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김보영] 7인의 집행관

일루젼 2021. 5. 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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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보영
출판 :  현대문학
출간 :  2013.01.15


 

김보영.

<저 이승의 선지자> <얼마나 닮았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3부작 Stella Odyssey Trilogy, <역병의 바다> 정도를 읽었다. 그 외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 등의 단편선 모음집에서 한 두 작품쯤 더 읽었던 것 같다. 이번 글은 발표 순서로는 앞에서 세는 것이 더 빠른, 초기라기에는 조금 애매한 중기 작품이다.

 

읽었던 순서대로 말하자면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에 실린 "노인과 소년"을 가장 먼저 읽었으나 당시의 내게는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에 실린 "얼마나 닮았는가"를 읽으며 한 번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다. 이 작가는 어떤 작가지? 대단하다!!라고 느꼈으나 한 동안 잊고 지냈었다. (작가명을 아예 잊었었다)

 

그러다 <저 이승의 선지자>를 읽게 되었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내게 큰 선입견을 심어준 작품이기도 했다. 이 사람은 한국 신화와 소합일/대합일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구나, 어쩌면 그런 쪽의 종교관과 접점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었다.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대단하다는 느낌까지는 받기 어려웠다. (내 개인적인 감상이다) 

 

선과 악은 완전한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다.
극단적인 추구는 그 그림자를 더욱 깊게 만든다.  

너와 나는 결국 하나이니 자와 타를 나누지 않을 때 가림과 구분은 사라진다. 지옥은 달리 있지 않고 자신 안에 갇힌 자들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환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환영이고 무엇이 실체인가?
'합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전체의 진보를 위해 나는 너를 나눈다. 

-<저 이승의 선지자>
에 관한 요약

 

 

이 책을 읽고 난 뒤, 다른 SF 신예 작가들의 심사평에서 김보영 작가의 이름을 다시 발견했다. 내게는 <저 이승의 선지자>의 작가로 기억되어 있을 뿐이었다. <천 개의 파랑>에 실린 심사평이었는데, 해당 작품에 대한 심사평이 아니었음에도 워낙 인상 깊어 따로 메모해두었었다. 

 

 

국내에는 이미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이 적지 않게 들어와 있으니, 이를 참고하여 기법을 연구해 보았으면 한다.
더해서 이것은 소설 공모전이다. 소설은 가상의 이야기지 논픽션이나 연설문이 아니다. 작가가 종교적 신비주의나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쓴 글을 SF인 척 내밀어보았자 그 의도는 뻔히 보이기 마련이다. 부디 그 내용을 믿지 않게 된 뒤에 다시 쓰기 바란다. 

- 김보영

 

 

당시 내가 받았던 인상은, 솔직히 말하자면 선점 공표였었다. 

그러다 <얼마나 닮았는가>를 읽으며 혼자서 김보영 작가에게 두 번째 통수를 맞는다. 단편의 글제도 잊고 있었던 터라, "얼마나 닮았는가"의 앞선 몇 장을 읽다가 내가 읽었던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읽어도 무척 좋다는 것과, 그 작가가 김보영이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 뒤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었고, 내게는 김보영 작가의 글 중에서는 이 작품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문득, <저 이승의 선지자>에서 언급 되었던 <7인의 집행관>이 궁금해졌다. 책을 구해놓고 한 동안 잊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다는 것이 앞으로 더더 길어질 이 글의 서두다. (나는 자주 일을 벌였다 놓았다 한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고질병이다.) 

그리고, 내게 김보영 작가의 대표작은 <7인의 집행관>으로 수정되었다. 설레거나, 놀랍거나, 즐겁거나로 끝나지 않는다. 이 표현이 작가에게 누가 될까 조금 염려스럽지만, 이 글은 정말 "취향이다!!!".

