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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케 에베르츠] 9일간의 영혼 여행 - 임사체험으로 알게 된 의식과 육체에 관한 새로운 진실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by 일루젼 2025. 6. 1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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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케 에베르츠 / 추미란
출판 : 샨티
출간 : 2025.02.10


       


내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 타인에게는 유용할 수도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동시에 내게 매력적이지 않기에 타인도 그것에 끌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저 '나'를 규정하는 것들과 거리가 멀다고 해서 '악'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살해와 폭력, 고통 등 자극적인 면이 있는 개념들을 어려워한다.

물론 이런 개념을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든 한 끼의 식사 -채식이라 할지라도- 가 '악'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이해한다. 고통은 잘못된 방향성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으며, 폭력은 적절한 규정 하에서의 스포츠나 경쟁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끼지는 못하니, 여전히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문득 얼마 전 매체에서 접한 표현이 생각났다.

최근 세대는 실제로 폭력을 접하는 일이 드물어 오히려 그에 대한 공포심이 옅다고. 체벌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에 학창 시절을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표현이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쉽게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부연 설명에도 동의했다.

 

과거에도 누군가가 비슷한 취지로 말했었다.

전쟁의 양상은 '미사일', 다시 말해 '장거리 포탄'의 발명으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신체의 연장선상에서 사용되는 창, 칼 등이 주가 되던 전쟁은 주먹다짐에서 아주 먼 곳에 있지는 않았다고.

활과 총까지만 해도 상대가 내 '시야' 안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목표물을 완전히 대상화할 수는 없었다고.

하지만 상대를 전혀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버튼 하나를 누름으로써 '공격'을 할 수 있게 된 순간 인간은 상대 진영 또한 '인간'이라는 걸 아주 손쉽게 잊을 수 있게 되었다고. 

 

동시에- 

우리는 수없이 잊고 다시 경험하는 굴레를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개념과 이상은 - 비록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인식할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자유와 평등은 자본이라는 새로운 질서 아래 계급화 되고 있고, 물리적 체벌과 영아의 사망은 희미한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새 체계가 자리 잡고 나면 그에 익숙해진 존재들에게 이전의 개념은 다른 형태성의 옷을 입고 나타나 '이상'이 될 것이다.

르네상스, 레트로, 향수...

 

내가 '나'일 수 있는 건 '연속성' 덕분이다.

그렇다면 모든 의미에서의 '연결성' 또한 '연속성'의 연장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새로운 영점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지도. 

 

그러나 그렇게 돌고 도는 '영점 잡기'의 과정 중 어느 한순간에도 '정답'은 없다. 

언제나 '그대로 완전함'만이 있을 뿐이다. 

스노볼 안의 풍경이 매 순간 변화하면서도 언제나 완전하듯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걸어 다니는 기적, 강력한 정신의 기적, 의식적 창조의 기적...

이것을 기억하세요!

당신은 걸어 다니는 기적, 마르지 않는 창조력의 기적...

당신에게 매 순간 선택의 힘이 있음을 아나요?

당신은 걸어 다니는 기적, 무한한 힘의 기적...

당신은 마음의 힘을 사용하고 있나요? 당신은 어디를 보고 있나요?

무력한 척하기를 그만두세요! 힘없는 척하기를 그만두세요!

보잘것없는 척, 의존적인 척, 묶인 척, 무능한 척하기를 그만두세요!

당신은 걸어 다니는 기적, 무한한 창조력의 기적...

잠에서 깨어나 진짜 자신을 기억하세요!

그러려고 당신은 여기에 있는 거예요!

 


 

- 이 이야기는 내 몸이 불길에 휩싸였던, 그 심각했던 순간부터 시작된다. 지금도 나는 그날 무자비하게 내 얼굴을 강타하던 그 불길의 소리가 들리고, 내 양쪽 폐를 막던 뜨거운 공기가 느껴진다. 나는 말 그대로 불행이 나를 덮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고, 더 이상 거기에서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 온몸이 활활 타올랐다. 불길이 두 다리에서 엉덩이로, 가슴께로 내 얇은 운동복을 먹어치우며 거침없이 타 올라오더니, 이내 길고 수북한 내 머리카락과 얼굴을 움켜잡고 타닥타닥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불과 몇 분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작된 불길,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나의 절박한 노력은 모두 실패했고, 그때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죽는다!' 그런데 그 순간 공포나 두려움은커녕 내 안 저 깊은 곳에서 더할 수 없는 고요와 평온함이 올라왔다. 갈망하던 공기 대신 뜨거운 불길로 숨이 턱턱 막혔지만, 긴장은 모두 사라지는 듯했고, 당연하다는 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준비가 되었어!'

- 그리고 다음 순간, 지금도 여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로 그 순간 내 인생에서 가장 경이로운 여정, 가장 큰 깨달음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 그렇게 생각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즉시 나는 불타는 내 몸에서 벗어나 갑자기 2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게 되었다. 그곳에서 놀란 채로 불길에서 나오는 그을음이 천장을 검게 물들이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중립의 느낌이 나를 압도했다. 불에 활활 타고 있는 내 몸은 비틀거리며 뭐든 잡아보려 했지만, 무자비한 불꽃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이 뜨거운 열기만이 느껴졌다. 


- 그러는 동안 나는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고통이나 두려움 없이 중립적인 관찰자가 되어 그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거실로 뛰어들어와 불타고 있는 나에게 몸을 던지는 것을 보았고, 구급차가 오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내 몸이 헬리콥터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 가는 길도 내내 함께했다. 의사들이 나를 살려내려 애쓰는 모습도 하나하나 다 지켜보았고, 내 몸을 인공 혼수상태로 유도하는 모습도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내가 여기 곁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부터 나는 두 개의 나로 존재했고, 내 몸과 어떤 연결도 느낄 수 없었다.

- 하지만 이 경험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마침내 내 몸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몸도 없고 경계도 없는 의식 상태가 된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 심각한 화상을 입은 내 몸이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던 9일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모든 인간적인 사고와 감정 너머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내가 한 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당연히 당시에는 몰랐지만 갈수록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9월의 그 차갑던 저녁 나 스스로 말 그대로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것은 바로 9일 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 말이다. 

- 지금,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가 누군지 몰라서가 아니라 단지 짧은 몇 문장으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그냥 눈을 반짝이며 "나는 '모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대답한 적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조심스레 "나는 죽음 전과 죽음 후 이렇게 두 번을 사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하는 게 더 편하다.

- 그 일이 있기 전의 삶을 기억하는 것도 아주 어렵게 느껴진다. 그 무렵의 일이나 상황을 하나도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먼 옛날 일처럼 혹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죽음 이전의 삶은 오래된 과거의 기록 같은 것이 되었고, 이제는 그 위에 새롭고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 덧씌워진 것 같다.

-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꼭두각시 인형처럼 느끼곤 했다. 내면의 공허를 만성화하는 데 성공한 꼭두각시 인형 말이다. 나는 존재는 했으나, 오로지 지능적으로 기능하고 배운 대로 착실히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으로 알지 못했고, 내면은 공허했다. 당시 나는 충만함이나 행복한 상태와는 한없이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꼈고, 늘 '벗어나고만 싶었다. 내 몸에서, 내 감정들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다고 느꼈던 내 삶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오늘 나는 그때의 나였던 그녀를 아주 다정한 눈으로 돌아본다. 자기 안에 지금의 내가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에게 사랑을 보낸다. 그녀는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더할 수 없이 외로웠다. 살면 살수록 진정한 자신을 점점 더 까맣게 잊어버렸던 그녀는 바깥세상에서 의지처를 구했고, 물질적 안정과 명성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점점 더 좁아지기만 하는 막다른 길로 자신을 몰아갔다. 결국 어둡고 꽉 막힌 벽 앞에 서게 될 때까지. 그녀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법을 잊어버렸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지 잊어버렸다. 

- 내 몸이 혼수상태에 있었던 9일 동안 나는 모든 인간적인 이미지들이 부서져나가는 세상 속으로 인도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훨씬 더 크고 더 지혜롭고 더 전체적인 '나'로 통합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그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 9일 동안 나는 내 삶의 의미와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 대해 포괄적인 교육을 받았고, 창조의 근원으로 들어갔으며, 내 모든 세포 속에서 그 창조의 근원을 다시 발견했다. 

-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바뀐 시각으로 두 번째 인생을 살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삶이 경이롭지 않은 때가 없다. 나는 한없이 자유롭고 기쁨으로 넘친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더할 수 없이 편안할 뿐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운전대를 맡긴 '진정한 나'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는 내 몸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을 하게 두고 몸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간다. '~을 해야 한다' 같은 말은 이제 내 삶에서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일지 않기 때문이다. 야망이라든지 동기 부여 같은 낡은 개념들도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 그 대신 내면의 만족과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삶을 산다. 나는 나를 통해 드러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오도록 놔두는 법을 배웠다. 그 흐름을 나는 이제 거스르지 않는다.

- 바로 그래서 현재 내 인생은 그야말로 하나의 기적이 되었고, 나는 이 전환을 그토록 의식적으로 이루어낸 나 자신에게 매일 감사한다. 또한 매 순간 나를 무한한 감사로 가득 채운다. 그 순간이 좋든 좋지 않든 말이다. 나는 '현재'를 산다. 그래서 당연히 나의 마음도 내 삶에서 예전과는 아주 다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으며, 내 모든 발전 가능성을 내 삶에게 맡긴다. 예전에 나 자신에게 "아니"라고 말하던 것을 이제는 "좋아!"라고 더 크게 말하게 되었고, 이는 매일 새롭게 나를 감격시킨다.
 
- 나는 인생의 많은 것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비교적 어린 나이일 때부터 했다. 일찍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태어난 이 세상이 어쩐지 나에게는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 그런지 딱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내면에서 자주 어떤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가 진짜 세상의 모습을 보려면 깨어나야 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나 외에 다른 누구도 그런 목소리를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들이 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왜 누가 누구보다 위에 있으려고 하는지, 왜 권력 싸움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큰소리, 논쟁과 싸움, 권력과 무력, 이런 모든 것들이 어린 내 눈에도 보였지만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마치 역대 최고의 마술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숨 막히는 환상들로 나를 놀라게 하는 거대한 마술쇼의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진실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광경을 놀라워하며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순간순간 변했고,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전혀 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어린 머리로는 왜 그렇게 모든 것이 내 생각과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여기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 진짜 현실일까? 아니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실이라고 느낀 것이 진짜 현실일까? 이곳은 꿈속 세상일까? 환상의 세계? 환영? 그렇다면 이건 너무 놀라운 마법이 아닐 수 없다! 정말 현실 같고 너무 생생하고 너무 진짜 같으니까 말이다.

- 어린 시절 내 느낌이 옳았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많은 일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바로 그 '진짜 현실'로 들어가 그동안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모든 것을 체험하게 될 거라고 그때 알았더라면, 내 인생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만큼이나 내가 절실히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경험이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다는 것을 몰랐다.

- 그렇게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는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위에 오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하나둘씩 배워나갔다.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주변의 필요에 나를 맞추고 세상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법을 배웠다. 주체적인 삶을 살려면 건강한 자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을 나는 계발하지 못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에 귀 기울일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고, 그러자 이내 나 자신이 점점 더 초라하게 느껴지고, 삶 앞에서 무력해져 갔다.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통스럽게 경험했기에 언제 어디서든 불쾌감을 주거나 부정적으로 비치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타성대로 살아가는 데 익숙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내면의 목소리는 점점 더 침묵했다. 나는 주변의 인정을 받거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만 움직였다.

- 나는 사랑받거나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성과를 내야 한다고 믿었다. 단지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끊임없이 나 자신을 굽히고 배신했으며, 능력주의 사회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 지쳐 쓰러질 정도로 애를 썼다. 그리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나 자신과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법도 배웠다.

