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정진호]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

일루젼 2024. 7. 3.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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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진호
출판 : 푸른숲
출간 : 2017.08.07 

 


       

깔끔한 책이었다. 

시간대 순으로 정리된 건 아니었지만, 주제에 맞춰 의약사 중 핵심적인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다루고 있다. 중간중간 다소 야사에 가까운 내용들도 적절히 섞여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약품에 비중을 둔 관점으로 바라본 시각이라 개인적으로는 더 집중하게 된 것 같다.   

 

현재는 순수하게 합성으로 만들어진 약품들도 많지만, 불과 1-20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발견'해야 했다. 해당 물질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도 문제였지만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투여할 것인가를 정하는 게 중요했다. 약리학과 약동학이란 그런 고민과 고난의 역사를 정리한 학문이기도 하다.

 

'약'이란 그 놀라운 효용에도 불구하고 -부작용까지도 포함해서-, 그 용도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오히려 불편함이나 해악을 초래하기도 했고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식재료이기도 했다.

 

일상적인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때가 있다. 

즐겁게 읽었다.    

   


   

 

- 왜 정부와 전문가의 말을 떠도는 소문이나 광고보다 신뢰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그 이유를 나는 두 가지로 꼽아봤다. 

- 우선 전문가와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괴리감이 크다. 긴 대기시간 끝에 의사를 만났지만, 짧은 면담 시간에 쫓겨 궁금한 점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선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전문가에게 정보를 얻고 싶어도 그 문턱이 너무 높거나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전문가 역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모두 답하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막막함을 느낀다. 

- 둘째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과잉 처방과 조제,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가가 잘못된 판단으로 오히려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병원에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병원 밖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를 신뢰하지 못하고, 비전문적 정보에 휘둘리는 이유다.

- 나는 이 책을 전문가와 비전문가인 일반 소비자 사이의 거리감과 인식 차이를 좁힐 목적으로 썼다. 또 약을 둘러싼 시중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와 흔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 썼다. 약과 건강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개념을 알면,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약을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 치명적인 실패, 죽음이라는 대가도 따랐다. 특히 혁신적인 발견을 이룬 과학자 대부분은 기득권자 또는 음모론과 싸워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지난한 투쟁을 거쳐 많은 과학자가 병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여 2015년 인류의 평균수명은 71세에 이르렀다.

- 이 책의 1부는 우리가 약에 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주제들로 꾸렸다. 줄리어스 시저는 "대중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고 했다. 위약 효과라고 말하는 플라시보는 단순한 믿음인지, 아니면 과학인지를 고대의 민간요법부터 현대 임상의학까지 이어진 역사를 통해 알아보았다. 또한 설사를 하는 아이에게 죽이나 수프를 먹이는 동서양의 전통 민간요법이 매우 과학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실례로 경구수액제를 들어 살펴보았다. 요즘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먹는 것 중에 비타민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비타민에 얽힌 여러 오해와 진실을 과학적 시각으로 풀어보았다. 

- 역사적으로 우울증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을 달려왔다. 우울증이 저주라고 믿었던 시대와 축복으로 여기던 시대를 거쳐, 20세기 이후에 들어서야 우울증은 비로소 질병으로 인식되었다. 현재까지 시대별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현대 과학이 개발한우울증 치료제와 넘어야 할 한계 등을 담았다. 끝으로 인류가 오랫동안 탐닉한 술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술 깨는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를 들여다보았다.

- 2부의 주제는 약이 가진 독성이다. 16세기 스위스 화학자 파라셀수스 Paracelsus는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또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는 약과 독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약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독이 될 수 있는지, 약이 독이 되면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를 명확히 알리고자 했다. 

-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에 좋다고 믿었던 약이 독으로 변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 대표 사례로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있다.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으로 전 세계에 1만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사건은 약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대 재앙이었다. 20세기에 벌어진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이 책에서 새삼 조명하는 이유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여러 측면에서 21세기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을 전하고자 그 내용을 별도로 다뤘다.

- 아편은 진통에 효능이 뛰어난 약이자 중독성이 강한 치명적인 독으로서 극단의 양면성을 지녔다. 아편 추출물로 만든 헤로인은 진통 효과가 뛰어났지만, 중독성이 강해 많은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망가뜨렸다. 최근 유행하는 디톡스는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 디톡스 제품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이를 불필요한 물질로 받아들여 몸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 플라시보 placebo는 효능이 확인된 약이 아닌 가짜로 만든 위약은 물론, 위약을 투여하는 것을 말한다. 위약의 모양은 일반 약과 유사하며, 밀가루와 설탕 등이 원료다. 플라시보에는 위약뿐 아니라 식염수 주사나 가짜 의료 기구 처치 또는 위장수술 등이 포함되며 플라시보로 치료받는 환자는 치료가 가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실제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위약을 먹은 환자 가운데 약 35%에서 증상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를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여기서 인체가 가진 선천적인 면역력과 같은 자연치유력과 플라시보 효과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플라시보'라는 말은 1785년 <신의학사전 New Medical Dictionary>에 의학 용어로 처음 등장했는데, 이때에는 '평범한 치료법 또는 약'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1811년에 들어와 플라시보 환자에서 효과를 주기보다는 기쁨을 줄 수 있는 약의 별칭으로 정의되면서 비로소 현대의 플라시보가 가진 의미와 가장 가까워졌다. 


- 18세기말 미국인 의사 엘리사 퍼킨스 Elisha Perkins는 특이한 금속 합금으로 제작된 약 8센티미터 길이의 날카로운 금속봉을 만들었다. 이봉은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침과 비슷했는데, 퍼킨스는 머리와 목 등의 통증과 염증 및 류머티즘 치료에 이 봉을 사용했다. 그는 통증 부위에 뾰족한 봉을 찔러 넣고 20분 정도 지나면 통증 뿌리 부위에 있는 독소가 빠진다고 주장하여 특허를 받았다. 그러자 코네티컷의사회는 이 치료법은 돌팔이 의사가 하는 짓과 다를 바 없다며 비난하면서 퍼킨스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하지만 치료법에 동조하는 의사가 점차 늘어났으며,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이 금속봉 치료 세트를 구입했다. 영국 일간지 <타임스>에는 "미국 대통령도 금속봉의 치료 효과를 인정했다"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 플라시보를 사용했는데 두통과 멀미, 불안감, 변비 등과 같은 부작용이 생기거나 더 불편한 증상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플라시보를 처방했는데, 부작용이 나타나는 현상을 노시보 nocebo 효과라고 한다. 같은 밀가루 약을 써도 환자가 증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 실제로 그렇게 증상이 나타나지만, 자신이 독한 약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플라시보 효과는 환자의 믿음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 플라시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이래로 의사들은 약 200년 동안 플라시보 효과의 신경생리학적 및 정신심리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해왔다. 최근에는 정신 mind-뇌 brain-신체 body의 삼각관계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정신-뇌-신체의 삼각관계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은 기대 효과 expectation effect 이론이다.

- 아픈 환자가 위약이나 위장 처치를 믿는 마음이 있으면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난다. 위약을 투여하는 기간이 늘어나거나 위약의 가격이 비쌀수록, 하루에 위약을 2번 먹는 것보다는 4번 먹을 때 플라시보 효과는 높아진다. 약의 색깔도 플라시보 효과에 영향을 준다. 황색 위약은 우울증 치료에 가장 효과가 있으며, 붉은색 위약은 환자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녹색 위약은 긴장을 푸는 데 가장 효과적이며, 흰색 위약은 소화 장애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위약 표면에 상품명이나 로고가 찍혀 있으면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은 위약보다 효과가 크다.
위약이나 주사 그리고 위장 처치 없이도 플라시보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신뢰하는 의사를 방문하기만 해도 증상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신뢰하는 의사를 방문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플라시보 효과가 높아진다. 

- 과거에 연구자들은 플라시보가 일으키는 정신심리학적 변화를 많이 연구했지만, 최근에는 신경생리학적 변화를 주목한다. 플라시보를 먹은 사람에게서 뇌가 활성화되고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관찰된 것이다. 환자가 플라시보를 먹을 때 증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면, 실제로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통증이 심한데도 약간 불편한 정도의 따끔거림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는 과거에 효과가 매우 좋았다고 기억하는 의료 처치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증상이 나아진 것처럼 느낀다. 플라시보를 먹으면 인체 면역력에 변화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 세포 활성이 억제되고, 질병이 치유되는 기간이 상당히 지연되는 반면에 플라시보를 투여하면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 플라시보는 환자가 과거에 약을 먹고 효과를 본 경험에 의존한다는 컨디셔닝 효과 conditioning effect 이론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치매 환자에게 통증 치료제를 보통의 용량으로 처방하면 통증 완화 효과가 적게 나타난다. 치매 환자들은 약을 먹은 사실을 번번이 잊으며, 통증치료제가 과거에 효과가 있었음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컨디셔닝 효과 이론을 뒷받침하는 다른 연구도 있다. 첫째 날에는 두 그룹 중 한 그룹에만 통증 치료제를 투여했다. 다음 날에는 두 그룹 모두에게 통증 치료제처럼 보이는 플라시보를 투여했다. 그 결과 첫째 날 통증 치료제를 먹은 그룹이 통증 치료제를 먹지 않은 그룹보다 통증에 반응하는 정도가 훨씬 낮아졌다. 전날 통증 치료제를 먹고 통증이 줄어든 경험을 기억해 플라시보를 먹을 때도 같은 치료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연구에서 혈액 내 호르몬을 증가시키는 약을 투여받은 환자에게 며칠 뒤 플라시보를 투여하자 비슷한 수준으로 혈액내 호르몬 수치가 높아졌다. 실제 약을 투여받지 못한 환자에게는 플라시보를 투여해도 혈액 내 호르몬 수치에 변화가 없었다. 

