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요가난다 / 이현주
출판 : 삼인
출간 : 2022.12.15
자연스럽게 영성 도서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멀어졌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할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목적지에서 일정 거리 이상을 벗어나면 방향 표지 신호가 뜨는 것에 가까울 것 같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예시가 각각 다른 현상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카르마'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한 현상이 다른 현상과 연결되도록 이어주는 끈,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 카르마를 상과 벌의 개념이 아닌 '자연력에 가까운 어떤 힘'으로 바라보게 되면 훨씬 편안해진다.
내가 돌을 들어 올렸다면 그것은 언젠가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것으로 건축물을 만들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은 순환을 벗어날 수 있도록 지구 외부로 보내는 것뿐이다.
종이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 면 안에 존재하는 조건들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해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는 방법은 차원(dimension)을 바꾸는 것이다.
책과는 다소 관련이 없어보이는 내용만을 남기게 되었는데-
내가 이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했던 생각은 이것이 주다.
다른 이들에는 그들에게 와닿는 문장과 생각이 찾아들 것이다.
감사히 읽었다.
카르마는 무엇인가?
- 우리가 자연에서 원인과 결과의 원리를 받아들이고 물리학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같은 자연법이 인간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일단 모든 것의 바탕이 의식意識(consciousness) 임을 이해한다면, 인간 또한 자연의 질서에 속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당연한 것이다.
- '심은 대로 거둔다.'
(스스로 속이지 마시오. 하느님은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외다. 사람이 무엇을 심어도 그 심은 것을 거둘 터인즉... <갈라디아서> 6, 7)
이것이 카르마 법칙이다. 당신이 악을 심으면 고통으로 악을 거둘 것이고, 선을 심으면 기쁨으로 선을 거둘 것이다.
- 카르마를 이해하려면 생각이 물질임을 알아야 한다. 끝까지 분석해 보면 우주 자체가 물질이 아닌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물질은 생각의 힘에 반응한다. 의지력이 에너지에 지시하면, 에너지가 물질에 작용하는 것이다. 물질이란 사실 에너지다.
모든 행위, 모든 생각은 심은 대로 거둔다.
- 인간의 고통은 하느님이나 자연이 인간에게 화를 낸다는 표지(sign)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령한 법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보여주는 표지다.
이 법은 언제까지나 정확하게 작동한다.
- "아들을 이리로 부른 다음 친구에게 아들의 온몸을 밧줄로 묶어서 오븐에 던져 넣으라고 하세요."
노인이 펄쩍 뒤로 물러서더니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당신 제정신이오? 아무리 못됐기로서니 제 자식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그런 아비가 어디 있단 말이오?"
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인간인 우리가 신성한 하늘 아버지 말고 어디서 사랑의 본능을 물려받았겠어요? 사람조차도 자기 아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수 없는데, 한없이 큰 사랑의 아버지 하느님이 어떻게 당신 자녀를 유황불에 던지신단 말입니까?"
그러자 노인이 뉘우침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제야 왜 하늘 아버지가 사랑의 하느님이신지 알겠소!"
- 우리가 자신의 악행으로 자기를 벌주고 자신의 선행으로 자기를 상주는 것이다.
- 죄는 사람의 영혼을 바꿔놓지 못한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좋지 않은 환경의 정글에서 잠시 길을 잃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죄가 산더미 같아도 그것이 우리의 신성하고 영원한 본성을 바꿔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죄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의 완전한 영혼을 잠시 덮어씌운 껍질과 같다. 명상으로 그 껍질이 깨어질 때 우리의 옹근 영혼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돌고 도는 지구별에서 번갈아 오고 가는 낮과 밤, 사람이 살면서 맛보는 슬픔과 기쁨, 이것들은 다차원의 체스와 같다. 게임의 법칙은 카르마가 정한다. 인과응보의 법칙이 그것이다. 카르마가 '죽음'의 어두운 밤에 먼저 떠난 친구들을 서로 만나게 해 준다. 카르마가 영혼들을 다시 천계天界로 돌려보내는 때가 바로 그들이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순간이다.
