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요네자와 호노부]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일루젼 2024. 6. 4. 15:15
728x90
반응형


저자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출판 : 엘릭시르
출간 : 2021.10.08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작중 계절에 시기를 맞춰서 읽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재미지만, 소시민 이야기의 끝을 조금 더 빨리 읽을 수 있다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부탁해요, 엘릭시르!

 

최근 읽은 책 목록을 훑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상당히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가벼운' 책과 '무거운' 책이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읽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책이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약 반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위주로 읽어왔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들은 어디로 간 걸까?

 

무기력증은 에너지 레벨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딘가로 새어나가고 있는 누수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에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다시금 야금야금 차오른 물건들 -아마도 주로 책- 이 의심스럽다.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지는 두 가지.

일단 가볍게 즐기면서 변화를 기다리는 것.

또는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

어느 쪽이건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더 미룰 수는 없을 것 같다.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로 돌아오자. 

이번 작품은 '한정' 시리즈들과는 달리 단편집인 데다, 특정한 '사건' 중심이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제목이 '수수께끼'인 것도 아마 그런 점들을 고려한 모양으로 일종의 외전 격. 고교 3학년까지 진행되었던 시간대를 건너뛰어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이후,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이전의 가을로 돌아간다. 아직 고교 1학년인 두 사람의 풋풋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오사나이 스위트 섬머 셀렉션' 투어에 익숙했던 독자들에게, 각자의 메뉴도 셰어하지 못하는 어색한 두 사람은 어쩐지 간질간질하다.

 

음... 사실은 이런 달달함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사나이와 고바토의 첫 만남, 그리고 두 사람의 과거가 무척 궁금하다. 타인의 아픈 속사정을 기웃거리는 자세라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보통은 알려준다 해도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다 애정에서 나온 관심이라는 흔한 변명으로 방어를 시도하겠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법한 내용이지만, 대부분과는 결을 달리하는 결론이 신선했다. 어쩌면 그것도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모난 돌에게도 평안과 행복이 깃드는 날들을 꿈꾸며.

 

즐거웠다.

  


   

 

-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자 낮은 여전히 후덥지근하지만 아침저녁 바람은 자못 싸늘할 정도였다. 가을 풍경이 떠오르는 비늘구름도 간간이 눈에 띄는 9월 중순의 어느 날 방과 후,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채우며 나고야로 향하는 열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 내가 사는 기라 시에서 나고야까지는 쾌속 열차를 타면 이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충분히 행동반경에 포함되는 거리이지만 사실 지금까지 신칸센 탑승이라는 목적 말고는 나고야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후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오사나이에게 끌려왔기 때문이다.

-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모종의 이유로 며칠 상당히 늦은 시각에 귀가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추궁당한 나는 위험할 때는 서로를 핑계로 대자는 오사나이와의 약속을 믿고 문화제 준비 때문에 늦었다고 해명했다. 그것으로 궁지를 모면했으므로 호혜 관계에 따라 다음에는 내가 오사나이를 도울 차례였다. 창문 닦기든 잡초 뽑기든 뭐든지 할 셈이었지만 오사나이는 다른 것을 원했다.
"이번 금요일에 함께 나고야에 가줘."

- 허벅지 위에 잡지를 펼친 오사나이는 무표정했지만 다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상당히 신나 보인다. 물어봐도 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따라오고 말았지만 시간표에 따르면 나고야 도착을 십분 앞둔 지금, 역시 물어보는 게 낫겠지.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나고야에 끌려가는 것인가?

- "도움을 받은 답례니 원하는 대로 따를 테지만, 으음, 만약 괜찮다면 말인데, 말해주면 안 될까?"
오사나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뭘?"
오사나이가 이 정도로 능청을 떨다니, 어쩌면 이미 내게 오늘의 목적을 추측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준 게 아닐까? 그렇다면 답을 묻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단 단서를 정리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무시하고 오사나이는 "앗!"하고 중얼거리더니 이윽고 이해했다는 듯이 끄덕거렸다.
"그래. 뭘 할지 말하지 않았네."

"아. 말해줄 거야?"

- "우리는 지금부터 새로 오픈한 가게, '파티스리 코기 아네스루리코'에 가서 신작 마카롱을 먹을 거야."
그래, 뭐, 그런 사정일 줄 알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나를 데려가는 이유는 뭐야?"
"이 잡지에 따르면 가을철 한정 마카롱이 네 종류 있는데."
허벅지에 올려놓은 잡지를 탁탁 치며 오사나이는 매섭도록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티&마카롱 세트로 고를 수 있는 마카롱은 세 종류뿐이니까."
즉 나머지 한 종류를 나더러 주문하라는 말씀. 그것도 뭐, 그런 사정일 줄 알았다.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한 가지.
"테이크아웃은 안 돼?"
그렇게 묻자 오사나이는 슬픔으로 가득한 미소를 머금으며 차창 저편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하면... 누가 고생하겠어..."

그 옆얼굴은 마치 운명을 감내하는 순교자 같았다.

- "곡선을 살렸다거나?"
"곡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생물이 있다면 놀라운데. ... 하지만 확실히 아르누보 같은 느낌이라는 뜻일지도. 미안,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해서. 지금 내게 가게 분위기는 중요하긴 하지만 고려 순위로는 두 번째 이하야."
마카롱이 첫 번째구나.
 
- "여러모로 바빠진 코기 하루오미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지유가오카 점포 점장을 맡고 있으며 국내 콩쿠르 우승 실적도 있는 실력파, 파티스리 코기가 내세우는 비장의 카드가 바로 다사카 루리코 씨입니다. ... 미안, 고바토, 오늘은 루리코 씨 자료는 가져오지 않았어. 고바토가 그렇게 관심을 보일 줄 몰랐거든."
"아니, 그건 괜찮아."
"월요일에 가져가면 될까?"
"아니, 괜찮아."
"내일이라도 상관없어."

"괜찮아, 오사나이, 고마워. 마음만으로도 기뻐."  

- 오사나이가 마카롱이라고 했으니 마카롱 전문점인 줄 알았는데 쇼케이스에는 다양한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었다. 나도 알 만한 프레지에나 오페라 몽블랑 외에도 잠깐 봐서는 이름을 외우지도 못할 케이크도 많다. 마카롱은 쇼케이스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파스텔컬러, 원색에 가까운 것, 마블 무늬가 있었다. 힐끔 보니 오사나이는 헤벌쭉하게 실실 웃으며 마카롱의 대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 "티&마카롱 세트로, 마카롱은 퍼시먼(감)하고 바난(바나나), 카카오로 주세요."
자리에서 기다려달라고 하기에 테이블로 갔다.

- 어딘지 모르게 동화적인 외관에 비해 내부는 차분한 느낌이었다. 쇼케이스 안쪽에 있는 벽은 유리라 주방 일부를 볼 수 있다. 마침 조리복에 셰프 모자 차림의 남성이 반죽을 치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저 남성은 손님에게 보여주려고 하루 종일 별 의미 없이 반죽을 치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이윽고 자리로 온 오사나이는 묘하게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인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문제라도 있어?"
무심코 그렇게 묻자 힘없는 미소가 돌아왔다.

"조금."
의자에 앉은 오사나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문득 눈썹을 찌푸렸다. 뭔가 발견한 모양인데 오사나이를 불안하게 만들 만한 요소를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놓친 게 있나 불안해져서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 "역시, 없어."
오사나이의 혼잣말이 힌트가 되었다. 그렇다. 저 세 사람의 테이블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 힌트를 들을 때까지 몰랐다는 사실이 약간 분했지만 나는 말했다.
"그러게. 손을 닦을 게 없네."
오사나이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수건도, 물티슈도, 냅킨도 보이지 않는다.

- "그런 가게도 많아. 고급이거나 고급스럽게 보이고 싶은 가게일수록 물수건은 내놓지 않아. 물수건은 너무 일본 스타일이니까 본고장 분위기를 내려고 그런대."
으음.
"본고장 분위기라..."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내버려 두고 오사나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 부분은 일본 스타일이 좋아."
음료나 케이크만이면 몰라도 마카롱은 손으로 집어 먹는 디저트니 신경 쓰이는 것도 이해한다. 오사나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 씻고 올게."
"응. 나도 씻어야 하니 차례로 다녀오자. 짐 지키고 있을게."

- 도로와 유리창이 사이에 있는데도 음량은 흠칫 놀랄 만큼 컸다. 하지만 진정하고 주위를 보니 그 소리에 놀란 손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 주변에서는 익숙한 시보(時報)인 모양이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약간의 민망함이 섞인 안도감을 안고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오사나이가 보였다. 타이밍으로 볼 때 내가 시계 소리에 놀란 모습은 아마 들키지 않았으리라. 
오사나이는 내면에서 솟구치는 기대와 환희를 억누르지 못하겠다는 듯,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 입가를 실룩거렸다. 돌아오면 교대로 손을 씻으러 가려고 조금 기다렸다.
하지만 오사나이는 테이블까지 한 발짝 남겨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테이블 위를 보더니 이어서 나를 쳐다보고, 다시 테이블 위를 보았다.
"이거, 고바토가?"

- "어라?”
마카롱이 내 것과는 달랐다. 초록색 마카롱, 갈색 마카롱, 노란 바탕에 하얀 마블 무늬 마카롱, 연분홍색과 하얀색의 투톤 컬러 마카롱. 맛은 당연히 다를 테지만 그게 아니라.
"네 개네."

- 지당한 의심이다. 내가 제일 가까이 있었으니.
"응. 애초에 마카롱은 낱개 판매를 안 하니 한 개만 살 방법이 없잖아."
"응..."
오사나이는 살짝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 나는 과거에 수수께끼 풀이를 즐겼다. 지나치게 즐겨서 인간관계에 지장이 생기는 바람에 스스로도 각오한 바가 있어 앞으로는 괜히 영리한 척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각오와는 별개로 오사나이의 마카롱이 늘어난 사실에 대해 나는 추리하려 하지 않았다. ... 단순히 점원의 실수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 잠깐만. 점원의 실수 같지 않아."
확실히 열 개의 마카롱이 열한 개가 되었다면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세 개의 마카롱이 네 개가 되었는데 눈치채지 못하는 점원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뜻밖의 일들도 많으니 당연히 일단 점원에게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왜 부르면 안 되는데?"
솔직하게 그렇게 묻자 오사나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아리송한 표정에서 어째서 이런 단순한 문제를 모르느냐는 짜증과 자기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초조함을 알아차렸다.
"음. 점원이 실수했을 가능성도 물론 있겠지. 하지만 그 가능성은 상당히 낮을 거야."
고갯짓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러니 점원의 실수가 아니라면 이건 누군가 일부러 놓았다는 뜻이잖아? 그 사람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이런 짓을 했을 테지."
"뭐, 그렇겠지."
"그렇다면... 섣불리 점원을 불러서야 그 누군가의 의도에 놀아나는 셈이 되지 않겠어?"

 

- 쓴웃음을 삼켰다. 정말 오사나이답다고 해야 할까.
내가 추리하려 드는 경향을 교정하고 싶은 것처럼, 오사나이도 자기 성향을 제어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고, 도우며, 평온하고 무해하며 주위에 영합하는,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소시민이 되겠노라 맹세했던 것이다. 
그 맹세를 감안하더라도 오사나이는 사정도 모른 채 남에게 놀아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 높은 긍지는 우리가 약속한 교정해야 할 성향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고집부릴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모처럼 방과 후에 달려온 파티스리서 고대하던 마카롱을 눈앞에 두고 흥이 깨진 심경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오사나이가 누군가의 묘한 의도에 놀아나기 싫다고 생각하더라도 탓하거나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구나. 알았어. 점원을 부르는 건 마지막 수단으로 하자."
끄덕, 고갯짓이 돌아왔다.

- "그래서 늘어난 마카롱은 어느 거야?"
나는 별 뜻 없이 그렇게 물었다. 이 가게에서는 손님이 주문하고 싶은 마카롱을 세 종류 지정한다. 오사나이는 그 세 종류를 미리 정해두었다... 정확히는 그것을 맛보기 위해 나고야까지 왔으니 어느 게 자기가 주문한 마카롱이고 어느 게 아닌지는 바로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사나이는 자기 눈앞의 마카롱을 쳐다보며 한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손을 들더니 초록색 마카롱을 가리켰다.
"이건 피스타치오. 9월부터 판매하는 가을철 한정 상품이니 아마 11월까지 팔 거야."
이어서 갈색 마카롱을 가리켰다.
"이건 보다시피 마롱. 나가노의 밤을 사용하는데 제철 상품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지만 이것도 역시 가을철 한정."
마블 무늬에 대해서는,
"코코넛 파파야. 여름철 한정 상품이지만 9월까지는 판매 한대. 마롱이 설렘이라면 이쪽은 여운이랄까."
마지막으로 투톤 컬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코기."

- 다시 물어보려고 입을 연 순간, 오사나이의 미간에 감도는 고뇌를 깨달았다. 설마... 
"뭘 주문했는지 잊어버렸어?"
짧은 침묵이 흘렀다.

