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야마카와 나오키 / 아사키 마사시 / 김진아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2.08.31
티핑 포인트라고 할까, 한 끗 차이로 생각과 감정이 급격히 변하는 순간이 있다.
'잠시 이성을 잃었다'거나 '빡쳤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그런 순간.
사람마다 이 지점에 도달하는 속도와 빠져나오는 속도는 다를 것이다. 어떤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소화하는가는 제각각이니까.
다른 사람으로는 살아보지 못했으므로 -관찰하거나 경험했다고 해서 타인의 그 순간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내 경우만 놓고 보자면 나는 콘트라스트가 높은 편이다.
이 과정이 매끄러운 그라데이션으로 진행되는 사람들은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이는 부담이 덜할 수 있다. 자존심 싸움으로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화를 표현하고 조율하는 것은 충분히 관계에 도움이 되는 건전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정 선을 경계로 명암이 급격히 달라지는 나 같은 경우에는, '선을 넘었다'는 나만의 주관적인 감각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변화가 급작스럽기 때문에- 상대방은 당황스러운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적절한 지점에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 더 세련된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백인백색의 '선 넘기'를 다 맞출 수는 없다는 일종의 현타가 오고 말았다. 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타인을 위해 나 자신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일이 되면 그건 불균형적이다. 해서 경고는 하되 여전히 급작스럽기도 한, 신호등보다는 차단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분노하는 편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이렇다.
'분노'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그것을 자신에게 '납득시키고' '정당하다고 허락받는' 과정이 있는 느낌. 스스로는 이미 화가 나있지만 실제로 표출되기까지 지연되는 간격이 있는데, 아직은 스스로 소화할 수 있다고 느끼는 그 시간 동안 발하는 '경고'가 통하느냐 아니냐로 '화를 내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다.
(사실 '화를 낸다'는 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내가 잘 참는 편이 맞다면 그건 착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화를 내고 나서 수습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 자체도 모두 엄청나게 귀찮기 때문에... 굳이 화를 내서 조율해야 할 관계라면 그럴 에너지로 처음부터 화를 내지 않아도 될 관계를... 아. 중년이 되었기 때문인가, 회피형적 성향이 강해진 것인가.)
그런데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화를 내버리고 나면, 뭐랄까...
감정을 이기지 못해 터져 버린 다음 찾아오는 미안함이라거나 겸연쩍음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오랜 시간 쌓아왔고, 스스로 그 정당성을 -주관적으로- 납득해 버렸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는 그 지점이 '뉴노멀'이 되고 만다. 애초의 나의 분노는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조율 과정이 아니라, 저 강 건너의 새로운 지점으로 가기 위한 발사와 더 닮아 있기 때문에. 다만 같이 건너느냐 나 홀로 건너느냐의 차이랄까.
(그렇다고 함께 일하지 못할 정도로 꿍하게 쌓았다 터지는 편은 아니고. 부서간 조율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어라.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그러니까, <마이 홈 히어로>를 읽다가 '나는 어떤가' 돌이켜 봤더니 이런 생각들이 흘러나왔다는 흐름인 것 같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무엇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끝 -완결- 까지 함께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 겨우 구리판 한 장을 끼운 쿠킹 히터에 냄비의 수십 배나 되는 물의 양...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멈췄다.
- "과장님! 고객한테서 항의 전화가! 지난달에 구입한 저희 제품 때문에 아이가 다쳤다고...!"
"뭐?! 도스 씨, 도와줘요-!!"
- "해결했다고?! 정말 고맙네! 역시 사죄의 달인, 도스 씨!!"
"하하, 그런 별명은 좀..."
- 47년 동안 단 한 번도 죄짓지 않고 살아왔어.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때부터 돌이켜보면 반전 드라마 같은 인생이었지.
하지만, 오늘부터는 살인범이야. 평생 겁에 질린 채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지도 몰라.
- 지금껏 내가 쓴 50편의 추리 소설 속에 나오는 살인범들은...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 "있지... 줄곧 궁금했던 건데."
"뭔데?"
"살인, 처음 맞아?"
- "당연히 처음이지! 그런 걸 왜 물어?!"
"아니, 당신은 맨날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소설을 쓰잖아. 아무 바탕 없이 그런 아이디어를 짜내는 게 대단하잖아? 그래서..."
"미스터리 장르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다니까! 완전 제로부터 생각하는 게 아니야! 이 말만 해도 벌써 열 번째라고!"
- 살점. 삶아서 잘게 다진 인육... 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는 이제 두 개.
봉지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무겁구나...
- "...? 어? 왜 그래?"
"한 개... 줘."
"아니... 시체랑 관련된 건 내가 다 처리할 테니까..."
"한 개는 내가 묻을게."
- "당신까지 돕게 할 수는 없어."
"벌써 도왔잖아."
- "죄? 이제 와서? 혼자 다 짊어지려고?"
"... 아니, 그게..."
"마찬가지야. 나는... 그 이름도 모르는 사람보다 레이카가 더 소중해. 만약... 이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가 죄를 저지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레이카가 위험해지는 일이 또 일어나면, 그때는 내가 이 사람을 죽일 거야. 그러니까 마찬가지야."
- 아니야, 여보...
죽이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공범이 되려고 하는 당신과 나는 같지 않아.
난 당신처럼 강하지 못해...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아...
아내까지 끌어들여서... 후회로 움츠러들어 사라지고 싶은...
- 그저 나약한 아저씨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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