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신해욱] 해몽전파사

일루젼 2024. 7. 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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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신해욱

출판 : 창비
출간 : 2020.02.29


       

소설이면서도 산문시 같았던 글. 

 

<해몽전파사>는 꿈을 모으는 한 여성('진주 씨')과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 '나'의 이야기다. '나'의 성별은 모호하지만 아마도 여성일 것이다. 그녀들은 꿈을 채록하고, 꿈에 관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진주 씨가 운영하는 '해몽전파사'는 이름과는 달리 해몽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꿈을 모을 뿐이다. 어떤 해석도, 분석도 달지 않는다.

 

그래서 <해몽전파사>에는 46개의 꿈이 날 것에 가까운 상태로 실려 있다. 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꿈은 작중 '나'의 표현마따나 '박제'되고 '번역'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꿈들은 가만가만 읽지 않으면 그대로 흘러나가 버린다. 

 

플롯이 있는 소설을 읽는 느낌보다는 누군가의 머릿속을 관찰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꿈은 훨씬 이미지적이고, 또 꿈을 꾸는 당사자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납득과 이해를 동반하는 일종의 대화다. 하지만 일상 중의 머릿속은 다르다. 잠시 뒤면 내가 그런 것을 생각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수많은 사소하고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들이 흘러 다니고 있다. <해몽전파사>는 그것을 잠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신선했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머릿속을 조금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 같기는 하다.   

 


   

 

- 해몽전파사는 왕십리에 있다. 

서울 성동구 무학봉 17길 15. 

무학초등학교에서 행당시장 방면으로 오분쯤 걷다 보면 골목이 갈라지는 완만한 경사 길이 나온다. 그 길목의 자투리땅에 세모꼴로 지어진 이층 건물이 있다. 오래 손보지 않은 건물이라 외벽의 치장 벽돌은 절반 이상 떨어져 나갔다. 일층 간판의 '몽'자는 'ㅁ'이 한쪽으로 삐뚜름하게 기울어 있는데 그 모양이 묘하게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가게 안에 불이 켜지는 일은 거의 없다. 유심히 살펴야만 무질서하게 쌓인 구형 라디오, 브라운관, 오디오, 컴퓨터 본체 같은 고물 전자기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 내가 해몽전파사를 처음 기웃거린 것은 삼 년 전 어느 비 오던 날이었다. 일터인 보습학원과 집을 오가는 길에 있는 터라 자주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내부는 어둡고 문은 늘 닫혀 있어 짐짓 철거가 예정된 폐건물이려니 했던 곳이다. 그날 내 가방에는 망가진 헤어드라이어가 들어 있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 김에 수리를 맡겨보자고 들고 나왔는데, 그날따라 일진은 엉망이었고 날씨는 유난히 음침했다. 약속 장소였던 카페는 하필 내부 공사 중이었다. 사람들에 치이며 번화가를 헤매는 사이 우산살은 나갔고, 운동화는 젖었고, 친구와는 끝내 말다툼을 했으며, 아침에 말리지 못한 머리는 초저녁이 지나도록 다 마르지 않은 채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오면... 지겹지. 김소월의 왕십리는 어땠으려나.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공기가 셔츠를 뚫고 살갗에 달라붙었다. 나는 녹초가 된 데다 뼛속으로는 오뉴월 한기까지 들어, 가방 안의 헤어드라이어를 바닥에 팽개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해몽전파사가 떠올랐다. 거기라면 혹시 고쳐주려나. 어차피 가는 길. 조금만 돌아가면 되니까. 열려 있으면 고맙고 아님 말고. 

- 버스에서 내려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어스름이 깔린 시각이었고 불을 밝힌 창문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쪽 길을 찬찬히 둘러보긴 처음이었다. 오래된 주택과 상점, 신축 건물이 뒤섞여 있었다. 은하문구, 차돌슈퍼. 무지개칼국수. 솜 틉니다. 모퉁이를 돌아 고무함지 안의 수국과 고추나무. 무학오뎅. 다시 모퉁이를 돌아 샌딩빠우. 함석판에 붓글씨로 적은 풍운정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말다툼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그리고 해몽전파사.

- 역시나 불은 꺼져 있었다. 영업 중이더라도 저녁이 다 되었으니 문을 닫았을 시각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실망스럽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이 실망감은 딱히 헤어드라이어 수리에 대한 것이라기는 어려웠다. 간판의 글자들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다크서클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세모꼴 부지에 맞춘 세모꼴 건물 모서리는 찌를 듯이 뾰족해 보였다. 모서리를 만져보았다. 눅눅한 가루가 묻어 나왔다. 바지에 손을 문지르고 휴대전화의 불빛으로 가게 안쪽을 비췄다. 내부는 보이지 않고 유리에는 나의 전신이 반사될 따름이었는데, 가슴팍에 찍힌 글자는 내 옷에 프린트된 것이 아니었다. 흰색 글자는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각종 꿈 매입

몽몽교환 프로젝트 진행 중

문의 019-210-7163


- 꿈 매입? 매매는 아니고 매입만? 매입만 하면서 교환이라는 게 말이 되나. 피식 웃고 돌아서려는 찰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둔 간밤의 꿈이 떠올랐다.
사겠다는데 팔아볼까. 얼마에 흥정할까. 허망함과 기진함이 뒤섞인 마음 상태가 유리문에 적힌 번호로 문자를 넣도록 부추겼다. 충동이었으니까 무슨 기대를 한건 아니었고 딱히 망설이지도 않았다. 019로 시작하는 번호라면 어차피 오래전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컸다. 

- 답신을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지 않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심정으로 메모장의 오타를 고쳤다. 처마 닐을 처마 밑으로, 황색을 황토색으로. 잠이 덜 깬 손가락으로 적은 거라 틀린 글자들이 많았다. 우산 아래로 비가 들이쳐 액정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트럭이 지나가면서 움푹한 바닥에 고인 빗물을 사방에 튀겼다. 닸고를 닦고로, 즈국을 자국으로 삶으면 관찮을까. 관찮기는 안 괜찮지. 꿈 매입이라니. 실없는 장난에 실없이 넘어갔잖아. 

- 진동이 울린 건 마음을 접고 발길을 몇 걸음 돌렸을 때였다. 전화기를 다시 꺼냈다. 이층으로 올라오라는 메시지였다. 그러고 보니 이층 창문에는 커튼 너머로 조도가 낮은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막상 응답이 돌아오자 심장이 뛰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단은 뒷벽으로 나 있었다.
난간이 없고 바닥은 미끄러워 이층 문을 두드리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 바닥은 노란 장판이었다. 눌린 자국이 많았고 걸레질을 한 지 오래된 듯 끈적거렸다. 발바닥이 장판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뻔뻔하고 민망하게 들렸다.

