에게 업힐 때마다 가슴에 닿던 단단한 뼈의 감촉, 그리고 문주를 부르던 젊은 목소리... 그 감각의 뒤편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병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 한 인간의 생애가 아무도 밟아 보지 않은 눈 쌓인 길처럼 펼쳐져 있었다. 내게 남은 감각과 내가 본 적 없는 그 모든 모습의 총합이 액자 속 남자였다.
나는 그 액자를 가슴에 안았고,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내 주변은 잠시 암전 되었다.

- 그날 문경은 박수자의 집에 가서 묵을 계획이었으므로, 나는 서영이 몰고 온 은의 아버지 승용차를 타고 상경하기로 했다. 헤어지기 전, 문경이 내게 말했다.
"아빠는 무늬의 의미가 있는 '문'이라는 글자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에게도 그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지어준 거겠죠. '문'이 무늬라면 남는 건 '주'인데, 제 생각에 아빠는 우주의 '주'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어요."
"우주요?"
웃으며,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주의 무늬'가 내게는 놀라운 우연의 결과란 걸 알 리 없는 문경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햇살의 무늬와 우주의 무늬, 만약 우리가 자매로 자랐다면 누구나 자매의 이름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 그러고 보니 문주와 우주 역시 글자 하나가 겹쳐지는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게다가 나뭇잎을 통과한 햇살 아래에서 우주라는 이름을 떠올렸으니 우주와 문경 역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해도 무방한 것이다. 문경의 추리가 틀렸더라도 믿고 싶었고, 실제로 납골당을 나올 때쯤 나는 이미 그것을 믿게 되었다.

- 헤어질 시간이었다.

-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데, 박수자가 커피숍에서처럼 앙상한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나와 아이 모두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게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으라는 전언처럼 들렸다. 알겠다거나 고맙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 문경의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에 오르기 전, 박수자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박수자가 바라보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만이 알아볼 수 있는 내 몸 안의 어떤 빛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빛은 그녀의 아들이 점등한 것이고 지켜 낸 것이니, 그녀에게는 살아 있는 나를 지켜볼 권리가 있었다. 잠시뒤 문경의 승용차가 떠나가는 것을 보며 연희가 내게서 백복희를 찾았듯 나 역시 연희에게서 박수자, 그리고 때로는 리사를 떠올렸다는 걸 천천히 상기했다. 내 안의 빛이 연희에게로 옮겨갔다면, 그건 박수자와 리사의 힘이기도 했다.

