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백월
출판 : 황금나무
출간 : 2007.12.22
주역, 역, 역경, 육효, 팔괘...
신년이 되면 진지하게 믿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려 '토정비결'을 보시는가?
재미 삼아 뽑아본 점괘라도 길(吉)이 나오면 기분이 좋고, 흉(凶)이 나오면 기분이 나빠지는 게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점을 칠 수 있는 여러 점술 중에서도 주역은 역사성을 갖춘 일종의 '정통' 점술서이자 경서다.
주역의 64괘에는 천라만상과 인간지사가 모두 담겨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가 천지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빼놓을 것이 없다는 가르침도, 계절의 바뀜과 생사길흉도 하나의 흐름이자 주기일 뿐이라는 가르침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의 카드 패와 같다고.
모든 사람들은 같은 조합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카드가 발동하는 순서와 시기에 따라 다른 발현으로 '보이는' 것 같다고.
이는 사주를 통변하는 한 방식인 조후론과 비슷한 시각인데, 전체 구성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길사와 흉사, 그 모양새를 점괘로 확인하는 것은 그것을 피해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겪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흘려보낸 24년이었다.
그리고, 25년이다.
사족) 리뷰가 사족이 되다니, 모양새가 좀 우습긴 하지만.
이 책은 주역의 역사와 주변 지식들을 소설의 형태를 빌어 설명하는 책이다.
하지만 괘 자체의 해석이나 보편적인 접근법을 다루기보다는 저자의 통찰과 지식을 전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유의할 것.
추천은 하지 않는다.
- 역경은 본래 역(易)이라고 했는데, 전해오면서 주(周)가 앞에 붙어 주역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역의 원문에는 주역이라고 적힌 곳은 없고, 역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 공자의 저작물인 역(易), 서(書), 시(詩)는 글 또는 책의 제목으로 모두 원래 1자였으나 뒤 사람들이 높여서 경전이라는 뜻의 경(經)을 붙여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으로 불렀다. 이 세 가지 경이 흔히 말하는 사서(논어, 대학, 중용, 맹자) 삼경(역경, 서경, 시경)의 삼경이었다.
- 역경의 작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었다. 융마(融馬)는 괘사를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였다.
- 기홍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역경은 전체 내용 중 일부만 제외하고는 모두 공자의 저작이었다. 청대의 고증학자들은 역경 괘사, 효사에 등장하는 사건과 문구들을 살펴보면 괘사, 효사의 작성시기가 문왕, 주공 훨씬 이후라고 했다. 그것은 문왕과 주공이 괘사, 효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명말청초의 사상가인 왕선산(1619~1692)은 역경의 내용 모두는 공자가 지은 것이라고 한 바 있었다.
- 역경 계사전에서 공자는 8괘를 복희씨가 만들었다고 적었는데,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64괘와 괘사, 효사를 만든 이가 주(周)나라 문왕이라고 하였다. 문왕은 행적으로 볼 때 괘를 만들거나 역경을 만들 만한 수행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었다. 기홍의 눈에는 후대에 사마천 같이 이가 자기들 조상의 시조 격인 문왕을 떠받들기 위하여 역을 주역이라고 이름 붙이고 문왕이 역의 골격을 만든 것으로 조작한 것으로 보였다.
- 역경의 내용은 많은 이들에 의해 해석되고 연구되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오히려 풀리는 않는 그 내용의 형이상학적인 심오함으로 인해 후세 학자들의 찬탄을 받았고, 공자 최고의 저작물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역경은 점을 치기 위한 점서 형태로 되어 있었고, 그 내용이, 해석된 상태로 보아도 말이 안 되는 부분도 많고 일반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난해하여 접근이 쉽지 않았던 고로 현대인에게는 사서삼경 중 하나인 역경이라는 책이름 정도만 기억하는 고전으로만 남아 있었다. 간혹 지식인들이 그에 접근하고자 들춰보곤 했으나 절망감만 안고 물러나야 했다. 역경을 여러 차례 읽어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읽었다는 표를 내기 위한 어떤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 은(상)의 신하국(제후국)이었던 서쪽 중국 족속들이 우리 민족의 나라인 제국 은(상)을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기원전 1046년)하여 자기들 족속들의 중심지인 장안(지금의 서안)을 수도로 한 것이 장안시대의 시작이었다. 중간에 낙양 등으로 수도가 바뀐 적이 있으나 수, 당(618~907년) 때 다시 장안이 수도가 되어 중국의 중심부로서 200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 [ ? - 하 - 은 - 주 - 춘추전국 - 진 - 한 - 위진남북조 - 수 - 당 - 송(요, 금) - 원 - 명 - 청 - 중국 ]
- 이후 송나라는 하남성 개봉을 수도로 하였는데, 동시대 거란족의 요나라(916~1125년)는 북경을 수도로 하였다. 북경이 처음 수도가 된 것은 통일 왕조가 아닌 전국시대의 연(燕)나라 때였고, 그 이름을 연경(燕)이라고 했다.
