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요가난다 / 이현주
출판 : 삼인
출간 : 2023.10.17
요가난다의 글들을 번역한 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 시리즈를 찾아 읽고 있다. 역자분이 감리교 목사시라 기독교적 색채가 진해진 점이 조금 아쉽지만, 의미상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취하게 된 기반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티페레트를 넘어선 세피라부터는 어떤 행동을 하건 더 이상 업을 쌓지 않는다고 보는 해석도 있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한참 얽매여 있었다. 그리고 절대적인 답은 없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결론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지난 연말 안개 낀 듯 흐릿하던 해메임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게 신기했다.
어수선하다 싶을 때는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의 결과가 현재라면, 현재를 변화시켜야 미래도 변할 테니까.
살다보면 진심으로 치유를 바라며 개인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순간도 오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감사할 수 있는 평정을 잃지 않기를.
- 우정友情(friendship)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의 눈을 통해 빛나며, 집에 와서 온갖 이기심을 녹여주는 신성한 합일의 감로甘露를 함께 마시자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우정은 한 영혼을 다른 영혼들과 하느님한테서 떨어뜨려 놓는 장치들을 무너뜨리라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나팔이다. 참된 우정은 두 영혼을 하나로 만들어, 둘이 더불어 위없이 높은 영(Spirit)을 반영反影하게 한다.
- 참된 우정은 폭이 넓고 포용적이다. 어느 한 개인이나 다른 누구에 대한 이기적 집착은 신성한 우정을 가로막는다. 자신의 사랑으로 빛나는 왕국의 경계를 확장해 가족, 이웃, 마을, 나라, 모든 나라, 온갖 중생이 들어와 살게 하라.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하느님의 피조물에 대한 친절과 애정으로 충만한 우주적 친구가 돼라.
- 친구를 사귀려면 친구다운 기질이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자력磁力으로 자신의 문을 열어놓으면 비슷한 진동을 가진 영혼 또는 영혼들이 끌려올 것이다. '모두'에게 친절하면 그만큼 참된 친구들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 두 영혼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생겨나 그들이 함께 신령한 사랑, 하느님의 사랑을 찾을 때, 서로를 섬기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바람일 때, 그때 그 우정에서 위없이 높은 영의 불꽃이 피어난다.
- 내가 그들의 가슴에 알지 못하는 친구로 남아 불꽃처럼 타오르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고상한 생각을 통해 세속의 선잠에서 깨어나라고 소리 없이 말해주리라.
지금은 자기가 내 원수인 줄 아는 사람, 저 사람이 실은 오해의 장막 뒤로 숨겨진 나의 신성한 형제임을 잊지 않으리라. 마침내 사랑의 단검으로 그 장막을 찢고 나의 겸손과 용서와 이해를 보여주면, 그는 내 선의善意라는 선물을 받아들이게 되리라.
내 우정의 문은 나를 미워하는 형제들과 나를 사랑하는 형제들 모두에게 똑같이 열려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나 자신처럼 느끼리라.
나는 이웃을 섬기는 것으로 마침내 나 자신의 구원을 이루리라.
- 원수에게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원수를 원수로 대하면 그의 분노가 커져 더 큰 원수가 될 테니까. 누구든 남을 해치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해친다. 자신이 먼저 독을 삼키지 않고서는 남을 미워할 수가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먼저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기억하라, 하느님이 내 친구 안에 계시는 것과 똑같이 내 원수 안에도 계신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 안에 똑같이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본다면, 어디에나 편만한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본다면, 그때 그분의 없는 곳 없는 임재를 깨치게 될 것이다.
- 증오는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 누군가 증오를 뿜어내는데 그 증오에 동조하면 당신도 같은 증오에 휩쓸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동조한다면 증오의 진동이 아무리 세다 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가슴에 사랑을 배양해야 한다. 사랑은 영혼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자 증오를 찌르는 단검이다.
- 험담을 좋아하거나 오랜 버릇처럼 남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때마다 자신 또한 하늘 아버지에게서 같은 방식으로 심판받으리라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무엇을 주든지 같은 것이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당신이 남의 허물을 들춰내면 하늘의 법이 신기하게도 당신의 은밀한 허물을 만천하에 들춰낼 것이다.
