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지원
출판 : 청아출판사
출간 : 2009.08.31
지난 5월, 갑자기 옛 기담이 읽고 싶어져서 도서관에서 몇 권을 빌려와 읽었다.
읽는 동안은 수월하게 잘 읽혔는데, 발췌를 정리하려고 하니 한자어가 많아 품이 좀 들었다.
(아직 <오토기조시>나 <서루조당 파효>도 남아 있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바다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미지로서의 바다는 좋아한다.
파도와 바닷소리, 반짝이는 윤슬 같은 것들.
하지만 실제 바다에 발을 담그거나 수영을 하는 건 좀 꺼려하는 편이다.
무의식의 문제겠지만, 바다에 대한 믿음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고 할까.
맑고 예쁜 아열대 바다에서는 바다뱀이나 쏠배감펭 -바다뱀 자체는 꽤 좋아하는 편이다- 등의 생물이,
어두운 바다에서는 뻘과 소금기 등의 후처리가 두렵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 수영을 못 한다.
따뜻한 욕조나 풀에 가만히 잠겨 있는 건 좋아하는 편이니, 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면, '바다'에 가는 건 글쎄지만 '바다' 이야기를 읽는 건 아주 좋다는 말이다.
처음 접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서로 닮은 이야기도 있었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들이 섞인 이야기도 있었다.
슬슬 진해지는 여름밤, 즐겁게 우리 옛이야기를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
주제별, 연대와 지역별로 바다에 얽힌 민담들을 수집 정리해 주신 저자 분과 출판 편집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사족)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지금의 감성으로는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돌아오라고 활을 쏘고, 배가 가라앉아 돌이 되었는데 감동하는 감성은... 지금의 나는 잘 모르겠다.
마더구스나 페이리 테일도 비슷하게 놀라운 부분들이 있으니까. 시대상의 차이라고 해두자.
- 민담, 기담 등이 최근 문학계에서 꽤 인기가 높은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만의 민담이나 기담집은 그리 많이 찾아볼 수가 없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담이 많이 있을 텐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던 차에,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를 엮어 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장보고기념사업회에서 연구자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해양설화'를 조사하였는데 그것을 기본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 생각하고 있던 바와 비슷한 방향이었기 때문에 반갑게 받아들였다.
- 채록된 민담은 엮은 것의 대여섯 배는 될 정도로 분량이 많아 깜짝 놀랐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만큼 바닷가 마을도 많이 있고, 그 마을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내려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중에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도 있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든지, 그 마을만의 독특한 풍습에 관한 이야기 등도 많이 있었다. 한정된 분량상 모두 넣을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꽃섬 이야기라든지 바다의 여신을 달래기 위해 소년 제물을 놓고 가는 이야기 등은 나도 이 이야기를 엮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민담에도 인어 이야기가 있다는 것 역시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이다. 외국 전설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인어를, 우리 민담에서 발견하게 되니 참 놀라웠다.
- 바다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은 역시 용왕이라는 존재일 것이다. 용왕은 때로는 인자하고 마음 넓은 인물인가 하면, 속 좁고 인간의 능력을 질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에게서 도움을 구하기도 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온다. 이러한 용왕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 더운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여름의 마지막을 바다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보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민담의 기원이 된 마을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엮는 기회를 주신 청아출판사와 장보고기념사업회 김재철 이사장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엮은이 김지원
- 신하들은 글자 한 자 모르는 무식한 뱃사공이 어떻게 중국 사신의 수수께끼를 맞히겠는가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가 하고 싶으면 하라고 놔두었다. 중국 사신이 올 날짜가 다 되자, 조정에서는 이 뱃사공을 압록강으로 보내 사신과 만나게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뱃사공이 말하는 것이었다.
"소인이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러는데, 떡을 좀 실컷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하들은 기가 막혔으나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하고 떡을 해다가 어린아이 머리만큼 커다랗게 잘라 주었다. 뱃사공은 신이 나서 떡을 양손에 들고 마구 먹었다. 그 커다란 떡을 다섯 개나 먹고 나서야 뱃사공은 부른 배를 안고 압록강으로 향했다.
- 중국 사신은 압록강에서 배에 올라탄 다음 뱃사공을 보고 '참으로 무식하게 생겼구나' 하고는 이런 사람도 글을 알까 싶어 시험 삼아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뱃사공이 중국어를 할 리가 없는 터라 손짓발짓으로 물었다.
우선 사신은 뱃사공이 글공부를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하늘은 둥글다'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둥글게 해 보였다.
- 뱃사공은 그 표시를 보고는 무슨 뜻인가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 자가 내가 떡을 먹는 것을 언제 보았지?
그리고서 그는 자신이 먹은 떡은 둥근 게 아니라 네모졌다는 의미로 손가락을 네모나게 해 보였다.
- 사신은 깜짝 놀랐다. 무식해 보이는 뱃사공이 그의 말을 맞받아 '땅은 네모지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신은 이번에는 그에게 '삼강을 아느냐'라는 의미로 손가락 세 개를 내보였다. 뱃사공은 떡을 세 개 먹었느냐고 묻는 줄 알고 세 개가 아니라 다섯 개를 먹었다는 의미로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었다.
- 사신은 뱃사공이 삼강뿐만 아니라 오륜도 안다는 의미로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자 더더욱 놀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염제(炎帝, 중국 전설 속의 왕 신농씨)를 아느냐'라는 의미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뱃사공은 이 손짓을 보고서 사신이 떡이 맛있었는지 묻는다고 생각하고는 배부르게 먹었다는 의미로 배를 쓰다듬었다.
사신은 그가 복희(伏羲, 중국 전설 속의 왕)도 안다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런 한낱 뱃사공이 삼강오륜을 알고 염제와 복희씨도 알 정도면 조선의 배운 사람들은 과연 어떻겠는가 싶어서 놀라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중국 사신을 물리친 뱃사공은 궁에서 상을 받고 훗날 정승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 "노인장,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이 고을은 머지않아 바닷물 속에 잠기게 될 터이니 가족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오."
뜻밖의 말에 다른 사람들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그냥 흘렸을 텐데, 서씨 노인은 아무래도 과객이 보통 사람 같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이 언제쯤 바닷물에 잠기는 거요?"
"저 앞산에 있는 돌부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게 되면, 그때 이 고을이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오. 내 말을 꼭 명심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시오."
과객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서씨의 집을 떠났다.
- "우리 집에 묵고 간 어느 기인이 알려 주었다네. 저 앞산 돌부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면 이 마을에 바닷물에 잠긴다고 말일세."
사람들은 전부 다 그런 말을 철석같이 믿는 서씨 노인을 비웃었다.
"망령이 드셨습니까? 돌부처가 피를 흘릴 리도 없으며 더구나 육지가 바다가 된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에게 속으신 겁니다."
하지만 서씨 노인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돌부처를 살필 뿐이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사는 백정 하나가 서씨 노인을 곯려주기 위해서 밤중에 돌부처의 귀에 개의 피를 발랐다.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모르는 서씨 노인은 여느 때처럼 밥을 먹고 산에 올라갔다가 돌부처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드디어 피가 흐른다! 마을이 바다에 잠길 테니 다들 피하시오!"
그가 소리를 지르며 산에서 뛰어내려오자 상황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전부 노인의 행동을 낄낄 비웃을 뿐이었다. 아무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지만 서씨 노인만은 가족들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 한참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얼마쯤 올라가자 웬 소금장수가 소금짐을 지게에 받쳐놓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서씨가 말했다.
"이보게, 소금장수. 여기는 곧 바다 속에 잠길 것이니 어서 짐을 들고 높은 곳으로 몸을 피하게."
그러나 소금장수는 태연히 앉아서 담배를 뻐끔뻐끔 빨며 말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인장. 이곳이 바다에 잠긴다고 해도 바닷물은 이 작대기 밑에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을 것이니, 더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서씨 노인은 그가 평범한 소금장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고 그의 말대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그곳에서 머무르며 기다렸다.
- 잠시 후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랫마을에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마을이 전부 물에 잠겼다. 물은 계속해서 불어나 그들이 있는 산에까지 밀려 올라왔다. 하지만 물은 소금장수의 말대로 짐을 받쳐 놓은 지게 작대기 끝에까지만 올라오고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서씨 노인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바다 속에 수장된 마을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기며 가족들을 데리고 해남으로 떠났다. 후에 그의 가족들은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일곱 고을이나 되던 마을이 모두 바다가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곳을 칠산바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전라남도에서 한참 가면 나오는 조그만 섬 대흑산도 진리라는 곳에 각시당이라는 당집이 있다. 그리고 그 당집 앞에는 조그마한 묘가 있는데, 여기에는 예쁜 소년이 묻혀 있다고 한다.
- 옛날 어느 배 한 척이 지나가다가 대흑산도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할 수 없이 이 섬에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풍랑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바로 출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선원들은 이 섬에 며칠 동안 발이 묶이게 되었다. 이 배에 소년이 하나 타고 있었는데, 용모도 예쁘장하고 무엇보다도 피리 솜씨가 아주 좋았다. 소년은 섬에 머무는 동안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당집이 있는 산에 올라가 소나무 위에 앉아서 피리를 불었다. 이 피리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구슬픈지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 다음 날도 바람이 잔잔하기에 모두가 배에 올랐더니 또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파도가 높게 일어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이러기를 여러 번 하고 나니 선원들은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위에 당집이 있던데 거기 가서 빌면 어떨까? 무슨 말씀이라도 내려 주시지 않겠나?"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먼."
- 선원들은 당집으로 가서 제발 바람을 가라앉혀 달라고 열심히 빌었다. 그렇게 며칠을 빌고 난 어느 날, 선주의 꿈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이 섬을 지키는 여신이니라. 소년의 피리 소리가 내 마음에 흡족하니, 그 소년을 여기 남겨두면 너희가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선주는 잠에서 깨서 이 일을 어떡하나 고민하다가 다른 선원들에게 어젯밤의 꿈 이야기를 했다. 다른 선원들은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소년을 남겨놓고 떠나자고 결론을 내렸다.
- 다음 날 배를 띄우고 그들은 소년에게 당집에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다음 그 사이에 닻을 올리고 떠났다. 혼자 남은 소년은 울다가 지쳐 결국 당집으로 올라가 날마다 피리를 불었다. 피리를 불고 또 불다가 피로와 외로움에 지친 소년은 결국 거기서 죽고 말았다.
- 제주도 남쪽 서귀포 근처에 있는 정방폭포는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져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이 폭포 맞은편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숲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음력 초사흗날과 초여드렛날이 되면 이곳의 당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 풍습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 오랜 옛날 이 섬에는 수백 년 묵은 뱀이 살고 있었다. 커다란 몸은 진홍빛으로 빛나는 데다가 머리 양쪽으로 큼직한 귀까지 달려 있는 보기 드문 뱀이었다. 뱀은 인간 세상에서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한시바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세월만 하릴없이 흐르는 것이었다. 이대로 기다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뱀은 용왕님께 소원을 빌기로 결심하고 매달 초사흗날과 초여드렛날이 되면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 제주도 해녀들의 바다에 얽힌 일화 가운데에는 산호수로 마마신(역신)을 막아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은 삼다도 三多島의 상징적인 이야기로, 가장 뛰어난 해녀의 넋이 산호수에 서려 있기 때문에 이 산호수를 갖고 있는 해녀는 누구나 잡신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 그 옛날 마마신은 바람을 좋아해서 따뜻한 봄날부터 가을날까지 바람 부는 대로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마신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있는 것 없는 것 할 것 없이 가득 음식을 차려 대접해야 했다. 만약 대접을 안 하거나 잘못 대접하면 마마신은 주머니에서 마마 병정을 풀어 온 마을에 마마병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찾아오는 마마신을 대접하느라 온 재산을 다 바치며 진땀을 빼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큰 부자라 해도 재산에는 한도가 있는 법이라,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은 마을 회의를 하여 마마신을 막아낼 방법을 강구하 ...
- 병사들은 창칼과 화살에 찔려 구멍이 뻐끔뻐끔 뚫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싸움으로 큰 바람이 석 달 열흘이나 일었다.
이때 용궁에 갔던 해녀가 산호수가 되어 바닷가로 떠밀려왔다. 어찌 된 일인지 산호수를 보자마자 마마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병정들이 모두 죽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마마신은 바람을 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바위 신령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단숨에 뒤쫓아 마마신을 잡아 죽였다. 마마신이 숨지던 날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이고 삽시간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기뻐했으나 바위에 뚫린 상처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 사람들은 해녀의 용기 있는 희생에 감사하였고, 어린 해녀들은 바닷가에서 산호수 놀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 이래로 다시는 마마병의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때부터 크게 음식을 차려 용왕님께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제주도의 수많은 해녀들은 산호수를 갖고 있으면 잡신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산호수를 얻기 어려운 해녀들의 경우에는 그 대용으로 향기 짙은 녹나무로 낫자루를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
- 두 번째 그물을 끌어올렸을 때에도 어쩐 일인지 허탕인 것이었다. 그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늘이시여,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잘 사는 사람이 많은데, 나쁜 짓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 수가 있습니까? 이번에는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고기가 많이 걸리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서 다시 그물을 내렸다. 그러나 세 번째 그물질에도 걸려 올라오는 것이라고는 깨진 항아리 조각과 다 끊어진 바구니, 흙만 담긴 항아리 같은 쓰레기만 딸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고 빌었다.
"저는 하루에 네 번만 그물질을 하기로 했는데, 벌써 세 번이나 그물질을 하였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 부디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서 다시 그물을 던졌다. 한참 기다려 물이 고요해진 다음, 어부는 큰마음을 먹고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물은 대단히 묵직했다. 뭔가 큰 게 걸렸나 보다 기대하고서 그는 말뚝에 한 끝을 잡아매고 다른 끝을 열심히 잡아당겨 올렸다. 그런 다음 무엇이 걸렸나 하고 보니 놋쇠로 만든 병만 하나 들어 있는 것이었다. 어부는 속상한 마음으로 병을 집어 들어 마개를 툭툭 두들겨 보았다. 그런데 마개에 알 수 없는 부적이 하나 붙어 있었다.
- "이놈이라도 놋쇠장수에게 팔아서 벌이를 해야겠다."
병을 내려놓으려던 어부는 문득 안에 뭐가 들어있나 궁금해서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안은 묵직하기만 할 뿐 소리라고는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난 어부는 어쩌다 자신이 병을 열어서 이런 화를 자초했는지 원통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귀신에게 빌었다.
"대왕님, 그래도 소인이 대왕님을 건져 드렸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저를 살려 주시면 옥황상제께서도 대왕님을 용서해 주실 것이옵니다. 저를 죽인다면 옥황상제님께서 대왕보다 더 기운이 센 분을 보내 대왕님을 죽이실 것이 분명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나는 너를 죽이고야 말 것이니 죽을 방법이나 택하여라."
"대왕님, 소인이 대왕님을 건져 드렸다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저는 인정 있는 행동을 했사온데 대왕님은 그것을 원수로 갚으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다 네가 나를 건져 준 탓이다. 나는 이미 마음을 결정했으니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느니라.”
- 그때 어부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책이 떠올랐다. 어부는 포기한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다가 귀신을 쳐다보았다.
"정 그러시다면 소인이 대왕님께 한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부탁이나 들어주십시오."
"그게 무엇이냐?"
"이렇게 크신 대왕님께서 어떻게 저 작은 병 속에 들어가 계실 수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소인이 보기에는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왕님은 이 안에 들어가 계셨던 것입니까?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사옵니다."
귀신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내가 이 병 속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냐?"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럼 어디 잘 보아라."
- 귀신은 온몸을 뒤흔들어 연기로 변하더니, 병 속으로 주르르 빨리듯이 들어갔다. 어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황급히 병뚜껑을 막았다. 마개에는 태상노군(노자)의 부적이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속은 것을 깨달은 귀신은 안에서 온몸을 흔들며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나올 수가 없었다.
어부는 병을 들고서 호통을 쳤다.
"이놈아, 나는 너를 이 바닷물 속에 다시 집어넣고 여기에 집을 짓고 누구든지 여기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면 절대로 잡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이 속에 나쁜 귀신을 가둔 병이 있는데, 그 병을 꺼내 귀신을 놓아주면 은혜를 갚는 대신에 죽이려 든다고 말이다."
귀신은 뒤늦게 다급하게 어부에게 애걸했다.
"그러지 마시오. 나를 도로 꺼내 주면 온갖 금은보화를 다 얻게 해 주겠소!"
"이놈아,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아까 전에 나를 놓아주지 않으면 옥황상제께서 벌을 내리실 거라고 말했었지? 네가 나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옥황상제께서 도로 벌을 내리신 것이다. 네 잘못이나 곰곰이 생각하며 병 속에 영원히 갇혀 있어라!"
어부는 병마개를 꼭 막은 후 바다로 던졌다. 그리고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온다.
- 옛날에 바닷가에 그물질을 하러 다니면 기가 센 사람에게는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지만, 기가 약한 사람에게는 귀신이 달라붙어 장난을 치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개 기가 센 사람이 그물질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혹여 좀 약한 사람이 그물질을 마치고 고기를 담은 망태를 들어 올리려 하면, 귀신이 나타나 못 들어 올리게 망태를 잡아당겼다고 한다. 그러면 고기를 하나 던져 주면 한참 잠잠하다가 그 고기를 다 먹고 나면 다시 또 망태 잡아당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 어느 날 어떤 어부가 물때가 하필 저녁 무렵이라 바닷가에 나가서 그물을 쳐놓았다. 어두컴컴해진 다음에야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웬 젊은 남자가 따라오는 기척이 들리는 것이었다. 그는 아는 사람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고 물었다.
"거기 아무개 아닌가?"
그러나 뒤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 이 고장 당신의 원조인 소천국에게는 아들이 열여덟이 있었는데, 태자는 그의 열여섯 번째 아들이었다.
어느 날 태자는 교래리 히비기 골왓이라는, 좁씨 아홉 섬, 피씨 아홉 섬 해서 도합 열여덟 섬을 갈 수 있는 넓이의 밭에 밭갈이를 하러 내려왔다. 한쪽 옆에 점심을 놓아두고 열심히 밭을 갈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스님이 삼신산을 돌아보고 오다가 시장하여 태자에게 밥을 좀 나눠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태자가 기꺼이 점심밥을 내주니 스님은 밥을 세 술을 먹고서 지나갔다.
점심때가 되어 태자가 점심밥을 먹으려다가 생각해 보니 스님이 먹던 음식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밭 갈던 소를 잡아 나무 불에 나무꼬치로 고기를 꿰어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치웠다. 그러고 나서 이제 밭을 갈아야 하는데 소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이 쟁기 손잡이를 자신의 배에 대고 소 없이 자기 힘으로 밭을 다 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에 부모님께 이 일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양반의 집에서 그런 짓을 하다니 조만간 나라에 큰 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노발대발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야단인 것이다.
- 결국 소천국은 무쇠장이를 불러다가 커다란 무쇠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태자를 앉히고는 서른여덟 개나 되는 자물쇠를 채워서 바닷물에 띄워 보냈다. 무쇠 상자는 파도에 떠밀려 이리저리 다니다가 마침내 용왕국에 들어가 흑산호 가지에 걸려 멈추었다. 태자는 상자 속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낮에는 옥퉁소를 불고 밤에는 도깨비불을 켰다. 그것을 본 용왕은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알 수가 없어서 깜짝 놀랐다.
- 결국 용왕은 큰딸을 시켜 그 상자를 내리게 하였으나 상자는 도통 내려오지 않았다. 둘째 딸을 시켰으나 마찬가지였다. 막내딸을 시키니 상자가 산호 가지에서 수월하게 내려오는 것이었다. 자물쇠를 열 때에도 큰딸과 둘째 딸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 막내딸의 손에서는 간단히 열렸다. 마침내 상자를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옥같이 생긴 선비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용왕이 선비를 보고 물었다.
"어디에서 왔소?"
"제주도에서 왔소."
"어찌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오?"