체스에서 '잡아먹힌' 짝을 따로 상자에 담아두듯이, 운명의 신이 인생 체스에서 죽은 사람들을 옮겨다가 비밀 상자 또는 저승 휴게실에 담아둔다.
-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을 맑은 정신으로 바라보라. 겉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이 게임일 뿐이다. 자신의 승리와 패배를 영화 한 편 보듯이, 한 걸음 떨어져서 보라.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것이 비록 슬프게 끝나는 비극이라 해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 좋은 이야기네. 많은 걸 배웠어!" 이처럼 살다가 아프고 슬픈 일을 당하거든 그 일을 겪고 나서 자신에게 말해주라. "대단한 경험이었어. 많이 배웠다."
- 인생이 재미있으려면 다채로워야 한다. 우리를 많이 울리고 많이 웃기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인생을 한 편의 소설 또는 영화라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라.
- 자신에게 닥치는 나쁜 일을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말라. 어떤 불행을 만나든 스스로 삶에 대한 책임을 지라. 자신의 본성에 숨어있는 좋지 않은 성향을 없애겠다는 굳은 의지로 최선을 다하라.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돌아가라.
온전한 자기 솔직성과 역동적인 자기 노력으로만 악마가 당신 내면에 숨겨둔 미망의 영향을 영원히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불러들인 것은 자기 자신임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오늘부터 당장 자기 안에 있는 신령한 지혜의 안내를 받으라.
- 살면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 뒤에 숨어있는 원인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 그래서 자기가 왜 고통을 겪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고통 자체가 마음에 두터운 휘장을 드리워 근본 원인들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더 높은 의식意識과의 깊고 내밀한 교제를 통해서만, 정신과 육체의 모든 결함이 잘못된 과거 행실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온갖 불상사의 정확한 원인을 분명하게 인지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할 행동을 처방할 수 있게 된다.
- 어떤 이유로든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연민의 수렁 속으로 빠지려는 유혹에 철저히 저항해야 한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할 내면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짓이다. 그러지 말고 단호히 말하라.
"장애물은 없다. 오직 기회가 있을 뿐!"
- 아무도, 자기 자신조차도 비난하지 말라. 비난과 책망으로는 이미 일어난 일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더욱 의존하게 될 뿐이다.
- 내면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라. 자기 앞에 있는 것과 화해하고 그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당신은 모든 카르마를 다시 만들 수 있고, 당장 오늘부터 영혼 의식(soul-consciousness)으로 새롭게 살 준비를 갖출 수 있다. 에고의 명령에 불복하라. 그것들은 영원한 미몽에 뿌리를 내린 것들이다.
-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안에 있는 더 높은 지혜의 안내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과거에 만들어놓은 습관이 시키는 대로 산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운동선수의 손길에 따라 움직이는 공과 같다. 농구장에서 공은 선수가 던지는 곳으로 날아갈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습관에 따라 살면 지난날의 행위로 만들어진 카르마가 이끄는 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
- 대부분 사람들이 밖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안에 근본 원인이 있는 환경과 조건의 노예로 살아간다. 습관이 그들을 통제한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일단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것은 스스로 생명력을 얻게 된다.
- 과거의 행위로 형성된 습관들이 현재 자신의 행동과 마음가짐, 동료들과 주변 환경, 그리고 좋든 나쁘든 간에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고려하는 사람이 참 드물다. 그것들이 본인의 잠재의식 깊은 데서 솟아나와 현재 자기 태도와 행동에 소리 없이 미치는 영향을 모른다. 어떤 사람들-특히 서양인들-은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사람들 대부분 동양인들은 모든 것이 정해진 운명이고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벗어나는 길이 있다! 에고의 무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자유인 줄 아는 잘못된 인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카르마의 왕국에서는 카르마가 왕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카르마 법칙 너머에 있는 무한 지혜와 손잡고 전혀 다른 왕국으로 옮겨갈 능력이 있다.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과 그분의 인도를 받아 살든지, 아니면 계속해서 에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든지, 어느 쪽이든 스스로 선택할 엄청난 자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 자기 안에 있는 무한 지혜의 인도를 받을수록 우리는 인생 게임에서 외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의 중심에서 이른바 초의식(super-consciousness)으로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참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 영혼 의식 안에서 살게 되면 더 이상 자기 습관과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영혼 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카르마의 종살이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것이다.