- 그것은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한 순간이었다. 또한 내면의 완전한 고요, 아주 평화로운 고요의 순간이었고,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 일어날 일에 완전히 항복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내려놓음'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 그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내맡기는 것'이다. 싸우기를 멈추고, 더 이상 저항하지 않으며, 지금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내려놓는 법을 몰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내려놓을 수 있으려면 무언가를 하거나, 바꾸거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붙잡고자 했던 것을 그만 ‘놓아주는 것'이 전부였다.

- 그런데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묘사하듯 그 순간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이 옳았고 그대로 좋았다는 확신이 가득히 들어찼다. 내 마음속을 음울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비애도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일도 전혀 없었고, 어떤 의무감도 들지 않았다. 그저 끝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그때까지 내 삶에서 중요했던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 절대 없어서는 안 되거나 정말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정말 나쁜 것도 없었고, 정말 대단한 것도 없었다. 나는 그동안 내 인생을 쓸데없이 무겁게 만들었고 너무 많이 애를 썼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을 무언가를 위해 싸워왔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성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자신을 얼마나 희생했는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호감을 샀는지, 사회에서 얼마나 역할을 잘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좋았다. 아무런 평가도 필요 없었다. 

- 나는 하나의 문을 통과할 준비가 되었고, 그때까지의 삶에서 중요했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놓아줄 준비가 되었다.

- 시간감각 또한 완전히 사라졌다. 그 모든 깊은 깨달음이 한두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쉴 정도의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하지만 그 순간은 나에게는 작은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그때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몇 페이지에 걸쳐 써내려 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한 순간에 불과했다. 나 자신을 완전히,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적으로’, 더 높은 권위의 손에 맡긴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행사하던 모든 통제권을 내려놓았고 나 자신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요한' 가운데, 심지어 호기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 일이 무엇이든 전혀 상관없었다!
 
- 모든 것은 마법처럼 나를 매료시켰으며, 나는 그에게 더할 수 없이 친밀감을 느꼈다.

"당신은 죽지 않았어요. 놓아줘요, 안케. 다 놓아줘요."

그의 목소리는 사랑으로 가득해서 감사하며 안기고 싶은 아늑한 품처럼 느껴졌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의 평온한 대답이 들려왔다.

“알아요. 모든 대답을 듣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을 다 설명하고 보여줄게요. 하지만 지금은 놓아줘요. 안케, 지금은 그저 여기 이 빛을 받아들이고 그 주파수에 익숙해지면 돼요. 모든 것은 적절한 때에 이루어질 겁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곧 이해하게 될 거예요."

- 나는 우주 의식에 다가가면 갈수록 이곳의 모든 것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걸 점점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떤 생각이든 떠올리자마자 그 생각 속에 담긴 모든 것이 동시에 나타났다. 질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에 대한 모든 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감정들은 거기에 없었다. 어떤 감정도 그 포괄적인 인식 awareness (또는 앎) 앞에서는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기 이 미묘한 차원에서는 그 무엇도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고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상태'였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지탱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상태.  

- 우리는 우리 인생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지만 그들과 우리 사이의 연결, 우리가 하나임은 보지 못한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 안에 있거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착각이다. 하지만 이 치명적인 오해가 전반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우리 세계관의 바탕이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 이것은 마치 양손에 부드러운 모래를 거머쥐고는 그것이 전체 사막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우리 인간은 3차원 진동 주파수에 의해 시공간에 묶여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시간 순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는 시간의 한 지점에만 집중할 수 있고 다른 것은 모두 화면에서 '차단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며 더 높은 의식의 차원에는 접근할 수 없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다. 이런 분리의 착각을 극복하고 모든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더라도 전체 그림을 온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 하지만 우리 영혼은 다차원적인 의식의 장이다. 우리 영혼은 모든 것을 동시에, 그러니까 다차원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훨씬 더 높은 주파수로 진동한다. 나는 영혼을 우리의 무의식과 근원(우리의 영혼이 나온) 사이를 잇는 연결 고리로서 직접 경험했다.

- "놓아줘요, 안케. 다 놓아줘요."

나의 동행인 빛의 형상의 말이 메아리처럼 내 안에서 울려 퍼졌고, 그러자 깊은 사랑의 흐름이 다시 나를 채웠다. "집에 돌아왔다"는 그 느낌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 순간 느꼈던 내면의 기쁨, 그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 빛의 형상은 내가 여기서 '그'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고, 사랑이라는 말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성질을 갖고 있었다. 무한한 지혜와 한없는 공감 그리고 선함에서 나오는, 상상가능한 모든 것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가 '나를 향해' 보여준 무조건적인 사랑은 정말이지 놀랍고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완전하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의 사랑은 지극히 친근하고 무조건적이며 나를 100퍼센트 인정해 주는 사랑이어서 지금도 여전히 나를 감동시킨다. 

- 그는 나를 점점 더 자신 가까이 끌어당기며 내가 그의 에너지 강도에 천천히 적응하면서 익숙해질 수 있도록 했다. 나는 그가 자기 에너지의 작은 한 부분만 나눠주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이상은 내가 절대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순간 나에게 확실한 것은 다시는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절대로! 
내가 그의 에너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가 천천히 나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그는 보편 언어라 할 수 있는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그것은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대화였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그는 즉시 이미지들을 추가했다. 그가 특정한 연결 관계를 명확히 설명하고자 할 때는 이미지 라이브러리 전체가 부채꼴 형태의 다차원 홀로그램으로 펼쳐졌다. 
그는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내 생각을 아는 것 같았고, 나는 바로바로 다차원적인 답을 얻었다. 때로는 그 답이 너무 방대해서 내가 다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 그것들 사이의 연결 관계가 분명히 보였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홀로 뚝 떨어져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거나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한 일들에 깊은 의미가 있었음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불안해하며 교실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무서웠고 새로운 환경에 주눅이 들어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꾹 참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느낌은 나이가 들어서도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화재사고 직전 내가 무력감을 느꼈을 때는 그 느낌이 정점에 달해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그 불안감을 없애려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던가? 계속해서 실패하면서 말이다. 이제 나는 그 연결 관계를 이해했고 내 삶과 내 존재의 의미를 아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 여기서도 나는 먼저 아버지와 내가 영적인 차원에서 서로를 아끼며 나누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 아버지는 감정적으로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내 가치를 결정짓는 척도였고 막강한 선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 개방적이고 자발적이며 호기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늘 내 정신을 자극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내 한계를 뛰어넘게 했으며,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도록 가르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한 내 안의 독창성과 나만의 의식, 나 자신과의 연결 감각을 질식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행동으로 인해 나는 열등감과 무력감을 충분히 맛보았다. 
영혼의 관점에서 나는 이제 때로 큰 트라우마를 주기도 했던 그 모든 경험들이 나의 아주 개인적인 인생 계획 속에 얼마나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지,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나의 주제에 얼마나 완벽하게 부합하는지를 보았다. 
비록 지금도 나는 내 인생 계획을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내 영혼의 성숙을 위한 크고 포괄적인 과정에 얼마나 완벽하게 기여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 수많은 전생에서 아버지와 나는 서로에게 선생이었다. 우리는 서로 싸우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가 과학자로서 자연법칙 분야에서 아주 유사한 연구에 골몰하는 장면을 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의심했고 상대가 하는 일을 계획적으로 방해하고자 했다. 우리 사이에는 대체로 생산적인 협력이 아니라 경쟁의 기류가 흘렀다. 나는 아크나톤 Akhnaton (BC 14세기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 - 옮긴이) 시대 그의 학생으로서 그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경청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무한했고, 내가 이른 나이에 죽을 때까지 복종하며 그를 따랐다. 수많은 생에서 우리는 경쟁자였고 적수였으며, 또한 서로의 선생이었다. 우리가 늘 서로를 자극하고 고무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바로 이번 생에서처럼.

- 빛의 존재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의 역할을 보여주며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내 남편이나 아이들의 과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와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모든 사람의 과제까지 보여주었다.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람들은 내가 주인공을 맡은 인생 영화의 아주 훌륭한 조연들이었다. 

- 나는 모든 것이 정확하게 조율되었음을 알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든 것이 서로 잘 들어맞았고 의미가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랬다. 진정한 영혼의 위대함 앞에서 우리 인생이 얼마나 미미한지 깨닫게 된 것이 더없이 좋았고, 나의 시각은 엄청 넓어졌다.

- 우리가 더 높은 영혼의 수준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특히 더 큰 깨달음이 왔다. 분리는 없으며 모두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우리가 같은 근원에서 나온 '하나'라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이제 내가 겪은 사고와 빛의 존재와의 만남이 훨씬 더 큰 계획의 일부라는 것도 분명해 보였다. 그 계획을 내가 아직 다 알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되면, 다시는 무지로 돌아갈 수 없다.

- 우리가 무엇인가를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모두 착각이다. 우리와 가깝거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같은 이유로 이곳에 와 있으며,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과 도전은 예외 없이 우리의 발전을 돕는다. 


- 나 자신에 대한 저항이었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이 나에게 유전자, 사랑, 지혜, 안목뿐만 아니라 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도전 과제들도 함께 주었음을 알고 나니 그 끝없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나는 부모님이 나에게 가장 어려운 드라마에 몰입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겪은 모든 고통과 좌절,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그들의 의도였고 또한 나의 의도였다. 나는 바로 그런 경험이 필요했고, 나 스스로 이번 생에서 그런 경험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부모님은 단지 그런 선택이 가능하도록 도와준 '조력자들'이었다. 동시에 나 자신도 그들의 인생 계획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알았고, 이것 역시 내 시야를 확장시켜 주었다. 압박, 구속, 두려움에 대한 나의 반항도 부모님에게 무수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나의 행동도 부모님에게 완벽했고, 부모님도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 완벽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큰 사랑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며 그분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인정을 해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부모님과 화해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했다. 
 
- 좋은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인생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이 더 높은 질서를 따른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놀랐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이 완벽하게 조율된 계획에 따라 일어났고, 나는 언제나 나에게 완벽한 장소에 있었다. 나 스스로가 나를 위해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 나는 태어나기 전에 내 인생을 위한 상당히 정교한 계획과 전략을 짰다.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주제가 또 등장했다. 나는 인간의 몸으로 아주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는데, 내가 선택한 83년이라는 인생 안에 그 모든 소망을 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어떤 타협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급진적인 경험과 극단적인 도전, 커다란 행운을 모두 원했으므로, 그렇게 해야만 원하는 것을 모두 이번 생에서 경험할 수 있을 터였다.

- 나는 다른 많은 영혼들 가운데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야심찬 계획에는 현재의 부모님이 가장 적합했다. 부모님도 극한의 삶을 살고자 했으므로 자신들의 의도에 도움이 될 아이를 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만의 창의적인 인생 계획을 함께 세웠다. 각자를 위한 핵심 사항들을 분명히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대한 대비도 충분히 해두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우리는 살면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각자만의 속도로 갈 수 있는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 우연은 없다.
우리의 관여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우리에게 나쁜 일은 없으며,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한 가지 점이 특히 중요했다.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이 극단적인 게임에서 길을 잃을지 어떨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럴 때를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모든 경험과 도전에 어떻게 대처하든 상관없이 인생의 중간 단계에서 한 번은 '깨어나라'는 결정적인 '알람'을 듣도록 만들어두었다. 나는 늦어도 그 시점에는 깨어나고 싶었다. 그때까지 설령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지라도 그 결정적인 알람이 울리면 길을 찾게 될 터였다.

- 이 책은 그렇게 내가 계획해 둔 '알람'에 관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특별한 경험, 그리고 나를 영혼의 영역으로 데리고 가 모든 것을 가르쳐준 그 이름 없는 빛의 존재, 이 모두가 내가 미리 계획 ... 
 