- 여자는 말없이 빈 의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탁자에는 네 사람이 둘러앉아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 된다, 뱀이 된다... 반드시 된다, 피리가 운다... 깊어진다. 밤이 된다... 그들이 펼쳐놓은 페이지를 곁눈으로 넘겨보니 나쓰메 소세키의 <몽십야>였다. 열개의 꿈 중 네 번째 꿈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 얼떨결에 나는 낭독 모임에 끼어 <몽십야>의 여덟 번째 꿈을 읽었다. 열개의 꿈이 어느덧 다 지나가자 탁자에 둘러앉았던 이들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문을 나섰다. 여자는 내게 차가운 홍차를 내주었다. 용건을 먼저 묻지는 않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렸다.
"책 읽는 모임인가요?"
내가 먼저 입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책도 읽죠."
여자의 대답은 짧았다. 홍차 안의 얼음이 아지랑이 무늬를 만들며 녹고 있었다. 무색한 손으로 나는 탁자에 놓인 책을 뒤적이다가 <영일소품>의 한 장을 가리켰다.
"이것도 좋은데."
"좋죠. 그 꿈도."

- 대답은 다시 짧았다. 손바닥에 땀이 났다. 나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바깥에서 볼 땐 이런 세모꼴 건물에 가구 하나 놓을 자리나 변변히 나올까 싶었지만 안은 제법 넓었다. 공간은 사다리꼴이었다. 출입문의 맞은편 벽에 미닫이문이 나 있었다. 문 옆에는 생뚱맞게 연통도 없는 난로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작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지나친 숙면은 꿈에 해롭습니다.' 현판의 문장을 보며 나는 싱거운 웃음을 표나게 흘렸다.

- 한쪽 벽에는 유리문이 달린 장식장과 체리색 시트지를 붙인 5단 책장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장식장에는 연갈색 지구본과 모래시계, 도자기 인형이 달린 오르골... 실내를 둘러보던 나는 장식장을 열고 허락도 없이 오르골을 꺼내 태엽을 돌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흘러나오고 책장에는 니콜라이 고골, 골드베르크 변주곡, 립밴윙클, 나이트메어... 뒤죽박죽 꽂힌 책과 음반과 DVD와 구식 테이프들 나이트메어 옆자리는 황동문진이었다. 문진에는 작은 글자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꿈을 꿈이라 해도 꿈일 수 없는 세계로부터'

 

- "너무 무겁지 않나요? 꿈이 짓눌리겠네요."
문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해 보며 내가 말하자 여자는 눈을 흘겼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허세는 그만하면 됐다는 표정이었다. 몇 가지 품평을 더 늘어놓을 요량이었지만 그 표정에 나는 반쯤은 기가 눌리고 반쯤은 맥이 풀리고 말았다.  

- "많이 적어두시나요? 어쩐지 제가 이 꿈속의 흑진주씨 같네요."
빙그레 웃으며 그는 내게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비가 오니까. 꿈 값으로 택시 타고 가세요."

- 해몽전파사에서 받아온 꿈 값으로 나는 늦은 저녁밥을 먹고 마트에 들러 커다란 복숭아를 샀다. 종일 비 오는 거리를 헤맨 터라 집에 돌아와서는 쌍화탕을 데워 마셨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여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가 이 꿈속의 흑진주씨 같네요. 인사치레였겠지만, 정말로 꿈속의 흑진주를 만나고 온 기분이었다. 이런 게 예지몽인가.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불이 두꺼워야 잠이 잘 오는데, 이불은 종잇장처럼 얇고 종잇장보다 힘이 없고. 덮어도 그만 덮지 않아도 그만. 이불의 가장자리가 하나의 폐곡선으로 가슴과 팔다리를 가로지르며 1그램의 무게 ...   

- 그날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 한 번에서 두 번, 두 번에서 세 번 해몽전파사를 드나들다가 나는 여자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가볍고 친근한 대화가 오갈 땐 흑사장님이라고도 부르고 진주 씨라고도 부른다. 반쯤은 장난이지만 반쯤은 진심이기도 하다. 몇 번을 농담조로 그렇게 부르고 나니 입에 붙어버리고 말아서 이제 흑진주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 해몽전파사에서는 여러 가지 소모임과 강좌가 진행된다. 토요일에는 꿈의 영화를 상영하고 일요일에는 꿈의 텍스트를 낭독한다. 수요일에는 꿈과 인문학 스터디가, 목요일에는 뇌과학 스터디가, 금요일에는 몽유록 읽기 모임이 격주로 열린다. 단기 집중 코스인 루시드 드림 입문. 실전 강좌와 두세 달에 한번 개설되는 드림캐처 만들기 강좌는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한다. 라기보다는 강사 선생님이 수강생들을 데리고 와서 이 공간을 활용하는 편에 가깝다. 굳이 이곳을 분류하자면 문화사랑방쯤 될까. 그렇지만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은 그냥 다들 '가게'라고 부른다. 

-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몽유록 읽기 모임과 영화 상영회가 있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가게에 나와 모임을 주재하거나 관리하고 때때로 프로그램을 짠다. 토요일의 영화 상영리스트는 직접 고르는 편이다. 마음이 내키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간략한 소개 글을 써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금요일에는 청소를 하고 다과를 준비한다. 모임이 시작되면 배우는 마음으로 탁자에 함께 앉아 꿈을 빙자한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기울였다. 그동안은 그래왔다. 

-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이년 반이 되어간다. 그동안의 일기를 들추며 가게가 스민 꿈을 읽어본다. 꿈 값을 받고 판 흑진주 꿈도 다시 읽어본다. 이 꿈을 적어두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날 해몽전파사를 찾지 않았다면. 일주일째 뒤숭숭한 상태로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 오늘은 영화 상영회가 있었다. 여섯 명의 멤버들과 함께 <8과 1/2>을 보았다. 첫 장면은 주인공의 악몽. 주인공은 갇혀 있다. 꽉 막힌 도로에 차 안에 다른 차에 탄 운전자들의 시선에 탈출에 겨우 성공한 그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골로 보내버려, 목소리와 함께 추락하고, 추락과 함께 내 머릿속은 화면을 떠나 갈래갈래 흩어졌다. 책장에는 지난주부터 크고 무거운 책 한 권이 꽂혀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꿈 일기를 묶은 책이다. 이십여 년치의 꿈이던데, 번역이나 해볼까. 꿈을 기록하는 일 자체가 일종의 번역이다. 펠리니는 이탈리아 사람이니까, 꿈을 이탈리아어로 옮기고,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옮기고, 또 한국말로 옮긴다면 삼중 번역이 되겠지. 번역에 번역을 거쳐 남는 건 뭘까. 어수선한 생각 사이로 노인의 얼굴, 어린이의 얼굴, 우리가 잠들면 초상화가 눈을 뜬대, 영화의 장면이 단편적으로 눈에 들어오다가 어느새 엔딩 자막이 떴다. 

-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다시 일기를 펼친다. 커피를 내린다. 열흘 지난 부룬디 피베리. 첫 모금은 짙은 초콜릿. 창밖을 본다. 초콜릿 위에 푹신한 마시멜로, 마시멜로 위에 신맛, 단맛, 창밖엔 눈이 내린다. 가게를 처음 찾았던 날은 비가 왔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 [누가 트럼펫을 분다. 오르골 소리가 난다. 오르골의 태엽이 천천히 풀리면서 가랑이 사이로 오줌물이 흘러내린다. 마음이 놓인다. 땅은 비옥할 것이다. 나무가 자랄 것이다. 차가운 열매가 달랑거릴 것이다. 금속의 아침을 알릴 것이다. 