- 오사나이는 그러고 있으면 진실이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마카롱에 뜨거운 시선을 쏟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피스타치오하고 마롱하고 코코넛 파파야하고 퍼시먼을 먹어볼 생각이었어. 하지만 사실은 코기를 먹고 싶었어. 젊은 시절 코기 하루오미의 성공을 받쳐주었고, 그 후로도 늘 파티스리 코기의 이름과 함께 언급되는 대표 상품이니 당연히 관심이 가지. 하지만 준비하기 힘든 식자재를 쓰기 때문에 이 아넥스 루리코에서는 아직 준비 단계였어. 오늘은 계절 한정을 먹고, 언젠가 코기 마카롱을 팔기 시작하면 또 오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 말을 들으니 아까 쇼케이스 앞에서 오사나이가 시간을 끈 이유를 알겠다. 아직 판매할 리 없는 영순위 마카롱을 보고 계획이 어그러졌던 것이다.

 

- "나는 망설였어. 내가 주문할 생각이었던 세 종류 가운데 어느 하나를 뺀다면 코코넛 파파야였겠지. 하지만 이건 여름철 한정이니 다음에 올 때는 이미 없을지도 몰라. 그렇게 따지면 피스타치오도 마롱도 계절 한정이고, 코기는 재료만 순조롭게 준비되면 상시 판매 상품이 되리라는 걸 알아. 언젠가는 문제없이 살 수 있겠지만 지금 먹고 싶은 코기, 반대로 참을 수는 있지만 지금 먹지 않으면 판매가 끝날지도 모르는 나머지 세 종류, 어느 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오사나이는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주문한 건 분명히 나야. 얼마나 기대했는데! 하지만 이제는 뭘 포기했는지 나도 모르겠어..."

- 그렇게까지 비통해할 건...
어쨌든 이것으로 점원에게 확인해 볼 수도 없으며 오사나이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을 확실히 이해했다.

- 어떻게 하면 선택받지 못한 네 번째 마카롱을 찾아낼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이건 관찰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 "마카롱이 세 개 담긴 내 접시에 네 번째 마카롱을 놓은 것인지."
오사나이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그렇게 운을 뗐다.
"아니면 마카롱을 네 개 담은 접시를 내 접시와 바꿔치기한 것인지, 현장에 없었던 나는 상상이 안 가. 고바토, 어느 쪽이었을 것 같아?"

- 어라.
오사나이와 나는 약속을 나누었다. 서로의 나쁜 버릇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감시하고, 버릇을 드러내지 않도록 도우며, 서로를 핑계로 써서 귀찮은 일로부터 멀어지는 호혜 관계라는 약속을. 그 기준에서 오사나이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괜찮은 걸까?
... 뭐, 괜찮겠지. 달리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 정도는 추리 축에도 들지 않는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후자는 아닐 거야. 후자의 경우 네 번째 마카롱 이외의 세 개가 오사나이가 주문한 마카롱과 우연히 겹쳤다는 뜻이 되는데 그건 확률이 너무 낮아. 우연이 아니라면 오사나이의 주문을 파악하고 있던 사람이 조작한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주문을 받은 점원 본인밖에 없어. 점원이 덤으로 마카롱을 서비스해 줄 이유도 없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뭔가 한마디 했겠지." 
 
- "누군가 장난을 쳤다면 그때뿐이야.”
꼼짝도 하지 않던 오사나이가 갑자기 고개를 툭 떨구었다.
"왠지 껄끄러워."
"껄끄럽다고?"
"내가 손을 씻으러 간 건 우연, 고바토가 시보에 뒤를 돌아본 것도 우연. 그렇다면 범인은 우연히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걸 알고 충동적으로 내 접시에 마카롱을 두었다는 뜻이 돼. ... 아마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었을 거야."

 

- "하지만 네 번째 마카롱은 미리 준비해 둔 거야. 계획성이 느껴져. 그 점이 껄끄러워."
확실히 듣고 보니 미묘한 어긋남이랄까 온도 차랄까.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정체불명의 마카롱 투척마의 심경을 헤아리려는 듯 오사나이는 한동안 심사숙고하다가 짧은 한숨을 토했다. 
"그건 일단 차치하고, 뭐가 네 번째 마카롱인지부터 알아내지 않으면..."
"그래, 타당한 출발점이야."

"어느 마카롱도 먹을 수 없어."
아아, 그런 문제도 있었군.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두 명의 젊은 여자 손님이었는데, 회사원인지 둘 다 비슷한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주문한 디저트가 차려지는 것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점원은 티포트를 내려놓고, 찻잔을 내려놓고, 밀크피처와 설탕 그릇을 내려놓고, 작은 접시를 살짝 돌린 다음 가만히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지켜본 오사나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매번 저래?"
역시 오사나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응. 항상 저래."


- 접시를 돌리는 동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점원은 언제나 테이블에 내려놓기 전에 접시를 돌렸다.
접시를 돌리는 건 돌릴 필요가 있기 때문으로, 그것은 곧 접시에는 정해진 방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카롱을 곱게 담아 손님에게 가장 예쁘게 보이도록, 규칙으로 정한 방향이 있는 것이리라. 

- "역시 나는 코기를 포기했던 거구나. 언젠가는 확실하게 먹을 수 있게 되니까, 당연한 선택이야..."
나는 한숨을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소시민이 되겠노라 맹세했고, 그 맹세를 깰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사나이가 난처한 사태에 빠졌을 때 사고와 추론만으로 그녀를 돕지 못하고, 관찰이 결정타가 되다니 역시 조금 유감이다. 관찰로 진실을 꿰뚫어 보는 일이 언제나 쉽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상황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이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은 벌어질 것 같지 않다!

- 오사나이가 코기를 집어 들었다.
순간 그 표정이 다시 영리하게 빛났다. 손가락을 멈추더니 천천히 코기를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 왜 그래?”
신성한 마카롱 접시를 더럽힌 이물질, 코기에 일종의 의식처럼 벌을 내리려는 걸까? 의아해하는 내 앞에서 오사나이는 몇 번 더 코기를 흔들더니 이어서 왼손으로 피스타치오 마카롱을 들고 똑같이 흔들어보고는 어딘가 망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거워. 중심이 이상해."

- 오사나이는 피스타치오를 내려놓고 다시 코기를 손에 들었다. 한순간의 망설임 끝에 비통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마카롱을 이루는 두 개의 구움 과자 중 위쪽 한 겹을 벗겨냈다.

-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온화한 웃음소리, 도자기가 서로 스치는 낮은 소리, 포크가 접시에 닿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잊고 있던 달콤한 향기도 잠시 되돌아온 것 같았다.

마카롱 속에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 상상을 초월한 일이다.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바람에 오사나이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 몇 번이나 확인해서 미안해. 이거, 고바토가 주는 깜짝 생일 선물은 아니지?"
"아니라니까. 열차 안에서 들을 때까지 마카롱을 먹으러 가는 줄도 몰랐고, 애초에 오늘이 오사나이의 생일인 줄도 몰랐어."
오사나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야. 오늘은 생일이 아니야."
아니, 생일이라는 말을 꺼낸 건 내가 아닌데. 오사나이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고바토는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니 어딘가에 추리의 단서가 있었을지도 몰라."
"높게 평가해 주는 건 기쁘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칭찬은 아니야..."
그렇군.

- "섣불리 움직이지 않길 잘했네."
오사나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극단적으로 말해 마카롱 뿐이라면 늘건 줄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오사나이의 개인적 감정을 별개로 본다면. 하지만 금반지가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사건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의도에 놀아나기 싫다는 오사나이의 고집은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 "이거 어떻게 할까?"
오사나이가 집게손가락을 세웠다.
"점원에게 알린다."
이어서 가운뎃손가락을 세운다.
"경찰에 알린다."
약손가락을 세우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을 세웠다.
"꿀꺽."
"그건 안 돼! 소시민 차원에서 안 돼!”
"어디까지나 선택지의 얘기야."
오사나이는 태연히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가 반사된 빛이 그런 오사나이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눈에는 닿지 않아 오사나이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 "이거, 이 가게에서 만든 마카롱일까? 아니면 누군가 자기 집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걸까?"
그렇게 묻자 오사나이는 방금 분리해 낸 구움 과자를 눈높이로 들어 올리더니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 피에가 예쁘게 나왔고, 모양에도 특징이 있어. 크기도 일정하니 아마추어는 논할 필요도 없고 외부 파티시에가 만든 것도 아닐 거야."
"피에?"
"마카롱 아래쪽에 있는, 거품 낸 머랭을 구워서 굳힌 부분을 말해. 아마추어가 만들기란 상당히 어렵고 가게마다 피에 모양에 특징이 있어. 위쪽을 향하고 있는 이 피에는 파티스리 코기에서 만드는 다른 마카롱의 특징과 일치해."

- 그러자 오사나이는 아까 쾌속 열차 안에서처럼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구움 과자를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실 그게 바로 마카롱이야. 마카롱 두 장으로 가나슈 같은 필링을 덮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소위 마카롱이란 정확히는 '마카롱을 사용한 과자'인 셈이지. 통칭은 마카롱 파리지앵, 이 형태를 발명한 사람은 그 유명한..."
"가나수 필링?"
"가나슈 같은 필링. 고바토가 알아듣게 바꿔 말하면 초콜릿 같은 속."
설명 감사합니다.

- 과자 표면에 금이 가더니 위쪽의 얇은 껍질만 한 겹 벗겨졌는데 스펀지 같은 부분은 가나슈에 들러붙은 채였다.
무참한 꼴로 변한 마카롱에 서글픈 시선을 쏟으며 오사나이가 중얼거렸다.
"역시 일반적으로 마카롱은 떼어낼 수 없어."
"붙어 있어?"
"아니. 두 장의 마카롱으로 가나슈를 덮은 다음, 냉장고에서 꼬박 하루 재우는데 그사이에 가나슈와 마카롱이 서로 들러붙는 걸 거야. 먹기 전에 상온에 꺼내놓아도 둘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어서, 기울이거나 굴려봐도 마카롱이 벗겨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굴려본 적이 있구나. 잘 굴러가게 생겼으니 그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 "즉 이 마카롱은 반지 케이스로 특별히 만들어진 거야."
사고로 그렇게 되거나 은닉한 게 아니라 반지를 넣기 위해 마카롱을 만들었다. 논리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음식물에 금속을 넣다니 이상한데. 석연치 않은 내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오사나이가 설명을 덧붙였다.
"드문 일은 아니야. 프랑스에서는 갈레트 데 루아에 도자기 인형 같은 걸 넣고,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푸딩에 반지나 골무를 넣는 데다가 미국에서는 포춘쿠키에 점괘를 넣어."
"여긴 프랑스가 아니잖아."
"하지만 프랑스 과자점이지."
뭐, 확실히 양과자점에서 서양 풍습을 따른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이상할지도.

- 오사나이는 이미 손을 씻었는데도 마카롱에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추론하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는 상태에서 먹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티포트를 들어 천천히 찻잔에 따른다.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꼴깍 삼키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설탕을 듬뿍 넣는데 깜빡한 것이다. 오사나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코기의 이름이 붙은 마카롱으로 반지를 선물할 수 있는 파티시에는 코기 하루오미 단 한 사람이라는 오사나이의 견해는 내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가설이다. 그 사실에 심경은 복잡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이르러 우리가 진행해 온 추론은 마침내 메인 요리로 접어들었다. 

- "코기 하루오미가 반지를 선물하는 것을 막으려고,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사랑 행각을 방해하기 위해."
"사랑이라..."
그 키워드가 얽히면 관계자의 행동에 합리성이 결여되는 탓에 추론하기가 어려워져, 뜻하지 않은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는 조금 번거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기도 분하고 반지도 처리해야 한다. 짧은 한숨을 쉬며 논점을 열거했다.

- 여전히 오사나이는 아무 말도 없이 설탕 그릇에서 설탕을 떠서 두 스푼 정도를 찻잔에 넣었다. 시간을 벌려는 듯 천천히 저어 잔에 입을 대더니 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는지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 "하지만 나는 먹지 않았어. 내가 아니더라도 먹지 않았을 거야. 세 개의 마카롱이 네 개가 되었는데 신나서 먹을 사람은 거의 없어."
오사나이라면 먹을 것 같은데... 먹지 않은 모습을 실제로 봐놓고도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오사나이에게 편견이 있는지도 모른다.

- "범인은 코기 하루오미와 이 가게 양쪽에 타격을 주는 방식을 선택했으니 양쪽에 적의가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 적의는 상대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적의가 아니라 훨씬 모호하고 각오가 없는, 투정 같은, 치졸한 적의야." 
그 분석은 내가 이 추론을 통해 생각하고 있던 내용에 가까웠다.

- "소거법 조건을 생각해야겠네."
하지만 오사나이는 똑바로 나를 쳐다보며 약간 작위적인 미소를 띠었다.
"고마워, 고바토, 여기까지 쌓아 올렸으니 충분해. 나머지는 툭 치면 그만이야."

- "아까부터 거울 반사광이 테이블하고 고바토 얼굴을 계속 훑어대서 정신이 산만했어. 고바토가 애써준 덕분에 마카롱을 두고 간 범인이 이쪽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추리했고, 금방 범인이 거울로 이쪽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알았지. 게다가... 내가 일어섰을 때 움찔 떨었잖아?"
나는 흉내 낼 수 없는 직관력과 행동력이다.  

