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돌 - 228쪽 | 196*135mm | ISBN(13) : 9788972754466 2009-09-07 |
예상 외로 괜찮았던 책.
마음에 든 책은 언제나처럼 단점 먼저 말하고 신나서 헉헉 달려가야하므로.
첫째, 판형. 이 책은 굳이 양장으로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편집. 내부의 여백의 미 돋는 편집은 안타깝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읽을 수 있게 해주긴 하지만.... 어린이용 같은 편집...
글쎄. 좀 더 빡빡한 편집으로 얇고 가벼운 책으로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다.
글에 대해서는, 예상외로 정말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이건 다분히 주관적이다.
이 글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휩쓸힌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서술과 여인의 독백적인 대화가 글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이 되는데,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녀의 남편은 목덜미에 총알이 박혀 식물인간이 되어 있다.
처음은 그런 그와 그녀, 그리고 두 아이들의 일상 아닌 일상이 펼쳐진다. 영화 감독이기도 했다는 저자의 힘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장명을 시각화하여 그려낸다. 사소하고 작은 것들까지, 마치 그 방 한 가운데에 서서 시선을 돌려보듯이 영상으로 펼쳐지도록 자연스럽게 클로즈업했다가도 스르륵 줌 아웃.
이 글은 그녀와 남편의 방, 단 한 곳에서만 이루어진다. 문 밖의 세상은 모두 배경음일 뿐이다.
지하실도, 포탄이 날아다니는 현관 밖도, 겨우 찾아낸 그녀의 고모 집도, 모든 것은 소음과 그녀의 말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런데도 글의 끝까지 내전은 현실이다. 아주, 놀라웠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의 놀라운 점은 작가가 남성이었다는 점.
나는 세밀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한 여인의 심리와 아프간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억압에 대한 재조명을 읽으며, 아주 당연하게, 여성일 것이라 생각했다. 슬프게도 이런 생각조차 내가 그곳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었음에야...
여성 현실에 대한 시를 썼다고 하여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류 시인, '나이다 안주만'.
그것이 아프간이었음을.
그 현실을 마주하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아티크 라히미는 철저하게 여인의 시선으로 글을 풀어나간다.
그녀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분노, 절망, 한탄이었다. 그러나 점차 내밀해지던 고백은, 결국, 그녀의 인내의 돌을 깨트리기에 이른다.
인내의 돌, '생게 사부르'.
그 검은 돌은 그 돌을 지니고 그에게 모든 고뇌와 고통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그리고 그 모든 아픔들을 흡수한 돌이 스스로 부서질 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는 완전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산송장 남편은 그녀를 위해 알라가 내려주신, 그녀만의 '생게 사부르'였던 것이다.
끝까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그렇기에 대표성을 지닌 그녀의 회상을 통한 독백. 그리고 쏟아져나오는 고통과 아픔은 단 한 여인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비명처럼 터져나오는 마지막의 반전은, 섬뜩하기보다 아프다.
무척 아프기도 했고.
읽을 수 있어 기쁘다고 느끼기도 했다.
잘 읽었다.
[발췌] - 아프간 여인의 처지가 잘 드러날 내용은 부러 배제했다.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동화같은 글은 아니다.-
# "이 동네가 아마 다음 격전장이 될 것 같아." 끓어오르는 분노로 그녀는 이 말을 덧붙인다. "당신 그걸 알고 있었지, 응?" 그러다 다시금 잠깐 쉬는데, 쉰다는 것도 이렇게 확실히 말할 힘을 회복하기 위해 그저 숨 한 번 내쉬는 정도다. "당신 형제들도, 그걸 알고 있었지! 그래서 모두 떠나버린 거야. 그들은 우릴 버린 거야! 비겁한 인간들! 당신 목숨이 붙어 있다고 날 데리고 가지 않았지! 만약...."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분노도 삼킨다. 아까보다 덜 사납게 말을 잇는다. "만약... 당신이 죽었다면, 일은 달라졌을 텐데...." 그녀는 잠시 생각을 중단한다. 그녀는 망설인다. 길게 숨을 내쉰 다음, 결심한다. "당신 형제들 중 하나는 나랑 결혼을 했어야지!" 마음속으로 빈정대니 목소리가 좍 갈라진다. "어쩌면 그들은 당신이 죽는 편을 바랐을지도 몰라." 그녀는 부르르 떤다. "그랬으면, 나랑... 잘 수 있었을 테니까! 양심의 가책 없이도 말이지."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녀는 불끈 일어서더니 방을 나간다. 복도를, 그녀의 신경질적인 발걸음이 종횡무진으로 오간다. 뭔가를 찾고 있다. 침착함을, 평온함을.