-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한 걸음 크게 더 내디딜 준비가 되었나요? 당신이 정말로 누구인지 알 준비가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 준비가 되었냐고요?" 나는 웃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당신과 매우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진 이미지와 깨달음은 내가 그때까지 가능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뛰어넘었다. 내 가족들과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은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었다. 그때쯤에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그가 보여준 것은 내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 그는 나에게 직접 이미지로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러고도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서야 나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임을 곧 이해하게 될 거예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 개인이나 단일 개체가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의 가족에 속해 있으며, 당신의 일부인 동시에 당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답니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무엇보다 그의 말이 내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느낌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 하지만 뒤따라 일어난 일에 나는 힘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아니 그의 전체 모습이, 특히 그렇게나 현명하고 그렇게나 사랑과 신뢰를 주던 그의 에너지 진동이 바로 내 눈앞에서 바뀐 것이다. 나는 어떤 강력한 에너지의 파도에 부딪혀 무릎을 꿇었고, 이제 그의 목소리는 강력하고 장엄하고 숭고하게 변해 있었다.
"안케, 이제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 보여줄게요."

러더니 그가 내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고, 그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쉰 듯한 짧은 시간이 지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는 그가 자신의 세상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나의 현실로 들어온 것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모든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도 없고 '나'도 없으며, '위'도 '아래'도 없고, 전생이나 다른 영혼들도 없었다. 이전에 '나의 바깥'이라고 인식했던 모든 것이 갑자기 내 안에서 나와 하나가 되었다. 갑자기 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것과 앞으로 있을 모든 것이 된 것이다.

- 내가 들어가 있던 그 포괄적이고 무한한 의식을 말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경험하는 모든 것을 분류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정신으로는 그렇게 완전한 어떤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나로서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상태를 설명하자면 비유를 통할 수밖에 없다.

- 당신이 자신의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에 맺혀 있는 피 한 방울이라고 상상해 보자. 당신을 이루는 모든 것, 자신에 대해 당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이 그 작은 피 한 방울 속에 들어 있다. '당신'은 이 피 한 방울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당신 바깥에 있다.
이제 순수한 의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우주적 바다 같은 것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 잠시 눈을 감고 느껴보라! 그 핏방울이 되어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떠올려보라. 당신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모든 것, 당신의 과거, 당신의 경험, 당신의 몸 등등... 당신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떠올려보라. 당신은 그 핏방울이고, 당신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그 핏방울 안에 통합되어 있다.
이제 손가락 끝에 있다가 광활한 바다, 모든 창조물을 품고 있는 바다로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것을 느껴보라. 당신이 이 바다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바다에 용해되고 확장되는지 느껴보라. 
당신에게 속한 것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할 수는 있다.

- 나는 어떻게 그렇게 외롭다고 느끼고, 마치 신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아니 벌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그 오랜 시간은 단지 이 포괄적이고 영적인 연결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제한적인 마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임 oneness에서 나왔다. 이 하나임에 대해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만 몸을 가진 인간으로 사는 한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기는 불가능하다.  

- 지성은 언제나 시작과 끝, 이전과 이후를 생각하므로 이런 경험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실을 경험하자마자 지성은 붕괴되고 만다.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높거나 낮다든지 크거나 작다 같은 범주로 분류할 수도 없다. 우리의 지성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존재’에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기존의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멈춘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 그것은 임사체험 후 나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지성은 패배를 인정했고, 덕분에 나는 그 무한한 의식과 계속 연결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상태는 변함이 없다. 또한 이 상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의식적으로 그 상태에 몰입할 수 있다. 나는 빛의 존재도 여전히 의식하고 있으며 늘 그가 곁에 있음을 느끼고 있다. 

- 다시 몸으로 돌아오고 난 뒤 나는 그가 내 질문에 계속 대답도 해주고, 조언도 해줄 것이며,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그에게 묻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런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내 옆에서 웃으며 서 있었지만 나의 길은 나 혼자서 찾게 했다. 다시 돌아온 후 내려야 했던 수많은 결정 가운데 그가 내려준 결정은 하나도 없다. 어떤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과정에도 그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대체로 그는 내 앞에 놓인 수많은 가능성들을 보여주기만 했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기뻐해 주었다.

 

- 몸으로 돌아온 직후에는 그런 그의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새로이 깨달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내 삶에 통합할 수 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힘든 상황에 직면해서 다시 슬퍼질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고 싶었지만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나에게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 그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순간들에 그는 단지 "안케,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요. 자신의 느낌에 따라 결정하세요. 모든 것이 당신에게 열려 있어요"라고만 했고, 그럴 때면 나는 실망하곤 했다.

- 나는 스스로 결정 내리기를 여전히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치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면서 아버지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 그의 그런 태도 뒤에 숨은 의도와 그것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는 훨씬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 내면의 힘을 끌어내 주었고 내가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내가 가진 가능성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내 힘으로 선택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야만 내가 결정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옳고 그름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우리 삶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성장하고 자기 삶에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의미이다.
선택권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

- 아들의 침대 맡에 앉아 아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던 어느 날 밤이 기억난다. 아들은 비록 버겁긴 하지만 어떤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시기에 있었다.

"엄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줘요."

아들은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 나는 네 인생의 증인이야.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테고 너를 지켜볼 거야. 하지만 나는 네가 내릴 결정을 대신 해 줄 수는 없어. 너 혼자서도 잘 결정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찾고 있는 모든 답은 이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 이미 존재하고 있단다. 너에겐 무엇을 할지 선택할 자유가 있어. 선택하고 경험하면서 너에게 좋은 게 뭐고 좋지 않은 게 뭔지 너 스스로 찾아보렴. 넘어져도 괜찮아. 네가 택하는 길에 잘못된 길은 없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을 통해 너는 소중한 경험을 쌓게 될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도 않을 테지. 내 말을 믿어도 돼. 네가 비틀거리거나 넘어져도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네가 완벽한길을 발견할 때도 난 그 길에서 너와 함께 너의 승리를 축하할 거야. 너는 이제 성장했고, 너 자신을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 나는 네 선택에 절대 간섭하지 않을 거고, 언제나 네 선택을 존중할 거란다. 네가 정말로 위험에 빠질 때는 빼고 말이야. 그때는 내가 너를 잡아줄 거야." 

- 나는 이 대화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한 말에 나 스스로도 놀랐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말 같았고,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득한 말이었다. 나의 친구이자 스승 같은 빛의 동행자도 그와 똑같이 사랑 가득한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와 함께하고 있다고 느낀다.

-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나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상을 주기는커녕 죄책감으로 자신을 처벌했다. 그렇게 나는 원래의 나를 점점 잃어갔고, 그러자 기쁨도 차츰 사라졌다. 나는 세상에 나를 꿰맞추고 복종했으며 나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숨기 시작했다. 고치는 항상 나와 동행하며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했다. 

- 나는 내 인생의 여러 시기를 보았는데, 앞뒤로 돌려가며 볼 수도 있었고, 더 보고 싶은 상황이 나오면 멈추고 들어가 그 상황에 완전히 몰입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내가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내 인생의 특정 '전환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른 결과들을 보면서 만약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 많은 사람이 바라는 부나 명예, 완벽한 가정이 주는 행복 같은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것들을 추구했더라도 내 삶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간 길과 가보지 않은 길을 보았고, 나의 재능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배움의 단계에 있는지,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 가엾은 작은 아이를 보며 깊은 연민을 느꼈다.

'저게 정말 나였나?'
자신에게 어떻게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자신의 본성을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그리고 가차 없이 파괴할 수가 있을까? 자신을 세상에 맞추고 세상에 순응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부인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도 수시로 심판하고 재단했다. 나는 타고난 직감을 신뢰하는 법을 잊어버렸고, 내 안의 모든 것을 통제했다. 자신을 사랑하기는커녕 어떤 일에서든 비난을 쏟아부었다. 

- 나는 내 삶이 비난과 질책에 대한 두려움으로 얼룩져 있는 것도 보았다. 내가 한 모든 일은 오로지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를 가장 많이 비난하고 가장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겉으로는 내가 항상 사랑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싸움은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나 자신을 심판했을까? 

- 그 모든 경험에 내 몸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몸에 주의를 기울이자 나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파괴적인 감정들이 계속해서 내 세포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은 내 삶의 증인이었다. 모든 비난과 질책이 내 몸의 특정 부위들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과거의 아픈 경험들이 내 몸에 너무 단단히 자리하고 있어서 마치 크고 검은 돌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내 몸은 외로움과 두려움, 내 삶에 대한 저항까지 모두 짊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수술실에서 몸속으로 끌려들어 갔을 때 내 몸이 왜 그렇게 무겁고 답답하고 참기 어려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몸은 어둡고 슬프고 너무나 지쳐 보였다. 

- 그런데 내 삶을 통틀어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를 에워싸고 있던 밝고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장은 언제나 그대로 있었다. 빛의 강도가 달라지긴 했지만, 내가 살아오는 내내 늘 나를 채워주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빛의 장이 있었기에 나는, 내가 알아차리기만 했다면, 언제든 내 진정한 본성을 기억할 수도 있었다! 나를 에워싼 그 빛의 장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섬세한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빛줄기들을 통해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아가 내 영혼의 고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파괴될 수 없는 연결이었다.

-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도 사는 내내 나는 바깥에서 사랑과 지지를 구했을 뿐 나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스스로에게 어떻게 그렇게도 무지할 수 있었을까?

- 하지만 여기서 '밖'이란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 있는 고치의 바깥 영역을 의미했다. 내 고치는 빛의 통과가 불가능한 필터처럼 보였다. 그것은 흔히 '에고' 혹은 '망각의 베일'이라고 불리는 단단한 보호막 같았다. 우리는 이 고치 없이는 외로움,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을 인식할 기회를 결코 가질 수 없다. 슬프고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본성을 알고 우리 본성의 주된 특성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임을 안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인간적인 경험들은 거의 모두 불가능해진다. 절대로. 

- 영혼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편하게 사는 것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생이 편하기만 하다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얻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것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빛의 존재가 보여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수많은 삶을 통해 나는 이제 태어나는 이유가 언제나 '경험'하기 위함임을 알았다. 감정을 통한 경험, 생각을 통한 경험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도 오직 고치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 나는 나무가 되고, 노루가 되고, 그 빛의 존재가 방금 되었던 숨 막히게 아름다운 여성도 되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내가 알려주고 싶었던 걸 이제 이해한 것 같군요." 한동안 그러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으로 당신만의 현실을 만들고 있어요. 모든 것은 당신이 무엇을 보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달렸죠. 이해했지요?"
물론 나는 이해했다. 그는 내가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오직 나의 의도에 달렸다는 걸 그렇게도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멋진 경험에 몹시 흥분해 있었고, 계속해서 현실을 창조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는 부드럽게 나의 흥분을 진정시켰다.
"정말 모든 걸 이해했나요?" 그가 물었다. 그리고 확인이라도 하듯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평가 같은 건 없어요. 당신이 무얼 만들어내든 상관없고, 당신은 선택하는 데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아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러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생겨나죠. 감정이나 경험, 상황 다 마찬가지랍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느낀 긴장감, 무거움, 압박감을 만든 것은 당신 자신이고, 그래서 그것들이 당신의 현실이 된 거죠. 당신이 당신 인생의 창조자예요."

 

- 당신의 삶은 당신이 보는 것을 그대로 반영하는 창의적인 거울이다! 당신의 관점을 바꾸라 그러면 삶이 그것에 맞춰 바뀔 것이다.

- 당신도 이러한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모든 것을 창조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창조자이다. 이것은 명백하다! 생각이 하나 일어날 때마다 하나의 과정이 시작된다. 이때 우리는 더할 수 없이 창조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매 순간 우리는 생각을 통해서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결정들을 내린다. 무엇을 먹을지, 입을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 혹은 어떤 일을 할지 말지, 좋지 않은 상황을 그대로 둘지 바꿀지를 결정한다.  