- 타이르는 듯한 오사나이의 말에 나는 이제야 오사나이가 범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다른 쪽'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코기 하루오미와 다사카 루리코의 관계를 방해하려는 인물로 다사카 루리코가 받는 신뢰와 애정을 질투한 파티스리 코기 내부의 인물을 상상했다. 하지만 오사나이는 같은 조건에서 코기 하루오미의 가족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코기 하루오미의 성격을 잘 알고, 스케줄도 파악했으며, 반지를 건네려는 분위기도 알고 있었다... 그렇군, 가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건 내 실점이다.

- "게다가... 어른이면 정말 반지를 훔쳐 갈 것 같았고."
즉 나와 오사나이는 반지를 들고 달아날 것 같지 않은 손님으로 간택받았던 것이다. 안목이 높다고 해야 하나, 얕잡아 보였다고 해야 하나, 조금 고민된다.

- "상당히 다정하네.”
기대하던 마카롱의 시간을 방해한 코기 코스모스에게 오사나이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뭔가 저지르면 어떻게 막을까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었는데.
"분명 저 애한테 말할 줄 알았어."

"뭘?"
울적한 질문에 대답했다.
"코기 하루오미는 저 애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다시 카루리코하고 사귀기 시작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역시 오사나이도 눈치챘던 모양이다.


- 오사나이는 느릿한 손짓으로 이미 식어빠졌을 홍차를 울적하게 입가로 가져갔다.
"고바토가 하는 말, 나도 눈치챘지만."
무겁게 한숨을 쉰다.
"저 애는 내게 못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난 연하에게는 다정해."
나는 마른 웃음을 터뜨리며 오사나이를 따라 찻잔을 들었다. 말을 많이 해서 마른 목을 미지근한 홍차가 축여주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심술일지도 모르지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있지, 오사나이. 코기 하루오미한테 환멸을 느꼈어?"
가녀린 손가락을 뻗어 이제야 겨우 초록색 마카롱을 집어든다.
"설마... 고바토도 알잖아?"
오사나이가 대망의 마카롱을 입술로 가져가며 우아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게는 타인의 연애보다 마카롱이 흥미진진해."

 

-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 나와 오사나이는 불가항력으로 발생하는 말썽으로부터 서로를 지키고 각자의 마음속 맹세를 지키기 위해 상호 감시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라는 한정된 장소, 평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그런 것이고, 휴일에 학교 밖에서 오사나이와 만난다는 건 지금껏 선례가 없었다. 그래서 10월의 서늘한 금요일,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나를 불러 세운 오사나이가 "이번 주 일요일에 어디 좀 같이 가줄 수 있어?"라고 물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의 복도는 동급생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다. 그중 몇 명이 우리에게 흥미로운 시선을 던졌다. 나와 오사나이가 한 팀이라는 인식, 더 나아가 교제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건 우리 입장에 유리하다. 문제가 심각해 비밀을 요하는 경우까지 고려해 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번거로운 일이야?"
오사나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문화제에 가는데 같이 가줬으면 해서."

- "어째서 거기에 가고 싶은지 지금 물어봐도 돼?"
장소를 바꾸어 이야기를 듣는 선택지도 염두에 두고 그렇게 묻자 오사나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뜸 말했다.
"설명하려면 길어지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파티스리가 일일 가게로 나와."
아하.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시외 중학교까지 케이크를 먹으러 가는 게 우리의 호혜 관계에 적합한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디저트를 함께 먹는 것뿐이라면 거절할 수밖에 없다. 오사나이에게 핑계가 필요하고 내 존재가 거기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우리는 일요일에 함께 케이크를 먹으러 간다. 
그 점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가는 의미가 있어?"
"있어."
즉답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오사나이는 '혼자 가기 민망하니까'라는 이유로 나를 부르지는 않는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 "저기, 고바토."
고개를 돌리자 오사나이는 내가 기뻐할 거라는 기대를 얼굴에 한가득 머금고 있었다.
"있지, 문화제에서는 말이야... 뉴욕 치즈 케이크가 나와!"
미소로 답한 내 머릿속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월스트리트의 악마들이 치즈 케이크 상장 선물거래로 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그럴 리 없겠지만. 

- "고바토, 어린아이를 놀라게 하는 건 좋지 않아."
"그럴 의도는 없었어... 그보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지?"
"뭘?"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무래도 오사나이는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속아 넘어갈, 실로 완벽한 시치미였다.

- "언젠가 데려가줄게. 그래서 코기 말인데, 문화제에서 동아리 아이들과 뉴욕 치즈 케이크를 만든다는 거야. 동아리 친구들은 프로를 꿈꾸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역시 가끔은 의식의 차이가 속상하다고 불평한 적도 있어. 유키 선배라고 부르면서 요즘은 평일 방과 후에도 열차를 타고 만나러 올 정도야. 그래서..." 
아아, 상당히 사랑받고 있구나.
아까 오사나이에게 사람의 마음이 어쩌니 저쩌니 심한 말을 들었지만, 생각할 재료가 있다면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즉 일요일에 나를 끌어낸 이유는.
"오사나이에게는 오사나이의 세계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구나."
코기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코기 한 사람만 친구인 것도 아니고 '사귀는' 상대도 있다. 코기 한 사람하고만 깊이 어울릴 생각은 없다. ... 그런 뜻을 은근하게 전하기 위해 오사나이는 나를 데려온 것이다.
그제야 겨우 이해가 갔다. 오사나이가 그저 단순히 나와 일요일의 케이크를 즐기고 싶어 할 리는 없지만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꽤나 고민했으니. 그런 사정이라면 확실히 이건 호혜 관계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마음껏 도와주고 언젠가 돌려받기로 하자.

- 케이크와 홍차를 얹은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 코기가 웃으며 다가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뉴욕 치즈 케이크와 홍차 세트입니다!"

오사나이의 홍차에는 이미 우유가 들어 있었다. 취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주장이겠지만 아마도 역효과라는 점까지 포함해 애처로울 정도다. 나를 유독 무시하는 건 오사나이에 대한 독점욕의 발로이리라.

- 케이크는 새하얀 부채꼴 모양이었다. 나는 평소 달콤한 음식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치즈 케이크 정도는 익숙하다. 눈앞의 케이크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렸다.
"이건 레어 치즈 케이크 아니야?"
"아니야."
포크를 손에 든 오사나이의 눈빛이 매처럼 매서웠다.
"아니구나. 어떻게 달라?"

- 화제에 끌려 나온 코기는 노골적으로 당황했다. 이제야 비로소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구원을 청하는 눈빛으로 오사나이를 바라보았지만 오사나이가 가만히 잠자코 있자 체념한 듯 웅얼거렸다.
"레어 치즈 케이크는 직접 가열하지 않습니다. 뉴욕 치즈케이크는 워터배스로 구워요."
"워터배스?"
또 오사나이를 힐끔거린다. '이 사람한테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라고 묻고 싶은 눈치다. 오사나이는 한숨을 쉬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케이크 재료를 틀에 넣습니다."
"응."
"그 틀을 물을 담은 바트... 속이 깊은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아 오븐으로 굽는 게 워터배스. 촉촉하게 구워지는 게 특징이야."
알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감은 오지 않는다. 그렇게 굽는 의미가 있는 걸까?

- "얼마나 촉촉한지는 먹어보고 확인하세요."
그런 오사나이의 말에 코기가 당황했다.
"아, 저기, 물론 열심히 만들었지만 유키 선배가 만족할 정도로 촉촉한지는..."
오사나이가 다시 포크를 손에 들고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기대돼."
코기가 쟁반을 가슴에 품고 얼굴을 붉혔다.

- 가버렸다. 새로운 용어를 가르쳐준 은혜는 그렇다 치고, 나는 비난 어린 눈초리로 오사나이를 쳐다보았다.
"가엾게도, 그렇게 압박할 건 없잖아."
"기대하고 있었는걸."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이다.
어쨌거나 눈앞에는 홍차와 케이크가 있고 오사나이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나도 포크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 새하얀 케이크에 포크를 꽂는 순간부터 달랐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다. ... 아니, 단단하다기보다 탄력이 있다. 튕겨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어라 싶을 정도의 반응을 즐기며 천천히 케이크를 잘랐다. 작게 잘라낸 삼각기둥을 입에 넣었다.
...!
오사나이도 코기도 '촉촉하다'고 표현했지만 내 어감으로 이것은 '쫀득'이다. 단맛은 비교적 약한데 식감이 놀라울 정도로 차분해서 감칠맛의 밀도가 높은 느낌이다. 이거 재미있다, 맛있다.

- 고개를 들자 내 감상은 아랑곳없이 오사나이는 자기 케이크를 즐기고 있다. 포크가 오르내릴 때마다 오사나이는 행복에 빠진 듯 미소를 지었다. 저 정도로 뭔가를 즐길 수 있다니 부럽기도 하고, 저 얼굴을 보면 케이크를 만드는 쪽도 기쁠 테니 코기가 괜히 눈치를 봐서 자리를 떠난 게 안타까울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나는 뉴욕 치즈 케이크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니 신선해서 놀랄 만도 하지만 오사나이에게 그런 경이로움은 없을 텐데. 

- "있지, 오사나이."
벌써 얼마 남지 않은 뉴욕 치즈 케이크를 조금 서글픈 눈빛으로 바라보는 오사나이에게 물었다.
"깜짝 놀랐어, 맛있어서. 이건 네 기준으로 봐도 역시 잘 만든 거야?"
오사나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맛있냐고? 응, 맛있는데."

"다른 곳보다도?"


- 중학교 문화제에서 나온 치즈 케이크가 오사나이를 충분히 만족시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며 제 발로 맛있는 가게를 찾아다니고, 정보 수집도 게을리하지 않는 오사나이다. 주머니 사정도 있을 테니 세계 최고의 맛까지 섭렵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고급 디저트를 맛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고급 디저트를 아는데도 이 뉴욕 치즈 케이크는 맛있을까? 
질문에 담은 그런 의도를 오사나이는 정확히 파악했다. 포크를 내려놓고 은근히 자세를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고바토, 그런 게 아니야. 훌륭한 파티스리와 제과 동호회를 함께 비교하는 건 시시한 일이야. 백 엔짜리 초콜릿을 먹으면서 고디바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우스꽝스럽잖아."

- "파티스리는 파티스리에 어울리게, 홈메이드는 홈메이드답게, 주전부리 과자는 주전부리로 훌륭하다면 그걸로 족한 거야. 언제나 최고의 디저트를 원하는 건 구도자 같아서 멋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뭘 먹어도 '거기에 비하면'이라고 말하는 속물에 지나지 않아."
"그럼 뭘 먹어도 행복하다는 뜻이야?"
"설마. 맛없는 건 안 돼. 대충 만든 건 더 안 돼."

- 체육관 무대에서 <이누가미 일족>을 연기하는 학급이 있어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이미 상연이 끝나버렸다. 지금은 3시를 앞두고 있었는데 문화제 자체가 4시에 끝나고 뒤풀이가 시작되므로 대개의 행사가 끝나버린 것이다.
컴퓨터부가 '패미컴 재현'이라는 행사를 한다는데, 말로만 들었지 본 적이 없어 패미컴이 대체 뭔지 궁금했다. 한편 4층에서는 교실 하나 전체를 입체 미로로 꾸몄다는데, 미로 돌파 정도는 더 이상 영리한 수수께끼 풀이는 하지 않겠다는 오사나이와의 약속에 반하지 않을 테고,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패미컴 재현이냐, 입체 미로냐. 결정적인 한 방이 없어 고민되니 여기서는 동전을 던지기로 했다. 십 엔짜리 동전을 던져 윗면이 나오면 패미컴, 뒷면이 나오면 미로다.

- 평면이라면 몰라도 처음 들어가는 입체 미로를 빠르게 풀기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너무 크다. 세 번 기록해서 가장 빠른 시간을 채택하는 방식이 제일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관리가 힘들 것 같지만.

- 적당히 만족하고 미로를 뒤로 했다. 시각은 3시가 가까워 슬슬 여기저기서 정리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문화제를 구경하는 데 2시 집합은 늦다. 충분히 즐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 하지만 오사나이는 아마 이것도 계산했으리라. 너무 일찍 오면 코기와 반나절 내내 함께 행동하게 될지도 모르니 2시라는 시간을 선택했으리라.

- "유키 선배, 납치당했어요!"
"엇, 또?"
"네?"
아차.

경솔한 발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코기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과거보다 현재에 시선을 돌리도록 역설했다. 

(리뷰자 주 : 여기서 혼란이 오고 말았는데, 이 시점은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이후,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전 가을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납치'는 <여름철> 사건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또 말썽에 휘말렸냐는 의미로 보인다.)   

- "본파이어 옆으로 가서 꼬치에 마시멜로를 꽂았어요."
캠핑이 아니니 캠프파이어라는 이름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다른 호칭이 있었나.
"막 구우려는데 누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유키 선배가 위험하다고 알려줬어요. 뒤를 돌아보니 저희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뒤를 보면서 달려오고 있었는데, 저는 얼어붙어서... 순식간이라 기억이 잘 안 나요."
충돌 순간은 내가 보고 있었다. 오사나이는 달려오는 남학생을 피하려 했지만 남학생도 두 사람을 피하려 하는 바람에 부딪치고 말았다.

