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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판과 '황금가지', '예문' 판을 모두 펴고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예문 판 번역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씨앗' 판은 문장은 훨씬 매끄러워졌는데, 톨킨의 번역 지침이라고는 하지만 고유명사는 그대로 쓰는 것도 좋았을텐데...
배긴스가 골목쟁이가 되고 골드베리가 금딸기가 되는... 허허.
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글이 어째서 수많은 폐인을 양성했는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이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그런 놀라움.
(물론 나는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도 비슷한 감탄을 했지만, 거기서 '나가'나 '도깨비'는 처음 만들어진 개념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물론 하나의 종족으로 가다듬고 특성을 부여한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톨킨의 '엘프'는 너무나 놀랍기 때문에...)
톨킨은 언어학자답게 엘프어라는 하나의 언어를 창조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언어들을 상상해냈다.
지금에야 아름다운 엘프, 땅딸막한 드워프가 익숙한 개념이지만 그걸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이 톨킨이라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고대 신화나 설화가 아닌, (비록 조금씩 차용은 했지만), 서사시가 아닌 '판타지 문학'의 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은 읽어봄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반지의 제왕, 혹은 반지전쟁에서 채 풀리지 않은 의문은 호빗과 실마릴리온을 읽으면 될 텐데, (아직 읽지 못했다) 실마릴리온 같은 경우는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정리하여 출판해냈다. 사실 반지의 제왕이 다소 대중적이고 가장 흥미로울 법한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면 실마릴리온은 훨씬 아름다운, 그 세계 자체의 창조에 관한 글이다. 기대가 크다.
톨킨은 자신의 글이 알레고리, 그러니까 우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시사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가 1,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는 그의 의식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는 절대반지를 둘러싼 다툼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 문제가 되는 탐욕의 반지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것, 또한 그로 인해 기존에 갖고 있던 이점들까지도 포기하면서 '정도'를 선택하는 것은 전쟁을 겪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주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당시까지의 판타지는 서사시 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도기적인 (혹은 새로운 시도인) 이 작품에서 노래가 주요하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실마릴리온에서는 노래로 세상을 창조한다는데, 이 점이 언어로 세상을 열었다고 하여 기독교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니벨룽의 반지'에서처럼 제 3세대의 끝을 고하고 떠나는 엘프와 마법사는 구 신화 시대의 종말, 즉 북구 유럽 신화와 구 신들의 종말을 의미하며 인간의 손으로 세워지는 새 시대는 태초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인간이라는 점을 나타낸다는 주장인데, 나름대로는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 본다. (저자가 그렇게 보지 말라고 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 그래서, 초반의 시가들은 그저 그렇지만, 중후반의 장엄한 시가들은 상당히 아름다운 구절이 많았다.
또한 시기를 생각해볼 때 요윈 공주는 상당히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결말이 조금 미묘하지만, 마음에 든다. 여성을 보고 다루는 남성 작가의 시선은 작품 자체의 평가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걸리는 경우들이 꽤 있다.
(캐릭터나 시대상 때문이 아닌, 작가의 여성관이 별로라고 생각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왕좌의 게임의 조지 R. R. 마틴... 좀... 변X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작품 자체는 걸작이다. 하지만 개인적 선호도를 포함해 평가하자면 톨킨이나 이영도의 작품을 더 편안하게 읽고 좋아한다.)
고귀한 혈통에 다소 집착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독일의 "아리아 인" 사랑이 오죽했던 때에다, (아 이런 해석은 금지), 서사시는 대부분 그랬고, 태초의 위대한 종족이 이주해 온 엘프와 하이엘프로 시작하는 듯 하니. 허용 범위로 인정ㅋ
언령과 유사한 개념이 드러난 점은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동양에서도 유사한 믿음들이 있었는데, 첫째로 말이나 문양, 글자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는 믿음과 둘째로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하면 좋지 않은 기운이 생기거나 그런 이의 주목을 끌게 된다는 믿음이다. 물론 둘째는 최근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해리포터에 힘 입어 '이름을 불러서는 안되는 자', '볼드모트' 등으로 인식되겠지만, 조금 민속적으로 들어가면 한국에서도 비슷한 믿음이 있었다. 첫번째는 어디서나 문자=힘이었던 시기가 있으므로 그다지 놀랍지는 않은데, 두번째는, '반지의 제왕'에서는 특히, 해리포터에서와는 달리 두려움이나 공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들을 입 밖에 냄으로써 분위기나 기류가 변한다거나 순간적으로 목소리마저 변한다던지 하는, 말 그대로 말하는 것 자체가 현상을 일으킨다는 언령에 가까운 개념으로 보인다. 흥미로웠다.
