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2010-07-30 |
1, 2판은 표지가 명화라 참 예쁜데....
3판의 표지는 진심으로 구매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또한 구매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136쪽. 1.3.6.쪽.이다)
일단 질러놓고 단번에 다 읽은 소감은.
꽤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김영하'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주저하게 된다.
이미 집구석에 있는 '오빠가 돌아왔다'까지는 읽어봐야 조금은 감이 잡힐 듯 하다.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나는 이것이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글의 핵심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을 찾아 다닌다는 의문의 인물이자 이 소설의 화자가 되는 '나'.
그러나 그가 쓴 소설은 형제인 K와 C, 그리고 유디트(세연)와 미미가 중심인 3인칭이며, 이는 액자식 구성처럼 하나의 소챕터로 본 소설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나'의 소설 외부에서는 '나'와 생수를 마시지 못하는 홍콩의 '그녀'가 만나고 헤어진다.
줄거리를 요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후 주절거릴 내용을 위해서는 간략히나마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우선 외부적으로 보기에 각 인물을 매개하는 중심은 '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적'인 것이고, 나는 진짜 핵심 인물은 오히려 'C'라고 생각한다.
형제인 C와 K. 형인 C는 현재 전시회를 열만한 비디오 아트 예술가이다. 그리고 K는 택시 운전수이다.
그런 그들은 잠시 유디트를 공유한다. 그것은 유디트의 선택이기도 했고, C의 욕망이기도 했으며 K의 삶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디트는 사라졌으며, 다시 C는 자신의 전시회 준비를 하던 도중 미미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C는 알지 못했겠지만 미미 역시 사라진다.
유디트와 미미의 돌아오지 않는 여행에는 '나'가 개입하며, 두 여인의 이야기가 바로 그가 쓴 각각의 소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니 가장 소설같은, 두 이야기의 중간을 잇는 것이 '나'와 콜라만 마시는 '그녀'의 이야기-에비앙-이다.
'그녀'의 과거에서 그녀에게서 생수를 앗아간 이는 C의 또다른 변형으로 보인다.
나는 이 글이, 그리고 김영하가, 어떻게 분석되는 글이고 작가인지 알지 못한다.
(솔직히 찾아볼 생각은 있으나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다)
'나'가 그려낸 소설 속의 두 여인은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이 주인공이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삶에 질려 그의 도움을 받아 더욱 멀리 떠나간다. 그리고 '나'가 만난 여인은 어쩌면 곧, 베니스를 거친 유럽에서도, 홍콩에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나왔음에도 삶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나'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직, '멀리 떠나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니까. 그 무엇으로부터도.
유디트와 미미는 무척 닮아있다.
그녀들은 파괴적이고, 그렇기에 유혹적이며 매혹적이다. 그 나른한 관능은 그 무엇도 그녀들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삶이란 너무나도 지루한 것이기 때문에 배태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유디트는 '장난'을 치는 것이고. 미미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나비의 날갯짓이다.
단 한 번, 그 순간 일어날 뿐 결코 똑같이 반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녀들을 '멀리' 보낼 수 있는 행위들인 것이다.
그녀들은 C에 의해 시침핀으로 고정되는 것을 거부한 채 '나'의 도움으로 평온하게 산화한다.
마지막 5장, 사르다나팔의 죽음과 이제는 조금 피곤하다는 '나'의 독백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매칭된다.
그러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들고 있는 유디트는 C도 K도 동반하지 않은 채 홀로 떠나갔으며, 미미 역시 그러했다. 그녀들은 오히려 마라의 죽음과 더 닮아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영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름답고 유혹적인, 그러나 두려운 팜므파탈들의 소멸'인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녀들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지독한 자기애'라고 말하는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이 외에 다른 어떤 것일 가능성 역시 지우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고 말하게 되니.
내게는 신기한 소설이다.
(아. 그리고 K가 아마도 김영하 자신이거나, 가장 표준적인 중심에 선 인물이 아닐까 하는데.... 너무 정상적인 인물로 느껴져 도리어 눈길이 안 갔다.)
[발췌]
# 도서관에서는 주로 역사책이나 여행안내서를 읽는다. 일을 끝내고 돈을 받으면 나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안내책자들은 복잡한 사실들을 간단하고 명쾌하게 축약해놓는다. 한 도시에는 수십만 개의 인생이 있고 수백 년의 역사가 있고, 인생과 역사가 교직하면서 만들어온 흔적이 있다. 이를테면 파리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파리는 세속적인 곳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정치적, 예술적 자유의 성지이고 그 자유를 알리는 외침이거나 그것에 대한 숨은 바람이다. 파리는 관용의 정신으로 로베스피에르, 퀴리, 와일드, 사르트르, 피카소, 호치민, 조이스, 그리고 호메이니와 같은 사상가, 예술가, 혁명가, 그리고 많은 비범한 사람들에게 망명처를 제공해주었다. 파리는 19세기의 뛰어난 도시계획의 훌륭한 산물이지만 파리의 음악과 예술, 극장이 그러한 것처럼 건축물도 중세풍에서부터 아방가르드적인 것, 아니 아방가르드를 넘어서는 것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역사와 새로움, 문화와 문명 그 자체의 자기 인식인 파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가 그것을 창조해냈을 것이다."
파리에 대해서 더이상의 말은 필요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여행안내서 읽기를 즐긴다. 그것은 역사서도 마찬가지이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 예를 들자면, 언젠가 한 고객은 고흐를 좋아한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고흐의 풍경화와 자화상 중에서 어느 쪽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고객은 머뭇거리더니 자화상이 더 좋다고 말했다. 고흐의 자화상에 탐닉하는 자들을 나는 유심히 바라본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고통스러우면서도 내밀한 쾌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진다면, 그 역시 고독한 인간이다. 그러나 고독한 자들이 모두 내 고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토요일 오후에 시계를 들여다보는 일도 없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림 보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나는 주시한다. 그들은 갈 데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만날 사람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발길을 멈추게 되는 그림은 은연중에 그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준다.
#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 그들 기억 속의 벨베데르는 흐릿하고 푸른 기 감도는 사각의 영상으로 수렴된다. 그들은 기억의 불멸을 꾀하느라 생생한 현재를 희생한다. 처량하지만 인간의 숙명이다.
# "생물이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을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야. 누군가를 유혹해야 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때."
# 결코 이 거리를 좁히지 못하리라. 세계와 자신, 오브제와 렌즈, 그가 만나왔던 여자들과 자신, 그들 사이에 놓인 강을 결코 좁히지 못할 것이라는 비감한 절망이 몰려들었다. 그는 북극으로 걸어간 유디트를 생각했다. 나이 서른이 되면 사랑도 재능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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