- 북경은 화북(北) 대평원과 북방의 산간 지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본래부터 북방민족이 살던 지역이었다.
송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 금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가 항주를 수도로 하였고, 금은 요를 멸하고 북경을 수도로 하였다.
이후 몽골민족이 세운 원나라, 한족이 몽골민족을 밀어내고 세운 명나라, 만주족 누르하치가 세운 왕조인 청나라 때까지 북경은 명나라 초기를 제외하고 계속 수도로서 중국의 중심부가 되었다.
1928년부터 중국 국민당 시절 남경을 잠시 수도로 하였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때 북경을 다시 수도로 정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
"주나라 이후 장안(서안)이 당나라 때까지 2000년 가까이 수도였다는 것은 장안을 중심으로 한 서쪽 족속들이 주나라에서부터 당나라까지 약 2000년 간 패권을 누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기홍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명이 말을 이었다.
"그러다 이후 북경이 수도가 된 것은 북경을 중심으로 한 족속들에게 패권이 넘어간 것이라고 봐야 할 거야. 그게 근 1000년 가까이 되었지."
주명의 말을 듣고 기홍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수도의 위치와 관계없이 모택동의 공산당 집권 이후 중국 집권 세력의 중심은 중국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모택동(마오쩌둥, 호남성), 등소평(덩샤오핑, 사천성)이 남부이고, 최근의 강택민(장쩌민, 강소성), 호금도(후진타오, 안휘성 상해)가 상해 근방 출신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최근 상해를 중국 최고의 도시로 육성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야."
- 북경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3천 년 역사의 고도이며 중국의 수도로서 자금성, 이화원, 북경 인근 북쪽의 만리장성 등 관광자원이 많아 관광도시로도 유명했다.
북경 시내는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공사가 여기저기서 한창이어서 20년 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비슷했는데, 중심부를 벗어난 시내의 모습은 상당 부분 서울의 60, 70년대 분위기와 비슷했다. 길거리의 많은 자전거는 북경에 들어섰음을 실감 나게 했다.
- "발마사지는 음양의 조화라고 해서 남자 손님은 여자 마사지사가, 여자 손님은 남자 마사지사가, 보통 그렇게들 하죠. 전 여자 마사지사가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 말고는 다른 남자가 제 몸에 손대는 거 싫거든요."
방 안에 3개의 낮은 간이침대가 있었고, 가운데 주명이 눕자 그 오른쪽에 기홍이 왼쪽에 설화가 누웠다.
통에 더운물을 담아 두 발을 모두 담게 했다. 통에 담긴 물은 한약재를 달인 물인지 한약 냄새가 났다. 더운물 속에서 여린 여인네의 손이 남자의 발을 매만져왔다. 뜨겁고 강한 감촉이 발을 통해 온몸에 퍼져나갔다.
- "아까 설화씨가 말한 것처럼 전에는 역경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주로 다루었지만 최근의 추세는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동서양 모두가 역경에서 과학적 동기 내지 힌트를 얻기 위하여 젊은 학자들이 달려들곤 합니다. 그것은 역경의 괘가 과학적 원리를 담고 있음이 여러 군데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죠.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와 유전자를 구성하는 64가지 염기구조도 음양론과 64괘의 원리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도자초전도(陶瓷超電導)를 연구하는 다나까(田中) 교수는 초전도의 결정현상(結晶現象)이 정팔면체로서 8괘의 모습과 같은 것에 너무 놀랐다고 한 바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도 DNA와 역경 8괘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여러 젊은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이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1716)가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던 그의 친구 부베를 통해 얻은 괘의 그림에서 2진법의 원리를 알게 되고 그것이 컴퓨터의 기본 원리인 0과 1로 이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 "역경에서 컴퓨터 2진법이 나온 것이라면 역경의 괘와 컴퓨터 2진법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주명이 기홍 쪽을 바라보자 기홍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역경의 괘는 위 3개의 효, 아래 3개의 효로 되어 있습니다. 이 한 개 한 개의 효가 음(--) 또는 양(一)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의 효가 바로 컴퓨터에서 말하는 비트이며, 2진법의 핵심입니다. 같은 자리인데 음이 될 수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는, 수로 말하면 0이 될 수도 있고, 1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10진법 수에서는 같은 자리에 0에서 9까지 10가지 수가 올 수 있어 10진법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2진법에서는 한 자리 한 자리가 효가 되며 그것이 곧 비트입니다."