아아, 그리고, 아라곤. 스트라이더, 성큼걸이, 엘프스톤, 엘레사.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도 길잡이 '케이건 드라카'를 가장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닮았다.
길잡이라는 점, 고대 왕가와 연관이 있다는 점, (물론 케이건은 결코 따스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우수한 전사이며 명민한 지략 타입에 작품 전반에서 할렘화하며 여자를 몰고 다니지 않았다는 점.
(아라곤은 호감가지 않는 외모라고 해놓고 저녁별 아르웬에다 요윈... 하지만 배신하지도 차갑게 굴지도 않은 예의 바르고 고상한 남자, 잇힝 원츄)
사실 나는 보로미르와 가장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목표는 아라곤과 갈라드리엘이다.
요윈은 지켜보자면 여성으로서 뿌듯하지만, 나와는 지향점이 너무 다르다. 아, 파라미르도 좋지만 나는 그렇게 겸손할 자신이 없어...
실마릴리온이 무척 기대된다.
당분간은 지도를 펼쳐놓고 망상 속에서 지낼 것 같다.
[발췌]
지상의 요정 왕들에겐 세 개의 반지
돌집의 난쟁이 왕들에겐 일곱 개의 반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겐 아홉 개의 반지
어둠의 권좌에 앉은 암흑의 군주에겐 절대반지
어둠만이 살아 숨쉬는 모르도르에서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것은 절대반지
모든 반지를 불러 모아 암흑에 가두는 것은 절대반지
어둠만이 살아 숨쉬는 모르도르에서
# 아쉬 나즈그 두르바툴룩, 아쉬 나즈그 김바툴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아쉬 나즈그 스라카툴룩 아그 부르줌ㅡ 이쉬 크림파툴
(모든 반지를 불러모아 암흑에 가두는ㅡ 절대반지)
(잘 살펴보면 하나의 언어임을 알 수 있다.)
# "정말 고맙습니다. 길도르 잉글로리온. 엘렌 실라 루멘느 오멘티엘보. 우리들의 만남의 순간에 별이 빛납니다."
# 후에 피핀은 그 때 무슨 음식을 먹었고 무슨 술을 마셨는지 거의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는 줄곧 요정들의 얼굴에 빛나는 환한 빛만 홀린 듯이 쳐다보았다. 그들의 갖가지 목소리도 너무 아름다워서 그는 꿈인지 생시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후에 그들의 머리칼로 줄을 댄 활을 쏘는 모습들까지 나온다. 이 설정이 그대로 게임에 적용이 되고, 또 그 유명한 "로도스 도전기", "마계마인전"에서 '디트리트'로 표현되며 현대 한국의 "드래곤 라자"의 '이루릴'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 "당신은 내게 특별히 감사해야 할 겁니다.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충고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나름대로의 고민과 슬픔이 있기 때문에 호빗이나 지상의 다른 어떤 무리들의 일에도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우리의 길과 그들의 길은 만나는 법이 없답니다. 오늘의 이 만남은, 비록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내게는 분명치 않지만 우연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황금이라고 해서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방랑자라고 해서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속이 강한 사람은 늙어도 쇠하지 않으며,
깊은 뿌리는 서리의 해를 입지 않는다.
잿더미 속에서 불씨가 살아날 것이며,
어둠 속에서 빛이 새어 나올 것이다.
부러진 칼날이 다시 벼려질 것이며,
잃어버린 왕관은 다시 찾을 것이다.
# "당신이 이해한다면 그걸로 좋소.
자존심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도움이나 충고도 무시하는 어리석음일 수도 있으니.
또한 당신은 자신의 의도에 알맞은 그런 충고만을 내놓지 않소?
아직까지 곤도르의 영주는, 아무리 가치있는 것이라 할 지라도 다른 이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구가 된 적은 없었소. 그리고 그에겐 곤도르의 이익과 법률보다 더 가치 있는 목적이란 있을 수 없소. 더욱이 왕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의 문제요."
"왕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이라고 하셨소? 좋소. 경애하는 섭정, 아마 이제 거의 관심조차 가진 사람이 없을 그런 문제에 대해 당신의 왕국을 안정시키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겠지요. 그런 점에선 당신은 온갖 도움을 받게 될 것이오. 그러나 난 이 점을 밝혀 두겠소. 곤도르건 아니건, 크건 작건 간에 어떤 나라의 법률도 내 것은 아니오. 그러나 이 세상이 지속되는 한 위험에 빠진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가 내 관심사요."