- 종합병원에서 '신약 新藥 후보 물질 임상 시험 자원봉사자 모집'이라는 공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시험관 실험과 동물 실험, 임상시험과 같은 여러 단계를 거쳐 개발되고 허가 기관의 승인을 받아 시판된다. 임상 시험 단계에서는 플라시보를 활용해 후보 물질의 효능과 부작용 여부를 평가한다. 임상 시험은 한 그룹의 피실험자에게는 신약 후보 물질을 투여하고, 다른 그룹에는 플라시보를 투여한 뒤 결과를 비교하여 판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실험에서는 자원봉사자가 자신이 플라시보를 먹는지 모를뿐더러 의사도 어떤 환자에게 플라시보가 투여되는지 모르는 이중맹검법 double blindtest이 사용된다. 임상 시험에서 플라시보를 사용하면 환자들의 기대효과를 최소화하고 의사들의 편견을 배제하여 약의 실제 효능을 정확히 판정할 수 있다.

- 질병을 치료하는 데 플라시보는 실제로 얼마나 쓰일까? 플라시보는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데 활용되지만 특히 통증 치료와 류머티즘 치료 및 우울증, 불안감, 수면장애 등을 치료하는 데 많이 쓰인다. 선진국 의사들은 치료나 약이 전혀 효과가 없을 때, 환자가 좌절감에 빠지지 않도록 플라시보를 사용하기도 한다. 2008년에 <뉴욕타임스>와 <타임스>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미국에서 의사들이 일상적으로 플라시보를 처방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약 50%의 의사가 플라시보를 쓴다고 응답했으며, 그중 96%의 의사는 플라시보가 치료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즉 미국 의사들의 절반가량은 적절한 치료 방법이 없을 때 적극적으로 플라시보를 처방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국내에서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플라시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은 의사가 처방과 조제를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판단에 따라 플라시보를 쉽게 쓸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신약을 임상 시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병원에서 외래환자에게 플라시보를 처방해도 약국에서 플라시보를 조제할 수 없다. 

- 네덜란드 후기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화가로서 널리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우울증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나는 미쳤거나 아니면 뇌전증(간질) 환자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버리기까지 했다. 뇌전증에는 통상적으로 우울증이 따른다. 그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주치의 폴 가셰 Paul Gachet가 추천한 약초인 디지털리스를 먹기도 했다. 고흐는 1890년 37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640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해바라기>, <밤의 카페>, <별이 빛나는 밤> 등 노란색 톤이 두드러진 작품이 많았다. 1981년 <미국의학협회저널>은 고흐가 후기 그림에서 노란색을 특히 많이 썼는데, 디지털리스의 부작용으로 사물 주위가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 xanthopsia을 앓아 사물의 색을 구 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다.

-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면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먼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많이 마셨던 술인 압생트 absinthe와 고흐의 시신경 장애와의 관련성을 검토했다. 우울증을 앓았던 고흐는 작품 속에 녹색의 압생트술병을 그려 넣을 정도로 압생트에 탐닉했다. 압생트는 높은 도수의 알코올에 약초에서 추출한 정유 essential oils를 넣어 만든 술이다. 정유 속에 든 주요 성분이 고흐를 환각 상태에 빠뜨려 뇌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었지만 시신경 장애와의 관련성은 찾을 수 없었다. 디지털리스의 부작용을 알고 있던 가셰 박사가 약을 주의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약초 부작용도 아니었다. 학자들은 황시증은 흰색과 노란색을 구별하지 못하고 청색이 녹색으로 보이는 증상인데, 고흐 작품 속에 쓰인 노란색과 흰색은 균형이 잘 맞고 고흐가 작품 속에서 청색도 자유롭게 표현했음을 주목했다. 고흐 그림의 노란색 톤은 시신경 장애와는 관련이 없으며 '예술적 감각에 의한 창조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 그렇다면 고흐가 앓던 우울증이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을까? 1995년에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Scientific American>은 창조성과 우울증 또는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 정신질환 사이의 상관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우울증은 흔히 우울감, 무기력, 짜증, 집중력 저하, 불면증, 두통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질환이다. 반면에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는 조증과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나타나 '양극성 기분장애'라고 부른다. 구스타프 말러,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에지라 파운드, 테네시 윌리엄스, 마크 트웨인 등이 우울증 또는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 정신질환을 앓았다. 또한 1705~1805년에 태어난 영국의 저명한 시인 36명을 조사한 결과, 조울증빈도가 일반인보다 30배가 높았으며, 20세기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절반은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앓았고 자살률도 일반인보다 13배나 높았다. 한 과학자가 작곡가 슈만이 일생 동안 썼던 작품과 조울증 발생 시점을 비교한 결과, 조울증이 생겼을 때 작품 활동이 매우 왕성했고,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도 이때 완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기분장애가 창조적 작품 활동에 어떻게 기여하는 것일까? 첫째로 기분장애는 생각의 양과 질을 동시에 증가시켜 예리하게 사고하도록 한다. 조울증 환자의 언어능력을 분석해 보면, 두운과 각운 사용, 특이한 단어 사용, 단어 조합 능력이 조울증 증상이 나타날 때 현저히 높아진다. 이러한 인지능력 변화는 연상을 독특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우울증과 조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생각의 위축과 확장, 주관의 결여와 적극성, 행동의 망설임과 분명함 등과 같은 내적인 혼란을 겪으며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변화와 창조의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술가와 문학가가 경험하는 기분장애는 위대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하는 셈이다. 

- 우울증은 현대사회에 들어와 비로소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우울증은 때로는 저주로 때로는 축복으로 인식되어 왔다. 히포크라테스는 우울증을 그리스어로 멜랑콜리아 melancholia라고 불렀는데, 이는 체액 중에서 흑담즙이 지나치게 많은 상태를 뜻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몸에는 4가지 체액인 혈액, 점액, 황담즙 및 흑담즙이 있고 체액의 균형이 깨질 때 병에 걸린다고 믿었다. 따라서 흑담즙이 많아질수록 심각한 멜랑콜리아에 빠지며 약초를 써서 흑담즙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 5세기에 수도승 존 카시안 John Cassian은 멜랑콜리아, 즉 멜랑콜리를 '대낮의 귀신'이라고 불렀으며 우울증 환자는 가족과 친구로부터 외떨어져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벌로 힘든 노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종교가 지배했던 시대에는 나태와 태만에서 생기는 죄악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고 믿었다. 

-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는 시, 수필 등의 문학작품에서 멜랑콜리를 찬미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귀족과 지식인은 멜랑콜리 기질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야누스적인 인간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묘사했다. 1621년 영국의 로버트 버턴 Robert Burton은 <우울의 해부 The Anatomy of Melancholy>에서 멜랑콜리한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다양한 각도에서 예리하게 파헤쳤는데, 그는 특히 멜랑콜리가 창조성을 가져다주는 축복임을 강조했다. 또한 멜랑콜리는 음악이나 춤을 통한 정신적 치료와 더불어 월계수, 센나 senna와 같은 약초를 사용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연극에서도 멜랑콜리가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침울하며 기분 변화가 심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파헤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대표적이다. 

- 18세기 후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멜랑콜리를 보는 시각이 또다시 바뀐다. 몸을 기계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입해 멜랑콜리를 혈류량이 적어지고 피부 탄성이 감소해 일어나는 인체 오작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영국 의사 조지 체이니 George Cheyne는 멜랑콜리가 산업화가 가져다준 편안함과 풍요로움 때문에 생긴 병이며 증상을 없애려면 강인한 인간을 만드는 스파르타식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멜랑콜리 환자를 그들이 안온함을 느끼는 환경으로부터 격리하고 노동이나 운동을 통해 우울감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1704년 런던에서 우울증 전문 치료사가 있는 사립 정신병원이 생겼고 그 뒤로 점차 늘어나 1800년에는 40여 개에 이르렀다. 

