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케이틀린 도티 / 이한음
출판 : 사계절
출간 : 21.03.05
와우.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를 읽고 예단했던 내 선입견이 박살나는 책이었다.
저자만 보고 구매했고 목차도 살펴보기 전이라 제목만 보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좋은 시체...> 에서 이어지는, 저자가 '좋은 죽음 교단' 활동을 하며 만난 고독사 시체들에 대한 이야기겠지. 홀로 맞는 죽음과 제 때 발견되지 못한 시신의 이야기 같은.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책을 받아보니 표지 질감부터 전체적인 느낌이 좀 튀었다. 그래서 살펴보니 이번 책은 출판사와 역자가 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번 책은 타겟층을 좀 다르게 잡았나 정도로 넘겼는데, 몇 페이지 읽다 보니ㅋㅋㅋ
이건 어린이용 과학도서 흥미로운 상식 퀴즈! - ver. 시체와 죽음과 부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였다.
저자가 장의사로 실제 장의, 유튜브, 강연, SNS 활동 등을 하며 받은 죽음과 시체에 관한 질문과 그에 관한 답을 모은 책인데, 주로 어린이들이 한 질문들이 많다고 한다. 성인 뿐 아니라 아이 때부터 제대로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가치관에 더해 아주 반짝이는 유머 센스가 유쾌한 책이다.
(하지만 번역서 전반에서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느낌은 거의 없는데, 아마, 당연히, 국내에서는 성인 독자들을 타겟으로 잡았기 때문이겠지. 어린이날 선물용 도서로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케이틀린 도티의 국내 번역된 총 3권의 책을 다 읽어보고 종합하자면, 저자는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삶을 잘 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 아마 나는 곧 이 저자의 유튜브 채널 'Ask a Mortician'을 구독할 것 같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과 <고양이로부터 내 시체를 지키는 방법>은 강력 추천한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를 읽고 <고양이...>를 읽는 편이 더 즐기기 좋겠지만, 건너뛰어도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본다.
한 권만 읽는다면 <고양이...>다!!!
- 요즘 사람들은 죽음을 잘 몰라. 모르니까 더욱 두려워하게 되지.
- 언젠가는 죽을 여러분, 더 가까이 모여 봐요.
- 때로 죽음은 폭력적이고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안겨 주기도 해. 그러나 그것도 현실이야. 현실은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지 않아.
- 우리는 죽음을 즐거운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배우는 과정은 즐거운 일로 만들 수 있어. ...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괜찮냐고 물을 수 있겠지. 내가 죽으면 고양이가 내 눈알을 파먹을까? 좋은 질문이야. 거기에서 시작해 볼까?
- 인류는 예전에도 이 문제로 고심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 해발 8,848미터 높이의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길은 몇 군데 안 돼. 그 고도에서 누군가가 죽었을 때(지금까지 거의 300명이 사망했어), 매장이나 화장을 위해 시신을 들고 내려오려고 시도하다가는 다른 사람까지 위험해져. 그래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등반길에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해마다 새 등반가들은 부푼 오렌지색 방한복 차림에 거의 해골이 된 얼굴을 드러낸 동료들을 밟고 지나가야 해. 우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은 궤도를 도는 시신들 곁을 지나가야 할지도 몰라. "어, 리사를 또 보네."
- 사람이 죽은 직후에는 신경계가 아직 활동하고 있을 수 있어. 그래서 몸이 살짝 씰룩하거나 경련을 일으킬 수 있지. 이런 경련은 죽은 후 몇 분 동안 일어나지만, 열두 시간 뒤까지 관찰되기도 해. 신음 소리는? 최근에 죽은 사람을 운반할 때면 숨길에 갇혀있던 공기가 밖으로 밀려 나올 수 있어. 그럴 때 으스스한 신음 소리가 들리기도 해. 간호사들 대부분이 이런 일들을 겪곤 하지. 그래서 사망 선고가 내려진 뒤에 씰룩거림, 움직임, 신음 소리 같은 것을 접하면 그들은 "맙소사, 살아 있어, 살아 있어요오오!”라고 소리치는 대신에 차분하게 대처해.
- 1700년대 말 독일 의사들은 사람이 진짜 죽었는지를 알려면 시신이 썩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믿었어. 탱탱 붓고, 악취가 날 때까지 말이야. 그래서 시신 대기실 (Leichenhaus)이 설치되었지. ... 시신에 종을 달기도 했어. 움직이면 종이 울려서 직원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야.
- 네가 완전히 부패한 시신을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 그렇다면 그 아름다운 색깔을 못 보겠지만, 네가 숲에서 우연히 시체를 맞닥뜨려서 그런 광경을 보게 된다는 상상을 하면 차라리 못 보는게 최선일 것 같아.
