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심야괴담회 제작팀
출판 : 자화상
출간 : 2025.07.20
원래 기담-괴담 류를 좋아했던 건 맞지만.
보통 여름 전후로 짧게 관심을 가졌다 사그라드는 편이었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즐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몰랐을 뿐, 겨울의 괴담도 나름의 정취와 즐거움이 있다.
<심야괴담회> 중 내가 본 영상은 딱 하나뿐이지만, 꽤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방송 프로그램이란 건 알고 있었다. 큰 흥미가 있던 프로그램이 아니었는데도 <심야괴담회 대본집>을 읽게 된 이유는 '서문' 때문이었다.
심야괴담회를 사랑하는 어둑시니에게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철야근무를 강요받던 시절, 기나긴 밤을 어찌할 수 없어 온갖 커뮤니티 게시판을 기웃거리다, 결국 정착한 곳은 공포, 괴담 게시판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런 배경과 경험들이 있었구나.
그리고 문득 웹소설로 연재 중인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그 작가분도, 어쩌면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렇게, 현장감 넘치는 묘사들을 쓸 수 있었던 건지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대출해 왔었다.
아마 대부분의 <심야괴담회 대본집> 독자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런 경우엔 반가움과 팬심이 더해져 더 즐겁게 읽으실 것 같다.
대본집을 먼저 접한 입장에서는, 실제 패널들의 실명과 등장인물 소개 등의 형식이 몰입을 어렵게 한다고 느꼈다. 물론 '대본집'이라고 제목을 정할 때부터 이 형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을 것이고, (아마도 기존 방송을 접해본 이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수정 편집이 더 용이해서가 아니었을까) 그걸 모르고 읽었던 건 아니지만.
<심야괴담회>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대본집보다는 방송이 더 흥미로운 포맷이 될 것 같다.
끝.
심야괴담회를 사랑하는 어둑시니에게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철야근무를 강요받던 시절, 기나긴 밤을 어찌할 수 없어 온갖 커뮤니티 게시판을 기웃거리다, 결국 정착한 곳은 공포, 괴담 게시판이었습니다. 방송 종료에서 애국가가 나오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는 시간이면, 방금 읽은 괴담의 무서운 장면들이 선연히 떠오르며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 활자의 연쇄일 뿐인 것들이 사람에게 이토록 무서움을 안겨줄 수 있는가? 이 감정을 홀로 느끼고 삭여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내가 다시 PD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심야괴담회>의 기획안을 써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수희 작가님과 루이웍스 한율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이 단순한 아이디어는 실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게는 낯설기만 한 이 프로그램이 다섯째 시즌을 맞이하게 된 것은 오롯이 시청자분들의 성원 덕입니다. 이 대본집이 조그만 보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대본을 펴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헤어질 결심 각본집>을 보고부터 부러움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화계 거장의 작품과 지상파의 공포 프로그램을 동렬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시청자들의 열정도 여기 못지않을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마침 자화상 출판사에서 이 부러움을 알아주고 호응해주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제작진에게 보내오는 사연을 보면 <신혼집의 다락방>(시즌 1, 서이숙 배우 출연)처럼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잡지에 실리는 수기의 형식을 띤 정제된 문체로 무서움을 일으키는 명문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이 겪은 체험을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두서없이 적어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두서없음으로 비롯되는 '날것의 공포'를 잃지 않으면서 방송에 적합한 언어로 가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여기서 생겨납니다. 이때부터 <심야괴담회> 작가진의 활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철저한 전화 취재를 통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방송 언어로 순화하거나 괴담꾼들(출연자)의 입말에 맞게 고치고, 때로는 더욱 무섭게 이야기의 구조를 틀어놓기도 합니다. 우리 작가들은 시즌이 시작되면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밤까지 계속되는 구성회의와 토씨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도리질을 시전하는 까다로운 PD를 거쳐 대본을 만들어냅니다. 대본이 완성되면 녹화장에 들어가 괴담꾼들과 리딩을 하며 합을 맞춥니다. 그리고 촛불 하나하나에 울고 웃습니다.
...
저는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이 프로그램은 본격 작가 학대 프로그램이니 각오를 하시라고 합니다. 그 학대는 자기-학대, 그 학대의 주체는 작가 자신입니다. 최선을 다해 무섭거나 기이한 이야기로 만들어오라는 지상과제 아래, 겨우 얻어 쉬는 날에도 구성을 생각하며, 단어 하나를 고치겠다고 밤을 새웁니다. 혼자 사는 작가들은 찬송가를 틀어놓고 대본을 씁니다. 글을 쓰다 잠이 들이 가위에 눌리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피디는 모르는 체하지만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제대로 된 괴담을 방송에 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지를 .