# 그녀가 바닥에서 베일을 줍기 전에 이 말이 떠오른다. "생게 사부르!"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로 이게 그 돌의 이름이야. 생게 사부르, 인내의 돌! 마법의 돌!" 그러더니 남자 곁에 쪼그려 앉는다. "그래, 당신, 당신이 내 '생게 사부르'야!"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살며시 스치듯 쓰다듬어본다. 마치 정말로 그 소중한 돌을 만지듯이. "나의 생게 사부르, 당신에게 모든 걸 다 말할 테야. 내 고통, 내 불행을 모두 벗어버릴 때까지, 그리고 당신이...." 나머지 말은 안 하고 입을 다문다. 남자가 상상하게 둔다.
그녀는 방을 나가, 복도를 지나, 집을 나선다.....
# "어쨌든 우리 할머니는 이 이야기가 마법의 이야기여서 우리 실제 삶에 행복이든 불행이든 가져올 수 있다며 우선 조심하라고 하셨어. 이렇게 경고를 하니 우린 두려웠지만, 그러면서 흥분도 되었어. 그러면 우리 가슴이 콩콩 뛰면서 할머니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지.
'옛날 옛날에, 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단다. 잘생긴 왕이었지. 용감한 왕이었는데, 살면서는 단 한 가지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었단다. 꽤나 중대한 일이었지. 슬하에 딸을 두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야. 결혼한 첫날밤, 점성술사가 예언하기를 만약 왕비가 딸을 낳는다면 그 딸 때문에 왕의 자리가 흔들릴 거라는 거였어. 운명의 장난으로, 왕비는 계속 딸만 낳았어. 그래서 딸 하나를 낳을 때마다 왕은 갓난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사형집행인에게 내렸단다!"
옛 추억에 빠져드니, 여자는 마치 손자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같은 표정ㅡ마치 자기 할머니의 표정ㅡ이 된다.
"사형집행인은 첫딸을 죽였고, 둘째딸도 죽였어. 셋째딸을 죽이려 할 때, 갓난아기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 동작을 멈추었지. 갓난아기는 부디 이걸 엄마한테 알려달라고 애원하며, 만약 엄마가 자기를 살려두면 왕비만의 왕국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이 말에 동요된 사형집행인은 신중하게 왕비에게 가서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전했어. 왕비는 왕에게 한 마디도하지 않고, 즉시 말할 줄 아는 이 갓난 딸을 보러 갔어. 감탄하면서도 또 겁이 난 그녀는 사형집행인에게 이 나라에서 멀리 도망치도록 마차를 한 대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어. 자정이 땡 치자 왕비, 딸, 사형집행인은 몰래 그 도시를 떠나 멀리 떨어진 나라로 갔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녀는 이야기하다 딴전 피우지 않는다. 심지어 집 근처에서 총을 빵빵 쏘아대도.
"이렇게 갑작스레 도망친 것을 알고 화가 난 왕은, 먼 나를 정복하여 아내를 다시 찾으려고 나섰지. 우리 할며니는 이야기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잠깐 멈추었어. 할머니는 끝이 없이 되풀이되는 이 질문을 던지곤 했지. '왕이 떠난 게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겠니, 아니면 몰아내기 위해서였겠니?'"