- "정신을 차렸을 때 유키 선배는 튕겨 나갔지만 그래도 넘어지지는 않았어요. 바닥에 손을 짚고 한 바퀴 돌아서 넘어지지 않고 버틴 것 같았는데."
"어, 오사나이가 낙법을 썼다는 말이야?"
코기는 갸웃거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뭐, 어쨌거나 크게 다치진 않았다는 사실은 알았다.
"다만 넘어질 뻔할 때 가방 덮개가 열려서 내용물이 튀어나왔어요. 마시멜로도 운동장에 쏟아졌고요."
그건... 오사나이의 심경은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는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야기의 흐름을 재현해 보면 마음에 걸리는 점도 있다.

- "마시멜로는 오사나이가 가지고 있었어? 너한테 주는 선물인데?"

"네."
그렇게 대답한 코기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왜 그랬지... 꼬치를 받을 때 들어달라고 했다가 그대로 잊었던 것 같아요."
"마시멜로 상자는 어떤 거야?"
코기는 자기 몸통 폭으로 팔을 벌렸다.
"이 정도 크기에 둥글고 편평한데 과일이 잔뜩 그려진 종이 상자로... 그게 중요한가요?"
"아니, 꼬치를 받을 때 방해가 될 정도로 컸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다급하게 물을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코기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 "유키 선배에게 부딪친 남학생은 그 세 사람을 보더니 다시 달아났는데 부딪쳤을 때 어디를 다쳤는지 한쪽 발을 끌고 있었어요. 얼마 못 가서 붙잡혔는데, 나중에 온 세 사람이 갑자기 때리고 걷어차는 거예요. 유키 선배도 걱정스러웠지만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깜짝 놀라서 당신들 뭐야, 하고 소리쳤어요."
"네가?"
"당연하잖아요."
돌발적인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것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별로 자신이 없다. 그런데 코기는 다짜고짜 따졌다고 한다. 자기 학교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안심도 조금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재미있다.
"뭘 웃고 있어요?"
"아니...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음, 설명 도중에 미안한데 그 남학생들이 누군지는 모르는 거지?"

- "유키 선배가 모른다고 하는데도 세 사람은 계속 의심하더니 급기야 어디로 끌고 가려고 했어요. 저는 선생님을 부르겠다고 했는데 유키 선배가 '괜찮아. 일을 크게 만들지 마'라고 해서 결국 막지도 못하고... 선배는 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어요."
"시키는 대로? 팔 같은 걸 잡아끈 게 아니라?"
조금 불만스러운 기색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세 사람이 따라오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코기의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내 탓이야! 내가 마시멜로를 굽자고 하지만 않았다면!"

아니, 코기는 마시멜로를 굽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을 뿐이고, 본파이어로 굽자고 말한 건 오사나이잖아. 굳이 지적하진 않겠지만.

- "오사나이가 다른 말은 안 했어?"
그렇게 묻자 코기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망설였다.

 

-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있자 이윽고 코기가 마음을 굳힌 듯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일을 크게 만들지 마, 별일 아니니까'라고. 그리고..."
"그리고?"
"... '고바토를 불러'."
아아. 내가 뉴욕 치즈 케이크를 먹은 뒤에도 교내에 남아있으리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나. 하지만.
"하지만 넌 내 연락처를 모르잖아."
"아, 그건."
코기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르면 올 테니까'라고 했어요."
내가 개냐.

- 아마 교내 방송으로 불러내는 방법을 고려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방법이야 어쨌거나 오사나이는 코기에게 나를 부르라고 전했다. 결과로 보면 나는 스스로 달려온 셈인데, 오사나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내가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평범하게 생각하면 내가 도와주길 바랐겠지. 정체불명의 폭력적인 세 사람에게 사로잡힌 자기를 빨리 구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조금 기묘하다. 세 사람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외부인이 많이 오는 문화제 날에 여학생을 끌고 가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코기가 그랬던 것처럼 교사를 불러 문제를 키우면 세 사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납치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오사나이가 저항하지 않았으니까. 코기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일을 키우지 않도록 견제하고, 제 발로 세 사람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서로의 나쁜 버릇을 막기로 약속했는데, 오사나이는 그걸 잊어버린 걸까? 요컨대 오사나이는 수수께끼를 풀어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수수께끼란...

- "맞아. 오사나이가 CD를 가진 채로 세 사람을 따라갔다면 뭔지 몰라도 교섭이 목적일 거야. 그렇다면 오사나이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나를 부를 의미가 없어."
코기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그러니까 유키 선배한테도 그 남학생한테도 CD는 없다... 그런 뜻인가요?"
"그런 셈이지."

- "갑자기 떠맡은 물건인데도 남에게 쉽게 넘기지 않다니... 역시 유키 선배... 용감해... 용감해..."
"뭐, 마시멜로도 못 먹게 되었으니."
"... 그건 상관없잖아요?"
글쎄, 그럴까?

- "운동장 한복판이에요. 더군다나 여유는 이 분도 없었는데.”
코기는 오사나이를 잘 모른다. 그 지적 순발력과 행동력을 모른다. ... 오사나이에게는 구십 초면 충분하다.
"시간은 있었어.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숨겼는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운동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 나는 팔짱을 낀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금 네 가지 정도 떠올랐어."
문득 고개를 들자 코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분위기를 살피려는데 코기는 짤막하게 한마디만 했다.
"그럼 빨리 찾아봐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네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면 관찰과 추리를 통해 하나로 좁히고 싶은 게 속마음이다. 다만 이번에 한해 사로잡혀 있는 오사나이를 고려하면, 조사할 수 있는 방법부터 시작하자는 코기의 제안도 일리는 있다.

- "그전에 하나만 알려줘.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오사나이는 하얀 블라우스에 오렌지색 카디건을 입고 한 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는 풍선을 두 개 들고 있었어. 끌려갈 때도 똑같은 모습이었어?"
코기가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복장이야 그렇다 쳐도 풍선은 어떻게 알고 있지. 미행이라도 했나...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오해하는 건 상관없지만 답을 듣지 못하는 건 난처하다.
"4층에서 봤어."
짧게 덧붙였다. 그럼에도 점수를 매기는 듯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던 코기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풍선은 어디로 갔지? 유키 선배 손에는 없었어요."

- 운동장에 흩어진 보석 같은 과자를 굽어보았다. 오사나이가 모처럼 사 온 선물이다. 코기가 기뻐할 거라 믿었겠지.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나라도 그 분통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시멜로 상자 말이야."

- "다시 말해 마시멜로 상자도 사라진 거야."
코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러면 얘기만 복잡해지잖아요?"
아니, 그렇지 않다. 이것으로 문제의 초점은 하나로 줄어들었다. 한 걸음만 더... 그런데 그 한 걸음을 좁히지 못하겠다.
"오사나이는 '고바토한테 연락해'라고 말한 거지?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
코기를 탓하려고 묻는 게 아니라 오사나이가 단서를 남겼다면 코기가 그것을 들었을 가능성이 크니 어디까지나 단순히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코기는 몹시 상처받은 듯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전 아무 말도 못 들었어요..."

 

- 무심코 고개를 젖혔다. 그녀가 섬세한 건지, 아니면 내가 평소대로 말해도 전혀 상처 입지 않는 오사나이가 특별한 건지, 어쨌거나 미안하게 됐다.
"미안. 네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유키 선배는 '고바토를 불러'라고 했어요."
"그랬댔지. 응."
"그리고 '케이크가 맛있었는지 물어봐'라고 말한 게 전부예요."
말했잖아!

-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장소가 불이고, 숨겨야 할 물건이 가연성 물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져. 불에 타는 물건은 불 속에 숨길 수 없으니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지. 옛날에 물에 뜨는 물체를 실수로 물속에 숨겼는데 중요한 순간에 전부 떠오르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 멋진 영화였어."
불길 속을 들여다보니 차곡차곡 쌓인 장작 사이로 틈새가 보였다. 열기가 날아와 실눈을 떴다. 불꽃 속에서 사냥감을 발견하고 무심결에 입꼬리가 싱긋 올라갔다. 체육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윽고 최고조에 달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타지 않을, 적어도 한동안은 타지 않을 물건이라면 불 속에도 숨길 수 있다는 뜻이야. 하물며 CD는 온도 변화에는 강하니까."

- "하지만... 거기에도 한도가..."
"그래. 한도가 있어."

나는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삼백 도, 사백 도 속에 집어던지는 건 무모해. 그럼 최고 백 도라면? CD는 물에도 강해." 
백 도와 물이라는 말을 듣고 코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가. 그래서, 뉴욕..."
눈치가 빠르군. 아니, 역시 내가 둔한 건가?

- 뉴욕 치즈 케이크를 구울 때 바트에 물을 담는 건 바로 열전도를 억누르기 위함이다. 오븐 속이 몇 도든, 몇천 도든, 물에 닿은 부분은 대략 백 도를 넘지 않는다. 기압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은 대개 백도 이상 뜨거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 "오븐장갑도 부탁할걸."
그렇게 말하며 나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소방용 물이든 양동이를 들고 왔다. 단숨에 부으면 온도 차가 어떤 장난을 칠지 모른다. 손으로 물을 떠서 조금씩 상자에 뿌렸다.

- "불은 아래쪽 온도가 더 낮고, 종이는 의외로 발화 온도가 높거든. 화씨 사백... 몇 도였더라. 게다가..."
초조한 냉각 작업을 마치고 장갑 대신 옷소매를 써서 상자를 잡았다.
"상자가 물로 가득 차 있으면 그 속은 백 도를 넘지 않아. 뉴욕 치즈 케이크하고 똑같은 원리야."


- 상자 속에는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방금 전까지 불 속에 있었으니 끓는 물이겠지.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CD가 불꽃과 태양을 반사하며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집게로 케이스를 집어 물속에서 끄집어냈다.
"문제없어. 겨우 찾았네."

 

- 마시멜로 상자를 소방용 양동이에 넣어 물을 푸고 거기에 CD를 담아 불 속에 넣는다. 이것이 CD를 숨기기 위해 오사나이가 한 행동이다.
코기가 길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 유키 선배, 겨우 구십 초 만에 이런 생각을 해내고 전부 준비하고 실행한 거예요...?"
다시 한번 거친 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믿을 수 없어..."

 

- 오사나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코기의 눈은 언제나 흥미와 호의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그렇지 않았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거기에 떠오른 것은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 아직 미지근한 CD를 받아 든 코기가 그것을 하늘에 비추어 보았다.
"유키 선배가 CD를 풍선에 매달아 날리지 않았을까 했어요."
"아하하."
재미있는 생각이지만 그러면 되찾을 수 없으니까. 풍선은  단순히 충돌할 때 놓쳐서 날아가 버렸으리라.

- "이걸 세 사람에게 건네면 유키 선배를 구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묻는 걸 보니 나도 조금은 코기의 신용을 얻은 모양이다. ... 그 신뢰를 저버리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천만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코기에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짓을 하면 오사나이가 슬퍼할 거야. CD를 그대로 건네줘서 될 일이라면 오사나이가 직접 했을 테지."

- "우리가 건네주면 똑같은 셈이야. 오사나이가 어째서 CD를 불 속에 숨기고 스스로 붙잡혔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맡은 물건을 바로 넘기고 싶지 않아서..."
더 나아가서 어째서 나를 불러냈는가?
어, 그건, 하고 입속으로 웅얼거리는 코기에게 나는 단언했다.
"오사나이는 시간을 번 거야. 그사이에 내가 CD를 발견하길 바랐지."
"어째서요?"
"물론 CD 내용물을 조사하기 위해서지!"

- CD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세 사람에게 습격당한 1학년으로부터 오사나이는 문제의 CD를 넘겨받았다. 이미 오사나이는 선물로 사 온 마시멜로도 엉망이 되었고, 두 개나 받았던 풍선도 허공으로 떠나보냈으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뉴욕 치즈 케이크를 먹고 돌아가려는 계획마저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얌전히 '예, 그러십니까' 하고 CD를 넘기기엔 오사나이는 아직 소시민 수행이 부족하다.
CD에는 누군가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그래도 건전한 호기심 축에 들리라. 그 비밀을 이용해 마시멜로와 뉴욕 치즈 케이크의 원수를 갚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 그런가."
코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코기는 오사나이를 취미가 맞는 연상의 언니로 믿고 따랐다. 마카롱 사건에서 그 예리함을 가까이서 보고서도 오사나이를 귀엽다고 생각한다는 건 곁에서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오사나이의 방식을 어렴풋이나마 엿보고 말았다. 충격을 받았겠지...

- "역시 유키 선배!"
"어?"
"그래요. 그 세 사람, 누가 봐도 나쁜 녀석들이었어요. 그런 애들이 찾고 있었으니 틀림없이 뭔가 나쁜 기록이 들어 있을 거예요! 몸을 던져 증거인멸을 막아낸 거예요. 유키 선배, 정말 굉장해요!"
눈에는 초롱초롱한 빛이 돌아왔고 감격스럽다는 듯이 두 주먹을 입가에 대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 응. 틀린 말은 아니다. 세 사람은 적어도 난폭했고, CD에는 그들에게 불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테고, 오사나이는 CD가 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스스로 미끼가 되었다. 전부 맞는 말인데 뭘까, 이 미묘하게 다른 느낌은... 