- [그러나 문주, 지난 3일 동안 파주의 절과 연희의 병실을 오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충만했다는 것을 나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어요. 그 3일이 없는 내 삶을 나는 앞으로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어제는 복희 식당에도 잠시 들렀죠. 복희 식당 3층에 임시로 머문다는 당신은 그때 집에 없어서 인사를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복희 식당이라니, 간판을 발견하자마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 동네에 가는 건 내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짐작할 수 있을까요, 나처럼 생긴 아이가 1980년대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내가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건 늘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학대에 가까운 차별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건 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나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어요. 나를 부르는 별명은 너무도 많았고, 심지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대부분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지독한 별명들이었습니다. 아직 열 살도 안 됐던 아이들이 어디에서 그런 별명을 알아 왔던 걸까요. 학교에 들어간 이후, 몸이나 마음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흘러간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불도 켜지 않은 방 한구석에 앉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연희가 퇴근하기만 기다렸죠.
돌이켜보면 오로지 나를 증오하는 힘으로 버틴 시간이었습니다. 차별로 가득한 세상이나 그런 세상에 나를 내던진 부모가 아니라 그저 태어났을 뿐인 나 자신을 증오했던 시간이었죠. 그 시절에 내게 연희는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친구이자 치료사였고, 이 지구상에 나와 공존하는 단 한 명의 사람이었습니다. 보건소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연희가 그날 내 몸에 새로 생긴 멍이나 찢긴 부위를 소독하고 치료한 뒤 나를 안아 주는 것, 그건 연희와 나 사이의 중요한 일과였죠. 지나갈 거라고, 삶에서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없다고, 그럴 때 연희는 말하곤 했고 나는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연희 역시 지쳐 갔다는 것을요.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척했습니다. 연희의 고통보다 내 것이 더 컸기에, 아니 커 보였기에, 나는 그녀가 나를 위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 [한국에 온 첫날, 병실에 의식도 없이 누워 있던 연희를 본 순간에야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한 장면이 오롯이 기억났습니다. 한겨울, 오줌으로 얼어 버린 바지를 입고 뒤뚱거리며 집으로 걸어가던 나를 저 멀리서 연희가 바라보는 장면이었죠. 학교에서 나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는데, 화장실에서는 교실에서보다 훨씬 더 노골적인 폭언과 폭력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은 결국 바지에 실수를 해 버리고 말았고 그 상태로 종이 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연희와 마주치게 된 거죠. 그날처럼 연희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나를 집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씻기는 손길이 무척 거칠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무섭지 않았어요. 오히려 슬펐고 연희가 가여웠습니다. 그때 연희는 내내 울고 있었으니까요. 
바로 그날이었을 거예요, 연희가 입양을 결심한 것은. 나는 지난 편지에 연희가 입양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썼지만, 사실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해하려 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실에서 그 장면을 떠올리자 그제야 연희가 내게 해준 방식으로 연희를 안아 주고 싶다는 용기가, 아니 열망이 내 안에서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숙여 연희를 안은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죠, 내가 안은 사람은 연희이면서 동시에 그 시절의 나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이런 기회를 준 당신에게 고맙습니다. 이 고마움은 아무리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존경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과거를 반추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내가 아주 행복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당신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곧 회사에 휴가를 내고 수술을 받을 거예요. 수술이 끝나면 길고 긴 항암 치료가 시작되겠죠. 그 과정이 내 삶에 황폐한 그늘을 드리운대도 나는 미래의 내가 행복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고 누구보다 행복할 거예요.
문주, 나는 그날을 희망합니다. 먼 훗날, 내가 먼저 당신에게 전화하여 안부를 묻고 만나자고, 당장 만나서 뭐라도 먹고 마시자고 제안하게 될 그날을요.
그날이 올 때까지, 멀리서 당신과 아이의 건강을 빌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백복희]


- 연희가 죽었다.

- 백복희가 벨기에로 돌아가고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연희의 병실에 들러 소변 팩을 비운 뒤 그녀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는데 손끝으로 떨림이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부류의 떨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연희의 몸뿐 아니라 시간을 관통하는 떨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표류하다가, 난파된 배처럼 속절없이 수몰되어 가는 한 인간의 몸에서 타전된 떨림... 

- 나는 반사적으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한동안 경직된 채 가만히 연희를 내려다봤다. 깊은 잠에 든 것 같은 그 무방비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대신 연희의 주변으로는 이전까지 감지한 적 없는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서늘했다. 서늘하고도 평온한 기운이었다. 연희는 이미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친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가. 어쩌면 백복희가 이 병실에 찾아왔던 그날부터 연희는 내내 이 순간을 준비해 왔는지도 몰랐다.

- 나는 다시 연희 앞에 앉았고, 곧 내게 닥칠 거대한 슬픔을 예감하며 연희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깜짝 놀랄 만큼 차갑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오래전 앙리에게 그랬듯 연희의 손바닥에 새끼 고양이처럼 오래오래 얼굴을 부볐다.
 눈을 감았다. 다 소모해 버린 몸을 버리고 이제 곧 무형의 암흑에 도착하게 될 연희는 씨앗이나 연기처럼, 혹은 한 줌의 물질이거나 에너지가 되어 영원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수십억 년의 진화를 거슬러서, 이 세상에 오기 전 하나의 세포로도 존재하기 이전에 그녀가 그러했듯이. 고생했어요. 나는 말했다.
"너무 고생했어, 사느라..."
"..."

"살아 내느라.......”
"..."

"잘 가요."

- 연희가 죽었다.
내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어떤 막(幕)과 막들을 지나 연희는 죽었고, 그건 추연희라는 하나의 우주가 끝났다는 걸 의미했다.

