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일상다반사

생각.

일루젼 2012. 11.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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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일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그것이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인지가능할 정도의 큰 변화가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윗 문장이 그 시간들이 모조리 같은 감각과 감정을 유지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범위 안의 오르내림이 있어야 진정한 '일상'이 된다. 언제고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미 경험해본 -혹은 기억나지 않지만 충분히 그랬을 법한, 혹은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경험할 법한- 자극들로만 이루어진 그런 하루 하루가 이어지는 나날.

 

그리고 그런 때야말로 작은 자극도 강렬한 충격으로 느낄 수 있는 '준비된 상태' 인 것이다.

 

일상이 부서져내리는 순간.

그 최초의 순간은 갑작스럽고 강렬하겠지만, 시작된 자극이 같은 정도를 유지한다면 인간은 손쉽게 그 자극에 적응한다. 그 적응은 자신의 의지로 인한 능동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익숙해지는 것이다. 올라간 역치를 넘어서려면 자극은 그 강도를 높여야만 한다.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극의 종류와 그 자극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매우 중요해진다.

어떤 종류의 자극들은 상당히 말초적이고 감각적이다. 그것은 도를 더할 수록 해를 입히며, 그렇기에 그 자극에 빠져드는 것을 '탐닉, 중독' 등으로 부르며 경계한다.

또다른 어떤 자극들은 지적인 것으로 분류되며 경원시된다. 함께 좇는 이가 아닌 다음에야 대화를 통해 추종자와 의사를 소통하는 것은 상호에게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외에도 그 중간, 혹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 다양한 자극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그것들은 누군가에게는 자극이 될 것이나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비자극이기도 할 것이라는 점이다.

 

나의 일상은 누군가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소설을 쓰거나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나와 같은지 어떠한지. 같다면 안도로 지루함을 지우고 다르다면 그것으로 작은 자극을 얻고자 하는.

그런 관음 욕구에 대한 변명.

 

 

일상이 충분한 자극으로 채워져 더는 일상이 아니게 되면.

현실감을 잃은 하루 하루가 마치 꿈과 같이 느껴지며 한 순간 순간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자극적이게 되면.

 

이전까지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던 다른 모든 자극들이 그 빛을 잃고 일상 이하의 어떤 곳으로 사라진다.

 

 

요약하자면 하루 하루가 너무 즐겁고 좋아 책이 안 읽힌다는 거다. 음악도 안 들리고. 

그래서 블로그 질 할 게 없다. 

 

이제 조금, 이래도 되는 걸까, 싶어지면서 살짝 책도 들춰보고 일상적이었던 것들을 돌아보는 중이다. 

그런데 고작 그 시간 동안 나를 벗어나 있었다고 그새 많은 것들이 낯설다. 

새로운 자극이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의 그 강렬한 느낌으로만 존재하기보다, 조금은 누그러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그래서 때로는 자극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더라도 그 대신 더해질 익숙함과 안정감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올 일상은 자극이 존재하기 이전과는 또 다를 것이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부분 부분들이 또다른 자극이 될 것이다.

 

 

애초에 끄적여보려고 생각했던 글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생각의 구조를 잡아내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다듬어 글로 뽑아내는 것.

명료하고 정확하게 단어를 구사하는 것.

 

마음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지금 단계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인 듯 하다.

 

좋은 나날이다.

 

 

 

덧)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들을 지칭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 큰 상처를 입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을 들은 듯 하여 길게 설명치 않고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무엇이 고맙냐는 말에 그저 가만히 웃은 것은 '무엇'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었다.

그 웃음을 헤아려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까지 대답해주는 것이 신기하고, 기쁘고, 다시 감사하다.

아, 감사하다는 말은 고맙다는 말에 비해 그 대상이 훨씬 광위한데,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을 다시 꼭 집어 물어 기분 좋은 당혹감을 느꼈었다.

 

내가 많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곁에 있어주어 고맙고. 고맙다.

조금 더 곁으로 다가서고 싶다. 그러니 나는 절대적 시간보다 뒤쳐진 만큼 더 많이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아직은 나지 않는다.

아직은, 기분 좋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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