- 최근 주목받는 계절성 우울증 Seasonal Affected Disorder, SAD 치료에도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SSRI를 1순위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우울감, 무기력, 대인 기피, 불면증, 과식 증상을 보이는 계절성 우울증은 겨울에 주로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계절성 우울증 환자가 생길 비율은 미국 남부에서는 1.4% 정도이지만 북부에서는 9.9%로 위도가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 1980년대 한 미국 정신과 의사는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기분장애 증상과 함께 살이 찌다가 봄이 되면 그 증상이 없어지는 계절성 우울증 환자를 치료했다. 한 해는 그 환자가 자신이 살던 뉴욕을 떠나 자메이카로 한 달간 여행을 했는데 모든 증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기서 의사는 우울증 치료에 햇빛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계절성 우울증 환자의 특징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탄수화물이 들어간 간식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는 배고파서가 아니라 탄수화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이 뇌 속에 선택적으로 많이 들어가 세로토닌을 만들어냄으로써 기분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밝혀졌다. 또한 햇빛이 망막 신경을 거쳐 뇌에 보내는 신호에 따라 세로토닌이 만들어지는 양이 좌우되는데, 햇빛이 부족하면 세로토닌 농도가 적어져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나타난다. 계절성 우울증 환자들이 하루 2시간씩 2500룩스를 쬐는 광치료를 받으면 우울증 증상이 좋아지고 저녁에 탄수화물을 먹는 횟수와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 흔히 윈터 블루스 winter blues라고 불리는 계절성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계절성 우울증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적절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야외 활동을 늘리는 것과 같이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다. 겨울철 오전에 태양빛 아래 30분만 운동해도 계절성 우울증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다. 그러나 실내조명은 아무리 강해도 별 효과가 없다. 

- 2014년 영국 BBC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약과 독은 실제로 있었을까? 또 효과가 있었을까?'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마법의 효능이 있거나 독살을 목적으로 쓰이는 약초가 나온다. <햄릿>에서는 헤보나 hebona라는 독약이 나오는데 지난 수세기 동안 헤보나가 실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특성은 무엇인지에 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숙부가 왕의 귀에 독약을 부어 죽이는 장면에서는 왕이 자신의 귀 안으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1950년 영국의 한 청각치료 전문의는 독약이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몸속으로 빨리 흡수되며, 독약을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데워서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의 귀에 부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헤보나와 영어 이름이 유사하여 헤보나로 추측되는 약초 사리풀 henbane은 사람을 마비시켜 죽일 수 있는 독초다. 현대에는 이 독초에서 히오시아민이라는 성분을 분리해 위장관 장애를 치료하는 약으로 쓰기도 한다. 몇몇 과학자들은 사리풀 팅크제(생약을 알코올에 넣어 우려낸 액체)가 귀 통증에 바르는 용도로 쓰이기는 했지만 고막이 손상되지 않는 한 귀에 넣은 독약은 몸속으로 흡수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BBC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먹은 독약을 벨라도나 belladonna로 추정했다. 가지과 식물인 벨라도나는 고대부터 약으로 쓰였으며 동공을 확대시키는 기능이 있어 지금도 안과에서 동공을 확대시킬 때 쓰인다. 또한 열매와 잎 추출물을 먹으면 죽음에 이르게 해 'deadly nightshade'라고도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쓰인 무렵인 1597년에 나온 <식물의 약초와 그 역사 The Herball or Generall Historie of Plantes>에는 "벨라도나 열매는 먹는 양에 따라 희열을 느끼다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른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하지만 줄리엣이 깊은 잠에 빠져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는 양의 벨라도나를 먹었다 하더라도 심장박동이 멈춰 죽었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는 없다. 

- BBC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독약이 실제 존재하는 약초인지, 그리고 작품에서와 같은 독성이 있는지에 관해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연약한 꽃잎 속에는 약 성분과 함께 강력한 독이 있다. 냄새를 맡으면 네 몸 전체에 퍼지는 활력을 느낄 수 있지만, 맛을 보면 심장과 함께 모든 감각이 죽게 되지. 약초처럼 인간에게도 두 가지 상반된 요소, 선과 악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의 선악을 드러내는 장치로 약과 독을 많이 등장시켰던 셰익스피어는 '약과 독의 양면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 50년에 로마제국 황제 네로의 군의관인 디오스코리데스는 <약물지 De Materia Medica>에서 600종의 약초를 감별하는 법과 그 치료 효과 등에 관해 썼다. 그는 약초 50여 종은 먹으면 두통이 생기고 눈이 흐려지며 소화가 잘 안 되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며, 소크라테스가 마신 사약 독미나리와 같은 10여 개 약초는 독성이 매우 강해 치명적이라고도 했다. 디오스코리데스는 독초 중 일부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독초는 약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약과 독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서양에서는 <약물지>를 바탕으로 1,500년 동안 약을 써왔기 때문에 이 책은 약의 기념비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중세 스위스의 화학자이자 의학도인 파라셀수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약과 독의 양면성'에 관해 정의를 내렸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생각은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동물을 이용한 고용량 시험 결과로부터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는 저용량을 확률을 통해 찾아내는 과정을 위해성 평가 risk assessment라고 한다. 여기에는 동물과 사람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정밀과학이 활용되며 이를 통해 정부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도록 오염물질 기준치를 설정하고 관리한다.

 

- 동서양에서는 사람의 성격과 건강을 좌우하는 체질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히포크라테스는 인체를 구성하는 4가지 체액(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 성격(낙천, 냉정, 다혈질, 우울)과 건강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한의학에서는 체질을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나누어 이들 체질 각각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체질에 맞는 음식과 약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20세기 초반에 일본 과학자는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이론을 일반화시키며 이를 지능과 식생활로까지 확장시켰다. 하지만 통계나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인종주의를 바탕에 둔 연구라는 비판을 받았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 구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혈액형은 수혈받을 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혈액형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현대 과학은 다양한 유전적 특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방식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특이체질이란 어떤 약이나 물질에 대해서 비정상적 반응(부작용)을 일으키는 체질을 말한다. 특이체질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특정 약에 부작용이 나타나면 사망할 확률이 높으며 부작용은 3~4일 이내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1년 뒤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유전적 요인에 따라 몸에서 약의 활성 대사체가 만들어지는 것에 차이가 있어 면역 이상 반응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 간호사가 예전에 페니실린 쇼크를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페니실린 쇼크는 인구의 3~5%에게 나타나는 과민성 질환으로 대부분 발열과 같은 사소한 부작용에 그치지만 심한 경우 혈압 저하, 호흡곤란 등으로 사망할 수 있다. 자신이 페니실린에 특이체질인지 아닌지는 주사 전에 피부 발진 반응 시험을 통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 특이체질은 유해화학물질 같은 독에도 반응한다. 매일 두 갑씩 담배를 피워도 평생 폐암에 안 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담배를 반갑만 피웠는데도 폐암으로 일찍 죽는 사람도 있다. 적은 흡연량으로도 자신이 일찍 폐암에 걸릴 수 있음을 사전에 알았다면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았겠지만 흡연자의 폐암 발생 여부는 미리 알 수 없다. 다만 폐암은 유전적·환경적 요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집안에 폐암 환자가 있는 경우나 근무 중 석면 등에 노출되는 경우에는 담배로 인한 폐암 위험성이 매우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 현재 다국적 제약 기업의 가장 큰 딜레마는 신약을 개발할 때 특이체질인 사람이 그 약을 먹고 난 뒤 겪을 부작용을 사전에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특이체질 부작용 발생 빈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1000분의 1 이하) 동물실험으로는 약에 대한 민감도를 미리 파악할 수가 없다. 약은 많은 사람이 먹은 뒤에야 비로소 인체 부작용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 부작용이 경우에 따라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또한 부작용에 대한 막대한 피해 보상금 때문에 다국적 제약 기업의 생존이 위협받기도 한다.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트로글리타존은 특이체질부작용으로 간 독성이 나타나 63명이 사망하여 판매가 금지되었고, 제약회사는 약 2조 원이 넘는 피해 보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 약은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생기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특이체질에 의한 약의 부작용은 발생 빈도가 낮더라도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현재 특이체질을 약 처방전에 예측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의약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약은 항상 우리에게 혜택만 주는 것이 아니라, 부작용의 위험도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필요한 약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한편 탈리도마이드는 혈액 암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새로운 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차단하면 암의 성장과 전이를 막을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 하버드 의대 주다 포크먼 Judah Folkman 교수는 1990년에 탈리도마이드가 특히 혈액 암에서 혈관이 새로 생기는 것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2007년에 FDA는 엄격하게 사용, 관리한다는 조건 아래, 혈액 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에 탈리도마이드를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기존 약물을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드러그 리포지셔닝 drug repositioning을 통해 부활한 탈리도마이드는 국내에서도 쓰이고 있다.

-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뉴스위크>는 제약 회사 그뤼넨탈과 나치와의 관련성을 심층 보도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용된 신경 독가스를 개발했던 다수의 책임자가 그뤼넨탈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탈리도마이드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동물실험 및 임상 시험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뤼넨탈은 나치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2012년이 되어서야 그뤼넨탈은 탈리도마이드 사건 뒤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것도 '사죄'가 아닌 '유감'이라고 말이다. 


- 당시에는 마취제 없이 수술하다가 엄청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쇼크사하는 사람도 많았다. 버니도 처음에는 수술을 거부했다. 하지만 남편의 간곡한 설득에 마음이 흔들려 수술을 받기로 하고는 수술 전에 유언장을 남기고 남편과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유일한 마취제였던 와인을 마시고 3시간 45분 동안 수술을 받았던 그녀는 수술 도중 두 번이나 의식을 잃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버니는 수술 뒤 29년의 삶을 더 누리기는 했다. 그런데 그녀의 종양이 수술을 받을 정도로 악성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통증을 줄이고, 상처 부위의 감각을 마비시킨다고 알려진 맨드레이크는 고대부터 17세기까지 통증 치료와 마취제로 널리 쓰였다. 맨드레이크 외에도 와인, 아편, 독미나리, 사리풀 등이 마취제로 쓰였지만, 살을 가르고 수술을 할 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마취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수술을 하기보다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많았다.