- 병실 창밖으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부옇게 일어났다가 침전물처럼 가라앉는 먼지가 내 눈에는 확연히 보였다. 어딘가를 바쁘게 걸어가는 의사와 간호사들, 산책을 하거나 서너 명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환자들, 어른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풍경은 살아 있었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발소리가 먼지에 섞여 여기저기 서작은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침대 시트에는 아직 연희의 냄새와 온기가 배어 있는데, 방금 전 그 존재는 부재로 바뀌었고 그것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창밖의 세상은 결코 납득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제 연희를 증명하는 건 의사가 서명한 사망진단서와 행정기관의 직인이 찍힌 사망신고서, 신분과 관련된 각종 서류의 말소 신청서, 상속 등기 서류와 상속인의 보험금 수령 확인증, 그리고 그 보험금과 복희 식당의 보증금으로 완납될 병원비 영수증, 고작 이런 종이 뭉치뿐이었다. 그마저 존재의 시작이 아니라 그 끝에 대한 증명이었다. 

- 시간이 흘러갔다.
정오 즈음, 내게 연희의 호흡 상태를 체크해 달라고 부탁했었던 그 앳된 간호사가 병실에 들렀다. 내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할머니의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나는 아직 연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그녀는 연희의 죽음을 가장 처음으로 애도하러 온 조문객이었다. 간호사는 연희의 여동생과 연락이 되었다고 뒤이어 말했다. 그쪽에서는 장례식을 생략한 채 바로 화장 절차를 밟으려 한다고, 화장 뒤에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되는 대신 산이나 들에 뿌려질 것 같다고 전해 주었다. 연희는 그 영혼이 거주할 작은 은신처 하나 남기지 않고, 그야말로 절연이라는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떠나게 된 것이다. 연희는 너무도 완벽하게 혼자였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실감됐다.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가 몇 번이나 주저하던 간호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이 병실에 들어오려는 환자가 대기 중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간호사의 그 말은, 저 문밖에 새로운 죽음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의미로 번역되어 들렸다. 병실은 스크린의 안이거나 바깥이 아니라 그저 삶과 죽음 사이의 대합실인지도 몰랐다. 나는 곧 침대에서 일어났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간호사 역시 내게 건강한 출산을 바란다는 말을 남긴 뒤 돌아갔다. 

- 병실을 나서기 전, 곧 다른 사람에게 이양될 침대를 물끄러미 건너다봤다.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가는 햇빛이 침대 주변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가 연희의 죽음 앞에서 증인이 되기로 했던 다짐이 새삼 환기됐다. 조금 전 연희의 죽음을 지켜보는 역할은 다 수행했으니 이제 남은 건 그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함께 애도하는 일일 터이다. 이 세상에서 떠나는 연희를 제대로 배웅하는 것, 그것이 내게로 오는 너를 맞이하는 나의 방식이니까... 

- 병원에서 나온 뒤 마트에 들러 소고기와 연어, 스파게티 면, 양파와 버섯과 당근, 그리고 크림소스와 바질을 샀다. 택시를 타고 복희 식당 앞에 도착하자 유리문은 노파가 깨뜨린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깨진 유리를 밟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방에서 소고기와 연어를 손질하고 야채를 씻었다. 


-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백복희에 관한 한 무엇이 최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음식 재료를 다듬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백복희에게 연희의 죽음을 전하지 않기로 한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의심하고 싶었지만, 그 반대의 판단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복희의 말대로 그녀는 살아남을 것이고, 우리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 프랑스나 벨기에의 어느 도시에서 만나 연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백복희에게 연희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숨을 거두었는지 차근차근 설명할 것이고 그 순간의 병실 풍경과 내가 연희에게 마지막으로 해 준 말도 전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면서 백복희는 우리가 마주 앉을 미래의 그 작은 공간만이 과거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을 테고, 나는 그런 백복희를 이해했다. 이해했으므로, 백복희에게 전화하는 것에 이토록 회의적인지도 몰랐다. 재료 손질이 끝날 즈음, 나는 결국 백복희에게 전화하지 않기로 결심을 굳혔다. 진실을 유예하면서 보호받는 시간 또한 삶의 일부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 음식은 천천히 완성되어 갔다. 소고기 스튜와 연어 스테이크,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하나씩 테이블에 올리고 있을 때, 초대한 손님들이 한꺼번에 복희 식당으로 들어왔다. 서영과 소율은 국화꽃과 와인을 사 왔고, 은은 길쭉한 타원형 모양의 조명을 가져왔다. 내가 그 등을 궁금해하자 은은 조등(弔燈)이라고 대답한 뒤, 조등은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표식으로 상중에는 내내 켜져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은이 식당 입구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 조등을 다는 동안, 나는 신비롭게 생긴 그 등을 하염없이 올려다봤다. 아동복지회 직원은 조등이 내걸린 직후에 청주 한 병을 들고 나타났다. 