그녀는 빙긋 웃는다. 아마도 옛날에 할머니가 웃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몇 년이 흘러갔어. 왕은 그렇게 이곳저곳 정복하고 다니다가 어떤 정의롭고 용감하고 평화로운 여왕이 다스리는 작은 왕국에 쳐들어가게 되었어. 이방의 왕이 쳐들어오니 이 나라 백성들은 저항했지. 이 도도한 왕 좀 봐! 군사들에게 그 나라를 아예 불질러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어. 그 왕국을 지키는 병사들은 여왕에게 이 왕과 만나 타협을 보라고 조언했지. 하지만 여왕은 이런 대면을 반대했어. 그런 타협을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왕국을 불 질러버리는 게 낫겠다고 햇어. 그때, 빼어난 미모뿐 아니라 좋은 머리와 흔하지 않은 선한 성품 때문에 신하들과 백성들로부터 매우 숭앙 받는 공주가 어머니인 여왕에게 자기가 왕을 만나러 갈 테니 허락해달라고 청했어. 딸의 말을 들은 여왕은 미친 사람처럼 화를 냈어. 마구 고함을 지르며, 큰 소리로 세상 전체를 저주했지. 그녀는 그때부터 잠도 못 잤어. 궁전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지. 딸을 자기 방에서 못 나가게 하고 이 일에 끼어들지도 못하게 했어. 아무도 여왕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어. 매일매일, 왕국은 조금씩 엄청난 재앙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어. 양식과 물이 귀해졌지. 어머니가 왜 저러는지 딸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해를 못하자, 딸은 드디어 금지를 무릎쓰고 왕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어. 어느 날 밤, 모든 걸 털어놓고 얘기해온 한 시녀의 도움을 받아, 공주는 왕의 천막으로 갔어. 천상의 선녀 같은 이 미인 앞에서 왕은 미친 듯 사랑에 빠져버렸지. 그는 공주에게 이런 제안을 했어. 만약 공주가 자기와 결홈해준다면 이 왕국을 단념하겠다고. 공주 역시 왕에게 바해 승낙했지. 이들은 함께 밤을 보냈어. 날이 밝아 그녀는 의기양양해서 성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왕과 만난 이야기를 했어. 다행히도 왕의 천막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털어놓지 않았어. 여왕은 자기 딸이 왕을 만났다는 이야기만 듣고도 막다른 골목에 몰린 형국이 되었어. 세상의 어떤 불행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것만은 아니었던 거지! 만신창이가 되어 그녀는 울부짖었어. '운명이여! 저주받은 운명!' 그리고 그녀는 기절했지. 여전히 어머니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든 건지 모르는 공주는 일생 동안 여왕과 함께 살아온 남자에게 가서 어머니가 왜 저러시냐고 물어보았어. 그러자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공주, 공주도 알다시피 난 공주의 아버지가 아니오. 사실 공주는 그 정복자 왕의 딸이오! 난 그 왕의 사형집행인에 불과했다오......' 그는 모든 진실을 공주에게 들려주고 마침내 이런 수수께끼같은 결론을 냈어. '자, 공주, 이게 우리의 운명이오. 만약 이 진실을 왕에게 털어놓는다면 우리 모두는 법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질 거요. 그리고 우리 왕국의 모든 시민들은 그 왕의 노예가 될 것이고. 만약 우리가 왕의 요구에 맞선다면 그는 우리 왕국에 불을 지를 거요. 만약 공주가 그와 결혼한다면 공주는 근친상간을 범하는 것이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우린 모두 신의 저주를 받고 벌을 받을 것이오.' 할머니는 이야기의 이 대목에서 멈추곤 했어.우리가 다음 이야기를 계속 해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말하곤 했지. '아이고, 내 새끼들아,난 이 이야기 끝을 모른단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끝을 몰라. 끝을 찾아내는 사람은 불행이 전혀 없는 삶을 살게 될 거야.' 정말로 그런 확신이 들지를 않아, 나는 할머니에게 말하곤 했어. 만약 이 이야기의 끝을 아무도 모른다면 어떻게 끝나는 게 좋은 건지도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할머니는 서글프게 웃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어. '바로 그게 사람들이 신비라고 부르는 것이란다, 얘야. 모든 결말이 가능하지만, 좋고 정의로운 결말을 아는 것.... 바로 그게 신비란다.'....."
# "한번은 당신 아버님께 이 이야기를 아시느냐고 물었지. 아버님은 모른다고 하셨어. 그래서 난 아버님께 그 이야길 해드렸어. 끝에 가서 한참 침묵하시더니 아버님은 이렇게 부드러운 말로 이어주시더군. '그런데 아가, 이 이야기에서 행복한 결말을 찾을 생각을 하는 건 환상이다. 행복한 결말은 있을 수가 없잖니. 왜냐하면 근친상간이 이미 범해져서, 비극은 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길에선 누군가 '정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총 쏘는 소리.