"강남 천자국에서 변란이 일어 이를 평정하러 장수로 가오."
용왕이 가만히 보니 천하의 명장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첫눈에 사위로 삼을 마음이 들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 보니 정말로 천자국에서는 변란이 일어 난리인 것이었다. 태자는 당장에 머리 아홉 돋은 장수의 목을 베고 변란을 막았다. 강남 천자국에서는 그의 무공을 높이 치하한 다음 값비싼 금은보화를 준다고 말했다. 그러자 태자는 거절했다.
"그렇다면 벼슬을 주겠다. 어떤 벼슬을 원하는가?"
"벼슬도 필요 없소. 나는 그런 사소한 것은 원치 않으니 그만두고 제주도 땅과 물과 국을 한쪽씩 베어 주시오."
강남 천자국에서는 그의 요구대로 모두 들어주었다. 태자는 용왕패도선을 타고 제주도로 돌아갔다.
- 먼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일송당으로 들어가니 어머니는 내쫓은 자식이 어른이 되어 찾아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무서워서 당오름 중턱으로 도망쳤다. 그래서 아버지를 뵈러 가니 아버지 역시 겁이 나서 고부니 마루로 도망쳤다.
부모가 저리 자식 사랑이 없는데 자식인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하고, 태자는 한라산 백록담으로 올라가 용왕국의 공주를 대부인으로 삼고 한라산 오백 장군의 외동딸을 소부인으로 정하여 살림을 시작하였다.
- 어느 날 태자는 적적해서 바둑과 장기를 두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때 김녕 큰당한집에 자식이 없어서 소천국에 사정 이야기를 한 다음 승낙을 받고 태자를 아들로 데리러 왔다. 그래서 태자는 큰당한집과 같이 한라산에서 내려왔다. 한라산에서 태역장오리, 오백장군, 다리콧, 돌타리, 김녕, 이렇게 차례차례 내려오다가 고살미라는 입산봉에 와서 앉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와 앉은 이래로 누가 "물 한 모금 드시오, 밥 한술 자시오." 하고 갖다 차려놓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자는 조화를 부려 김녕에만 변괴가 일어나게 만들었다. 농작물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비와 바람이 불어와 작물을 다 망쳐놓으니 그해는 완전히 흉년이 들었다.
- 돌연한 일에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회의를 열었다. 한참 옥신각신하던 끝에 점을 치니 입산봉에 전에 없던 신이 앉아서 그런 조화를 부린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신을 잘 대접해야만 온 마을이 편안하겠다는 점괘에 사람들은 무당을 청해 굿을 하고, 태자에게 어디 좋은 곳으로 가서 좌정하면 웃어른으로 대접해 드리겠다고 올렸다.
태자는 좌정지를 찾아 맨 처음 바닷가로 내려갔으나 거기에는 도깨비들이 많아서 정신이 산란해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동산 폭나무 밑 괴뇌기 굴속으로 들어가 소리엉에 좌정하였다.
- 그래서 태자는 지금까지 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제물에 대해서는 소를 잡아오게 하면 백성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될 터이니 돼지를 한 마리씩 잡아오라고 하였다. 삼 년에 한 번씩 돼지를 한 마리씩 잡아 올리되 속이 꽉 찬 놈으로 잡아 상을 차리라고 했다.
그래서 이 뱀굴에 좌정한 괴뇌깃도 태자의 제사는 돼지를 잡아 올리기 때문에 돈제 豚祭라고도 한다.
-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공들과 힘을 합해 필사적으로 거친 파도와 싸웠으나 결국에 배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하나 둘 배에서 떨어져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남은 사람들 역시 자기 목숨 챙기기에 바빴다.
마침내 바다가 잔잔해지고 배는 어딘지 모를 섬에 도착했다. 그때 배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김복수 하나뿐이었다. 그는 섬에 내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었다.
"여기는 안남(安南, 베트남)이오."
- 낯선 안남에서 김복수는 외롭게 살게 되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와중에 그의 눈에 한 처녀가 들어왔다. 곱게 생긴 처녀 역시 먼 곳에서 표류해 온 사람이었는데, 고향이 유구국(유구琉球, 현재의 오키나와)이라고 했다. 처녀의 이름은 임춘향이었다. 두 처녀 총각은 똑같이 먼 나라에서 표류해 왔다는 사실 때문에 점차 친해지게 되었고, 꼭 같은 외로운 처지에 서로를 의지하다가 마침내는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축복해 주는 친족도 없는 쓸쓸한 이국땅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몇 해가 흐르는 동안 그들은 3남 3녀를 낳고 조용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 땅에 왜국의 사신이 왔다. 그 사실을 들은 그들은 황급히 사신을 찾아가서 청했다.
"우리는 각기 조선와 유구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부디 돌아가실 때 저희를 데리고 같이 가 주십시오."
- 배에 탄 사람들은 김복수의 말에 동의하고 그에게 배에 싣고 가던 작은 조각배를 내주었다. 그는 그 배를 타고 힘껏 노를 저어 제주도 땅에 상륙했다.
마침내 고향 땅을 밟은 김복수는 그 길로 옛날에 살던 집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가니 어머니는 과거를 보러 갔다 폭풍에 휩쓸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왔다는 사실에 기뻐서 말문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머니 곁에서 하루 이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다.
한편 김복수가 물을 실어오기를 기다리던 임춘영 일행은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자 결국 그를 내버려 두고 유구로 떠나고 말았다.
- 그날부터 김복수는 안남 땅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 춘향과 자식이 그리워서 매일같이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내는 안남에, 처남과 사돈 가족은 유구에, 그리고 자신은 여기 제주도에 뿔뿔이 떨어져 있으니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가 없었다.
달 밝은 밤이면 그는 춘향이 그리워 바닷가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둥그대 당실 둥그대 당실 너도 당실 원자머리고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마을 사람들은 김복수가 부르는 <오돌또기> 노래를 들으며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여 평생 다시 장가를 들지 않은 그를 동정했다.
- 활잡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남자가 설명했다.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조기로 사람들이 생활을 했소. 그런데 황해도에서 황룡이 내려와 그 조기를 전부 다 연평도 쪽으로 끌고 가고 있소. 그래서 내가 그 황룡과 싸우고 있는 중이오. 그런데 이 황룡이 힘이 세서 사흘이나 싸우고 있으나 결판이 나지 않고 있소."
"그런데요?"
“황금산 앞에 분뜰이라는 곳이 있소. 내일 새벽에 거기에 나가 보면 청룡과 황룡이 싸우고 있을 텐데, 그때 청룡을 보고서 활을 쏘아주시오. 그러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오."
활잡이는 잠에서 깬 다음 영 꿈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날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이 되자 다시금 푸른 옷의 청년이 나타나 더욱 애절하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 결국 다음 날 새벽 그는 활과 화살통을 들고서 분뜰로 나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몸을 숨겼다.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번개가 번쩍이더니 용 두 마리가 나타나 정말로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활잡이는 청룡을 돕기 위해 화살을 매고 잡아당기려고 기회를 엿보았으나 두 마리가 워낙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어서 적당한 때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적당한 기회가 왔으나 활잡이는 또다시 시위를 당기지 못했다. 그는 대단히 솜씨 좋은 활잡이였기 때문에 쏘기만 하면 늘 표적을 맞추었다. 그런데 청룡의 말처럼 청룡을 향해 화살을 날리면 죽는 것은 청룡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활잡이는 황룡을 겨누고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시위를 떠나 쏜살같이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다음 순간 빛이 번쩍여서 활잡이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 빛이 사라진 다음 그는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용들이 싸우던 들판으로 달려가서 누가 화살에 맞았는지 확인하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은 청룡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 황룡이 몸을 돌려 화살이 빗겨나갔던 것이었다.
- 며칠 후 활잡이의 꿈속에 다시 푸른 옷의 남자가 나타나서 침통하게 말했다.
"그대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나 대신 황룡을 보고 활을 쏘아 내가 죽고 말았소. 그래서 이 마을의 조기는 황룡이 전부 연평도로 몰고 갔으니, 이것도 운명인가 보오. 하지만 내 아들이 장한 뜻을 품고 있으니, 저 황금산이 세 번 푸르러지면 조기가 또 들어올 것이오.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해 주시오."
- 활잡이는 자신의 실수에 땅을 치며 후회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정말 황금산 앞바다에서는 조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황금산이 세 번 푸르러지면 조기 떼가 돌아올 거라는 청룡의 말에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다. 벌써 산이 두 번 푸르러졌고 황금산 앞바다에 슬슬 조기의 모습이 보이는 걸로 보아 청룡의 아들이 자라서 조기 떼를 몰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옛날 도초도에 명씨 성을 가진 남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 오십이 넘도록 장가를 못 들고 홀로 짚신을 팔아 그날그날 연명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명씨가 부둣가를 지나가고 있는데 부두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배에서 인어 한 마리를 잡아와서 이걸 팔 것인지 회를 쳐서 먹을 것인지 논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인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바다 속에 사는 미물이라 해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자 가엾어진 명씨는 짚신을 팔아 푼푼이 모은 돈을 꺼냈다.
"이 인어를 나에게 파시구려."
사람들은 열 냥에 인어를 잡아먹자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명씨가 닷 냥을 얹어 열닷냥을 내밀자 선주는 두말하지 않고 팔았다. 명씨는 인어를 업고 집으로 데려와서 며칠간 몸조리를 시킨 다음 몸이 나아지자 바다에 띄워 보내 주었다.
- 그리고 얼마 후 명씨가 바닷가를 지나가고 있는데 인어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그에게 옥동자를 안기고 사라졌다. 명씨는 아이를 데려와서 애지중지 소중하게 키웠다. 아이는 얼굴도 잘생기고 머리도 영리해서 주위 사람들의 감탄을 샀다.
- 세월이 흘러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명씨의 집안 선산에 마을에서 권위 있는 집안이 함부로 들어가 땅을 파고 묘를 세우려고 하는 일이 생겼다. 명씨가 가서 보니 자기 조상 묘 위에 다시 묘를 세우고 있는 형편인데도 세도가라 감히 나서서 막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아버지,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들은 아버지가 자리에 누운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명씨는 "아직 어린 네가 알 일이 아니다." 하고서 돌아누웠으나 아들은 고집스러웠다.
“제가 해결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해 주십시오."
"실은 우리 조상님 묘 위에 세도가들이 토장을 하고 있는데 도저히 말릴 수가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다."
"아, 그런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거뜬히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 아들은 아버지를 두고 곧장 산으로 향했다. 산에서는 세도가 집안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소를 잡고 자기들의 조상 묘를 다 파헤쳐 그 위에 새로 무덤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버럭 화가 나서 그 집안의 문장을 집어 들고 대체 누가 이러한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너 같은 어린애가 알 일이 아니다. 당장 여기서 꺼지지 못할까!"
"어째서 남의 조상 묘에다가 토장을 합니까? 당신들이야말로 여기서 나가십시오."
"어린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사람들이 아이를 토끼 몰듯 내쫓으려 하자 아이가 그 자리에 서서 뭐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거센 바람이 불어와 천막이 무너지고 사람들까지 죄다 이리저리 날아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잘못했다고 빌자 그제야 아이는 주문을 멈추고 호통을 쳤다.
"너희들이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있다 해도, 남의 조상 묏자리에 토장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잘못을 깨달았거든 다시는 그러지 말아라!"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아이 앞에서 잘못을 빌고는 산에서 도망을 쳤다.
- 그 후 아이는 훌륭하게 자라서 도승지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씨 집안 자손들은 인어의 후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조선 시대에 한동안 울릉도를 빈섬으로 두는 공도 空島 정책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빈섬에 왜인들이 숨어 들어와 살면서 노략질을 하곤 했었다.
어느 날 울릉도에 살던 왜인들에게 지나가던 조선인 두 사람이 납치되었다. 수적으로 워낙 열세였기 때문에 두 젊은이는 어쩔 수 없이 왜인들에게 끌려 울릉도에 강제로 상륙하게 되었다. 상륙하고 보니 왜인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고, 조선 사람들을 여럿 납치해다가 노예로 삼고 심부름을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왜인들은 젊은이들을 근처의 돌집에 가두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이들이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이놈들, 우리가 누구인 줄 아느냐?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하늘을 갈랐고, 비는 삽시간에 바닥을 적셨다.
- 옛날에 유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장사로 큰돈을 모았으나 슬하에 경태라는 아들만 하나 남기고 일찍 죽었다. 얼마 못 가 어머니까지 잃고 나자 경태는 어린 나이에 재산이 많아봐야 사람 목숨에 비할 바가 못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이 개산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스님 한 사람이 집 앞에 나타났다.
"시주하고 복 받으십시오."
경태는 이 많은 재산을 내가 가져서 뭘 하겠는가 싶어서 스님에게 황금 삼천 남과 백미 삼백석을 사주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집안의 종들을 다 불러 모아 돈을 나눠 주었다.
"나 혼자 사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뭐 필요하겠는가. 너희들도 전부제 갈 길로 가거라."
그리고는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얻어먹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 한편 시주를 받아간 스님은 그 돈으로 절을 중수하고 완공식을 하기 위해 다시 경태를 찾았으나, 집은 폐허가 되었고 사람은 간 곳이 없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에게 경태의 행방을 수소문한 결과, 그가 전 재산을 내놓고는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스님은근방을 찾아다니다가 몇 달이나 길거리 생활을 해서 옷은 다 낡아 헤지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청년을 찾아냈다.
"시주받은 돈으로 우리가 절을 다시 짓게 되었습니다. 함께 가셔서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십시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안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같이 가십시다."
스님은 안 간다는 그를 억지로 절로 데려갔다. 어쩔 수 없이 경태는 목욕재계하고 스님이 내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렸다.
- 그날 밤 절에서 잠을 자는데 꿈속에 여러 부처님들이 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절이 낡아 내내 비바람을 맞고 지냈는데, 네가 시주를 하여 이제 편하게 있게 되었으니 그 보답을 하고 싶구나.”
그리고는 부처님들이 차례로 말씀하셨다.
"나는 너에게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주마."
"나는 너를 용왕의 사위가 되게 해 주마."
"나는 너를 인간 세상의 왕이 되게 해 주마."
잠에서 깬 다음 경태는 신기한 일이다 생각하면서 스님이 준 옷을 벗어놓고 다시 떨어진 옷을 입고 절을 나섰다. 스님들이 전부 말렸으나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 제비 새끼를 한 마리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런 다음 소매 속에 새끼를 넣고 어미 제비가 새끼를 찾으러 날아오자 경태를 데려와서 어미 제비가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았다. 경태는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서 말했다.
"그 어미가 말하기를, '원님의 소매 속에 제 새끼가 들었는데 아직 어려 고기도 못 먹고 거죽도 쓸모가 없으니 도로 돌려주십시오' 하고 있습니다."
원님은 경태의 말이 진짜구나 하고는 그를 풀어 주었다.
- 얼마 후 나라 안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궁궐 밖에서 큰 제비 작은 제비 몇 천 마리가 자꾸만 싸우다 떨어져 죽는 것이었다. 이것이 길조인지 흉조인지 알 수가 없어서 궁에서는 각 도 각 읍에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을 천거해 올려라'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을 받은 원님은 경태를 천거했고, 왕명으로 부르자 어쩔 수 없이 경태는 궁궐로 가서 임금 앞에 나서게 되었다.
"지금 궁 밖에서 제비 몇천 마리가 자꾸만 싸우고 있느니라.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네가 가서 알아보아라."
경태가 궁 밖으로 나가 보니 큰 제비가 작은 제비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한테 오십 척 사람의 털이 있어서 자손이 번성하니 그 오십 척 사람 털을 내놓아라."
그러자 작은 제비는 못 주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게 싸우니 제비들이 계속해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 경태는 다시 궁으로 들어가 임금 앞에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임금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오십 척 사람의 털이라는 게 어디 있겠느냐. 네가 지금 바른대로 말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바른대로 말한 거라면 네가 가서 그 오십 척 사람의 털을 구해와라. 구해오지 못하면 과인 앞에 거짓을 고한 죄로 네 목을 치겠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목을 친다는 말에 경태는 기가 막혔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구하든 못 구하든 시간을 끌려는 마음에 일 년 말미를 달라고 하고 궁에서 나왔다.
- 궁을 나와 경태는 다시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저녁,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어디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남자 셋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한 남자가 말했다.
“우리는 사냥꾼 형제인데 보배 세 가지를 얻어 셋이 하나씩 나눠가지려 했으나, 큰형이 혼자 다 가지겠다고 해서 싸우고 있는 중이오.”
"무슨 보배를 얻었소?"
"하나는 능수관이라는 것인데 머리에 쓰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또 하나는 팔모장이라는 지팡이인데 그걸로 겨누기만 하면 태산이라도 사라지오. 다른 하나는 인수헤라는 신발인데 그걸 신으면 용궁을 드나들 수 있소."
“그거 참 좋은 보배구려. 그럼 싸우지 말고 내 말대로 하면 어떻겠소? 이 보물을 여기에 두고 백 보 밖으로 간 다음 셋 중 가장 먼저 여기까지 달려오는 사람이 차지하는 거요."
사냥꾼 형제들은 좋은 생각이다 하고는 보물을 내려놓고 백 보 밖으로 향했다. 형제들의 모습이 멀어지자마자 경태는 관을 머리에 쓰고 인수혜를 신고 팔모장을 들었다. 형제들이 뛰어와 보니 보물은 간 곳이 없고 사람 역시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형제들은 순전히 형이 혼자 차지하려고 했던 탓에 보물을 도둑맞았다고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 "나는 용왕의 딸 계월 아가씨의 이부자리를 봐주는 시비라 지금 용궁으로 가려는 걸세."
경태는 용궁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노인을 붙잡았다.
"어르신, 저도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용궁에는 보통 사람은 못 가고, 가려면 인수혜라는 신발이 있어야 하는데."
- "그 소원이 무엇이냐?"
"저를 사위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면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용왕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 싶어 그러마 대답했다. 그러자 경태가 관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용왕이 보니 자태가 말쑥하고 얼굴이 희멀건 것이 앞으로 인간의 왕이 될 관상인 것이었다. 마음이 기꺼워 그는 당장에 택일을 하고 딸과 경태를 혼인시켜 사위로 삼았다.
- 지상에 돌아간 경태는 곧장 궁궐로 향했다.
"오십 척 사람의 털을 구해왔습니다.”
왕이 보니 경태가 데려온 처자 계월이의 머리 길이가 오십 척인 것이었다. 그런데 용왕의 딸이니 만큼 계월이는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왕도 한눈에 계월이한테 반하여 경태에게서 빼앗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는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다.
"부인을 궁에 두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사흘 후에 데려가거라."
경태는 기가 막혔으나 왕의 명령이라 대놓고 거부할 수도 없어서 결국 아내를 두고 궁을 나갔다.
왕은 병사들을 경태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보내 그를 잡아 죽이라고 시켰다. 병사들은 한밤중에 몰래 그 집을 습격하여 그를 붙잡아 꽁꽁 묶어 끌고 가려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습격에 경태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으나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 쾅쾅 떨어지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놀라서 그를 내동댕이치고 사방으로 도망쳤다.
벼락 구름 사이에서 오색의 빛이 나더니 용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아침에 천자가 너를 다시 부를 테니, 사신이 오거든 네 능력을 발휘하여 일을 처리하여라."
경태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사신을 기다렸다.
- 날이 밝자 아니나 다를까 사신이 와서 왕이 부른다는 전갈을 전했다. 경태는 얌전히 따라가다가 궁궐 문 바로 앞에서 능수관을 꺼내 쓰고 모습을 감춘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에는 그가 들어오자마자 죽이려고 전후좌우로 궁수를 수백 명을 매복해놓고 있었다. 경태가 팔모장을 꺼내 궁수들을 가리키자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다음 안으로 들어가서 왕이 있는 용상 뒤로 가 팔모장으로 겨누자 왕 역시 용상에서 싹 사라져 삼천팔백리나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궁수들을 없애고 왕까지 사라졌으니 신하들은 그가 자신들을 어떻게 할까 봐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그가 빈 용상에 앉아 호령하자 신하들은 전부 다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 경태는 계월이를 데려와 왕후로 봉하고 정승판서들을 전부 다 청렴하고 올바른 사람들로 바꾸고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고 한다.