- 우리는 곧 식사를 시작했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 앞에도 나는 음식을 놓았고, 손님들은 마치 그 빈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듯 자주 그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음식을 먹었고 와인과 청주를 마셨다. 어둠이 내리자 조등의 노란빛이 식당 안으로 번져 들어와 우리의 고요한 테이블을 조심스럽게 에워쌌다. 그 빛은 죽음의 표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테두리를 보호하는 얇은 막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 작별 인사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은 말이기도 했다. 노파는 한참을 불길 앞에 앉아 있었다. 불의 일렁임이 노파의 뺨에 어른거리다가 조금씩 사위어 갔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연기가 잦아들 때까지, 옷이 타서 없어지고 그 재가 허공에서 흩어질 때까지, 나는 다른 조문객들과 함께 노파 뒤에 서 있었다. 상상되는 장면이 있었다. 암흑으로 돌아간 연희와 암흑 속을 부유하는 우주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고요하게 스쳐 가는 장면이었다. 우주가 시간을 초월한 진화의 과정을 겪으며 이 세계 안으로 흘러오는 그 거리만큼, 반대로 연희는 육신의 성분을 상실해 가며 세계 밖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 추연희(秋戀禧), 그리워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사람. 나는 이제 그 이름을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 이름을 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주를 키우는 일과 함께 내가 이 세계 앞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가 되리라.

- 연희가 죽었다.
그녀는 암흑으로 돌아갔다.

- 남자들은 버릴 것은 버리고 팔아도 될 만한 것은 트럭에 실은 뒤, 식당 입구에 파란색 철제 셔터를 설치했다. 식당 임대인이 새 임차인을 들이기 전까지 식당을 봉쇄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설치된 셔터는 마치 연극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암막 커튼처럼 철컥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남자들은 마지막으로 조등을 떼어 내어 바닥에 내던져 버리고는 트럭을 타고 떠났다.

-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소속됐던 세계이자 육체를 잃은 영혼이 귀환하는 그 무형의 암흑은 생의 한가운데에도 있는지 모른다. 한참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멀리 가지 못했다. 돌아서자, 세상은 무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채색인 세상에서 노란 등만이 유일하게 색을 띠었다.
그 순간, 또다시 태동이 지나갔다.
연희가 살았던 곳으로 우주가 한 뼘 더 다가와 있었다.
그들 사이에, 두 세계의 무게 중심에, 나는 서 있었다.

- 나는 바람을 내 가슴으로 끌어왔다. 품에 들어온 한 줌의 바람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누구의 온기인지,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너구나.
속삭였다.
우주.
우주,라고 나는 또 한 번 속삭였다.

- 가끔은 영화를 봅니다.
한 달 전 파일로 받은 가편집된 영화죠. 청량리역 철로에서 시작되어 이태원과 인천, 아현과 합정과 영월을 지나 인천공항에서 끝이 나는, 정문주였고 박 에스더였으며 나나이기도 한 주인공을 비롯해서 젬마 수녀, 정문경과 박수자, 그리고 백복희가 출연하는... 벌써 수십 번을 봤는데도 볼 때마다 새로운 이유는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변화하고 움직이는 서영과 소율, 은의 표정과 몸짓이 상상되어서겠죠. 그리고 한국에서 보낸 여름과 그 흘러가는 여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졸면서 그 꿈을 꾸지 않았다면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정으로 흘러갔을 거예요. 이런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나는 하염없이 빈 들판을 걸었는데, 풀잎이 종아리를 스칠 때마다 싱그러운 생명력이 전해졌죠. 금세 밤이 되었고 아주 커다란 보름달이 들판의 지평선에까지 닿았습니다. 밤하늘은 이내 황홀하고 광활한 우주로 확장되었고요. 그 풍경의 색과 질감이 뚜렷해서인지 잠에서 깼을 때도 나는 그 들판의 대기 한 조각을 껴안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노트북이 놓인 책상에 앉아 새 문서 파일을 열고는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당신에게는 처음 쓰는 편지입니다. 아니, 편지라기보다는 고백인지도 모르겠어요.
짐작했겠지만, 네, 우주 이야기입니다.