- 사건의 전말은 지하철 안에서 들었다.
"남학생들한테 훈련장으로 끌려갔는데, 그래, 한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에워쌌어. CD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러서 무서웠어."
어렸을 때는 놀이공원 유령의 집이 무서웠다고 말하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말한다.
"하지만 이걸 갖고 있었거든."
보스턴백을 축소한 듯한 가방에서 나온 것은 학생수첩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용케 들고 다녔네."
"고바토는 모를 거야. 고등학생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항상 학생수첩을 들고 다니는 내 기분을."
응.

- CD의 동영상이 유도부 연습 광경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시점에서 오사나이는 별 탈 없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다. 학교는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에 외부인이 얽히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사, 학생이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경향이다. 시외도 아니고 이웃 현에서 찾아온 고등학생이라는, 레이치 중학교와 아무 상관없는 외부인에게 유도부가 강압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뭐, 학생수첩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들고 다닐 줄은 예상도 못 했지만. 
"내가 고등학생이라는 걸 알고 나서도 믿기 싫었는지 처음에는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점점 풀이 죽더라. 가방 안을 한번 더 보여달래서 보여줬더니 돌아가도 된다고 했어."
"믿기 싫었던 게 아니라 믿을 수 없었던 것 아닐까?"
마침 플랫폼에 접어들어 감속하는 지하철 브레이크 소리에 묻힌 내 혼잣말은 오사나이에게는 들리지 않은 듯했다.

- "고바토는 CD를 찾으면 그걸 재생할 수 있는 곳으로 갈 테니 컴퓨터부로 갔지. 너희가 동영상을 보고 있을 때 난 바로 뒤에 있었어. 그런데 아무도 몰라주더라."
"그래서 그런 대사를 읊었구나?"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아, 부끄러워하지 않네.

- "괜찮은 거야?"
그렇게 묻자 오사나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 동영상 말이야."

오사나이는 동영상 복사본도, 원본 CD도 필요 없다고 했다. 사실 조금 뜻밖이었다. 오사나이라면 그 동영상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법을 찾아낼 줄 알았는데.
"마시멜로를 못 먹었잖아?"
"아아."


- 지하철의 새까만 차창을 바라보며 오사나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고바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마시멜로도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카페에 가서 뉴욕 치즈 케이크를 먹고 그 애들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갈 작정이었는데 전부 엉망이 되었어. 굉장히 유감이야."
역시, 완벽하게 괜찮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도 오사나이는 레이치 중학교 유도부의 약점을 잡지 않았다.
"걔들을 용서해줬구나, 오사나이. 훌륭해. 정말 멋진 소시민이야."
진심에서 우러난 나의 찬사에 오사나이는 생긋 웃더니 살짝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 ... 하지만 고바토는 약간 오해하고 있어. 나는 CD를 챙기지 않은 게 아니라 컴퓨터부에 남겨둔 거야."

- 오사나이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나는 입을 다물고 뒷말을 기다렸다.
"컴퓨터부에는 컴퓨터가 있고, 수중에는 끔찍한 동영상이 있어. 컴퓨터부 친구는 지금 유도부를 좋게 보지 않겠지."

아아, 그런가.
"인터넷에 뿌릴지도 모르겠네."
손가락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오사나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창을 보고 있었다. 새까만 창문은 거울처럼 오사나이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기운을 느꼈는 걸."
기운이라...


- 동영상이 퍼지면 레이치 중학교 유도부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지리라. 가을 대회 출전도 어찌 될지. 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지면 좋아질 일만 남을지도 모른다. 고문이 조금 더 연습에 참가하고, 새 코치가 올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 해체될 수도 있겠지만, 1학년들은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나고야 역이 다가오자 지하철이 속도를 늦추었다. 오사나이는 아마도 차창에 비친 얼굴을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표정을 지을 리 없다. 저런... 싸늘한 웃음을. 창에 비친 자신을 향해 오사나이는 속삭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한 거야."

 

- <뉴욕 치즈 케이크 수수께끼>

 


- 그중 한 명.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절대 신문부원으로 보지 않을 건장한 체격의 도지마 겐고가 나를 알아보았다.
"뭐야, 조고로냐. 왜 왔냐?"
왜 왔느냐니, 말본새 하고는.
"신문부가 뿌린 설문지를 가져왔어."
"아아."
기특하게도 겐고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미안. 꽤 빠르네."
"신문부에서 회수하면 될 텐데."
"그게 맞지만 모든 반을 돌기엔 일손이 부족해서."

- 설문지를 넘기자 용건이 끝났다. 그만 돌아가려는데 부실 분위기가 왠지 이상하다. 애초에 네 사람이 테이블을 에워싸고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한 데다가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어딘가 서로 탐색하는 눈빛이다. 이건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어 눈짓으로 묻자 겐고는 팔짱을 끼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고로, 지금 한가해?"
"딱히 다른 예정은 없는데."
"그래? 사실 조금 난처한 상황이야. 너만 괜찮다면 얘기 좀 들어주겠어?"

- 나는 오사나이와 함께 소시민의 길을 걷기로 맹세했다. 소시민은 상관없는 단체의 고민에 경솔하게 끼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지마 겐고가 도움을 청한다면 어쩔 수 없지. 어려운 결심이지만 조금이라도 겐고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줄 수 있다.
"물론이지, 무슨 일인데?"
"그 기쁜 표정은 뭐야..."
그렇지 않다. 어렵게 결심했다니까.

부실에 있는 나머지 세 사람이 비난 어린 시선으로 겐고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독단으로 외부인에게 의논하려 하니 불쾌하게 여기는 건 당연하다. 조금 투실한 체형의 남학생이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어이, 도지마, 어쩌려고 그래. 얘기할 거야?"
"딱히 숨길 일도 아니고 이대로 눈싸움하는 것보다야 낫잖아. 남한테 말해보면 우리도 머릿속이 정리될지도 모르고. 게다가... 여기 고바토 조고로는 가끔이지만 기묘한 점을 알아차릴 때도 없지는 않아."
평가가 지나치게 완곡하다. 남학생들은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겐고와 입씨름을 하고 싶은 건 아닌지 "그게 뭐야"라고 중얼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리뷰자 주 : 인원은 총 네 명. 그중 남학생은 '겐고'와 투실한 학생 '몬치'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남학생들'이 아니라 '남학생' 또는 '학생들'이어야 맞지 않을까?)

- "미안, 한 번만 더."
"베를리너 판쿠헨."
내 청각이 딱히 나쁜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겐고의 말투가 조금 빨라서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것이다.
"베를리너...?"
겐고는 포기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독일식 튀김빵이야."
오호라, 이제야 알겠다.

- "이름처럼 베를린 명물인데 크기는 보통 주먹만 하고, 그냥 튀긴 빵이 아니라 안에 잼이 들어 있어. 연말에 이 튀김빵을 잔뜩 준비해 몇 개에는 머스터드를 넣어서 다 함께 먹으며 누가 머스터드 빵에 걸리는지 장난치는 게임이 있대." 
"어디에나 비슷한 놀이가 있구나."
"최근 학교 근처에 독일 빵 가게가 문을 열었어. 이 튀김빵도 판다고 해서, 세계의 연말이라는 주제로 12월 호에서 다룰 생각으로 취재를 신청했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어. 그래서 얘기만 들을 게 아니라 실제로 그 게임을 해보고 머스터드 빵에 걸린 사람이 기사를 쓰기로 했어. 튀김빵을 사람 수대로 준비해서 이 접시에 담았지."
그래서 책상 위에 접시가 있구나.

- "그리고 다 함께 동시에 먹었어."
신호와 함께 잼이 든 튀김빵을 먹는 겐고를 상상하니 왠지 그것만으로도 조금 우스웠다. 물론 겐고는 이렇게 보여도 코코아를 맛있게 타는 법에 연연하는 남자니 달콤한 디저트도 그럭저럭 잘 먹는 편이리라.
"맛있었어?"
그렇게 묻자 겐고는 어째선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문제야."
"맛없었어?"
"아니, 맛있었어."
"그럼 아무 문제없잖아."
"문제가 있었다니까. 잘 들어, 모두 맛있었다는 거야."

나는 무심결에 대형 테이블을 에워싼 나머지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모두 어딘가 찜찜한 표정이다.

 

- 겐고가 강하게 주장했다.
"그럴 리가 없어. 누군가의 빵에는 머스터드가 들어 있었을 거야. 그런데 걸린 사람이 털어놓지를 않아. 시시한 장난은 그만하라고 해도 하나같이 자기는 아니라는 거야."
투실한 남학생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도지마도 포함해서."
겐고가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그래. 나도 포함해서."

그리고 겐고는 내게 물었다.

"조고로, 누가 '꽝'을 먹었는지 알아낼 수 있겠어?"

- 나는 겐고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신문부가 한 달에 한번 발행하는 <월간 후나도>는 누구나 아는 운동회 결과나 수학여행 행선지를 밋밋한 문장으로 쓰는, 피해는 주지 않지만 쓸모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말 특집을 위해 아무 데서나 팔지는 않을 독일식 튀김빵을 입수해 리포트를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 기획이 위기에 봉착했다면 도와주지 않을 수 없다.


- "알겠어. 내가 알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물어볼게."
겸허하게 그렇게 말하며 먼저 여기에 있는 네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도지마 겐고.
투실한 체형에 때때로 불만스럽게 뭔가를 중얼거리는 남학생이 몬치 조지.
키가 크고 날씬하고 표정이나 동작에 나를 향한 불신감을 숨기지 않는 여학생이 마키시마 미도리.
자그마한 몸집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사태의 추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여학생이 스기 사치코.
겐고는 물론이고 나머지 세 사람도 신문부 소속 1학년이라고 한다. 그들이 '용의자'인 셈이다. 힐끗 시계를 보니 4시 45분이었다.

- 간결한 대화가 가능한 건 겐고의 미덕이지만 지금은 조금 더 신중한 대답이 필요하다.
"미안, 겐고. 네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범위에서 대답해주지 않겠어?"
겐고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지만 바로 끄덕이며 고쳐 말했다.
"미안해. 우리가 튀김빵을 시식할 때 접시 위에는 네 개의 튀김빵이 있었고, 그중 하나에는 머스터드가 들어 있을 예정이었어. 마키시마, 몬치, 스기, 나, 이렇게 넷이서 튀김빵을 하나씩 먹었는데 머스터드 빵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리고 접시는 건드리지 않았어."

- 이번에 내가 부탁받은 건 머스터드가 든 튀김빵을 먹은 이른바 '범인'을 알아내는 일이다. 언뜻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사건을 논리적으로 재해석하거나 남이 숨기는 비밀이 뭔지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추측만으로 백 퍼센트 완벽하게 범인을 알아내기란 지극히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해 정체불명의 괴도가 신문부원에게 최면술을 걸어 머스터드가 든 튀김빵을 가져갔을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고, 그 정도로 황당무계하지는 않더라도 단순히 누군가 치명적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을 대등하게 다루고 모든 발언의 진위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범인을 지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서 일단 전제를 정했다.

- 첫 번째, 겐고가 단언하는 정보만큼은 틀림없는 사실로 믿는다.
두 번째, 이 사건에 초자연현상은 일절 얽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범인의 행동에는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이 세 가지 전제를 지키면서 현시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몇 가지 있지만 지금은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조건을 좁혀가자.

- "달리 생각나는 점은 없어?"
"튀김빵 바닥, 그러니까 하얀 가루가 묻어 있는 부분의 반대쪽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어. 추측한 걸 말해도 돼?"

"그럼."

"그 구멍으로 잼을 넣었을 거야. 머스터드도 거기로 넣지 않았을까?"
"그렇군, 그렇겠네."
몬치가 "그렇게까지 신중하게 말할 일이야?"라고 중얼거렸다. 뭐, 보통은 지나치게 에둘러 말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게는 사실과 추측을 엄격하게 구분해 주는 겐고가 든든할 따름이다.

- "여기 있는 넷이서 시식했다고 들었는데, 그때 다른 사람은 없었어?"
"시식한 순간에 말이야? 그렇다면 확실하게 우리 넷뿐이었어."
조금 마음에 걸리는 표현이다.
"그때 말고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는 뜻?"
"응. 튀김빵을 받아 온 게 2학년 세바 선배거든."
"그 선배는?"
"바로 돌아갔어. 아니, 미안, 나는 못 봤어. 바로 돌아갔을 거야. 밴드를 하는데 오늘은 라이브에 나간다고 했거든. 보컬이었던 것 같아."

- 이 학교에는 유별난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신문부와 밴드 보컬을 양립하다니 재미있는 사람이다. 밴드 음악 취향도 궁금했지만 튀김빵의 수수께끼와는 상관없을 테니 생략하자.

- 이로써 기본적인 상황은 대강 파악했다. 다음 질문도 정해졌지만 용의자들 앞에서는 이야기하기 조금 꺼려졌다.
"겐고, 잠깐 의논하고 싶은데, 복도에서 얘기하자."