- 누군가에 대한 험담은 당사자를 결코 치유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를 화나게 하거나 절망과 수치심으로 빠져들게 할 따름이다. 나아가서 그가 오기를 부려 나쁜 짓을 계속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말이 있다. '한쪽 귀 잃은 사람은 잃어버린 귀를 감추고 성한 귀만 보여주려고 마을의 변두리를 돌아간다. 그러나 두 귀를 모두 잃은 사람은 마을 한복판을 버젓이 걸어간다. 사람들에게 감출 것이 없어서다.'
- 자신의 허물이 과하게 노출된 사람은 두 귀를 모두 잃은 사람처럼 자포자기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상처가 될 정도로 심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남들을 심판하지 말고 자신을 심판하라.' 누군가의 허물을 큰소리로 말하는 게 그토록 재미있거든 본인의 은밀한 허물을 큰소리로 말하고 나서 자기가 어떻게 되는지를 살펴보라.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고 1분도 견뎌낼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 들추기를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소문으로 퍼져버린 누군가의 허물은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상황은 외면한 채 그를 비난하고 저주할 준비가 되어있다. 물론 드물기는 해도 허물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해 몸조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단 허물이 공개되면 작은 허물은 더욱 커지고, 그래서 훨씬 큰 허물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거리를 활보하게 된다.
- 자신의 내밀한 오점이 있거든 부지런히 그것을 씻어내고, 남의 오점을 말하고 다니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나서서 남을 심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밀한 약점을 세밀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가 항상 옳기 때문에 남들의 허물이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이없는 연막煙幕 뒤에 숨지 말라. 자신의 허물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면서 남들을 그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는 없다.
- 오직 친절하고 슬기롭고 완벽한 균형을 이룬 사람만이 남들의 허물에 대해 말할 위치에 있다. 인과응보의 법에 따라서, 누군가를 친절로 심판하면 당신도 모든 생명을 은밀히 다스리는 '진실의 원리'로부터 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불친절하게 심판하면 당신도 남들로부터 같은 심판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비참해질 것이다.
- 남의 약점을 들춰내 사람들을 당황스럽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가혹하게 심판하는 것은 죄를 지은 그 사람도 그 문제로 고통받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그가 뭘 몰라서, 그래서 실수한 자신의 형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심판할 경우 그 유일한 목적은 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을 대할 때는 같은 잘못을 저지른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받고 싶은 것과 똑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신성한 하늘의 법이 우리를 심판한다.
- 친절하지 않은 말은 오랜 우정과 집안의 화합을 파괴하는 살인자다. 입술에서 불친절한 말을 영영 지워버리고 집안 살림을 안전하게 지키라. 진솔하고 달콤한 말은 목마른 영혼들에게 주는 감로수다.
- 순결하고 정중한 말로 겉옷을 입어라.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정중하라. 그럴 수 있을 때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습관적으로 친절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이해 깊고 친절한 말의 제단이 바탕이다.
- 누군가에게 친절하다는 것이 반드시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생각이 다르더라도 언제나 침착하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라. 화내고 소리 지르는 것은 자신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거친 야생마 같은 성질과 말투를 제어하는 것은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밖에서 어떤 자극이 오더라도 품위를 잃지 말고 조용히 침묵하거나 친절하게 말하면서 거친 언행보다 친절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라. 당신이 베푸는 친절과 용서의 부드러운 빛 앞에서 원수들의 쌓인 증오가 봄눈처럼 녹을 것이다.
- 신경질은 신경계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데서 온다. 어떤 생각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데 그 생각에 신경계가 반발할 경우가 있다. 사람이 화가 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화내거나 흥분해서는 안된다. 화를 낼 이유가 있어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 툭하면 화를 내거나 자기연민(self-pity)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들은 신경질을 조장할 뿐이다. 당신은 무언가에 불만을 품을 수 있고, 누구도 그걸 모르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살펴서 신경질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다.
-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자기연민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연민은 아편 같은 중독이다. 중독자는 아편을 복용할 때마다 안 좋은 버릇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 자기연민에 강철같이 저항하라.