- "하도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한 그림에 같이 나타낸 것입니다."
- 하도는 복희씨가 다스릴 때 황하에서 나온 것으로, 상체는 용의 형상이며 하체는 말의 형상을 지닌 용마(龍馬)의 등에 씌어 있었다고 전해져 오는 그림이었다. 역을 말할 때 하도가 같이 언급되었으며, 하도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으나 하도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나타낸 것이라는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기홍이 하도를 알고 나서 그것이 맞았다는 것을 봉우 조단사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 "이 그림은 하도의 그림으로 많이 알려진 것인데, 여기처럼 흑백으로 음양을 표시한 것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전해오면서 나중에 생겨난 것입니다. 이 음양 표시는 역경 계사전 내용에
천 1, 3, 5, 7, 9
지 2, 4, 6, 8, 10
이렇게 적혀있으므로 그것을 누군가가 적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역경에 '천 1, 3, 5, 7, 9', '지 2, 4, 6, 8, 10'라고 적은 것은 수 자체의 홀수(양)와 짝수(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도에 나타낸 수는 그냥 수가 아니라 위치에 따른 기운을 표시한 것이므로 그렇게 홀짝만으로 음양 색을 매기면 안 됩니다. 하도 그림에 음양색이 없는 그림도 많이 있습니다."
- "낙서도 하도와 마찬가지로 신화처럼 만들어서 전한 것으로 봅니다. 낙서는 어디에 그려져 전했다고 했죠?"
"거북 등요."
"거북 등에 기호가 몇 개 있죠?"
"아홉 개요."
"잘 아시네요."
"그 정도야 뭐."
"아홉 개. 즉, 구(九) 개의 기호를 적었으니 같은 발음인 거북 구(龜)의 등에 적었다고 한 것입니다.
- 하(夏)나라 우왕시대(BC 4000년 경)에 자주 홍수가 나서 넘치는 황하(黃河)의 지류인 낙수(洛水)의 범람을 막기 위해 치수공사(제방공사)를 할 때 강 복판에서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 거북의 등에는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이 무늬를 수로 나타내었더니 가로, 세로, 대각선 숫자의 합이 모두 15로 똑같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이 신비로운 무늬의 그림을 하늘이 거북을 시켜서 인간세계에 보내준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숫자는 황하가 넘치는 것과 같은 재앙을 막아주는 숫자라고 생각하고, 이 수를 아주 귀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 수는 낙수로부터 얻은 하늘의 글이라는 뜻으로 낙서(洛書)라고 불렀다. 이 낙서가 마방진의 시초였다.
- "그럼 낙서(洛書)는 어떻게 보는가?"
하도에 이어 낙서 이야기가 나오자 장가군이 낙서를 물어왔다.
"낙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기홍이 말을 끊었다.
- "갑자년, 을축년, 병인년... 이렇게 말하는데, 그것을 제일 처음 시작한 해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리고 그것을 처음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라고 했을 거구요."
"그랬겠지요."
"그게 언제냐는 거죠."
"그걸 어떻게 알죠? 아무도 모르지 않나요?"
설화가 말했다. 기홍이 장가군을 보고 아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장가군이 모른다는 몸짓을 했다.
-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견해가 있지만 말이 길어지므로 넘어가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그대로 잘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갑자년 갑자월로 시작되어 지금도 갑자년 갑자월이 있다는 뜻인가요?"
"예."
"갑자년갑자월은 없는데요."
"60갑자 원리로 보면 갑자년 갑자월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갑자년에는 갑자월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갑자년 갑자월이 있습니다. 그건, 기운 개념의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 "먼저 연월일시의 개념을 짚어보겠습니다. 1년이 뭐죠? 1년은 지구가 태양을 1번 공전하는 기간입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럼, 1년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기홍이 설화를 보며 묻자 설화가 답했다.