- 또 한 가지, 겐고에게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내게 말한 이유는 뭐야?"
겐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뭐냐니, 무슨 뜻이야? 꽝을 뽑은 게 누군지 어떻게든 알고 싶은 것뿐이야."
그리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만 믿으라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말본새 하고는.
"그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범인을 알아내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궁금했던 것뿐이야. 이렇게 말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억지로 범인을 찾아내지 않아도 기사를 쓸 사람은 가위바위보 같은 걸로 정하면 되잖아?"
정말 가위바위보로 정하면 나는 조금 아쉽지만, 그것도 한 가지 해결책이기는 하다.

- 겐고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내뱉었다.
"꼭 아픈 데를 찌른다니까. 여기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뭔가 있구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물론이고 말고.
 
- 겐고가 작게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이 기획은 마키시마가 제안했어. 학교 근처에 독일 빵가게가 문을 열었더라, 거기서 베를리너 판쿠헨을 파는데 독일에서는 그걸로 연말에 게임을 한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걸 기사로 쓰면 어떨까. 기획은 통과됐지만 실은 지금 마키시마랑 몬치 사이가 좋지 않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냉전 상태라. 그러다 보니 마키시마는 꽝을 뽑은 몬치가 기획을 망치려고 입을 다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몬치도 의심을 사고 있다는 걸 알면 불쾌할 테고,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면 스기는 아마 마키시마 편을 들겠지. 이대로 범인을 알아내지 못하면 신문부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어. 이건 보기보다 심각한 문제야."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겐고... 은근히 배려심이 깊구나."
"넌 날 뭘로 보는 거냐?"
사람을 겉보기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이 험상궂은 도지마 겐고가 그런 배려를 하다니 솔직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점은 조금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었다.
"일단 확인 좀 할게. 네가 먹은 튀김빵은 꽝이 아니었지?"

겐고는 순간 눈을 부릅떴지만 바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내가 먹은 건 '꽝'이 아니었어."
겐고가 단언하는 정보는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오늘 내가 따르는 전제다. 그 전제에 따르면 이제부터 아무리 상황이 복잡해져도 겐고만큼은 '꽝'을 먹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은 건 세 사람.

- "머스터드는 안 넣었어."
어어?
"어떻게 된 거죠?"
다급하게 묻자 남학생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정을 제대로 설명 안 해준 모양이네."

- 그러더니 남학생은 가까이 있던 의자를 빼더니 내게도 앉으라고 권했다. 말에 따르자 그는 그렇게 복잡한 사정은 아니라고 단서를 두었다.
"어제 세바가 베를리너에 머스터드를 넣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베를리너를 가져온 세바에게 속에 넣을 머스터드로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나은 지옐로 머스터드가 나은지 물었더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매운 걸 넣어달라는 거야. 난처했지. 둘 다 별로 안 맵거든."
사실 그 점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세바 선배는 "매운 건 절대 못 먹는다"고 튀김빵 시식에 참가하지 않았다는데, 내 기억에 머스터드는 독특한 풍미와 산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매운 소스는 아니다.

- "괜찮아, 맛도 봐도 돼. 한 시간 정도는 여기 있을 테니 그전에만 접시하고 같이 돌려줘."
그리고 조금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노파심에 말하는데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 병원신세 질라."
타바스코가 눈에 들어가는 상황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위험한 걸 가정과 동아리에서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영 짐작이 가지 않았다.

- "고생했어, 조고로. 어땠어?"
훑어봐도 내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뭐, 겐고가 부탁한 일이지만 나는 내부 문제에 끼어든 외부인이므로 의자가 없는 것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뭐랄까, 서서 말하는 게 멋진 느낌이 든다. 손에 든 검은 병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 튀김빵에 든 게 타바스코라는 사실은 아직 비밀이다. 책상에 놓인 네 장의 종이에는 맛에 대한 감상이 적혀 있을 테니 그것을 본 다음에 말하는 게 낫다.
"어떤 맛이었는지 이미 비교해 봤지?"
그렇게 묻자 겐고는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네 아이디어니까. 네가 돌아온 다음에 확인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무심결에 기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 "거참, 뭐라고 해야 하나, 신경 써줘서 고마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내가 아니라 스기가 그러자고 했어."
시선을 돌리자 스기는 어깨를 움츠렸다.
나를 기다려줬다면 더 시간을 끌면 안 되겠지.
"얼른 볼까?"

- "내가 거짓말을 썼다는 거야?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그렇다, 스기에게는 동기가 없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동기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건 몬치지만 굳이 의심해 본다면 몬치와 마키시마의 대립을 부추기려고 스기가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사실은 신문부에 원한이 있던 마키시마가 부원들이 서로 의심하도록 만들어 해체로 몰아넣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요컨대 동기는 생각해 봤자 시간 낭비다. 낮은 가능성부터 착실하게 지워가는 게 낫다.

- 종이 접시를 네 개 꺼내 네 사람 앞에 하나씩 놓았다. 겐고도 의자로 돌아가 검은 타바스코 병을 들더니 흥미진진한 듯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진짜 매워 보이네."
"라벨이 영어가 아니더라. 못 읽겠어."
"12살 이하 어린이는 조심하라는데."
깜짝이야.
"읽을 수 있어? 어느 나라 말이야?"
겐고는 진중하게 병을 대형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농담이야."
내가 도지마 겐고한테 속았다고...?

- "정말이야, 독해."
"냄새가 그 정도야?"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절대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질문의 의미를 겐고가 눈치챘다.
"얼굴을 들이대고 냄새를 맡으면 당연히 그렇지. 다만 판쿠헨 속에 들어 있었어도 냄새로 알았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강하진 않아. 시식했을 때도 냄새를 꼼꼼히 맡은 녀석은 없었어. ... 그런 짓을 하면 슈거파우더가 코에 들어갈 것 같았고."
단서가 될까 싶었는데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을 모양이다. 스기는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색이었다.
"이걸 핥아먹으라고...?"
어쩐지 얼어붙은 표정의 몬치가 말만큼은 단호하게 했다.

"안 그러면 답답한 채로 있어야 해. 먹어보자."

- 그렇지만 혀를 내밀어 접시를 핥는 건 흉하니 요리사가 흔히 하듯 손가락으로 떠먹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와, 신문부 네 사람은 손을 씻으러 부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안 먹어봐도 되나 불안했지만 아무도 함께 고통을 분담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대로 모르는 척하자.

- 정말 하고 싶은 질문은 지금부터다.
"그런데 왜 세바 선배가 받으러 간 거야?"
이렇게 말하면 뭐 하지만 1학년들의 기획을 위해 2학년인 세바 선배가 심부름을 하다니 조금 이상했다.
"알다시피 선배는 매운 걸 못 먹는다며 기획에서 빠졌어. 게다가 라이브를 앞두고 동아리를 빠지는 날이 많아진 것도 미안했던가 봐. 그 정도는 돕게 해 달라며 판쿠헨은 자기가 받아 오겠다고 했어."
마키시마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 몬치는 파이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슬그머니 웃었다.
"갑자기 어깨를 두드려서 깜짝 놀랐어."
"시간은?"
"글쎄, 기억 안 나. 시계도 안 보고 원고를 쓰고 있었으니까."

- 당신이 계속 이 부실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사람은 있습니까, 하고 묻고 싶었지만 문제는 몬치의 부재증명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했다가는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그러지 말자.

- 몬치가 알고도 남겠다는 듯이 끄덕거렸다.
"절대 못 참지. 그건 불가능해."
한편으로 겐고는 눈썹을 찌푸리고 있다.
"따귀를 맞을 줄 알고 이를 악물고 있었는데 배를 얻어맞는 꼴이군. 듣고 보니 당연히 얼굴에 드러났을 거야. ... 그럼 어떻게 된 일이지? 타바스코가 든 튀김빵은 어디로 간 거야? 누가 먹었어?"

- "애초에 뭘 먹은 거지? 빵은 네 개였잖아."
전부 지당한 의문이다. 시식 타이밍에 꽝을 뽑은 사람이 없다는 명백한 결론에 이르려면 벽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게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벌어진 일이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증언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 거짓말, 배려가 이야기를 복잡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다. 그러한 증언들의 불완전한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가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절로 보일 터.
검토는 이미 끝났다. 그것을 어떻게 말할지만 남았다.

- 상황을 왜곡시켜 불가사의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전부 정리해 보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렇게나 명백하다.
"이럴 수가..."
겐고가 중얼거렸다.
"아무 상관없는 학생이 타바스코가 든 베를리너를 먹었단 말이야? 너무 운이 없잖아, 5분의 1인데."
"그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운이 없었어. 사고야, 이건."
"사고라고 해도... 어이, 어쩔 거야?"
마지막 말은 내가 아니라 신문부원들을 향한 질문이었다.
"어쩌다니, 어, 어쩌지?"
"교내 방송으로 알릴까? 먹지 말라고."
"안 늦었을까? 한 시간도 더 됐는데."

- 거품을 물고 지금까지 없던 단결력을 보여주는 신문부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알지 못하는 외부의 범인을 생각했다. 정말 안 됐다. 그저 설문지를 내러 왔을 뿐인데. 분명 나와 마찬가지로 반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리라. 튀김빵을 보고 그 자리에서는 먹지 않고 가지고 돌아갔다. 아직 먹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먹었다면...
얼마나 놀랐을까? 처음에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한바탕 콜록거리다가 물을 마시러 달려갔겠지. 입술이 새빨갛게 부었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창문을 열고 바람이라도 쐬며 붓기를 가라앉히려 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혀도 굴러가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어쩌면... 
"아."
"왜 그래? 뭐 또 알아냈어?"
진지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묻는 겐고에게 나는 허둥지둥 손을 저었다.

-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설문지를 내러 온 그 학생은...."
"뭐야, 말해."
나는 무심결에 침을 꼴깍 삼켰다. 입술이 붉고, 혀가 굴러가지 않는 그 학생은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 아마 눈물까지 흘리지 않았을까 싶어서."
겐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무슨 소리냐고 중얼거렸다.

 

- <베를린 튀김빵 수수께끼>



- "그럼 나도 그걸로."

"아니면 앙금 단팥죽."

"그럼 나도 그걸로."

오사나이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고바토는 주체성이 없어?"
나도 메뉴 좀 보여줘.

- 주위를 둘러보니 주문할 수 있는 메뉴를 적은 종이가 황갈색 벽에 붙어 있어, 그걸 보고 골랐다. 결국 오사나이는 통팥 단팥죽을 주문했고, 나는 앙금 단팥죽을 주문했다. 오사나이는 어째선지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고바토는 앙금을 골랐구나. 우리가 조금 더 친했다면 나눠 먹자고 했을 텐데."
둘 다 주문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오사나이는 아마 정말 두 그릇을 주문할 테고, 그런 짓을 하면 아무래도 저녁을 못 먹겠지. 오사나이의 영양 밸런스를 고려해 지금은 잠자코 있자.

- 그나저나 오늘 오사나이는 조금 이상하다. 뭐랄까. 모처럼 달콤한 디저트 가게에 왔는데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달까,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이윽고 도착한 단팥죽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두 손을 모으고 기도까지 하기 시작했다. 식전 인사는 꼬박꼬박 하는 친구지만 이렇게 열심히 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무심코 물었다.
"왜 그래? 진지하게."
오사나이는 작게 신음하며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기색이었지만 단팥죽을 앞에 두고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는지, 한숨을 쉬며 짤막하게 말했다.
"올해 첫 디저트에 액막이를 부탁했어."
말하자면 새해 첫 디저트로 운수대통 기원인가? 그런 풍습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 "작년에는 평온하게 달콤한 디저트를 먹은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특히 하반기는 엉망이었어."
그 말을 끝으로 오사나이는 목도리를 풀고 나무 숟가락을 들어 통팥을 뜨더니 몇 번이나 후후 불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사나이는 뜨거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 하반기가 엉망이었다는 건, 코기 코스모스의 중학교 문화제에서 뉴욕 치즈 케이크를 한껏 음미하고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먹으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납치당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일을 뜻하리라. 그리고 아마 신문부 사건도. 그렇다면 초가을은 어땠을까? 화제의 신규 점포가 문을 연다고 나고야까지 가서 마카롱을 주문했는데, 세 개가 나와야 할 마카롱이 어째선지 네 개로 늘어나 있었다. 오사나이와 나는 그 이유를 풀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마카롱을 먹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 "파티스리 코기는 괜찮았을 텐데?"
그렇게 묻자 오사나이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뚝 멈추었다.

"그래..."
"만족스럽지 못했어?"
"그렇게 멋진 계절 한정 마카롱을 눈앞에 두고, 난 집중을 못했어. 기억나는 건 반지뿐... 이 분통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있을까?"
무도가 같은 말을 한다.

- 내가 주문한 단팥죽도 나와서 재빨리 한 입 먹어보았다. 열기와 당분이 몸에 남아 있던 추위를 단숨에 몰아내서 등줄기가 찌릿찌릿했다. 둘이서 마주 앉아 한동안 말없이 숟가락을 놀렸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이번에는 젓가락을 들어 잘 구워진 다갈색 떡을 먹어보니 탄력이 절묘해서 몹시 기분이 좋았다.