특수금속의 아침이니까. 기계수에 세수를 할 차례다. 금속에 금이 간다. 금이 간 자리에서 쇳물이 솟는다. 쇳물에 얼굴이 비친다. 나는 손오공의 가면을 쓰고 이마에는 소리테를 두르고 있다. 누가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두드린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고대의 화음이 흡수된다. 아니야. y음이 빠진 황동색 소리. 은은한 반짝임. 나팔은 가볍고 트럼펫은 맑다. 

손가락이 간지럽다. 피보나치 음계가 그립다. 프레스기로 납작하게 누른 건반이 줄줄이 덕장에 매달려 해풍에 말라간다. 나의 페이지처럼 펄럭인다. 커튼처럼 펄럭인다.

- 꿈7 ]


- 윤희는 누구였을까. 윤희는 어디에서 와서 나의 옛날 집 툇마루에 앉아 있었던 것일까.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듣는 이름. 꿈에서 이런 생면부지의 뚜렷함을 마주치고 나면 정녕 나의 잠과 다른 이의 잠을 이어주는 초감각의 네트워크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김유신 장군의 두 여동생 보희와 문희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보희는 꿈속에서 오줌을 누었다. 꿈속의 오줌은 흐르고 흘러 서라벌 시내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문희는 언니의 꿈이 탐났다. 비단 치마를 꿈 값으로 치르고 언니에게 꿈을 샀다. 그리고 훗날 김춘추와 부부의 연을 맺어 왕비가 된다. 끝이 아닐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오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자매는 둘이 아니라 셋이다. 보희, 문희. 그리고 막내 윤희, 문희가 김춘추의 아내가 되어 궁궐로 떠난 후 보희와 윤희는 꿈의 가게를 차린다. 윤희는 꿈을 모으러 다닌다. 보희는 윤희가 모은 꿈을 판다. 보희와 윤희의 가게에는 문희가 꿈 값으로 치른 비단 치마가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다. 문희가 보희에게 산 것은 꿈의 알맹이. 껍데기는 여전히 보희에게 있다.  

- 물려받은 땅을 망설임 없이 팔았다. 이 건물에 끌린 건 아무래도 간판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말이야. 매매계약서를 쓰러 가보니까 전파사 할아버지 이름이 엄해동인 거야. 해몽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 가게 이름을 지었을 줄 알았는데, 해동을 해몽으로 잘못 본 간판업자의 실수였던 거지. 딱히 실망스럽지는 않았다고 했다. 꿈은 꿈인 것. 꿈은 그저 꿈으로서 있는 것. 

- 진주 씨의 소망은 꿈의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료와 유물을 집적하거나 무의식을 파고 들어가는 깊이의 아카이브가 아니라, 세계의 표층을 커버하는 피상성의 아카이브. 누구나 꿈을 꾼다. 기억하지 못할 뿐 꿈이 없는 밤은 없다. 그 꿈들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면 날짜와 시간을 적어서 위도와 경도를 붙여서 꿈의 지표면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구. 꿈의 대륙. 꿈의 절해고도, 꿈의 등고선. 꿈의 해안선. 

- 그 소망의 소박한 실천으로 낭독 모임이 시작되었다. 소망이 소망이었던 만큼 원래는 직접 꾼 꿈의 기록을 공유하는 자리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의 방향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수집되는 꿈이 일단 너무 적었다. 꾸기는 꾸었는데 기록할 가치가 없거나 기록하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고들 했다. 써오는 게 부담스럽다며 수박만 한 귤을 깠어요, 개에게 물린 다리가 한쪽만 따로 뛰었어요, 말로 어물거리다가 마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나마 모인 꿈에는 구구절절 해석이 붙었다. 꿈 자체를 나누기보다 꿈의 의미나 상징을 찾고 싶어 했다. 해몽대백과 같은 책을 참조했고 프로이트나 융을 따라 하고 싶어들 했다. 

- 다들 내 마음과는 달랐어. 어디에 나오더라. 달을 보라 하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 정확히 그 반대였다면 될까. 손가락의 곡선과 손마디의 주름과 손톱 모양을 보아달라고 손을 들어 올렸는데 손의 뒤편에 우연히 뜬 달만 쳐다보는 것 같았어. 간판의 저주랄지, 세뇌랄지, 예언이랄지,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바라는 건 결국 해몽에 가까웠다. 

- 궁여지책으로 진주씨는 꿈이 아니라도 좋으니 꿈과 관련된 글을 가져와 읽자고 했다. 참석자들의 꿈은 모임에서 점점 사라졌다. 책 속에 남은 꿈의 기록들을 읽는 것으로 낭독의 시간이 채워졌고, 언젠가부터는 서로 다른 관심사에 따라 꿈을 다룬 철학이나 심리학, 해몽 자료들을 읽는 그룹과 문학작품 속의 꿈을 읽는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 진주씨는 낭독 모임의 방향이 자신의 소망으로부터 멀어졌음을 인정하고 나서 일층 문에 공고를 붙였다. 각종 개꿈 매입. 몽몽교환 프로젝트 진행 중. '개꿈'이라고 박아놓지 않으면 또다시 해몽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고 하니 공고인 동시에 부적이기도 한 셈이었다. 부적은 안타깝게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일층 전파사를 여전히 제집처럼 드나들던 전 주인 할아버지가 상스럽다며 '개' 자를 칼로 긁어내버린 것이다. 

- "자기는 편집숍을 꾸리고 싶다며."

"그냥 해본 말이었죠."
나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잠시 그런 맹랑한 소망을 품은 적이 있기는 했다. 진주 씨의 마음이 아카이브 쪽에 쏠려 있었다면 나는 가게 쪽이었다. 갖출 걸 제대로 갖춘 꿈의 가게로 해몽전파사를 단장해보고 싶었다. 모임에서 읽는 책들은 재고를 넉넉히 갖춰 판매용 서가에 꽂는다. 드림팝 명반들을 재킷이 잘 보이게 진열해 두고 잠과 꿈의 곡들로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어야지. 소품 몇 가지를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큐버스나 샌드맨, <산해경>에 나오는 기여(鵸䳜)의 도안을 담은 니켈 도금 배지라든가, 꿈의 문장을 프린트한 에코백. 앙리 루소나 히에로니무스보스의 그림을 실은 탁상 달력, 몽유도원도의 1000피스 직소퍼즐. 드림캐처는 요즘 널려 있으니까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공수해 와서 원조라고 강조할까.  
일층에서 차와 커피를 팔아도 좋을 것이다. 메뉴에 올릴 음료의 이름은 파라오의 꿈. 소크라테스의 꿈. 보희의 꿈. 카프카의 꿈. 보르헤스의 꿈. 구운몽. 호접몽. 

- "못마땅해했잖아. 이런 식으로 관리하는 거."
진주 씨는 내 머릿속에 어수선하게 떠오른 생각을 읽은 듯했다.
"내친김에 리모델링도 해보든가. 공연도 기획하면 좋겠다며? 아래층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면 쓸 만한 음향기기 찾아줄걸?"