- 어느 마을에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착했다.
어느 날 그가 고기잡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장사꾼 한 사람이 고기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숭어 한 마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워낙 불쌍해서 어부는 결국 가진 돈을 전부 내고 숭어를 사고 말았다.
"다시는 잡히지 말아라."
그는 숭어를 바다에 풀어 준 다음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고기잡이를 하려고 바닷가에 나간 그의 앞에 갑자기 곱게 생긴 소년이 하나 나타나서 말했다.
"저는 어제 귀공께서 살려 주신 그 숭어입니다. 실은 저는 용왕님의 아들로 잠시 산책을 나왔다가 그런 변을 당했는데, 귀공 덕분에 ... "
- 생김새는 물론 언행이며 예절에도 어디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으나, 시험도 해 보지 않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부자는 하인에게 지필묵과 활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우선 운을 맞추어 시를 지어보게."
조부자는 딸과 청포동자 둘에게 시를 짓게 하자 두 사람은 대구가 꼭 어울리는 시를 썼다. 조부자는 흡족하여 이번에는 활을 쏘게 시켰다.
"저기 날아가는 갈매기를 맞추어 보게.”
그러자 청포동자는 활을 쏘자 햇살을 뚫고 날아가는 갈매기를 정통으로 맞추어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조부자는 신통한 청포동자의 능력에 감탄하여 그를 사윗감으로 삼기로 마음먹고 초아흐렛날 혼사를 하기로 택일까지 한 후 돌려보냈다.
- 그런데 다음 날 이번에는 황포를 입은 청년이 찾아와 사윗감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 사윗감을 결정했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황포귀인 역시 신수가 훤한 귀공자라 조부자는 내심이 욕심이 생겼다.
"소인은 황운이라고 하온데 삼십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해 배필을 찾고 있던 중이옵니다."
"여봐라, 필묵과 활을 내오너라."
조부자는 청포동자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했다. 그런데 황포귀인의 능력에 펄쩍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청포동자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은 실력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고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청포동자에게 이미 사위로 삼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택일까지 해둔 터였으나 황포귀인를 포기하는 것도 속이 쓰린 일이었다. 그는 청년을 돌려보낸 다음 고민에 잠겼다.
- 사윗감 문제를 놓고 잠도 못 자고 엎치락뒤치락 고민을 하다가 새벽녘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에 그가 딸을 얻으려고 빌었던 옥녀봉의 여선이 나타났다.
"조 노인, 들으시오. 당신이 만난 청포동자와 황포귀인은 사람이 아니라 요물이오."
- "그들에게서 무사히 벗어나려거든 내가 일러주는 대로 하시오. 초아흐렛날 청포동자가 찾아오거든 이 붉은 종이를 내보이고, 황포귀인이 오거든 큰 개 한 마리를 준비해 두었다가 놓아주시오. 그러면 요물들은 탈을 벗고 죽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요물들을 처치한 다음 보름날에 남루한 걸인이 한 사람 찾아올 것인데, 그를 사위로 맞으시오."
꿈에서 깬 조부자는 손에 들려 있는 붉은 종이를 보고 꿈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초조하게 초아흐렛날을 기다렸다가 백마를 타고 들어오는 청포동자를 맞았다.
- 청포동자는 빨간 종이를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며 한 마리 커다란 지네로 변했다. 청포동자가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황포귀인이 흑마를 타고 찾아왔다.
"장인어른께 문안 인사드리오."
"닥쳐라, 이 몹쓸 요물 같으니!"
조부자의 불호령에 황포귀인 역시 깜짝 놀라서 새파랗게 질렸다. 조부자는 바로 하인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에 개를 풀어라!"
"개라고요?"
황포귀인 개라는 소리를 듣자 당황했다. 사슬에서 풀린 개는 멍멍 짖으며 황포귀인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고 늘어졌다. 황포귀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곧 늙은 노루로 변했다.
옥녀봉의 여선이 아니었더라면 애지중지 기른 딸을 요물들의 먹이로 내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부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며칠 후, 꿈에서 들은 대로 보름날이 되자 남루한 차림새의 거지가 찾아왔다. 조부자는 그를 안으로 들여 배불리 먹인 다음 자신의 사위가 되어달라고 말했다. 거지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천한 거지를 사위로 삼으시겠다니요."
"사람의 운수는 용모가 잘나고 못난 것으로 판단할 수 없는 걸세. 내 자네가 비범하다는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다네.”
- 영종도 백운산에 용궁사라는 절이 있다. 이 용궁사에는 절을 지켜 주는 돌부처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 돌부처의 유래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종도에 손씨라는 아주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부의 살림은 궁핍했지만, 착하고 성실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그는 유일한 재산인 조그만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 근근이 먹고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가 어느 해 음력 사월이 되었다. 음력 사월이면 어부들은 모두 근처의 연평도로 고기를 잡으러 가곤 하는데 손씨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출어를 했다. 조기가 한참 몰릴 때라 군데군데서 그물을 드리우고 손씨는 기대에 부풀었다. 조기가 많이 잡히면 한동안 먹고살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물을 끌어올리려고 보니 여간 묵직한 것이 아니라 손씨는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끌어올렸다.
- 손씨에 얽힌 이야기 말고도 용궁사의 돌부처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평암 근처에는 활을 쏘며 노닥거리는 한량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한 한량이 바위 위에 돌부처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장난 삼아 그쪽으로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돌부처의 오른팔에 명중하여 팔이 뚝 떨어졌는데 놀랍게도 떨어진 팔이 그 즉시 도로 붙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붙은 오른팔에는 조그만 약병이 들려 있었다. 돌부처에 활을 쏘았던 청년은 그 자리에서 이유 없이 즉사했다고 한다.
-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돌부처의 소문이 퍼지자 백운산 밑 용궁사에서 스님이 와서 이 부처를 용궁사로 다시 모셔다 놓았다. 부처를 용궁사에 모신 후로 용궁사를 지나갈 때면 소나 말을 탄 사람은 내려서 걸어가야 했으며 담뱃대를 물고 가지도 못했다. 만약 소나 말을 타고 그냥 지나가려고 하면 발굽이 땅에 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으며, 담뱃대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은 담뱃대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영험한 돌부처의 소문이 퍼지자 이 용궁사를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예의를 갖췄고, 돌부처가 들고 있는 약병의 약으로 별별 희귀한 병도 다 고쳐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영험하던 돌부처는 약탈당해 사라졌지만, 용궁사는 여전히 영종면의 유서 깊은 절로 남아 있다.
- 울릉군 태하동 동사무소에서 백 미터 가량 올라가면 아담한 기와집이 있다. 바로 동남동녀 童男童女의 혼백을 모셔놓은 성황당으로, 이 성황당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시대에는 울릉도가 강원도 관할이었으며, 울릉도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공도 정책이 있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3년에 한 번씩 관리들이 이 섬에 와서 사람이 살고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하여, 사람이 살면 잡아갔다고 한다.
하루는 강원도의 원님이 조사차 큰 배에 부하들을 태우고 울릉도로 와서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조사를 했다. 섬을 샅샅이 뒤진 끝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고 파도가 높게 일어 배를 띄울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원님 일행은 태하에 머무르며 파도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으나, 며칠이 되어도 날씨는 개이지 않았고 점차 먹을 것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 "이제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사또."
아랫사람들이 당황해서 원님을 붙들고 말하자 원님은 태연한 것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날씨야 곧 개게 마련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하지만 벌써 한 달째입니다. 아무래도 용왕님께서 노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뭔가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힘에 대해 원님이 무슨 수로 조치를 취하겠는가.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 갔다. 원님이 보기에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힘세고 성질 급한 부하들이 아무래도 먼저 달려들 것만 같았다. 특히 먹을 게 다 떨어지고 나면 헤엄을 쳐서라도 가겠다고 폭동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고민하던 끝에 원님이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수염이 하얀 노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이 본토에 무사히 가려거든 동남동녀를 여기에 두고 가거라."
- 원님이 놀라서 일어나니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걱정을 하다 보니 헛꿈을 꾸었나 보다 하고 원님은 그 이야기를 잊었다. 다음 날 날씨가 개고 파도가 조금 잔잔해지는 기미가 보여 원님은 배를 띄우라고 명령했다. 부하들도 신이 나서 배를 띄웠으나 올라타고 출발하려고 하자, 그때까지 잠잠하던 바다가 갑자기 요란하게 성을 내며 날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나가도 배가 파손될 것 같아 사람들은 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 "이런, 담뱃대를 놓고 왔구나. 중요한 담뱃대이니 너희 둘이 가서 가져오너라."
원님이 젊은 남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남녀는 원님의 심부름이니 아무 의심 없이 배에서 내려 원님이 마지막으로 들렀다 온 큰 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원님이 배에 올라타고 외쳤다.
"닻을 올려라!"
부하들이 놀라서 쳐다보자 원님이 다시 외쳤다.
"당장 닻을 올리고 여기서 떠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뱃사공들은 두 사람을 남겨놓고 간다는 사실에 놀라서 머뭇거렸지만, 원님의 서릿발 같은 호령에 별 수 없이 닻을 올리고 배를 띄웠다. 그러자 거칠던 바다가 잠잠해지고 순풍이 불어와 배가 쑥쑥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 한편 담뱃대를 가지러 갔다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배로 돌아오고 있던 처녀 총각은 배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손을 흔들며 달려왔으나 배는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우리를 놔두고 가면 어떡합니까! 사람 살려요!"
그들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울부짖었으나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원님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삼켰다. 수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 두 남녀가 희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미안한 마음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 마침내 그들은 무사히 강원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원님은 계속 남겨 두고 온 그 두 사람의 안위가 신경이 쓰여 결국 다음 해에 순찰을 명목으로 다시 울릉도로 가는 배를 띄웠다.
배를 타고 두 남녀가 마지막으로 울부짖고 있던 자리로 가 보니 두 사람이 꼭 끌어안고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살아있었구나!"
원님이 감격해서 달려가 두 사람의 몸에 손을 댔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은 갑자기 풀썩하고 옷만 남기고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남녀는 추위와 공포, 두려움 속에서 둘이 꼭 안은 채로 죽고 말았던 것이다. 원님은 그것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하였다. 원님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그 자리에 작은 사당을 짓고 그들이 입고 있었던 옷을 걸어놓고 제사를 지낸 후 본토로 돌아왔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태하 성황당이다. 그 후로는 해마다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두 차례 제사를 지내며 어로의 풍성과 해상작업의 안전을 빌고 있다. 또 울릉군민이라면 누구나 새로 지은 배를 진수시킬 때 이곳 성황당에 와서 제사를 지내며 선박의 안전을 빈다.
지금도 성황당 안에는 석고로 만든 동남동녀상이 있고 색이 고운 남녀 한복이 제물로 여러 벌 바쳐져 있다.
- 부산 서면 로타리에서 조금 떨어진 당감동 뒷산 백양산 중턱에 자리 잡은 조그만 고찰 선암사는 신라 성덕왕 말기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360년 전에 다시 지어졌는데, 처음 창건된 것은 서기 675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선암사는 산기슭에 있지만 신라 때에는 파도가 바로 앞까지 밀려오는 동평현에 있었다고 한다.
- 주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옷을 입고 바닷가로 나갑시다."
주지가 앞장서서 바닷가로 향했다. 현령은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주지의 뒤를 따라 어두컴컴한 바닷가로 나갔다. 물 위에는 조그만 배 한 척이 둥둥 떠 있었다.
"저 배를 타시오."
주지의 말에 현령은 같이 가자고 주지를 붙잡았으나, 그는 현령을 떠밀며 말했다.
"혼자 가시오."
그리고는 현령이 올라탄 배를 밀었다. 깜짝 놀라 현령이 눈을 뜨는 순간, 그는 우리나라 동평현, 그것도 자기 집에 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선암사의 영험함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 신안군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거도에서는 풍어 기원제라는 큰 행사가 열린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초가 잘 자라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인 것이다.
- 고기를 잡을 때 어부들은 몸을 단정하게 하고 최대한 공을 들였다. 부정하거나 불결한 짓을 하면 용왕님의 노여움을 사서 고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부정이나 불결한 것을 막는 것을 소삽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배에든지 풍어기 豊漁旗를 걸게 마련이다. 풍어를 기원하는 이 깃발은 출항할 때마다 하나씩 만드는데, 그러다 보니 풍어기는 계속 남아돌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이 풍어기로 아이들의 옷을 해 입히면 아이가 복을 탄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 어느 선주가 손자에게 풍어기를 이 이용하여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손자가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다. 선주는 가슴이 아파서 여섯 살 난 아이에게 풍어기로 만든 옷을 입혀 장례를 지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선주가 멸치잡이를 하러 나갔는데, 밤에 멸치 떼들이 그 배 앞으로 오기만 하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색으로 된 고기떼가 몰려와서 멸치들을 다 쫓는 것이었다.
몇 번을 똑같은 일을 겪은 선주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점쟁이에게 점을 치러 갔다. 점쟁이는 점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풍어기를 부정한 데에 써서 그런 것입니다."
선주는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죽은 손자에게 풍어기로 만든 옷을 입혀 묻었기 때문에 그런 건가 하고는, 무덤으로 가서 아이의 옷을 파냈다. 파내고 보니 풍어기는 멸치 떼를 쫓아버린 물고기와 똑같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색으로 되어 있었다.
- 선주가 풍어기로 만든 옷을 없앤 다음부터는 다시 고기가 잘 잡혔다고 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풍어기를 부정한 곳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 어부들은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한 다음, 관음보살을 외면서 배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배는 거침없이 나아가 어느새 고향 항구 앞에 이르렀다. 항구가 보이자 어부들은 이제 살았구나 싶어서 관음보살을 외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자 홀연히 폭풍이 불어 배가 다시 외눈박이 나라로 쏜살같이 밀려가는 것이었다. 어부들이 놀라서 서로 껴안고 울부짖자 허공에 영등대왕이 나타났다.
"내가 뭐라고 했느냐! 관음보살을 부르며 가라고 하지 않았더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대왕님. 제발 한 번만 다시 살려 주시옵소서."
어부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걸하자 영등대왕은 다시 뭍에 이를 때까지 관음보살을 외며 가라고 시켰다. 그리고서 덧붙였다.
"그리고 영등달 초하룻날에는 나를 생각해라."
어부들은 겨우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외눈박이들은 영등대왕이 자신들의 먹잇감을 가운데서 가로채 무사히 돌아가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화가 나서 그에게 화풀이를 했다. 영등대왕을 세 토막 내어 죽인 것이었다.
- 그의 시체는 바다에 버려져서 머리는 제주도 동쪽 소섬에, 사지는 한수리에, 몸체는 성산에 올랐다. 도민들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죽지 않도록 구해 준 영등의 혼을 위하여 소섬에서 2월 초하룻날부터 보름간(지금은 3일로 줄었다) 영등제를 지낸다. 이때가 되면 모두가 일손을 멈추고 빨래조차 하지 않는다. 이때 농사를 지으면 흉작을 면치 못하고, 빨래에는 구더기가 생긴다는 말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 집으로 돌아온 이진수는 여자가 준 고기는 감추어두고 아내와 딸 낭간에게 그동안 자기가 다녀온 용궁에 대해 이야기했다. 용궁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과 천 년을 살 수 있는 약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자들과 화려한 보물들에 대해서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들려줬다.
그 후 이진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시 고기잡이를 하러 다녔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 혼자 있던 어린 딸 낭간이 그가 숨겨놓은 인어고기를 발견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기를 혼자 먹으려고 숨겨놓으셨나?"
낭간은 그 고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부 다 먹었다.
- 세월이 지나 이진수 부부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었으나, 인어고기를 먹은 낭간은 날이 갈수록 아름다움을 더해서 마침내는 평양부중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되었다. 낭간의 소문은 평양부중에 널리 퍼져 뭇 총각들이 그녀를 사모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를 한 번 보기 위해 집 앞까지 찾아오는 총각들도 부지기수였다. 이진수 부부는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낭간을 좋은 집에 시집을 보내려고 적당한 총각을 찾았다. 그런데 누가 퍼뜨린 것인지 묘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낭간은 인어고기를 먹은 요부다. 그녀에게 접근했다가는 제명을 못 채우고 죽고 말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돌자 낭간을 보러 오는 총각은 있어도 청혼하여 아내로 삼겠다는 사람은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이진수 부부는 걱정을 하며 적당한 남편을 찾아 주려고 노력했으나 어떤 집도 반기지 않았다.
결국 아름다운 딸자식만을 남긴 채 부부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 혼자 남은 낭간은 큰 결심을 했다.
"어차피 한 남자의 아내가 되지 못할 몸이라면 뭇 남자들을 상대하며 살겠다."
그녀는 평양부중으로 나와서 남자들을 차례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상대한 남자들은 정기를 빨려 비실비실 앓다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하나씩 죽어간 남자들의 수가 삼천 명에 이르렀고, 그동안 낭간은 조금도 늙지 않고 이팔청춘의 아름다운 미모와 건강을 유지했다. 그것이 백 년에 이르렀다.
- 나이 백이십 살이 된 낭간은 마침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죄의 사함을 받으려고 비구니가 되었다. 그녀는 모란대 옆에 작은 암자를 세우고 매일 기도를 올렸다. 삼십 년간 기도를 올린 후, 그녀는 자신에게 정기를 빨리고 죽은 남자들의 혼을 성불시키기 위해서 전국의 영지와 영산을 참배하며 방랑의 길에 올랐다.
- 오랜 세월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서 다시 평양 모란대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나이는 이백 살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어고기 때문인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했다. 다행히 그 무렵에는 낭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평양에 아무도 남지 않았고, 그저 암자에 젊고 아름다운 비구니가 살고 있다는 소문만 퍼졌다. 평양부의 남자들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알지 못한 채 또다시 암자 근처를 서성거리며 그 아름다운 비구니의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애를 끓였다. 이렇게 되자 낭간은 더 이상 세상 남자들을 괴롭혀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영명사 경내에 아기를 낳게 해 주는 석탑이 서 있는데, 그 석탑이 바로 비구니 낭간이 모란대에 남겨놓았던 탑이라고 전해진다.
- 그 후로 다시는 해적선이 나타나지 않아, 삼도 뱃사람들은 안심하고 웅천이나 울릉도 등지를 떠다니며 고기잡이와 교역을 하게 되었다. 동도 죽촌 마을 뒤 개천의 돌다리는 오돌래가 들어다 놓았다 하여 '오돌래 돌다리'라고 부른다. 지금도 삼도에서는 힘세고 의리 있는 사람을 일컬어 '오돌래 같은 장사'라고 부른다.
-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율곡이 그러겠다고 하자 아이가 말을 이었다.
"저는 실은 동해 용왕의 왕자입니다. 선생님의 학문이 그리 높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왕께서 선생님한테 가서 글을 배우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공부를 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용궁에 가서 부왕께 무엇을 배웠는지 말씀드리고 안부를 여쭙고 오고 있습니다."
율곡은 자신의 명성이 용궁에까지 알려졌다는 사실에 놀라고 기뻐서 우쭐해졌다. 그래서 아이에게 대담하게 청했다.
"얘야, 나도 용궁 구경을 한 번 해 보고 싶구나. 나도 따라갈 수 있겠느냐?"
"그것은 제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고, 부왕께 여쭈어 봐야 합니다."
아이는 곧장 용궁으로 돌아가서 용왕에게 율곡의 청을 이야기했다. 용왕은 아들의 선생이 온다는 사실에 반색을 하고 어서 모셔오라고 했다.
- 율곡이 아이를 따라가니, 아이가 연못에 풀잎 하나를 던졌다. 그러자 물이 쫙 갈라졌다. 연못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기기묘묘한 화초들이 만발하고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가운데에 화려한 대궐이 있었다.