조명이 꺼지고 카메라가 철수하는 세트, 귀퉁이에 쌓인 대본을 보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피로 쓴 대본들이 저렇게 잊히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냥 읽어도 좋은 이야기들인데 방송을 위해 일회용으로 소비되어서야 되겠는가. 이 대본집 작업을 착수한 계기가 부러움이라면 또한 이 작업을 마무리해야 할 이유는 고마움입니다. 이 대본집은 에피소드 대본마다 특정 작가의 작업이라 명기하지 않습니다. 대본과 작가의 매칭은 제비 뽑기 같은 우연과 상황의 결과이고 기본적으로 심야괴담회 작가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공동 작업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 젊은 나이에 돌연사한 아버지 소식으로 동네가 어수선했어요. 이장 할아버지의 주도로 아버지의 장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사 음식을 해다 주고, 또 어떤 분들은 상여를 가져와 꾸며줬죠. 그리고 단골네 아줌마가 왔어요. 당시엔 동네마다 '단골네'라고 불리는 무당이 한 명씩 있었거든요. 동네에서 사람이 죽으면, 아줌마가 와서 꼭 천도굿을 치러주셨어요.
- 커다란 창호지 꽃으로 장식한 아버지 상여 앞에 병풍과 제사상이 차려졌습니다. 계속 까무러치는 엄마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겨우 붙잡고 서 계셨고 전 그런 엄마의 상복을 부여잡고 울먹거릴 뿐이었어요. 대체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인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어요. 단골네 아줌마는 소복 차림으로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더니 곧 화려한 옷을 걸치고 칼과 삼지창을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효과음으로 <새남굿 상산거리> 흐른다.)
- 그러곤 쌀이 소복이 담긴 도자기 그릇을 가져오더니 아버지의 옷으로 덮었어요. 한참 몸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중얼거리다 아버지 옷을 다시 걷어냈습니다. 그러자 쌀에... 아끼는 없던 새 발자국 모양이 찍혀 있었어요. 발자국 뒤로 기다랗고 넓적한 꼬리 자국까지 이어지고 있었죠. 이를 본 동네 어른들은 다행이라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새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거라고 했습니다.
- 그런데 단골네 아줌마는 심각한 표정으로...
단골네 : (불길하다는 듯) 이상하다, 이상해... 이 기다란 게 왜... (호통치며) 이 집 이러다 남은 여자 둘도 죽을 수 있어! 정신 단단히 잡아!
- 의아해하며 연신 중얼거리던 단골네 아줌마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엄마와 저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저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그때, 동네 어르신 4명이 나와 길고 커다란 삼베 천의 귀퉁이를 각자 잡고 대문 쪽을 향해 섰어요. 마치 길처럼요. 그리고 단골네 아줌마가 대문 반대편에 서서 소리쳤죠.
단골네 : (크게) 갑시다~! 가자~!
- 그러더니 몸으로 삼베 천을 밀어, 길게 반을 찢으며 대문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턱 막혀 삼베가 더 이상 찢어지지 않는 겁니다. 천을 반으로 쭉 찢으면서 그 안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 천이 안 찢어졌어요. 귀퉁이를 잡고 있는 어른들이 잡아당기는데도 안 찢어져서 결국 칼을 가져와서 찢으면서 걸어갔어요. 날이 번쩍이는 칼이었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겨우 반으로 가르더라고요. 진행이 안 되니까 아줌마가 너무너무 힘들어했어요. 다른 어른들도 얼굴이 안 좋아지고 수군대더라고요.
- 엄마와 저는 바로 아버지가 묻힌 곳으로 달려갔어요. 묘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계단식으로 즐비해 있던 무덤이 산사태로 다 무너져 내려, 관들이 쓸려 나와 있었어요. 엄마와 전 아버지 관이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했습니다. 겨우 발견한 아버지 관은 뚜껑이 두 동강 나 산 중턱에 걸려 있었어요. 급하게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한 뒤, 엄마는 바로 절 단골네 아줌마에게 데려가 자초지종을 말하곤 딸을 살려달라며 우셨습니다.
단골네 : (이제야 알겠다는 듯) 그때 붙은 거구먼. 쯧쯧. (호통) 백 년 묵은 묘 옆을 지나갈 때도 인사를 하고 가는데, 어딜 자살귀한테 혀를 내밀어! 네 아버지가 끝까지 붙들고 가서 망정이지. 너 죽을 뻔했어, 이년아!