- 공연. 그래. 공연 무대도 공상의 목록 중 하나였지. 타이틀은 드림시어터. 말 그대로 공상이었다. 나는 이제껏 나의 소망을 구체화할 엄두는 내본 적이 없었다. 이곳의 주인은 진주 씨였고 나는 그저 아르바이트를 할 뿐이었다. 말이 아르바이트지 실은 취미 생활 겸 혼자만의 공간을 얻을 겸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았다. 관리가 느슨하니 해몽전파사의 모임은 무산되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종일 이곳을 개인 작업실처럼 사용하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나는 은근히 반겨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가게를 본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학원 일부터 그만두어야겠지. 안정된 수입이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천 개의 꿈이라니. 

- "왜 하필 천갠데요."
"천일야화에, 천로역정에, 이왕 하는 거 천 단위는 되어야 있어 보이잖아."
"천로역정의 천은 하늘 천인데요."
"그럼 더 멋지네."

- "아무 꿈이나 천 개는 아닐 거잖아요."
"알잖아."
"대충 채울 수도 있어요."
"믿을게."

-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다. 가로로 한번. 세로로 한번. 볼펜을 굴린다. 레미제라블이란 뭘까. 십자말풀이를 하다 막혀버린 기분이다.
앞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끼어든다. "레미제라블은 게걸스러운 사람들이야."
앞사람의 옆사람도 고개를 돌리고 끼어든다. "패스해. 레미제라블은 블랙 무의 책이야."
나는 레미제라블을 코앞으로 끌어당겨 얼굴을 가린다. 가로도 세로도 막혔고 뒤로 도망갈 수는 없으니까. 아침은 멀었으니까. 레미제라블을 피해. 레미제라블 속으로, 한쪽 눈으로는 글자들을 읽고 한쪽 눈으로는 읽힘에 의해 펼쳐지는 세계 속으로 돌진한다. 

- 꿈9]

 

- 자책에 사로잡힐 일을 또 만들 수는 없었다. 그 일만으로도 이미 버거웠다. 반년 전, 내가 일을 나가던 학원 원장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빚이 많았다. 투신하기 전날 원장은 내 책상에 놓인 구름떡을 가리키며, 신 선생, 나 그 떡 한쪽만 먹자, 배고프다,라고 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원장과는 아무것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보충 타령이면서 전달 월급은 입금 전이었다. 마주칠 때마다 우는소리를 하며 며칠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는 엄살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나 때문이었던 건 아니다.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굴욕적이었겠지. 떡을 주었으면 달랐을까. 떡은 말랑말랑했으니까. 허기가 가시면 기분도 나아지니까. 절망 사이로 다른 것이 비쳤을 수도 있을 텐데. 나 그 떡 한쪽만 먹자. 그 떡이 위에 얹혀 여태 소화가 되지 않는다. 천만다행으로 원장은 목숨을 건졌지만 학원은 풍비박산 났고 나는 다른 학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새 학원에서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참에 학원 일을 그만두고 임용고사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학원을 알아볼까. 출판편집 일을 배워볼까 고민만 한다. 고민만 깊다 만다. 이참에...

- 가게를 줄게. 물리치려던 목소리의 방향으로 기어코 다시 고개가 돌아간다. 가게가 뭐라고. 세이렌의 노래도 아닌 것이 속삭임도 아닌 것이 애초에 귀를 막고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듣고 만 목소리의 여음이 머릿속을 맴돌며 바다에 뛰어들라고 유혹한다. 저는 수영을 못해요. 수영강사도 혀를 찼다고요. 음. 파. 음. 파. 물만 먹고 강습을 그만뒀어요. 꿈을 하나씩 모을 때마다 진주 씨의 수명이 하루씩 단축될 것만 같은 몹쓸 기분이 든다. 

- [마녀와 말다툼을 한다. 됐어. 타고난 대로 사는 거야. 먼 데까지 가는 건 불가능해. 인간 따위가. 마녀가 빈정거린다. 나는 마녀의 말을 받아친다. 맞아. 인간 따위는 팔자대로 살아. 그런데 틀렸어. 우리는 어린이거든. 어린이와 인간은 종자가 다르거든. 잠은 얕다. 속이 다 보인다. 나는 마녀와 싸우면서 마녀와 나의 싸움에 귀를 기울인다. 무슨 구연동화 같군. 손인형을 팔꿈치까지 끼고. 머리와 턱에 손가락을 넣고. 마녀의 입에서 내 목소리가 나온다. 나의 입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온다. 나의 턱을 그의 손이 움직인다. 내 손이 마녀의 턱을 움직인다. 마녀의 턱이 빠질 듯 덜렁거린다. 
"미쳤구나! 지렛대로 삶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하지! 잘 봐! 나는 벌떡 일어난다. 지렛대로 튕긴 것처럼. 맹 스피드로. 

 

반동과 함께 꿈의 앞 장면이 떠오른다. 옷 때문이다.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아니다. 옷을 잘못 입힌 것이다. 나는 사력을 다해 위선의 인형 옷을 뜨고 있었다. 꽈배기를 잘 꼬아야 했는데. 바늘코를 하나 빠트렸다. 빠트린 코로 돌아갔다. 마녀의 집이었다. 색색의 털실뭉치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벌거벗은 인형이 입을 뻐금거렸다. 진심 같은 것에는 옷 좀 입히자. 남의 진심이 의심되면 너의 진심도 의심해 봐. 너의 진심을 알리고 싶으면 남의 진심도 믿어보고. 멱살을 잡혔다. 남의 마음에는 음모만 있고 너만 진심이야? 그래? 그런 거야? 내 손은 인형의 입에 물려 절단 날 것만 같아서. 살릴 코는 살리고. 죽일 코는 죽이고. 다시 코가 빠져서 살릴 코를 죽이고.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배출구에 떨어진 옷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 옷에는 털이 많았다. 각자의 털옷들. 미완성의 털옷들. 자판기에 공급할 옷을 다 뜨지 못했는데. 털실이 부족해서 나는 남의 털을 뒤집어쓰고 어디를 가야 했다. 어디는 멀었다. 남의 턱으로 화를 내고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야 했다. 자판기 옆에는 마네킹 마네킹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먼지가 날렸다.  

- 꿈11]

 

-  간밤의 꿈은 투명하게 읽힌다. 진주 씨의 역할을 대신 맡고 싶은 마음과 맡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맡았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과 의심과 불안과... 감정의 앙금이 두껍게 가라앉은 이런 꿈을 수집 목록에 넣어도 되나.

- 밀린 설거지를 한다. 아무 꿈이나 천 개를 모으는 게 아니다. 양질의 개꿈 천 개인 것이다. 개꿈이란 뭘까. 양질이란 뭘까.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종량제 봉지를 채운다. 봉지 안 밑바닥에는 걸쭉하고 탁한 물이 고여 있다. 의미의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맑은 꿈은 어떤 방법으로 떠내는 것일까. 허용되는 불순물의 양은 몇 퍼센트일까. 그릇을 정리한다. 나무주걱에 기름을 먹인다. 수저를 수저통에 넣는다. 수저통 옆에는 거름종이와 면포가 있다. 싱크볼 아래의 수납장에는 채반이 있다. 창틀에는 방충망. 창밖에는 마른 나무, 나무를 본다. 나무는 목련이다. 가지에 꽃눈이 올라와 있다. 나무의 꽃눈을 보고 있으면 방충망의 격자는 흐릿해진다. 방충망의 격자에 맺힌 물방울에 눈을 맞추면 나무는 몇 개의 산만한 선에 불과해진다. 일테면 초점의 차이일지도. 이런 건가요, 사장님?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그럴 거야. 꿈도 의미를 읽으려 하면 무늬가 사라지고, 무늬를 살피려 하면 의미가 희미해지고, 개중엔 의미도 무늬도 따로 또 같이 보이고. 