- 예전에 나는 몸을 귀찮아했다. 그 사고로 갑자기 몸에서 벗어났을 때에도 절대 다시 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내 몸에 매우 감사하고 내 몸이 하는 말을 잘 듣는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깨달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 그때까지 나는 내 몸에 아주 무지한 채 그저 이용하기만 했다. 따라서 나는 늘 침울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는 내 몸 안에 살면서 몸을 매우 존중하고 사랑한다. 나는 내 몸이 진정한 충만의 문을 여는 황금 열쇠이자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인식하고 있다. 내 몸은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듣고 내 모든 감정에 반응한다. 우리는 우리 둘만의 새로운 언어를 계발했으며, 이 언어를 통해 서로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언어란 바로 서로를 사랑하며 돌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서로를 돌보기 시작한 이래로 나는 내 몸을 통해 그리고 내 몸과 함께 삶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인생과 나 자신을 아주 새롭고 멋진 방식으로 사랑하고, 나의 세포들도 그것을 함께 즐긴다.

- 여기서 나는 당신에게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약속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의 몸이 어떤 상태에 있든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당신 몸은 당신이 그래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 미지의 세계들이 있었다. 소리와 주파수로만 이루어진 장들도 있었다.
이런 영역 중 어느 하나를 한 번이라도 의식적으로 경험했다면 나중에 그것에 대해 생각만 해도 다시 그곳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빛의 존재가 나를 데려간 모든 멋진 차원들 사이를 원하는 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생각만 하면 다시 근원의 중심 속에 있었고, 생각만 하면 다시 빛의 존재 옆에 있었다. 내 의식은 다양한 창조의 장 속으로 확장되었고, 그렇게 나는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해 그 장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그대로. 그것은 리모컨 버튼을 눌러 수많은 채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원하는 채널을 모두 수신 가능하게 설정해 놓았다면 언제라도 그 채널을 열어볼 수 있다.

- 그때까지 살면서 나는 거의 전적으로 문제에만 주의를 집중했다. 늘 불편한 감정과 상황에 대해 생각하느라 바빴다. 그런 방식으로 항상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바로 그런 시각 때문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몰랐다. 빛의 존재로부터 내 의식을 창조의 영역들로 확장하고 그 영역들을 경험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나는 그 연관성을 알게 되었다.

- 무조건적이고 영적인 사랑이 나의 진짜 본성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근원, 빛의 존재, 한계 없는 사랑이 (나는 나를 이 사랑의 일부로서 경험했다) 이미 언제나 내 안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것에 주의를 보낸 적이 없었다. 내가 몸 밖에 있을 때 생각 하나로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언제나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의식이 내 몸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 창조의 이 모든 아름다운 영역들은 당연하게도 임사체험 전부터 존재했을 테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내 현실에서는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상황의 희생자라고만 느꼈지 실제로 나에게 어떤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내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 '두 인생'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이제는 내가 그 가능성들을 알고 그것들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 바로 이런 깨달음에 대해 빛의 존재와 이야기하던 중 그는 내가 이미 몇 번 보기는 했지만 깊이 생각한 적은 없는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출생 후 몇 달 뒤부터 나의 에너지장이 천천히, 하지만 눈에 띄게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투명하고 정교한 막에 완전히 감싸였는데,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투명한 그 막은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나누는 아주 얇은 막과 비슷했다. 그의 인도 아래 나는 그 막에 주의를 보내며 그것의 입장이 되어보았는데, 그러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막은 태어난 직후부터 나를 감싸면서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게 만드는 일종의 베일 역할을 했다. 그것은 인간인 나 자신과 인간으로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끔 했다. 그 막으로 인해 내 의식은 산만해졌고, 근원 및 다른 모든 존재들과의 연결을 강하게 느꼈던 높은 차원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주의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이 막의 도움이 있을 때에만 나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었고 나 자신에 대한 감각을 지닐 수 있었다.

- 이 막을 통해 나는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었고, 몸을 통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막이 없었다면 나는 내영적인 본성과, 또 무조건적인 사랑과 계속 연결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이 막이 없었다면 내가 두려움, 외로움, 분노 같은 감정을 절대 경험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내가 삶의 경험들을 쌓아감에 따라 그 막이 얼마나 더 두꺼워졌는지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 막은 어느덧 내 의식을 완전히 제한했다.

- 바꿀 수 있는 마술 지팡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는 하고자 한 경험을 하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삶이 조금이라도 힘들어지거나 불편해진다 싶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마술 지팡이를 휘둘러 생각을 다시 조정하고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테니 말이다. 상황을 재빨리 바꿀 수 있음을 안다면 절대 가난을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다. 슬픔, 두려움, 외로움 같은 불편한 감정들도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을 낫게 하려고 아주 빨리 모든 걸 바꿔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잊어버리거나 바라는 것을 다 얻지 못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아주 다르게 살게 될 것이다.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을 결코 그렇게 가혹하게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느낄 수도 없고, 해를 끼치고 싶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으며,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그러할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과 우리 자신을 무조건 사랑하게 될 것이다. 모든 창조물을 언제나 사실 그대로 미세하게 진동하는 아름다운 존재로 인식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천국에서와 같은 가벼운 삶을 살고자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한계를 가진 삶을 경험하고 싶다. 한계를 알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법을 찾고 싶다! 

-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요. 안케, 당신 몸은 당신의 그릇이에요. 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이랍니다. 그 안에 절대적인 충만으로 향한 열쇠가 숨겨져 있지요!"
"지금까지 난 이 몸이 무슨 신성한 그릇이라거나 대단한 열쇠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서 내가 느낀 거리감을 설명하고자 애썼다.

"이 몸 안에서 살아온 삶은 나에게는 결코 만족스러운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대부분 그 반대였죠."

그 존재가 한 말의 의미를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 없이 몸을 대하던 내 인생의 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나 자신을 느끼고 사랑으로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내가 슬픔과 외로움과 내면의 공허를 느끼던 상황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그때마다 내 몸이 더 비좁아지고 무거워졌음을 알아차렸다. 슬펐다. 나의 바람, 나의 결핍에 사랑으로 다가갔더라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준 것만큼이라도 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더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그 자연스런 상태야말로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랑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저 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주변 세상에 대해서만 느꼈다. 나 자신에게는 느끼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그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나는 나에게서 너무 멀어졌던 것이다!

- "내가 왜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보여주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내가 왜 이 모든 연결 관계를 알려주면서 당신을 근원까지 데리고 갔다가 다시 또 몸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는지 말예요."

이 질문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와 함께 그렇게 놀라운 것들을 깨닫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그걸 물은 적이 없었다. 벌써 영원의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그는 내 모든 생에서 자신이 항상 내 곁에 있었음을 이미 보여준 바 있었다. 내가 새로운 삶으로 태어날 때도 늘 나를 도왔고, 죽음의 과정도 수월하게 거치도록 도왔다. 이번 생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것 외에 우리의 만남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안케,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여정에 당신의 육체적 죽음은 계획되어 있지 않아요." 그가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약속을 하나 했지요. 그리고 그 약속을 지금 지킨 거고요. 그 사고는 당신 스스로 상세하게 계획했어요. 당신이 한동안 몸을 떠나보는 소중한 기회를 갖기 위해 설계된 거였죠. 그건 당신이 '진정한 나', 근원, 자신의 의식을 온전히 경험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지금까지 나와 함께 경험한 모든 것이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번 생을 위해 스스로 정해놓은 것이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겠어요? 이 포괄적인 교육과정을 결정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거 말이에요. 당신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이 당신에게는 중요했어요. 기억할 수 있겠어요? 당신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 바로 그 일이 일어난 거예요." 
 
- 맞다. 나는 이번 생을 위해 '깨어남을 위한 알람 장치'를 하나 심어두었고,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알람 장치는 내 '진정한 본성'을 기억하고 그것을 내 안에 통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이번 생에서, 이 '밀도 높은 육체 안에서' 내 영혼의 성질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는 몸 안에서 내 영혼의 높은 차원들을 모두, 가능한 한 '온전히 그리고 진정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나는 내가 육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 우리 몸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지성을 갖고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미묘한 부분들을 의식적으로 보고 나면, 아니 한번 경험하고 나면 기적과도 같은 진동과 만나게 된다. 몸은 우리의 의식 및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공명하며 소통하는 그야말로 다채롭고 풍부하며 매우 활기찬 에너지장이다. 내가 보았던 것에 따르면 몸은 아주 섬세한 빛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세포 안과 주변의 공간은 생명력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 몸은 진동하고 진동에 반응해 그 진동을 색이나 소리로 바꾸기를 좋아한다. 몸은 스스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맥박 그 자체이다. 몸 안에서 그리고 몸을 통해 우리를 경험하는 것이 몸의 임무이다. 몸은 세포와 DNA를 통해 근원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만, 오로지 우리 개개인의 의식에만 반응하게 되어 있다. 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크고 놀라운 성능을 지닌 컴퓨터에 비견할만하지만, 이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바로 그 컴퓨터가 만들어진 이유인 우리 자신 말이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은 이 정교하게 진동하는 경이로운 작품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몸이 시스템 장애를 보일 때에나 겨우 알아차린다.


"몸 안에는 모든 고통, 그 고통의 원인, 그 고통의 끝, 그 모든 가르침이 들어 있다."
- 붓다

 



- "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이다."

빛의 존재가 들려준 이 말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의 깊은 뜻을 몇 번이고 다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으로 태어나기를 바랐고, 우리 자신에게 완벽한 몸을 골랐다.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자기 몸을 좋아하느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이것은 사실이다. 몸은 우리의 성장과 자기 발견의 과정에서 정확하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가 아픈가? 그럼 정확하게 그 병이 우리에게 어떤 깊은 의미를 지닐 것이다. 몸이 답답한가? 몸을 거부하거나 몸에 맞서 싸우고 있는가? 이것 역시 더 깊은 의미, 우리 자신을 위한 의미가 있다. 

- 내가 없는 동안 몸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존재감 없는 느낌을 받았는지, 이제 나와 다시 제대로 만난 것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볼 수 있었다.
지금 보고 경험하는 것이 '내 몸'이라니, 예전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내 몸에 무지했을까? 내가 스스로 창조한 이 놀라운 작품을 어쩌면 그렇게 철저히 등한시하고 무시했을까? 대체 왜 그렇게 내 몸이 답답하다고만 생각했을까? 그것은 내가 인생을 그 정도로 제한된 의식으로 살았고 정체와 압박, 불안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을 창조자가 아니라 환경의 희생자로만 보았다. 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결 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분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이것이 유일한 이유였다! 

- 몸이라는 물질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새 날아갈 듯한 감동으로 바뀌었고, 그 감동은 또 지극히 생생한 에너지장 안에서 살아갈 앞날에 대한 즐거운 기대로 변했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살 때, 내 몸과 끊임없이 소통할 때, 내 몸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어떻게 될지 알고 싶었다. 빛의 존재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자기 몸과 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며, 따라서 여러 질병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자신이 근원에서 나왔음을, 근원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버리는 그만큼 건강과 충만함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그 연결을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우리의 자연스러운 빛의 진동 상태로 들어가 우리 몸을 의식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 우리 자신의 원래 빛보다 느린 속도로 진동하던 몸의 모든 부분이 그 빛과 공명하며 다시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 몸의 그 놀라운 세상에 빠져 나는 다른 일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내 몸과 의식적으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느라 나를 둘러싼 공간, 빛의 존재,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내가 큰 결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내 관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부드럽게 유도하려는 듯 빛의 존재로부터 사랑이 흘러나와 나를 관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보아하니 당신은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군요."