- 아줌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5년 전 천도굿을 할 때 아버지 상여 사이로 밧줄 하나가 길게 나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밧줄에 한 맺힌 다른 영가가 발악하며 매달려 있었다고요.
단골네 : (낮게) 그 쌀그릇... 네 아버지가 목줄을 부여잡고 질질 끌고 가는 형세였던 거야, 그게.
- [뒷이야기]
Q. 이후 그 아저씨를 또 본 적은 없냐?
A. 그때 단골네 아줌마가, 아저씨를 봤던 나무 옆에서 빌고 오라고 해서 청주랑 떡이랑 담배랑 올리고 "죄송하다, 노여움 풀고 좋은 곳으로 가셔라." 엄마랑 같이 제를 지내드렸어요. 그리고 아직도 하고 있는 게... 그 아저씨가 아버지랑 기일이 같은 거잖아요. 아버지 제사 지낼 때, 제사상 밑에 큰 쟁반을 하나 두고 거기에도 따로 음식을 간단하게 올려서 제사상을 하나 더 차려놓고 있어요. 그러면 혹시나 아버지를 따라와도 제사 음식 먹고 해코지를 안 할 거라고 해서요.
- 우리가 흔히 쓰는 '단골'이라는 말은 사연에 나왔던 '단골네'에서 온 말이다. '단골네'는 원래 마을의 세습 무당을 일컫는데, 쉽게 말하면 동네에 매번 오는 무당이다. 그 의미가 죽 통용되면서 늘 정해놓고 가는 집, 손님을 '단골집, 단골손님'이라고 하게 된 거라고.
- 천도할 때 짤이나 쌀가루를 광주리나 그릇에 쌓아두고 망자의 옷이나 한지로 덮었다가 들춰보는 의식이 있다. 그때 새, 뱀, 돼지 같은 동물의 발자국이 나타나면 혼이 무사히 잘 떠나 환생했다고 본다. 사연에서는 새 발자국 뒤에 꼬리 같은 자국이 하나 더 나타났는데, 그게 바로 불길한 징조였던 것. 새 발자국은 아버지가 맞고 새의 꼬리인 줄 알았던 자국은 끌려가던 그 아저씨의 형상이 아닐까.
- 삼베 천을 찢으면서 '갑시다~ 가자~' 하는 건 무엇인지? 지역마다 명칭은 아마 좀 다를 텐데, '베 가르기'라고 한다. 기다란 무명이나 삼베 천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을 상징한다. 망자를 무사히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 그걸 반으로 찢어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 문자도 남겼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연락이 안 되는 거죠. 어떻게 해야 하나... 핸드폰으로 '일본 숙소 정전' 이렇게 막 검색을 하는데... 누군가 올려놓은 게시물이 하나 눈에 띄는 거예요. 찬찬히 읽어보니까... 집에서 악취가 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갑자기 정전이 된다... 이게 다 '귀신이 있다는 징조'라는 거예요! 순간 섬뜩하긴 했지만 '그냥 단순한 정전이겠지' 하고 넘기기로 했대요.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녔더니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요.
- 입실 당일에도 환불이 가능하다
화장실은 되도록 문을 열어놓고 사용할 것
혼자 숙박할 경우 침대에 베개는 하나만 둘 것
미등이라도 불은 꼭 하나 이상 켜두고 잠들 것
갑자기 등이 나갈 경우 집 안에 머물지 말 것
- 등등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안내 사항이 잔뜩 기재돼 있었던 거죠. 지희 씨가 멍해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숙소에서 핸드폰으로 찍었던 사진을 다급하게 막 찾더래요. 왜, 투숙객들이 수기로 작성해 둔 방명록이 있었잖아요. 사진에 찍힌 내용을 번역기에 입력해 보더니 남편의 얼굴이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변하더래요. 그 내용이 뭐였냐면...
"정전이 된 이후로 이상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숙박료가 싼 건 이 집에 저희 말고 세 명이 더 있기 때문이에요"
"소파에 한 명, 침대에 한 명, 그리고 화장실 거울 속에 한 명이 있습니다"
투숙객들이 이 숙소에서 목격한 이상한 존재들에 대한 얘기뿐이었던 거죠. 그날 이후로 지희 씨는 너무 저렴한 숙소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 제가 죽은 걸로 알고 계신 분이 많아요. 제가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말 못 하고 그냥 떠나버렸거든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XX시에 제가 거주하고 있거든요. 그분이 제 집을 찾아올까 봐 무섭긴 해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그 이야기가 숨겨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제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갓 신을 받은 애동 무당일 때 얘깁니다.