- "인류가 만일 진화를 거듭해서요. 아무 결핍도 없게 된다면요. 꿈을 안 꾸게 될까요."
대보름 전이던가 후던가, 진주 씨와 호두를 까면서 불쑥 이런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글쎄. 꿈도 진화를 거듭하지 않을까. 마음도 머리도 벗어나서."
진주 씨는 심드렁히 대답하고는 책장에 놓여 있던 황동문진으로 호두를 쳤다. 호두는 쪼개지지 않았다.
"줘보세요. 제가 해볼게요."
나는 진주 씨의 손에서 문진을 빼앗았다. 꿈을 꿈이라 해도 꿈일 수 없는 세계로부터. 문진에 새겨진 글자들 호두를 두드렸다. 톡톡. 노크를 하듯이. 기척도 없군.  

- 특수재화의 구름 속에서
크루통 같은 생일
변화에는 물에 빠지는 두 개의 아치가 필요하다
성곡포인트
왜라니인형

- 얕은 잠 속을 들락날락하며 메모해 둔 것을 보니 이 모양이다. 맥락은 휘발되고 파편으로만 남은 요령부득의 말들. '몽돌'이나 '목화'의 출처는 그럭저럭 가늠이 되는데 나머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약사지게'는 '약삭빠르게'같은 부사어일까. '약사+지게' 형태의 합성어일까. 머릿속에 저장된 음절들이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졌다가 멋대로 결합하여 이런 말들을 만들어낸 것인지 나름의 감정이 나름의 논리로 길어 올린 말들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내 마음과는 단절된 말들을 이렇게 배열해놓고 보니 ...

-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진주 씨를 생각한다. 생리를 하는 진주 씨. 생리를 하는 나이일지 아닐지를 곰곰이 따져본 적은 없지만 대강 갱년기를 지났겠거니 짐작했었나 보다. 흰머리가 많으니까. 겨우 흰머리 가지고. 진주 씨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창밖에는 접촉 사고를 일으킨 두대의 승용차가 도로 한가운데 서있다. 차 문을 열고 나온 운전자들이 서로 삿대질을 하고 버스는 느릿느릿 삿대질하는 손가락을 지나 주상복합건물의 불빛을 지나 유리창에 반사된 버스 안의 승객들이 거리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령들 같군. 혼령이 벨을 누른다. 혼령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혼령들에게 맞추었던 먼 초점을 가깝게 당기자 창문에 기댄 나의 얼굴이 보인다. 나의 얼굴을 보는 내 눈과 마주친다. 눈을 피한다.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 휴대전화의 검색창에 단어를 넣어본다.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 있다. 마녀사냥의 도시 세일럼에 있다. 세일럼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세일럼은 지금 한낮이고 나의 도시는 밤이 깊어간다. 에섹스는 영국 남부에 있고 에섹스에서 키우던 에섹스 돼지는 멸종되었고 돼지피를 뒤집어쓴 지옥의 장엄한 여왕 캐리는 박달나무 장롱 안에서 생리를 한다.  

- 정류장에서 헤어지며 진주 씨는 내게 세 개의 꿈을 더 건넸다. 전부 제목이 붙어 있었다. 자각몽을 수련하는 친구가 조언을 한 적 있어. 제목을 달아두면 기억도 쉽게 나고 패턴도 발견할 수 있다고. 내 생각엔, 발견보다는 배열이지만. 패턴의 포인트는. 

패턴이야 발견이건 배열이건, 진주 씨의 목은 추워 보였다. 나는 버스에 먼저 오르는 진주 씨를 불러 세워 목도리를 건네고 싶었다. 내 따뜻한 목도리의 패턴은 십자 꽈배기였다. 그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버스의 문이 닫혔다.  

- [등을 돌렸지만 소용이 없었지. 깨진 머리와 흥건한 피의 양이 상세히 입력되었고 누가 육중한 돌덩이를 들어 올렸지. 너의 머리를 겨냥했지. 깨진 머리에서 삶의 내력이 쏟아졌지. 그렇지만 너는 이자가 아니다. 이자는 그자가 아니다. 이자는 검은 모피에 덮여 있다. 
모퉁이를 돈다. 심정적 오욕을 오물처럼 뒤집어쓰고 나는 느릿느릿 걷는다. 증거를 인멸하려는 것인지 수집하려는 것인지 용의자인지 경찰인지 쫓기는 것인지 쫓으려는 것인지 광장은 사라지고 광흥창만 남았는데, 말릴 수가 없구나.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구역에서 사람을 만난 사실에 적의가 치민다. 
흙 속에 박힌 증거는 단단히 자리 잡은 돌멩이와 같다. 발부리로 애써봐도 도무지 파낼 수가 없다. 

- 꿈 ]

 
- 경찰이 다가왔고 뛰어야 했는데, 뛰는 사람만은 예외였는데, 뛰는 사람에게 경찰은 비열함의 벌금을 물릴 수 없었는데, 어떻게 뛰지. 어떻게 적어야 하지. 떠오르는 순서대로 적어야 하나. 아니면 꿈꾼 순서를 살려 재배열해야 하나. 무엇을 앞에 적고 무엇을 뒤에 적어야 할지 헷갈리고 헷갈림의 마음이 어느새 꿈을 오염시키고 역류의 물살은 그 앞의 앞의 앞에까지 닿지 못했다. 

- 역류하는 꿈을 옮길 때 내 노트는 마치 시간거울인 것만 같다. 왼쪽과 오른쪽 대신 끝과 시작이 뒤바뀐 거울. 왜라니인형은 끝이자 시작이다. 왜라니인형을 끝으로 눈을 떴기에 끝이며 왜라니인형으로부터 떠오름이 시작되었기에 시작이다. 왜라니인형의 반대편엔 무엇이 있었을까. 왜라니인형이 들어 있던 가방을 거슬러 살육을 거슬러 쫓김과 실험을 거슬러 시작이자 끝인 그 무엇이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비칠 수 있다면. 불현듯 또 되살아난 그 앞의 앞의 앞 장면, 혹은 옆 장면. 실험은 실패였다. 기계는 오작동했고 벌거벗은 바비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 어떤 꿈은 돌멩이처럼 가라앉는다. 어떤 꿈은 아스피린처럼 녹는다. 어떤 꿈은 페이스트리처럼 부서지고, 어떤 꿈은 낙엽처럼 쓸려가고, 쏠려갔다가 밀려오는 잔해.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조각. 다 녹고 난 다음의 마른 자국. 밀려오기까지. 떠오르기까지. 말라서 흔적이 남기까지. 진주 씨가 그랬지. 뜸을 들여야 한다고. 한 뜸의 시간. 한 뜸의 간격. 한 뜸의 온도. 

