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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BBC에서 같은 제목의 TV판 다큐멘터리로 선제작 되었던 것을 추려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의 연출, 감수를 맡았던 것이 저자다)
그래서인지 두꺼운 학자의 책 답지 않게 올컬러에다, 구어체적인 말투로 쓰여져있어 겉보기와는 달리 쉽게 쉽게 읽히는 편이다.
흐름도 영장류에서 인간으로의 발생부터 근대의 물리, 생물, 유전학까지 흘러 지금까지 죽 이어지며, 부분 부분 가볍게 건드리는 정도지만 건축이나 미술, 음악도 언급된다.
(직전에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읽고 읽어서 아치와 고딕 부분이 더 잘 읽힌 점도 있다.)
저자는 수학자로 시작해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발명가이며 물리학자라는 것은 상당히 놀랍다. 그에 더불어 휴머니스트이고, 저서 집필이나 기타 활동도 열심인 열정적인 사람이라. 그는 정말 '인간'이라는 종을 좋아하는 듯 하다. 그의 관심사가 넓다는 것은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확실히 느껴지는데, 슬프게도 동시에 그는 조금은 백인선호 사상이 있는 듯하고 '인간'은 특수한 종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놀라운 건 사실이다.
또한, '통합'에 대한 카이스트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는데ㅋㅋ
이는 정재승 씨가 교수로 발탁이 된 분위기와도 이어지는 듯 하다. 아무래도 카이스트는 중심이 확실히 서있다보니 다른 쪽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데, 그러면서도 아예 동떨어지게 먼 곳의 책을 추천하면 읽지 않을 것이 명확하므로 -_-
중도노선으로 간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는 처음 도전하기에 수월한 목록이다. 추천 대상이 이과적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목록들.
(통합과 넓은 시야를 그토록 중요시 강조하는 듯 하지만 훑어보면 인문이나 문학적 인사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도서는 보이지 않는다. 핀볼 효과도, 통섭도, 이 책도 과학자들이 인문학과 예술,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다. 음... 그런데 그런 책이 없나? 아... 없을 수도 있겠다.... )
하지만, 사진 자료가 많고 쉽게 읽힌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게 인상 깊은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계열로는 핀볼 효과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사견이 강하고, 흐름의 유기성이 훨씬 떨어지며, 개인적으로는 flow 들의 구심점을 느낄 수 없었다.
약 하루 정도 걸린 것 같은데 (5-6시간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전반부에는 야구를 보면서 읽었기 때문에;;) 읽은 시간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음, 글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읽을 만한 책은 아닌 듯 싶다.
이후로 개정판이 또 나왔던데 그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나는 so so.
[발췌]
#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나 글은 인류의 지성사를 통과하는 여행, 인간 성취의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인간적인 여정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질들(그의 재능이나 기능들)의 전 영역을 발굴해나감으로써 한 단계 올라가며, 그 과정에서 창조한 것은 자연과 자아를 이해한 각 단계의 기념비가 된다. 시인 예이츠(W. B. Yeats) 는 그것을 가리켜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들'이라고 불렀다.
# 대장장이들은 불로써 쇠를 다스려
아름다운 형상, 생각 속의 영상을 만드나니
불이 없다면 어떠한 장인도
황금을 그 가장 순수한 색깔로 만들지 못하리라
그렇다, 겨룰 자 없는 불사조도
불타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느니라 - 미켈란젤로, 소네트 59
#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기하학 증명. 신선했다.
# 아스트롤라베. 2007년에 60여년 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찾아온 조선의 아스트롤라베도 있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서울교대 교수가 연구한다던데 뭐 더 나왔나,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 내가 보기에 갈릴레이는 정치 세계에서는 기이하게도 순진했으며, 자신이 영리하기 때문에 정치권보다 선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정말로 순진했다. ... 갈릴레이는 진리가 설득력을 행사하리라 믿었다.
# 그와 같은 역설들이 두 가지 사실을 뚜렷이 밝혀준다. 그중 분명한 하나는 보편적 시간이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층 미묘하다. 여행자와 제자리에 있는 사람은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렇다.
... 그것이 상대성 원리의 핵심이다.
# '지구 위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북극에, 다른 한 사람은 적도에 있다. 적도에 있는 사람이 북극에 있는 사람보다 빨리 돌아가니까 그의 시계가 느리게 갈 것이다'라는 괴상한 명제를 시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설은 그대로 적중했다. ...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는 모든 전축의 레코드는 중심이 테두리보다 더 빨리 늙어간다.