- 역사 속 의사들은 질병이나 부상을 치료할 때 고통을 줄이기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해 왔다. 64년에 로마제국 황제 네로의 의사 디오스코리데스는 상처를 가르거나 지질 때 마법의 식물이라 불리던 사람 모양의 약초 맨드레이크 mandrake를 포도주에 넣고 끓여서 먹이면 그 부위의 감각이 마비된다고 했다. 디오스코리데스는 오늘날 감각이 없어진다는 뜻의 마취 anaesthesia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17세기까지 맨드레이크는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데 많이 쓰였다.

- 1025년에 이슬람 의학자인 이븐 시나 Ibn Sina는 <의학의 정본 The Canon of Medicine>에서 흡입 마취제 사용법을 소개했다. 아편, 독미나리, 맨드레이크, 사리풀 등의 약초 가루를 물에 풀어서 최면 스펀지 soporific sponge에 적신 뒤, 수술받는 환자의 코에 대고 흡입하게 하여 마취시키는 식이었다.

- 1780년부터 유럽에서는 아편 소비가 급격히 늘었다. 몸이 아프거나 출산할 때 아편이 고통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편은 환자가 수술받을 때 느끼는 고통을 줄이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마취제로 사용했던 술과 아편은 많이 쓰면 장기 기능이 마비되어 수술이 더 위험해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술과 아편을 마취제로 맘 놓고 사용할 수 없었던 외과 의사들은 몸 일부를 절단하지 않고 상처 부위를 부분적으로 도려내는 수술법을 선호했다.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을 마쳐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적게 할수록 명의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을 해야 할 경우, 수술에 따르는 고통 때문에 수술을 하기보다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많았다. 

- 마취제는 백신, 소독제와 상하수도 위생 처리 시스템과 함께 근대 의술 혁명을 이룬 3대 주춧돌로 꼽힌다. 19세기 중반에 아산화질소 nitrousoxide, 에테르 ether, 클로로포름 chloroform이 마취제로 등장한다. 영국 발명가 험프리 대비 Humphry Davy는 아산화질소를 마시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아산화질소에 웃음가스 laughing gas라는 별명을 붙였다. 당시 유랑극단에는 관객들이 25센트씩 내고 풍선에 담긴 '웃음가스'를 마신 다음 흐느적거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쇼가 있었다. 아산화질소를 마시면 이를 뽑을 때 아프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대비는 수술 마취제로 아산화질소를 쓸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 하지만 마취제와 더불어 마취 기술이 발전하면서 의사들은 시간이 걸리는 정교한 수술기법을 시도할 수 있었고 이는 매우 높은 수술 성공률로 이어졌다. 이제 마취제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 마취제가 의학 발전에 놀랄 만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더 나아가 몇 가지 문제점도 극복해야만 했다. 코를 통해 가스로 흡입하는 에테르는 마취에 걸리는 시간과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혈관 정맥으로 주사할 수 있는 티오펜탈 thiopental이 개발되었다. 티오펜탈 주사를 맞으면 45초 이내로 빠르게 마취되었다. 그러나 티오펜탈은 마취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지 않아 주로 단시간 수술이나 에테르로 전신마취를 하기 전에 사전 마취제로 쓰였다. 한편 티오펜탈은 미국 경찰 및 중앙정보국(CIA, 이하 CIA)에서 자백 약 truth serums으로도 쓰였다. 범죄 혐의자에게 약을 주사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알고 싶은 비밀과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63년 미국 대법원은 자백 약으로 얻어낸 정보는 법정 증거로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후 티오펜탈은 자백약으로서 설 자리를 잃었다. 

- 1942년에 근육 이완제인 큐라레 curare가 최초로 전신마취제와 함께 사용되었다. 에테르로 전신마취를 하면 의식과 감각은 마비되지만 근육은 마비되지 않는다. 특히 몸속 깊숙이 손을 넣어 수술할 경우 몸을 버티기 위해 힘을 유지하는 근육 때문에 제대로 수술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로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에테르를 많이 써야만 했다. 하지만 근육 이완제가 등장하면서 에테르를 적정한 양으로 쓸 수 있게 되어 과도한 전신마취로 인해 수술 도중 환자가 죽는 비율이 급속히 낮아졌다. 

- 1956년에 개발된 새로운 흡입 마취제 할로탄 halothane은 빠른 속도로 에테르를 대체했다. 할로탄의 가장 큰 장점은 마취와 회복 시간이 짧으며 에테르와는 달리 인화성 물질이 아니어서 화재 위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간에 독성이 있고 심장 근육을 억제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 1980년 이래로 이소플로렌 isoflurane 같은 새로운 흡입 마취제가 개발되었다.

- 이처럼 20세기에는 수술 부위와 수술 시간 등에 따라 에테르, 할로탄, 이소플로렌과 같은 흡입 마취제와 티오펜탈과 같은 정맥주사 마취제가 사용되었다. 또한 수술 과정에서 근육 경직을 막기 위해 근육이완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 티오펜탈은 1983년에 개발된 프로포폴 propofol에게 왕좌의 자리를 넘겨준다. 불안감을 없애고 편안하게 잠들도록 해주는 프로포폴 정맥주사를 맞으면 거의 1분 안에 마취된다. 프로포폴 투약을 멈추면 2분 이내에 의식이 돌아오고 어지러움과 현기증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수면 내시경과 성형수술 등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마취제라 하겠다.

- 하지만 접종의 효과를 확인한 워싱턴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은 모든 병사는 반드시 인두 접종을 받으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몬태규 부인이 터키에서 배워온 민간요법인 인두 접종법은 영국을 거쳐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널리 퍼져 표준 접종법이 되었고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몬태규 부인은 의학 전문가들보다 과학적이고 열린 눈으로 인두 접종을 바라보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능가하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셈이다.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는 인두 접종법 대신에 소에서 뽑은 천연두 바이러스인 우두 cowpox 바이러스를 접종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이로써 천연두로 희생되는 이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한 그녀의 집념은 꽃을 피우게 된다. 

- 1700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수천 명의 어린이가 인두 접종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에는 '백신의 아버지'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도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목장에서 소젖을 짜는 처녀들은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으며 천연두보다 덜 치명적인 우두를 앓았던 이들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이런 이야기가 의사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의사 존 퓨스터 John Fewster는 '우두에 감염되면 천연두에 면역이 생긴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 부모는 아이 팔에 상처를 내서 접종하는 방식을 두려워했다. 제너의 이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백신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미심쩍어했고, 부작용도 걱정스럽다며 비판했다. 정부가 백신 접종을 의무로 하고 접종하지 않으면 벌금까지 물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어 '백신접종의무 반대연맹' 같은 조직이 만들어졌고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내용의 잡지도 생겨났다. 

- 흥미롭게도 백신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 Andrew Wakefield는 1998년 의학 학술지 <란셋>에 아이들이 MMR(홍역, 볼거리, 풍진) 예방 백신을 맞으면 자폐증에 걸린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었고, 소아과와 보건소에 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특히 영국에서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그 결과 1998년에 10건 안팎이었던 홍역 발생 빈도가 2012년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2000건으로 늘어났다. 논문을 면밀히 검토한 과학계는 논문 내용이 조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란셋>은 12년 뒤 해당 논문을 철회했고 여러 역학조사를 통해서 백신과 자폐증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료계에서는 이 사건을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악의적인 거짓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아직도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의사들이 백신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약 회사와의 이해관계 때문에 위험성을 은폐하려 ...


- 산욕열 puerperal fever은 18세기 중반 유럽 도시에서 산후 병원이 등장하면서 나타났다. 산후 병원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는 산모들로 붐볐고 몹시 불결했다. 침대 시트뿐 아니라 수술 도구와 붕대도 더러웠다. 소독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탓이다.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 산욕열은 매우 흔한 병이었지만 왜 그 병에 걸리는지 정확한 원인을 몰랐다. "아기를 낳을 때 나쁜 공기에 노출되어서", "출산한 여성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서", "자궁이 커질 때 받는 압력 때문에"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바로잡아야 할 산부인과 의사들마저 산욕열을 '출산여성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증상' 정도로만 여겼다. 산욕열은 아기를 낳은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산모들이 많이 걸렸는데, 사망률이 10~35%에 이를 만큼 높았다. 1820년 스코틀랜드 작가 존 맥킨토시 John Mackintosh는 "런던 거리 모퉁이마다 무서운 질병으로 죽은 엄마들을 애도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 비엔나 병원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 Ignaz Semmelweis는 3년 동안 산욕열로 사망한 산모의 사망률을 조사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의사들이 관리한 제1병동의 사망률은 16%였는데, 조산원들이 담당했던 제2병동의 사망률은 2%에 불과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무릎을 꿇고 빌면서 의사들이 관리하는 제1병동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는 산모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출산한 여성은 산욕열 발생률 자체가 매우 낮았다.