- 그러자 제 머릿속에 '석' 그리고 '대', 이 두 글자가 그려졌습니다. 이어서 해남 대흥사, 햇님이란 단어가 떠올랐어요.
은미 : 이름이 석대야, 대석이야? 절하고 햇님은 또 뭐고. 왜 왔어?
그러자 영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온 말은...
(효과음 삐-)
은미 : (귀 감싸쥐고 쓰러지며) 악! (억울해하며 투정 부리듯) 할머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저도 돈은 벌어야죠!
- 절 방해한 건, 대신 할머니였어요. 어느새 영가는 사라진 뒤였죠. 제가 왜 그랬냐 물었지만, 할머니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얼마 만에 온 손님인데 도와주시지. 섭섭하더라고요.
- 아주머니는 화를 내며 아들과 함께 돌아가버렸죠. 혼자 남은 저는 바르게 앉아 다시 방울을 고쳐 잡았습니다. 이대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아까 본 장면에서 깊은 슬픔과 한이 느껴졌거든요.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듣는 무당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었죠. 게다가 정신을 잃기 전, 뇌리를 스쳤던 단어가 있었습니다. '향우회'. 무슨 의미인진 몰라도, 죽은 자가 제게 보낸 메시지인 것 같았어요.
- 은미 : (방울 흔들며) 할머니. 불쌍한 영가 하나 달래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땀에 푹 젖을 정도로 빌었지만, 할머니는 답이 없었습니다. 무당으로서 가장 난감한 순간이에요. 지금처럼 신이 입을 다물 때,
은미 : (결연히) 하, 좋아요. 할머니가 말씀 안 해주시면 내가 알아내야지, 뭐.
- 아주머니 남편 혼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복면을 쓰고 모자를 쓴 남자가 다가오더니 그 남편분의 머리를 가격하고 뒤통수를 가격하고 갈비뼈를 계속 내려치는 장면만 보였어요. 그 남자는 그 아주머니 남동생이었던 거예요. 그 남동생이 수건을 돌돌 말아서 적신 다음에 얼린 걸 가지고 때리는 장면을 봤는데, 그렇게 때리게 되면 타박상 없이 내상만 생긴다 하더라고요. 조직폭력배들이 쓰는 방식이라고. 남동생의 경우는 그 아줌마가 사주를 했던 거죠. 남편을 죽이라고 실제로 그 남동생은 그러니까 자기 누나죠. 누나가 (보상으로) 식당을 차려줬다 하더라고요. 제가 봤던 '향우회'라는 단어는... 범행도구였던 수건에 적힌 문구였던 거죠.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 무려 6억에 달하는 사망보험금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네. 전부... 돈 때문에 벌인 일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아주머니의 아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에 씌어서 괴로운 게 아니었어요.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서 그랬던 거죠. 대신 할머니가 절 방해한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위험해질 거란 걸 아셨던 거겠죠.
- 신당으로 돌아온 전, 정신없이 짐을 챙겼습니다. 신고는 불가능했어요. 전 점사를 봤을 뿐 살해 증거를 찾은 건 아니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단 하나, 제가 죽었다는 거짓 연락을 돌리고... 이 무서운 곳을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것뿐이었습니다.
- 호텔 로비에 예술 작품 같은 게 걸려 있는 거예요. 가까이 가서 보니까 사람만 한 대형 부적 두 장을 액자에 넣어서 걸어놨더라고요.
"어? 이거 부적이네요?" 하니까 아버지가 현지인 동료분께 들었다면서 말씀해 주셨는데... 이 호텔이 '귀신 나오는 5성급 호텔'로 현지에서 유명하다는 거예요. 뭐 전쟁 때 죽은 군인 귀신, 일제 치하 때 억울하게 죽은 귀신... 각종 귀신이 엄청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처녀 귀신이 특히 많다고 했어요. 그래서 부적도 걸어놓은 거라고요. 처음엔 가족들 다 안 믿었죠. 당시 제일 좋은 호텔이었으니까. 오히려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사진도 찍고. 그런데 저한테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몰랐죠.
- 아줌마의 머리채를 단숨에 잡으며 소리쳤어요.
순자 : (분노) 네년이 살을 잘못 날려서! (분에 차 울먹이며) 내 아들이 죽었어!
그러자 개구리집 아줌마가 날카롭게 소리쳤어요.