- 신경질의 불길이 가슴에 들어오는데도 그냥 두면 마침내 그것이 자신의 평화로운 마음을 불태울 것이다. 신경질은 평화를 깨뜨리려는 사탄의 하수인이다. 그것을 알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신경질이 가슴에 찾아올 때마다 평소에 부르던 평화의 신성한 노래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신경질이 찾아오면 다른 누구를 탓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라.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라. 그것이 신경질을 물리치는 최선의 방법이다.
- 비판에는 두 종류가 있다. 건설적 비판과 파괴적 비판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비판을 듣고 불쾌해져 화를 낸다면 그것은 파괴적인 비판이다. 친구가 도움을 청하면서 자기를 비판해 달라고 부탁할 때 그의 영혼을 일깨우는 조언을 하면 그것이 건설적 비판이다. 건설적 비판은 사랑 어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비판하게 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을 예리하고 친절하게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남의 허물을 자기 허물처럼 연민 어린 태도로 선명히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때 하는 비판은 옳은 비판일 수 있다.
- 속으로 은밀하게 하는 비판이 말로 하는 비판보다 고약하다. 누군가를 속으로 말없이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바보짓이다. 다른 사람을 안 좋게 보는 모든 시선을 자신의 마음에서 깨끗이 청소하라.
사랑 어린 눈길로 비판하고, 짤막한 암시로 비판하고, 상대가 원할 경우 될 수 있으면 간단하게 몇 마디 말로 비판하라.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되풀이하지 말라. 자신의 사랑 어린 비판이 상대방 영혼의 밭에 뿌려지는 씨가 되게 하라. 그가 그 씨를 잘 배양하면 그만큼 좋아질 것이다. 누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그에게 강요하지 말라. 때에 맞는 바른 비판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 자기 내면의 눈에서 무지의 비늘이 벗겨질 때 다른 사람들의 장점과 단점이 정확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너그러워지는 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크게 보고, 심리적으로 온전치 못한 그들의 일부는 모른 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용서한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누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가까이 있는 누구를 불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다. 분노로 가득 차 있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자신의 내면 의식을 비추고 그것을 만들어간다.
내 곁의 피조물을 사랑할 수 없는데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 그분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 안에 계신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 오, 사랑의 샘물이여,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가슴과 사랑이 당신의 없는 곳 없는 사랑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하소서. 강물처럼 흐르는 온갖 욕망들의 위대한 원천이여, 잠시 있다 사라지는 감각의 쾌락을 좇다가 거친 사막에서 실종되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치소서. 우리의 연민과 애정과 사랑의 작은 시냇물이 황량한 이기심의 가뭄 속에서 메마르지 않도록 우리를 축복하소서.
- 죄인이 성자들 곁에 살면서 자기 인생을 바꾸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반면에 영적인 사람이 별생각 없이 사악한 무리와 어울리면 저도 모르게 나쁜 물이 들 것이다. 아주 어려서부터 외부 환경에 대한 반응을 통해 자신의 내적 환경이 조성된다. 그 내적 환경과 정신적 습관이 거의 자동으로 우리의 처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당신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라. 남들이 자신에게 연민을 베풀어주기를 원한다면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연민을 베풀라. 남들에게서 존중받고 싶으면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를 존중하는 법부터 배우라. 남에게서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자기 자신한테 주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당신에게 줄 것이다.
- 남들이 자신을 완벽하게 대접해 주기를 바라기 쉽다. 그들의 허물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스스로 완벽하게 처신하고 자신의 허물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본받아 그대로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열등감 없이 자신의 허물을 보고 그것을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남들이 바르게 처신하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보다 유용할 것이다. 희망보다, 거룩한 진노보다, 간곡한 말보다 좋은 모범이 다른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변화시킬 수 있다.
- 스스로를 개선하려 애쓸수록 그만큼 주변 사람들을 높이 끌어올려줄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만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인생의 으뜸 목표로 삼으라. 자신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착각으로 우쭐거리지 말라. 언제 어디서나 무언가를 하는 까닭은 자신을 즐겁게 해 주려는 것이라고, 다른 누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로 자신을 더없이 즐겁게 하려는 것이라고 여기라. 자신이 먼저 '이기적(selfish)'인 너그러움을 수련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처신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
-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같은 것을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당신이 이기적인 모범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이기적으로 대할 것이다. 자기 보존은 하나의 본능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에게 기억과 지능과 상상력으로 남의 어려움을 헤아리게 해 주셨다. 인생길에서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돕는 데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라.
