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17)

[기시 유스케] 검은 집

일루젼 2012. 9. 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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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 6점
기시 유스케 지음/창해

474쪽 | 195*136mm | ISBN(13) : 9788979196184

2004-08-15

 

나는 또 한 번 깨닫고 말았는데, 나는 상냥한 안내자의 역할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안에 내재된 기묘한 모험 본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생활적으로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손해를 감수할 수 있겠다 싶은 선 안에서는 최대한 멋대로 날뛰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책의 구매나 선택에 있어서 서평을 미리 찾아보고 고심했던 적이 없다.

누군가가 한 책을 좋다, 고 말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는 내가 읽으면서 찾아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는 재미가 없었다면 나는 책 한 권의 돈과 그 책을 읽는데 쓴 시간을 잃은 셈이다. 되판다 해도 금전적, 시간적으로 약간의 손햬는 입었을 터.

 

하지만 그 책이 너무나 내 취향인 보물이었다면?

나는 다른 시도들이 그 한 권의 발견을 위한 투자비용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앞으로 피할 수도 있고,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으니 무의미한 손실은 아니었다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평들을 읽으며 책을 선택하기 위해 들인 시간 역시 시간이며, 내 경우에는 그렇게 골라도 여전히 지뢰를 밟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좋았다 해도 나의 이유와 상대의 이유는 (아마도 틀림없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선입견없이 그 책을 접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답을 미리 보고 읽기보다는 나만의 답을 찾은 다음 비교하기가 더 즐거운 까닭이다.

(그러나 그 답을 알게 된다고 해서 모든 즐거움을 배앗기는 것은 아니다. 다소 아쉽지만 그때부터는 왜 그 사람은 그런 답을 얻었을까라는 다음 문제에 대해 풀어가는 맛도 있긴 하니까.)

 

 

해서, 나는 스포일러가 팍팍 들어간 제멋대로의 분석. 해석이 범벅된 감상 쪽이 취향이다. 읽은 이들끼리 모여 떠드는 그런 것.

혹시나 아직 읽지 않은 이가 볼까 싶어 하고픈 이야기를 삼키고 삼키다보니 리뷰 쓰기가 너무 재미가 없다!!!!

나는 까발리는 재미로 리뷰를 쓴다!!!ㅋ

 

 

그런 고로, 혹시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은 나의 리뷰는 가볍게 넘겨주시길.

 

 

(경고)스포 당합니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 푸른 불꽃을 구매했었다. (방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다)

당시만 해도 또다시 나온 추리 소설게의 신인이려나 했었다. 그렇게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두고 있던 이름이 최근 여기 저기에서 다시 들려오면서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방을 다 뒤집어 찾아내기는 무리였기에 (아아, 좋은 핑게다!) '검은 집'을 구매.

어떤 면에서 명성이 드높은지는 아직 판단이 조금 어렵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검은 집'

이 책은 본격 추리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숨막히는 긴장감이다.

범인이 누구인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작가 역시 그런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너무도 손 쉽게 미리 답을 던져두니까 말이다.

 

최초의 전화는 여자. '자살을 하면 보험금이 나오나요가 아닌, 왜 주지 않는 건가요'에 가까운 시각이 그 첫 번째.

고모다 시게노리의 '불쌍하게 살다간'이 두 번째.

사치코가 시게노리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다는 것이 그 세 번째. 개인적으로 봤을 때, 사치코는 시게노리를 변호해줄 이유가 없었고 그렇다면 협박을 했든 동조를 했든 그 사건에 얽혀있었던 사치코를 제거햇어야 말이 맞기 때문에. 

그리고 찾아낸 문집에서 그녀의 것이 훨씬 섬뜩했기 때문에가 넷 째. (나중에 나온 분석을 보고 알았지만) 

 

하지만 보다 객관적인 것은, 역시, 검은 과부 거미 Black Widow Spider가 될 것이다. 

 

범인의 정체, 혹은 범죄에 사용된 트릭을 밝혀내는 순간이 추리 소설들의 클라이막스라면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은 마치 '그런 것은 내 매력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이 일찌감치 저 편으로 밀어놓고 달려간다.

 

신지의 꿈-메구미에 대한-과 토르소 챕터가 시작되는 장의 발췌문으로 다시 한 번 독자를 가볍게 농락한 작가는 미친 긴장감을 보여준다. 영화가 가지는 시각적, 청각적 효과 없이 활자만으로 몇 번이나 잠시 책을 덮게 만드는 능력이라니.

(부연을 좀 하자면, 살인의 주체- 즉 폭력을 가하는 쪽이 여자라는 것과 결국 살아남은 이는 여자였다는 점(신지는 제외), 보통은 관념적으로 여성이 토르소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점들을 꼬집은 듯 하다. 교수 역시 우아한 여성이다. 주교수가 남성, 부교수가 여성이라는 관념에도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에 여성 상위 시대를 은근하게 말하는 것인지- 혹은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는 암시적 장치로 쓰인 것인지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좀 더 읽어봐야 알 수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는, 글쎄, 나는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낙관이 돋는, 휴머니즘은, 그리고 그것이 '여성성'이라고 포장되는 듯이 나올 때는... 특히.