- 제멜바이스는 왜 사망률에 차이가 나는지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제1병동 의사들이 매일 아침, 전날 사망한 출산 여성의 시체를 부검하는 반면에 제2병동의 조산원들은 시체 부검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루는 동료 의사가 시체를 부검하던 중에 손에 상처를 입고 패혈증으로 사망했는데 산욕열로 사망한 여성의 발병 원인, 경과와 놀랍도록 비슷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갑자기 산욕열에 걸린 여성과 내 동료는 같은 이유로 사망했으리라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의사들이 시체를 해부하고 절개했던 손과 손가락으로 분만을 도우면 죽음의 독소가 출산한 여성의 생식기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병동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염소 액체 소독약으로 손을 소독하도록 했다. 그러자 사망률이 2%로 낮아졌다. 


- 제멜바이스는 분만실의 위생 상태를 좋게 하고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의사들은 그의 주장을 무시하고 반대하기까지 했다. 병원에서 해고된 그는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바로 발표하지 못했다. 분노한 제멜바이스는 유럽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공개 항의서를 보내 '무책임한 살인자' 라며 그들을 비난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우울증을 앓다가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고, 손가락 상처로 인한 패혈증으로 40대 후반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 사람들이 손을 자주 씻어야 하고, 의사가 진료하거나 수술을 할 때 손과 수술 도구를 수시로 소독해야 하며,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은 지는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질병의 80%는 세균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소독제 antiseptics는 세균을 죽이거나 성장을 막는 물질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항생제 antibiotics와 소독제는 어떻게 다를까? 항생제는 박테리아만을 죽이는 데 반해 소독제는 박테리아를 포함한 곰팡이, 바이러스 등과 같은 여러 세균을 동시에 죽인다. 또한 항생제는 온몸에 퍼져 있는 세균을 주사나 약을 통해 죽이지만 소독제는 손을 씻거나 상처 또는 수술 부위에 바르는 데 쓰인다. 상처가 나거나 수술을 한 부위는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에 쉽게 감염되어 소독제를 쓰지 않으면 세균 수가 급격히 증가해 급성 염증과 패혈증이 생긴다. 

- 19세기말에 이르러 세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소독제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소독제라고 할 만한 물질은 기원전부터 있었다.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인들은 시체가 썩을 때 나는 악취를 막기 위해 유황 연기를 이용했으며, 인도에서도 수술실에서 유황 연기를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 유럽에서는 환자가 머물던 집이나 쓰던 물건 등을 유황 연기를 이용해 소독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와인을 소독제로 썼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상처를 와인과 식초로 소독하기도 했다. 

- 19세기에 마취제가 개발되어 외과 수술이 활발히 행해졌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어도 세균에 감염되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코틀랜드 의사 조지프 리스터 Joseph Lister는 '발효와 식품 부패의 원인은 세균이다'라는 내용의 파스퇴르의 논문을 읽은 뒤, 수술에 의한 감염도 같은 원인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해 세균을 죽이는 소독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865년에 7살 소년의 다리에 생긴 상처를 페놀액을 적신 붕대로 감아놓았더니 세균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6주 뒤 소년은 완전히 나았다. 이를 본 리스터는 의사들이 페놀액으로 수술 전후에 손을 씻고, 수술 도구를 깨끗이 닦고, 수술실에 페놀액을 뿌리도록 했다. 리스터가 제안한 소독 방법을 쓴 뒤 세균 감염에 의한 사망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그러나 제멜바이스와 리스터가 주장한 소독기술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세균 때문이라는 세균론 germtheory이 받아들여지고 나서야 의료계에 정착된다.

- 20세기에 들어와 이른바 '빨간약' 머큐로크롬 mercurochrome이 소독제로 널리 쓰였다. 1919년 존스홉킨스 병원 비뇨기과 의사인 휴 영 Hugh Young은 물에 머큐로크롬 2%를 녹인 용액이 담긴 시험관에서 여러 종류의 세균이 죽는 것을 발견했다. 영은 동물실험과 임상 시험 뒤 그 결과를 발표했다.

"머큐로크롬 용액을 혈관 정맥을 통해 주사하면 방광과 신장의 오래된 감염 부위에 치료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며, 자극이나 독성도 강하지 않다. 또한 혈액에 장시간 남아 있기 때문에 치료효과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머큐로크롬은 처음에는 정맥주사로 신장염과 방광염을 치료할 때 쓰였지만, 점차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약이 되었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부모들은 아이가 가벼운 상처를 입으면 병원에 가는 대신 대개 집에서 머큐로크롬으로 소독하는 것으로 끝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살갗이 벗겨지거나 칼에 베이거나, 심지어는 배가 아플 때도 빨간약을 바르면 낫는다고 믿을 정도로 머큐로크롬은 20세기 만병통치약이었다. 그러나 1998년에 미국 FDA는 머큐로크롬에 포함된 중금속 수은이 '인체에 안전하지 않다'는 판정을 내렸고, 머큐로크롬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퇴출되었다.

- 지난 180여 년 동안 많은 병원과 가정에서 요오드 소독제를 사용해 왔지만 요오드에 죽지 않고 내성을 갖는 세균은 발견된 적이 없다. 여기서 소독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좋은지 그 기준을 엿볼 수 있다. 소독제는 다양한 병원성 세균 및 바이러스를 빠르게 죽이는 반면에, 사람에게 해가 없어야 하며, 물에 잘 녹아야 한다. 특히 몸에 직접 바르는 소독제는 자극적이지 않고 악취가 없으며 사용법이 간단할수록 좋다.

- 소독제가 등장하면서 상처를 제때에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수술 중세균에 감염될 확률도 크게 줄었다. 그렇다면 공기로 전파되는 전염병은 소독제로 얼마나 예방할 수 있을까? 2015년 메르스 바이러스는 한국의 여름을 공포로 숨죽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백신의 필요성을 절감했으며 손 씻기, 손 소독제, 마스크 사용이 일상화되었다. 최근에는 포비돈 요오드가 메르스 바이러스를 살균하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국제기구에서 포비돈요오드 사용을 추천하고 있다. 

- 1세기경 고대 로마의 저술가 마르쿠스 바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동물이 코나 입을 통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일으킨다"고 썼다. 이 개념은 1,5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1674년 네덜란드 생물학자 안톤 판 레이우엔훅 Antonie van Leeuwenhoek이 현미경을 발명한 뒤 빛을 보게 된다. 레이우엔훅은 사물을 300배 확대해서 볼 수 있는 현미경을 고안해 박테리아를 포함한 원충 등과 같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생물의 특징을 관찰했다. 그는 이런 생물을 극미동물 animalcules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200여 년이 더 지나서야 극미동물이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인류는 어떤 이유로 질병에 걸리는지에 관해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귀신이 들리거나 신이 분노해서"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다. 그보다 사람들은 미아즈마 miasma: 그리스어로 '오염'이라는 뜻 이론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나쁘고 더러운 공기인 미아즈마가 질병을 불러오며, 독한 냄새를 피우고 공기를 더럽히는 것들, 특히 썩은 물질 때문에 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흥미롭게도 동서양 모두 미아즈마를 질병의 원인으로 여겼다.

- 히포크라테스도 나쁜 공기가 역병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습지 마을은 연무와 안개로 나쁜 공기가 쌓이기 때문에 비와 안개를 피할 수 있는 고지대에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고대 인도에서는 구장나무 잎으로 싸서 껌처럼 씹는 빤 paan이 미아즈마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고대 중국에서도 남방에서 불어오는 유독가스가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해 남쪽에 있는 습지에 범죄자를 추방하고 유배시키기도 했다. 

-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미아즈마 이론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더러운 공기가 어디서 오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건조한 곳보다 습한 곳에서 세균이 잘 자라기 때문에 습지의 공기에 세균이 떠다닐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알았던 셈이다.

- 간호 개혁의 선구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대표적인 미아즈마 지지자였다. 나이팅게일은 "많은 시인과 역사가가 말했던 미아즈마는 악성 전염병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환자가 바깥의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사람들이 미아즈마 이론을 믿은 데에는 런던을 뒤덮는 뿌연 안개가 한몫했다. 1850년대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할 당시 '미아즈마 이론' 지지자들은 콜레라가 공기로 전파된다고 믿었으며 특히 템스 강 근처에 뿌옇게 낀 연무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 인류는 진통제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고대 이집트 의학서 <에베르스 파피루스 Ebers Papyrus>에는 버드나무 잎을 끓여 먹으면 통증이 사라진다는 기록이 있다. 히포크라테스도 버드나무 껍질은 열병을 앓을 때와 분만할 때 모두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1763년 영국 성직자 에드워드 스톤 Edward Stone은 버드나무 껍질을 오븐에 넣어 3개월 동안 건조한 뒤 빻아서 50명에게 먹였는데, 열을 낮추고 염증을 없애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천 년간 진통제로 쓰인 버드나무 껍질의 성분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밝혀졌다. 1828년 요한 뷔히너 Johann Büchner는 버드나무에서 살리실산 salicylicacid을 분리하여 구조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 19세기 중엽에 화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전에는 약초에서 필요한 성분을 추출하고 분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는데, 이제는 실험실에서 훨씬 간편하게 합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제약 산업과 화학산업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1859년에는 독일 화학자 헤르만 콜베 Hermann Kolbe가 실험실에서 살리실산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해 살리실산이 대량생산되어 치료제로 널리 쓰였다. 그러나 살리실산은 떫은맛이 날뿐더러 위를 자극하기 때문에 버터를 먹어 속을 부드럽게 만든 다음 먹어야 했고, 오랜 기간 복용하기 어려웠다. 