무당 : (표독스럽게 호통) 잘못 날리긴! 그럼, 멀쩡한 사람한테 살을 날리고도 잘 살 줄 알았어? 저 집 남편 빼앗았으면 그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이 멍청한 것들!
- '저 집'이라 말하며 어딘가를 정확히 가리키는 개구리집 아줌마. 그 손가락 끝에는 고모가 서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고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죠.
- 제가 유독 저희 고모네가 하는 일마다 대박 났다고 한 말... 기억하세요? 그런데 반대로 순자 이모네 집은 하는 일마다 망하는 통에, 늘 근심과 걱정을 달고 살았다고 해요. 그러자 순자 이모의 마음 한편에 조금씩 시기와 질투가 피어났죠. 무당은, 자신을 찾은 순자 이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당 : (날카롭게) 마을의 대운을 그 큰집이 모두 빼앗아 가고 있어! 그걸 끊어야 해!
- 결국 시기심에 눈먼 순자 이모는 해선 안 되는 짓을 하고 만 거죠. 제가 산에서 봤던 그 행위들은 고모네를 해하기 위한 저주였던 겁니다. 저를 감시하는 듯했던 무당의 눈빛도, 제가 아닌 고모부를 향했던 것이었죠. 남편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모든 걸 알게 된 고모는 멍하니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는 아직도 개구리집 무당의 마지막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무당 : (표독스럽게 고함) 너네도 다~ 죽을 거야. (한 명씩 가리키며) 너! 너! 너! 너! 다 멀쩡히 잘 살 줄 알았어?! 너네도 다 죽을 거야. 싹 다! 죽을 거야!
- 무당의 저주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불안감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서로를 바라봤어요.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거예요. 아줌마의 정체가 무엇이고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떻게 아냐고요? 고모가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의 의미로 받은 선물들... 알고 보니 그것들 곳곳에 부적이 가득 숨겨져 있었거든요. 고모 가족을 제외한 마을 사람 모두가 한 패가 되어 무당을 마을로 불러들였던 겁니다. 그리고 돈에 눈이 먼 무당은 저주의 위험을 경고조차 하지 않은 채, 의뢰를 수락했던 것이죠.
- 왜 가면 안 되는지 묻고 싶었지만, 아주머니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만 그 고개 생각이 났습니다. 결국 저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그 고개를 찾아갔죠. 들키면 혼날까 봐 몸을 낮추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엇!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 한 분이 그 고개를 올라가는 거예요.
- 태훈 : 뭐야~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가잖아!
용기를 얻은 전 재빨리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걸었는데 기대랑 달리 평범한 시골길이더라고요.
태훈 : 에이, 다리만 아프고. 괜히 왔네.
실망해서 돌아서려던 그때, 갑자기 목덜미에 오싹 소름이 돋았습니다. 새삼 주위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더라고요. 새소리나 바람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여긴 지나치게 고요했어요. 마치 이 고개의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제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 아주머니 : (씁쓸하게) 큰일 날 뻔했어. 다시는 거기 가지 마라. 알겠지?
태훈 : 네.
제가 대답하자 아주머니가 씁쓸한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죠. 그때는 몰랐습니다. 엄마가 놓아준 베개 속에 부적이 있었다는 것, 그 부적을 넣어준 사람이 약초 아주머니였단 걸요.
-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저는 제가 갔던 그 고개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음성읍에 00 초등학교라고 있는데, 거기서부터 금왕읍으로 넘어가는 언덕이 흔행이 고개예요. 그때도 도로가 있긴 했는데 그 도로를 따라가다가 오솔길로 빠져서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거든요. 당시에 큰말제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동네로 다시 들어가는 개울가 교각에서 그림자를 본 거죠. 지금은 큰 도로가 생겨서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제가 갔던 고개가 알고 보니 '흉행이 고개'라는 곳이었어요. 조선 중기 때 고개를 넘던 장사치가 도적들한테 살해당한 이후로 이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뭔가에 홀려서 실성하거나 죽는 일이 많아진 거예요. 그 이후로 선조 때는 '더금뫼'를 하는 장소가 됐는데, 그게 뭐냐면 전염병 환자나 죄인의 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몰래 버리는 행위거든요. 동네 어르신들도 '거기 전염병 환자 갖다 버리는 데다, 가지 마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하더라고요.
- 경찰 : (걱정하며) 학생! 괜찮아요?
제 앞에 나타난 건 경찰과 집주인 아저씨였어요.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이 문을 두드리는데도 안에서 반응이 없자, 집주인에게 부탁해 마스터키로 문을 연 거였어요. 저는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CCTV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영상 어디에도 그 여자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제가 혼란스러워하는 그때, 경찰이 말했습니다.