# 지금은 과학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을 뉴턴이나 갈릴레이가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과학을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기술하는 일이라 생각했으며, 그들이 인정한 오직 한 가지 책임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이 사회적 활동이라는 생각은 근대적 관념이고 산업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산업혁명이 황금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시대에서 사회적 의식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윌리엄 위더링(William Withering) 박사는 버밍엄에서 디기탈리스(digitalis)를 강심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달협회(Lunar Society of Birmingham)의 회원으로 지금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의사 중 한 사람이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이며, 그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할아버지였다. 다윈의 외할아버지는 조사이어 웨지우드였다.
(웨지우드!!!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다들 하나씩 장만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웨지우드!!!!!!!)
# 우주가 쇠퇴해가고 있다는 생각은 기계에 대한 단순한 관찰에서 나온다. 모든 기계는 그것이 생산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일부는 마찰로 소모되며 일부는 낡아서 소모된다.
# S=KlopgW
(S= 엔트로피, K= 볼츠만상수, W= 주어진 상태의 가능성)
# 지금 물리학이 이루어놓은 것은 그러한 방법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절대적인 지식이란 없다. 그리고 절대적인 지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자건 독단주의자건 간에 비극에 이르는 문을 여는 셈이다. 모든 정보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겸손하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이다.
# 그러나 가우스는 오차의 '분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 물었다. 그는 오차의 산포를 곡선의 편차나 폭으로 요약하는 '가우스 곡선'을 만들었다. 여기서 원대한 개념이 나온다. 즉 산포도는 불확실의 영역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위치가 그 곡선의 중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불확실의 영역 내'에 있다는 것이며, 그 영역은 개별 관찰의 산포도로부터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즉, 예를 들면 전자의 속도와 위치는 양자의 허용 한도 내에서 제한되도록 '함께'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심오한 생각이며, 20세기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과학사에 있어서도 위대한 과학적 사상의 하나다.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을 '불확정성의 원리(Principle of Uncertainty)'라고 불렀다. 어느 면에서는 그것은 일상에서도 강력히 적용되는 원리이다. 우리는 세상이 정확하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만일 어떤 대상(예를 들면 친근한 얼굴)이 정확하게 똑같아야만 우리가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전날 본 얼굴을 그 다음날엔 알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대상이 한결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그런대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정확하게 과거의 그것은 아니지만 허용될 수 있을 만큼 비슷하다. 인식한다는 것은 허용 오차 혹은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판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실라드의 성격의 일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 시대 과학자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특히 누구보다도 실라드에게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는 자기가 발견한 원자의 특허를 비밀로 해두고 싶었다. 그는 과학이 잘못 사용되는것을 막고 싶었다. ... 알다시피 실라드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과학자 사회도 실패했다. 그러자 그는 성실한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는 물리학을 집어치우고 생물학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 생물학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기로 하자.
(하지만 여기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암컷이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종, 정상위로 얼굴을 맞대고 성교를 하는 종, 암컷과 수컷 사이의 차이가 적은 특이 종이라는 그의 주장은 슬프게도 내가 이미 읽은 '내 안의 유인원'에서 모두 부인되었다. 보노보 좀 멋짐)
# 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노이만과 함께 일했다.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 그는 런던의 택시 안에서 처음으로 '게임이론(Theory of Games)'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ㅡ 그는 택시 안에서 곧잘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체스를 아주 좋아했으므로 자연히 그에게 "게임 이론은 체스와 같은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아닙니다. 체스는 게임이 아닙니다. 체스는 아주 잘 정리된 계산 형태입니다. 당신은 체스에서 답을 얻어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론상으로는 어떤 위치에서도 해답과 올바른 과정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게임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실생활에는 속임수도 있고 사소한 허위나 책략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 경우도 있지요. 그것이 내 이론에서 게임이 뜻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게임이론!! 나는 "왜 부패한 정치가가 잘 나갈까"와 만화 "원아웃"과 "라이어 게임"등을 보고 게임이론에 빠져들었는데, 추천 도서 목록 틈틈히 그쪽 관련 도서도 더 읽을 생각이었다. 오오, 여기서 노이만을 보다니!!!)