- 카르마의 명령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자유로 가는 내면의 길을 걸으라. 날마다 명상하라. 하느님과 깊이 소통하라. 직관의 소리 없는 음성을 통해, 영혼의 품위를 낮추어 자기 습관에 지배당하는 종살이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그분한테서 배우라.
습관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그 오랜 비극의 세월 동안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해왔던가! 사는 동안 예상하지 못했던 불운이나 행운으로 혼란스러워지거든, 인생의 끝없는 퍼즐을 풀어줄 유일한 황금 열쇠를 찾으라. 깊은 명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히 자유롭고 한없는 영(Infinite Spirit)과의 교제를 통해 참 지혜와 손잡는 것이 그 열쇠다.
- 카르마의 예외 없는 법칙은 사람들이 감각을 통해서 바깥일에 기계적으로 반응할 때만 그들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에고 의식에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성경 공부도 중심을 에고 의식에 둔다. 자기 연민의 눈물도 에고 의식에서 흘린다. 에고 의식이 문제다. 그것이 마음을 지배하는 만큼 카르마가 그의 인생을 움켜잡는다.
- 그러나 일단 에고가 영혼 의식의 차원으로 초월해 넘어가면 카르마 법칙이 다스리는 왕국도 함께 넘어간다. 영혼은 본디 순수한 상태로 영원히 남는다. 카르마 법칙이 오직 에고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와 '내 것'이라는 착각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에고의 ...
- 옛날에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 술을 마셨다. 그가 평민으로 변장하고 왕실 소속 선술집에 들어갔다가 웬 사람과 다툼이 벌어져 그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선술집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이 임명한 판사에게 데려갔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려고 할 때 왕이 평민 복장을 벗어던지며 소리쳤다.
"내가 너를 그 자리에 앉혔다. 나야말로 너를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왕인데, 감히 네가 나를 감옥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냐?"
이처럼 완전한 영혼이 몸을 입고 사는 동안 악한 짓을 할 수 있고, 그 결과 재판을 받아서, 또는 카르마 법칙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영혼이 카르마 법칙을 제정한 하느님의 의식에 합일되면 판사한테 벌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 사람이 하느님에 합일되면 카르마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단 그렇게 되면 자기한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는 게 마땅하다. 명상을 통해 자기 카르마로부터 벗어난 영혼이 자기한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다시 인간의 삶으로 돌아가 제한된 카르마 법칙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영혼이 하느님처럼, 끝없는 용서와 사랑으로 신성한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 대부분 영혼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운명을 의식적으로 다스리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어떤 욕망이 자기를 이리로 데려왔다고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그 어슴푸레한 알아차림을 넘어 자기 인생의 목적이나 방향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 성숙한 영혼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기가 왜 세상에 왔으며 이 땅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 하느님 뜻에 자기 뜻을 조율시키고, 내면의 영혼 안내자와 함께, 자기 자신의 삶과 다른 이들의 삶을 '무한하신 분' 안에서 계속 확장되는 자유 쪽으로 향하게 한다.
- 명상 속에서 갈수록 새로워지는 기쁨에 가닿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 또한 무딘 물질 의식 위로 올라가 신성한 영(the Spirit)의 자유로 들어간다.