"1월 1일."
"음력 1월 1일입니까? 아니면 양력 1월 1일입니까?"
- "둘 다 아니고 동지(양력 12월 22일 또는 23일)가 1년의 시작점입니다."
"아, 아까 말하셨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설화가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춘하추동이라 하고 봄을 시작이라 여기지만 실제의 1년의 시작점은 동지입니다. 아침을 하루의 시작이라 여기지만 실제의 하루의 시작은 밤 12시인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동지가 가장 춥지 않은 것은 냉장고를 켜면 바로 시원해지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지구가 식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론상으로는 하루 중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오는 낮 12시가 가장 기온이 높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덥히는데 시간이 좀 걸리므로 오후 2시경이 가장 기온이 높은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음력 1월 1일, 양력 1월 1일을 1년의 시작점으로 하는 것은 세시 풍속일 뿐입니다. 지구가 식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관계로 동지보다는 양력 1월 1일이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에 보다 가깝기는 합니다."
- "세수(새해 첫날)는 고대에 시기마다 달랐습니다. 하나라 때는 세수가 인(寅)월이었고, 은나라는 이보다 한 달 빠른 축(丑)월이었고, 주나라는 또 한 달 빠른 동지가 있는 자(子)월이었죠. 그러다 한(漢)의 무제 때부터 세수를 입춘을 기점으로 인(寅)월로 정해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 "로마시대 태양력에서는 춘분을 1월 1일로 했었죠. 입춘이나 춘분을 1월 1일로 삼은 경우는 음의 정점인 동지에서 양이 싹트는 태극의 원리를 몰랐던 듯하네요. 그러니까 1월 1일을 입춘이나 춘분으로 했겠죠."
"그건 너무 비약 아닌가요? 로마는 몰라도 중국에서는 양(陽)이 자중(子中, 밤 12시 정각)에서 생(生)하고 음(陰)이 오중(午中, 낮 12시 정각)에서 시(始)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었다고 봅니다."
장가군이 설화의 말에 부정을 표하자 설화가 입에 힘을 주어 오므렸다.
- "중국에서 역에 대한 해석이 발달한 것이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말씀하신 상식이라는 것이 하, 은, 주 그리고 한나라 때도 상식이었다거나 그때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어떤 근거가 있나요?"
"하하 그렇게 되나요?"
장가군이 웃었다.
- 역경에 대한 해석학에는 상수역과 의리역의 2갈래 흐름이 있었다. 상수역(象數易)은 팔괘의 상징과 수를 가지고 풀었다. 역경의 내용 중 단전(彖傳), 상전(象傳), 설괘전(說卦傳)은 상수역 계통이라 할 수 있었다.
- 한(漢)나라 때의 역학자 정현(鄭玄), 순상(荀爽), 우번 등은 여러 가지의 술(術, 왕래·승강·방통 등)을 도입하여 해석했다. 이 상수역은 경문의 말을 모두 괘의 형상을 가지고 풀어서 그 설명이 번거롭고 자차분하였으므로, 왕필(226-249, 위나라)은 상(象), 수(數), 술(術)의 대부분을 버리고 경문이 뜻하는 대로 읽어서 이해하고 그것을 풀었는데, 이와 같은 역의 해석을 의리역(義理易)이라 하였다.
- 의리역의 관점은 역경을 인간의 윤리나 처세의 지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상수역이 종합된 것이 주역집해(周易集解)였고, 청나라 때의 고증학자들은 상수역의 유설을 수집, 해설하였다.
의리역에서는 왕필의 주역(周易)이 있었으며, 주역정의(周易正義)가 그것을 상세히 풀이했다.
- 주자(1130-1200)는 송대의 의리학(義理學)이라고 일컬어지는 성리학(性理學)을 일으켰으나 역경에 대한 해설에 있어서는 의리역보다 상수역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들었다. 주자가 48세 되던 해에 주역본의(周易) 12권을 찬술하였는데, 소강철(邵康節 1011-1077)의 상수학을 기초로 하여 역점(易占) 이론을 받아들여서 역리(易理)를 해설하는데 주력하였다.
- "잘들 알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주나라 때는 1년의 시작을 동지로 본 것이고, 한나라 때는 1년의 시작을 입춘으로 본 것이죠. 우리가 지금 쇠는 음력 설날은 입춘의 개념이며 실제로 여러 해를 살펴보면 입춘을 중간에 두고 설날이 입춘 전후를 왔다 갔다 합니다."