- 나쁜 이기利己는 모쪼록 피하라.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온갖 문제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 다른 사람의 이기에 반대해 자신의 이기를 지키려고 처음에는 주먹을 쓰고 칼을 쓰다가, 다른 집단의 이기에 반해 자기 집단의 이기를 지키려고 지금은 총을 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독가스를 살포한다. 국가적 이기가 개인의 이기 못지않게 사악하다는 것을 인류가 깨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이 지구를 삼킬 것이다.
- 최고의 안전장치는 다른 누군가를 향한 자신의 선한 의지에 있다. 당신이 만일 모든 사람 가슴에서 보좌에 앉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왕권이다. 백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서로 이득을 취하려고만 한다면 한 사람이 아흔아홉 적들을 둔 셈이다. 반대로 서로가 서로를 도우려고 한다면 한 사람한테 아흔아홉 친구들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의 몸을 버리셨다. 그래서 지금도 영원한 삶을 즐기고 계신다.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영적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셨던 것이다.
- 자신의 '참 자아'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을 '좋은 이기(Good Selfishness)'라고 부를 수 있겠다. 어떤 행동으로 '참 자아'의 순수 이미지가 실현되면, 그런 행동들로 좋은 이기利己가 형성된다. 나쁜 이기란 자신의 에고를 위하는, 그래서 '참 자아'가 원하는 바를 거역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웃을 내 몸 사랑하듯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을 지키면 다른 계명들은 소용없어질 것이다.
-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수련하라. 당신에게 호감이 없는 사람들을 좋게 느껴보라. 저 자신한테만 너그러운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라. 원수에 대한 증오를 쌓아두면 자신도 그 원수도 자기 영혼에 내재된 아름다운 품성을 인식할 수 없다.
원수의 비위를 맞춰줄 것까지는 없다. 그냥 말없이 사랑해 주라. 필요할 때마다 그를 조용히 섬기라. 사랑이란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참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만일 당신의 겸양과 사과가 원수의 좋은 성품을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하라.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진솔하고 우아하게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열등의식은 사람을 과장된 자만自慢 뒤로 숨게 만든다. 그러나 괜한 사과와 겸양으로 못되게 구는 자들을 부추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들의 실체를 똑바로 보고, 자신의 이상理想에 실용實用을 기하라.
- 날마다 보는데 별 느낌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맞춰주는 법을 배우라. 처음 보는데 오래 알고 지낸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전생에 그들이 친구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기회가 닿으면 사귀라. 그들을 눈여겨보고도 마음이 분주한 나머지 지나쳐버리지 않도록 하라. 그들이 아주 먼 과거에 맺었던 우정에 끌려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당신 영혼의 빛나는 보석들이다. 이 밝은 영혼 은하계에서 마침내 당신은 환하고 맑게 웃는 '위대한 친구(the Great Friend)'를 만날 것이다. 그는 고상하고 참된 친구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당신을 도와주고 감화시키고 안내하는 하느님이시다.
- 괴팍한 성질과 이기심은 전생의 친구들을 멀어지게 하고 다정한 우의는 그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니 언제나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들을 대하는 것이 좋다. 한두 친구가 자신을 속이더라도 그리 마음 쓸 것 없다.
- 사람은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육체적·정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있다. 이 사람 눈에 추해 보이는 것이 저 사람 눈에는 예쁘게 보일 수 있다.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누구는 곧장 눈에 들어오는데 누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의 내면이나 외모가 마음을 끌어당긴다면 그가 전생의 친구였음을 알아본 것일 수 있다. 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과거에 맺었던 우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 전생에 친구일지 모르는 사람의 겉모습에 속지 않으려면 그와 자신의 취향이 비슷한지를 확인해 보라. 자신과 그의 기호와 성향이 근본적으로 같은지 알아보려면 그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소한 외적 특성 때문에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번 생에서 우정을 유지하고 그것을 '신성한 우정 (Divine Friendship)'으로 완성하려면 전생의 친구들을 찾으라.