경찰 : (걱정하며) 학생, 공포영화 좋아하는 것 같은데, 방에 포스터 떼고 주무세요. 벽에 그런 걸 붙여두니까 헛것을 보는 거 아닙니까.
- 그 말을 들은 전, 확신했죠. 내가 본 게...
- 경찰관님이 제 방까지 돌아보고 나가면서 '벽에 공포영화 포스터 떼고 자라, 그런 거 걸어놓고 자니까 헛것을 보는 거다' 말씀하셨거든요. 제가 공포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포스터를 걸어놓지는 않아요. 제 방 벽에 걸려 있는 건 거울 밖에 없었어요. 당장 거울을 떼서 버렸지만,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 병실에서 나오는 언니가 보이더래, 지영 씨는 급히 달려가 언니의 손목을 잡아챘는데... 언니 손에서 주머니가 하나 떨어지더래. 근데 거기에 손발톱과 머리카락이 잔뜩 들어 있는 거야.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영 씨는 언니를 끌고 병원 밖으로 나왔어.
지영 : (다급하게) 언니,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 지영 씨가 다그치니까 언니가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 알고 보니까 언니가 갔던 신당에서 아버지 명이 일 년도 안 남았다고 했다는 거야. 실제로 당시 아버지는 다리를 다쳤던 교통사고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고 계셨거든. 그런데 그 신당에서 '대수대명'이라는 걸 하면 아버지 명을 이을 수 있다는 거야. 아버지의 손발톱과 머리카락, 생년월일시가 적힌 종이 그리고 간단하게 상을 차려 의식 치를 비용 37만 원을 주면... 아버지가 오래 살 수 있다고 한 거지.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언니도 눈앞에서 아버지 건강이 계속 안 좋아지니까 해야겠다 마음먹고 아버지 손발톱과 머리카락을 가지고 왔던 거야. 얘기를 듣고 이상함을 느낀 지영 씨가 언니 핸드폰을 뺏어서 무당이랑 대화한 내용을 확인해 보니까 아주 가관인 거야. 굿 안 하면 초상 치른다, 부적 써야 한다며 불과 몇 달 새에 달라는 돈이 칠팔백만 원은 훌쩍 넘겠더라고.
- 보살 : (대노) 대수대명이라니! 명이 다하지도 않았는데 대체 어느 미친 게 그런 걸 알려줘? 걔는 죽고 나서 저승 문 앞에서 갈기갈기 찢겨 죽을 거다! 어디 사람 명줄 가지고 돈벌이를 해!
- 알고 보니까 이 대수대명이 대신할 '대' 목숨 '수' 목숨 '명'. 남의 명을 가지고 와서 끝이 보이는 내 명을 잇는 거라더라고.
근데 보살이 어떻게 다 알고 있었냐면 지영 씨 아버지가 몸이 안 좋은 걸 알았던 보살이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해주고 있었는데, 귓가에 자꾸 젊은 여자 목소리랑 나이 든 남자 목소리가 맴돌더래.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지영 씨 목소리랑 비슷했는데, 지영 씨는 아니었고.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는 직감적으로 지영 씨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었대. 근데 그때 서늘한 느낌과 함께 방울 소리가 들리더니 똑 똑 손톱 깎는 소리가 같이 들리더래. 보살은 '대수대명을 하려는 거다' 알아채고 바로 지영 씨에게 전화했던 거지.
- 그런데 보살이 계속 화를 냈잖아요? 그 이유를 말해주는데... 이 '대수대명'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곤 언니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보살 : (낮고 무섭게) 잘못하면... 아버지 피를 이어받은 혈육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의 명을 뺏어오게 돼. (언니 삿대질하며) 너... 몇 년 전에... 아들 하나 낳았지?
- 보통 신기가 강한 사람을 신가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건 잘못 쓰는 것이다. 신기가 강한 건 단순히 말하면 '신이 보내는 기운'을 유독 잘 느낀다는 거고, 신가물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신이 선택한 사람'을 가리킨다.
- '대수대명'이란 게 원래 있는 말인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에 보면 한국민속 대백과사전이 있는데, 한국민속에 관련해 모은 자료들을 집대성한 전문백과사전이다. 여기에 대수대명이 등재되어 있다.