용왕은 율곡을 반겨 맞았다.
"자식을 맡긴 몸으로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이 몸을 용서하시오. 여기서 성에 차는 만큼 구경하고 돌아가시게."
율곡은 아름답고 화려한 용궁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즐겼다. 용왕은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해 주었고, 율곡은 대단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가 용궁을 떠날 때가 되자, 용왕은 그에게 먹이 마르지 않는 신비한 벼루를 선물로 주었다.
- 다시 아이를 따라 용궁을 나오는 길에 율곡은 궁궐 안뜰에 호랑이 일곱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호랑이는 제각기 목에 패를 걸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건 패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의아해서 그는 용궁을 나온 다음 아이에게 물었다.
"용궁 앞에 호랑이가 몇 마리 있던데, 그중 한 마리가 내 이름이 쓰인 패를 달고 있더구나. 그것은 무엇이냐?"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정말로 확실히 선생님의 이름이 있었습니까?"
"그래, 그게 대체 무어냐?"
"그것이 실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팔자라는 의미입니다."
율곡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놀라서 아이를 붙잡고 사정했다.
"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팔자라니, 그게 정말이냐? 어떻게 모면할 방법이 없겠느냐?"
"그게 어렵습니다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듣고 그대로 따르셔야 합니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 길로 집으로 돌아가신 다음에 밤나무를 심으십시오. 집이 안 보일 정도로, 몇 해고 하루도 빠뜨리지 말고 계속 심고 가꾸십시오. 모년 모월 모일에 호랑이가 선생님의 댁으로 찾아갈 겁니다. 하지만 밤나무가 집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으면 들어가지 못할 테니 아마도 화를 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율곡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주위 사람들을 동원하여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밤나무는 쑥쑥 자라 율곡의 집 주위를 장벽처럼 둘러싸서 사람 한 명도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으나, 율곡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무를 심고 가지 한 번 자르지 않고 잘 키웠다.
마침내 몇 년이 지나, 아이가 말했던 그날이 되었다. 대낮부터 어디선가 호랑이가 한 마리 나타나 율곡의 집 주변을 빙빙 돌고 요란하게 울부짖으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덤볐다. 하지만 빼곡한 밤나무에 가로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흥 어흥' 소리를 질러댔다.
밤이 되고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그치자 율곡은 등불을 들고서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보니 빼곡한 밤나무 사이에 분을 못 이겨 죽은 호랑이의 시체가 있었다.
그 후 율곡은 화를 면할 방법을 미리 알려준 용왕의 아들과 호랑이를 막아 준 밤나무를 기리는 의미에서 자신의 호에 '율'자를 넣었다고 한다.
- 옛날 중국 진시황 때의 이야기이다.
진시황이 동쪽을 바라보니 탐라국의 산세가 장수와 명인이 많이 나는 아주 좋은 혈맥인 것이었다. 큰 장수와 학자들은 무릇 대국에서 많이 나야 하는데 탐라국 같은 곳에 이런 혈맥이 많으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그는 혈맥을 몽땅 막아 장수도 명인도 나오지 못하게 막기로 마음먹고 고종달을 불렀다. 고종달은 지리에 아주 밝은 지관으로 어떤 종류의 지리든 다 알아볼 수 있었다. 천자는 그에게 탐라국으로 가서 장군혈, 명인혈, 물혈 등 혈이란 혈은 다 막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고종달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배를 타고 며칠이나 걸려 제주도의 종다리라는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그는 자신이 맞게 왔는지 궁금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여기 마을 이름이 무엇이오?"
"종다리!"
- 농부는 그것을 보고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크고 오랫동안 살고 있는데, 그런 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소."
그때 고종달이 데리고 다니는 개가 길마 밑으로 가서 냄새를 킁킁 맡는 것이었다. 농부는 돌멩이를 집어던지며 외쳤다.
"이 못된 놈의 개야! 내 점심밥을 훔쳐먹으려고 거기로 들어가는 게지? 이놈, 이놈!”
그가 계속 돌멩이를 던지자 깜짝 놀란 개는 황급히 도망을 쳤다. 농부의 말에 고종달은 참 이상하다 하고는 책을 살폈다.
"이 책에는 틀림없이 여기에 고부랑 나무 아래 행기못이 있는 걸로 되어 있는데, 없다 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아무래도 이 책이 맞지 않는 모양이야."
그리고서 그 책을 불사르고는 생수혈을 막는 일을 그만두었다. 고부랑 나무라는 것은 실은 나무로 된 길마를 이르는 것이고, 행기못이란 행기(놋그릇)에 담긴 물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고종달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농부에게 와서 몸을 숨겨달라고 했던 푸른 옷의 동자는 바로 그 물의 수신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 그 이래로 그곳을 행기못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현재는 제주도 화북에 있는 샘물이다. 지금 제주도에 종다리 마을부터 행기까지 생수가 나는 곳이 없는 이유는 당시 고종달이 행기까지 찾아가며 혈을 다 막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행기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혈을 막지 못해서 지금도 물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 혈 막기를 그만둔 후, 고종달은 제주도 서쪽으로 한참 더 가다가 하루는 배가 고파서 어떤 집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밥이 있으면 한 그릇만 주시오."
하필 그 집은 가난한 집이라 쌀은 없고 보리만 있었다. 집주인은 그래도 손님이랍시고 보리쌀을 긁어모아 밥을 해서 가득 퍼주었다. 고종달은 배부르게 먹은 다음 주인을 보고 말했다.
"당신 안색을 보아하니 근간에 상을 당했구려. 내가 배부르게 밥을 얻어먹었는데 보답할 건 없고 하니 묏자리를 봐주겠소."
그는 집주인을 데리고 남제주군 남원면으로 향했다. 거기는 반젓깃밧이라고 해서, 제주도에서 육대 명당자리로 이름난 곳이 있다. 고종달은 딱 그 자리로 가더니 큰 바늘을 꽂고 상주에게 말했다.
"이것을 꼭 밟고 가만히 서 있으시오. 나는 저리 가서 맥을 밟아올테니 가만히 꼭 밟고 있어야 하오. 설령 발이 저려 견딜 수 없다 해도 꾹 참으시오. 그래야 복이 올 것이오."
그리고는 저쪽으로 가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 상주는 고종달이 말한 대로 바늘을 꼭 밟고 있으려고 했으나 점차 발이 간지럽고 저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발을 살짝 떼는 순간 발밑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가는 것이었다. 고종달이 황급히 달려와서 말했다.
"발을 들지 말라고 했는데 어째서 발을 든 것이오! 이 자리는 본래 만석꾼 자리인데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가는 바람에 천석을 잃어 구천석밖에 얻지 못하게 되었소."
그리고는 고종달은 혀를 차고 떠났다.
이 자리에 묘를 쓴 사람은 광주 김씨인데, 원래 아주 가난한 집안 ...
- 허미수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용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가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가 살던 옆 마을에는 이상한 풍습이 하나 있었다. 산 안쪽의 굴에 젊은 처녀를 한 사람 데려다 놓고 제를 지내야 마을이 평화롭고 안정된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렇소?"
"그 굴에 커다란 구렁이가 사는데, 마을에 해를 입힐 게 분명하니까 처녀를 바쳐서 진정을 시키려는 게요."
"그런 제라면 나도 가서 구경해도 되겠소?"
허미수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 제를 지내는 날이 되자 허미수는 동생을 데리고 동굴 앞으로 갔다. 마을 사람들은 떡 벌어지는 상을 차려놓은 다음 젊은 색시를 제물로 데려다 놓고 제를 올렸다. 허미수는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동생과 함께 한쪽 옆에 숨어서 가만히 동굴을 보았다. 한참 기다리니 동굴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구렁이가 슬슬 기어 나와 상을 통째로 삼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는 겁에 질려 울다가 실신을 했고, 구렁이는 상을 다 삼킨 다음 처녀에게로 슬그머니 다가가기 시작했다.
- 동생은 잘 드는 낫을 꺼내 구렁이를 찌르고 토막토막 잘랐다. 구렁이는 끝까지 몸을 꿈틀거리다가 마침내 죽었다. 두 사람은 제물로 바쳐졌던 처녀를 구해서 마을로 돌아왔고, 동생은 구렁이의 시체를 땅에다가 잘 묻었다.
그 뒤로 이상하게도 아침에 나와 보면 구렁이를 묻은 자리에서 무지개처럼 오색 기운이 뻗어 나오는 것이었다. 동생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죽은 구렁이가 무슨 해를 끼치랴 싶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동생은 혼인을 했고, 부인은 금세 아이를 가졌다. 태어난 첫 아이는 눈이 또록또록하고 인물이 훤했다. 동생은 형님 허미수를 찾아갔다.
"형님,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좀 지어 주십시오."
허미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동생을 보았다.
"그 아이는 아무래도 키워서는 안 되겠다. 없애거라."
- "몹쓸 아이니 죽이라는 거다. 내 말을 따르거라."
동생은 기가 막혔으나 형님이 워낙 용한 신통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지라 집으로 돌아가 부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부인은 오랜 고민 끝에 허미수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두 사람은 첫 아이를 죽였다.
얼마 후 부인은 다시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이목구비가 준수하고 똘똘해 보이는 아이였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생각하고 동생은 다시 형님을 찾아갔다.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는 이름을 좀 지어 주시지요."
- "이번 아이까지 없애야 신상에 이로울 것이야."
동생은 기가 막힌 채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서 부인에게 형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부인이 화를 왈칵 냈다.
"낳는 족족 아이를 죽이면 도대체 어떡하란 말씀이십니까!"
동생도 부인의 말이 맞다 싶어서 다시 형에게로 돌아가서 말했다.
"집사람과 의논을 했는데, 이번에는 절대로 죽일 수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그러면 너와 나는 형제의 연을 끊어야겠다."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네가 구렁이를 죽인 다음에 그 시체를 싹 태워 없애지 않고 묻어줘서, 구렁이의 넋이 네 아이가 태어나는 족족 달라붙고 있는 것이다. 네가 그대로 아이를 키우면 자라서 결국에 역적이 될 것인데, 역적이 되면 삼족이 멸하니 나는 일찌감치 너와 형제의 연을 끊어 화를 피해야겠구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동생은 형제의 연을 끊기로 하고 자리를 떨치고 나왔다.
그러나 훗날 정말로 아이는 역적이 되었고, 집안이 전부 다 멸하는 와중에 허미수만 유일하게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해남 마산면 사람들은 누구나 선조 중에 수궁(水宮, 용궁) 벼슬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말한다. 선조들의 인문이 그만큼 높았음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이다.
- 원주 이씨 계보를 보면 이진원 李振原이라는 사람이 있다. 숙종 병진년(1676년) 생으로 첨지중추부사까지 올랐고, 양반인데도 의학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어느 날 진원이 정자나무 아래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안 보고도 아는 신통력이 있다는 것을 시험해 보고자 했다. 마침 저쪽에서 한 사람이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저 광주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오?"
누군가가 묻자 진원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밤이다."
"그러면 몇 알이나 들었소?"
"예순넷이다."
- 사람들은 아낙이 인 광주리를 내리게 하고 안을 살폈더니 정말로 밤 예순네 알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진원에게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
"그대들이 광주리 속을 물을 때 까마귀 한 마리가 서쪽 나무에 앉았다. '서녘 서'자에 '나무 목' 이면 '밤'이 아니겠는가? 또한 몇 알이냐고 물으니 까치가 날개를 팔팔 치며 날아갔다. 팔팔은 육십사이니 예순네 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 재주가 아니라 까치의 재주다."
- 하루는 그가 집에 있는데 어느 부인이 죽기 직전의 상태로 실려왔다. 그가 부인의 배를 여니 창자 한 토막이 부족한 것이었다. 마침 마당에 개 한 마리가 있어 그 창자를 꺼내 부족한 것을 채우니 부인이 멀쩡하게 나아서 돌아갔다.
- 그러던 어느 날, 이 세상에서는 보기 드물게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종자를 데리고 와서는 진원을 뵙기를 청했다. 진원은 그들을 큰 사랑으로 인도했으나 한시가 급하다며 올라서지도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진원은 이상하다 싶어 우선 찾아온 사연이나 듣자고 했다.
"저희는 수궁에서 온 사자입니다. 선생께서 용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왕님의 명을 받자와 수궁에 모셔가려고 왔습니다. 부디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진원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나는 육지 사람인데 어떻게 수궁에 가며, 또 간다 한들 내가 어찌 수중의 소임에 답을 할 수 있겠소?"
- 신숙주는 조선 초기 학자이자 정치가로 세종 때부터 무려 일곱 임금을 모셨고, 당대 가장 뛰어난 문장가이자 저술가로 빛나는 업적을 수없이 많이 남긴 인물이다. 그에 관한 일화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평생 옆에 붙어 있었다는 청의동자 이야기이다.
그가 젊었을 때 경복궁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갔는데, 대궐문 앞에 갑자기 이상한 빛이 돌더니 커다란 괴물이 입을 딱 벌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신숙주가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며 지켜보고 서 있으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은 제가 잠시 조화를 부린 것입니다."
"너는 누구냐?"
신숙주가 호령하자 동자가 고개를 숙였다.
"공을 뵈오니 앞으로 귀히 되실 상을 타고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생 공을 모시고자 합니다."
- "이렇게 바람이 부는데 돛을 올려도 괜찮겠느냐?"
"제가 어찌 못할 일을 하라 하겠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오."
그래서 신숙주는 사공들에게 당장 돛을 도로 올리고 배를 서쪽으로 돌리라고 말했다. 사공들은 날이 이렇게 험한데 어떻게 돛을 올리겠느냐고 반문했지만, 신숙주가 서슬이 퍼렇게 호령하자 별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돛을 올리자마자 바람이 그치고 흔들리던 배가 요동을 그쳤다. 통신사를 비롯하여 수하들과 선원들 모두가 이 일에 놀라서 멍하니 서 있었지만 신숙주는 별 일 아닌 듯이 태연하게 선실로 도로 들어갔다. 그 이래로 신숙주와 청의동자 이야기는 널리 퍼졌으나 배에 같이 있던 사람 중에서도 청의동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청의동자의 말을 따라 건너갔던 물길은 그 후로도 누구든지 그대로 가기만 하면 무사히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 성종 6년에 신숙주는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임종을 깨달은 그는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으니 유언을 남기고자 한다."
"아버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꼭 건강해지실 겁니다."
신숙주는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망설이다가 청의동자에게 물었다.
"동자야, 내가 더 살 방법은 없겠느냐?"
그러자 머리맡에서 울먹이는 동자의 음성이 끊길 듯 말 듯 나직하게 들려왔다.
"사람의 명은 본래 하늘이 정하시는 것, 저 같은 일개 동자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신숙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청의동자도 내 뒤를 따라올 게 분명하니, 제를 지낼 때마다 잊지 말고 반드시 청의동자를 위해 한 상을 더 차리고 극진히 예를 차리거라."
- 그 후로 신숙주의 자손들은 제를 지낼 때면 또 한 상을 차려 청의동자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경기도 양주군 시둔면 송산리, 빽빽한 소나무 숲 속에 오래된 묘가 남아 있는데, 그 비에는 조선 칠대 왕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라고 쓰여 있다. 그 산소 곁에 또 하나의 자그만 묘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청의동자의 묘라고들 한다.
- 영덕군 병곡면에는 '거무역리' 마을이라는 있다. 이것은 고려 원종 때 붙은 이름인데, 이 마을은 부역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부역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시중 박세통 朴世通의 삼대 가족이 여기에 살고 있었던 탓인데,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박세통이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가 안렴사로 있던 동해안 마을에 어느 날 거북 같이 생긴 커다란 괴물이 조수를 타고 밀려들어왔다가 조수가 빠지는 바람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민들은 흉측한 모양새를 보고 괴물이 나타났다고 떠들며 이를 잡아 솥에 넣어 삶으려고 하였다. 이때 박세통이 웬 소란인가 하여 나왔다가 거북의 배에 '임금 왕국'자가 그려진 것을 보았다.
"모두 법석을 그만두어라. 이 거북은 영물인 것 같으니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
군수의 말에 사람들은 전부 실망을 표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커다란 밧줄로 거북이를 맨 다음 끌어다가 바다 속으로 넣어 주고서 사람들은 뿔뿔이 집으로 돌아갔다.
- 그날 밤 박세통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극진하게 절을 하고서 말했다.
"내 아들이 나의 말을 거역하고 함부로 나가 놀다가 사람들에게 잡혀 큰일을 당할 뻔했는데, 공의 힘으로 목숨을 구하였으니 고맙기 그지없소. 공의 그 은덕에 대한 보답으로 공과 공의 자손 삼대를 재상이 되게 해 주겠소."
그제야 박세통은 낮에 본 거북 같은 괴물이 용왕의 아들임을 깨닫고 잠에서 깼다.
- 그 이래로 과연 그는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여 문하시중 평장사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아들 홍무 역시 밀직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손자 함에 이르러서는 도통 승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화가 나서 매일 주색에만 빠져 지내다가 어느 날은 화풀이로 시를 지었다.
"거북아, 거북아, 속이지 마라. 삼대 재상은 거짓말이다 龜乎龜乎 莫欺瞞 三世宰相虛語焉."
그날 밤 그가 잠을 자는데 꿈속에 거북이 나타나서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공이 매일같이 주색에 빠져 스스로 복을 잃은 것이지, 내가 어찌 감히 은혜를 잊고 사사로이 행동한 것이겠소! 그러나 앞으로는 한 가지 기쁨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잊지 마시오."
- 그날부터 함은 주색을 금하고 학업에 성실하게 정진하였다. 그러자 과연 훗날 재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박세통 삼대는 차례로 시중, 밀직사, 복사관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공민왕 때 그 동네 주민에게는 부역을 면제하고 마을 이름 또한 거무역이라고 내려 주었다고 한다.
- 옛날 중국 송나라 조정에 추대신이 있었는다. 추개는 학식이 높고 천문지리에 능하여 황제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하루는 황제가 추개에게 말했다.
"짐이 언제나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 부디 경이 알아와 주기를 바라오. 다름이 아니라 이 세상 만물을 비추면서 생명의 원동력을 주는 해와 달이 어디서 떠오르는가 하는 것이오. 이것을 알아내면 세상 만물의 이치를 크게 깨우치게 될 것이니, 경은 수하를 거느라고 동쪽으로 가서 해와 달의 근원을 알아내나에게 알려주기 바라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소신이 폐하의 명을 받들어 동쪽으로 가서해와 달의 근원을 알아오도록 하겠나이다."
“또한 동쪽 나라에는 먹기만 하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로초 不老草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구해오도록 하시오."
-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어느 섬에 오르게 되었다. 이 섬이 바로 서호진에서 사십 리가량 떨어진 꽃섬이었다.
추개는 결국 송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섬에서 농사를 짓고 목장을 만들어 야생동물을 잡아다 기르며 살게 되었다. 평생을 섬에서 산 추개는 나이가 들어 죽음이 임박하자 손수 무덤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죽었다고 한다.
바로 이 추개가 우리나라 추씨의 시조라고 한다. 그 후손들이 14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해마다 한 번씩 시조의 무덤 앞에서 성대히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 조선 인조 14년(1636)에 청나라 태종이 우리나라를 침입했다. 병자호란 丙子胡亂이라고 하는 이 전쟁은 겨우 두 달 만에 청의 승리로 끝나고,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숙이는 굴욕적인 항복 의식을 치러야 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청에 대해 신하의 예를 다하도록 요구하였으며, 돌아갈 때 소현세자 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 훗날의 효종)을 볼모로 데려갔다.
- 당시 의주부윤이었던 임경업 장군은 용맹하고 전술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았다. 청나라 군사들이 한양을 침략하러 올 때도 굳이 의주를 피해 다른 길로 올 정도였다. 세자와 대군이 볼모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임경업은 땅을 치며 탄식했다.