그는 붕대가 칭칭 감긴 내 머리 위에 자신의 오른손을 올려놓으며 사랑을 가득 담아 말했다.
"한때 당신은 이 몸 안에서 당신이 자기 자신과도 또 나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죠. 이제 당신은 몸으로 돌아왔고 기억도 되찾았어요. 당신은 자신의 영적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고 자기가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다시 인식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결코 잊지 않게 될 거예요. 진정한 자신을 한번 인식하게 되면 다시는 무의식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돌아가 당신 자신으로 사는 법을 배우세요. 그리고 충만한 삶을 사세요. 당신의 과제는 당신 영혼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몸을 통해 표현하는 겁니다. 몸은 당신이 의식적이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니고 있어요.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몸에 생명을 불어넣고, 바로 그것을 통해 당신과 당신 몸이 함께 어떤 마법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지 경험하세요. 당신은 자신과 당신 주변에 있는 힘을 이용하는 법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돕게 될 거고요. 모든 사람 안에는 진정한 자신에 대한 기억이 들어 있고, 따라서 그것을 떠올릴 수도 있답니다."

- 충만함은 당신 자신 밖에서는 불가능하고 당신 몸 없이는 경험할 수 없다!

- "이제 곧 시작하게 될 여정을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 더 말해주고 싶네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세요. 네,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봐요. 우연은 없어요. 모든 것의 배후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다만 가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 모든 바퀴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법이에요! 물질은 항상 변화하고,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죠! 이것을 잊지 말아요! 자신의 의식을 매 순간 선택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물리적인 몸도 마찬가지예요. 당신 몸은 바로 이 점을 기억하고 당신이 바라는 대로 자신을 치유할 거예요.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 몸은 의식을 따라 완전히 재조정되고 새롭게 될 겁니다. 당신의 얼굴, 당신의 손, 당신의 정신 상태도 변화할 것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 당신과 당신 몸이 함께 자신들만의 길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당신 자신을 믿으세요. 그리고 모든 기적이 가능함을 잊지 말아요. 나는 언제나 당신 곁에서 당신이 가는 길을 같이 갈 거예요.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그의 말 하나하나가 내 세포 안에 각인되었고, 나는 아주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고, 나는 도착했다고 느꼈다. 절대적인 평화 속에서 나는 마침내 아주 깊은 내 몸속의 우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주의 노래 같은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 자신을 던져서 나를 구해준 아들을 다시 보게 된다니, 기쁨의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곧 걱정이 들었다. '그나저나 내 모습이 지금 어떻지? 마누엘한테 너무 충격적이면 어떡하지?' 나는 간호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들이 오기 전에 제 모습이 어떤지 보고 싶어요. 거울 좀 가져다주실래요? 여긴 거울이라곤 없네요."
"물론 거울은 드릴 수는 있는데 그전에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가 옷장 속에 있던 작은 손거울을 하나 꺼내 들고 침대 옆에 앉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이거 하나는 꼭 알아주셨으면 해요. 부인은 지금 아주 아름답습니다! 여기 저희들은 모두 치료에 크게 만족하고 있어요.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요..." 
그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가 조금 거리를 두고 거울을 들어주었는데 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눈물이 터졌다. '세상에 이게 뭐지? 이게 내 얼굴일 리 없어!' 거울 속에는 검붉게 부어오른 두 눈에, 머리카락도 입술도 없는 둥근 살덩어리가 있었다. 한때 피부였던 곳이 말 그대로 붉은 살덩어리로 변해 있었고, 군데군데 검은색 딱지가 올라와 있었다. 예전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는 건 코뿐이었다. 얼굴이 부어 있었고, 두 눈은 무서웠다. 하얗던 부분들이 전부 시뻘게진 상태였다.


- 빛의 존재의 부드러운 에너지 진동을 느꼈고 익숙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너무도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당신 몸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똑똑해요. 이걸 늘 기억하세요! 당신 몸은 당신의 의식이 하는 말을 들을 테고, 당신이 허락하면 기적을 보여줄 겁니다. 당신 몸은 완전히 재정렬될 테고 얼굴, 손, 그리고 정신 상태도 치유될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 몸과 당신 자신, 이렇게 둘이서 함께 길을 발견할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언제나 기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 이때가 2009년 10월 11일이었다. 그리고 10월 13일, 내가 병원에 실려 온 지 정확히 15일째 되던 날 나는 모든 책임은 내가진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했다. 의사들은 나를 어떻게든 병원에 묶어두려 했지만 결국은 막지 못했다.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기로 결심했고, 그 목소리는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에 가. 여기 이것들은 다 필요 없어. 너에게 필요한 건 안심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이야. 그래야 힘을 얻을 수 있어. 집에만 가면 나머지는 네 몸이 알아서 해줄 거야. 네 몸을 믿어!"
내 아버지도 의사니까 걱정 말라고 했더니 원장 의사도 결국 포기한 듯했다. 그렇게 말하는 나를 여전히 놀라워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급히 불려 온 심리학자와 긴 시간 대화한 후 나는 모든 책임은 스스로 지겠다고 말하는 네 쪽짜리 각서에 서명했다. 그 각서가 나에게는 해방같이 느껴졌다. 그때 왜 그렇게 그곳을 참을 수 없어했는지, 생각해 보면 사랑과 위안에 대한 절실함 때문이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랑과 위안에 대한 나의 절실함이 이성과 분별보다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그때 나에게는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이 절실했다.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정말 괜찮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나는 여기서 나의 퇴원이 매우 이례적이었음을 분명히 밝혀두려 한다. 그리고 의사인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안심하고 더 쉽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내가 한 결정이 의사들의 경고가 완전히 틀렸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 애벌레 안에 이미 존재하는 나비가 그렇듯 내 안의 사랑도 이미 내 안에 있으면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벌레와 나비는 겉모습은 아주 다르지만 동일한 하나의 동물이다. 작은 애벌레는 온종일 먹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머잖아 변태의 시간이 온다는 것을 모른다. 애벌레는 아주 좁은 자기만의 세상, 자기만의 몸, 자기만의 현실에서 산다. 그리고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믿는다. 중력을 느끼며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수많은 다리, 먹이를 잘게 부숴주는 강력한 턱을 신뢰할 뿐 그 이상은 모른다. 성장을 위해 애벌레는 자신의 비좁은 껍데기를 여러 번 찢고 나와야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을 할 수 없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마지막 껍데기가 찢어지기를 거부하면서 그 작은 존재에게 죽음을 의미하는 변태의 시기가 왔음을 잔인하게 알린다. 애벌레는 죽을 때가 왔음을 알고 조용한 장소를 찾는다. 피부가 점점 딱딱해지는 걸 느끼지만 그 과정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나비가 되려면 지금까지의 몸이 나비의 세부 기관들로 완전히 녹아 들어가야 한다. 이제 작은 애벌레는 더 이상 없겠지만, 그 애벌레의 세포 구조로부터 기적 같은 방식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아름다운 나비가 생겨난다.


- 우리도 이런 변태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하기 때문에 이 작은 애벌레와 달리 상황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최악의 적이 된다. 우리가 얼마나 작고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인지 아주 창의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우리의 '생각'을 믿기 때문이다. 이 쓸데없는 생각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머릿속의 모든 수다가 실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음을 깨닫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절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존재도 아니고 무력한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하고 창의적이고 완전하게 연결된 순수한 의식의 진동장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찾고 있는 '모든 것'이지만 그 사실을 잊어버린 뒤 아직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완전히 다른 두 번째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는 애벌레처럼.  

- 변태 전의 나는 거의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늘 등한시했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 달라졌다. 나는 삶의 기쁨과 의욕에 가득 차서 나에게 좋은 느낌을 주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무조건 찾아내고자 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가 먹는 음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내가 먹는 많은 것이 사실은 맛이 없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전에 잘 먹던 음식들을 이제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에 온 지 약 4주가 지났을 무렵 친구와 함께 마트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서 내가 마트에 간다는 것은 굉장히 큰 모험이었다. 
 

- 마트의 손님 중에는 놀라움을 숨기고 나를 훔쳐보는 사람도 있었고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반응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도 거울을 볼 때마다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완전히 '벌거벗겨진 것 같고 구경거리가 된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전에 몰랐던 힘과 자신감을 느꼈다. 그날부터 나는 더 이상 나를 숨기지 않았고,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엄청난 해방감을 주었다! 

- 그렇게 큰 도전은 아니었지만 어떤 옷을 입느냐도 비슷했다. 옷장을 열 때마다 나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듯한 옷들을 보았다. 거의 모든 옷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옷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주 단지처럼 애지중지하던 털 카디건이 하나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거의 곧바로 그 카디건으로 온몸을 감쌌고, 그러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그냥 답답하기만 했다. 무늬도 거슬리고, 과거에 거의 매일 나를 따라다니던 슬픔이 배어 있는 듯했다. 

- 이런 아주 개인적인 변화가 내면의 변화를 분명히 말해주었다. 나는 에너지 진동, 색, 형태, 구조에 매우 민감해졌다. 무엇보다 자신을 아주 세심하게 살피는 나 자신이 무척 새로웠다.  

 

- 그렇게 놓아주며 나는 죽음과 그 죽음의 결과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내 인생 처음으로 통제하기를 포기했다. 나 자신과 화해하고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이후로 그 끊임없던 내면의 싸움도 멈추었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들이 오히려 진정한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음을 깨닫고 나는 통제하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모든 편견과 판단을 버리고 나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화해했다. 이것이 이 모든 변화 과정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여한 점이다. 나는 단지 내려놓음으로써 싸우고 통제하기를 멈출 수 있었다! 애벌레가 변태 과정에 그저 자기 몸을 내맡기듯이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 가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 예전 세상에서는 작고 한계가 분명한 내가 살았으며, 그때는 거의 항상 나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보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그런 삶을 선택했으며 언제든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먹고 자라는 것밖에 모르는 애벌레처럼 나 자신을 작고 무력한 존재로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나비가 되고 날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세상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날개. 나는 내 안에서 창조성과 가벼움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고, 날개를 가장 잘 쓰는 방법들을 배워나갔다.

- 나에게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알아내는 데 골몰할수록 내 몸은 더 명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집에 돌아온 초기에는 여전히 익숙한 옛날 방식대로 다시 살아가려고 한 적도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헛된 노력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은 일을 하면 그 즉시 몸이 불편한 반응을 보이거나 심하면 아프기까지 했다. 예전의 나라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갔을 상황에도 내 몸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내가 원치 않는데도 무심코 다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맞추고 있을 때가 그랬다. 내가 편안하지 않은 환경에 너무 오래 있으면 몸은 나를 그 상황에서 빨리 '끄집어내도록' 반응을 보였다. 특히 두통을 유발하는 식으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좋아했다. 내가 과거의 습관에 빠져 기력을 낭비할 때면 몸은 어김없이 그렇게 했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지거나 그냥 이 사회에서 기능할 방법을 도모하려 할 때도 즉시 두통이 시작됐고, 몸은 그 수위를 편두통으로 쉽게 높일 수 있었다. 그런 신호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에게 좋을 리 없는 사람이나 상황을 계속 견뎌내려 하면 몸은 능수능란하게 구역질까지 유도했다. 몸은 그렇게 저만의 방식으로 나와 대화했고, 나는 내 몸의 소리를 듣고 내 몸의 신호를 해석하는 법을 빠르게 배워나갔다. 신호를 보내는 순간에 내가 적절히 행동하지 않으면 몸은 압박의 수위를 가혹하게 올릴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 나는 내 몸이 때로 왜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몸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나는 몸이 저만의 방식으로 그 섬세한 특성을 표현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반응을 통해서 나에게 내가 '진정한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몸은 내 영혼의 존재와 그 에너지 진동을 물질 세상의 언어로 번역해서 보여주는 '번역가'였다. 

 

- 그것은 몸보다는 훨씬 배려심이 많았다. 그 방식은 훨씬 조용했고 부드러웠고 사랑으로 가득했으며 모든 것에 포용적이었다. 내 영혼은 나를 기쁨과 감격과 가벼움의 상태로 만드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에게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데 아주 능했다. 나의 '진정한 나'는 과거의 나에게 익숙한 감정들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식(혹은 앎)을 선사했다. 그것은 이를테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상태, 그 안에서 내가 놀이하듯 쉽게 나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충만함의 상태 같은 것이었다. 그럴 때의 느낌은 정확하게 임사체험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보통'의 감정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의 상태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감동할 때면 나는 모든 것이 기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 내가 만지는 탁자, 새들의 지저귐, 먹구름, 존재 그 자체, 자연의 다양성 모두가 다 기적이었다. 어디를 보든 모든 것이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상태를 인식하면 나는 즉시 '진정한 내'가 길을 보여주려 한다는 걸 알았다.