- 1897년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 Felix Hoffmann은 바이엘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는 관절염을 앓아 살리실산을 먹다가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아버지를 보고 자극성이 적은 대체 물질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호프만은 살리실산 화학구조에 아세틸기 accetyl group를 쉽게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상관인 아르투르 아이헨그륀 Arthur Eichengrün 이 약리 팀장에게 합성한 약을 보내 그 효과를 증명해 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좌절한 아이헨그륀은 약을 바이엘 베를린 지점으로 가져가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했는데 관절염 치료에 아주 우수한 효과를 보였다. 1899년에 바이엘은 이 약에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허를 받았다. 

- 최초의 아스피린은 가루약 형태였다. 약사는 의사 처방전에 따라 아스피린을 유리병에 담아 조제했다. 그러나 전 세계 곳곳에서 아스피린이 불법 생산되자 바이엘은 1915년부터 가루약을 알약으로 바꾸고 ... 

 

- 마지막으로 상표와 로고를 완전히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바이엘 아스피린'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아스피린은 복제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팔렸다. 제약 회사가 신약을 개발하면 특허 기간 동안에는 엄청난 매출을 올리지만 특허가 끝나면 쏟아져 나오는 복제약 때문에 오리지널 약의 매출은 줄어든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꿈은 아스피린같이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 아이헨그륀은 아스피린 개발을 주도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호프만에게 아스피린 합성 프로젝트를 지시하고, 스스로 복용해 효과를 관찰했으며, 임상 시험을 기획해 아스피린의 효능도 확인했다는 것이다. '아스피린'이라는 이름도 자신이 지었는데, 나치 정권이 출범한 1934년 이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든 업적이 바이엘의 공식 문서에서 지워졌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2000년 <영국의학저널>이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아이헨그륀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바이엘은 아스피린은 호프만이 개발했고, 아스피린과 관련한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 2015년 10월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중국 투유유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투유유는 "드디어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 artemisinin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 너무 행복하다. 중국인들도 오랫동안 노벨상을 기다려왔는데 정말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노벨 생리의학상은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에 발표된다. 수상 위원회는 발표 당일 9시 30분 심사와 투표를 통해 11시 15분 무렵에 수상자를 결정하며 12시가 되면 수상자 명단을 언론에 배포한다. 노벨상에는 언론에 발표하기 전 스웨덴 왕립과학원 상임 비서가 수상자에게 전화로 소식을 알리는 전통이 있는데, 이를 '매직 콜'이라 부른다. 수상자들의 국적과 사는 곳이 다양한 만큼 많은 일화가 있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전화를 받는 경우도 많고, 술집이나 치과에서 치료를 받다가 연락을 받은 수상자도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10월 초가 되면 새벽에 스웨덴에서 올지 모르는 전화를 기다리느라 잠을 못 이루는 교수들이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저녁 7시 무렵 연락받게 될 것이다.

- 중국 언론에서는 투유유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다소 차분하게 다룬 반면 대부분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했다. 역대 노벨 생리의학상에서 전통 생약 치료제로 노벨상을 받은 바가 없는데 어떻게 받았는지 의아해하며 중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기준은 과학자의 평생 연구 업적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과학 패러다임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인류에게 커다란 혜택을 줄 수 있는 발견'이다. 따라서 인류를 괴롭힌 말라리아로부터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치료제를 개발한 업적은 충분히 수상할 만한 가치가 있다. 투유유 교수는 2011년 의학 분야에 큰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주는 래스커 상 Lasker Award을 받았는데, 래스커 상을 받으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  베트남전쟁 중 말라리아에 걸린 많은 베트남 군인이 클로르퀸에 내성이 생겨 죽어가자 호치민 정부는 중국 정부에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 달라고 했다. 또한 중국 남부에서도 말라리아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 마오쩌둥 정부는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523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시작했다. 중국 중의과학원 투유유 교수는 523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였다. 1969년 투유유는 중국 토종 식물에서 말라리아 치료 가능성이 있는 천연 성분을 추출했다. 그리고 중국 전통 의학서 <주후비급방5>에서 "말라리아에 개똥쑥이 효능이 있다"는 내용을 찾아냈다. 특히 "손에 잡힐 정도 분량의 개똥쑥을 2리터의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가 즙을 짜내 모두 마실 것"이라는 기록내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 투유유가 발견한 아르테미시닌은 클로르퀸에 내성이 생긴 열대형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아르테미시닌 덕분에 지난 십여 년 동안 말라리아 사망률이 절반으로 줄었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투유유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두고 중국 전통 한의사들은 매우 착잡해했다. <월스트리트저널 Wall Street Journal>에 따르면 "중국 한의사들은 토종 식물에서 단일 성분을 분리해 사용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으며 모든 약초는 함께 복용해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투유유의 발견으로 자신들의 신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 다른 한편 전문가들은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가 개발될 때마다 새로운 내성이 나타날까 봐 늘 두려워했다. 2009년 아르테미시닌에 내성을 갖는 말라리아 원충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현재는 아르테미시닌만이 아닌 아르테미시닌과 작용 원리가 다른 2가지 성분을 섞은 약을 80여 개국에서 사용하며, 완치율은 95% 이상이다. 

- 말라리아와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서 말라리아 발생지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무역과 해외여행을 통해 말라리아가 전파되는 것은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 백신을 개발하려고 애썼지만 현재까지 시판된 백신은 없다. 최근 사망률이 높은 열대형 말라리아 원충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이 개발되어 2016년 사하라 사막 남쪽에 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백신 임상 시험을 할 예정이다. 

- 19세기 중반까지는 남성의 발기불능을 치료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보철물을 남근에 이식하는 수술이 있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수술이 보급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 영국 신경학자 길스 브린들리 Giles Brindley 교수는 1983년 미국비뇨기과학회 강연장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근육 이완제를 주사한 뒤 발기된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여주며 발기불능 환자에게 근육 이완제 주사를 놓았는데 성기가 몇 시간 동안 발기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브린들리 또한 강연장에 오기 전, 호텔 객실에서 근육 이완제인 파파베린 papaverine을 주사했기 때문에 발기된 상태여서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무던히 애쓰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청중들이 믿지 않자 갑자기 단상에 올라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청중 여러분께 내 성기가 어느 정도나 발기가 됐는지 확인시켜주고 싶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장면에 많은 청중이 비명을 질렀다. 


-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발기불능의 원인을 심리적·감정적 문제에서 찾았다. 하지만 브린들리는 발기불능에서 생리적 요인이 가장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브린들리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약회사들은 발기불능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뛰어들기 시작했다. 1995년 처음으로 카버제트 caverject 주사가 미국 FDA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카버제트는 성관계를 갖기 전에 남성이 자신의 성기에 직접 주사해야 해서 통증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비아그라는 고개 숙인 남성만 살린 것이 아니었다. 비아그리는 환경 생태 보호에 큰 역할을 했다. 2008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 따르면 "비아그라가 등장하면서 멸종 위기에 몰린 생물의 불법 거래가 줄고 개체 수가 현저히 증가했다." 정력제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던 코뿔소, 호랑이, 바다표범 대신 비아그라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비아그라가 시판되자마자 바다표범 생식기인 해구신의 가격이 10만 원대에서 1만 원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2년이 지나자 해구신이 아예 시장에서 사라졌다. 정력 강화를 위해 보약을 지어먹던 사람들도 비아그라를 찾았다.

- 원래 비아그라는 발기불능이 아니라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었다. 1985년 화이자연구소는 협심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협심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수축되어 일어나는 증상인데 많은 화학물질을 시험한 결과, 실데나필 sildenafil이 혈관을 이완시키는 데 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특히 실데나필은 몸에 빨리 흡수되고 무엇보다 알약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임상시험 결과 유감스럽게도 이 약은 협심증을 치료하는 데에는 효과가 적었다. 그런데 약을 먹은 몇몇 남성에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약을 먹은 발기불능 남성 가운데 88%의 남성에게서 발기불능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임상 시험이 끝나면 반드시 남은 약을 회수해야 하는데 효과를 본 여러 명이 반납을 거부하기도 했다.  

- 알코올 심지어는 신경마비를 일으키는 독성 물질도 들어 있었다. 7년 뒤 시블리가 죽은 뒤 밝혀진 사실은 그는 자신이 만든 이 '기적의 약을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태양의 팅크'를 담았던 작은 초록색 병은 2016년 영국 경매에서 1200만 원에 팔렸다.

-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영어 단어 패너시아 panace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딸이자 치료의 여신 파나케이아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파나케이아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묘약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영미권에서 패너시아는 만병통치약 이외에도 '해결책'이라는 비유적인 뜻으로도 쓰인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믿음에는 동서양 구분이 없었던 것 같다. 