- "그래서?"
나는 물어보았다.
"작년에는 불행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던 거지?"
확실한 근거는 없다. 작년에는 운수가 사나웠다고 줄곧 생각하다가 올해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액막이를 하기에는 3학기가 시작된 지금 시기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오사나이는 숟가락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 역시 감이 예리하네."
"고마워."
"감이 예리한 사람은 좋아해. 나를 꿰뚫어 보지 않는 한.

"오사나이는 숟가락에서 손을 떼고 가방에서 얇은 잡지를 꺼냈다. 역이나 서점에서 본 적 있는 '오르카'라는 이름의 지역 정보지다.

- "권두 기사를 봐."
시키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자 나고야에서 일본 이탈리아 파스티체레 교류회가 열린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파스티체레는 파티시에의 이탈리아어라는데, 일본과 이탈리아의 파티시에들이 스탠딩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물어보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바로 답을 물어보면 재미없지, 이 기사의 무엇이 오사나이를 자극했는지 맞혀보자.

- 어라, 싶어 차례를 보니 새로 문을 연 케이크 가게의 정보나 선물용 신제품 소개가 쭉 나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정보지는 디저트 애호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 이탈리아 파스티체레 교류회에서는 시내의 양과자점 몇 군데가 솜씨를 발휘해 이탈리아 과자를 준비했다는데 주파 잉글레제니 자바이오네니 하는 건 대체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티라미수나 판나코타라면 나도 안다. 오사나이는 화려한 이탈리아 과자의 기사를 읽고 문득 스스로가 처량해진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하는 내게 짜증이 났는지 오사나이가 짤막하게 말했다.
"사진."

- 아아, 사진인가. 그러고 보니 제대로 보지 않았다. 어딘지 몰라도 호텔인지, 카펫이 깔린 바닥은 널찍했고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조각인지 엿으로 만든 건지, 테이블 위에 커다란 샤치호코가 등을 젖히고 있다. 이건 나고야를 상징하는 걸 테니 어딘가에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조각이 있을 텐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 "이 기사를 봤을 때 난 열이 있었어. 침대 속에서 너무 힘들어서, 다 나으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다. 좋은 일이 없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멋진 파티 기사를 읽었더니 코기가 뺨에 크림을 묻히고 웃고 있는 거야."
듣고 나서 자세히 보니 확실히 코기의 뺨이랄까 입술 끝에는 크림이 묻어 있었고, 그게 또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건 샘 날 만하네."
"부러웠다니까."
그렇게 의미가 다른가...?


- "일단 묻겠는데, 열은 내렸어?"
오사나이는 살짝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이젠 괜찮아. 고마워."
천만에. 오사나이는 떡을 쏙 삼키고 차조기로 자줏빛을 낸 가지절임으로 입가심을 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 "이거 굉장한 잡지네. 오르카라는 건 케이크 용어 같은 거야?"
 오사나이는 단팥죽을 뜨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샤치."
샤치라면 범고래인데, 듣고 보니... 단순히 나고야의 지역 정보지니까 나고야가 연상되는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오사나이는 단밤조림을 오물오물 먹고 녹차를 마시더니 왼손집게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오르카>는 원래 평범한 지역 정보지였는데, 육 년 전쯤에 편집장이 바뀐 뒤로 디저트에 주력하기 시작했어. 이 차별화 노선이 성공해서 지금은 시외에서도 잘 팔려."

- "특히 해마다 게재하는 '연말 <오르카>가 주목한 올해의 디저트 가게 랭킹'은 의외로 영향력이 강해서, 이 순위에 들면 도쿄나 오사카의 백화점에서도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있어. 작년까지는 삼 년 연속으로 야고토에 있는 마로니에 샹이 1위였지만 올해는 1위가 바뀌었어."
예상이 된다.
"혹시, 코기 하루오미?"
오사나이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끄덕였다.
"잘 아네. 고바토, 맞아.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가 올해의 1위였어."
가을에 오픈했을 텐데 연말 랭킹에서 단숨에 1위를 꿰차다니, 경이로운 속도로 진격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 가게에 오픈 직후부터 찾아갔으니 오사나이의 안테나는 실로 성능이 좋다.

- "굉장하네. 가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네."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오사나이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래. ... 그저 맛있었다고 말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아, 또 어두워지고 말았다. 오사나이는 녹차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찻잔을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 "... 어쨌거나 올해는 좋은 일이 있으면 좋겠어. 과자 속에 이상한 물건도 들어 있지 않고, 모처럼 산 타르트를 도둑맞는 일도 없이, 케이크를 먹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끌려가지도 않고, 충족된 기분으로 멋진 과자를 마음껏 맛보고 '예, 이제 충분히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마죽인가?
"그 점에서 오늘은 괜찮겠네."
격려할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오사나이는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끄덕였다.
"응. 단팥죽, 굉장히 맛있어. 몸이 녹아."

(역자 주 : 마죽에 집착하는 주인공을 다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마죽>에 빗댄 것.)

- 그렇지만 진심으로 충족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운수대통을 기원할 새해 첫 디저트로 정월에 어울리게 떡을 먹었고, 맛있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삼매경과는 조금 뉘앙스가 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애처로운 이야기를 들었으니 저녁 식사를 염려할 때가 아니다. 일찌감치 그릇을 비우고 내 앙금 단팥죽을 힐끔거리는 오사나이에게 제안했다.
"한 그릇 더 주문하지 그래?"
"어... 하지만, 그런... 안 돼, 고바토. 하지만... 그럴까?"
누구더러 보라고 고민하는 척하는 걸까? 결론이 났다면 오로지 행동할 따름 아닌가! 그리고 실제로 오사나이가 점원에게 한 손을 든 순간, 나직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진동으로 설정한 휴대전화가 착신을 알리는 소리다. 무심결에 주머니를 더듬었지만 내 휴대전화는 조용했다. 오사나이가 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착신 표시를 보고 중얼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니까."

- 단팥죽을 다 먹고 난 뒤라 다행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오사나이를 지켜보며 나는 다시 내 앙금 단팥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릇은 아직 뜨거웠고, 고운 단팥죽은 굉장히 단데도 질리지 않았다. 가게에서 단팥죽을 먹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좋은 걸 배웠다. 새콤한 가지절임도 입가심에 안성맞춤이고, 중간중간 마시는 녹차도 평소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아아, 몸이 녹는다.
그때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오사나이가 미닫이문을 열고 돌아온 것이다. 어지간히 추웠는지 두 팔로 몸을 끌어안고 있다. 방한구도 없이 밖에 나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천천히 의자에 앉는 표정이 조금 흐린 것은 비어버린 내 그릇과 조금은 상관이 있을 것 같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 같다.

- "누가... 왜 그런 짓을..."
"... 알고 싶어?"
오사나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분명 네 이야기만 들으면 누군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게 누구였는지... 누가 너를 덫에 빠뜨리고 모함했는지... 어쩌면 그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코기가 새빨간 눈으로 오사나이를 바라보았다.
"잘 들어, 코기. 네 적이 누구였는지, 정말 알고 싶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렷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 나는 알 수 있다. 오사나이는 코기가 포기하길 원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상황에 체념하고, 이런 일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소시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에 오사나이는 거듭 말했다.
"숨은 사정을 알려고 하면 대개 대가를 치르게 돼. 이런 짓까지 해가면서 알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코기는 망설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 "용서할 수 없단 말이에요!"
"그래."
고개를 숙이고 있어 오사나이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슬퍼하고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웃고 있었을까? 오사나이는 하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내가 도와줄게."

- "얘가 가야즈예요."
연말 파티로 술을 마시고 정학 처분을 받았다기에 요란한 외모일 줄 알았는데 그런 단순한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생각해 보면 고기가 다니는 레이치 중학교는 비교적 엄격한 곳이니, 지나치게 기발한 모습으로는 학교 행사에 참가할 수 없을 것이다. 릴레이 모습을 찍은 듯했는데 사진 속의 가야즈는 팔다리가 시원스레 길쭉하고 뒤로 묶은 머리카락은 풀면 제법 길 것 같았다. 생김새가 어른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어딘가 중학생 티는 묻어난다. 
"외웠어."
오사나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부탁해서 사진을 빌리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 "별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가야즈 그룹 하고는 사이가 나빴어?"
혹시 몰라 그렇게 묻자 코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학급 행사에서는 서로 돕기도 했고 용건이 있으면 얘기도 했어요."
내게는 역시 거리감을 느끼는 눈치였지만 질문에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나도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다는 건 빈말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어째서 절 가야즈 그룹으로 오해했는지 모르겠어요."
특별히 문제 되는 점은 없는 발언이었지만 오사나이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 정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코기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아아, 어딘가 말투가 딱딱하다 싶었더니, 남자 앞이라 긴장한 게 아니라 거짓말을 한 건가. 나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

- "전부 말해주지 않으면 힘이 되어줄 수 없어. 나도, 고바토도, 네가 무슨 말을 해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거짓말은 안돼."
코기가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 딱 한 번, 함께 노래방에 간 적이 있어요. 문화제 뒤풀이로 반 아이들 절반 정도... 하지만 술은!"
오사나이가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그것 말고 잊은 건 없어? 가야즈는 물론이고 사다나 도치노하고도 아무 일 없었어?"
"어... 사다하고는 정말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어요. 도치노는 제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지만 왠지 성격이 안 맞아서.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까, 피하는 느낌이었어요."
코기의 케이크 굽는 실력은 진짜다. 도치노가 취미 삼아 쿠키 굽는 걸 조금 좋아하는 정도였다면 피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 "역시 가야겠네..."
오사나이가 엄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중얼거렸다. 앞머리에 가린 눈으로 나를 힐끔 보더니 묻는다.
"고바토, 낯선 동네에서 잠복이 가능할까?"
"못 할 건 없겠지만, 오사나이는 가야즈 하고 접촉하려는 거지?"
"응."
"그럼 잠복도 좋지만 이런 건 어때?"
코기에게 물었다.
"가야즈의 전화번호나 연락처 알아? 안다면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연락해 봐."
오사나이가 손을 탁 쳤다. 그런 수가 있었구나. 하는 반응이겠지. 잠복이나 감시부터 떠올린다는 점이 실로 반소시민적이다. 나중에 찬찬히 이야기하자. 코기는 끄덕이더니 바로 휴대전화를 가지고 왔다.

- 가야즈 미쓰키는 코기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침 점심때라 각자 식사를 마치고 1시에 나고야 역 지하상점가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코기의 말에 따르면 별로 인기 없는 가게로, 토요일 오후에도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이 회견에 코기는 동행하지 않는다. 만약 '자택 학습' 명령을 받은 코기와 가야즈가 접촉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코기는 가야즈 그룹의 일원이라는 의혹을 증명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코기의 '사촌 언니'가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으로 가야즈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 약속 장소로 지정한 카페는 '부악'이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이었는데 내부 인테리어도 고풍스럽고, 나오는 음악도 고풍스럽고, 콧수염을 기른 과묵한 카페 주인도 고풍스러운 데다가 커피만 주문했는데 토스트와 미니 샐러드, 삶은 계란에 유부초밥까지 딸려 나왔다. 가야즈와 직접 접촉하는 것은 오사나이 혼자 하기로 하고 나는 오사나이와 가까운 자리에서 몰래 엿들을 계획이다.
오사나이는 나중에 한 명 더 올 거라고 설명하고 4인석 소파 자리를 혼자서 차지했다. 휴대전화로 "푸딩 아라모드가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기에 "점심 식사가 될 만한 걸로 시켜"라고 답장을 보냈다. 오사나이도 디저트로 식사를 때울 마음은 없었는지 샌드위치를 시켰다. 나도 오사나이도 무사히 식사를 마치고 오사나이는 코코아를, 나는 커피를 리필하고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 머리를 감쌀 정도로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뜻일까? 어쩌면 머리를 마사지해서 아이디어를 내놓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도 전자겠지. 산폰기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합당한 입장이 필요하다.
"산폰기 선생님을 미행해서..."
알았으니 미행 얘기는 이제 그만. 괜히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나는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면담을 요청했을 때 무시하지 못하는 상대는 보호자뿐이겠지."
나나 오사나이가 아무리 연기력을 발휘해도 코기의 보호자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두 손 들었다는 의미로 말한 건데, 오사나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 그렇구나! 역시 고바토야. 코기의 보호자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돼. 간단한 일이야."

- 장사 대목인 주말에 쉬지는 않을 테니 토요일인 오늘. 그는 이 동네에 없다. 그리고 코기 코스모스의 어머니는 고인이다.
"생각해 보니 코기는 평소 어떻게 지낼까? 아직 중학생인데 그 맨션에서 혼자 사는 거지?"
문득 생각나서 중얼거리자 오사나이가 싸늘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작년 가을에 이미 알지 않았느냐고 말하고 싶은 눈치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 코기의 생활을 신경 쓴 적은 없었다.
"근처 단독주택에 할아버지하고 할머니가 계셔서 이래저래 돌봐주시는 모양이야. 아버지는 도쿄에서 함께 살자고 한다는데 이쪽에는 친구도 있고, 지금 학교도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고 들어왔고, 이제 일 년밖에 안 남았으니 어쩔까 계속 고민 중이라고 했어."
"그렇구나."
딱히 코기를 걱정한 건 아니지만 조금 마음이 놓였다. 각자 음료를 마셨다. 이윽고 오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방법은 하나야."

