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오기와라 히로시] 유랑가족 세이타로

일루젼 2012. 9. 21.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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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세이타로 - 8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431쪽 | 200*140mm | ISBN(13) : 9788959751211

2008-03-25

 

 

너무나 일본적인, 그래서 좋은 글이었다.

최근 한국작가들의 글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국색(國色)이 가득 흘러넘치는 글.

그리고 본격 '가족 소설' 이라고 부르기 좋은 따뜻한 글.

 

오기와라 히로시의 유머는 가볍지 않으면서, 또 냉소적이지도 않다.

힐끗 흘겨보면서도 결국 미워할 수만은 없는, 가족 간의 시선 같은 분위기.

그래서 어머니의 부재조차, 그리고 그로 인한 아버지의 슬픔조차 한바탕 웃어버리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었다.

 

글은 챕터별로 시간의 흐름에 순행해 흘러가지만, 시점은 가족 중 한 사람의 것으로 변화한다.

인물이 변화해감에 따라 이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스스로는 모르는) 가족의 또다른 모습들이 폭로된다.

누나, 형, 아버지, 그리고 메인 화자라 할 수 있는 막내 간지.

그들의 각자의 눈을 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은 각개각색이면서도, 어느 한 순간 하나로 뭉쳐져 있다. 

 

 

유랑 가족인 이 가족이 밥을 벌어먹고 사는 방법은, 바로 '대여 가족'.

가족의 일원을 잃었거나 볼 수 없는 상태인 의뢰인들에게 찾아가 정해진 시간 동안 그들이 원하는 '비어버린' 가족의 모습을 연기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하지 않는 동안의 '진짜 가족'보다 '대여 가족'일 때 훨씬 화목하고 다정한, '이상적인 가족'이 되는 것에 대해 이상스레 생각하는 간지의 내면 독백은 우스우면서도 짠하다.

(간지의 순박함은 하나의 장치이기도 한데, 막연히 어려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며 풋풋하게 즐기던 간지의 시각 역시 한 번은 비틀려 있었다.... 하지만 옥희를 보는 듯한, 그 순진함에 대한 흐뭇함은 끝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속을 보여주지 않았던 가족 구성원이 둘 있다.

누나 모모요의 딸 다마미 (2살이 채 못된)와.

 

어머니 미호코다.

 

 

이 점은 일본 대부분의 가정 내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현실을 꼬집는 듯하다.

(어머니가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시각으로 쓰여진 챕터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독자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한국에도 어느 정도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잠깐 사족을 덧달자면, '대여 가족'이 주로 필요해지는 시기-명절- 혹은 특징을 잘 잡아내기 위해 이용하는 설정들이라거나.

이어 극단을 꾸리게 되면서 직간접적으로 언급되는 일본의 문화상이 이제는 친숙할 지경이라는 점에서, 한국적 문화 컨텐츠가 더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이제 금붕어 연이 흔들리는 장면이라거나, 곱게 꾸며진 인형들이 단 위에 세워진 것쯤은 어느 명절의 어떤 문화인지 감이 오니 말이다.... 한국에도 창포로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는 단오, 팥죽을 먹는 동지, 앙괭이를 피해 체를 거는 섣달 그믐부터 복조리를 거는 설까지 많은 세시 풍속들이 있다. 컨텐츠의 부재보다, 어쩌면, 이런 풍속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리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때로 섬뜩하다.)

 

 

아. 이 쪽이 훨씬 가족적고 현실적이지만, 유사한 류를 꼽자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떠올릴 수 있겠다.

 

 

[발췌]

 

#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해보는 편이 무조건 좋아. 기회가 길바닥에 널린 건 아니니까."

 

 

# 하지만 가슴의 콩닥거림은 멈추질 않는다. 뭔가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알알하니 아팠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됐지. 뭔가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뭔가가 끝나려 하고 있었어.

 

 

#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 아래

당신의 눈동자에 내가 비치네

모두 다 꿈 물거품 같은 시간

모두 다 무대죠 뱅글뱅글 도는

어차피 꿈이라면

죽을 때까지 깨지 않을 꿈을 꾸게 해줘요

막이 내려도

잊지 못할 대사를 들려줘요

 

 

#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실은 얼마 전, 마누라가 도망을 쳐서 말입니다. 뭐, 제가 술을 엄청 퍼마시는 미덥지 못한 서방이라 그런지. 이래 일부러 텔레비전에서 와준 김에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꺼? 어~이, 미호코~. 돌아와~. 내, 화 안 났다. 술은 끊었다. 기다리고 있으이 돌아온나~."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어떤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을까. 관객들 앞이니까, 분명 웃고 있겠지.

"엉? 생방송이 아이라고? 지금 이 부분은 지대로 방송을 탔으믄 좋겠는데. 다시 한 번 하겠습니더. 어~이, 미호코, 보고 있나~. 나온나~. 돌아온나..... 돌아와 도~고."

또 웃음이 인다. 관객들은 그저 농담인 줄 알겠지만, 아버지는 아마도 진지하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 다소 어색한 부분도 몇 있지만, 아버지의 일본 지방 사투리를 번역하면서 한국 사투리로 번역한 것은 잘한 일 같다. 문제는 내가 이게 어디 사투리인지 모르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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