-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약초를 사람들은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어떤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 어떤 식물이 몸에 해로운지 또는 이로운지를 습득해 왔다. 그 과정에서 독초라 하더라도 몸에 해를 가하지 않을 정도의 적은 양을 먹었을 때에는 통증이 줄고 기침이 멈추며 정신이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약초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던 약초에 관한 지식은 파피루스, 점토판, 종이가 발명되면서 기록으로 남았다.

- 중국, 인도, 이집트 지역에서는 약초 관련 지식뿐 아니라 전통 의술이 발달했다. 중국의 침술, 인도의 아유르베다, 이집트의 방혈 blood-Hetting 요법이 대표적이다. 대략 4500년 전 중국 신화시대의 황제 신농은 각지에 사람들을 보내 모든 약초를 구해온 뒤 치료 효과를 직접 확인하는 임상 시험을 했다고 한다. 그는 약초 365종을 <신농본초>에 기록했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없다.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의 의학 문서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877개의 약초 처방 사례를 비롯해 피임, 장염, 소화질환, 기생충 등과 관련된 여러 처방이 나와 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전통 의술인 방혈 요법은 19세기말까지 서양에서 유행한 대표적인 만병통치 치료법이었다.

- 방혈은 몸에서 피를 빼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그리스와 로마로 전파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방혈을 주기적으로 하면 여성이 생리를 할 때 나쁜 피가 빠져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유익하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의 제자인 고대 로마의 의학자 갈레노스는 방혈과 관련된 이론을 정립하고 의사들에게 방혈요법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피가 정맥과 동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낸 갈레노스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체액은 혈액으로, 질병이 생기면 몸속 피를 빼내 체액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환자의 나이와 체질, 계절과 날씨에 따라 얼마나 많은 혈액을 몸에서 빼야 하는지를 정리하기도 했다. 갈레노스의 주장에 따르면 병이 심하면 심할수록 많은 혈액을 몸에서 내보내야 했다. 

- 병원에 찾아와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지어달라는 환자가 점점 많아지자 의사들은 어떤 약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잡이로 몇 가지를 섞은 약을 만들어서 환자에게 주었다. 이렇게 혼합된 약이 바로 엉터리 만병통치 특허약의 원조다.

- 특허약은 광고 산업의 발달 덕분에 많이 팔릴 수 있었다. 새로운 약이 나올 때마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문구가 신문 광고에 그대로 실렸다. 유명 인사가 공개적으로 약의 효능을 말하거나 그 약을 먹고 다 나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담은 광고가 많았다. 1726년에는 통증과 관절염을 낫게 해 준다고 선전했던 '베이트만 박사의 방울 Dr. Bateman's Drops'이라는 특허약이 유럽에서 유행했다. 이 약은 미국 독립전쟁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 '베이트만 박사' 이름을 넣은 여러 종류의 약으로 만들어져 20세기 초까지 판매되었다. 사실 이 약에는 마약 성분이 들어 있었고 베이트만 박사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약을 제조한 회사는 창고에서 약을 만들었으며 광고를 위해서 인쇄소를 직접 운영하기까지 했다. 

- 허위 광고를 한 만병통치약의 대표 사례로 대피 엘릭서 Daffy's Elixir가 있다. 1647 년에 개발되어 영약으로 불린 이 약은 19세기말까지 영국과 미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 찰스 디킨슨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나올 정도였다. 당시 대피 엘릭서를 만든 회사는 영국 왕실로부터 약을 만들고 배합해 광고할 수 있는 특허증을 받아 독점 판매권을 가졌다. 대피 엘릭서 제조사는 신문에 이런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오리지널 영약 대피, 건강을 가져다주는 음료, 전지전능한 하늘의 섭리로 탄생. 지금까지의 그 어떤 약보다 훨씬 뛰어나며 치료 효과가 증명됨. 성별, 질병 종류, 체질에 상관없는 최적의 영약!"

그러나 이 약은 13개 약초를 섞은 약으로서 변비 완화에 효과가 있는 약초가 든 정도였다.

- 쇼의 형태로 특허약을 판매하는 방식인 '약장수 쇼'가 성행하던 시대가 서양에서도 있었다. 주로 미국 소도시에서 공연하는 유랑 서커스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친 뒤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만병통치 엉터리 약을 선전하며 팔기 시작했다. 관객석에는 미리 짠 협잡꾼이 앉아 있다가, 나와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관객석에서 튀어나와 약의 효능에 관해 증언을 했다. 이러한 엉터리약은 마차에서 만들어져 바로 약병에 담겨 쇼 공연을 마친 뒤 팔렸다. 가장 수완이 좋았던 '키카푸족 인디언 제약 회사'는 '아메리칸 인디언' 또는 '와일드 웨스트'를 주제로 쇼 공연을 했으며 실제로 많은 아메리칸 인디언을 협잡꾼으로 고용했다.

- 일부 특허약에는 매우 위험한 성분도 들어 있었지만 합법적으로 팔린 경우가 많았다. 코카인 등 마약이 들어간 약을 만들어 팔아도 불법이 아니었다. 마약류 성분이 들어간 약들은 통증, 기침, 설사를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지만 중독성이 강했다. 제약 회사는 이러한 부작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마약이 몸에 해롭지 않다고 광고했다. 알코올이 들어간 약 또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는 술 판매가 금지된 주에서조차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며 알코올이 들어간 약을 팔았다. 알코올에 몇몇 약초의 향만 넣고 약이라고 이름 붙인 일부 특허약이 팔리기도 했다.

- 특허약으로 출발했지만 음료수로 큰 성공을 거둔 경우가 바로 코카콜라다. 1885년 약사인 존 펨버턴 John Pemberton은 뒷마당에서 약초배합을 연구하면서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 잎과 카페인이 들어간 콜라나무콩을 배합해 두통, 위통, 피로를 완화시키는 특허약을 개발했다. 펨버턴이 죽자 사업가 아사 챈들러 Asa Candler가 특허 사업권을 2,300달러에 인수해 코카콜라회사를 세웠다. '코카콜라'는 배합한 두 약초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그는 쿠폰 발행과 로고 부착과 같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판매 전략을 폈고 첫 해에 코카콜라 시럽 매출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챈들러는 곧 특허약 사업을 접고 청량음료 사업에 집중했다. 

- 코카콜라를 음료수로 전환한 뒤 1903년 마약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지자 챈들러는 코카콜라에서 코카인 성분을 빼고 카페인 양을 늘렸다. 코카콜라가 특허약에서 식음료로 업종을 바꾼 이유는 미국 의회가 모든 특허약에 세금을 부과하자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14년에 코카인 사용이 불법화되고, 1929년의 금주령으로 술을 대체할 음료수를 찾던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코카콜라는 애틀랜타 지역 브랜드에서 현재 전 세계가 사랑하는 음료 브랜드가 되었다. 

- 특히 좋은 약이 없었던 시절, 평균수명이 30세 안팎이었던 1940년대까지 병과 싸워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특정 식물이나 동물이 약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 야생동물 밀렵과 불법 약초채집이 기승을 부렸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약에 의존하는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 것은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일본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건강에는 무엇보다도 자연치유력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자연치유력은 세균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에 맞서는 면역력이 생겨 다음에 또 같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잘 방어하고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스스로 재생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이렇게 일본은 자연치유력을 믿고 불필요하게 약을 먹지 않으며 약을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또한 친구에게 약(마약, 술, 담배를 포함)을 권하거나 주면 안 된다고 철저히 교육한다.

- 미국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건강과 약의 사용에 대해 단계적으로 교육한다. 초등학생은 몸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하는 약의 측면, 술이 뇌에 미치는 영향, 개인위생과 식습관, '화학물질에 많이 노출되면 몸에 해롭다'는 내용을 토대로 기초 교육을 받는다. 중학생은 농약, 중금속과 같이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독성물질, 약(마약), 흡연, 음주가 인체에 끼치는 해악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고등학생은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 선택의 기준과 잘못된 사용, 임신과 약, 마약, 흡연, 음주의 해악에 관해 교육받는다. 이로써 학생들이 약의 위험성과 효능이라는 양면성을 알게 한다. 

 
- 한편 우리는 약에 관한 기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형 서점에서 살펴본 초중고 과학과 기술/가정 교재에서 약이란 무엇인지, 약으로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 약을 올바르게 쓰는 법은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대학에 '약과 건강'이라는 교양 강의 수업이 있긴 하지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약에 관한 기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서나 주변에서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어듣고, 몸이 불편하거나 아프면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민간요법이나 건강기능식품, 약을 선택한다. 심지어는 본인이 얻어들은 방법이 효과가 매우 좋다고 남에게 권하기도 한다. 이런 셀프 전문가에게 의사가 약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나 약사가 약의 복용 방법과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직업상 늘 하는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 

- 이런 문제를 교육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부와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건강, 식품, 약, 의료를 전담하는 미국 FDA와 일본 노동후생성은 국민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 국민 건강 문제에 정치나 산업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장인 정신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전문가의 판단과 결정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 불행하게도 우리는 정부와 전문가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정부와 전문가는 왜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걸까? 일부 전문가들은 건강과 약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는 대신 홈쇼핑이나 방송에 출연해 특정 제품을 홍보하기 바쁘다. 