- 하지만 임경업은 배가 육지에 닿자마자 이들이 전부 도망칠 생각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잠시 생각한 다음 가까운 섬 연평도에 배를 대라고 했다. 상인들은 섬으로 가면 먹을 물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도망갈 길도 막막하여 내키지 않았지만, 장군의 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라 마지못해 배를 댔다. 섬에 도착하자 임경업은 소연평도와 연평도 사이에 있는 바닷물을 가리켰다.
"이 물을 길어 식수로 삼아라."
짠 바닷물을 어떻게 먹을까 싶어 상인과 선원들은 기가 막혔지만, 시키는 대로 물을 길어 맛을 보니 민물이었던 것이다. 이 단물골의 위치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 하지만 그들은 식수가 있어도 식량이 없어 항해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임경업은 선원들에게 섬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저기 보이는 가시나무를 가득 꺾어오너라."
선원들은 별 이상한 걸 다 시킨다 생각하면서도 섬 전체를 뒤덮은 가시나무(엄나무) 가지를 꺾어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가지를 전부 썰물 때라 드러나 있는 갯벌에 꽂아놓고 오라는 것이었다. 선원들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식량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는 시키는 대로 갯벌에 나뭇가지들을 꽂아놓고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밀물이 왔다가 다시 썰물 때가 되자 임경업은 갯벌로 돌아가보라고 했다. 선원들이 갯벌에 가 보니 꽂아놓은 가시나무 가지마다 온통 조기들이 걸려 있었다.
- 임경업 장군의 놀라운 능력에 상인과 선원들은 감탄하여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지시에 따라 명나라로 향했다. 임경업은 대업을 완수하고 귀국했으나 후에 김자점에게 누명을 써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퍼져서 어민들이 임경업 장군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굿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가시나무를 이용하여 조기를 잡은 것이 조기잡이의 시초로 전해오고 있다.
- 조선 인조 2년(1624)에 평안병사 이괄이 난을 일으켜 인조가 서울을 떠나 강화로 피신하는 사건이 있었다. 인조는 육로 대신 한강에서 나룻배를 이용하여 강화로 향했는데, 이 나룻배를 젓는 사공은 선돌이라는 사람이었다. 선돌은 한강에서 오랫동안 사공을 하여 어떤 사공보다도 뱃길을 잘 알기로 유명했다.
-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는 데 한몫을 했던 전우인 이괄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인조는 이제 옆에 있는 사람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황폐한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나룻배는 점점 여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만약 배가 여울목에 빠진다면 그대로 부서져 모두가 물에 잠길 게 분명했다. 문득 임금은 사공이 혹시 반란군과 한패가 되어 여울 속에 배를 처넣어 모두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여봐라. 저 앞의 물길은 여울이 아니냐?"
- 난이 평정된 후 서울로 돌아간 임금은 조정에 모인 신하들 앞에서 말했다.
"과인이 강화로 피난 가던 도중에 공연한 의심을 하여 사공 선돌이를 참수하였으나 이제 와서 심히 괴롭구나. 선돌이의 무덤 앞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 그 원혼을 위로하도록 하여라."
그 후로 선돌이의 목을 친 뱃길을 선돌목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제삿날만 되면 그가 죽던 날과 똑같이 추위가 몰려오고 심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추운 바람이 억울하게 죽은 선돌이가 내쉬는 한숨이라 하여 선돌풍이라고 불렀고, 이 추위를 선돌 추위라고 했다. 몇십 년 동안 늘 그날이면 추위가 몰려왔고, 뱃사람들은 배를 타러 나가기 전 풍랑을 조심하기 위하여 선돌이 사당에 제사를 지내곤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부가 새벽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배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자신을 선돌이라고 하는 웬 남자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본래 고향이 충청도인데, 떠나온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돌아가고 싶으니 거기까지 좀 실어다 주게."
어부가 알겠다고 말하자 선돌이가 다시 말했다.
"내가 큰 구렁이가 되어 배에 탈 테니 고향까지 실어다 주게."
잠에서 깬 어부는 이상한 꿈도 다 있다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뱃머리에 커다란 구렁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꿈에서 본 선돌이인가 하고는 노를 저어 충청도 당진까지 갔다. 당진배터에 배를 대자 구렁이가 배에서 스르륵 내려가 ...
-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오곡리를 가청이라고 부른다. 땅 위를 파란색으로 칠해놓았다고 해서 가청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의 일이다. 왜인들은 이미 우리나라에 쳐들어올 마음을 먹고, 염탐꾼을 우리나라 방방곡곡으로 보내 모든 사정을 염탐하고 지도를 만들게 하였다. 그런 염탐꾼 중 한 사람이 남해안으로 오게 되었다. 이때 안동에 사는 유씨 성을 가진 벙어리 한 사람이 왜병 염탐꾼과 함께 다니며 그의 일을 도왔다. 염탐꾼은 멍청한 벙어리려니 생각하고 그에게 잡다한 일을 시키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은 이 유씨 벙어리가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유학자인 유성룡의 형이었던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왜인들의 음흉한 계책을 알고서 일부러 벙어리 노릇을 하며 같이 따라다녔던 것이었다.
- 왜병 염탐꾼은 남해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해의 지리를 자세히 살피고 낱낱이 지도에 그려놓았다.
마침내 염탐꾼이 남해안을 다 돌고 정보를 다 얻어 남해도를 떠나려고 채비를 챙겼다. 유씨 벙어리는 그것을 보고 그날 밤 그에게 맛 좋고 독한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염탐꾼이 곯아떨어지자 그의 행장을 풀어서 지도를 꺼낸 다음 광당 들판과 성산일대, 비란 일대 등 오곡리 전부를 파란 물감으로 칠해서 산과 들을 마치 바다 같이 만들어 놓았다.
- 그 뒤 몇 년이 지나 왜인들이 조선을 침입하는 임진왜란이 벌어지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남해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왜인들과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용맹한 이순신 장군에게 몰려 왜인들은 패배를 거듭했고, 결국에는 열세에 몰려 도망칠 길을 찾았다. 왜병들이 황급히 지도를 펼쳐 보니 이락포에서 설천면 비탄리 사이가 파랗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기가 바다라 이런 색깔인가 보다 생각하고는 이락포에서 가청이 쪽으로 뚫고 도망가려고 배를 돌렸다. 그런데 정작 가 보니 산과 들판이 가득하여 앞으로 나갈 길이 없는 것이었다. 결국 왜병들은 여기서 이순신 장군에게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래로 이 일대를 가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아이야, 말 좀 묻자꾸나. 세상에 '노래하는 나무'라는 게 있다는데 들어본 적이 있느냐?"
소년은 눈물을 닦고 바다에서 나온 사내를 보았다.
"그렇게 묻는 아저씨는 뉘십니까?"
"나는 용궁에서 온 사자란다."
"노래하는 나무는 왜 찾으십니까?"
용궁사자는 갑자기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천상에도 가락이 있고 지상에도 가락이 있는데 용궁에는 가락이 없어 용왕님께서 노래하는 나무를 구해오라고 시키신 지가 어언 수년이 되었건만, 신발 아흔아홉 켤레가 닳도록 아직껏 찾지를 못했구나. 이제 마지막 백 켤레마저 닳아서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지경이다. 부디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면 알려다오."
- 소년은 용궁 사자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의 처지 역시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득 소년은 두 사람 모두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떠올리고 사신에게 말했다.
"노래하는 나무를 알려드릴 테니 제 부탁도 들어주십시오."
"부탁이 무엇이냐?"
"제 누이가 바다에 나갔다가 용왕님의 눈에 들어 용궁으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부모도 없고 오로지 누이 한 사람뿐인데 누이가 없으니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누이를 돌려주신다고 약속하시면 저도 노래하는 나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용궁사자는 고민 끝에 누이를 돌려주겠다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했다. 그러자 소년은 가까이 있던 버들가지를 꺾어서 능숙하게 피리를 만든 다음 구슬픈 음악을 불었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 용궁사자는 감탄하여 노래하는 나무를 찾았다고 용궁에 알리고 누나를 동생에게 돌려보내 주었다. 나중에 용왕의 눈에 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누나는 왕녀가 되었고, 동생은 현명한 신하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한다.
- 그리고 이후로 해안에 사는 아이들은 바다에 들어갈 때 용왕에게 끌려가지 않도록 우선 얼굴에 뻘로 환칠(얼굴을 못생겨 보이도록 하는 것)을 하는 풍습이 생겼다.
- 정신을 차리니, 배는 월송정에서 한참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으나 이미 돌아가기에는 늦어 있었다. 배가 용궁에 도착하자 용궁 사람들은 사또를 끌고 가서 방에 가두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사또가 어리둥절하자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용왕님께서 병이 드셨는데, 이 병은 인황을 먹어야만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황을 가진 사람을 백방으로 찾고 있던 터에 사또께서 인황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셔온 것이니 부디 우리를 원망 말고 용왕님을 위해 한 몸 희생해 주시구려."
사또는 이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인황이라는 것은 쓸개 안에 있는 것인데, 이걸 빼내겠다는 이야기는 결국 배를 갈라 죽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잠깐 실수를 하여 바다 속에서 목숨을 잃게 생겼구나 생각하던 사또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이야기한 사람을 붙잡고 사정을 했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평소에 먹고 싶던 것들이라도 마음껏 배불리 먹고 죽고 싶소. 그거라도 해 주시오.”
"그거야 얼마든지 해드리지요. 무엇을 드시고 싶으십니까?"
"복숭아가 꼭 먹고 싶은데 복숭아를 구해다 주겠소?"
용궁 사람들은 사또를 호화로운 방에 모셔놓고 그가 원하는 복숭아를 가득 구해 갖다 주었다. 사또는 매일같이 배가 터지도록 복숭아를 먹었다.
- 얼마 후 의사들이 사또의 뱃속에 있을 인황을 꺼내기 위해 진찰을 하러 왔다. 그러나 정작 진찰을 하니 사또 뱃속에는 인황이 없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 그들이 알아보니, 인황은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삭아서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인황이 없으니 배를 갈라봐야 사람만 상할 뿐 약을 구할 수 없는 일이라 결국 그들은 사또를 도로 물 밖으로 내보내고 말았다. 영리한 사또는 그 재치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어느 마을에 대단히 용한 지관이 살고 있었다. 그가 자리를 짚어줘서 잘못된 집안이 하나도 없기 유명했다.
그에게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어느 날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 남의 자리는 다 봐주시는데 당신 자리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저희가 어찌해야 합니까?"
그러자 지관이 대답했다.
"내가 죽거든 염할 생각은 말고 여기 동구 밖에 나가면 연못이 하나 있지?"
"네."
"그 연못에 버드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동쪽으로 뻗은 가지를 꺾어서 휘두르고 서쪽으로 뻗은 가지를 꺾어서 휘두르고 남쪽으로 뻗은 가지를 꺾어서 다시 휘두르고 북쪽으로 뻗은 가지를 꺾어 휘두르면 그 연못의 물이 바싹 마를 것이다. 그러면 그 안에 커다란 목판에 물바가지가 있을 텐데, 그 바가지를 들어내면 석함이 있을 것이야. 그 석함에 내 몸을 넣고 뚜껑을 닫고 나온 다음 다시 버들가지를 들어 올리면 물이 도로 차오를 거다. 그리고 장사는 거짓 장사를 지내도록 하여라."
이렇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정말로 지관이 세상을 떴다. 형제들은 아무리 아버지의 유언이라지만 물속에 넣는다는 것이 영 마땅치 않은 데다가 제사를 지낼 도리도 없어서 차일피일 장례를 미루었다. 막내는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니 들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머니는 매일 집에서 잠만 자고 형들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빈소 너머로 관을 열고 아버지의 시신을 꺼내 연못으로 향했다.
- 연못가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시킨 대로 동서남북 네 방향의 가지를 꺾어서 휘두르니 정말로 갑자기 연못에 물이 말라버리는 것이었다. 아들은 연못으로 들어가 한가운데 있는 물바가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마치 돌로 된 통 같은 것이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거기 넣자 통은 저절로 덜커덕하고 닫혔다. 다시 연못물을 채우고서 막내아들은 길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봐야 아버지의 시신이 없어진 탓이나 들을 것 같아 그는 집으로 가지 않고 그냥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밤이 되자 기진맥진하여 인가를 찾았으나 산 중턱이라 사람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산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훤한 불빛이 보였다. 아들이 문을 두드리자 예쁜 처녀가 나오는 것이었다.
- 노인이 관을 쓰고 나오는 것이었다.
"이 반지는 어디서 났느냐?"
아들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노인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우리 딸이 이미 죽어 묻힌 줄 알았는데, 네가 살았다 하니 이런 경사가 또 있겠는가. 이 반지는 딸아이의 무덤에 함께 묻은 것인데 네가 가져왔으니 어쨌든 내 사위가 틀림없다. 오늘부터 딸아이 방에서 지내게."
그래서 지관의 막내아들은 딸이 쓰던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부인은 밤이 되면 왔다가 아침이 되면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어언 십 개월이 흐르자 부인에게 태기가 있더니 곧 아이를 낳았다.
- 하루는 저녁상을 가져가던 종 하나가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대감부인에게 전했다. 대감부인은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반색하여 딸을 보려고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딸은 간 곳이 없고 사위 혼자 앉아 있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흘만 기다리셨으면 만나셨을 텐데, 다시 석 달을 더 기다리셔야 만나겠습니다."
대감 내외는 별 수 없이 이야기 소리가 들려도 꾹 참고 석 달을 기다렸다. 그렇게 날이 흐르고 석 달이 지나자 사위가 나와서 아기 포대기와 옷을 장만해 달라고 말했다. 물건을 가져오자 사위는 딸의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에 도착하니 묘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어린애를 안은 딸이 생생하게 살아서 나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기쁨에 겨워 집으로 돌아갔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아들 딸 낳고 잘 산다니 ...
- 장군이 사라진 다음에야 뱀이 나와서 다시 사람 모습을 하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선생님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제 죄를 대신 받으시면 하늘나라에 가실 수가 없으니 제 죄는 제가 받겠습니다. 저는 이 길로 하늘에 올라가 죗값을 달게 치르겠습니다. 옥황상제께서 제가 지은 죄가 중하면 목을 벨 것이고, 백성들을 불쌍히 생각하여 그것을 참작해 주신다면 죄를 약간 감해 주실 것입니다. 내일 오전에 선생님은 이 상선암 앞마당에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사형을 받으면 핏방울 세 개가 마당에 떨어질 것입니다. 만약 떨어지지 않으면 제가 살았구나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서 용왕의 아들은 하늘로 올라갔다.
- 선생은 다음 날 오전 앞마당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오가 가까워지니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몇 방울 뿌리는가 싶더니 핏방울석 점이 떨어져 박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생은 아이가 죽었구나 하고는 슬프게 통곡했다.
이 핏자국은 아직까지 옥산에 남아 있다고 한다.
- 옛날 제주도에 천지개벽이 되기 전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제주도에 사람들이 조금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가난해서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그 당시 남해 용왕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이들은 워낙에 방탕하여 허구한 날 사고를 저지르고 다녔다. 결국에는 용왕조차 참지 못하고 아들들을 국법을 어긴 죄로 제주도로 귀양을 보냈다. 그래서 용왕의 세 아들은 별 수 없이 제주도 땅으로 올라왔는데, 제주도 사람들 눈에는 이들이 굉장히 괴상한 짐승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머리는 물고기를 닮았고, 꼬리도 달려 있는 데다가 걸어 다니며 말을 하니, 용왕의 아들이라는 것보다는 우선 무섭다는 마음이 앞서서 사람들은 전부 다 그들을 모른 척했다.
- 거북이의 말에 용왕은 마음이 답답해서 고민에 잠겼다. 아무리 죄를 지어 귀양을 보냈다지만 거북이의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쓰여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에 용왕은 자식들을 용서해 주기로 하고 거북이에게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니 그러면 귀양을 풀어 주겠느니라. 그래도 귀양 가서 사는 동안 은혜로운 사람이나 잘 대접해 준 사람에게는 은혜를 갚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벌을 줘 잘 다스리고 돌아오라고 하여라."
그래서 거북이는 다시 육지로 올라가서 그간 용왕의 아들들에게 잘해 준 사람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며 조사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조사를 해 보아도 그들에게 무엇 하나 도움을 준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중에 유일하게 박씨 성을 가진 어부 한 명만이 마 뿌리 같은 것을 삶아다 주었을 뿐, 그 외의 사람들은 전부 나 몰라라 하고 지냈다. 거북이는 조사를 마치고서 용궁으로 돌아가 용왕에게 고했다.
"가서 알아보니 왕자님들을 도와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참으로 몹쓸 땅입니다."
"그거 참 괘씸하구나."
용왕도 화가 버럭 치솟아 호통을 쳤다.
"유일하게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마 뿌리를 삶아다 주었다고 하옵니다. 그 사람에게만 은혜를 갚아야 할 뿐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벌을 받아 마땅한 듯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야지. 그놈의 땅을 전부 다 돌밭, 가시덤불 천지로 만들어 사람들을 못 살게 해야겠다. 물줄기를 터서 그 섬을 전부다 물에 잠기게 해라. 그리고 그 박씨 성을 가진 사람 하나만 살려 주어라. 섬을 물에 삼 년간 잠가놓았다가 꺼내면 그 몹쓸 놈들의 씨가 싹 사라지겠지."
- 거북이는 다시 육지로 올라가서 박씨를 찾아가서 말했다.
"그대가 용왕님의 왕자님들께 유일하게 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미리 알려주겠소. 이 제주섬이 전부 다 물바다가 될 터이니 아무 날 아무 시에 저기 메오름에 올라가 있으시오."
"그것이 무슨 말이오? 도통 못 알아듣겠소."
박씨는 거북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고개만 도리도리 흔들었다. 거북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박씨는 시키는 대로 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물에 잠길 때 이 사람도 함께 잠길 것만 같아 거북이는 안 되겠다 싶어 도술을 사용해 박씨를 매로 바꿨다. 박씨는 깜짝 놀라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날개를 퍼덕였다. 거북이가 말했다.
"저 메오름에서 이대로 딱 기다리고 있으시오. 그러면 바닷물이 아마 코앞까지 올라올 것이오. 그렇게 조금 지나면 다시 사람으로 변하게 될 터이니 꼼짝하지 말고 있으시오. 만에 하나 매가 되었다고 해서 바다에서 펄떡거리는 물고기를 한 마리라도 잡아먹었다가는 다시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이것을 명심하시오."
매가 된 박씨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고서 메오름으로 올라갔다.
- 그 사이에 박씨는 봉우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쌩 불고 파도가 높게 일더니 순식간에 섬 전체를 덮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물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와 박씨가 앉아 있는 봉우리 바로 아래까지 가득 채웠다.
박씨가 보니 바닷물 속에서 싱싱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펄떡거리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매가 된 탓인지 갑자기 배가 고파오며 고기를 잡아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박씨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기울여 부리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그때 거북이는 용궁으로 용왕의 아들들을 데려다주고서 어떻게 되었나 하고는 돌아보았는데, 마침 박씨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몸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고기를 먹으면 다시 인간이 될 수 없을 텐데!"
거북이는 깜짝 놀라 매가 움직이지 못하게 그 몸을 봉우리에 꾹 눌러놓았다. 그 바람에 박씨는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봉우리에서 그대로 굳었다. 그래서 원래 동그스름했던 봉우리 모양이 지금처럼 뾰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빠져나간 다음 제주도는 지금처럼 돌과 가시덤불이 가득하여 농사를 짓기 힘든 척박한 땅이 되었다고 한다.
- "내일은 아침 일찍 활을 들고 밖으로 나가거라. 나가면 청룡과 황룡이 싸우고 있을 것인데, 황룡을 꼭 죽여야 하느니라. 명심하거라. 꼭 황룡이다!"