- 작년 6월 파리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나는 사실 우주를 낳을지, 아니면 포기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때 나는 똑같은 확률로 각각의 선택을 가정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어떤 선택이든 이기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우주를 포기하는 것보다 우주를 담보로 외로움과 불안을 감면받고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마음에 대해 말하는 미래의 어느 날들이 오히려 더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우주가 실패를 반복하며 좌절에 익숙해지고, 급기야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텅 빈 사람으로 성장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지요. 세상을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 구조 안에서 더 갖고 덜 누리는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없고 타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구경꾼처럼 방관하는 살아 있는 유령 같은 어른이라면, 나는 그런 우주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었습니다. 우주가 나를 닮는 것, 나의 가장 외롭고 나약한 모습을 닮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대학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헛되게 살다가 고독 속에서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은 채 소멸하는 쪽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무책임하게 생명을 낳고 버린 뒤 잊는 사람을 온 힘을 다해 미워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 그러나 그날 나는, 그 모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낳기로 선택했습니다.
내가 증거니까요.
태어나고 구조되고 보호받고 누군가의 딸이 되고 배우와 극작가로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우주와 가족이 된,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삶의 증거니까요. 태어나기 전에 포기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던 시절과 지금도 가끔씩 그런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재의 나 자신마저 포함하는 내 삶이니까요.

- 엄마, 들리나요?
나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 엄마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한때는 엄마의 전부였겠죠.
그것을 기억해 주세요... 
엄마, 하고 부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은 내가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요.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부탁입니다.
엄마의 평안을 빕니다. 언제까지라도 변하지 않을 저의, 진심입니다.
 


 

 

- ... 읽지 못했다면, 저는 입양이나 입양인에 대해 아무런 관심 없이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는 그녀가 쓴 <백만 명의 살아 있는 유령들 - 구조적 폭력, 사회적 죽음 그리고 한국의 해외입양>(<여성이론>, 2010 여름호)을 수없이 들춰보며 제가 놓친 것과 놓칠 수도 있는 것을 점검하곤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책 출간을 앞두고 한국문학번역원 행사에서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입양인이 아닌 사람이 입양에 대한 소설을 써도 괜찮은가?'라고 제가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why not?'이라고 되물었죠. 이 지면을 통해 제게는 그 웃음이 큰 용기가 되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이 소설은 김동령 감독과 박경태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거미의 땅>과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여행자>에도 영향받았음을 밝힙니다.

입양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문제들을 고민하고 기지촌의 역사를 되짚는 기록물과 기사, 논문이 없었다면 이 작품의 많은 부분은 비어 있었을 것입니다. 일일이 언급하진 못하지만 제가 읽은 그 모든 자료의 저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2주에 한 번씩 만나 언어교환을 하며 친구가 되었던 로사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무심함으로 지금은 소식이 끊겼는데, 어딘가에서 그녀가 이 인사를 읽어 주면 무척 기쁠 것입니다.) 그녀에게서 입양 이후의 삶에 대해 들으며 고민했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이 이야기를 꾸릴 수 있었다는 걸 잘 압니다.