몸을 일으킨다. 방이 빙글 돈다. 방은 어둡다. 저녁의 어스름인지 아침의 어스름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시계를 본다. 시침은 6과 7 사이에 있다. 입이 쓰다. 빈속에 약을 털어 넣고 다시 눕는다.  

- 가게에 나와 있다. 열흘 만이다. 탁자 위에 놓인 책을 되는대로 들춰보다 한 문장에 눈이 멎는다.
"유시에 꿈을 꾸면 손님이 온다."
<주공해몽서(周公解夢書)>에 나오는 부분이다. 스터디 모임에서는 요즘 고대의 해몽 문헌들을 읽는데, 어제는 진주 씨도 나도 없는 가게에 한 명만 나와 맥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간 모양이다. 그가 두고 간 책에는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다. 눈이 멎은 페이지에 나는 색깔이 다른 포스트잇을 한 장 더 붙인다. 유시에 꿈을 꾸면 손님이 온다. 유시라면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파란 동그라미는 대로 맞은편의 스타벅스였다. 대강 어디쯤인지 짐작이 갔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저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세 시간 네 시간씩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 "그런데 저 자리에 없거든요. 해몽전업사는."
그는 한 트위터 계정에서 해몽전업사의 전경과 위치 사진을 내려받았다고 했다. 사진 속 해몽전업사 옆으로는 진원정밀, 성창공예. 그런데 주소를 찍고 찾아가 보니 해몽전사는 없고 그 자리에 국보장식이라는 가게가 있더라는 것이다. 국보장식. 나는 그 가게 앞에 오래 서 있었던 일도 기억났다. 갖가지 재질과 크기의 나비경첩을 진열한 나무판이 벽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반짝이는 나비들. 큰 나비. 작은 나비. 검은 나비. 은색 나비. 환하군. 나는 저 나무판을 통째로 사다가 벽에 걸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 내 허술한 변명을 오경은 하나하나 간단하게 쳐냈다. ... 시선집? 요즘은 다 재수록료 받아. ... 인디자인은 다룰 줄 알아? ... 홍보랑 마케팅은 어떡할 건데? ... 예전 출판사에서 내가 잡지를 만들었잖니. 편집장은 아이디어도 많고 필자 인맥도 넓은 사람이었어. 근데 사장이 원고료를 아까워해. 원고료가 박하면 좋은 글이 안 들어와. 죽도 밥도 안 되더라. 

- 오경과 헤어지면서 나는 풀이 죽어버렸다. 뜬구름은 가볍게 흩어졌다. 벌을 서다 나온 기분이었다. 나는 막연했고 오경은 구체적이었다. 도무지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진주 씨를 처음 만난 날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다. 진주 씨가 꿈 값을 후하게 쳐주어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꿈 값 때문에 꿈을 건넨 건 아니었지만 꿈 값을 받지 않았어도 해몽전파사를 계속 드나들었을까. 받았더라도 밥 한 끼를 먹을 수 없는 값이었다면. 나는 돈이 없었고 기술이 없었고 열정으로 의기투합할 친구도 없었다. 호기롭게 등록만 해놓았을 뿐 출판의 다음 걸음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 삼월씨를 만나고서야 잊고 있었던 꿈은숨이 기억났다.
나는 꿈은숨의 주인이었다. 책을 낸 적도 낼 예정도 없는 유령출판사가 되고 말았지만 여하간 개업을 한 건 사실이었고 사업자등록증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꿈은숨은 내가 꾸릴 세계여야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꿈은숨에, 삼월씨는 이미 다녀왔다고?

- 오랜만에 밥과 국을 안쳐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과학책을 펼친다.
"이 세계에서는 우주들이 거품처럼 피어오른다. 끈이론은 100개의 변형들이 각기 다른 우주를 묘사할 수 있다는 깨우침에 도달했다..."
"우주는 여러 상태들로 동시에 존재하며 분화를 거듭한다. 양자역학의 체계가 중첩상태에 있는 것을 관측할 때마다 우주의 새로운 가지가 생겨난다..."

 

- 해몽전업사는 다른 우주에 있는 가게인가? 일테면 이 우주와 아주 약간만 차이가 나는 이웃 우주에? 그쪽에도 음력의 막은 눈앞에 순간적으로 펼쳐졌던가. 이미 펼쳐져 있었던가. 펼쳐진다, 펼쳐져 있다, 펼쳐진다, 펼쳐져 있다... 꿈속의 그 풍경을 어떻게 옮겨 써야 했을까. 시간은 음력으로만 흐른다. 펼쳐짐인가 펼쳐져 있음인가에 따라 음력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다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음력의 우주는 다른 가지를 친다. 단어의 한 끗 차이로도. 

- 얼마 전 진주 씨에게 꿈을 옮겨 적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이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떨 때는 꿈이 거꾸로 떠오르잖아요. 눈을 뜨기 직전의 장면에서부터 꼬리를 물고 그 앞으로, 또 앞으로. 거꾸로 된 것을 거꾸로 내버려 둬야 하나 한번 더 거꾸로 돌려 적어야 하나. 어떨 때는 또 햇수로 분명 삼십 년쯤 되는 시간이 휙 지났는데 시간 감각이 없어요. 주마등처럼 지났다거나 그런 게 아 니고요, 무시간적이라고도 못하겠고요. 없음, 시간 없음 그 자체예요. 이런 없음은 어떻게 살리죠?

- 진주 씨는 나름의 옮겨 적기 원칙을 정했다고 했다. 70퍼센트의 원료. 20퍼센트의 문체. 10퍼센트의 작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정도 비율을 지키려는 편이야. 원료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저쪽의 원료를 이쪽의 질서로 옮기려면 때로는 멜로디가 살아야 하고, 때로는 비트가 도드라져야 하고, 어떤 문장에는 메아리가 필요하고. 메아리보다는 음영이 필요할 때도 있고.

- 이쪽의 알맞은 단어와 접속되지 못한 장면들. 장면 속에 배치되지 못하고 겉도는 목소리들. 그런 것들을 이쪽 세계로 옮겨오기 위해 나는 몇 퍼센트의 작위를 섞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손에 피를 묻히는 기분이다. 내 잠 속에 잠시 들른 것들을 강제로 붙잡아두기 위해 꿈의 숨통을 끊어 박제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진다. 삼월씨가 다녀온 저쪽 우주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면, 그 우주의 나도 이 우주의 나와 똑같은 꿈을 꾸었다면, 어떤 문체로 얼만큼의 작위를 더해 음력의 막을 옮겨 적었을지. 그 우주에 옮겨진 음력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지. 

-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삼월씨는 아직 무소식이다. 꿈은숨을 꾼 적이 있다고 나는 미처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삼월이 가고 있다. 삼월이 가면 만우절이 온 ...

- "... 저는 루시드 드림 같은 거 몰라요."
모른다. 라기보다 나는 관심이 없었다. 발음만 마음에 들었다. 루시드(lucid)라는 단어의 맑고 선듯한 느낌. 꿈속을 흘러내리는 꿈에 어울릴 것 같은. '자각몽'이라고 옮겨지곤 하지만 굳이 번역한다면 자각몽보다는 액체몽이라는 게 낫지 않을까, 자각몽을 영어로 옮긴다면 루시드 드림보다 드라이 드림(dry dream) 쪽이 어울릴 테고, 드라이드림은 또 건조몽이라 옮기면 좋겠지. 이런 식의 실없는 말장난이나 굴려보며 의식이 반쯤 섞인 비몽사몽의 장면을 이건 액체몽, 저건 건조몽, 엉터리로 분류해 본 것이 루시드 드림에 대해 내가 가진 관심의 전부였다.