- 이번 생의 어떤 것들에 너무 집착하면 하느님을 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자기를 벌하는 대신 혹시 무한하신 이보다 작은 무언가를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 영성을 기르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한결같은 정신을 좇아야 한다.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온갖 쓸데없는 욕망은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물을 기다리고 찾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온갖 선물을 주시는 분, 하느님을 찾는다. 당신이 제아무리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 해도 얼마 후면 사람들은 당신을 잊을 것이다. 당신의 동상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쳐다보며 당신의 업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교성은 물론 장려할 만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리스도 의식(Christ-Consciousness)은 자신의 사랑 안에 모든 것을 포용한다. 바로 그 의식이 예수의 몸에서, 그리고 수많은 위대한 스승들의 몸에서 구현된 것이다. 그 의식을 얻기까지는 아무것도, 누구도 심판하지 말라. 그 의식으로 하는 심판은 언제나 친절할 것이고, 실제로는 그저 단순한 평가(appraisal)가 될 것이다.
- 우선 자신의 가족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타고난 본능이다. 그러나 다른 누구를 자신만큼 또는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사람이 영적으로 자라게 된다.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에고에 갇히는 것이다.
- 누구든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자신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고, 가족보다 민족을 더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만큼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남들에게 진실한 친구가 되면 하느님과 우정을 맺게 될 것이다. 남에게 친절하지 않으면,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영혼이 위없이 높은 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기 확장의 신성한 법을 어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가슴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람, 자기 사랑과 우정의 왕국을 다른 영혼의 영토에까지 확장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식이 우주 의식으로 넓어지기 어렵다. 진정한 우정은 영혼들을 온전히 하나 되게 하여, 위없이 높은 영과 그 품성들을 밖으로 뿜어낸다.
- 영혼의 행복을 탐색하던 구도자가 갑자기 내면에 잠재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습관적 사랑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내면의 지혜로 그려진 영원한 행복의 금빛 희망이 허망하고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한다. '지금 이렇게 뻔히 보이는 지상의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면 다른 무엇이 아무리 멋진 장래를 약속한다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자신의 감각적 욕망에 동조하며 그는 생각을 계속한다. '나의 분별하는 힘과 감각적 쾌락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전쟁을 벌이느니 차라리 자기 통제와 악에 저항하는 힘을 무장해제하고 유혹의 칼로 영적 행복을 죽이리라.'
- 구도자라면 이런 거짓된 합리주의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감각적 쾌락은 익숙하겠지만 훨씬 열등하며, 영혼의 지복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훨씬 우월하다. 그런 쾌락을 단념하기 두렵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 모든 구도자가 의기소침하지 말고 오히려 열등한 감각적 쾌락을 영혼의 무궁한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 자력과 매력은 끌어당기고 밀어 올리고 펼쳐내는 힘이다. 이것은 위없이 높은 영의 특성이다. 우리는 간혹 이런 말을 듣는다. "자력이 너무 강해서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내 의식을 넓혀주는 그런 친구를 만났어." 이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매력이다. 이는 최면처럼 단순히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을 넓혀주는 힘이다.
- 결혼보다, 또는 괜히 서로 맞지도 않는 두 사람을 엮어놓으려고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있다. 한 영혼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영혼이 물질에 빠져들면 그만큼 불화와 불행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기쁨과 온전한 만족에 굶주린 영혼이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더없이 복되신 하느님을 향해 돌아설 때 진정한 영적 결혼이 이루어진다. 하느님이 신랑이고 모든 영혼이 신부다.
언제나 사람을 도취시키는 지극히 복되신 하느님과 맺어진 사람에게 결혼은 필요가 없다. 예수, 성 프란체스코 St. Francesco, 스와미 샹카라 swami Shankara, 바바지 Babaji가 결혼하지 않은 게 그 때문이다. 그들은 완전하신 하느님 안에서 완벽한 사랑, 완벽한 기쁨, 완벽한 짝을 찾았다. 그래서 결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결혼은 하느님을 찾는 기망적인(delusive) 방법이다. 신혼부부가 허니문의 달빛 아래 욕정과 감상에 젖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들이 죽으면 무덤 속에 묻힌 해골들 위로 달빛이 웃는다. 감상에 젖어 맹세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웃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런즉 자기 영혼이 '우주의 연인'과 합일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영혼의 더없이 높은 목표라 하겠다. 하느님과의 합일만이 완전한 사랑과 영원한 만족을 인간에게 안겨줄 것이다.