세 요정왕의 반지 빌랴, 네냐, 그리고 나랴. 그렇다면 간달프는 요정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보통의 엘프와는 다른 오지랖을 보여주는데... 하긴 딱 잘라 인간이라고 말한 적도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간달프는 늙었잖아!? 그가 다른 엘프왕의 대리로 나랴를 꼈다고 봐야겠지.
#"난 위험한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만일 내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면, 난 저 북쪽 리벤델의 아름다운 계곡에서 노닐고 있을 것입니다."
... 갑자기 그녀는 그의 팔에 손을 올려 놓았다.
"당신은 준엄하고 단호한 군주로군요. 그런 분들이 명성을 얻는 법이지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
"전 그 책임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저도 욜의 자손으로, 단순한 여인이 아닌 여전사 아닌가요? ... 전 항상 그런 책임만을 맡아야 합니까? 기사들이 떠나면 뒤에 남아 그들이 명성을 얻는 동안 집이나 돌보고 그들이 돌아오면 음식과 침대나 준비해야 한단 말인가요?"
"아무도 돌아오지 못할 그런 시간이 올지도 모르오. 그땐 아마 명성이 따르지 않는 용감한 행위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방어하기 위해 행한 용감한 무용을 기억할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을테니까요. 그러나 칭송받지 못한다해서 용감한 행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
"위험하다는 이유로 말리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당신에게 위험에서 도피하라는 게 아니에요. 다만 당신의 칼로 명성과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전장으로 가시라는 것입니다. 전 고귀하고 강한 힘이 쓸데없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 당신과 함께 가는 이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들은 다만 당신과 헤어질 수 없어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 "그러니 테네도르 공에게,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마크의 왕이 몸소 곤도르로 간다고 전하게. "
... 운명이 그들에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들은 조용히 그것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투 쩔어도, 저 비장함에는 잘 어울리는 걸.)
# 그건 마치 가끔 아라곤이 보여주는 그런 고귀한 혈통의 분위기 같은 것이었다. 아마 아라곤보다 더 고귀하진 않겠지만 더 가깝고 이해하기 쉬운 그런 분위기였다. 후세에 인간의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높은 혈족의 지혜와 우수를 간직하고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이제야 그는 베레곤드가 왜 그렇게 애정 어린 어조로 파라미르의 이름을 말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잊었더니 파라미르가 보인다)
# "그렇지만 피핀, 적어도 우린 이제 그들을 볼 수도 있고 찬양할 수도 있지. 내 생각에 누군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를 사랑해야 할 것 같아."
#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오. 그렇게 죽는 것이 여기 그대로 앉아 새 시대가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오."
#"또한 그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였지. 그를 알게 된 이들은 한결같이 자기 방식대로 그를 사랑하게 되니까. 심지어 그 차가운 로한의 숙녀까지도 말이야."
# 그건 마치 던헬름이 웃는 소리 같았는데 그 맑은 소리는 강철의 울림처럼 들려왔다.
"난 남자가 아니다! 넌 지금 여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난 요문드의 딸 요윈이다. 넌 나와 나의 영주이자 인척인 분 사이에 있는 것이다. 만일 네가 불사의 몸이 아니라면 이제 꺼져라! 살아 있는 놈이건 죽지 않는 어둠이건 간에 그분을 건드리면 내가 쳐부수겠다."
... 그러나 그녀를 가려주었던 투구가 이제는 벗겨졌으며 매듭에서 풀려난 그녀의 빛나는 머리칼이 어깨 위에서 창백하게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다와 같이 잿빛을 띤 그녀의 눈은 단호하고도 사납게 빛났지만 그의 볼에는 아직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손에 칼을 든 그녀는 적의 끔찍스런 눈에 맞서 방패를 쳐들었다. 그는 요윈이자 또한 던헬름이기도 했다.
메리는 던해로우에서 떠날 때 본 그 얼굴의 인상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아무 희망도 갖지 않고 오로지 죽음을 찾아 떠난 듯한 사람의 얼굴.
그는 연민, 경이로움과 함께 자신의 내부에서 갑자기 호비트들 특유의 천천히 달아오르는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녀가 죽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아름답고 이렇게 필사적인데! 적어도 그녀는 아무 도움도 못 받고 홀로 죽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대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책임감이 그녀의 입을 막지 않았다면 그대는 이미 오래 전에 그 말을 들었을 게요."
#"아! 그녀의 행위는 가장 용감한 여왕의 대열에 오를 만한 것인데!"
'활자가 흐르는 이야기 > Book(~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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