- 그러므로 집에 돌아온 직후 나에게는 몸과 영혼의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내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과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 셋(몸과 영혼, 그리고 나 - 옮긴이)은 환상의 팀이 되었다! 내 몸은 내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려 할 때 나에게 그것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나의 '더 높은 의식'은 내가 허락하면 언제나 나를 통해 흐르며 나를 인도하는 바람 같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있었다. 나는 안팎에서 오는 신호들을 받고 그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라고 요청을 받는 고요한 관찰자 같았다. 나는 키를 잡고 방향을 선택하는 선장 같기도 했다. 아래로는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잔잔한 바다가 있고, 위로는 방향을 제시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곧 바다의 상황에 따라 돛을 제대로 접거나 펼치는 법을 배웠다.

 

- 내가 보기에 우리의 인격은 정확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구성되는 것 같다. 항상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의식적인 부분, 몸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무의식적인 부분,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영적인 부분인 '진정한 나', 이렇게 세 요소로 말이다. 나는 이 세 요소의 도움으로 내 새로운 삶의 마법을 매 순간 알아차리고 경험하는 법을 배웠다. 

- 좋은 추억이 담긴 게 아니라면 어떤 물건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물건을 볼 때 계속 그게 내게 정말 필요한 건지, 그것을 정말 갖고 싶은지,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이 나에게 정말 좋은지를 질문했다. 언젠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혹은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의미도 없는 걸 어쩌면 그렇게도 많이 지니고 있는지 정말 놀라웠다. 나에게는 임사체험에서 받아온 선물만이 소중했다. 그걸 선반에 올려놓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쓰레기더미들을 한 자루씩 버렸고 그만큼 더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곧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일상적인 대화에 끼어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으므로 나는 교묘하게 그런 자리들을 피했다. 남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남편이 뉴스를 들려줄 때나 정치적 주제들에 대한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할 때 더 그랬다.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도 그냥 틀어놓은 텔레비전만큼이나 진부하게 들렸다. 주변의 모든 것이 알맹이 없이 공허하고 피상적이었으므로 나는 점점 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아졌다. 관심 없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나를 너무도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일상의 문제와 드라마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 나는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면 세상을 아주 다른 눈으로 보고 있거나. 내 인생에는 이제 더 이상 일상의 드라마가 없었다.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속에도 없었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것을 그것만의 기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따닥따닥 타들어가는 장작불, 눈 깜짝할 사이에 풍경을 장엄하게 바꿔놓는 눈(雪), 찐 감자 냄새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내면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천연 옷감과 나무의 감촉을 사랑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사람들과 말을 하고 듣는 것보다 몇 시간이고 창밖을 보거나 산책하는 게 나를 훨씬 더 행복하게 했다. 자연에 서면 새로운 세상과 온전히 연결되는 것 같았다.

 

- 임사체험을 하는 동안 나는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했다. 그 사랑 안에 나는 완전히 하나로 섞여 들어갔다. 나는 어떤 한계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나만의 무한함을 탐험할 수 있었다. 원하기만 하면 세계가 열렸다. 돌아왔을 때 나는 갑자기 다시 몸과 물질의 법칙에 묶이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점점 나에게 맞지 않는 곳에 와 있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조용하고 방해 없는 장소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빛의 존재의 에너지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에 대해 그의 조언과 설명을 듣고 싶었다.  

- "더 이상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감탄사만 나와요. 그리고 주변 세상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져요. 내 안의 모든 것이 삶의 기적에 놀라면서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지고요! 그건 시끄럽고 활기 넘치는 그런 행복이 아니라 고요와 평화가 함께하는 아주 깊은 행복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나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특히 주변의 자연과 당신, 그리고 나 자신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요. 나는 처음으로 정말 온전하고 충만하다고 느껴요. 그런데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렇게 좋은 것만큼이나 나를 몹시 외롭게 만들기도 하네요! 예전 삶에서 소중하던 것들이 모두 의미를 잃어버렸으니까요. 세상 이야기나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들이 이제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내가 쓰는 단어들조차 공허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져요."
그는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이러한 변화가 나로선 얼마나 이해하기 힘들지 그는 잘 알았다.

"나는 백지로 이루어진 책 같아요. 다시 써야 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안케, 그것 참 적절하고 좋은 비유네요!"

내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 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정말로 백지로 이루어진 책 같다면 우리가 만나기 전의 시간은 아예 기억도 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런 때가 있었고 그때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기억하죠. 하지만 더 이상 과거의 그 감정에 공감이 안 돼요. 다른 사람들과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그 감정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더 이상 그 감정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요. 마치 감정적 기억상실증 같아요. 예전의 나는 모든 게 힘들었고 죽도록 노력을 해야 했어요. 모든 곳에서 문제가 보였죠. 모든 것이 나에게는 압박이었는데,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압박은 나 자신이었어요. 언제나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세상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느라고 모든 것이 더 큰 의미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 나에게 내 인생을 만들어갈 권한이 있다는 것을 몰랐죠.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내 인생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지금은 믿을 수 없이 달라진 겁니다! 갑자기 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됐어요. 그동안 평생을 수면 상태로 살면서 꿈속을 걸어 다니다가 갑자기 깨어난 것 같아요. 갑자기 모든 것에서 사랑만 느끼고요. 이해하시겠어요?"
"당신은 자신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보았고, 그렇게 '작은 나'의 경계를 넘어선 겁니다." 그가 설명했다. “당신은 그 9일 동안 과거에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넘어섰어요. 그래서 지금의 당신과 주변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새롭게 경험하는 ... "

- 그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내 에너지장을 둘러싸고 있던 내 영혼의 더 높은 영역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킨 그 고치를 다시 보여주었다. 내가 임사체험하는 동안 그 고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미 몇 번이나 보여주었지만 다시 더 명확하게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경계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는지 기억하나요?" 그가 물었다.
"네, 기억해요! 이 고치가 생겨나야 인간으로서의 경험이 가능하다고 했죠. 이 경계가 있어야 이분법의 세상에서 하나의 분리된 개인으로 자신을 경험할 수 있고,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다고요."
나는 스노글로브 이미지도 여전히 잘 기억했다. 마법 같은 세상을 품고 있던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유리 구. 그 안에 낮과 밤, 빛과 어둠, 감정과 생각,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아주 작고 특별한 세상이 있었다.  

- 그러자 갑자기 익숙한 의심들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기쁨도 일었고 불안감도 일었다. 달콤한 오렌지가 먹고 싶다는 갈망도 일었다. 임사체험 중에 배고픈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시간 감각도 생겨났다. 반면 그의 가르침 덕분에 내가 몰입했던 그 무한한 모든 것은 사라졌다. 유리 구 속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연결성, 무조건적인 존재, 더 높은 수준의 앎 등으로부터 단절되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 구는 안쪽이 마치 빛가림 처리가 된 반투명 거울 같았다. 밖에서는 문제없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었다. 그 유리 구 안에 있는 나는 더 크고 무한히 창조적인 무언가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없었다. 나는 고립된 것 같았고 점점 빛의 존재와도 단절되는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보며 아무리 그를 찾아도 보이는 건 거울에 비친 내 모습뿐이었다. 

- 문득 나는 이 거울 같은 고치의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가 '인간적임' 또는 '에고'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이 고치 안에서 펼쳐지는 것들이었다. 우리의 무한한 의식을 '차단해서' 단지 몸, 감정, 생각으로만 자신을 경험하게끔 하는 것, 이것이 고치의 임무였다. 이 차단 과정은 심한 기억상실증과 유사했다. 빛을 가리는 유리의 경계는 우리의 의식을 더 높은 영적 영역으로부터 점점 더 분리시켜 분리의 착각을 만들어냈다. 그래야만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생각하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우리의 '작은 나'에 집중하면 할수록 창조로 가득한 고향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다. 지금 여기에서 인식하는 것보다 우리가 훨씬 큰 존 재임을 잊어버린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는지 잊어버리고, 이 모든 것이 환영이며 우리가 그 환영 속으로 의식적으로 들어왔음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다른 몽유병자들 사이에서 함께 몽유병자가 되었다. 고치 밖을 볼 수 없으므로 우리의 관심은 온전히 고치 안으로, 우리의 몸과 욕구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단절을 느끼고 자신이 혼자라고 믿게 되지만, 또한 그로 인해 안정감과 방향감각을 갖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무엇이 현실인가?
우리는 현실이라고 여기는 자기만의 고치 안에 의식을 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살다 보면 현실에 의문이 들면서 이 현실의 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진다. 어쩌면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을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기도하면서 천사가 나타나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고, 당신 안에 있는 더 깊은 지혜를 끌어올리고자 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든 모두 당신의 유리 구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진정한 당신을 알아갈수록, 그 길에서 더 많은 연결을 경험할수록 당신의 유리 구는 그만큼 확장된다. 당신 세상의 경계가 넓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넘지 못할 것 같던 경계가 돌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 자신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하던 두려움이나 의심이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진다. 당신도 혹시 이런 사실을 아는가? 

내가 경험한 모든 영역으로 의식을 확장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한계도 사라졌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들의 몸이 어디가 아프고 왜 아픈지 알 수 있었다. 나무를 보거나 옷을 고르거나 내 앞에 놓인 접시를 볼 때 그것들의 에너지적인 진동도 보았다. 무엇을 보든, 어디를 보든 그랬다. 모든 것이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내 눈앞에서 에너지 진동으로 변했다. 나 자신과 내 몸도 마찬가지였다. 이 경험은 그때까지 내가 '진실' 혹은 '진짜'라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휴지통에 던져버리게 했다. 이 시기에 내가 만약 혼자였다면 나는 주변 세상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몇 년은 더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과 친구가 있었고, 일을 해야 했다. 바로 그 점이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용기조차 나에게는 없었다. 그걸 어떻게 정확하게 표현한단 말인가? 나의 변화된 인식 능력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해보기는 했지만, 불편해하는 듯한 표정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나는 금세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 보이지 않던 것이 갑자기 보일 때, 아니 보이지 않던 것을 갑자기 경험하게 될 때, 이전에 중요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무리 대단한 마술이라도 한번 그 트릭을 간파하게 되면 더 이상 감흥이 일 수 없다. 비밀을 보았으므로 더 이상 놀랍지 않은 것이다. 나의 경우도 비슷했다. 나는 사고 이전의 나처럼 물질 세상만이 '진짜로'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이라고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지금 여기에서 아주 환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마술쇼의 진실을 결코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현실'이라는 마술쇼를 계속 즐거워하며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나에게도 견고한 물질 세상이 존재하기는 했다. 예를 들어 내가 탁자를 만질 때가 그랬다. 하지만 탁자를 만질 때면 나는 그 탁자를 이루는 부분들이 춤을 추는 모습도 보았고, 그 안으로 손을 뻗으면 내 손이 그 사이를 관통할 것만 같았다. 

- 이제 죽음은 내 안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연민 어린 기쁨을 불러일으켰다. 삶에서 만나는 고난을 나는 이제 고치를 확장하는 멋진 기회로 보았다. 두려움은 고치의 낡은 트럭에 불과했다. 세상에 혹은 주변에 어떤 비극이 일어나든 나는 더 이상 아무런 평가도 내릴 수 없었다. 고양된 의식은 오직 사랑을 볼 뿐이요,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경험의 창조적 과정을 볼 뿐이다. 여기에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추하다' 같은 평가는 없다.   

