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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손님일까, 생각했었다.
황석영 씨의 작품이라면 장길산도 있고 개밥바라기도 있고, 무기의 그늘도 있고... 그런데 왜 손님일까.
그리고 읽으면서 알았다. 이 책이어야 했구나.
하지만 이 책이 주는 묵직함은 그대로 양날의 검이 되어 지금의 황석영에게 겨누어질 수밖에 없는 듯 하다.
어쩌면 그는 그것을 면죄부로 쓰려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와 작품은 하나이며 또 둘이다.
완전히 분리해서 바라볼 수도 없지만, 모든 것을 작가 개인과 작품을 연결시켜서 볼 수만도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작품이지.
이것은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설이다.
문장이나 구조가 빼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그 안에 녹아든 한국만의 정서는 흰 옷고름에 스며들어 빛바랜 핏자욱 그대로를 보여준다.
작가가 부러 의도한 바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 글은 챕터 구성과 별도로 수시로 화자가 바뀐다. 화자는 살아있는 사람일 때도 있고 이미 죽은 자일 때도 있다. 화자들의 말투 역시 그에 따라 이북 사투리와 현대적인 말투를 오가며, 같은 화자일지라도 과거를 떠올리다 바뀌기도 한다. 이런 점이 순간순간 혼동을 줄 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묘사되는 상황들이 활자로 흘러들어오기보다는 하나의 영상으로 그려져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그런 혼란스러움이 당시 상황을 더 잘 나타내준 듯도 싶고...
그 혼란과 비극은 일인칭 화자의 관점이나 시간 순서적 구성 만으로는 결코 드러낼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상황에서 종교적인 부분은 배제할 수 없는 요소인데다 작가가 메인 화자로 선택한 '류요섭'이 목사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가 짙게 드리웠다는 점은, 잘 모르겠다. 득인지 실인지ㅡ, 나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기독 민주당과 사회주의라. 국가적 정서와 동떨어진 그 종교와 정치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비극을 일으켰었는가, 싶었다.
무엇보다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열두 마당을 얼개로 하여 짜여졌다는 (사실 그런 구성적 특징은 거의 못 느꼈지만, 굿이 모토라는 점과 화자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오간다는 점, 글 전반에 드리워진 색채를 종합해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작가의 말이 인상깊었다.
과거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했던가.
한국인으로서 외면하고 싶은,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일들에 대해 글을 써준 용기에 감사하고.
이런 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췌]
# 요섭은 다시 기침을 하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저이 형님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웃음소리 비슷한 탄성이 들리는 것 같더니 이내 전화가 딸깍, 하고 끊겼다.
# "이 동무들은 당시의 참극을 목격하고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선생님께 생생한 진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불안한 기색으로 이야기를 꺼내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분노와 슬픔이 되살아나면서 마치 신이 오른 것처럼 목청이 커지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섭은 이들의 호소가 기획된 것임을 잘 알았다. 요섭 자신도 당시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참극은 거의가 사실일 것이다. 악몽은 사실이지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생생함을 잃어버린 말은 또한 얼마나 가벼운가. 수십 수백번 거듭된 말은 마치 타버린 책의 종잇장처럼 검게 일그러져 허공에 떠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거기 찍혔던 활자와 의미는 재가 되고 먼지가 되어버렸으리라.
# 나넌 전날 저녁에 군당에서 연락얼 받구 있대서. 명일 아침에 사리원 방면으루 철수럴 할 것이니 가족덜얼 데리구 군당청사루 집결하라구. 기래선 피난짐얼 싸놓구 잠얼 잤디. 동이 트자마자 놈덜이 밀어닥칠 줄 누구레 알았댔나. 잠결에 차거운 쇠 끄틀이 볼따구럴 찔러선 눈을 떠봤더니 요한이 얼굴부터 보였디.
# <작가의 말>
[손님]은 내가 베를린에 체류하던 시절에 사실상 세계적인 냉전체제 해체의 시작이었던 장벽붕괴를 목격하면서 진작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다. 문체나 구성에 대해서 이른바 '객관성'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잇는가를 돌이켜보며 반성하던 무렵이었다. 당시의 내 창작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과거의 리얼리즘 형식은 보다 과감하게 보다 풍부하게 해체하여 재구성해야 된다. 삶은 놓친 시간과 그 흔적들의 축적이며 그것이 역사에 끼여들기도 하고 꿈처럼 일상 속에 흘러가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역사와 개인의 꿈같은 일상이 함께 현실 속에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서도 안되고, 화자는 어느 누군가의 관점이나 일인칭 삼인칭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로를 교차하여 그려서 완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인물과 사건을 두고도 모든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시각의 다양성으로 자수를 놓듯이 그릴 수는 없을까. 객관적인 서술방법도 삶을 그럴싸하게 그린다고 할 뿐이지 삶을 현실의 상태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다. 삶이 산문에 의하여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면, 삶의 흐름에 가깝게 산문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나의 형식에 관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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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에는 미군의 양민학살을 고발하는 '미제 학살기념 박물관'이 있었고 나는 당연히 그곳으로 안내되었다. 그러나 '또다른 진상'이 있지 않을까 하며 의심하는 버릇은 작가로서의 천성이기도 했다.
나중에 뉴욕에 체류하면서 류아무개 목사를 만나 그의 소년시절 목격담을 듣고서야 의문이 풀려갔다. 그뿐만 아니라 로스엔젤레스에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신 친구의 모친에게서 우연히 전쟁 당시의 황해도 사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자료와 목격담을 모아나가다가 귀국해서 투옥되면서 작업을 중단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훨씬 다행이었다. 옥방에서 나의 구상이 좀더 무르익을 때까지 이러저러한 형식들을 적용해볼 수 있었다. 이 작품에 그려진 사실들은 '우리 내부에서 저질러진 일'이었으므로 북이나 남의 어떤 부류들이 매우 싫어할 내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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