- 영혼이 더 높은 안내자를 향해 선명히 깨어있을수록 카르마의 독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느님 뜻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결코 수동태가 아니다. 하느님께 자기를 조율하려면 대단한 의지력과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 굴복함으로써 인간의 영혼은 경계 없는 빛의 공간처럼 모든 곳에 편재할 때까지 제 의식을 확장시킨다. 이 복된 영혼의 자기 확장이 마침내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사물들까지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 "크리야 요가 Kriya Yoga는 인간의 진화를 빠르게 촉진하는 한 가지 방편이다."
스리 유크테스와르 Sri Yukteswar가 제자들에게 자주한 말이다.
- 크리야 요가에 통달한 요기는 지난날 자기 행동의 결과에 영향받지 않고 오직 영혼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경건한 수련자들은 독수리 눈앞의 뱀처럼 보이는 더디고 성가신 에고의 진화 과정을 밟으려 하지 않는다.
경박한 에고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뜻하고 느끼고 끼니를 챙기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자신이 과거의 행동(카르마)과 본능과 환경의 꼭두각시일 뿐이라 ...
- 기꺼이 자기 일부를 희생해 제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요기가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병든 제자의 마음과 영혼에 일치시키면, 그 병의 일부 또는 전부가 스승의 몸으로 옮겨간다. 스승은 본인의 육체로 하느님을 모시고 살아간다. 따라서 자기 신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더 이상 염려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살리려고 어떤 병이 자기 몸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더라도 마음은 결코 괴롭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그는 원할 때마다 초의식으로 들어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 머물 수 있지만, 때로는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려고 육신의 통증을 묵묵히 견디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병을 짊어지는 것으로 요기는 그들이 지은 인과응보의 카르마 법칙을 갚아준다.
- 날마다 하느님과 만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하루 일과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되게 하라. 하루에 두 번, 내면의 침묵에 잠기라. 새벽 제단에서 하느님을 예배하라. 하루를 마감하면서 밤의 신전神殿에 고요히 앉아 어둠 속에서 번잡한 일상사를 벗어나라.
죽음과 환생還生의 단조로운 반복에 대해 깊이 묵상하라. 아직 몸으로 살고 있을 때, 지난날 자기 카르마의 씨앗들을 소멸시키는데 힘쓰라. 불로 익힌 씨는 싹 틔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깊은 명상 속에서 자기 카르마의 씨앗들을 지혜의 불로 익힌 사람은 두 번 다시 이 땅에 태어나지 않는다.
- 천계의 질병은 대부분 정서적 불편이나 결함 또는 영양실조로 발생한다. 이런 질병은 천계 주민들의 '힘 있는 생각'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천계의 범죄는 무지無知와 저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누구를 심판하고 벌주는 판사가 따로 없다. 잘못한 영혼들이 엄한 수련생활을 자임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에게 벌을 준다.
- 허공(ether)에서 헤매는 뜨내기 영혼들과의 접촉을 시도하지 말라. 정처 없는 나그네들이 빈집이나 잠그지 않은 자동차를 차지해 못쓰게 만들듯, 뜨내기 영혼들도 허망한 마음을 채워보려고 영들(spirits)을 자극하는 경박하고 얼빠진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뜨내기 영혼들은 사람의 두뇌를 점령해 망가뜨리기도 한다. 자기 마음을 챙기지 못하고 다른 것들에 잘 내어주는 사람이 정신을 잃고 미쳐버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직 과거에 당신을 사랑했고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는 진실한 영혼들만 초대해야 한다. 당신은 선한 영혼들한테서 도움 받아야 하고, 당신 또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 눈을 감거나 뜨고서 영안靈眼(spiritual eye)으로 연푸른 바탕에 황금빛 후광으로 감싸인 은백색 별이 보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깊이 마음을 모으라.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 상태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만나고 싶은 영혼을 그려보면서 그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초대하라. 끈기와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마치 영화 속장면처럼 그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도 나누게 될 것이다. 더 깊은 명상으로 들어가면 그의 모습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예수 같은 영혼이 당신의 초대에 응해준다면 자기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자기 몸을 거칠게 진동시켜 직접 그를 만지고 그의 말을 듣게 해 줄 수도 있다.