-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지점에 이르러 있었다. 나는 내 삶을 다시 설계하고 싶었고, 내면에서 느끼는 충만감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당신 안의 근원에 따라 사세요! 저항하길 멈추고 근원이 당신을 인도하게 두세요. 그럼 길이 보일 겁니다."

그의 짧은 대답이었다.
이 대답은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인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길이 저절로 나타나주기를 바랐다.

- 임사체험을 한 지 1년이 지나면서 나는 옛 세계와 새 세계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삶에 차츰 적응해 갔다. 얼굴과 귀의 상처는 기적처럼 저절로 아물었고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느끼는 이질감도 차츰 줄어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그렇게 심하게 다쳤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며 몹시 놀라워한다. 심했던 화상의 흔적이라고 하면 윗입술 위에 남은 작은 흉터와 두 손의 피부색이 약간 달라진 것이 전부이다. 내 얼굴은 피부 재생을 위한 안면 마스크나 다른 처치는 물론이고 성형 수술도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전과 정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내 두 눈이다. 예전에는 눈빛이 죽어 있었지만 지금은 살아있다. 특히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기적에 대해 말할 때면 내 눈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때로 내 눈은 그 세계의 밝은 빛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확실히 그런 느낌을 받는다. 

- 내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가볍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뒤로 많은 것들이 저절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슨 일에든 통제하려 들기를 멈추자 마법처럼 해결책이 생기거나 뜻밖의 좋은 방향으로 일이 해결되었다. 예전의 나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결혼 생활을 끝낸다거나 직장을 그만둔다거나 하는 일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몸으로 돌아온 이유가 '진짜 나'라는 창조적 존재를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걸 잘 알았다. '진정한 나'는 조건 없는 영원한 상태에 존재하므로 저항이나 두려움 또는 편협함 같은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도 나는 잘 알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런 진정한 나로 사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었고, 다시는 느낌이 좋지 않은 무언가를 하느라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다시는 내 진정한 본성을 거스르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몰랐다. 

- 나는 너무 오랫동안 외부 세계를 척도로 삼으면서 그것에 나를 맞추려 했다. 내 신경은 온통 외부 세계에 가 있었는데 그 세계가 나한테는 대개 힘들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고,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으며, 사회가 정해주는 한계를 받아들였다. 나는 작고 의식적이지 못한 눈으로 주변 세상을 보았고, 그렇게 외부 환경에 적응하려고 끊임없이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너무 힘이 들었다. 내가 한 일이건 하지 않은 일이건 가리지 않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므로 나는 자신에게 최악의 판사가 되었다. 이것은 작은 배를 타고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삶이라는 강의 거친 물살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내면에 안주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서 오는 영향에만 끊임없이 반응하다 보면 곧 과도한 부담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 임사체험 후 만난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바로 그런 방식으로 대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진해서 혹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을 계속 압박해 가며 삶에 정신없이 끌려다니고 있었다. 걱정도 많고 전혀 즐겁지 않은 일로 너무 바쁜데도 그렇게 실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일 나쁜 것은 자신이나 자기 주변을 무자비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고향인 근원에서, 그 근원의 본질인 조건 없음에서 나왔음에도 사람들은 대부분이 조건 없음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 하지만 '진정한 나'를 알아차리면 그 즉시 우리는 삶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외부 세계로 향해 있던 주의의 초점이 자동으로 자신을 향하게 되고 사랑을 담아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대신 자신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에 몰두하게 된다. 자신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순간 자기 안에 있는 경이로움이 더욱더 명료해진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며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랬다. 이 시기에 나는 그때까지 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내가 정말 아직도 이것을 원하나?' '느낌이 가벼운가?' '내 몸이 무거워하거나 압박감을 느끼진 않나?' '내가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고 힘들게 노력하는 것은 무엇이지?' 나는 결혼 생활, 친구 관계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내가 행동하는 방식을 비롯해 모든 것을 되짚어보았다. 나는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거의 모든 것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렇게 행동하지?' '나는 왜 나 자신이 이런 감정이 들게 두는 거지?'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자 내 안에서 과거에 내가 내적으로 얼마나 싸우면서 살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대답들이 저절로 올라왔다. '왜냐하면 난 사랑받고 싶으니까' '소속감을 느끼고 싶으니까' '무력해질까 봐 두려우니까' 같은.

- 임사체험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과 감정이 모두 나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일 뿐 '진정한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생각과 감정이었다. 나는 항상 모든 것과 조건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분리, 결핍, 무력감 같은 것들은 나의 한계 가득한 생각이 지어낸 것임을 내 몸 밖에서 배웠다. 나는 내 마음의 트릭을 꿰뚫어 보았고, 더 이상 내 마음의 착각을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 더 높은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 예전의 나는 이런 급진적인 행보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충분히 믿지 못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늘 조마조마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거나 소중한 걸 잃게 되거나 무력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이런 불안감에 영향을 받았고, 바로 이 불안감 때문에 진정한 내가 드러날 수 없었다. 그런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의 창조적 본성을 알아차리고 그 본성을 따르는 것임을 깨닫고 나자 모든 것이 쉬워졌다.

 

- 이와 함께 아주 결정적인 것이 하나 분명해졌는데 이것이 이 시기의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임사체험 동안 무거움, 압박감, 두려움, 저항은 오직 인간의 의식에만 존재하고, 이것들은 우리가 '진정한 나'와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살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심판할 때, 두려움이 올라올 때, 혹은 무언가에 대한 저항감이 올라올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근원과 연결이 끊어졌다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심판하고 두려워하고 저항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오래된 습관이, 혹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유도 전략이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때 우리는 그것을 계속 따를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나는 매 순간 새롭게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과, 나 자신과 주변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할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제는 적절한 대응이 가능해졌다.

-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자 내 안의 저항을 알아차리고 이를 새로운 결정으로 바꿔내는 과정은 정말 즐겁기까지 했다. 나는 내 안의 가벼움에 귀를 기울이는 한(즉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는 한 - 옮긴이) 잘못될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과거에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게 했던 모든 일을 내가 어디에 주의를 두느냐에 따라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서 깨달았고, 이제 그것을 실행해야 할 때였다. 무언가를 부담이나 압박으로 느끼거나 두렵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다시 옛날의 습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럴 때면 거의 언제나 "나는 정말 이 느낌을 삶에서 계속 유지하고 싶은가?"라고 자문해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개 '아니오'였기 때문에, 나는 단지 "그러면 어떻게 느끼고 싶은가?"라고 다시 묻고 그 대답에 따라 결정하면 되었다. 그러고 나면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마법처럼 저절로 정리되는 듯했고, 나는 그런 변화를 관찰하기만 하면 되었다. 특히 내 결혼 생활이 그랬다. 남편과 나는 당시 결혼 16년 차였지만 우리를 묶어주는 것은 아들 마누엘과 함께 살면서 생기는 일상의 일들을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관계가 멀어진 지 오래였고, 결혼 생활은 서로 배려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공동생활일 뿐이었다. 공통의 관심사나 대화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사고 이후로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둘 다 금방 서로를 위해 각자 해야 할 과제를 이제 모두 완수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 지혜롭고 온화한 어머니의 모습과 같다. 이 어머니는 아이가 가진 잠재성을 다 알고 있으며,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기보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아이가 스스로 경험을 해나가도록 둔다. 다정한 관찰자처럼 바라보다가 아이가 길을 잃은 것을 보면 아이에게 부드럽게 자극을 줄 뿐이다.

- '진정한 나'는 항상 건설적이고 풍요롭고 긍정적인 느낌의 아이디어와 자극, 영감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것이 바로 당시 내가 두 세계를 조화시키는 데 필요했던 첫 번째 황금 열쇠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가벼움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살면서 누구나 인생이 가볍다고 느낄 때가 있을 테니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이 가벼워져서 꼭 날아오를 듯하다. 비가 와도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온 세상을 품에 다 안을 것 같다. 이런 상태라면 못할 일이 없고, 안에서 계속 환호성이 터진다. 그런데 이런 행복한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의 '생각'이 상대도 나를 그만큼 사랑하는지 물으면서 은근히 간섭하기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그때부터 생각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우리는 불안해진다. 운이 나쁘면 이제 기분이 급강하한다.

- 하지만 살면서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갑자기 모든 일이 저절로 풀리는 순간도 우리는 경험한다. 마법처럼 귀인이 나타나고 완벽한 직장이 생기거나 필요했던 돈이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큰손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듯 모든 일이 저절로 해결되어 놀랍기 그지없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나'로부터 받는 안내이다. 이런 일은 대개 우리가 생각을 멈출 때 혹은 아예 생각하기를 시작도 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 임사체험 후에도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상태에 오랫동안 있었다. 내 주변 공간에 대한 감각도 거의 없었고 시간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아주 가볍게 느껴졌으며 두 세계가 완전히 연결된 것 같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모두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가벼움의 느낌을 따라 사는 법을 배웠다. 에너지를 소모할 뿐인 대화는 삼갔고, 느낌이 좋지 않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았으며, 동시에 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더욱 존중하는 법도 확실히 배웠다. 나 자신을 자상하고 온화하게 돌보았으며,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도 살폈다. 이 시기에 내 '생각'은 내 인생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러던 것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하자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전처럼 살기란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므로 나는 이제부터 정말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한 가지 대답만이 큰소리로 명확하게 들려왔다.

"내가 경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나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어! 나는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기적을 꺼내 보여주고 싶고, 우리 모두가 커다란 착각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착각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임사체험으로 나는 우연히 약속의 땅을 발견한 기분이었고, 이왕이면 당장 모든 사람에게 내 경험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는 몰랐다. 내가 경험한 모든 기적을 말로 설명할 수도 없었고, 빛의 존재도 이 점에 대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내가 처한 상황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 이 문장을 쓰는 지금 나는 웃지 않을 수 없다. 내 유일한 '문제'가 단지 내면의 열정을 '어떻게'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는 거였으니 말이다. 


- 충만한 진짜 삶을 살면서 '진정한 나'를 표현하려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건 없는 세상이 있음을 아는 것'과 그런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 이 책에서 나는 우리 내면에 있는 그 무한함을 한계 가득한 말로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써보았다. 물론 나의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의 진동을 당신이 온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신 안의 커다란 부분이 내가 당신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그것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한 채 내가 지나온 여정을 함께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 당신은 우리가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을 수도 있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에 전혀 공감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을 걸었다고 해도 몇 페이지 읽다가 말았을 것이다. 당신 내면의 무언가가 당신을 이 책으로 이끌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당신만의 진실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싶었던 당신 내면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 당신 안에 있는 황금 열쇠를 찾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당신의 길을 아는 데 필요한 정보와 상황으로, 그리고 당신에게 도움 되는 사람들에게로 당신을 인도했을 것이다. 

- 내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든, 어떻게 느끼고 있든,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당신 안에는 자신을 더할 수 없는 사랑으로 보고 있는 당신의 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힘, 당신에게 모든 기적을 보여줄 수 있는 더 높은 힘이 당신 안에 있다.

- 그 힘을 깨닫기 위해 나처럼 죽을 필요는 없다! 당신 자신이 당신의 삶이 기적임을 알기 위해 사고를 당할 필요도, 큰 병에 걸릴 필요도 없고, 당연히 임사체험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더 높은 힘과 접촉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것을 밖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그것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당신 안에도 있고 당신 주변에도 있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단지 당신이 그 사실을 잊었을 뿐이다!