우르르 도망치는 발소리.
여자는 말을 계속한다. "요컨대, 아버님 때문에 난 환상을 잃게 된 거야. 하지만 며칠 뒤, 어느 날 아침 일찍, 내가 아침식사를 갖다드리니, 아버님이 겨에 좀 앉아보라시더니 이 이야기에 대해 말씀하셨어. 한마디 한마디를 정성스럽게 하시며, 아버님이 말씀을 계속하셨지. '얘야, 내가 많이 생각해보았단다. 아닌 게 아니라, 행복한 결말이 있을 수 있더라.' ..... (중략)..... '실제 삶도 그렇지만 이 이야기도, 행복한 결말을 맺으려면 말이다, 아가, 희생이 필요해. 즉 누군가의 불행 말이다. 절대 잊지 마라. 한 가지 행복마다 두 가지 불행이 생겨난단다.' '왜 그렇지요?' 나는 순진하게도 깜짝 놀랐어. 이런 단순한 말들로, 아버님은 대답하셨지. '아가, 불행히도, 아니면 다행히도, 실제 삶에서든 아니면 이야기 속에서든 누구나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단다. 누군가의 행복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낳게 마련이지. 그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야. 이 이야기에선, 그러니까 네가 행복한 결말에 이르려면 불행과 희생이 필요한 거다. 하지만 너의 자기애,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품은 사랑 때문에 그 점에 대해 깊이 생각을 못하는 거야. 이 이야기에는 살인이 필요해. 누구를 죽이는 거냐고? 대답하기 전에, 네가 스스로 또 하나의 질문을 해봐야 해. 살아생전에 누가 행복했으면 좋겠니? 아버지 왕? 어머니인 여왕? 아니면 딸인 공주? 네가 이 질문을 던지면 바로 모든 게 바뀐단다, 아가. 네 안에서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그러기 위해선, 네가 세 가지 사랑에서 벗어나야 해. 너 자신에 대한 사랑, 아버지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사랑!' '왜요?' 라고 나는 물었어. 아버님은 안경 너머에서 빛나는 맑은 눈으로 나를 오래, 잠자코 쳐다보셨어. 아버님은 아마도 내가 알아들을 만한 말을 찾고 계셨던 것 같아. '만약 네가 그 딸 편이라면, 네 마음에 품은 사랑 때문에 딸이 자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겠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딸이 결혼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결혼한 날 밤 신혼 잠자리에서 그 딸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딸이 여왕을 죽이고 왕에게 진실을 숨긴 채 함께 살게 된다는 생각을 못하게 하지.' 아버님은 잠시 내가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셨어. 차 한 모금을 더 천천히 마시고 말을 이으셨어. '마찬가지로, 만약 내가 아버지로서 이 이야기에 결말을 맺는다면, 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결말이 될 거야. 난 배신자들이 벌을 받도록, 그리고 근친상간의 비밀이 영원히 묻혀버리도록 여왕, 공주, 사형집행인의 목을 베라고 명령할 거야.' 난 아버님에게 물었어. '어미니 입장에선, 어떤 제안을 할까요?' 아버님은 특유의 엷은 미소르 지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아가, 난 모정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 어머니의 해법을 네게 제시할 수가 없구나. 너 자신이 이젠 엄마 아니냐. 그러니 엄마 입장이 어떤지는 네가 나한테 얘기해주어야지. 하지만 내 인생 경험으로 보면, 이 여왕 같은 어머니는 자기 비밀이 폭로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 왕국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노예로 잡혀가는 편을 택할 것 같구나. 어머니란 도덕에 의해 움직이지. 어머니는 자기 딸이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을 용납 못하지.' 이런 지혜로운 말씀을 듣자니 얼마나 마음이 흔들리던지. 명석한 출구를 절대적으로 찾고 있던 나는, 그런 출구가 과연 있겠느냐고 아버님께 물었어. 아버님은 처음엔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그래서 난 힘이 났는데... 금방, 다시 나를 부르셔어. '얘 아가, 말해보렴. 이 이야기에서 용서하 힘을 가진 사람은 누구겠니?' 난 순진하게 대답했어. '아버지요.'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버님이 말씀하셨어. '하지만 아가, 자기 자식들을 죽이고, 원정에 나서 여러 도시와 주민들을 파멸시키고 근친상간을 저지른 아버지도 여왕만큼이나 죄가 많단다. 여왕으로 말하자면,물론 여왕이 왕과 법률을 배반하긴 했지만, 여왕 자신도 갓 태어난 자기 딸과 사형집행인에게 배신당했다는 걸 잊지 말아라.; 아버님 곁을 더나기 전에 절망적으로 나는 이렇게 결론지었어. '그러니까 행복한 결말이란 전혀 없는 거군요!' 아버님은 말씀하셨어. '아니, 있지.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행복한 결말이 있기 위한 조건은 체념하고 희생해야 하며, 세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거야. 자기애, 아버지의 법, 어머니의 도덕, 이 세 가지를.; 말문이 막힌 나는 그런 것이 실현 가능할 것 같냐고 아버님께 여쭤보았지. 아버님은 그저 이렇게만 대답하셨어. '노력해봐야지, 아가.' 이런 토론으로 심란해진 나는 몇 달이고 몇 달이고 이 생각만 했어. 나의 심란함은 딱 한 가지 때문이며, 그 한가지란 아버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임을 파악했지. 아버님은 정말이지 인생사를 제대로 알고 계셨어."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저자 - 할레드 호세이니의 추천의 글 중