- 하지만 화장이 끝난 뒤에는 화장로에 들어간 시신의 몸무게가 200킬로그램이었는지 50킬로그램이었는지 알 수 없어. 불은 사람을 아주 평등하게 만들거든.
- 할머니가 바이킹 장례식을 원하셨다고? 그렇다면 할머니는 대단한 사람이었을 거야. 생전에 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내가 좀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아니라 '바이킹 장례식', 적어도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바이킹 장례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없다는 소식이지.
- 우리가 좋아하는 바이킹은 중세 스칸디나비아의 습격자이자 상인이었어. 그들은 다양하면서 흥미로운 장례 풍습을 지녔지만, 배에 불을 질러 화장하는 풍습은 없었어. 그들의 장례 풍습을 다시 말해 볼까? 바이킹은 화장을 하긴 했어. 그런데 육지에서였지!
- 그 이야기는 '아마드 이븐 파들란'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온 거야. ....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이 모든 일은 땅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거야. 바이킹 장례식이라는 소문이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바이킹은 정교한 화장 풍습을 지녔어! 배도 있었어! 다만 배를 바다에 띄우고 불 질러 화장하는 풍습만 없었어.
-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알겠어. 내 장례 계획이 역사적으로 볼 때 좀 안 맞는다는 거잖아. 그럼 바이킹 장례식이라고 안 하면 되지 뭐. 그래도 배에 불을 질러서 화장하자!' 잠깐, 좀 기다려, 내 사후 방화광 친구여. 배를 불태워서 화장하는 풍습이 어느 문화에도 없는 이유가 있어. 제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이지.
- 둘째, 화장하기 전에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이 잘 깎였는지 확인해. 북유럽 신화에는 대규모 전투로 신들이 죽고 세계가 멸망하는 라그나뢰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그 전투 때 복수심에 불타는 군대가 나글파르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온대. 나글파르는 손톱 배라는 뜻이야. 맞아. 그 전투선은 죽은 이들의 손톱과 발톱으로 만들어졌어.
- 전문가의 한마디: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면, 새 집을 사. 짓는 과정을 지켜본 곳이라면 더 좋지. 수십 년 전에 지어진 매혹적인 주택이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저택에 산다면, 네가 TV를 보면서 팝콘을 먹는 바로 그 자리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리고 아무도 네게 그 이야기를 해 줄 필요가 없거든.
- 미국의 조지아 같은 몇몇 주에서는 집에 세 들 사람이 최근에 죽은 사람이 있는지 물을 때에만 집주인이 알려 줄 의무가 있어. 묻지 않으면, 굳이 솔직히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네가 들어오라고 초대를 해야만 뱀파이어가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 매슈 월의 이야기를 들어 봐. 그는 16세기 영국 브로잉에 살았어(그래, 살아 있었어). 사람들은 매슈가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관을 묘지로 운구하던 사람들이 그만 젖은 낙엽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쿵 하고 떨어졌을 때, 매슈가 깨어나서 꺼내 달라고 관 뚜껑을 두드렸대. ... 그 지역에서는 매슈가 부활한 10월 2일을 오늘날까지 기념하고 있어. 올드 맨의 날이라고 해.
- 비행하는 동안 응급 환자가 생겼는지 사망자가 나왔는지에 따라 승무원은 다르게 대응할 거야. 아직 살아 있고 구할 수 있다면, 조종사는 기수를 돌려서 의료진과 병원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착륙하려고 할 거야. 하지만 승객이 죽는다면? 비상 상황은 끝난 거야. 우리가 보라보라섬에 착륙할 때까지 계속 죽은 채로 있을 거잖아? 서두를 일이 뭐가 있겠어? 우연히도 죽은 사람이 바로 네 옆자리에 앉아 있다면, 너는 시신과 함께 여행하기라는 평생 겪기 힘든,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경험을 하는 거지.
- 걱정하지 마, 승무원이 즉시 시신을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지 않겠어? 안됐지만, 그렇지 않아. 너는 계속 시신 옆에 앉아서 가게 될 것이라고 100퍼센트 장담해. 항공 여행이 더 편안했던 시절에는 비행기에 늘 빈자리가 몇 군데 남아 있곤 했어. 그래서 한 줄을 다 비우고 시신만 따로 옮겨 놓을 수 있었지. 요즘에는 달라. 비행기마다 빈자리 없이 꽉꽉 차 있지. 그럴 때 승무원은 항공 담요로 시신을 덮고서 꼭꼭 여며준 뒤에, "다 했다"라고 할 거야.
- 예전에(이를테면 2004년) 싱가포르 항공사는 실제로 우리가 모든 비행기에 있으리라고 여기는 식의 비밀 시신 안치실을 설치한 적이 있어. 비행 도중에 죽는 사람이 나오곤 하니까. 승객들이 "그런 비극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시도한 거지. 안치실은 에어버스 A340-500기에 설치되었고, 착륙할 때 나뒹굴지 않도록 묶는 띠도 갖추어져 있었어. ... 안타깝게도 이 기종은 없어졌고, 혁신적인 시신 안치실도 사라졌어.