그날 밤을 지내고 박씨 총각은 날이 밝자마자 바깥으로 나왔다. 나와보니 과연 동해의 황룡과 서해의 청룡이 파도를 일으키며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와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가만 보니 동해 황룡은 젊은 용이고 서해 청룡은 늙은 용이라 청룡이 점차로 밀리고 있었다. 청룡과 황룡이 뒤엉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한참 보던 끝에 박씨 청년은 활시위에 화살을 메기고 홱 당겼다. 그러자 화살은 단숨에 황룡의 목을 꿰뚫었다. 황룡이 바다로 떨어져서 사라지자 청룡이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내려오는 것이었다.
"자네 덕택에 내가 살고 또 내 딸이 살았네. 실은 나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동해의 황룡이 어린 내 딸을 자신의 세 번째 첩으로 달라고 하여 싸움을 하게 된 것이라네. 이 싸움이 삼 년이나 계속되었는데 만약에 여기서 내가 졌다면 내 목숨도 없어지고 내 딸 역시 빼앗겼을 것이네. 이 모든 것이 다 자네의 덕분이니 내 딸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리고는 노인은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간 머물러 산 집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 청년이 다시 섬을 돌아가니 조그만 초당에서 어여쁜 처녀가 글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들어서자 처녀가 인사를 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고 마침내 섬을 떠나 본토로 돌아와 보니,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호호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 그런데 결혼식을 올리던 날 아내가 그에게 진지하게 청했다.
"아들을 셋 낳을 때까지는 제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요?"
그가 물었으나 아내는 고개만 흔들었다.
"그저 절대로 보셔서는 아니 됩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두 사람은 어머니를 모시고 화목하게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아들을 낳았고, 둘째까지 낳게 되었다.
아이가 둘이나 생기자 박 도령은 슬슬 아내가 목욕하는 모습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보지 말라고 했겠지만 이제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느 날 그는 아내가 목욕하는데 몰래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목욕통 안에는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뱀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놀라서 "헉!" 하고 소리를 지르며 물러났다. 그러자 곧 문이 열리고 아내가 슬픈 표정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제가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는 보지 말라고 그리 말씀을 드렸건만 지키지 못하셨군요."
그리고는 두 아이를 양쪽에 끼고는 하늘로 올라가고 말았다. 박 도령은 "내가 용과 결혼하여 살았는데 내 발로 복을 찼구나." 하고는 땅을 치고 후회하며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
- 하지만 선생은 어째서인지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가 글공부를 다 마치고 나니 그가 말했다.
"이제 가다가 보면 둑 근처에 고기가 한 마리 있을 것이다. 그걸 잡아다가 아버님 반찬을 해드려라."
아이가 오다 보니 정말로 둑 근처에서 커다란 고기가 펄떡펄떡 뛰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고기를 잡아다가 아버지 반찬을 해드렸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늦게까지 글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 보면 고기가 한 마리씩 있었다. 실은 소강절 선생이 효성스런 제자를 위해서 고기가 뛰어오르는 때를 점지해 주는 것이었다.
- 한편 동해 용왕은 소강절이 자기 능력으로 매일 아이에게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중요한 신하를 전부 다 잃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느 날 저녁 소강절 선생을 찾아갔다.
"그대가 그렇게 점을 잘 친다니, 나하고 내기를 해 보자."
"무슨 내기를 하자는 것이오?"
"그대가 점을 쳐서 어느 날 몇 시쯤 비가 얼마나 올지를 한 번 말해 보아라. 그걸 맞추지 못하면 그대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소강절 선생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아무 날 아무 시에 비가 올 것인데, 꼭 석자 세치가 오겠다."
"그런지 어디 두고 보자."
용왕은 용궁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 비라는 것은 용왕이 마음 내키는 대로 줄 수 있는 것이라 소강절 선생이 이길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절대로 그날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 그런데 갑자기 그날따라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무 날 아무 시에 비를 석 자 세 치를 주어라."
옥황상제의 명이라 함부로 거부할 수도 없고 하여 용왕은 머리를 굴리다가 세치 정도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싶어서 비를 석 자만 내렸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소강절을 찾아가서 말했다.
"그대가 석 자 세 치라고 했는데 비가 석 자밖에 오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그대는 내 손에 죽어야겠다."
그런데 소강절 선생은 전혀 겁먹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보다는 용왕님께서 먼저 죽겠소.”
용왕이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묻자 소강절 선생은 머리를 흔들었다.
"옥황상제께서 석 자 세치를 주라 하셨는데, 세 치를 빼고 주었으니 어떻게 되겠소?"
동해 용왕은 놀라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소강절 선생에게 애걸했다.
"어떻게 하면 살겠느냐? 제발 방법을 알려다오."
"용왕님께서 그렇게 살고 싶으시다면 이 몸의 말을 잘 들으시오. 내일 몇 시 몇 분에 옥황상제께서 목을 치실 텐데, 그 명을 행하는 사람은 당 태종의 신하인 우징이오. 그 사람은 낮에는 당 태종의 신하이지만, 밤에는 옥황상제의 신하 노릇을 하는 사람이오. 그가 목을 베러 갈 것인데, 내일 아무 시에 우징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면 사실 수 있소. 그 시간에 우징이 잠을 자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니 ..."
- 전 왕비가 낳은 왕자를 대단히 미워했다. 왕이 있을 때면 아끼는 척했으나, 왕만 없으면 노골적으로 홀대하고 구박했다. 똑똑한 왕자 때문에 자기 아들들이 밀려나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왕자가 결혼하기로 한 이웃나라의 아름답고 영리한 공주를 보자 자기 아들과 짝을 지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새 왕비는 여러 가지 수작을 부려 두 사람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왕자의 공주의 마음은 확고하여 도저히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 왕비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왕 몰래 요술을 부리는 노파를 불러 부탁을 한 것이다.
"왕자를 구렁이로 만들어라."
노파는 왕자를 커다란 구렁이로 만들었다. 이 사실을 안 공주는 충격을 받아 가슴이 에이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설령 구렁이라 해도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니 결혼하겠다고 주장했다.
- 그래서 구렁이가 된 왕자와 공주는 결혼식을 올리고 궁궐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새 왕비의 눈에 이것이 고까웠다. 결국 왕비는 왕자를 불러서 말했다.
"구렁이 꼴을 하여 궁에 사는 것이 백성들 눈에 좋을 턱이 없다. 당장에 여기서 나가거라."
"이 모습을 하여 제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걸 내가 알겠느냐? 어디 바다로 가서 뛰어들던지."
왕자는 억울하고 분하였으나 어쨌든 어머니의 명인지라 거역하지도 못하고 궁을 나와 바닷가로 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 역시 남편 곁에 있겠다며 그의 뒤를 따라 바다로 갔으나, 그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는 것이었다.
"남편도 없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공주는 울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때 이 장면을 본 구렁이 왕자가 공주를 구해서 가까운 모래섬으로 데려갔다.
- 단둘이 모래섬에 살면서 공주는 매일같이 하늘에 대고 빌었다.
"우리 서방님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시어머니가 요술쟁이 노파를 데려다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떡하든 본래 모습으로만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공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빌었다. 그러자 그 정성에 감동한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두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주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빌었다는 뜻에서 이 섬을 '비비각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섬은 복용리 중촌과 송림 뒷바다에 솟아 있다.
- 목포항구 앞에 크고 작은 세 섬이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이 나란히 서 있는데 그 모습이 학과 같다고 하여 삼학도라고 불렀다. 지금은 매립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나 한때는 유달산과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명물로 손꼽혔다. 그런데 이 섬이 생기게 된 데에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오랜 옛날, 옥황상제에게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는 아들에게 인간 세상에 내려가 십 년간 도를 닦고 오라고 명했다. 아들은 그 명을 받들어 수도할 장소를 여기저기 찾다가 어느 날 바닷가에 있는 유달산의 초대를 받아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니 너른 바다와 섬들이 훤히 보이는 것이 꼭 마음에 들어, 그는 거기에 자리를 잡기로 하고 돌을 모아 석실을 만들어 수도를 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그는 외로울 때면 다도해 多島海를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수련에만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이었다. 그가 물을 마시려고 약수터로 가는데 멀리 보니 샘가에 붉은 꽃 같은 것이 세 개 보이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꽃이 아니라 붉은 옷을 입은 세 명의 처녀였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세 처녀는 얼굴 모습도 똑같이 아름답고 옷을 입은 태 역시 똑같이 고왔다. 처녀들 역시 그를 보고는 처음에 놀라서 당황했으나 그가 물을 마시려고 가까이 다가오자 미소를 지으며 바가지에 물을 떠서 건네주었다.
- 물을 마시고 돌아온 그날부터 옥황상제의 아들은 그 처녀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 뚜렷하게 떠오르고, 수련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혹시 처녀들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샘터에 가면 세 처녀가 꼭 거기 있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시간을 바꾸어도, 낮이나 밤에 가도 언제나 처녀들과 마주쳤다. 결국 그는 이 처녀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 사실 이 처녀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자매였다. 유달산의 약수를 마시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옥황상제의 아들을 만나 반하게 되어 산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게 되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있다 떠나요."
"그래, 물맛이 참 좋구나."
“이렇게 경치가 좋은 데가 또 있으려고."
세 자매는 제각기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옥황상제의 아들에게 마음이 있어 떠나지 못하고 온종일 샘터 근처에서 서성이고 ...
- "명을 거역한 죄로 큰 뱀으로 바꾸고 영영 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옥황상제의 아들은 부황의 준엄한 명령을 듣고 그 자리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렸다.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슬픔의 눈물이었다.
결국 그는 샘가로 여자들을 만나러 가서 말했다.
"낭자들은 더는 나를 괴롭히지 말고 이 산에서 떠나 주시오. 내가 그대들을 사모하여 수도를 게을리 하면 그 벌로 뱀이 되어 영영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가 없소. 그러니 슬프더라도 이만 돌아가 주시오."
그 말에 세 자매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도련님께서 수도하시는 데 저희가 방해가 된다면 기꺼이 떠나겠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와 사랑을 하시면 뱀이 되어 하늘로 돌아가실 수 없다니 어쩌겠습니까. 다만 저희에게 기념이 될 만한 표적을 하나씩만 주십시오."
그래서 옥황상제의 아들은 세 자매에게 아름다운 돌을 하나씩을 주었다. 그녀들은 돌을 소중히 간직하고서 바닷가로 내려가 배를 타고 눈물을 지으며 유달산을 떠났다.
- 유달산 상상봉 꼭대기에서 세 자매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옥황상제의 아들은 이제 다시는 그녀들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뱀이 되어도 좋으니 그녀들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배를 돌려라! 돌아오시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그의 애절한 목소리는 배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결국 급한 마음에 그는 배를 향해 활을 당겼고, 화살은 배에 명중했다. 하지만 배는 돌아오는 대신 그 자리에서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급히 항구로 달려가다 보니 가라앉은 배에서 학 세 마리가 날아올랐다.
"아, 그들이 학이 되었구나."
그가 놀라고 있는데 세 마리 학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유달산을 한 바퀴 돌더니 각기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이 앉은 자리에서 크고 작은 세 섬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본 옥황상제의 아들은 다시 눈물을 쏟았다.
"섬이 되어서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다니."
그 후 옥황상제의 아들은 매일 삼학도를 내려다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십 년의 세월이 지나자 삼학도를 보고 눈물의 이별을 고한 후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 전라남도 신안군 홍도의 탑골은 해수욕장으로, 뒷대목에서 석촌리로 가는 중간 길목의 계곡을 이른다. 이곳 암벽은 마치 탑을 쌓아 올린 것처럼 생겼고, 그중 탑바위는 밑폭이 4미터에 높이가 15미터가량이다. 이 탑이 있는 곳 건너 북쪽 절벽을 여탑이라고 하는데 이 여탑과 남탑 사이에는 높이 50미터 이상되는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배가 아니고는 갈 수가 없다. 이 가운데 산을 중심으로 북쪽 여탑이 있는 계곡을 '서방'이라고 하고 남탑이 있는 곳을 '탑상골'이라고 한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 옛날 홍도가 무인도였을 때 대흑산도 출신 청년 하나가 풍랑을 만나 이 섬에 표류하게 되었다. 청년은 자신을 구해 줄 배가 섬 앞을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으나 하루하루가 지나도 배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무료한 나머지 청년은 탑상골에다가 돌로 탑을 쌓아 올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 황해도 옹진군 광대산 꼭대기에 가면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월성 越聲 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옛날 이 마을에는 정체 모를 청년이 하나 살고 있었다. 청년은 산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언제나 바위 위에 올라가서 멀리 남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절을 하곤 했다. 청년이 뭘 하는지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고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마을에 이 청년을 사모하는 처녀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처녀는 몰래 바위 뒤에 숨어 청년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처녀는 큰 맘을 먹고 바위 위에 있는 청년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소녀는 저 건너 마을에 살고 있사온데, 매일같이 선비님께서 여기 올라오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몇 번이나 말씀을 드리려 했지만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선비님께 꼭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이렇게 용기를 내어 찾아왔습니다."
- 청년은 깜짝 놀라서 처녀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꽃 같은 처녀가 자신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고 기분 나쁠 젊은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청년은 곧 힘없이 눈길을 돌리고 대답했다.
"낭자의 뜻은 알겠소만 불행히 낭자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소. 미안하오."
처녀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고개를 그렸다.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만, 이유가 무엇이온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모자라는 구석이 있어서입니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 다만 나는 본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낭자에게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드릴 수가 없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년은 머뭇거리다가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처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여기서 바닷길로 수만 리 떨어져 있는 안남의 왕자요. 하지만 실수를 저질러 부왕의 노여움을 사서 여기로 귀양을 오게 되었소. 늘 고국이 그리워서 매일 이 바닷가에 나와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는 것이오."
청년의 불쌍한 처지에 처녀의 눈에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혔다.
"그러하오면 소녀 비록 천한 몸이오나 왕자님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치겠사오니, 거두어 주옵소서."
처녀의 몸으로는 대담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벌써 몇 달이나 매일같이 왕자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태웠던 그녀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제의였다. 왕자 역시 예쁜 처녀가 이렇게까지 사모의 정을 드러내니 싫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언제 자기 나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더욱이 귀양살이를 하는 몸으로서 여자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자의 뜻은 고맙소만 그것은 이 나라의 예법에도 어긋나는 일이고 나의 입장으로서도 곤란하오. 그러니 이대로 돌아가 주시오."
왕자의 말에 처녀는 무안하고 부끄러워 그대로 마을을 향해 뛰어 돌아가고 말았다.
- 그러나 사모의 정은 쉽게 식는 것이 아니라, 이튿날이 되자 처녀는 또다시 바닷가로 찾아갔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왕자도 이런 일이 하루 이틀 계속되자 점차 처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남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가 남자의 집을 드나든다며 수군거리다가, 급기야는 처녀의 행실을 이유로 갖은 모욕을 주고는 마을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처녀가 울면서 왕자에게 가서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자 왕자는 자기들의 신세가 더욱 슬퍼져서 처녀를 부둥켜안은 채 서글프게 흐느껴 울었다.
- 얼마 후 이 안남 왕자의 소식이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화산군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왕자로서의 대우를 해 주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떳떳하게 부부가 되어 여생을 함께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훗날 이용상이라고 이름을 고친 이 왕자가 항상 올라서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였다 하여 이 바위의 이름을 월성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바닷가에는 학사암 동굴이라는 곳이 있다. 바닷물에 반쯤 잠겨 있는 그 동굴에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남아 있다.
옛날이 이 동굴에는 커다란 거인 같은 장사가 한 명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사는 동굴을 맨손으로 아흐레 만에 파냈다고 할 만큼 힘이 좋았다. 또한 종종 뒷산 숲 속에 들어가 산짐승을 맨주먹으로 때려잡아 구워 먹었다. 배가 부를 때면 동굴로 돌아와서 굴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요란한 콧소리를 내며 며칠씩 잤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콧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파도 소리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여보, 장사가 일어난 모양이니 오늘은 산에 나무하러 가지 마세요. 툭 채이기라도 하면 어쩔 테여요."
동굴에 사는 그 장사는 온 마을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장사가 한 번 지나가면 집집마다 문설주가 흔들리고 바람이 일어 사람들은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 미역을 따러 저쪽 바위 위까지 갔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내리치는 것이었다. 장사가 뒤를 돌아보니 바닷물이 흘러넘쳐 순식간에 달례가 있는 동굴 속으로 사정없이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장사는 놀라서 미역을 내동댕이치고 그쪽으로 뛰어갔으나, 육중한 체구의 그조차도 파도에 떠밀려 나뭇잎처럼 물속으로 쏠려 들어갔다.
"달려야! 별동아! 별례야!"
장사는 근처의 바위를 붙잡고서 몸을 지탱했다. 파도는 미친 듯이 몰아치다가 마침내 장사를 데려갈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몰려나갔다. 장사는 정신을 차리고서 허둥지둥 동굴로 돌아왔다.
"달례야, 별동아, 별례야! 어디 있니. 어디 있어?"
하지만 동굴에는 바닷물 외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달례가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장사는 바다를 보며 울부짖었다.
"여자가 그렇게 탐이 나거든 다른 여자를 안겨 줄 테니 내 아내를 돌려다오, 바다야! 돌려달란 말이다!"
그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장사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여자라면 아무나 잡아다가 바다에 내던지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이 여자를 받고 우리 달례를 돌려다오, 바다야! 달례를 돌려달라고!"
- 거문도에 이오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평소에 낚시를 좋아하여 낮이고 밤이고 낚시를 하러 나가곤 했다.
그날도 낚싯대를 짊어지고 바닷가로 가서 찌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물고기를 몇 마리씩 낚은 걸로도 모자라 한밤중까지 계속해서 고기를 낚고 있는데, 저쪽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의 비명이 울렸다.
"살려 주세요! 누가 좀 살려 주세요!"
이오복은 깜짝 놀라서 낚싯대를 내려놓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바다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고 열심히 보니, 저쪽에 웬 여자가 팔을 흔들며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밤에 도대체 어쩌다 물에 빠졌나 싶어서 그는 황급히 물살을 가르고 그쪽으로 첨벙첨벙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고 이리 나오시오!"
"고맙습니다, 선비님!"
- 여자가 그의 손을 잡으려고 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매가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와 여자의 손을 쪼았다. 이오복은 깜짝 놀라서 매를 쫓으려고 손을 흔들었으나, 매는 계속 다시 날아들어 여자의 머리를 쪼는 것이었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매를 피하려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매는 끈질겼다.
"이놈의 매가!"
오복은 매를 공격할 만한 것을 찾아보았으나 물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몇 번이나 매에게 머리를 쪼이던 여자가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여자가 매 때문에 애꿎은 목숨을 잃었구나 싶어 그는 미안한 마음으로 물에서 나와 낚싯대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 날 그가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털어놓자 친구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그것은 여자가 아니라 필시 신찌갯이라는 물귀신일세. 그 물귀신의 손을 잡으면 물속에 빠져 죽게 된다고 하는데, 매가 자네 목숨을 구해 주었구만."
오복은 그제야 사실을 깨닫고서 바닷가로 돌아가 보았다. 밝은 낮에 보니 매는 간 곳이 없고 대신에 매를 닮은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 바위를 매바위라 하고 목숨을 건져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산두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바위는 넓이가 10평 남짓하며 이 바위 아래 있는 작은 연못은 벼락이 내리쳐 생긴 것이라고 전해진다.
실제로 제물이 효험이 있었는지 김종윤은 둑을 무사히 쌓는 데 성공했다. 벼락바위에서 탄동리 새언안으로 통하고 여흘로 통하는 세 갈림길에 이 간척지를 만든 김종윤의 기념비가 서 있다. 그러나 남의 아이를 용왕에게 바치고 절강에 성공한 탓인지, 김종윤은 기묘하게도 자손이 없이 죽었다고 한다.