악한 영혼들은 강력한 전류로 보호받는 영안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영혼들만이 자신을 영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 누가 악한 영에 사로잡혔거든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그의 이마에, 왼손 집게손가락을 그의 연수에 대고 동시에 누르라. 그리고 영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하라.
"내가 천계의 빛으로 너를 누르고 있다.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 자신이 악한 영에 시달리거든 잠들기 전 베개에다 손가락으로 '옴 Aum' 또는 '아멘 Amen'이라고 쓰라. 자신을 감싸고 있는 빛을 상상하면서 속으로, 또는 소리 내어 서너 번 말하라. "나는 빛이다. 어둠아, 물러가라." 서거나 앉아서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가 손바닥이 등에 닿도록 급히 뒤로 돌리며 "옴-" 소리를 내라. 그러면 보호받을 것이다.
- 영혼들과 진정한 교제를 하되 자신의 의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초대한 영혼들을 만나려면 오히려 의식이 선명해야 한다. 그런 교제에는 격렬한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을 무슨 마법 같은 수단으로 급히 만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을 거역하는 범죄다. 오직 끊임없이 깊은 명상으로만 사랑하는 영혼들과의 만남을 시도하라. 몇 달 또는 몇 년에 걸친 끈질긴 명상만이 그들을 당신에게 데려다줄 수 있다.
밤마다 눈을 감고 '그리스도 센터 Christ Center'에, 천계의 방송국에 마음을 모으고 만나고 싶은 영혼들에게 말하라.
"부활하시오. 하느님 안에서 되살아나시오."
그들이 당신의 메시지를 들을 것이다. 그러고는 말없이 앉아서 당신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느껴보라. 설레는 기분이 느껴지면 그들이 당신의 요청에 응한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 가운데 이미 환생한 영혼이 있어도 이런 식으로 자는 중에는 꿈으로, 명상 중에는 환상으로 그 사람의 항상 깨어있는 천계의 몸을 만날 수 있다.
- 죽은 영혼이 선하다는 것과 그와 만나기를 바라는 자기 마음의 절실함이 분명하지 않거든 그를 계속 생각하지 말라. 세월이 흘러도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식지 않으면 그와의 만남을 시도해도 좋다. 죽은 영혼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욕구야말로 당신이 천계 방송국으로 보낼 수 있는 더없이 훌륭한 송신(送信)이다.
- 그런데 내가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또 진실 어린 기도 때문에 사슴의 영혼이 풀려나려고 애쓰는 바로 그 순간 그 영혼을 다시 짐승의 유한한 형태로 잠시 붙잡아두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내 집착이 이기적 욕심인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슴이 꿈에 나타나 내가 사랑으로 허락하지 않으면 떠나지 않거나 떠날 수 없으니 자기를 놓아달라고 했던 것이고, 내가 그러라고 하자 떠난 것이다.
- 모든 슬픔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하느님이 당신 자녀들마다 당신의 한 부분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무지한 사람은 죽음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다시 보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라고만 인식한다. 그러나 어떤 무엇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천지만물을 하느님의 자기표현으로 보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통해 그분의 기쁨 충만한 무한 공간으로 돌아간 것을 안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당신을 포함해 심장이 뛰고 있는 무수한 인간들이 기껏해야 앞으로 백 년쯤 더 살 것이다.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모두 한 줌 재가 되어 땅속에 묻힐 것이다.
- 몸 안에 살면서 몸 없이 살 수 있음을 당신 영혼이 아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경험이다.
- 인생은 아름답다지만 대개의 경우 새장에 갇힌 새와 같다. 누가 새장의 문을 열어주어도 날아가려 하지 않는다. 무서워서다. 우리도 명상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무한하신 분(the Infinite)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하는 것 아닌가?' 끝없이 넓은 하늘이 무서운 것이다.