-

"코기야?"
"응. 그 사람한테 말할 바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래."

뭐, 그렇게 말하겠지.
"그래도 가는구나?"
오사나이는 나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대답할지 알면서,라고 말하고 싶은 듯 타박하는 눈초리로.
"그 애가 무슨 일이 있어도 알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친절하게 고통까지 예고해 주었다. 오사나이는 걸음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어찌나 성큼성큼 걷던지 빨간 신호에 그대로 달려들 뻔해서 옷깃을 붙잡아 세웠다.

- 걸어가면서 오사나이가 물었다.
"가야즈가 한 이야기에서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어?"
있다면 있다.
"가야즈 그룹한테는 산폰기 선생님이 통보했고, 코기한테는 담임인 후카야 선생님이 통보했어. 하지만 그건 단순히 그때 누구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거나, 가야즈 그룹이 특별히 문제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거나, 그런 차이겠지. 중요한 문제 같지는 않아."
오사나이가 끄덕였다.
"하지만 가야즈 그룹과 코기 사이의 시간 차는 이상해."

오사나이는 목도리 속에 파묻힌 고개를 힘겹게 갸웃거렸다.
"시간 차...?"
"가야즈 그룹은 파티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서 정학을 당했어. 아마 도치노하고 사다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코기는 달랐어. 혼자만 하루 늦었어.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해."
오사나이가 만족스럽다는 눈으로 끄덕거렸다.

"난 그건 주목하지 않았어. 역시나 고바토야."
그러지 마라.

- 다사카 씨의 입술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코스모스가 그렇게 말했니?"
"다사카 씨하고 아버지가 결혼했다고만 말했어요. 그 애는 제가 여기에 온 것도 모르고, 알면 아마 저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다사카 씨가 겹치고 있던 손을 바꾸자 왼손이 보였다. 반지는 보이지 않았다. 일할 때는 반지를 끼지 않는 것이리라.
"... 정학이라니. 몰랐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온화하고 이지적인 다사카 씨의 표정에 자조가 스친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자제심은 간신히 몸에 익힐 수 있었다. 

- 코기는 부조리한 징계를 한탄하며 오사나이에게는 울면서 전화했지만 다사카 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리라. 그렇지만 도쿄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코기 하루오미가 딸의 정학을 몰랐을 리는 없다. 코기 코스모스가 숨기려 해도 학교에서 연락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재혼상대인 다시카 씨에게는 딸의 상황을 전하지 않았다. ... 타인의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만나본적도 없는 코기 하루오미가 왠지 싫어졌다.

- "알았어."
다사카 씨의 말에서 망설임이나 당혹감이 싹 사라졌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지?"
오사나이가 몸집도 작고 생김새도 어딘가 아이 같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행동도 늘 침착한 건 아니다. ... 잔뜩 쌓인 마카롱을 보면 흐느적거리기도 하고. 그런 오사나이를 첫 만남에서 신뢰하고 지시를 구하는 어른은 처음 보았다. 오사나이도 조금 당혹스러워하면서 말했다.
"학교에 전화해서 학생지도부 산폰기 선생님하고 면담을 해주세요. 코스모스의 정학 건으로 꼭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씀해 주세요."
"산폰기 선생님이란 말이지?"
"상대가 수락하면 저도 동행할게요. 언니라는 명목이면 되지 않을까요?"
다사카 씨는 잠깐 오사나이를 응시했다. 언니가 나을지 동생이 나을지 생각한 게 아닐까?

 

- 산폰기 선생님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토요일에 다시카씨가 가게를 비울 수 있는지가 문제라는 건 아마 오사나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속도를 요구하고 있다. 오사나이의 말은 지당하지만 가혹하다. 보통은 그 정도로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다시카 씨는 잠자코 끄덕였다. 사무용 책상에 놓아두었던 휴대전화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중요한 학교 연락은 오지도 않을 텐데, 코기 코스모스의 중학교 전화번호는 등록해 두었나. 잠시 후 상대가 받은 듯했다.

- 이윽고 통화를 마친 다사카 씨는 휴대전화를 든 채 말했다.

"계시대. 가자."
가게는 괜찮은지 마음에 걸린다. ... 아니, 괜찮을 리가 없다. 그래도 다사카 씨는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다면 괜한 질문은 할 필요도 없겠지.

- 레이치 중학교에는 다사카 루리코와 오사나이가 찾아가고 나는 밖에서 기다릴 예정이다. 다사카 씨를 줄줄이 따라가서 '어머니입니다', '언니입니다', '불초 오빠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나는 나고야 역으로 돌아가 역 빌딩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어디 가게에 들어갈 생각도 했지만 나고야까지 오는 열찻값이나 부악에서 마신 커피값을 생각하면 지갑 끈을 동여매고 싶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 서점으로 가니 토요일이라 역시 손님이 많아, 계산대에는 계산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 서 있었다. 문고 신간 코너를 훑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 "산폰기 선생님은 남의 이야기는 잘 듣지도 않고, 그 나이대 아이는 거짓말을 잘한다, 학교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자택에서 지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말만 자꾸 해대서 나중에 다사카 씨는 화를 냈어. 제대로 조사해보지도 않고 결정을 밀어붙일 생각만 하는 엉터리라고."
다사카 씨는 화를 냈다. 말투에 뭔가 꿍꿍이가 있다.

"오사나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구나?"
목도리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오사나이의 눈에 웃음기가 서렸다.
"증거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보여줬거든. 빌려달라고 했더니 프린트한 사진을 줬어. 그렇게 양심적인 선생님은 처음 봤어. 어떻게 화를 내?"
그건 대단하다.
"아무리 보호자라고 해도 외부인에게 정보를 넘기다니 정말 좋은 사람이네. 어지간히 능숙하게 교섭했나 봐?"
"코스모스가 절대 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증거를 보여주고 싶다고는 했지."
"아마 그 말을 믿은 거겠지."
"... 미안한 짓을 했어."
자기가 한 거짓말이라도 상대가 그 거짓말을 진짜로 믿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 "전부는 모르는 것 같았고, 상대에게 폐가 될 테니 물어봤자 알려주지 않을 거야. 게다가 만약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 있다면 누가 저장했는지 밝혀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그런가..."
코기는 프린트한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째서 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죠? 파티에 갔던 누군가 저를 원망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짐작 가는 사람은 있어?"
오사나이가 묻자 코기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누군가 저를...!"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 나는 지금까지 몇 차례 숨은 적의를 꿰뚫어 본 적이 있다. 웃음 뒤에 타인을 모함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적이 있다. 하지만 적의에 노출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목격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 자기를 모함했다는 것을 코기는 알고 있었을 텐데, 지금 그 적의의 결정체인 합성사진을 눈앞에 두고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런 모습인가. 
나는 단순한 소시민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영리한 척하는 참견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조금은 도울 수 있을까? 누가 적의를 쏟아냈는지 밝히면 코기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질까? ... 나는 그 점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래, 코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적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와서 망설이지 않겠다.

- "오사나이답지 않네." 
나는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누가 이 파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가' 하나만 문제가 아니야. 주목해야 할 점은 '누가 웃고 있는 코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누가 파티 사진과 코기의 사진을 둘 다 손에 넣을 수 있었는가'야. 코기, 웃고 있는 이 얼굴, 어디서 찍혔는지 모르겠어?"

- "자세히 봐. 여기, 뺨에 뭔가 묻어 있어."
"뺨?"

- 안색이 몹시 나쁘다. 목소리도 떨렸다.
"기억나요. 이름은 모르겠지만 제가 슈크림을 먹고 있을 때 다가오더니 이탈리아 과자 교류회인데 슈크림을 내놓다니 교양 없는 가게라고 했어요." 
"그 슈크림, 어느 가게에서 출품했는지 알아?"
"... 저희 가게요."
아, 그렇다면 아마도 코기 코스모스가 파티스리 코기의 오너 파티시에의 딸이라는 걸 알면서 일부러 빈정거리려고 다가간 것이리라.
"그때는 그저 즐거워서 깊이 생각도 않고 슈크림은 피렌체 공주님이 프랑스에 전해줬다고 들었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떠났어요."
오사나이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망신을 샀다고 생각한 걸까? ... 하지만 그 정도로 이런 사진을 만들어서 학교에 보낸 거야? 게다가 카운트다운 파티 사진은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그 의문들에는 답할 수 있다. 나는 <오르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코기, <오르카> 편집부에 전화해서 물어봐." 

- "용케 알고 있었네. 마로니에 샹의 파티시에가 도치노 씨라는 걸."
하필 파티시에 정보에서 내게 졌으니 내심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오사나이는 착각하고 있다.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그렇지 않을까 싶었던 것뿐이지."
"그냥 감이었다고?"
"으음. 감보다는 조금 더 근거가 있었지만."

- 목도리 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사나이에게 사고의 과정을 설명했다.
"아까 오사나이하고 다사카 씨가 레이치 중학교에 가 있는 동안 조사를 좀 했어. 도치노 미오의 마로라는 별명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거든. 어째서 마로라고 부르는 걸까, 그러고 보니 마로가 붙는 단어를 최근에 다른 데서도 들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어. 도치노 미오는 제과에 관심이 있다고도 했고, 혹시나 싶었는데 빙고였던 거지."

- "간단해. ...  '도치'를 사전으로 찾아봤어."
낙엽수로 산지에 자생한다는 정보가 적혀 있었고 그 끝에.

"마로니에' 항목을 참조하라고 적혀 있었어. 마로니에는 서양칠엽수를 뜻한대."
오사나이가 작게 신음했다.

- 사건 관계자 중에 도치노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고, 파티스리 코기에 밀려난 마로니에 샹이라는 가게가 있고, 마로니에는 서양칠엽수를 뜻한다. 나는 이 세 가지 부호가 우연이 아니라 도치노 미오의 아버지가 마로니에 샹의 파티시에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거기에 합성사진의 원본 데이터가 일본 이탈리아 파스티체레 교류회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더해지면 문제 해결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범인은 알아냈다. 모함한 이유도 거의 알아냈다. 코기의 마음은 조금은 풀어졌을까? 혹은 적의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는 허망함에 빠져 있지는 않을까?

- 아까 코기의 집에서 물러날 때 오사나이는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합성사진이라는 증거가 있으니 그것을 <오르카> 편집부에 보낼 수도 있다. 도치노 파티시에가 저지른 짓을 써서 투서하면 된다. <오르카> 지면에서 마로니에 샹의 위상이 분명 달라질 거라고.

 

- "있지. 오사나이."
"왜?"
"코기는 투서를 할까?"
복수를 위해서.
오사나이는 왠지 졸린 표정이었다. 멍하니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
"안 하겠지. 그 애는 착한 아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오사나이는 침묵했다. 피곤해서 잠든 것이리라. 오사나이를 깨워야 하니 나는 자면 안 될 것 같다.  

- 돌아온 수요일, 오사나이와 나는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에 초대받았다. 정기 휴일이지만 텔레비전 취재 때문에 출근한 다사카 루리코 씨가 취재가 끝난 뒤에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이다.
"유키 선배한테는 큰 신세를 졌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코기의 얼굴은 밝았다. 합성사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같은 반 친구인 도치노 미오와는 이야기를 나눠봤는지... 그런 질문은 나도 오사나이도 하지 않았다. 부탁받은 일은 끝냈다. 그 이상은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지도 않다.

- 다사카 루리코 씨는 유니폼 대신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
코기와 다사카 씨가 나란히 웃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뻤다. 지난주 토요일까지 코기는 다사카 씨를 미워했을 테고, 다사카 씨는 코기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다. 우리는 합성사진을 손에 넣기 위해 다사카 씨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을 코기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 대화를 나누었고, 적어도 서로의 거리를 좁힌 듯했다.

- 그런 변화를 오사나이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게에 한걸음 들어서자마자 오사나이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면서 우뚝 멈춰 서고 말았으니까.

-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의 내부는 과자로 가득했다. 파스텔컬러 마카롱 마블 무늬 마카롱, 원색에 가까운 마카롱. 커팅하지 않은 치즈 케이크, 쌓아 올린 슈크림 위에 초콜릿을 부은 타워. 크로캉부슈라는 이름은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프랑스 과자점인 파티스리 코기 아넥스 루리코에 진열될 리 없는 베를리너 판... 뭐더라. 으음, 베를린 튀김빵도.

- "전부 유키 선배 선물이에요!"
"촬영에 사용한 디저트라 가게에 내놓을 수도 없으니 괜찮다면 마음껏 즐기렴."
오사나이는 입을 벌려 뭔가 말하려 했지만 이상한 신음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 코기가 전화로 오사나이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데 어쩌면 좋을지 의논하기에 그럼 과자라도 대접해 주라고 조언했다. 그때 튀김빵 사건도 알려주었다. 오사나이는 분명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늘을 날아오를 기세로 기뻐할 줄은 미처 추리하지 못했다.
오사나이는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눈을 글썽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어, 응? 나 오늘 죽는 거야?"
코기가 까르르 웃었다. 때마침 6시 정각을 알리는 바깥의 대형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오, 아름다운 목장>의 멜로디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 <피렌체 슈크림 수수께끼>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