라히미의 여주인공은 용감하고 탄력적이고 성실한 어머니이면서, 동신에 인간적인 면에서 결함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하고 속이기도 하고 악의를 품기도 하고, 심하게 몰아치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몸도 그렇다. 여기에서 라히미는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큰 금기, 즉 성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생각을 깨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두어 단락은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보수적인 집단으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라히미가 그 주제로부터 물러서지 않은 것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여주인공을 성스럽고 무성적이고 모성적인 인물의 전형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박수를 받을 일이다. 어쩌면 그가 다리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기 때문에 그것이 더 용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페르시아어로 글을 쓸 때는 나도 모르게 일종의 자기 검열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택한 새로운 언어는 나에게 이러한 자기 검열과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안에 자리를 잡은 무의식적인 수치심을 벗어나 내가 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유가 무엇이든, 독자는 움츠러들지 않는 그의 접근방식에서 득을 보고 있다.
# 옮긴이의 말 중
처음부터 끝가지(주인공의 입에서 과거사가 술회될 때를 제외하면) 모두 현제 시제로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일관성이 있고 정합적이며, 이 소설의 매력이 이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자는 지금 여기서 카메라가 초점 맞추는 대로 따라가면서 '보는' 것처럼 소설을 읽게 된다. 아티그 라히미의 간결한 문체는, 전쟁중인 폐쇄된 시공간에 마치 베케트의 부조리한 연국 무대나 뒤라스의 소설(영화) 공간이 지니는 것 같은 보편성을 부여한다.
알라의 모든 이름을 염주를 헤아리며 수없이 불러가면서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는 정숙한 부인이었던 주인공은 자신이 자유, 쾌락, 행복, 이 모든 누려야 하 것을 박탈당한 존재임을 인식해간다. 죄책감과 버림받는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여자는 사랑이란 무언지를 끝없이 질문하고, 억압되었던 관능의 빗장을 열고, 종내는 마음속 비밀까지 다 열어 보이게 된다.
# 결과적으로 이 작품 [인내의 돌]은 고백이자 악마 해방의 주술(엑소시즘)이자, 해방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이나 거짓을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문화와 사회 속에서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기검열은 강화되고 개인은 자기표현이 부라능한, 갇힌 존재가 된다. 만약 평시의 상황에서 이 여인처럼 자기 속에 담긴 말이 터져 나온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의식불명의 남편이 누워 있는 옆에서야 주인공 여자는 처음으로 자시가 모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털어놓고는 바로 후회하고 억제하고 자책한다. 말을 하면서 고독에서 소외에서 절망에서 해방되고 있다는 것을 본인 자신도 모르다가, 차츰 말과 비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하며 남편에게 '당신의 목숨은 내 비밀이 달려 있다' 고 감히 말한다. 이러한 '말에 의한 해방'이 작가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기만의 진실과 대면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과도 가식 없이 대면하게 된다. 금기시되고 감추어지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여성의 몸, 육체와 욕망의 좌절을 발견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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