- 설명을 보면, 대수대명은 '서낭고를 푸는' 대표적인 의례라고 나온다. 서낭은 마을을 지키는 당집이나 당산나무를 말하고, 서낭고는 한이 많아서 이 서낭에 얽혀 있는 조상을 뜻한다. '고를 푼다'에서 '고'는 고리, 매듭을 의미하여, 망자의 한을 풀고 저승으로 보낸다는 것을 뜻한다. 무속 세계에서는 조상이 한이 많으면 병이 낫지 않고 액운이 온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원래 대수대명은 사람이 아닌 동물, 허수아비, 북어 같은 대체물로 진행하는 거라고 나와 있다.
- 김호영 : 솔담배는 1980년대를 풍미하며 한때는 '국민 담배'로 불렸는데요. 1994년부터는 저소득층을 위해 가격을 대폭 낮추고, 농촌지역 위주로만 보급해서 전국적으로 품귀현상까지 일었다고 합니다. (잠시 쉬고) 지금은 기억 속에 사라진 솔담배에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영배 씨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김호영 : '코케시'. (부적 정리하고) 이번 사연은, 서울 성동구에 살고 계신 이정우(가명) 씨가 보내주신 사연인데요. 심괴 찐 애청자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일본 괴담'입니다. (코케시 꺼내서 보여주며) 자, 여러분, 이렇게 생긴 장식품 혹시 보신 적 있나요? (반응 듣고) 이건 바로 '코케시'라고 하는 일본 전통 목각장식품인데요. 일본 여행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이거든요? 그런데 정우 씨에게는 더 이상 평범한 기념품이 아니라고 합니다.
- 그리고 기억하시나요? 새빨간 기모노를 입은 귀신이 중얼거리던 말, 오사카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우리 가족을 보며 했던 그 말! 무슨 뜻인지 찾아보고 난 뒤, 저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싯토데 타마라나이"의 뜻은 "질투가 나서 견딜 수 없다"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일 수도 있지만요. 오사카에서 만난 그 아주머니가 제 옆구리를 찌를 때 했던 이 손동작, 숨겨진 뜻이 있더라고요. 다른 나라에서는 '당신의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라는 뜻의 욕이라고 해요. 그 아주머니... 선물이라면서 코케시를 내밀고는, 은밀하게 다른 손가락으로는 욕을 했던 거죠. 오사카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우리 가족에게 건넨 코케시. 어쩌면 선물이 아닌, 질투에서 비롯된 끔찍한 저주가 아니었을까요?
- 코케시에 슬픈 전설이 있었다. 코케시 글자를 뜯어보면, 코(こ)는 '자식', 케시(けし)는 '지움'이라는 뜻이어서 코케시는 '자식을 지우다'라는 뜻이다. 코케시가 일본 동북지방 전통 목각 장식품인데 옛날부터 동북 지방에는 먹을 게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입을 줄이기 위해서 신에게 공양으로 아이를 바쳤는데, 이때 부모들이 죽은 자식의 혼을 기리기 위해서 이 코케시를 만들어서 간직했다고 한다. 다만 이는 다양한 전설 중 하나일 뿐 코케시는 일본 동북 지방의 상징이자 대표 공예품이다.
-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기운만 감돌 뿐, 아무런 자취도 없었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남편에게 그동안의 이상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시댁에라도 가 있자고 졸랐다.
-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어른들은 깜짝 놀라 물어 왔다.
시어머니 : (화들짝 놀라며) 아이고! 애미야, 애비야! 둘 다 얼굴이 왜 그러냐?
- 우리는 시댁 어른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더 놀란 건 남편과 나였다. 그동안 집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둘 다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야위었고, 얼굴색이 거무죽죽한 잿빛이었던 것이다.
아내 : (걱정하는) 여보, 아무래도 그 집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남편 : 그래. 최대한 빨리 다른 집을 알아보자.
- 그런데 이야기를 나눈 바로 다음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이 마치 딴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 엄마는 '얘가 왜 이런 걸 물어보지?' 싶었는데, 워낙 평소에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아들이어서 "응. 그렇지~" 하고 대답해 주셨대요.
-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달려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어요. 원래라면 바로 곯아떨어질 시간인데 오빠는 집에 오자마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래요. 평소 좋아했던 것들을 다 꺼내서요.
엄마 : (의아) 훈아, 뭐 하는 거야?
훈 : 그냥~ 한 번씩 다 만져보는 거예요~ (아무렇지 않게) 엄마, 저 족발 먹고 싶은데 시켜주면 안 돼요?
엄마 : (약간 나무라는) 너무 늦었어~ 내일 먹자.
훈 : (갑자기 떼쓰는) 아, 아아! 먹고 싶어요! 저 꼭 먹을 거예요!