 

- 1주일간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우리 몸에서 달걀 6개 무게의 근육 단백질이 빠져나간다.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필요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 몸에 좋다는 약이나 특정 성분을 여러 달 동안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몸의 항상성이 깨지고 몸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기능을 몸 스스로가 작동할 필요가 없다고 인지해 약 의존성이 생긴다. 특히 스테로이드는 천식, 관절염, 알레르기, 피부 가려움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뛰어나지만 증상이 아주 심하거나 치료 기간이 짧을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합성 스테로이드 약(프레드니솔론)을 오랜 기간 먹거나 바르면 우리 몸은 이를 몸속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부신피질호르몬으로 인식한다. 그러면 정상 호르몬의 분비 균형이 깨져 스테로이드 복용을 중단하면 스테로이드 금단 현상이 나타난다. 피로감이 심해지고 몸이 허약해지며, 복통과 구토, 현기증이 자주 나며, 체중이 주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다. 또한 저혈압, 저혈당, 붉은피부증후군 같은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 우리 몸은 경고 신호도 잘 발달되어 있다. 통증이 생기고, 열이 나며, 기침을 하고, 설사를 하며, 피로를 느끼는 것은 정확한 진단을 통해 치료하라는 것이 바로 약을 먹으라는 신호가 아니다. 세균에 감염되거나 조직에 이상이 생겨도 경고 신호가 없다면 제때 치료하거나 수술을 받지 못해병이 악화될 수 있다. 암과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초기에 통증이나 불편함과 같은 경고 신호가 없고 상당히 진행된 다음에야 몸의 이상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 약은 아스피린과 같이 통증을 줄이고 열을 낮추는 등 증상 완화를 위해 쓰이기도 하지만 항생제나 항암제처럼 세균과 암세포를 죽이는 근본적인 원인 치료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먹고 통증이나 열, 기침 같은 경고 신호가 사라졌다고 해서 병이 완전히 치료됐다는 것은 아니다. 심각하지 않은 병에 걸렸다면 우리 몸은 면역이나 해독, 재생 시스템 같은 자연치유력을 통해 다시 건강을 되찾게 만든다.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키기보다는 근본 원인을 알고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모든 병을 정확히 진단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만성 관절염은 종류가 많아 정확한 원인을 알기가 어려워 통증을 줄이는 약을 쓸 수밖에 없다.

-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은 약을 먹지 않으려 하고, 건강 유지를 위해서는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다. 약이 주는 혜택과 위험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그러므로 전문가와 정부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여 소비자가 약을 적절하게 사용해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길라잡이가 되어야 한다.

 

- 마크 트웨인은 생의 황혼기에 "사람이 여든 살에 태어나서 점차 열여덟 살로 젊어진다면 인생은 대단히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의 내리막에 대한 두려움을 재치 있게 표현한 문장이다.

- 인류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불로장생을 꿈꿔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애착, 미완에 대한 아쉬움 등 어떤 이유로든 죽음을 피하고 싶은 갈망은 오랫동안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화, 역사, 문학 그리고 예술 작품 속에서 '불로장생'은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제우스의 아들 탄탈로스는 올림포스산에 초대를 받고 갔다가 불멸을 가져다준다는, 신들이 먹는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이 마시는 음료인 넥타르를 훔치는 바람에 벌을 받는다. 지옥에 떨어진 탄탈로스가 강에서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사라지고, 과일을 먹으려 하면 바람에 가지가 흔들려 과일을 먹을 수 없었다. 그는 굶주림과 갈증으로 영원히 고통받는다.

 

- 불로장생 이야기에 진시황이 빠질 수 없다. 진시황은 늙지 않고 죽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따르면 제나라 사람 서복은 진시황에게 바다 건너 신령의 산에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영원한 젊음을 가져다주는 불로초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시황은 서복에게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명령했고, 서복은 수천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불로초를 찾지 못한 서복은 빈손으로 돌아가면 진시황에게 처형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진시황은, 독성이 강한 중금속인 수은이 주성분인 탕약을 몇 달간 먹었고 결국 49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수은은 금처럼 귀했던 데다 적은 양을 먹어도 피부가 팽팽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진시황은 수은을 불로장생약으로 믿고 죽음에 이를 만큼 오래 먹었던 듯하다. 불로장생에 집착했던 진시황이 불로장생약으로 알았던 수은의 부작용으로 단명한 사실은 역설적이다. 

- 2013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은 '이 아기들은 120살까지 살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표지에는 피부 색깔과 관계없이 미래 인류의 평균수명은 120세가 될 것이라는 의미로 백인, 동양인,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기의 사진을 실었다.

- 많은 과학자가 페이흐 교수가 주장한 인간의 한계 수명 115세를 뛰어넘기 위해 연구해 왔다. 과학자들은 효모, 곤충, 생쥐 등으로 실험한 결과,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이제 이러한 연구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 과학자들이 제시한 첫 번째 방안은 식이 조절을 통해 노화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물벼룩, 거미, 어류, 생쥐에게 사료량을 줄여서 주었더니 수명이 30% 연장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평균수명이 33개월로 알려진 생쥐의 사료량을 줄였더니 생쥐의 수명이 12개월이나 연장된 것이다. 2009년 <사이언스>에는 1987년부터 20년간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수명 실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붉은털원숭이는 유전체가 사람과 93%가 동일하며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작용 측면에서도 사람과 상당히 유사하다. 위스콘신대학 연구팀은 처음에는 수컷 30마리로 시작했다가 1994년에 암컷 30마리와 수컷 16마리를 추가했다. 실험결과 정상적인 사료량을 먹은 원숭이는 50%가 생존했고 사료량을 30% 줄인 원숭이들은 80%가 생존해 있었다. 또한 사료를 적게 먹은 원숭이에게서 당뇨, 암, 심혈관 질환, 뇌 퇴화 같은 노화와 관련된 질환 발생 시기가 현저히 늦게 나타났다. 

- 3년 뒤 2012년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NIA가 붉은털원숭이 121마리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네이처>에 실려 과학계에 논쟁이 일어났다. 즉 사료를 정상량으로 먹은 원숭이와 적게 먹은 원숭이 사이의 생존률에는 차이가 없으며, 다만 통계적으로 건강이 개선된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 사람이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영양소를 정상적으로 섭취하되, 칼로리만 줄이면 오래 살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절식 이론에 동의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일본인이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이유로 소식하는 식습관을 꼽는다. 반면에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올라갈수록 절식 효과는 매우 적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하려면 적어도 실험 대상자가 20년 동안 저칼로리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여러 명의 실험 대상자를 구하기가 어렵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격일로 절식을 시켜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사람에게 간헐적으로 절식시키는 실험을 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도 절식을 하면 노화가 늦춰지며 수명이 연장된다는 가설은 과학자들에게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 두 번째 방안으로 과학자들은 의약품이나 식품 중에서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물질을 찾고 있다.

 

- 1950년 영국에서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메포민은 미국에서는 1994년 시판 허가 결정이 내려져 매년 수백만 명의 당뇨병 환자에게 처방되었다.  

- 과거에는 분화된 체세포는 다시 줄기세포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2006년 일본 교토대학 신야 야마나카 Shinya Yamanaka 교수는 체세포를 역분화시킬 수 있는 유전자 4종을 발견한 뒤 생쥐에서 분리한 피부 세포에 이 유전자들을 주입해 유도만능줄기세포 PS를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세포와 장기를 재생함으로써 불치병을 해결하는데 획기적인 실마리를 제공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 2016년 12월 미국 솔트연구소 후안 카를로스 벨몬테 Juan Carlos Belmonte 박사는 "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해 늙은 생쥐를 젊어지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사람의 장년에 해당하는 12개월 된 생쥐와 조로증 생쥐,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첫 번째 그룹인 12개월 된 쥐에서 분리한 성체 세포에 야마나카가 발견한 유전자를 주입하자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과 근육세포가 정상 기능을 회복했으며 상처 회복 능력도 빨라졌다. 두 번째 그룹은 유전자 조작으로 조로증에 걸린 생쥐인데, 사람이 조로증에 걸리면 신체가 빨리 노화되어 각종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다 10대에 사망한다. 야마나카가 발견한 유전자 4종을 조로증 생쥐에게 주입한 결과 생쥐들의 심장박동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을뿐더러 생쥐들의 수명이 30% 연장되었다. 

- 벨몬테 교수의 실험은 노화를 '지연시키는' 것이 아닌 젊음을 '되돌린다'는 점에서 이전 과학자들의 연구를 뒤집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 연구가 노화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음에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암세포로 변할 가능성이 있으며 치아나 털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동물실험 결과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날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그리고 세포 재생이 잘 되지 않는 뇌 신경세포도 젊은 세포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젊은 심장과 노화된 뇌를 동시에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노화의 생물학적 비밀을 풀어 평균수명을 120세까지 늘리기 위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미래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학이 발달해 인간 수명에 큰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도 노령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노동인구의 감소, 사회복지와 의료비 부담 등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미래평균수명의 연장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 태어나서 생애 마지막 날까지 항상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현대 과학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제시한다. 2017년에 대부분의 과학 문헌이 제안한 '건강하게 사는 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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