- "그러면 입춘이라는 절기는 왜 딱 그 시기에 있을까요? 조금 앞일 수도 있고 뒤일 수도 있는데?"
"24절기는 주나라 때 중국 황하 유역인 화북 지방의 기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는 잘 안 맞는다고도 하고요."
"제가 보기엔 24절기의 개념이 그게 아닌데요, 조금 있다 보시면 ... "
- "시는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것은 시계개념이고, 역학 적용에 있어서는 기운개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월은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양력(음력) 시계개념이고, 역학 적용에서는 음력 시계개념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운개념으로 맞추어집니다."
- "시의 기운개념에서 본 것처럼 월의 기운개념도 왼쪽 그림처럼 되어야 원리에 맞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양력의 1월은 동지를 9일 또는 8일 지나서 1월 1일이 있고 시계개념입니다. 현재의 음력 1월은 왼쪽 기운개념 그림의 3월에 해당합니다. 실제로는 그 전후 15일 사이 안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 "서 교수님 말대로라면 지금 역학에 있어서의 월건의 적용은 완전히 틀렸다는 말인가요? 기운 개념의 1월과 음력 1월과는 단 하루도 겹치는 날이 없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의 건 적용은 상당히 정확한 편입니다. 평균으로 해서 약 75%가 맞고 25% 정도의 오차가 있습니다. 그것은 60갑자의 시작인 갑자월이 1월이 아닌 11월에 있기 때문입니다."
- "서양운세 별자리는 1년을 12로 나누고 동지를 기점으로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적용을 기운개념으로 하지 않고 동지를 시작으로 하는 시계개념으로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래는 양력 1월입니다. 그 아래는 음력 11월을 1993년부터 2006년까지 표시한 것입니다. 파란 줄은 동지 기준선입니다. 1999년 음력 11월은 기운개념 1월과 동일합니다. 다른 달들은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좌우로 들쑥날쑥합니다. 하지만 이 들쑥날쑥한 것은 좌로 최대 15일, 우로 최대 15일 오차범위 이내이며, 평균으로 하면 약 7.5일 정도의 오차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역학에 있어서 월의 적용은 외형적으로는 시계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력의 기운개념에 정확하게 맞추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지금 책력에서는 갑자월이 음력 11월이 되어 갑자년 1월의 2개월 전에 있는 것이 되지만, 갑자월은 1월이며, 갑자년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갑자년에 갑자월이 없어 보이는 것은 겉모습일 뿐입니다."
- "실제로 갑자년 갑자월은?"
기홍이 말을 끊고 설화를 쳐다보자 설화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있습니다."
- "소강절의, '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라는 말로 보면, 천지인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 하는 관점문제이기도 한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자시를 년과 일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나, 축월시, 인월시를 그리 보는 것이나 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기홍이 장가군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기운개념의 원리이지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리를 알고 응용을 해야지, 원리도 모르고 응용을 하면 오류가 많지 않겠습니까? 역(曆)에서 일 년의 시작점을 잡는 문제는 고민거리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대별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것이구요. 동지가 1년의 시작점인 것은 알았지만 동지를 1월 1일로 삼을 수 없었던 것은 달이 차고 기우는 월력하고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지에 달이 보름이거나 반달인데 1일로 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월을 1년 시작의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 "역(易)의 원리 개념에서는 1년의 시작이 동지이고 하루의 시작이 자정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1년의 시작을 입춘으로 보거나 춘분으로 보는 경우가 있고, 하루의 시작을 인시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관념의 문제입니다. 밤 12시가 되면 하루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벽 2시가 되어도 아냐,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하루가 바뀌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의 관념으로 나타날 때는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과 적용으로 나타날 때는 원리를 살펴야 하고, 원리에 맞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易은 그렇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장가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 하도가 한국의 뭐에도 있다고 하셨는데..."
"아, 천부경요?"
"그게 뭐죠?"
기홍이 천부경에 대해 설명했다.
- 천부경은 누가 만들었고, 언제 어떻게 전해졌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로 전해져 온 81자로 된 경이었다.
