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조현아] 연의 편지

일루젼 2024. 10. 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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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현아
출판 : 손봄북스
출간 : 2019.05.27


       

좋았다.

과장되지 않은 청량함, 그리고 약간의 환상.

익숙한 것들이 모여 두드리는 감동. 

 

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도 누군가의 편지일지도 모른다.

당신과 마주할 그 순간만을 긴 시간 기다려온 누군가.   

 

덧. 다정함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는 별 것 아니었던 작은 선의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될 수 있다. 

촛불이 옮겨 붙듯이 퍼져나간 작은 선의가 나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줄 수도,

그런 것들이 언젠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올 수도, 

선의가 아니었던 것이 돌아올 수도. 
            


   

 

 

 

 

- "그만해."
내가 가만히 있는 걸 그만두기 전까지는.
"하지 말라고 하잖아."

- "뭐? 지금 네가 무슨 짓 한 건지 알지?"

- 내가 모두의 표적이 되기까지 이틀이면 충분했다.

- "... 조금 후회했어요. 그 애를 도와준 걸... 나도 그냥 가만히 있을 걸... 하고... 하지만 그랬다면, 훨씬 더 후회했을 거예요."

- "한참 찾았어. 선생님들도 다 찾고 있고, 돌아가자. ... 싫은가 보네."

- "왜 혼자 울고 있어?"
"울긴 누가 우냐?"
"꼭 눈물이 나와야 우는 건 아니래. 오히려 눈물이 나는 쪽이 더 편하다더라."
"우는 게 아니라 화가 나는 거야. 난 절대 사과 안 해."
"사과하라고 온 거 아냐. 그냥 널 찾으러 온 거지."

- "그거... 반딧불이야...?"
"응, 볼래? 이 산의 반딧불은 찾는 걸 더 수월하게 해 준대."
 
- "뭐야, 갑자기..."
"눈물을 내보내는 약밥이라고 하셨어."
"뭐?! 그런 게 어딨어?" 
"먹고서도 안 믿는 거야?"

"... 으윽..."

- '남 앞에서 운 건 쪽팔리지만, 정말로 정리가 좀 됐어.'
"... 너 대체 뭐냐?"
"난 정호연이야."
"그거 말고."
"어떻게 날 찾았어?"
"... 안 믿을 텐데."

- "그분한테 간단한 마법 같은 걸 배워."
"뭐?!"
"하하,
안 믿을 거라고 했지."

- 사실 어떻게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너 진짜 이상하다."
그 애의 특이한 능력보다 -

- "굉장하다..."
"오고 싶을 때 놀러 와."
그리고 정호연은 진짜 마법 같은 걸 할 줄 알았다.

- " 2주 정학받은 거 축하해."

"안승규라면 퇴학이었을 걸."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 응."

 

- "하나도 안 맞잖아... 더 열받기만 하고. 진짜 이런 게 도움이 되겠냐?"

- "과녁을 분노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쏘면 되는 거지?"

"하하, 아니야. 내가 준 끈 매고 있지?"

"응."
"이 끈을 네 화라고 생각하고 멀리 날리는 거야. 정확히 없어지는 곳에."

- "넌 반대했었잖아."
" 뭐...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는데. 그건 네가 결정하기 전까지 얘기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난 네가 하지 않은 일로 벌을 받는 건 싫지만, 네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도 괜찮아. 덕분에 너랑 이렇게 오래 놀 수도 있고."
"... 대단한 건 너 같아."
"뭐? 다시 말해봐. ㅋㅋ"
"아니, 이런 공간도 만들 수 있고!"

 

- "여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존재하는 공간이야.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 뿐이지."
"관심이 없다니... 누가 여길 네가 만든 차를 마시고 눈 감고 걸어오겠어?"
"차는 기사님이 여기서 가져오신 씨를 재배해서 만든 거야.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냥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아. 모든 장소는 들어가기 위한 방법이 달라. 사람도 마찬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인지하는 순간 내 앞에 존재하게 되는 거야."

- "기적을 만들려면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 그래서 어느샌가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하늘을 날게 된 것도 마찬가지야. 그게 당연하고 시시하게 여겨지는 순간 기적이나 마법이 아니게 되는 거래."

- "이제 화 안 내네."
"음... 저런 놈한테 내 감정을 할애하긴 아까워졌어."
 
- 옳은 행동이 더 나은 상황을 만드리라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악화되지 않으면 다행인 걸.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만 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옳은 행동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여기에도 괴롭힘은 있더라.
내가 당하는 게 아닌데도 너무 무서웠어.
누군가를 해치는 말들은 내가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마치 내 등 뒤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어.

 

- '무서워...'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알겠어.
눈물이 날 것 같다.
소리에게 고마워서.

- 내가 다른 사람의 부당한 일에 나서서 그만하라고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분이야.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었어.
고마워.


- '고마워, 화내줘서.'
 
-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 아홉 번째 편지는 나랑 처음 만난 장소에 있었어.
그러니까 마지막 편지는 내가 모르는 곳이야.

- "혹시 입원했을 때, 호연이를 만난 적 없어?"  


- 처음부터 호연인 다음에 자기 자리에 앉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게 아닌 것 같아.

- 너한테 편지를 쓴 거야.

- 네가 숨처럼 내쉬던 작은 호의들을 난 평생 기억할 것이다.

- 이제 이름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애야.
 
- 조금만 더 늦게 발병했더라면
내가 사랑하는 이곳을
너희 둘과 다닐 수 있을 텐데.

- 아니.. 이런 생각은 말아야지.
수술이 잘 끝나서 만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역시 조금 아쉽다.

- '동순이한테도 안 알릴 생각이니?'

- 몰랐으면 하는 마음.
알았으면 하는 마음.
너희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
외로울까 봐 무서운 마음.

 

- 편지를 찾았으면 좋겠다.
편지를 못 찾았으면 좋겠다.
나를 잊었으면.
나를 기억했으면.

- 나를 보러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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