 

어디까지가 '나'를 규정짓는 한계인가, 라는 고민을 하던 참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는 것부터

아직도 나오지 않은 <뉴 앰버>를 기억나게 하는 주인공과 

넘나드는 시간선과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이미지들

설득력 있는 설정과 몇 번이고 고쳐 읽게 만드는 대사들이

그에 대해 나의 뇌피셜 속에서는 제주 신화와 이집트 신화를 더해 7 행성과 중도와 합일을 말하고 있는 떡밥들이

폭죽처럼 터지며 두근거리게 했다. (채 풀리지 않은 손가락으로 이렇게 정성들여 타이핑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고로,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을 위한 기본적인 부분과 뇌피셜을 마구 쏟아부을 스포 리뷰로 구분해서 떠들어보려 한다. 13년도 출간작이긴 하지만 혹여라도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을 위해 <스포주의>용 리뷰를 따로 쓸 생각이니, 이어지는 부분은 편하게 읽으셔도 된다.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알 수 없는 나.
겹겹이 쌓여있는 비밀들을 하나하나 들춰나가는 안개 속의 슬로모션.
아름다운 여인을 뒤로 한 채 터져나오는 핏빛 폭력의 선열한 이미지들...

김보영의 신작 <7인의 집행관>은 그 자체로 이미 숨막히게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입니다. <다크시티>, <매트릭스>, <인셉션>과 같은 영화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독창적인 구조 속으로 우리를 몰고가는 새롭고 신비스러운 문학적/영화적 체험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강렬합니다.  

- 봉준호

 

 

<7인의 집행관>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 같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최소 두 번은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복선을 살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를 곱씹느라 한 번 이상 책을 덮게 될 것이다. 

 

 

내가 나라면,
기억을 잃고도 지식과 지력을 잃고도,
사고능력과 판단능력과 신체능력과 경험을 포함해서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을 잃고도,
누구의 기억을 갖고 어떤 인격을 갖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인생을 살든
내가 내 근원에서 나온 나 자신이라면,
내게서 무엇을 없애든 '나'를 없애지 못한다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도 나를 유지한다면.

<7인의 집행관>

 

 

간략한 줄거리 소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심장이 안에서부터 나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펄떡 펄떡 뛴다.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은 꿈을 꾼 것 같은데, 눈을 완전히 뜨면 안개가 걷히듯 완전히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렇겠지. 잠에서 깰 때엔 늘 그러니까. 

 

무미건조한 삶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다. 하지만 살아야만 할 것 같다.

매번 내가 돌아오지 못하기를 바라며 사지로 보내는 보스와, 이번에도 내가 살아돌아올지 내기를 거는 동생들의 얼굴을 이번에도 파리하게 굳혀놓겠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잊은 것이 있다.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다시 한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심장이 안에서부터 나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펄떡 펄떡 뛴다. 

무슨 꿈을 꾸었더라.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눈을 뜨고 있는 내가 '나'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눈을 뜬다. 

 


 

부도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노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우는, 광증에 시달리는 독사의 혀를 지닌 망나니요, 다른 하나는 고매한 인격에서 나오는 감히 꽃과 같은 언변을 지닌 성군이라. 나이 든 노왕은 봉황의 성군을 태양으로 삼고 선왕으로 물러난다. 

 

일찍이 노왕은 망나니가 진실을 의심케 하고 거짓을 믿게 하는 혀를 지녔음을 진즉 알아보고 그 됨됨이에 맞게 짐승으로 대하였으나 새로운 왕은 성품이 어질고 따스하여 그를 형제로 품고 믿었더라. 

그리하여 결국 그의 광증이 불러온 거대한 슬픔과 분노가 6명의 집행관을 모은다.

 

미친 자, 소심한 자, 영리한 자, 고지식한 자, 미인, 노인. 

 

그들은 각각 6번의 세계를 연다. 

그 6개의 세계는 모두 허상이나 6번의 삶은 또한 삶이다. 

 

그리고, 그 안을 떠도는 조정자는 대체 누구인가?

 

 


 

사실 발표된지 7년이 넘은 소설이라, 이제 와 새로 찾아 읽는 분이 계실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접하고 반했으니 그런 일이 없으리란 법도 없겠지. SF와 사극과 신화와 콜로세움을 오가는 세계들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가 '으으응?' 해보고 싶으신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영화화될 것만 같다가도,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가도, 어쩐지 넷플릭스에서 나올 법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보통은 적당히 잡소리나 단상을 남기고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 싶을 것 같은 부분을 발췌해두는데 완독 후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감정에 휩싸여서 이렇게나 떠들고 있다.....!!! 이 책은 소장이다!! 김보영 작가의 중기작들을 좀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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