의학적인 부분에서 기꺼이 조언을 해 주신 김윤정 님과 이현석 소설가에게도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 소설은 저의 세 번째 소설집이었던 <빛의 호위>에 실린 단편 <문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주>를 탈고했던 순간이 이 소설의 발화점은 아닙니다.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저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또 어떤 생을 살게 될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마다 다른 그들의 근원과 살아온 과정과 먼 미래를 생각하니 생명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날, 생명이 화두인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온전한 우주가 되기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조금이나마 자격이 있다면, <단순한 진심>은 이 세상 모든 생명에 바치는 저의 헌사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저의 진심을 전합니다.


2019년 여름
조해진

 

 



내 이름은

- 김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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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야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4시간 편의점의 불빛을 보고 나지막이 안도의 숨을 내쉬어 본 적이 있다. 그 빛은 아주 찬란하고 거대하진 않았으나 바로 그 때문에 따뜻했다. 일상에 지친 어깨에 가볍게 손을 둘러 주는 밝음.

'암흑'으로 시작되는 조해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그날 그 밤, 편의점 불빛을 떠올리는 건 무척 자연스러웠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위로가 그토록 약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약소한 것. 그것이 한 사람에겐 구원과도 같은 빛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조해진만큼 그 찬란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소설가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미지근한 물 한 잔이 주는 기분 좋은 따스함을 이 소설의 체온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가볍게 안은 후에 등을 토닥거려 주는 행위를 이 소설의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 조해진은 썼다. '포옹은 누군가를 안으며 동시에 나를 안는 것'이라고. 또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어두운 밤 지친 발걸음을 내딛던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속삭인다. 그때 그 자기 호명의 순간에 그의 내면 한쪽에 주황빛 전구가 켜진다. 이 소설은 그 공간이 진심임을 확인해 준다.

진심이라는 말처럼 매우 흔하나 그 실체를 알 리 없는 말도 없다. 조해진은 진심이라는 관념의 공간을 느리게 거닐면서 그 지명에 담긴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우리 모두의 이름은 언젠가 한 존재가 타인을 위해 진심을 담아 건넨 최초의 말이라는 것을.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간이 타인을 껴안는 첫 번째 방법임을. 

<단순한 진심>을 읽고 당신은 누군가에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제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라고. 이 소설은 당신이 소설을 통해, 문학을 통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넨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서로의 전령이 되는

- 김미정 (문학평론가)



추천의 글

자기 탐색의 서사라고 해도 자기 이야기로 수렴되지 않고 타인의 사연과 삶을 함께 구체적으로 새겨 가는 것이 조해진의 소설이다.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 세계를 단단히 떠받쳐 왔다. <단순한 진심> 역시 이 믿음을 강하게 역설하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타인에 대한 선의나 환대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실제 우리 삶이 그러하듯, 소설 속 사람들은 무심코 연루된다. 선한 의지나 신념 이전에, 가령 측은지심이라고밖에 설명하기 어려운 심정으로 순간의 연루됨을 감수한다. 이것은 마치 내가 아니면 꺼질지 모를 생명을 바로 지나치지 못하는, 계산되지 않은 즉발적인 감정과 행동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기에 법적·제도적 책임 앞에서 그들은 부박하기도 하다. 그들은 자주 주저하고 갈등하고 후회하고,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 부박한 연루됨은 역설적으로 힘이 세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주류성에서 소외·배제된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며, 각자 내밀한 상처와 고통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민감하게 알아보고 과감히 손을 내밀 수 있다. 그들이 지금 내민 손은, 예전에 그들이 잡은 누군가의 손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진심> 앞에 오디세우스 이야기가 대비되어 떠오른다. 인류의 대서사시로 추앙받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자신을 확인하는 서사의 원형이라고 전해진다. 신들의 저주와 방해물을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분투하는 인간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이 분투하는 위대한 인간이란 귀향 과정에서 만난 (괴물로 표상된) 타자들을 격퇴하고 희생시킨 후에 얻어진 타이틀임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 <단순한 진심>의 타자들은 내 삶에 '스며드는' 존재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령 또는 증인이 된다. 주인공의 참혹한 첫 기억을 결정적으로 보정하고 그녀로 하여금 다른 걸음을 딛게 하는 이도 그녀와 연루된 타인들이다. 이것은 혼자 영웅이 되는 세계와는 다르다. 이런 세계에서는 누가 주인공인지 아닌지 같은 질문은 사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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