- 죽은 사람과의 비행이라니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거야. 나는 시체와 함께 해도 편안하고, 낯선 시신과 몇 시간 동안 나란히 앉아 갈 수도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네가 시신과 함께 비행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네 짐 아래쪽 깊이 화물칸에 실린 시신을 말하는 거야. 시신은 늘 여기저기로 운반 돼.
- 사람들은 피가 생명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으레 생각해. 그러니까 시신의 고인 피를 수혈받을 생각을 할 사람은 아마 없겠지? 하지만 위급한 상황이라면 산 사람의 피인지 죽은 사람의 피인지 따져볼 여유가 없을 거야. 그리고 네가 죽은 뒤에 기증하는 피는 생각보다 더 안전하고 효과가 있어.
- 얼음에 담근 심장은 사망한 지 네 시간 안에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어. 간은 열 시간까지도 가능해. 유달리 건강한 콩팥은 스물네 시간, 의사들이 적절한 장치를 쓴다면 일흔두 시간까지도 가능해. 이를 '냉허혈 시간'이라고 해. ... 샤모프는 본래 건강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다면 시신의 피를 최대 여섯 시간까지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 영국 브라이턴 대학교의 고고학자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같은 초기 인류 종들이 인육을 먹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을 알아냈어. 그러나 동족을 먹긴 했어도 식용이 아니라 의식용이었어. ... 또 인육은 심장 건강에도 안 좋아! 우리 모두 식습관이 나쁘니까.
- 너는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지. "문제없어. 나는 인육을 바짝 구울 거야. 그러면 먹어도 괜찮을 거야!"
다시 생각해. 사람은 프라이온이라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지닐 수 있어. 원래의 모양과 기능을 잃었을 뿐 아니라, 다른 단백질까지 감염시켜 비정상으로 만드는 단백질이야.
- 도시 주민들은 층층이 위로 쌓아 올린 고층 건물과 아파트에 살지. 그런데 왜 죽으면 넓게 펼쳐진 땅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묻힐 것이라고 여길까? 복층 묘지를 설계한 한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어. "우리가 이미 위아래 층에서 사는 것을 받아들였다면, 죽어서 위아래 층에 묻히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끄덕끄덕.
- 네가 뇌 전문의라면 '신체 다중 감각 통합 교란'처럼 멋져 보이지만 어려운 용어로 임사 경험을 설명할 가능성이 높아. ... 하지만 더 단순한 설명을 찾아볼까? 이 기이한 빛의 터널을 경험한 또 다른 집단이 있어. 바로 전투기 비행사들이야. ... 과학자들은 터널 끝에서 빛이 비치는 현상이 망막 허혈의 산물이라고 봐. ... 네가 종교를 지녔다면, 신이 마법 같은 일을 한다고 믿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과학자들(신을 믿는 과학자도)은 뇌가 마법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즉 임종 순간이 어떠할지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거야. 나는 종교를 믿지는 알지만, 내가 죽는 순간에 전차를 탄 켄타우로스 예수가 나를 태우러 온다고 100퍼센트 확신해.
- 그리고 관은 미국 국기로 덮어. 국기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 접거나 덮지. 장례 지도사들은 어떤 행사에서 국기가 제대로 덮였는지 아닌지를 놓고서 온라인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곤 해. (올바른 방법 : 미국 국기에서 파란색 바탕에 별들이 그려진 쪽이 시신의 왼쪽 어깨에 놓여야 해.)
- 고대 이집트인의 미라는 익숙하겠지만, 그들이 아주 정교한 동물 미라도 만들었다는 사실은 덜 알려졌어. ... 고양이 미라들은 잘 감싸였고, 겉에 아주 꼼꼼하게 채색과 장식이 된 것들도 있었으며,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청동 항아리에 든 것도 있었어.
- 네가 죽어서 가족이 장례를 치르러 우리 장례식장에 왔다고 해 보자. 그들은 이렇게 말해. "그는 햄니발 렉터를 무척 좋아했어요. 관에 함께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나는 먼저 이렇게 물을 거야. "햄니발 렉터도 죽었나요?"
- 사막에 홀로 남겨지면 뜨거운 태양에 바짝 쪼그라들까? 시신이 묻히지 않은 채 사막의 모래 위에 그냥 누워 있다면 금방 말라붙을 거야. 바짝 건조되는 거지. 모래는 고양이 모래나 쌀알처럼 수분을 빨아들이는 건조제 역할을 해. (변기에 휴대전화를 빠뜨렸을 때 쌀통에 하룻밤 넣어 두면 마른다는 것을 아니? 이 시나리오에서는 네가 바로 휴대 전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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