- 결국 청양 산골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시집가서 이틀도 못 되어 죽어서 돌아왔다. 그들의 애타는 사랑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지금도 빈섬에서는 처녀가 시집을 못 가고 죽으면 독수리바위가 채갔다고들 말한다. 독수리바위가 빈섬을 바라보며 억울하게 죽은 앙갚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묘하게 빈섬에는 미인이 많다고 해서 미인도라고도 부르고 있다. 지금도 독수리바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 안양시 안양2동 산 19번지에 위치한 망해암 望海庵은 신라 시대 고승 원효대사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세종 때 어느 배가 삼남 지방에서 조세로 받은 물품을 싣고 한양으로 오고 있었다. 배에는 스무 명가량의 뱃사공들이 타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번개와 함께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혔다. 잔잔하던 물결은 성난 파도로 돌변해서 배를 뒤흔들었고, 조그만 배는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타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다 놀라서 가까운 뱃전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이렇게 심하게 파도가 친 적이 없는데, 오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서해 용왕님께서 노하신 모양이야!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신 걸까?"
사공들은 겁에 질려 전전긍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강원도 동해시 망상에 가면 노고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하고 있다.
지금은 메워서 논으로 만들었지만 옛날에는 노고바위가 있는 자리 옆에 수반포라는 호수가 있었다. 그곳에 임씨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젊은이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안개가 자욱한 밤에 웬 아름다운 여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남자 혼자 사는 집이니 미안하지만 재워 줄 수가 없소. 호수 반대편에 가면 마을이 있으니 거기 가서 재워 줄 곳을 찾으시오."
그러나 여인은 한사코 임씨에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날이 이렇게 어두운데 여자 혼자 어떻게 마을까지 갑니까? 그러지 말고 하룻밤만 재워 주십시오. 저 윗목이라도 좋습니다. 자리를 조금만 내주십시오."
여인이 하도 매달리고 사정을 하니 임씨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여인을 집안으로 들여 하룻밤을 재워 주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여인은 나갈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임씨도 여인이 옆에 있으니 좋은지라 우물쭈물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에는 부부의 연을 맺고 같이 살게 되었다.
- 임씨가 고기를 잡아오면 아내가 살림을 하며 두 사람은 의좋게 살았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두 사람 모두 노인이 되었다.
어느 날 부인이 임씨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수반포에 살던 이무기였습니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죄를 지어서 천 년간 지상에 귀양을 와서 살았는데, 이제 귀양살이가 끝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간 고마웠습니다."
임씨는 깜짝 놀라서 부인을 붙잡았다.
"아니, 우리가 함께 산 것이 몇 년인데 이제 와서 나를 버리고 혼자 하늘로 올라간단 말이오? 그러지 말고 나하고 여기서 계속 삽시다."
오랜 세월 함께 살며 임씨와 정이 든 부인은 매정하게 남편을 내치고 올라갈 수가 없어서 망설였다. 임씨는 다시금 부인을 붙잡았다.
"우리가 죽을 날이 얼마나 남았소? 그러지 말고 함께 죽어 사이좋게 저세상으로 가십시다."
- 부인 역시 마음이 흔들려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번갯불이 번쩍이며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비가 철철 내려 삽시간에 주위는 물바다로 변했다. 부인과 임씨는 겁을 먹어 서로 껴안고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몸이 바위로 변했다. 이 바위를 '늙을 노'에 '할미 고姑자를 써서 노고바위라고 하게 되었다.
- 지금까지도 날이 몹시 가물면 이 노고바위에서 기우제를 지내는데, 기우제 때에는 아직 어린 수송아지를 쓴다. 송아지를 잡아 목을 벤 다음 그 피를 바위에 칠하면 비가 와서 핏자국을 말끔하게 씻어 내린다고 한다. 기우제가 끝나면 제물로 쓴 수송아지의 머리는 바다에 던져 동해 용왕님께 바친다.
- 전라남도 담양군 추월산 동쪽에는 두 개의 돌 연못이 있다. 이 주변은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데, 이 연못 아래에는 용이 살았다고 하며, 반석 위에 구불구불한 용의 발자국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 용연에 얽힌 이야기는 옛날 마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신하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임금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마마, 바다에 이변이 일어났사옵니다."
"이변이라니?"
"바다에서 산이 하나 솟아서 지금 육지로 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신하의 보고에 조정의 관료들은 갑자기 놀라서 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임금 역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명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징조인지 점을 쳐 보아라."
분부를 받은 일관이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점을 친 다음 점괘를 아뢰었다.
"이것은 길조입니다."
- 일관은 계속해서 점괘를 설명했다.
"지금 이 나라를 지켜 줄 신비한 보물을 주기 위하여 신선이 사는 봉래산 움직여오고 있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곧 해변으로 행차하시어 하늘의 뜻에 감사하시고 보물을 받으시옵소서."
그래서 임금은 신하들을 데리고 보성 앞바다로 나가 다가오는 바다 위의 봉래산을 바라보고 감격하였다. 하지만 산이 다가오는 속도가 워낙에 느려서 점차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 "산봉우리 모양이 거북의 머리와 같고 산 전체가 살아 있는 동물처럼 헤엄치듯이 움직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거북의 머리 같은 산봉우리에는 대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낮에는 두 개로 나누어졌다가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한 개로 합쳐집니다."
임금은 그날 밤 보성에서 묵었는데 바다 쪽에서 신비로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봉래산의 신선이 부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궁금증이 치솟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임금은 직접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음 날 아침에 배를 띄웠다. 그러나 갑자기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무서운 폭풍우가 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금은 오도 가도 못하고 보성에서 이레 동안이나 묵으면서 날이 개기를 기다렸다.
- 여드레 되는 날에야 하늘이 맑게 개고 바다도 거울처럼 푸르게 빛났다. 그동안 산은 드디어 해안에서 뛰어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임금이 배를 타고 산으로 건너가니 기다리고 있던 용이 흑진주로 장식된 옥 허리띠를 공손하게 바쳤다. 왕은 이게 바로 일관이 말하던 나라를 지켜줄 보물인가 보다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용의 안내로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대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물었다.
"이 대나무가 낮에는 떨어졌다 밤에는 합쳤다 한다는데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것은 음양의 이치입니다. 인간의 남녀가 낮에는 각각 맡은 직무에 부지런히 일하고 밤이면 한 이불속에서 한 몸처럼 합해서 자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용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또한 헤어졌다 합쳤다 하는 것은 손바닥 하나만으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지만, 손바닥 두 개가 합쳐지면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는 두 개로 갈렸다가 합칠 때에 묘한 음악이 생깁니다. 폐하께서도 음악으로 천하를 다스리실 기운을 갖고 계시니 이 대를 잘라서 피리를 만들어 친히 부시면 천하에 모든 불행이 그치고 평화로운 극락세계를 폐하의 땅 위에서 이루실 것입니다. 폐하께서 바다의 용이 되시고 다시 천신이 되시어 태평세월을 이룩하실 수 있도록 이 값진 보배 피리를 바치게 된 것이옵니다."
- 왕은 용에게 비단과 금은보화를 사례로 주고 신하에게 그 대나무를 베어 오게 했다. 대나무를 베자 순식간에 산과 용이 사라졌다.
- 임금이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양 땅 추월산에서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하는데, 기쁜 소식을 들은 태자가 신하를 거느리고 직접 마중을 나왔다. 그런데 한 신하가 그 신기한 피리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피리의 구멍은 모두 진짜 용으로 된 것이니 참으로 진귀한 보물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임금이 놀라서 물으니 신하가 대답했다.
"시험 삼아 한 구멍 떼어서 던져 보십시오."
임금은 궁금한 마음에 칼로 피리의 두 번째 구멍을 오려서 던져 보았다. 그러자 피리 구멍의 대부스러기가 갑자기 용으로 화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가 떨어진 곳에서는 맑은 물이 뻗쳐 나와 두 개의 연못이 되었고, 그 아래서 연꽃 봉오리가 솟아올라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 임금은 감탄하여 새로 생긴 연못을 용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환궁해서 이 보물 피리를 보물금고에 소중하게 간직해 두었다. 그 뒤로 나라에서 무슨 변고가 생기면 임금이 친히 이 피리를 불었다. 이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울리면 적의 침입이 평정되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전염병도 가셨으며, 날이 가물 때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면 물이 물러가고, 폭풍도 멎곤 했다.
지금도 담양군 추월산의 용연에는 맑은 물이 여전히 고여 있다고 한다.
- 부석이라는 것은 뜨는 바위라는 의미이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신라 30대 문무왕 때 의상대사 이야기이다.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가서 공부를 한 다음 절을 지으라는 왕명을 받고 부석으로 오게 되었다. 돌아오기 위해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홀연히 웬 여자가 나타나 그에게 절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고명하신 대사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이루는 것을 돕기 위해 왔으니 저를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그대는 누군데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인가?"
의상대사의 물음에 여자가 말했다.
"저는 대사님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온 바다의 용입니다. 부디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해서 의상대사는 그럼 함께 가자고 여자를 배에 태웠다. 용녀라고 이름 붙인 여자는 정말로 도술에 능통하여 배가 ...
- "아무리 버텨봐야 부처님 힘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데, 그래도 계속 거기 있을 테면 이 힘을 보여 주겠다!"
해적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뛰쳐나와 여기저기로 도망을 쳤다. 한놈도 남김없이 다 떠나는 걸 본 다음에야 용녀는 그 바위를 앞에 있는 천수만에 던졌다. 바위는 신기하게도 가라앉지 않고 간만의 차에 상관없이 항상 떠 있어서 사람들 몇십 명이 한꺼번에 올라가서 놀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 뒤로 그 바위 이름을 부석이라 하고, 절도 새로 지어서 부석사라고 하게 되었다. 또한 섬이 하나 날아간 섬이라고 해서 산을 '섬 도'에 '날 비'를 써서 도비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 부석사 절에는 그 후로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그 대웅전 밑으로 샘이 하나 있었다. 공부하는 스님들은 그 물로 목을 축이고 밥도 짓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물줄기가 말랐다. 주지 스님은 앞으로 어디서 물을 구해오나 싶어 걱정에 잠겼다.
그런데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부석바위에 이상이 있어 물이 솟지 않는 것이니 가 보아라.”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주지가 부석바위로 나가 보니 누군가가 거기 묘를 쓴 것이었다. 그 바위가 명당자리라 거기다가 묘를 쓰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설이 있어서 누가 몰래 묘를 쓴 모양이었다. 주지가 사람들을 시켜 그 묘를 파내자 대웅전 아래의 샘에서 다시 물이 솟았다고 한다.
- "수양아버님,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용궁과 인간 세상은 시간의 흐름이 서로 다른지라 다시는 만나 뵙기가 힘들 것입니다. 부디 여생을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노인도 눈물을 흘리며 공주와 작별하고 바다에서 나와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한 달 만에 부인을 만난 노인은 그동안 용궁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한 다음 해인을 꺼내 공주가 말한 대로 뭐든지 되는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산해진미가 나와라!"
해인을 세 번 두드리고 말하니 그가 용궁에서 먹던 진수성찬이 그대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금 나와라' 하면 금이 나오고, '돈나와'라 하면 돈이 나오니 노부부는 졸지에 부자가 되어 여생을 편안히 살았다.
- 하지만 정해진 수명만큼은 어쩔 수 없는 지라 세월이 가서 죽을 때가 되자 두 내외는 용왕의 부탁대로 절을 세웠다. 그 절이 바로 지금 합천에 있는 해인사 海印寺이다. 해인사는 해인이 있기 때문에 새나 짐승이 절에 똥을 누거나 더럽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때 정만인이라는 중이 그 해인을 훔쳐 서양으로 달아난 이후부터 새나 짐승들이 아무렇게나 절에 똥오줌을 누고 있다고 한다. 해인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안타깝게도 알 길이 없다.
- 강원도 강릉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안인진이라는 어촌이 있다. 이 근처에 해령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 동북쪽에 해랑당 海娘堂이라고도 부르는 해령사가 있다. 여기서 모시는 위패는 해랑지신과 김대부지신인데 이들은 죽은 후에 혼들끼리 결혼을 했으며 그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 오랜 옛날 이 마을에 해랑이라는 처녀가 있었다. 해랑은 가난한 어부의 딸이었으나 꼭 좋은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어느 날 해랑은 바닷가에 나갔다가 마을 어부들 여럿이 바쁘게 출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혼기가 꽉 찬지라 해랑도 어서 빨리 결혼을 해야 했기에 젊은 남자들을 살피는 눈길이 남달랐다. 그때 그녀의 눈에 건장한 청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훤칠한 용모에 남성다운 모습을 보고 해랑은 저 사람이야말로 내 짝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하고는 아버지를 졸라 총각과 약혼을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 한참 고기가 잘 잡혀야 할 시절에 이렇게 흉한 분위기가 드니 사람들의 걱정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부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 해랑이 나타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제 소원을 들어주시면 이 마을의 걱정거리가 깨끗하게 사라질 거예요. 저는 시집도 가 보지 못하고서 죽은 게 한이 되었으니 이 마을 높은 곳에 사당을 짓고 남자의 신을 만들어서 걸어 주세요. 그러면 제 한도 풀리고 고기도 다시 돌아오게 될 테니까요."
깜짝 놀란 어부는 잠에서 깬 다음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서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람들은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하고는 마을 언덕에 사당을 세우고 해랑을 신주로 모셨다. 그리고 처녀로 죽은 원혼을 풀어 주기 위해서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여러 개 매달아 놓았다. 그 이후로는 고기가 다시 많이 잡히고 마을에 들끓던 우환도 깨끗이 사라졌다. 풍어를 기원할 때면 이 사당에는 천장부터 처마까지 남근 모양 나무가 주렁주렁 매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 그런데 1930년대에 이 마을에 살던 이장 김천오 씨의 부인이 갑자기 미쳐서 자정만 되면 해랑당에 올라 김대부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김대부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하였다. 마을 노인들은 김씨의 부인에게 아무래도 해랑신이 씐 것 같으니 그대로 해 주자고 했다. 그리하여 위패를 만들어 김대부지신 金大夫之神이라 써서 제삿날을 받았다. 그러자 김씨의 부인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영광에서는 비가 오지 않으면 염산면 야월리 신초마을 앞 해중제단 海中祭壇에 군수가 제관이 되어 용왕수신에게 기우제를 지낸다. 군수가 바다 속 깊이용왕에게 산돼지를 바치면 비가 오는데, 제관은 비가 오기 전에 영광읍성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벼락을 맞기 때문이다.
- 그런데 어느 때에 몇십 년 동안 수없이 기우제를 지냈으나 비가 오지 않은 때가 있었다. 제관들이 벼락을 맞지 않기 위하여 바다 속 깊은 제단까지 가지 않고 해변에서 돼지를 물속에 넣고는 재빨리 돌아오는 정성 없는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지금부터 약 280여 년 전, 임호 군수 때였다. 백성들은 계속되는 가뭄에 대흉년을 맞아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임 군수는 명산을 찾아 기우제를 지냈으나 비는 오지 않았고, 인심은 날로 흉흉해져 갔다.
- "우리 불가의 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이오?"
노인은 꿈에서 깨어난 후 별 이상한 꿈을 다 꾸었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다음 날에도 마을 사람들은 다시 둑을 마저 쌓기 위해 아침 일찍 모두 갯가로 나왔다. 마침 물이 들어왔다가 썰물로 변해서 거세게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물이 다 빠져나간 다음에 작업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며칠 동안 근방을 서성거리고 있던 스님이 지팡이를 들고 둑 가까이로 와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 심각한 표정을 짓고 한참이나 둑을 보던 스님이 말했다.
"둑에 대들보가 없으니 둑이 계속 쓸려나가는 것이오. 집을 지을 때에도 대들보가 필요한데 물을 막는 둑에 어찌 대들보가 중요하지 않겠소?"
마침 옆에 있던 노인은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간밤에 꾼 꿈이 생각났던 것이다.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가 혹시 이 뜻이었던가 하며 노인은 갑자기 무서운 마음을 먹게 되었다.
-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스님을 붙잡고 물속으로 떠밀며 말했다.
"그렇다면 스님이 대들보가 되어 주시구려!"
스님이 물에 빠졌다. 노인은 구할 생각은 않고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스님께서 물살을 막아 주실 동안 빨리 둑을 마저 쌓아야 한다! 흙을 가져와서 부어라! 어서!"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마을 장로가 시키는 대로 가마니로 흙을 떠 와서 둑에 부었다. 스님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들은 미친 듯이 흙을 부었고, 물속의 스님은 점차 흙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 둑이 점점 커져서 건너편 땅에 닿을 만큼 가까이 오자 사람들은 더욱 흥분해서 흙을 퍼부었다. 둑을 파고들던 물살이 멎으며 마침내 둑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흙 아래 스님이 파묻혔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서.
- 사람들은 기쁨에 차서 잔치를 벌이고 술도 마셨다. 그리고는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노인의 꿈속에 다시 스님이 나왔다.
"둑을 쌓았으니 이제 소원을 풀었겠구려."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사람 하나를 파묻어 둑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두려워진 노인은 황급히 둑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둑에 올라서니 어디서 목탁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누가 내는 소리인가 싶어 노인은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녔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저 불경 읊는 소리와 목탁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원안의 둑에서는 지금도 가끔 한밤중에 목탁 소리와 불경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대들보가 된 스님이 둑을 지키며 외는 불경 소리라고 한다.
-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팔팔하시던 원님이 급사를 당하시다니, 이런 불길한 일이 있을까!"
"필시 우리의 정성이 부족한 탓 아니겠소."
"그런 것 같소이다.”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라 종종 벌어지게 되자 6개 고을 원님들은 서로 제를 모시지 않으려고 발뺌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6개 고을원님들로 하여금 3명씩 조를 편성하여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제를 모시고, 각별한 주의와 정성을 다하라고 명령했다.
- 고을 원님들이 남해당에서 제를 모실 때면 시종면 옥야리 마을 주민들이 횃불을 켜들고 남해당 길을 환하게 밝혀 주곤 했다.
세월이 흘러 제각이 낡고 헐어서 마을에서는 남해당을 허물기 위해 목수 30여 명을 동원하여 철거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철거하러 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뇌성과 함께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수신이 노하셨다고 하여 겁을 먹고 철거를 중단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세월이 흘러 철거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사람들이 살펴보니 상량 밑에 쓰여 있는 건물 지은 날짜와 철거 날짜가 일치한 날이라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 남해당 건물은 50여 년 전에 철거되고 지금 현재는 밑바닥까지 드러난 갯벌과 함께 옛날 임금이 피신했던 이야기만이 남아 있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다시 건물이 복원되어 전설과 함께하게 되었다.
- 제주시 오현단에서 동쪽 길을 따라 남쪽으로 얼마쯤 가노라면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삼성사 三姓祠라는 사당이 있고, 사당 안에 삼성혈이라는 구멍이 있다. 이 삼성혈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아득한 옛날 탐진(지금의 제주도)에는 고을나 高乙那, 부을나 夫乙那 , 양을나 良乙那 라는 세 명의 신이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 세 신의 16대손인 고후, 고칭 시대에 이르러 세 신은 서로 힘을 합해 천하를 두루 탐험하기로 하고는 구멍에서 나와 영주산(지금의 한라산)으로 올라갔다.
"저기 저 나무로 배를 만들어 떠나면 어떻겠나?"
"그거 좋은 생각이군. 어서 배를 만들어 천하를 구경하러 떠나세."
그들은 나무를 베어 손수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운 다음 북쪽으로 향했다.
- 며칠 동안 바다를 헤치고 가니 육지가 나왔다. 그곳이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땅이었다. 그들은 거기로 올라가 다시 북쪽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세 신이 강진 땅에 배를 대기 전날 밤, 신라의 서울 서라벌 왕성에서 임금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대궐 남쪽에서 갑자기 큰 별이 솟아오르더니 서라벌을 대낮같이 밝히는 꿈이었다. 이상한 꿈도 다 있다 싶어서 잠에서 깬 왕은 태사를 불러 해몽을 시켰다. 그러자 태사는 이렇게 예언했다.