- 올바른 배우자를 선택하는 영적 방법은 깊은 명상 뒤에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를 축복하시어 완전한 영혼의 결혼을 위한 당신의 법에 합당한 제 짝을 선택하게 해 주십시오."
- 그러나 그가 듣지 않으면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질투하거나 화를 내거나 무엇을 강요하지 말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잘못도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바칠 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면 최선의 행실이라는 옷을 차려입으라. 더 많이 명상하고 더 많이 친절하고 더 많이 매력을 풍기고 더 많이 참아주고 그리고 더 많이 그에게 매력을 발산하라. 배우자의 눈에 들려고 겉모습을 단장하기보다 사랑의 영적인 힘을 더 많이 발산하라.
- 비록 자신의 사랑이 거절당하더라도 무례하게 성내지 말라. 더 큰 친절로 그를 '죽여라!' 그가 자신을 (어쩔 수 없어) 떠나더라도, 잔소리와 질투심에 진저리를 치며 염병을 피하듯 떠나게 하지 말고 속으로 아쉬워하며 떠나게 하라. 한때 서로 사랑하던 이들이 질투심에 등 떠밀려 서로를 미워하며 헤어진다는 건 누가 봐도 비극이다. 비록 자기 사랑의 실험이 결혼생활에서 실패로 끝났더라도 하느님의 자녀답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헤어질 일이다.
더 많은 관심과 신뢰와 친절과 사랑을 기울였는데도 상대의 질투가 치유되지 않으면 우의와 이해 속에서 헤어지며 이렇게 말하라.
"우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 결혼생활은 성공하지 못했소. 그러니 여기서 헤어집시다."
- 질투는 결코 질투로 치유되지 않는다. 이 심술궂고 추한 심리적 습성에는 사랑이 최고의 만병통치약이다.
- 창조적 충동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인간의 결함이 아니다. 종족 번식을 위한 자연스러운 충동을 절제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하지만, 그들은 충동에 지배당하지 않고 출동을 통제하는 법을 못 배운 사람들이다. 아무리 지적으로 또는 후학적으로 교육을 받아도 사람이 그런 지식으로 본능을 통제할 수는 없다. 여기, 자기 절제를 위한 몇 가지 실습 방법을 소개한다.
- ① 육식肉食을 안 하거나 적게 하고 채소, 열매, 과일을 더 많이 섭취한다.
② 사람이 창조적 충동을 네 가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③ 누구든지 의식적 호흡으로 창조적 에너지를 생식기 부위에서 골수骨髓 쪽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신체의 생식기 부위에 의식을 모아 깊게, 그리고 천천히 거기서 비롯되는 숨을 생각한다. 숨을 들이쉬면서 아래로 향하는 생기生氣가 위로 끌어올려지는 것을 상상한다. 생식기관으로 들어온 숨이 척추를 통해 위로 올라가서 양미간에 닿는 모양을 상상하는 것이다. 거기 양미간에 숨을 멈추고 속으로 열둘(또는 더 많이)을 세는 동안 양미간과 척수의 생기 저장소로 우주의 생기를 흡수한다. 그런 다음 숨을 끝까지 내쉬고 휴식하면서 몸속의 모든 에너지를 완전히 이완하라.
눈을 감고 위의 방법으로 세 번 호흡한다. 숨을 내쉬고 휴식하는 동안 몸속의 모든 에너지가 육체의 창조적 본능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상상한다.
- ① 마음의 본능적인 힘으로 몸을 통제하라. 바람직하지 않은 육체적 욕망은 생각을 다른 흥미로운 일로 돌려 마음속에서 지워야 한다.
② 바람직하지 않은 창조적 충동들이 먼저는 심리적으로, 그리고 생리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본능적 충동에 대한 통제가 몸의 안팎으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③ 눈과 촉감 등으로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모든 행위를 외면하라.
④ 바람직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거나 말하는 자리를 피하라. 누가 음담패설을 할 때는 맞장구치지 말라. 자신의 창조적 충동을 비속한 생각들로 저도 모르게 키우지 말라.