# '모라(morra)'. 요건 생각 중.
(그 프로그램의 연출, 감수를 맡았던 것이 저자다)
그래서인지 두꺼운 학자의 책 답지 않게 올컬러에다, 구어체적인 말투로 쓰여져있어 겉보기와는 달리 쉽게 쉽게 읽히는 편이다.
흐름도 영장류에서 인간으로의 발생부터 근대의 물리, 생물, 유전학까지 흘러 지금까지 죽 이어지며, 부분 부분 가볍게 건드리는 정도지만 건축이나 미술, 음악도 언급된다.
(직전에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읽고 읽어서 아치와 고딕 부분이 더 잘 읽힌 점도 있다.)
저자는 수학자로 시작해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발명가이며 물리학자라는 것은 상당히 놀랍다. 그에 더불어 휴머니스트이고, 저서 집필이나 기타 활동도 열심인 열정적인 사람이라. 그는 정말 '인간'이라는 종을 좋아하는 듯 하다. 그의 관심사가 넓다는 것은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확실히 느껴지는데, 슬프게도 동시에 그는 조금은 백인선호 사상이 있는 듯하고 '인간'은 특수한 종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놀라운 건 사실이다.
또한, '통합'에 대한 카이스트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는데ㅋㅋ
이는 정재승 씨가 교수로 발탁이 된 분위기와도 이어지는 듯 하다. 아무래도 카이스트는 중심이 확실히 서있다보니 다른 쪽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데, 그러면서도 아예 동떨어지게 먼 곳의 책을 추천하면 읽지 않을 것이 명확하므로 -_-
중도노선으로 간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는 처음 도전하기에 수월한 목록이다. 추천 대상이 이과적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알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목록들.
(통합과 넓은 시야를 그토록 중요시 강조하는 듯 하지만 훑어보면 인문이나 문학적 인사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도서는 보이지 않는다. 핀볼 효과도, 통섭도, 이 책도 과학자들이 인문학과 예술,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다. 음... 그런데 그런 책이 없나? 아... 없을 수도 있겠다.... )
하지만, 사진 자료가 많고 쉽게 읽힌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게 인상 깊은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계열로는 핀볼 효과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사견이 강하고, 흐름의 유기성이 훨씬 떨어지며, 개인적으로는 flow 들의 구심점을 느낄 수 없었다.
약 하루 정도 걸린 것 같은데 (5-6시간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전반부에는 야구를 보면서 읽었기 때문에;;) 읽은 시간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음, 글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읽을 만한 책은 아닌 듯 싶다.
이후로 개정판이 또 나왔던데 그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나는 so so.
[발췌]
#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나 글은 인류의 지성사를 통과하는 여행, 인간 성취의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인간적인 여정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질들(그의 재능이나 기능들)의 전 영역을 발굴해나감으로써 한 단계 올라가며, 그 과정에서 창조한 것은 자연과 자아를 이해한 각 단계의 기념비가 된다. 시인 예이츠(W. B. Yeats) 는 그것을 가리켜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들'이라고 불렀다.
# 대장장이들은 불로써 쇠를 다스려
아름다운 형상, 생각 속의 영상을 만드나니
불이 없다면 어떠한 장인도
황금을 그 가장 순수한 색깔로 만들지 못하리라
그렇다, 겨룰 자 없는 불사조도
불타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느니라 - 미켈란젤로, 소네트 59
#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기하학 증명. 신선했다.
# 아스트롤라베. 2007년에 60여년 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찾아온 조선의 아스트롤라베도 있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서울교대 교수가 연구한다던데 뭐 더 나왔나,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 내가 보기에 갈릴레이는 정치 세계에서는 기이하게도 순진했으며, 자신이 영리하기 때문에 정치권보다 선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정말로 순진했다. ... 갈릴레이는 진리가 설득력을 행사하리라 믿었다.
# 그와 같은 역설들이 두 가지 사실을 뚜렷이 밝혀준다. 그중 분명한 하나는 보편적 시간이란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층 미묘하다. 여행자와 제자리에 있는 사람은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렇다.
... 그것이 상대성 원리의 핵심이다.
# '지구 위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북극에, 다른 한 사람은 적도에 있다. 적도에 있는 사람이 북극에 있는 사람보다 빨리 돌아가니까 그의 시계가 느리게 갈 것이다'라는 괴상한 명제를 시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설은 그대로 적중했다. ...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는 모든 전축의 레코드는 중심이 테두리보다 더 빨리 늙어간다.