- 진주 씨는 한숨을 쉬며 눈을 들었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내게 건넸다. <꿈: 내가 원하는 대로 꾸기>. 저자는 스티븐 라버지. 책장에 늘 꽂혀 있어 눈에 익은 제목이지만 그동안 한 번도 펼쳐볼 생각을 하지 않은 책이었다. 청춘들이여, 큰 꿈을 품어라, 같은 하나 마나 한 내용이 장황하게 적혀 있을 줄 알았다. 나는 그제야 뜨악한 표정으로 듬성듬성 훑어보았다. 기억술을 이용한 의식적 꿈꾸기 유도 테크닉(Mnemonic Induction of Lucid Dreams), 일명 마일드(MILD). 설아씨가 말한 MILD라는 게 이건가. 또 최면 테크닉, 자기 암시 테크닉, 무슨무슨 테크닉에 대한 설명이 많았다. 자기 계발서나 멘토링북 계열이 아니라는 건 확인했지만 꿈꾸기 테크닉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얕보는 마음이었고, 휴대형 의식적 꿈꾸기 유도 기구인 드림라이트... 라는 구절을 보고는 급기야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웃긴 건 아니었는데도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 "자각몽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름 고전이야."

진주 씨는 나무라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그래서 해보셨어요?" 
빈정거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터트렸던 웃음을 나는 얼굴에서 깨끗이 지워내기 어려웠다. 지운 웃음과 남은 웃음이 뒤섞여 광대뼈를 건드리고 입 주변의 근육을 일그러트렸다. 진주 씨는 조금 화가 난 듯했다. 카디건 자락을 여
미고 창밖을 보며 소리 없이 어깻숨을 쉬었다.
"여기서 자각몽 강좌를 열었던 강사는 내 대학 동기야."

진주 씨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장식장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탁자에 올렸다.
"그 친구가 개업 선물이라며 준 거."
모래가 흘러내렸다.
"한 시간짜리. 이걸로 시간을 맞추고 나도 한동안 마일드를 해봤지."

- 진주 씨는 마일드라는 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일단 알람을 맞추고 네다섯 시간 자고 일어나 꿈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깨어 있다가 다시 누운 다음 좀 전에 꾼 꿈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을 집중한다. 꿈은 대체로 렘수면기에 꾸는데, 수면 주기가 반복될수록 렘수면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마지막 수면 주기에 들면 자각몽을 꿀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 "정말 맘대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그래요?"
"아니."

"그럼요?"

"추락했어. 나는."

- 진주 씨는 루시드 드림이 일종의 줄타기인 것 같다고 했다. 왼쪽 마음은 꿈속으로 몰입하고, 오른쪽 마음은 꿈속을 관찰하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기술이 중요하다. 몰입만 하면 꿈에 빠져들어 꿈인 줄 모르면서 꿈을 꾼다. 관찰하려는 의욕이 너무 크면 잡념이 쳐들어와 불면의 피로만 쌓인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따라주지 않더라. 나로서는 어려웠어. 수련과 명상을 이어갈 만한 인내심은 없었고, 자각몽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번번이 추락했어. 날다가 추락하고, 걷다가도 추락하고, 누워 있는데도 추락하고. 

- 나는 진주 씨의 실패담을 들으며 어디선가 읽은 돌고래 이야기가 생각났다. 돌고래는 좌뇌와 우뇌가 번갈아 잠에 든다던가. 좌뇌가 잠을 자는 동안 우뇌는 깨어서 망을 본다. 우뇌가 잠에 들면 좌뇌가 깨어 호흡을 조절하고 지느러미나 꼬리를 돌본다. 꿈도 번갈아 꾸겠지. 좌뇌의 꿈은 우뇌가 관찰하고, 우뇌의 꿈은 좌뇌가 살펴주고. 그러면 돌고래가 꾸는 꿈은 전부 다 루시드 드림일까.

 


 


- 역사성과 유행이 있는 만큼, 탈구조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같은 다른 사유들과 활발하게 결합하며 진화한 시기를 지나 현재는 답보 상태인 듯하다. 나는 정신분석을 문학 해석 이론으로 공부하는 것을 넘어, 직업적인 분석가가 되려는 마음으로, 그것을 치료법으로서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분석가를 찾아가서 분석실의 카우치에 누워 자유연상에 따라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전적으로 주체적인 행위이므로 내담자나 피분석자 같은 통용어가 아니라 다소 낯설더라도 분석인이라는 명칭이 합당하다. 분석인으로서 분석을 실행하려는 의지는 물론 장래의 직업적 소망에 의해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삶이 크게 망가졌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삶 전체가 부서져 멈출 지경인데, 혼자서는 도저히 그것을 고칠 수가 없는데, 그 고장과 고통은 함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비밀이어서, 지인들의 호의가 아니라 신뢰할 만한 미지인의 전문적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십 대 후반에 처음 접하여 이십 대 동안 조금 더 공부해 본 정신분석학이 내 삶의 고장을 고치는 데 유효할 거라 믿었고, 시간, 비용, 노고를 아주 많이 들여, 나와 삶의 관계를 분석 이전보다 확연히 낫게 바꾸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경험이다. 정신분석을 경험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나와 삶의 관계는 나은 쪽으로 바뀌었건만, 그 불가역의 차이는 오직 나만 겪어 아는 것이어서, 정신분석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또한 인간이 자기에 대한 앎에 이르고 삶을 바꾸기 위해 시도하는 방법은 정신분석 외에 여러 가지가 있고, 각자가 주체적 판단에 따라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하므로 인간을 낫게 하는 것은 결국 특정 이론과 방법이라기보다는 그 주체성의 발휘이므로, 나는 정신분석 비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정신분석의 주관적 효능을 홍보하지 않는다. 단지 적절한 계기가 주어지면 내가 접한 정신분석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 뿐이다. 

- 분석 세션에서 분석인은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한다. 해야만 한다. 분석인의 말이야말로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질료이자 방법 자체다. 분석가는 사실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당연히 분석인의 말에 조언, 평가, 해석도 할 수 없다. 분석인이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에서 전혀 인지한 적 없는 무의식의 요소를 발견하도록, 이따금, 말에 고유한 박자를 만드는, 작은 소음으로, 개입할 뿐이다. 말의 표면에서 무의식의 무늬가 둥둥 떠오르도록, 그것이 말이 되어 나오도록, 분석인과 분석가는 협력한다.

- 그러나 삶이 망가지면 말도 어딘가 망가지기 마련이어서, 분석인의 말은 순조롭게 짜이기는커녕 울음, 한숨, 비명으로 구멍 나고 끊어지기 일쑤다. 밀폐된 공간에 친밀하지 않은 타인과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눈물이 흐르거나, 숨결이 토하듯 불규칙해지거나, 창피함도 아랑곳없이 소리를 지른다면, 적어도 몸은 억압받지 않고 감정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긴 하다. 그러나 침묵은 아니다. 카우치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고 싶은 말이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묵언, 정적, 부동. 