⑤ 건전한 의학서적을 통해 생식기능의 생리를 바르게 이해하라.
⑥ 소년과 소녀, 남자와 여자 들이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순결하고 성스러운 우정으로 사귀어야 한다.
⑦ 결혼한 커플은 자기 배우자하고만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좋다.
⑧ 자기 수련을 쌓고 자신의 창조적 충동을 온전히 제어하는 사람은 그 온유함으로 영적 깨달음의 힘을 일깨울 수 있다. 이야말로 더없이 높은 덕목이다. 결혼은 육체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재결합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⑨ 독신의 규범을 어기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결혼할 마음이 있을 경우, 진정한 영적 동반자를 끌어당기는 강한 자력磁力을 지닌다. 그렇지 못한 독신자들은 잘못 인도된 창조적 본능으로 안 좋은 배우자를 끌어당길 수 있다. 잘못된 결혼생활이나 무분별한 독신생활로 영적 자력이 상실되었더라도 명상을 통한 재충전 수련으로 회복할 수 있다.
⑩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창조적 본능의 힘을 자기 안에 있는 영혼의 힘에 결합시킬 수 있다. 만일 자기 안에 있는 여성의 육체적 충동과 남성의 영적 힘을 결합시킬 줄 안다면 구태여 이성과 결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엄마, 주황색 사탕이 먹고 싶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잠이나 자라니까?"
나는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주황색 사탕이 먹고 싶어요!"
결국 어머니는 문 닫고 들어간 가게 주인을 불러내어 사탕을 사 오셨다.
그날 나는 행복했다. 왜냐고? 사탕 때문이라기보다는 드디어나 자신의 의지(my own will)를 관철시켰기 때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잊을 수 없는 굉장한 경험이었다.
물론 다음날 나에게 '말썽꾸러기 녀석'이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의지를 실현한 대가로 얻은 이름이었다.
- 부모들에게 말한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자녀들의 성가신 요구를 거절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꺾지 말라. 내가 나한테 해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원했을 때 우리 가족은 들어주었다. 나는 늘 이성理性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내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나 스스로 옳다고 여겨지면 온 식구가 나서서 말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 아이의 요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더 이상 그를 말썽꾸러기라고 부르지 말라. 그의 자유를 박탈하지 말라. 그의 사소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과 이해에 바탕을 둔 조언을 해주라. 이성으로 그를 설득하라.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으면 더 말하지 말라. 아이 스스로 어려운 일을 당하게 두라. 그렇게 해서 나름대로 무엇이 옳은지를 어쩌면 더 빨리 깨치게 될 것이다.
- 부모가 자신들의 뜻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 기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기도를 왜 하는지,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짢아하시는 하느님을 달래 드리는 게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해 그분께 사랑을 드리는 것이 기도임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진지하게 기도할 수 있었고, 그것을 집안 식구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자녀들에게 자유를 주고 다만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사랑으로 귀띔해 주라. 자녀들의 자유로운 의지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 스스로 합리적 이유를 댈 수 없는 무언가를 자녀에게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라.
- 사람이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지만, 애착이 지나쳐 하느님을 묵상하고 그분과 하나 되는 길을 포기하라는 부모의 요구에 순종하느라 하느님을 등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람의 생애는 다른 어떤 사람이나 일보다 하느님이 먼저여야 한다.
- "우리는 서로 성격이 얼마나 다른지를 몰랐어요. 선생께서 일러주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둘 가운데 하나는 죽었을 겁니다."
매력적인 외모에 정서적으로 도취된 상태에서 두 사람은 각자에게 내재된, 따라서 두 사람의 관계에 작용할 수밖에 없는, 도저히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기질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매력적인 외모라는 포장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 참된 사랑은 있을 수 없다.
- 애착(attachment)은 영혼을 괴롭히는 일종의 눈먼 느낌이다.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애착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사랑받는 이의 행복 안에 있다. 당신은 근사한 친구를 사랑한다고,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즐겁다고, 그를 섬기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떠난다. 그가 떠나간 뒤에 그를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게 아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그를 생각하며 슬퍼한다면 그건 바보다. 애착은 당신과 그 친구에게 어떤 좋은 것도 주지 못한다. 언제고 그가 왜 나를 떠났는지 알게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라.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기도하라. 그가 그렇게 떠나는 것이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이든 간에 그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기를 바라는, 이것이 당신의 간절한 염원이어야 한다.