'내 몸이 곧 나'라는 생각으로 너무 오래 살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없는 곳 없음(omnipresence), 못하는 것 없음(omnipotence), 모르는 것 없음(omniscience)의 부활이 무서운 것이다. 몸의 불안과 이런저런 감각들을 참고 견딜 수 없다면 고요히 앉아서 이렇게 말하라.
"오 하느님, 침묵의 하늘나라에서 제 속으로 태어나소서."
그러면 침묵의 제단 위로 그분이 오실 것이다. 하느님의 기쁨은 인간의 말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변화무쌍한 꿈으로 거두어갈 수 없는 기쁨이다.
- 그가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느라고 잃어버린 우주의 영원한 왕국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 완전한 영혼 자녀들(soul-children)이 땅에 와서 자기 에고를 만족시키기보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온갖 일을 하면 그들은 환생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라. '이 음식을 먹는 것은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당신의 신전神殿을 건강하게 유지해 당신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거예요. 고픈 배를 채우라고 당신이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또는 '제가 돈을 버는 것은 오직 나 자신과 남들을 살아있게 하라는 하늘이 내린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탐재貪財 때문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에게 일러주라. '나는 지금 오직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고 생각하고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이다.'
-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일은 매우 즐겁고 본인을 만족시킨다. 자기 에고를 위해서 하는 일은 눈을 멀게 하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온갖 선한 일을 하라. 그러면 자기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자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정신적 태도가 영혼을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집착의 고리를 끊어준다.
- 세속에 스며들라. 그러나 세속에 매이지는 말라. 그보다는 하느님의 순결한 기쁨과 더불어 세속을 즐기는 것이 더 나은 길이다.
- 내면의 욕망을 정복하지 않고 세상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僞善을 낳는다. 영적 수련 없이 세속에 살면 스스로 고달픈 속물이 될 따름이다.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Bhagabad Gita)>에 따르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세상에서 온갖 일을 다 하는 것이야말로 위없이 높은 이상인데, 그 지고한 가르침은 동서양에 두루 통한다. 우리가 만일 숲에서 은둔자로만 산다면 위생이 좋지 못해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내면의 평화 없이 속세에 묻혀 살면 온갖 염려와 걱정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것이다. 그러니 가슴에 하느님을 모시고, 어디에 있든 그분의 기쁨을 안고 웃으며, 오직 진실만으로 일하라.
- 그러기에 죽음으로 육신이 망가져도 영혼은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천계의 몸과 영의 몸에서 무지의 마개가 뽑힐 때, 그리하여 신성한 영의 바다에 녹을 때, 그때 비로소 영혼은 자유를 찾게 된다. 우리는 삼중으로 된 속옷, 겉옷, 외투를 입고 있는데 우리가 죽을 때 영혼은 '육신'이라는 외투만 잃는 것이다.
- 몸에서 결정을 이루는 기운이 제 역할을 못하면 결핵을 앓게 된다. 순환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빈혈이 생긴다.
- 물리적인 몸(육신, physical body)은 철鐵, 인燐, 염소鹽素, 소듐, 요오드, 칼륨 등 열여섯 가지 광물성, 비非 광물성 요소들로 구성된다.
- 천계의 몸(astral body)은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들로 구성되는데 여기에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앎'을 위한 다섯 가지 도구, 낳고 싸고 말하고 발로 걷고 손으로 만드는 '행위'를 위한 다섯 가지 도구, 결정結晶하고 동화同化하고 배출하고 신진대사하고 순환시키는 '생기生氣'를 위한 다섯 가지 도구가 포함된다.
- 생각의 몸(idea body)은 육신의 열여섯 가지 요소와 천계의 몸열아홉 가지 요소에 상응하는 씨앗 생각들(seed ideas)로 구성된다.