결국 뭐라해도 '모성애'와 '따스한 감성'는 훼손되지 않는 여성의 특질이며, 오히려 그런 것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이코파스' (출간일을 생각하자... 지금은 싸이코패스가 더 익숙하겠지만)가 생긴다. 즉 여성도 사회적으로 진출한 사회다. '환경오염'과 '과도한 복지' 등으로 'r형 전략'을 쓰는 유전 특질이 강조되는 것이 문제이든 -선천적-, 진정한 '모성애'에 대한 접촉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이든 -후천적-, 해결책은 모성애다.

 

이런 느낌이라서.

 

뭐 내가 과민했을 수도 있지만... 글 자체에 대한 평과는 별개로 입맛이 좀 쓰다.

이 글에서 모든 남성은 피해자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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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문을 뽑으면서 다시 생각해봤는데, 내가 다소 삐딱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기시 유스케는 남성 위주의 글을 탈피, 여성이 중심에 있는 색다른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지나치게 삐딱하게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요시코를 배치했던 것일지도.

 

그저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의 공식을 그대로 반전시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거미'의 세계- 그리고 대다수 곤충의 세계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여성이 중심인 사회는 남성은 번식을 위해 스러져가는 존재가 될 뿐이고, 그녀들은 r형의 알을 낳기만 하는 존재들이라고 비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망을 갖고 싶은 것은, 나는 물론 메구미의 성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부모님이 냉혹하더라도 메구미 같은 따뜻함이 태어날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듯해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 메구미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렇다는 것은 사이코파스 역시 따뜻한 부모 슬하에서도 태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


흠. 마음에 드는군, 기시 유스케.

 

 

 

[발췌]

 

# 여직원들은 보통 정해진 업무나 주어진 일은 빈틈없이 해내지만, 책임을 동반하는 일에서는 멀리 도망ㅊ어한다. 그러한 때에는 일단 직책이 있는 사람에게 지시를 받으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신지와 요시오에게 무거운 책임이 걸리게 되는데, 여직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월급을 받는 이상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여자는, 이 아니라. 책임에 대해서 조금 공감해서다. 월급이 올라갈수록 책임져야 할 일은 늘어간다.

 

 

# 그곳에는 마치 두 종류의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고모다의 연극적인 행동은 주위 세계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가슴을 찢는 공포로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소년 주위의 시간은 얼어붙어 있었다.

 

 

# "그래요, 메구미 씨. 그분은 대단한 휴머니스트인지, 여성다운 세심한 면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지극히 여성다운 면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일도 있습니다."

 

 

# "심리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겠지만,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모든 인간 관계의 기본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식에게조차 애정을 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요? 유기전략자는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정성결여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서슴지 않지요."

 

 

# 그 다음 떠오른 것은, 새끼 고양이를 지키려고 하던 어미 고양이의 처절한 형상.
원래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는 법이 아닐까. 자신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말이다.
만약에 가나이시의 설이 맞다면, 그들이 자식에게 품는 감정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를지도 모른다. 그들은 고작해야 곤충이나 거미가 자신의 알을 품을 때 느끼는 정도의 감정으로 자식을 대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무서운 상대의 팔에 안긴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끔찍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어머니의 냄새에 편안히 잠드는데 말이다.

 


# "맨 처음 가나이시를 만났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리 부모님과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 냉혹하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분위기가 있거든요."
"마치 당신 부모님께 인격장애가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아니에요. 우리 부모님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문제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그 어두운 절망을 투영하지요. 인간의 선의나 노력이 세상을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신지는, 묵묵히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 모든 사건이 악의에 가득찬 것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러한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교묘한 트릭을 사용하게 되지요. 배신을 당해도 상처 입지 않도록 모든 것에 대해서 마음의 인연을 끊거나 애착을 갖지 않아요. 그리고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에 사악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만약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도라도 고통당하지 않도록 배수진을 쳐두지요. 우리 사회에 정말로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알아보기 쉬운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오히려 평범하게 보이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신지는 자신의 냉혹함을 지적받은 듯해서 갑자기 뜨끔해졌다. 그는 살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에서 자아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치코를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을 조작하면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도 쉽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고, 그것은 가나이시가 주장한 사이코파스보다 훨씬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 사회 전체가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거대한 도덕적 붕괴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가치를 경시하고 돈이 최고라는 풍조, 사고력과 상상력의 쇠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결여, 그러한 징조들은 이미 손해보험 분야에서 시작되고 있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청구 금액의 절반은 사기라고까지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생명보험에까지 파급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보장에 대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되고, 결국 그 부담은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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