- 말이 제 갈 길을 못 내어 막힌 데다 몸도 굳어 움직임을 멈춘 상태다. 침묵할 때 몸은 긴장하여 말뿐만 아니라 숨도 거의 멈춘다. 삶을 바꾸어 살려고 기어이 애쓰는 일이건만 죽음이 엄습한다.

- 이때 꿈 이야기는 침묵을 깨는 데 즉효의 방책이다. 최근에 무슨 꿈을 꾸었나요? 어제 이런 꿈을 꾸었어요. 분석실에 오기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놓음으로써 분석인은 침묵을 앞세운 죽음에 옴짝달싹 못하게 포획되는 대신 조금 더 지속가능한 삶 쪽으로 가볍고 다행한 발걸음을 이어나간다. 꿈을 실마리 삼아 말의 피륙 위로 무의식의 형상이 다시금 호흡하며 떠오른다. 그러므로 꿈의 말은 죽음을 삶으로 바꾸는 가장 수월하고도 아름다운 방책이다. 망가지고 멈춘 것을 고치는 데 가장 먼저 열어보는 응급 도구함이기도 하다. 꿈의 말을 이끌어내고, 풀어놓고, 들음으로써, 우리는 조금 더 산다. 그리고 낫기도 한다. 

-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무수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생각하고, 욕망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선조적 시간순으로 통합하여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의식에서 언어의 상징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감각에 직접 기입되는 정보도 상당하며, 인지했더라도 현상태의 안위를 위협하는 불안한 정보는 마치 없는 것인 양 거부하며 억압하기도 한다. 시간과 기억의 선이 깨지면서 사건, 감각, 감정, 생각, 말은 본래의 맥락에서 제각기 분리되어 편편이 부서진다.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이처럼 우리가 망각하거나 상징화하지 않은 사건과 체험의 부스러기들은 결코 무로 소실되지 않고 전부 무의식에 저장된다. 무의식은 상징화되지 못한 실재와 억압된 욕망이 지배하는 장소다. 말이 되지 않은 것들, 말하지 못하는 것들, 말의 바깥으로 쫓겨난 것들이 모인다. 욕망은 무의식 속 편린들을 재조합해서 자기가 실현되는 이야기를 창작한다. 우리의 은밀한 욕망이 지은 이야기는 의식의 억압과 검열이 느슨해진 잠을 틈타 비어져 나오고, 이야기의 옷조차 입지 않은 불안의 날카로운 편린도 그대로 튀어나오는데, 그것이 꿈이다. 그러므로 꿈은 우리가 각자의 고유한 체험을 질료로 하여 고유한 욕망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연극이다.  


- 꿈 텍스트를 읽는 사람은 이 윤리적 한계를 명철하게 인지해야 한다. 꿈 이야기의 독자는 꿈 이야기를 쓴 사람의 욕망에 관하여 감히 안다고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으며 아무런 해석의 권한도 없다. 독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업은 꿈의 텍스트 표면에서 자기의 무의식을 움직이는 요소들을 감지하고 그것을 재료로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의 텍스트가 발휘하는 최고의 효과는 따라서 독자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진주조개잡이의 꿈처럼. 꿈의 말은 다른 꿈의 말을 불러낸다. 꿈꾸는 친구에게 다른 꿈꾸는 친구가 생긴다. 세계에 꿈꾸는 사람들의 작은 우정 공동체가 조직된다. 그것이 바로 해몽전파사와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해몽전파사>의 문학적 꿈이기도 하다. <해몽전파사>를 비롯하여 모든 꿈의 문학이 독자에게 요청하는 바는 결코 '나를 해몽하라'가 아니다. '너 역시 꿈꾸라'이다.

- 해몽전파사에서 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신 선생, 흑진주, 설아씨, 삼월씨다. 꿈의 동료들. 이들은 각자 꿈을 꾸다가, 각자의 삶에 일어난 사건과 소식이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쳐, 그 영향 아래 새 꿈을 꾼다. 꿈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에는 전파력 또는 감염력이 있다. 꿈이야기는 듣거나 읽는 자의 무의식, 기억, 감정, 욕망을 활성화시켜서 그 역시 꿈을 꾸게 한다. 타인의 어떤 삶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해몽전파사 사람들은 꿈 이야기와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그것을 재료로 꿈꾸기를 지속한다. 무엇인지 모를 욕망을 실현하는 잠 속의 꿈뿐만 아니라 현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꿈. 개인의 건강과 경제생활의 차원에서나 공동체의 정치와 윤리의 차원에서나. 그것은 희망이자 실천적 의욕이다. 이들은 불안과 염려 속에서도 희망을 생성시키며 삶을 바꾸어 살려는 의욕과 용기를 낸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여럿의 삶과 꿈에 공통의 기표들이 점점 더 많이 늘어나 순환한다. 여럿의 삶과 꿈이 서로를 격려하며 이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삶과 꿈은 점차 긴밀하게 엮이면서 <해몽전파사>라는 열린 공동의 텍스트를 짜낸다.

 

우리는 다시금 확신한다. 꿈의 말은 삶을 이끌어 계속 살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안위를 넘어 공동의 생에 연대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 문학평론가

윤경희 尹慶熙


 


작가의 말 



2017년 봄, 서울 문래동에 있는 재미공작소에서 강독회 제안을 받았다. 주제 도서 한 권을 정해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엔 나쓰메 소세키의 <몽십야>를 염두에 두었는데, 이참에 직접 기록한 꿈일기를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친구 세 명에게 공동작업을 하자고 연락을 했다. 명색이 '책'을 읽는 자리인지라 나를 포함한 네 명의 꿈을 모아 부랴부랴 소책자를 만들었고 표지에 '꿈은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첫 번째 몽몽교환 프로젝트. 그 모임으로부터 <해몽전파사>가 출발했다.

소설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이 책에 박힌 '소설'이란 글자가 머쓱하게 다가온다. <문학3>에서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땐 꿈만 줄줄이 늘어놓을 생각이었다. 막연히 나는 꿈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었다. 오랫동안 꿈 일기를 써왔고 몇몇 꿈은 내 시의 모티프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데가 있었다. 꿈을 글감으로 삼는 대신, 꿈을 꿈으로서 존중하며 이쪽 세계로 옮겨와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온라인 연재라는 형식을 진지하게 고려하고서야 꿈의 나열 외에 모종의 장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치를 궁리하다 보니 시공간이 생기고 하나둘 등장인물이 생겼다. 희미한 이야기가 생기고 천 개의 꿈이라는 목표도 생겼다. 가볍게 프레임이나 두를 작정이었는데, 프레임이 점점 두껍고 무거워져서 당황스러웠다. 책임감을 요구받는 느낌이었다. 어쩌자고 뒷감당도 안 될 일을 벌인 걸까 후회가 들기도 했다.  

아직 954개의 꿈을 더 모아야 하니 목표까지는 한참 ...

 

그리고 지금, 다시 겨울의 끝에서, 꽃샘추위와 봄눈을 기다리고 있다.


- 꿈을 꾸었다.
못을 뽑았다. 못함의 못을. 꿈이 아닐 수 없는 꿈으로부터.

 

2020년 2월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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