- 2009년 9월 그 놀라운 날 이후 나는 빛의 존재 덕분에 황금 열쇠를 받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 열쇠들을 내 새로운 삶으로 가져왔고 그때부터 그 사용법을 마음껏 시험해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그가 상기시켜 준, 나 자신으로 사는 법을 점점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이 황금 열쇠들이 이미 그리고 언제나 내 안에 있었음을 잘 안다. 당신처럼 나도 단지 이 열쇠들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 황금 열쇠 1 : 내려놓기와 인정하기
나의 이 모든 여정은 내려놓기로 시작되었고, 그 후로 내려놓기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내려놓기와 인정하기는 카드 게임으로 치면 조커 같은 것이다. 이 둘은 언제나 어디에나 맞는 만능 열쇠이고 다른 모든 열쇠의 바탕이다. 삶에 항복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울수록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내려놓으라니 도대체 무얼 내려놓으란 말인가? 내 몸을 휩싸고 올라오는 불길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던 그 순간 나는 아주 의식적으로 더 높은 힘에 항복하며 나를 내려놓았다. 난생처음 이 황금 열쇠를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결정 덕분에 그 순간이 절대 잊을 수 없는 마법의 순간으로 변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싸우던 것을 포기했고, 죽음에, 또 미지의 것들에 나를 맡겼다. 그렇다, 그것들에 나를 맡겨야 했다! 그냥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황금 열쇠 2 : 감사하기
감사하기는 충만한 삶을 향해 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감사는 곧 사랑 고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감사는 일반적인 의미의 감사 감정이 아니라,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성들을 깨닫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의 상태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우리를 충만하게 해 줄 것들을 수없이 많이 갖고 있다. 그것을 너무 자주 '당연시'하거나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행동이 평범하고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성취나 성공 혹은 내면의 가치나 훌륭한 성격을 "아, 뭐 대단한 거 아니야" 하고 재빨리 별거 아닌 것으로 일축해 버린다. 나도 이런 일에 정말 능했다! 내가 가장 잘했던 말이 "뭘, 당연한 거잖아!"였다. 지금의 나는 내가 자신에게 너무 완고했고 스스로를 존중할 줄 몰랐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난관을 극복하든 별 의미가 없었고, 절대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나에게 나는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충분한 '가치'가 없어 보였다! 당신도 혹시 그런 기분을 아는가? 그랬던 나의 태도는 감사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보여줄 뿐이었다!

 

-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무언가에 감동하면 웃거나 울면서 감정을 잘 표현하는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공감할 줄 아는가? 어떤 이유로든 소원해진 사람과 화해했다면 그런 자신에게 감사하는가? 이제 칭찬이나 선물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옆에 있어줄 수 있는가? 또 당신도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가? 당신 자신과 자신의 욕구를 잘 챙기고 자신에게 좋은 일을 기꺼이 하는가? 예전과 달리 자신에게 자유롭게 숨 쉴 공간을 주고 있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키며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가? 그 모든 힘든 일을 극복해 온 자신이 자랑스러운가? 그렇게 자주 용기를 냈던 자신이 자랑스러운가? 삶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 관용이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용기는? 지난날을 돌아볼 때 자신이 이룬 그 모든 일들이 눈에 보이는가? 

- 사실 아주 간단하다. 당신 내면과 삶의 풍요로움에 집중한다면 당신 안과 밖으로 풍요로움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결핍에 집중한다면 결핍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제 당신 삶의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자동으로 당신 자신과 당신의 삶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신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할 것이고, 이런 자기 사랑은 '충만한 삶'을 불러올 것이다.  

- 아버지는 자연 요법 전문 의사로서 늘 몸 전체를 보았지만 나는 그런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다. 나는 몸을 청결히 유지하고 영양을 공급해 주고 가끔 건강 검진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난히 피곤할 때는 목욕을 하거나 잠을 많이 자주었다. 하지만 빛의 존재 덕분에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다시 내 몸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정작 내 몸은 내가 해준 그런 것들에 상당히 무관심한 것을 알고 놀랐다.

 

- 우리 몸이 반응하는 것은 다양한 진동뿐이다. 그것은 우리 몸이 순수한 공명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진동과 우리가 입는 옷 색깔의 진동에 반응하고, 우리의 생각에 반응하며, 특히 우리 자신에 대한 감정에 크게 반응한다. 그러나 우리가 몸의 의식이나 몸이 우리에게 반응하는 방식을 모른다면, 우리는 몸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그 모든 기적을 알아차릴 길이 거의 없다. 우리는 몸을 사용하고 씻기고 보살피지만 몸 안에서 몸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나는 빛의 존재의 도움으로 몸을 색과 진동, 주파수의 울림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체로 보게 되었고, 의식적으로 몸이라는 이 우주에 들어갔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몸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것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자 모든 것이 변했다.

- 그렇다면 몸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 사실 우리 몸은 우리에게 너무도 분명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그렇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 몸이 통증이나 질병을 통해 문제가 있는 부분을 보여준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우리가 더 빨리, 아니 거의 매 순간 들을 수 있게 전달하는 전혀 다른 메가폰을 갖고 있다. 사실 당신은 몸의 진짜 언어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당신 몸의 진짜 언어는 바로 당신의 감정이니까 말이다!

- 여기서 잠깐! 80조 개나 되는 세포들 하나하나 안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황금빛 점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이 황금빛 점들은 근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당신에게 반응한다. 당신이 사랑의 감정을 보내면 이 점들은 그 사랑에 도취되어 당신이 보낸 것의 두 배를 보내줄 것이다. 당신의 몸은 당신에게 감정으로 말하므로 당신도 감정으로 말할 때 가장 쉽게 몸과 소통할 수 있다.

- 임사체험 후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나는 그 방법을 내 몸과 함께 찾아내기로 했는데, 그러자 그 일이 아주 쉬워졌다. 몸은 나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나를 도왔다. 가볍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일이면 나는 그게 나에게 맞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불편하거나 무겁다고 느끼면 그 즉시 나는 내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당신이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고 또 인생을 위해 경험하고 싶은 모든 일은 오직 이 물리적인 몸과 의식의 공명장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그러므로 당신의 몸이 열쇠이다! 충만함은 당신 밖에서는 불가능하며, 몸 없이는 경험할 수 없다!

- 살면서 당신이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당신의 몸이다. 당신의 몸은 오직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고 몸속의 80조 개 세포들 하나하나가 근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몸은 당신과 근원 간의 직통전화 같은 것이다. 앞으로의 길에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 아니 그 이상의 모든 것을 당신의 몸은 갖고 있다. 

 

- 우리가 삶의 이 모든 경이로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고치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고치는 안쪽에서 보면 극복할 수 없는 장애 혹은 시야를 가리는 두꺼운 안개 벽처럼 보인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바깥에서 충만함, 사랑, 영혼, 신을 찾는다. 자신을 떠나 '높이' 올라가서 신을 만나려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사랑을 느낄 수 없기에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리를 지원해 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누군가를 바깥에서 찾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조건화되었고, 아무도 그것이 오류라고 가르쳐준 적이 없다.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나는 그들 내면의 공허함을 보고, 그들이 자신과 얼마나 힘겹게 싸우고 있는지 보며, 그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를 느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감정을 억압하고 스스로 무력하다고 믿는다. 

-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바깥에서 찾기를 멈추면 모든 것이 이미 있음을 보게 될 테고, 당신이 그리워했던 모든 것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다. 당신 안에서 말이다! 내가 그 가장 좋은 증거이니 내 말을 믿기 바란다. 나는 절대 육체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가 경험한 멋진 것들을 다시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나는 현재 내 몸 안에서 그때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 게다가! 내게는 더 이상 두 개의 세계가 없다. 분리도, 내면의 공허함도 없다. 빛의 존재의 에너지 진동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그 미묘한 세계와 이물질 세상에서 똑같이 편하게 춤추는 댄서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 당신을 위한 황금 열쇠는 곧 '당신의 영혼을 보는 것'이다. 당신 영혼의 무한한 의식의 장은 당신과 분리될 수 없고, 당신에 대해 다 알고 있으며, 당신의 길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 영혼을 밖에서 찾지 말고 당신 안에서 찾는 건 어떨까? 당신의 닫힌문들을 열고 당신의 영혼, 당신의 영적인 동행자, 그리고 신 또한 당신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건 어떨까?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사랑을 당신 안으로 갖고 들어오는 건 어떨까?

-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무한한 가능성의 장에서는 당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며, 당신이 창조하는 모든 것은 당신 손에 달려 있다. 당신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한번 시도해 보고 스스로를 깜짝 놀라게 해 보라. 당신에게 좋고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자석처럼 당신에게로 끌려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호흡을 이용해도 좋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당신이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모든 것을 되찾아온다고 상상해 보라.  
 

- <진짜 삶을 위한 8개의 황금 열쇠>

황금 열쇠 1 : 내려놓기와 인정하기
황금 열쇠 2 : 감사하기

황금 열쇠 3 : 선택할 힘이 있음을 알아차리기

황금 열쇠 4 : 결정하기

황금 열쇠 5 : 내면의 기쁨과 가벼움을 따르기

황금 열쇠 6 : 몸과 소통하기 

황금 열쇠 7 : 바깥에서 찾기를 멈추기 

황금 열쇠 8 : 자신을 사랑하기

 
- 사랑은 지구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과목이다. 스스로에게 다정해지는 것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자신에게 관대하고 자신의 좋은 점들을 인정해 주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의 사랑을 구하는 것에 더 익숙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이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관계가 중요하다! 당신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키운다는 것은 바로 자신을 지금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정한다는 뜻이다! 

- 그러려면 당신이 지금 있는 그대로 언제나, 정확히 옳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당신은 한 번도 잘못한 것이 없고, 잃어버린 것도 없으며, 비난받아야 할 것도 없다. 영혼의 눈으로 보면 당신을 깎아내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당신을 작고 의존적인 존재로 느낄 이유도 없다. 죄가 없으므로 참회할 것도 없고, 당신 자신 외에는 당신을 심판할 사람도 없다. 당신은 그 어떤 잘못도 한 적이 없다. 당신은 그 반대라고 강하게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사랑을 얻기 위해 특정한 성과를 낼 필요가 없으며, 당신의 무언가를 바꿀 필요도 없다. 사랑은 당신에게 완전히 열려있다. 당신이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해도 그렇다. 

- 삶이 지닌 가능성의 극히 일부만 활용해도 우리는 가장 풍요롭고 충만한 사람이 될 것이다.
당신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가볍게 하는지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당신이 자신을 신성한 존재로 알아차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신은 기적이고, 당신이 깃든 몸도 기적이며, 당신을 둘러싼 세상도 기적이다. 당신의 의식을 모든 가능성에 열어두면 그것은 끝없는 하나의 '기적'이 될 것이다!

- '지금 여기'에서 숨을 들이쉬고 이 페이지의 모든 문장을 이해해 보라. 그리고 숨을 내쉬며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며 기다려보라.
그러는 동안 당신은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소리나 다른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숨을 들이쉰다. 아까보다 조금 깊이 들이쉰다. 당신의 폐는 날개를 연상시킨다. 나비나 천사의 날개 같다. 이제 숨을 내쉬어보라.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내쉰다. 심장이 정맥을 통해 혈액을 펌프질하고, 세포들은 분열하고 있으며, 당신은 어쩌면 심지어 당신 몸속에서 황금빛 점들이 진동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숨을 다시 들이쉰다. 이번에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내용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하고 당신은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시 숨을 내쉰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 그것을 알아차렸는가? 집중해 보자. 이 순간이 페이지의 이 문장들과 함께 존재하면서 동시에 당신 몸을 인식해 보자. 매 순간이 고유하고, 그 순간들이 이어져 우리의 삶이 된다. 우리는 수많은 소중한 순간을 살지만 대부분 그것들을 정말로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 삶은 우리 안에서 숨 쉬고 흐르고 새로워진다. 

- 당신 안팎의 모든 것이 기적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기적에 의식을 돌리고 그것에 집중할 힘이 있다. 당신의 에너지 진동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몇 초 전의 당신은 이미 당신이 아니다. 지금의 당신은 새로운 당신이다. 몇 초 안에 당신은 다시 새로운 당신이 될 것이다. 당신이 에너지 진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누군지는 몇 분이 지나면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당신은 다시 새로운 당신이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당신의 몸은 지금과 다르게 진동할 것이고, 당신은 다른 것에 주의를 집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심지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무효로 돌리는 결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신 자신과 사랑에 빠지거나.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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