기록에 남아있는 것으로는 상형문자로 적힌 천부경을 통일신라 말기에 최치원이 지금의 문자로 바꾸어 적어서 전했다는 것 정도일 뿐, 어떤 역사서에도 천부경 이야기가 나와있지 않았다. 봉우 조단사가 '천부경이 역의 조종(祖宗, 근본)'이라고 한 이래 천부경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나 그 내용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 "역경은 64괘요, 천부경은 81자이니 천부경은 역경 64괘를 담는 뼈대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것은 정신수련을 한 사람, 호흡이 긴 사람이 훨씬 유리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도 이 공부를 하면 월등 유리하죠. 기존 것을 답습하는 공부라면 몰라도, 전인미답으로 무언가를 찾고 푸는 경우라면 절대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어떻게 하는 건데?"
기홍의 말에 주명이 관심을 보였다.
사실 주명도 단전호흡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무협지도 많이 읽은 데다 무술에 관심이 많아 내공을 쌓을 목적으로 한 동안 해봤으나 20초 언저리에서 맴돌고 씩씩거리다 말았을 뿐이었다.
- "호흡을 길게 하면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참선을 하든 내공을 쌓든 정신통일을 하든 간에 호흡길이가 길다면 그 성과가 무척 빠릅니다. 호흡길이가 길면 길수록 명경지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호흡길이를 늘리는 것인데, 2분이 되면 말할 것도 없지만 30, 40초만 되어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1분 이상은 좀 힘들지만 1분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를 수 있습니다."
"난 20초밖에 안 되던데, 그리고 당최 앉는 게 힘들고 고역이어서 계속 못 하겠더군. 몇 달 하다 때려치웠지."
주명이 말했다.
"호흡수련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자율신경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장은 의식으로 빨리 뛰어라 늦게 뛰어라 하는 통제를 할 수 없지만 호흡은 의식으로 웬만큼 통제가 가능하니까 호흡을 길게 하려고 의식을 앞세워 무리를 하게 됩니다. 제가 본 사람들은 의식을 앞세운 호흡으로 잘못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시적으로 숨을 멈추거나 의식이 앞선 호흡을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몸이 좋아진 듯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이 나빠지기 시작해서 돌이키기 어렵게 되곤 하더군요."
- "중요한 것은 자율신경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흡을 늘리되 자율신경이 우선하도록 하면서 자율신경과의 조화를 이루는 범주 내에서 늘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부작용이 없습니다. 자율신경을 무시하거나 뒷전에 둔 채 의식이 앞선 호흡을 하게 되면 몸에서 그에 대한 방어 작용이 일어나 근육, 신경, 장기 등이 긴장하고 딱딱해지게 됩니다. 이것이 습관화되면 호흡수련한다는 의식만 하여도 몸이 굳게 되지요. 이렇게 되면 호흡을 늘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나빠지게 됩니다. 폐호흡을 쉬던 사람이 호흡방식을 바꾸어 단전으로 숨을 쉬는 것인데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겠습니까? 수영을 하는 사람이 몇 달을 계속 열심히 연습해야 물에서 숨이 트여 1시간을 계속 쉬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듯이, 단전호흡도 자율신경이 우선하도록 하면서 의식을 살짝 얹어 호흡을 단전까지 끌어내리고 호흡을 내보내고 하는 것을 계속해나가면 몸에 붙게 되고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는 것에 가깝게 단전으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훈련을 통해 단전 혼자서 숨 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호흡방식이 잘못되어 부작용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자율신경이 숨 쉬도록 하는 것을 도우면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 기홍이 역경을 연구할 당시 괘의 순서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다. 왜 이런 순서로 되어 있을까?
책에 64괘가 나열되어 있는 순서는 순환 순서는 아니고, 그렇다고 2진수 순서도 아니었다.
처음 시작 건, 곤, 둔, 몽까지는 천지인으로 한 것은 알겠는데 그 뒤는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순서를 공자가 정한 거라면 역경의 성격으로 보아 순서를 아무렇게나 한 것이 아니고 순서에 무슨 비밀이 있거나 분명한 원칙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 언뜻 스치는 생각은 마방진이었다.
역경 64괘의 순서 안에 마방진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마방진은 모든 가로줄, 세로줄, 대각선을 합한 것이 같은 수가 되는 수의 배열을 말했다.
- 며칠간 2진수 크기 순서 또는 순환순서를 바탕에 깔고 책의 순서를 대입시키며 마방진 확인을 계속해나갔다.
2×2를 제외한 3×3부터의 모든 n×n 마방진 (Magic Square)을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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