- 붓다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내외간의 사랑을 포기하고 독신을 서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붓다와 제자들이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한 매춘부가 붓다의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성스러운 얼굴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그녀가 붓다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자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오, 아름답게 빛나는 이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독신인 제자들은 붓다가 여인에게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붓다가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도 그대를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 몸을 만지지 말라. 아직 아니다."
- "사랑하는 사람아, 다시 말하겠다. 나중에 내가 그대를 만질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때 가서 내가 왜 이러는지를 말해주겠다."
제자들은 자기네 스승이 매춘부와 사랑에 빠진 줄 알고 충격을 받았다.
- 수년 세월이 흐르고,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명상하던 붓다가 갑자기 말했다.
"가봐야겠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 매춘부가 나를 부른다. 그녀에게 지금 내가 필요해. 그녀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겠다."
제자들이 어떻게든 스승을 구해보려고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매춘부에 대한 사랑으로 미친 것처럼 보였다.
위대한 붓다가 뒤따라오는 제자들과 함께 처음 매춘부를 만났던 나무그늘로 달려갔다. 거기 천연두에 걸려 고름을 흘리며 썩어가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이 누워있었다. 제자들이 코를 움켜쥐고 멀찍이 물러섰다. 그러나 붓다는 그녀의 망가진 몸을 어린아이처럼 끌어안고 머리를 자기 무릎에 눕히고 속삭였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에 대한 내 사랑을 이제 보여주마. 전에 한 약속을 지켜야겠다. 이 사랑을 보여주려고 오래 기다렸다. 내 사랑은 모두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때, 그때 피어나는 것이다. 그대의 젊은 친구들이 그대 몸을 만지려 하지 않을 때 나는 그대를 만지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붓다는 그녀의 병을 고쳐주었고, 온갖 육체적 욕망을 떨쳐버린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여 곁에 두었다.
-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때로는 다른 모든 것을 값으로 치르면서 자신의 안락만을 생각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 사랑하는 대상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제한을 두거나 편파적이지 않다. 하느님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똑같이 사랑하신다. 둘 다 당신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알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그분의 사랑처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임을 보여드려야 한다. 한 영혼이 하늘 아버지께 자기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리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드릴 때, 그분은 말씀하실 것이다.
'내 착한 아들/딸아, 내가 너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나처럼 너도 내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그것은 에고의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이 초자연적인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 무엇이 참사랑인가?
- 언제 어디서나 다음의 깊은 진실을 유념하라. 당신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고 아무도 당신에게 속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갈 따름이다. 당신이 이 땅에 머무는 진짜 이유는 당신이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당신 가족들은 당신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신이 죽었다가 다른 집안에 태어나도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겠는가?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겠는가? 당신 친구들도 당신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심각한 오해로 더 이상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과연 그들 가운데 몇이나 여전히 당신 곁에 있어줄 것인가? 아마도 모두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 사람들은 자기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사랑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니까 그런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비록 그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사랑을 하는가? 아주 드물다. 그 드문 사람 가운데 몇이나 자기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는가? 훨씬 드물다!
- 하느님을 향한 사랑만이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실은 보상받는 것 이상이다. 다른 모두가 우리를 오해할 때 하느님은 이해하신다. 다른 모두가 우리를 등질 때 하느님은 사랑하신다. 모두가 우리를 망각할 때 하느님은 기억하신다. 우리는 하느님의 것, 영원토록 오직 하느님만의 것이다.
- 해와 달과 별과 천하 만물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힘에 붙들려 돌아간다. 누구든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자신의 사랑을 동떨어진 작은 사랑으로 제한하지 말고 신성한 그분의 사랑에 결합시켜야 한다. 삶과 죽음의 춤을 통해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알라. 그 사랑을 찾는 데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있다. 다른 묘약은 없다. 그것이 몸마음 모든 면에서 사람을 아름답게 해 준다. 사랑은 서술되거나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깊은 느낌으로 경험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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