- 유럽 의사들 문서함에 사두 하리다스 Sadhu Haridas라는 사람의 놀라운 사례가 보관되어 있다. 자신의 기氣와 의식을 몸에서 이탈시켰다가 몇 달 뒤에 되찾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의 몸을 땅에 묻고 몇 달 동안 그 주변을 지켰다. 정해진 때가 되어 사람들이 땅속에서 그의 몸을 꺼냈는데, 유럽 의사들이 자세히 진찰해 본 뒤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몇 분 뒤에 사두 하리다스는 눈을 떴고, 몸의 기능을 모두 회복한 뒤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그는 오랜 수련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부지불식간에 작용하는 모든 기능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주의 법칙을 깨칠 방법을 실험해 본 영적 과학자(spiritual scientist)로서, 결과적으로 인간의 정체와 생명의 영원한 본성이 변치 않는다는 이론이 사실임을 자기 몸으로 보여주었다.
- 환생 이론의 과학적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은 고대로부터 힌두 스승들을 통해 전승된 법칙을 따르고, 잠든 상태에서 피동적으로가 아니라, 깨어있는 상태에서 임의로 다섯 가지 감각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심장의 박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의식적인 자기 죽음, 또는 가사상태를 경험해야 한다는 얘기다. 육체로부터 영혼을 이탈시키는 것이다.
- 위와 같은 결과로 이끌어주는 수련을 이어가면서 우리는 존재의 온갖 상태에서 에고를 이어갈 수 있다. 죽음과 여러 공간들을 관통해 다른 몸, 또는 다른 세계로 에고를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깨치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져서도 인간의 정체를 감지하지 못하고, 따라서 전생의 깊은 잠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법칙을 실험하고, 그래서 값을 매길 수 없는 확연한 지식을 세상에 선물한 고대 힌두 과학자들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인간은 환생을 포함해 다른 영원한 진리들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 호흡과 심장박동 없이도 살 수 있는 진보한 영혼만이 의식적으로 호흡과 심장이 멈추는 죽음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평범한 영혼은 호흡을 멈추면 의식을 잃는다. 진보한 영혼은 의식적으로 지상에서의 죽음 후에 이어지는 천계天界(Astral World)로 갈 수 있다. 따라서 숨을 멈추고 침묵을 수련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영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조건, 마치 여권과 같다.
- <바가바드 기타>는 환생을 끝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로 묘사한다. 그 바퀴에서 벗어나려면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야 한다. 그때라야 하느님이 당신을 풀어주실 것이다. 그 소원이 절실해야 한다. 진실로 그렇게 되면, 그래서 더는 세상에서 놀지 않겠다는 결심이 단단해지면, 주인님이 당신을 풀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분이 당신을 이곳에서 계속 시험하는 중이지만, 우주의 연인(Cosmic Lover) 이신 그분은 이런 드라마를 즐기기보다는 당신이 여기서 벗어나기를 바라신다. 당신이 참으로 그분의 드라마가 아니라 그분만을 원하고, 오직 그분 안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그분이 당신을 풀어주지 않으시겠는가?
- 당신과 나무에는 같은 본질, 의식하는 생명(conscious life)이 있다. 그런데 나무는 그 모양으로 서있고 당신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 그것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다. 어디서 정해진 운명이 끝나고 어디서 자유의지가 비롯되는지는 오로지 현자들만 알고 있다. 그 사이에서 당신은 아는 만큼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공기를 갈망하듯 해방을 갈망해야 한다. 뜨거운 갈망 없이는 결코 하느님을 찾지 못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분을 갈망하라. 모든 것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그분만을 갈망하라. 이것을 무엇보다도 큰 목마름으로 여기라.
- 그러면서 동시에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질병과 건강 등 모든 이원을 초월하라. 다른 모든 것과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라는 착각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라. 오로지 그분께만 마음을 쏟으라. 당신이 되고픈,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흔들림 없는 옹근 영(Spirit)으로 머무르라. 그분만이 당신의 참 자아다. 그분의 지복만이 당신의 참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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