- 평소 별명이 효자일 정도로 떼 한번 안 쓴 오빤데 갑자기 엄청 떼를 쓰더래요. 놀란 엄마는 '얘가 안 이러는데 오늘 정말 왜 이러지' 싶으셨대요. 그리고 엄마는 결국 족발을 시켜주셨대요. 배달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오빠가 갑자기 책장에서 가족사진이 든 앨범들을 꺼내더래요. 그러더니 쭉 펼쳐놓고, ...
- 그러곤 깎은 손발톱들을 가지런히 모아두더래요. 엄마는 그때 불안하면서도 화도 나고...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는 온갖 이상한 기분이 드셨대요.
- 그리고 이틀 뒤, 엄마는 평소처럼 오빠를 학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따르르릉 전화가 한 통 오는 거예요. 엄마가 불교 신자라 절에 다니셨는 그 절의 주지 스님이었어요.
스님 : (걱정스레) 당장 첫째 아들 데리고 절에 와서 2~3일 있다 가.
엄마 : 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스님 : (걱정스레) 내가 꿈을 하나 꿨는데... 눈 오는 날 첫째 데리고 친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금강경을 읽었어. 걱정되네. 오늘 어디 보내지 말고 절로 와.
엄마 : (약간 당황) 아, 훈이 10분 전에 학원 갔는데...
스님 : (단호하게) 그럼 돌아오는 대로 최대한 빨리 와!
- 그날 오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엄마는 오빠가 올 시간이 다 돼서 짐을 챙기고 계셨대요. 근데 그때 안내 방송이 울리더래요.
- 윗부분이 다 깎여 있는 거예요. 꼭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그대로 파는 것처럼요.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 적힌 가격이 100원, 200원... 500원 이렇게 적혀 있는 겁니다.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저희가 지나갈 때마다 가게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쳐다보기 시작한 거예요. 한 가게를 지나면 누군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쳐다보고, 또 한 가게를 지나면 누군가 나와서 무표정으로 빤히 또 쳐다보고... 심지어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저희를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마치 외계인이라도 본 것처럼요.
- 그리고 길 한쪽 편에는 공사장 인부로 보이는 아저씨 세 분이 얼굴과 몸에 시멘트를 뒤집어쓴 것 같은 모습으로 앉아서 드럼통에 손을 대고 불을 쬐면서 앉아계시는 거예요. 근데 이상한 게 뭔지 아세요? 한여름이라서 엄청 더웠는데 두꺼운 점퍼를 입고 추운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계셨던 거죠. 더 놀라운 건, 그 드럼통에는 불도 들어 있지 않았어요. 저와 엄마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는데 아는 체하면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의식하지 않는 척하면서 걸었습니다.
- 곧 시장 골목을 빠져나왔고, 눈앞에 건널목이 보였어요.
- 시끄러운 소음이 볼륨을 올린 것처럼 커지는 거예요. 게다가 불 켜진 가게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빠르게 달리는 버스와 택시들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죠. '아, 드디어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왔구나.'
-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누워서 쉬고 있었는데 엄마가 불안한 얼굴로 방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엄마 : (걱정하며) 주연아, 앞으로 웬만하면 밤에는 그 길로 다니지 말어.
주연 : 엄마, 아까 진짜 이상했지? 시장에 사람들 가득 차 있는 것도 그렇고...
그때 어머니가 뭔가에 홀린 표정으로 말하시기를...
엄마 : (살짝 겁먹은) 아까 내가 왜 빨리 가자고 했는지 알아? 아휴. 네 말 듣고 뒤를 보니까 시장은 무슨... 컴컴하니 아무것도 없었어.
- 특정한 결계를 통과한 것일까? 평범한 길에서 이렇게 두 사람이 무엇인가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옛이야기가 떠오른다.
조선 중기, 후기 문신 이원익이 산에 갔다가 어떤 절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서 한 노승을 만나서 신기한 경험을 하는데, 노승이 작은 종이에 글자를 써서 마당에 던지자 선계에서 내려온 학이 빙빙 도는 걸 보고. 또 노승을 따라 걸으니 길마다 보석이 깔려 있고, 길이 옥빛으로 막 빛나는 것이다. 나중에는 오색구름에 눈 덮인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그 노승이 하는 말이 "여기는 상선들이 모여서 연회하는 곳입니다. 인간 세상의 재상이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해서 그냥 돌아 내려갔다고. 나중에 이원익이 과거에 급제해서 일을 하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다시 그 산에 갔는데 노승도, 뒷산 봉우리도 못 찾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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