“간밤의 꿈은 남쪽에서 귀빈이 올 징조입니다. 상감마마. 귀인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서라벌에 이상한 차림새의 세 사나이가 나타나 신라의 왕을 뵙고자 했다. 이미 태사의 예언을 듣고 준비를 갖추고 있던 왕은 당장에 모셔오라고 시켰다. 왕은 그들을 후하게 대접한 다음 성만 있고 이름이 없는 그들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하였다.
맨 처음 고을나를 보고 왕이 말했다.
"얼마 전 동쪽에서 큰 별이 유난히 밝게 궁궐을 비추는 꿈을 꾸고서 그대들을 만나게 되었소. 아마 그대가 별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그대의 이름을 성주 星主라고 부르겠네."
그리고서 양을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대는 얼굴이 아름답고 청초하니 왕자 王者라고 부를 지어다."
양을나는 기쁜 마음으로 왕에게 머리를 숙였다. 왕은 마지막으로 부을나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말이 없고 얌전하여 마치 독 안에 든 쥐 같으니 도내 都內라고 하겠소."
이렇게 세 명에게 이름을 지어 주니 삼성은 기꺼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시 탐진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 왕은 그들에게 비단과 보물을 잔뜩 하사한 다음에 말했다.
"이제 그대들이 돌아가려 하니 짐의 마음이 심히 섭섭하오. 헌데 그대들은 탐진을 거쳐서 우리 신라로 들어왔으니 탐진의 첫 자인 '탐' 자와 신라의 끝자인 '라' 자를 따서 나라 이름을 탐라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소?"
"좋으신 말씀이옵니다. 앞으로는 탐라라고 부르겠사옵니다.”
이리하여 제주의 옛 이름이 탐라가 되었던 것이다.
- 신라를 떠난 고·부·양 삼성이 맨 먼저 닻을 내린 곳은 탐라의 별도진(지금의 제주시 화북동)이었다. 이곳에 상륙한 그들은 머물러 살던 삼성혈이 그리 멀지 않았으나 오랜 뱃길에 시달린 탓에 쉬어가자고 마음을 모았다.
삼성은 실컷 잠을 자고 얼마 후에 가뿐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우리 몸도 풀 겸 활쏘기 시합이나 하고 가세."
이렇게 부을나가 먼저 제의를 하자 고을나와 양을나 두 사람도 찬성을 했다.
가장 먼저 고을나가 활을 쏘게 되었다. 그가 쏜 화살은 일내에 가서 떨어졌다. 다음으로 양을나가 쏜 화살은 이내에 떨어졌고 부을나가 쏜 화살은 삼내에 가서 떨어졌다. 그래서 이것이 지금의 제주시 일도 一徒, 이도 二徒, 삼도 三徒가 된 것이다.
- 활쏘기가 끝나자 이들 삼성은 다시 삼성혈로 돌아가서 동굴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로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는데 바다 저 멀리에서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그 물체는 오색찬란한 광채를 발하면서 육지 쪽으로 떠밀려 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고 보니 그것은 커다란 궤짝이었다.
삼성은 궤짝이 해변에 닿자 신기해서 재빨리 끌어올려 열어 보았다. 그러자 궤짝 안에는 또 다른 궤짝 세 개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궤짝이로다. 대체 어디서 온 것인고?"
- 그들은 작은 궤짝을 꺼낸 다음 차례로 열어보았다.
고을나가 첫 번째 궤짝을 여니 그 안에는 오곡의 종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두 번째 궤짝을 양을나가 여니 그 속에는 온갖 종류의 짐승이 들어 있었고, 마지막 궤짝을 부을나가 여니 그 궤짝에서는 어여쁜 처녀 셋이 사뿐사뿐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삼성은 깜짝 놀라서 처녀들을 보았다. 그들은 우의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천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 예사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세 처녀가 삼성 앞으로 다가와 공손히 절을 하고는 옥이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들은 섬나라 벽랑국 황제의 딸들이옵니다. 부왕께서 말씀하시기를 탐라라는 나라에 훌륭한 세 군주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각기 세 군주의 배필이 되어라 하시어, 저희들이 이렇게 찾아왔나이다. 또한 부왕께서 오곡의 종자와 가축을 함께 보내시며 너희들은 지어미의 도리만을 다할 것이 아니라, 지아비를 도와 탐라국 자손만대에 번영과 영화를 누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부산 영도에 있는 태종대 앞 바다에 바위로 된 작은 무인도가 있는데, 이 조그만 돌섬을 일명 주전자섬이라고 부른다. 이 주전자섬에서 고기를 낚다가 대변을 보면 그날은 종일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어구를 전부 잃어버리고 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이 주전자섬에서 남녀가 정사를 벌이면 반드시 며칠 동안 큰 병을 앓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이 섬에서는 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동삼동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 어느 매섭게 추운 겨울날 어부는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너무나 추워서 가까이 있던 주전자섬에 상륙하게 되었다. 그는 동료 어부들에게 말하지 않고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섬에 불을 피웠다. 그것을 안 동료 어부가 그를 비난했다.
"옛부터 이 섬에서는 불을 피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오늘 자네가 불을 피웠으니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몰라. 각별히 조심해야겠어."
어부는 껄껄 웃었다.
"그런 미신을 믿기보다는 얼어 죽지 않는 편을 택하겠네."
"옛이야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야. 조심하게."
하지만 어부는 동료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저 미신으로만 여길 뿐이었다.
- 추위를 좀 피한 다음 다시 고기를 낚기 시작했으나, 웬일인지 그날은 온종일 피라미 새끼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까 고기들도 물속 깊이 들어간 모양이야."
어부의 말에 동료들은 코웃음을 쳤다.
“공연히 날씨 탓을 하는군. 아까 자네가 불을 피웠기 때문에 이 섬의 신령님이 노하셔서 고기를 한 마리도 안 내주시는 게야."
"자네들은 말도 안 되는 옛날이야기를 고스란히 믿는 모양이구만. 그런 건 누가 그럴듯하게 꾸민 미신일 뿐일세."
- 하지만 결국 그날은 모두가 빈손으로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부는 고기를 낚지 못했다. 동료 어부들은 그가 주전자섬에서 불을 피워 마가 끼었다며 그와 함께 고기잡이 나가기를 피하기 시작했다. 어부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를 되돌릴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그 이래로 그가 하는 일은 전부 다 왠지 실패만을 거듭했고, 결국에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를 본 어부들은 그 후로 주전자섬에서는 아무리 추워도 절대로 불을 피우지 않았고, 신령님이 노하실 만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 "꾹 참고 기다립시다."
사또의 딸은 울면서 선비를 보냈다. 선비는 배를 타고 한참 가다가 어느 섬에 도착하여 작은 오두막에서 다시 글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처녀를 만날 날만을 그렸다.
어느 날 선비가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하얀 학이 종이 한 장을 물고 와서 그의 앞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가 종이를 펼쳐 보니 그 처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연서였다. 선비는 얼른 다른 종이에 이 섬이 어디 있는지 적어서 학에게 주었다. 그러자 학은 종이를 물고 다시 날아갔다.
선비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학은 종이를 물고 곧장 사또의 집으로 날아가 가슴 졸이며 답장을 기다리고 있던 딸에게 건넸다. 딸은 종이를 보고서 장산곶에서 배를 타고 선비가 있는 섬까지 왔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그 섬에서 오래오래 단란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백학이 이 섬을 알려 주었다 해서 '흰 백'에 '날개 령' 자를 써서 백령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신안군 장산면에 용이 되기 직전인 반용과 관련해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장산도의 서남쪽 하의면 상태도가 내려다보이는 곳, 다수리와 성수골 사이 조그마한 무인도에 태이용추가 있다. 이 섬을 사람들은 할미섬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노파도 老婆鳥라고 표기하는데, 섬 전체 면적이 1정 내외 정도이다. 그러나 해안이 암벽이라 해초가 많다.
- 전설에 의하면 옛날 장산도 사람들이 이 섬으로 해초를 따러 갔다고 한다. 해초를 한참 따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벼락이 내리치고 억수같이 비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비가 내리자 사람들은 해초 따던 것을 그만두고 황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타고 폭풍 속을 헤치며 마을로 건너오고 있는데 바다가 갈라지고 거기서 용이 솟구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가장 처음 본 처녀가 손짓을 하며 외쳤다.
"저기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기둥만큼 큰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황급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산도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배가 어디에 부딪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아서 사람들이 뱃전을 내려다보니 아까 하늘에서 떨어진 이무기가 배를 칭칭 감고 있었다.
이무기는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부정한 여자가 내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내가 영영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저 섬에 머물러 살 것이니 아까 소리친 처녀를 저 섬에 내려놓고 가라.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무사히 돌려보낼 것이나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도 다 같이 죽이고 말겠다!"
사람들은 놀라고 겁을 먹어서 어쩌나 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뱃머리를 돌렸다. 처녀는 안 가겠다고 울면서 버텼지만 사람들이 처녀를 섬에 내려놓자 이무기가 처녀를 칭칭 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처녀를 남겨놓고 떠난 배는 무사히 장산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 결국 처녀는 섬에서 이무기와 함께 갇힌 채로 홀로 살다가 할머니가 되어 죽었다. 섬 건너 사람들은 이 처녀가 죽은 다음 섬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섬을 할미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 그도 이 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큰 태풍을 맞아 몰사하고 과부들만 남은 섬이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도에는 남자라고는 없고 떠내려온 고동지 한 사람뿐이었다. 여자들은 그가 일어나자 전부 다 기뻐하며 그를 위해 잔치를 열고 원하는 것을 뭐든지 내주었다. 그리고 매일 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묵게 해 주었다. 고동지는 날이면 날마다 각기 다른 여자를 만나 정을 나누었다.
- 그렇게 이 섬에 익숙해질 무렵, 하루는 비가 와서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부모, 형제가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고동지는 무엇을 봐도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홀로 바닷가를 서성거리며 수평선 너머로 아내의 이름을 불러보고 고향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파도 가락에 맞추어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 이어도 (ᄒᆞ) 이어도 (ᄒᆞ)라
이어 이어 이어도 (ᄒᆞ)라
이엇말 (ᄒᆞ)민 나 눈물 난다.
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는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옝 해라
- 강남으로 가는 길 절반쯤에 이어도가 있으니 나를 불러달라는 내용의 노래였다. 이어도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너무나 슬퍼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되었다. 이 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져나가 누가 불렀는지는 몰라도 노래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 그 후 고동지는 우연히 중국 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떠날 때 이어도 여자들은 모두 슬퍼했으나, 고동지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보내 주었다. 그런데 한 여자만은 그를 보낼 수 없어 그의 뒤를 따라 제주도로 왔다. 고향에서는 지금껏 태풍으로 죽은 줄 알았던 고동지가 살아 돌아오자 잔치가 벌어졌다. 고향에 있던 아내는 그의 목숨을 구해 주었으므로 새로 데려온 여자를 반겨 맞아 세 사람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때 이어도에서 고동지를 따라온 여자를 마을 사람들은 '여돗할망(이어도 할머니)'이라고 불렀으며 사후에는 마을 당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지금 조천리 장귀동산당이 바로 그 여인을 모신 제단이다.
- 하늘에 옥황상제님
땅에는 지신地神님
바다에는 용왕님
하늘과 땅은 천지요
땅과 하늘은 이치가 안 맞아서
어화둥둥 어찌할가
옥황상제 따님하고
용왕님네 아들하고
어화둥둥 사랑할 때
어화둥둥 어찌할고
땅에 땅에 지신님
어화둥둥 어화둥둥
하늘에 옥황상제님
바다에는 용왕님
어찌할고 어찌할고
땅에 혼자 지신님
- 함경남도의 조그만 섬 서호진은 그 모습이 대단히 아름다워 꽃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민요는 그 꽃섬 부근에 수백 년째 전해지는 노래이다.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 옥황상제가 천지를 개벽할 때 동해 북쪽에 만든 아름다운 섬이 바로 꽃섬이었다. 천지를 만든 옥황상제도 이 섬을 보고 감탄하였으니, 그 딸 선녀가 꽃섬에 매료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선녀는 하늘에서 저 멀리 꽃섬의 아름다운 경치를 동경하며 언제 저 섬에 내려가서 꽃과 짐승과 더불어 놀 수 있을까 궁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날씨에 옥황상제가 낮잠을 자는 틈을 타서 선녀는 여덟 필 말이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꽃섬으로 내려왔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한 언덕을 보고 선녀는 너무나 기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런데 그런 선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용왕의 아들인 구룡 九龍이었다. 그는 때마침 꽃섬에 놀러 나왔다가 선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용왕을 찾아가서 애원했다.
"아바마마, 저도 장가를 들 때가 되었는데 청이 있사옵니다."
용왕은 장가를 들겠다는 말에 흐뭇해서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 "구룡이 녀석, 저 가시나무에 찔려 죽게 될 거다."
지신의 말대로 구룡은 나무를 하러 갔다가 가시나무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고 선녀가 애처로운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보, 나는 곧 죽을 것 같소. 내가 죽거든 아이들을 잘 키워 주시오."
선녀의 목 메인 울음 속에 구룡은 결국 죽고 말았다.
- 이 소식을 들은 용왕과 옥황상제는 진노하여 이런 끔찍한 짓을 한 지신을 혼쭐을 내기로 했다. 그것도 모른 채 지신은 구룡이 죽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이제 선녀는 자신의 차지라고 생각하고 꽃섬을 향해 배를 타고 떠났다.
배가 꽃섬이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 갑자기 파도가 치솟고 비바람이 불어오더니 요란하게 천둥번개까지 번쩍이는 것이었다. 지신은 당황해서 배를 가누려고 했으나 요란한 바람 앞에서 배는 어린아이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는 뱃전을 잡은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비바람이 거세져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어떻게든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 지신아! 네가 지은 죄를 알렸다!"
"아이고, 옥황상제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음험한 마음으로 남을 해한 놈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한 법이다."
- 지신이 애원했으나 천황의 벌은 지엄한 것이었다. 뇌성과 광풍은 그치지 않았고 파도는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이런 고초와 시련을 수십 년이나 보낸 다음에야 기진맥진한 지신은 간신히 육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 옥황상제는 선녀를 불러 말했다.
"딸아, 너는 이제 아이들을 놔두고 하늘로 올라오너라. 네 아들과 딸은 그 섬에서 잘 살 것이다."
그리고 여덟 필 말이 끄는 황금마차를 보냈다. 선녀는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남겨놓고 정든 꽃섬을 떠났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간 후 꽃섬에는 그 자손들이 번창해서 조그만 어촌을 이루게 되었다. 선녀와 용왕의 아들의 후예라서인지 꽃섬에는 특히 아름다운 여자가 많다고 한다.
- "저기 섬이 아닌가?"
한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나머지 두 사람도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 정말 섬이 있는 것을 보고, 하늘이 도우셨구나 생각하며 돛을 올리고 노를 저어 섬에 배를 댔다.
섬에는 대나무가 무성했다. 세 사람은 대나무를 헤집고 온 섬을 돌아다녔지만 불행히 인가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줄기 희망마저 사라지자 그들은 대나무 밭에 힘없이 주저앉아 침통하게 침묵을 지켰다.
- 그때 대나무 숲에서 안개 비슷한 연기가 짙게 깔리더니 서서히 사라지며, 그 가운데로 커다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어부는 혹시 폭풍우 속에서 죽어 저승에라도 온 게 아닌가 하는 기분으로 안개 속을 보았다. 마침내 안개가 완전히 사라지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육중한 대문이 열리더니 백발의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하얀 옷의 노인은 광채가 번쩍이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노인의 웃는 모습이 어찌나 자애로운지 세 어부는 자신도 모르게 엎어지다시피 하며 노인의 앞으로 달려갔다.
"여기까지 오느라 먼 길에 수고 많으셨소. 어서들 오시오."
"노인장! 닷새를 굶었습니다. 사람 목숨 살리는 셈 치시고 먹을 것을 좀 주시지 않겠습니까?"
세 사람이 사정을 털어놓으며 애걸하자 노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물은 많지만 인간들이 먹을 밥은 없는데 이를 어쩐다!"
"노인장, 저희 셋은 닷새를 굶어서 기진맥진해 죽을 지경입니다. 아무거라도 괜찮으니 먹을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배가 고프다면 이 열매라도 좀 드시게."
노인이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새빨간 열매를 내밀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세 사람은 허겁지겁 노인이 소맷자락에서 꺼내 준 열매를 받아먹었으나 몇 개 되지 않는 조그만 열매로 허기가 다 가실 리가 없었다.
- 열매를 다 먹고도 어부들이 계속해서 굶주림을 호소하자 노인은 혀를 찼다.
“화식을 하는 인간들이라 어쩔 수가 없구나. 그 열매 하나면 족히 일 년은 살 수 있는데, 앉은 자리에서 몇 개를 먹어치우고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하니."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프니 이를 어쩝니까, 노인장."
"그렇습니다.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세 어부는 염치 불구하고 노인에게 계속 애걸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이 길로 나가서 밥을 구해올 것이니 배가 고파도 잠시 참고 기다리시오."
과연 노인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얀 쌀밥이 그득한 그릇을 들고 돌아왔다. 세 어부는 감사하다는 말도 잊은 채 게걸스럽게 밥을 먹었다.
마침내 배가 불러오자 그들은 부끄러워 노인 앞에서 고개도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관대한 얼굴로 말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아침 일찍 떠나시오. 이 그릇은 양산 통도사에서 빌려온 것이니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돌려주고."
- 세 어부는 엎드려 노인에게 감사를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하룻밤 쉬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난 그들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 노인 앞에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띤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더니, 어제 먹었던 그 빨간 열매 세 개를 꺼내 어부들에게 각각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 열매를 품에 잘 간직해 두었다가 석 달 열흘을 채운 뒤에 먹으시오. 그렇게 하면 눈이 맑아져서 이 섬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오. 그때는 식구들까지 함께 데려오시오. 이 섬에 와서 살게 되면 걱정 근심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커다란 절구를 만들어 쌀을 찧어 먹으면 먹을 것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내 말을 흘려듣지 마시오."
노인은 어부들에게 돌아갈 길을 가르쳐 준 다음 홀연히 사라졌다. 그제야 어부들은 그가 신선인 줄 알고 노인이 서 있던 자리를 향해 몇 번이나 절을 한 다음 섬을 떠났다.
- 노인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한참 배를 저어 울산 방어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동
배를 대고 어부들은 그릇을 돌려주러 양산 통도사로 향했다.
"스님, 이 그릇을 돌려 드리러 왔습니다만."
어부들이 그릇을 내밀자 스님은 깜짝 놀랐다.
"사흘 전쯤 풍채 놓은 노인분께서 하얀 옷깃을 바람에 나부끼며 나타나 그릇을 빌려 가시며 오늘 돌려주겠다고 하시더니, 정말로 돌아왔군요."
- 어부들은 그릇을 돌려준 다음 고향인 평해로 돌아왔다. 다시 예전처럼 고기잡이를 하며 지내다가 석 달 열흘이 지나자 그들은 신선으로부터 받아온 열매를 꺼내서 먹었다. 열매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은은한 향기를 뿜었으나 별다른 맛은 없었다. 하지만 열매를 먹자마자 그들의 눈에는 광채가 감돌았고, 세상이 전보다 몇 배는 더 환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노인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날을 받아 온 가족을 데리고 뱃길을 떠났다. 노인의 말대로 그들은 쉽게 섬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나, 전에는 하나였던 섬이 이제는 세 개가 되어 솟아 있었다.
- 이 섬은 실은 마음씨 착하고 의가 좋은 세 어부를 갸륵하게 여긴 해신이 그들이 평생 단란하게 살 수 있도록 선물로 준 것이었다. 세 사람은 각각 섬 하나씩 차지하고 평생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전설을 전해 들은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해공 海公이라고 부르고 이 섬을 죽도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의 죽도와는 다르고, 항상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한 번은 울진의 한 어부가 죽도에서 떠내려온 것 같은 커다란 대나무 절구를 건졌는데, 그 절구는 한 아름이 넘는 둘레의 대나무를 통째로 잘라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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