# 지금은 과학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을 뉴턴이나 갈릴레이가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과학을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기술하는 일이라 생각했으며, 그들이 인정한 오직 한 가지 책임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학이 사회적 활동이라는 생각은 근대적 관념이고 산업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산업혁명이 황금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시대에서 사회적 의식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 윌리엄 위더링(William Withering) 박사는 버밍엄에서 디기탈리스(digitalis)를 강심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달협회(Lunar Society of Birmingham)의 회원으로 지금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의사 중 한 사람이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이며, 그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할아버지였다. 다윈의 외할아버지는 조사이어 웨지우드였다.
(웨지우드!!!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다들 하나씩 장만하고 싶어하는 바로 그 웨지우드!!!!!!!)
# 우주가 쇠퇴해가고 있다는 생각은 기계에 대한 단순한 관찰에서 나온다. 모든 기계는 그것이 생산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일부는 마찰로 소모되며 일부는 낡아서 소모된다.
# S=KlopgW
(S= 엔트로피, K= 볼츠만상수, W= 주어진 상태의 가능성)
# 지금 물리학이 이루어놓은 것은 그러한 방법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절대적인 지식이란 없다. 그리고 절대적인 지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자건 독단주의자건 간에 비극에 이르는 문을 여는 셈이다. 모든 정보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겸손하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상황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이다.
# 그러나 가우스는 오차의 '분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 물었다. 그는 오차의 산포를 곡선의 편차나 폭으로 요약하는 '가우스 곡선'을 만들었다. 여기서 원대한 개념이 나온다. 즉 산포도는 불확실의 영역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위치가 그 곡선의 중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불확실의 영역 내'에 있다는 것이며, 그 영역은 개별 관찰의 산포도로부터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즉, 예를 들면 전자의 속도와 위치는 양자의 허용 한도 내에서 제한되도록 '함께'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심오한 생각이며, 20세기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과학사에 있어서도 위대한 과학적 사상의 하나다.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을 '불확정성의 원리(Principle of Uncertainty)'라고 불렀다. 어느 면에서는 그것은 일상에서도 강력히 적용되는 원리이다. 우리는 세상이 정확하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만일 어떤 대상(예를 들면 친근한 얼굴)이 정확하게 똑같아야만 우리가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전날 본 얼굴을 그 다음날엔 알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대상이 한결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그런대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정확하게 과거의 그것은 아니지만 허용될 수 있을 만큼 비슷하다. 인식한다는 것은 허용 오차 혹은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판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실라드의 성격의 일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 시대 과학자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특히 누구보다도 실라드에게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는 자기가 발견한 원자의 특허를 비밀로 해두고 싶었다. 그는 과학이 잘못 사용되는것을 막고 싶었다. ... 알다시피 실라드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과학자 사회도 실패했다. 그러자 그는 성실한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는 물리학을 집어치우고 생물학으로 돌아섰던 것이다.
# 생물학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기로 하자.
(하지만 여기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암컷이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종, 정상위로 얼굴을 맞대고 성교를 하는 종, 암컷과 수컷 사이의 차이가 적은 특이 종이라는 그의 주장은 슬프게도 내가 이미 읽은 '내 안의 유인원'에서 모두 부인되었다. 보노보 좀 멋짐)
# 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 노이만과 함께 일했다.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 그는 런던의 택시 안에서 처음으로 '게임이론(Theory of Games)'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ㅡ 그는 택시 안에서 곧잘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체스를 아주 좋아했으므로 자연히 그에게 "게임 이론은 체스와 같은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아닙니다. 체스는 게임이 아닙니다. 체스는 아주 잘 정리된 계산 형태입니다. 당신은 체스에서 답을 얻어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론상으로는 어떤 위치에서도 해답과 올바른 과정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게임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실생활에는 속임수도 있고 사소한 허위나 책략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 경우도 있지요. 그것이 내 이론에서 게임이 뜻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게임이론!! 나는 "왜 부패한 정치가가 잘 나갈까"와 만화 "원아웃"과 "라이어 게임"등을 보고 게임이론에 빠져들었는데, 추천 도서 목록 틈틈히 그쪽 관련 도서도 더 읽을 생각이었다. 오오, 여기서 노이만을 보다니!!!)
# '모라(morra)'. 요건 생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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