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일상다반사

어째서 고전인가

일루젼 2012. 8. 1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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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의 평가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본다.

누군가가 내게 왜 소설을 (특히 고전을) 읽느냐고 붇는다면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라고 말할 것이다.

혹자는 '이미 나올 만한 스토리는 이전에 다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창작은 의미가 없다' 고도 잘라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물론 뼈대만 놓고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뼈만 놓고 보자면 모든 사람의 뼈는 성별에 따라 다소 수가 다른 것 외에 대동소이하다. (두개골이 있고 흉골이 있고 대퇴골 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다르지 않은가.

그런식으로 뼈대만 축약하자면 결국 대부분의 소설이 남녀상열지사, 야망과 배신, 혹은 휴머니즘이나 환상 아니겠나?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문학에서 중점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이하의 세 가지 요소라고 생각한다.

 

첫째. 문장. (부수적으로 좀 더 확장하자면 구성이나 구조)
둘째. 스토리.
셋째. 인물.


 

우선 문장.

 

번역된 소설의 문장을 논하는 것이 헛된가 아닌가는 차치하기로 하고,

(세익스피어나 조이스를 번역본으로 읽고 논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마는. 젠장 책 읽으려고 언어 공부를 해야하다니ㅠㅠ 기다려라 피네간.)

확연히 심미적이거나 감동을 주는 문장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것이 번역에 의해 상당 부분 훼손되었을지라도.
그런 미적인 것을 좋아해서 그 글을 좋아하거나 읽게 되는 경우가 있고.


 

다음으로는 스토리.

여기서 보통 말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고 본다. 

사실 이 점에 있어서는 사실 고전은 다소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물론 시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역사를 알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놓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고, 역사는 안다 해도 당시의 시대정신이 느껴지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확연히 다양성의 측면이나 기발하고 허를 찌르는 감각적인 스토리인가를 놓고 볼 때, 고전은 약하다.

 

(혹은 내가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세번째, 인물에 있다고 강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원형적인 스토리로 보자면 유사해도 고전이 먼저 나왔으므로 오히려 고전이 스토리면에서 뛰어나다'

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데... 여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이가 있다면 미리 사과하겠다.

그 점에 대해서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비록 동의는 하지 못하겠지만 충분히 존중한다.)

 


마지막, 인물.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여러 모로 길고 뻘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이 막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물 때문이다.
긴 시간을 지난 지금에서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와닿는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그것이 몇 십, 혹은 몇 백년 뒤에도 공감(혹은 감각)할 수 있게 해주는 이유이며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게 되는 이유라고 본다.

 

왜 하필 고전이냐.
고전에서 드러나는 시대를 초월한 수 없는 인간 군상과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흡수한다면 보다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에는 몇 시대 동안 누적된 다양한 인간상이 드러나있는데다가 오히려 공감하기 힘든 다양한 시대상이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더 이끌어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이라거나 기아, 혁명, 등등 지금으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인 경우가 많음. 꼭 그렇지 않아도, 평이한 시대상이라 해도 이 글이 쓰여진 그 예전에도 사람들은 이런 생각, 이런 고민을 했었구나!! 라는 공감이 주는 게 상당히 크다.)

또한 부연설명하자면, 이해하기 쉬운 시대상에서는 한 캐릭터에 몰입해서 그의 시선으로만 읽게 되는 일이 많은데 고전의 경우는 오히려 거리감이 유지되어 다양한 캐릭터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책, 아니 글에는 확실히 독이 있다.

 

무언가를 읽어나가면 그것들이 차곡 차곡 벽돌이 쌓이듯이 내 주변에 쌓여 '나'라는 하나의 성을 만들게 되는데,
그 때 책을 읽을 수록 자신의 생각에 맞는 부분, 마음에 와닿는 부분, 보이는 부분만을 간직하게 되면 보다 견고하지만 다소 좁고, 단단한 '자신'이 생기게 될 것이다.
외부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이해할 수도, 하기도 싫은 높고 견고한 성.
간혹 비틀려 외부에서 보기에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멋이 있을지 몰라도 다가가고 싶지는 않게 만드는.

해서 뭐.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고, 비판 받을 여지가 많은 생각인데.

내가 아주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사람을 나름대로 많이 만나고 깊이 사귄다고 해도 그들의 내면, 생각, 가치관에 대해 고전을 읽는 것만큼 내밀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내가 신도 아니고 한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겠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것이다.
내가 동감할 수는 없더라도, 이해하고는 싶다는 것.

최대한 담이 낮고, 넓은 벽을 가지도록 벽돌을 쌓고 싶다는 것.

어떻게 하더라도 본능에 가깝게 느껴지는 가호, 호감과 불쾌감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나와는 다른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더라도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느껴서 저런 판단을 했구나'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생각의 근원에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고 싶을 때 그 사람이 가장 원할 것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욕망이 있음을 고백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하기보다 이해받기를 원하게 되어 있지만, 호감을 얻고 싶다면 상대를 이해하는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대로 이 부분이 매끄럽지 못하다면 타인에게 호감을 얻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느끼고 싶어서 고전을 읽는다.

 

 

 

나의 모든 독서의 90%는 1990년대에 집중되어 있다.

당시 나는 상당한 양의 고전을 읽었으나, 그 내용이 제대로 기억이 나는지와는 또 달리.

내게 남은 고전은 하나의 스토리일 뿐, 문장도 인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읽은 책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읽었으되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때 읽은 것을 읽었다고 셈해도 좋다면 내가 도전하는 목록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모든 것을 드러내놓지 못해 안달인 것보다는, 다소 의뭉스럽더라도 몇 할은 속에 감추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알량함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지만. (때로 놀라는 것이,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효과를 가지는 가 하는 점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잡소리에서 풀도록 한다.)

 

다시 돌아가, 나는 왜 고전을 읽으려 하는가.

 

글을 쓰는 이라면, 글 내에 자신이 결코 동일시 할 수 없는 인물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설득력있게 그려내는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작품만 낼 거라면 그렇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결국 '인간성'을 노래하는 소설을 쓴다면, 다작을 하게 된다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만이 주요하게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처절한 자기복제인가.

 

나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고전을 읽는다.

 

 

고 말하면 뭔가 멋드러지지만ㅋㅋ

 

 

글은 때가 되었을 때 온다.

읽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내게 올 것이다.

당장 조바심 내며 안달복달 할 것도 없고 마냥 느긋하게 책을 밀어둘 것도 없다. 그냥 읽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닿을 연은 닿게 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에만 몰입하여 그의 시각으로만 따라 읽고 덮기에 글은 너무나 아름답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경멸스러운 인물에 집중해보라. 그의 행동을 읽어내려 노력해보라.

고전은 이미 몇 세대를 살아 남아 검증된 글이다. 즉 어떤 인물을 꼽더라도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안심하고 몰입해도 좋다. 인간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존재한 시간이 다를 뿐이다.

 

 

둘리를 그린 김수정씨가 그런 말을 했다.

야속하고 매정한 고길동이 불쌍해 보이는 순간, 당신은 어른이 된 것이라고.

 

읽지 않았다면 지금,

읽었다면 지금,

 

다시 한 번 읽어보라. 새로운 면들이 나타날 것이다.

 

 

-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조금 더 절절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에 하나씩.

긴 그리움을 베어내고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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