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지금부터는 뇌피셜이며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일 뿐임을 밝혀둠!! 스포주의!
모든 것은 자의적인 해석임을 미리 밝혀둔다.
먼저 서사적인 떡밥을 열심히 풀어보자.
시스템
통칭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부도국에서 사형집행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가상현실 시스템.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지식의 일종으로 현 부도국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니며, 이에 대해 아는 자들도 극소수이다. 시스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형을 받을 죄인과 형을 집행할 집행관 뿐이다. 집행관은 '세계를 연다'고 표현되는 능력이 있는데, 시스템 내부에서 가상현실을 창조할 수 있으며 시스템 내외부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
부도국 사람들은 영혼의 죽음과 신체의 죽음을 분리해서 생각하며 백성들은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 귀족들은 잘 알지 못하나 성내에는 이미 귀신과 귀신 들린 자들에 대한 풍문이 존재한다. 시스템이 그 믿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있어 그런 믿음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사형을 언도받을 경우, 죄인의 죄가 너무 무거워 한 번의 죽음으로 그 죗값을 다 치르지 못한다면 여러 번의 죽음을 구형할 수 있다. 후생에 대한 믿음 없이 스스로 '마지막'이라고 믿는 죽음은 신체의 죽음이 아닐 지라도 '죽음'이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기에 여러 번의 사형은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도 죽음으로 인정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맞아야 할 비참한 죽음을 단 한 번으로 끝낼 수는 없다. 쉽게 죽지 못하도록 설정해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리라. 죄인은 그것으로 죗값을 치른 다음에야 진정한 단 한 번의 죽음을 받게 된다.
각 죽음은 죄인에게 가장 풀어야 할 은원이 있는 자들 중 집행관이 된 자들이 집행한다. 집행관으로 선정된 자들은 죄인과 함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자아상을 구현한 신체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일종의 환경설정 화면과도 같은, 중계와 유사한 공간, '사이'에 머물며 정해진 순서에 따라 그곳에서 한 명이 독자적으로, 또는 여러 명이 함께 세계를 연다. 죄인은 그 세계 안에서 집행관이 부여한 삶을 살게 되며, 그 세계 내의 모든 것은 집행관의 의지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집행관이 세계를 열며 가장 원한 사항을 이루는 것이 최우선이 되며 세부 사항은 집행관이 의식하지 못한 형태로 벌어질 수도 있다.
세계를 연 자는 그 세계의 모든 세계관과 규칙을 설정할 수 있다. 완전한 세계의 주인, 즉 창조신이며 그 꿈을 꾸는 자이고 관리자 권한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설정이 미비하거나 모순되어 생기는 한계는 시스템이 메워준다. 세계에 대한 그의 설계가 완벽할수록 그 내부에서 외부를 깨달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한 사람이 연 세계에서 다른 집행관들은 참관인이 되며, 그 집행과 죄인을 참관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이들의 조건과 기억 또한 세계를 연 자가 설정할 수 있다. 그 세계는 세계를 연 자의 것이므로. 그가 조정할 수 없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의지뿐이다. 참관인들은 세계에 관여할 수 있으나 세계를 연 자가 설정해준 권한 내에서만 가능하다. 그들은 꿈을 꾸는 자가 아니라 꿈을 보는 자들이며 꿈을 꾸는 자가 아닌 자들이다.
세계를 연 자는 죄인의 기억, 신체, 인격, 능력 모든 것을 설정할 수 있다. 세계에서의 죽음은 진실한 죽음은 아니다. 실제로는 죄인도, 집행관들도 죽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세계에서의 죽음이 유일무이한 죽음이라 믿지 않는 자는 죽더라도 죽지 않는다. 우리가 게임에서 죽더라도 플레이어는 죽지 않는 것과 같다. 집행관과 참관인들은 그 세계가 만들어져 열린 세계임을 알기에 진정으로 죽을 수 없다. 그 세계 안에서 죽더라도 죽는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다만 집행관의 경우 진심으로 그 죽음을 믿으면 심리적인 죽음, 즉 쇼크사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죄인은 그 세계의 밖이 있음을 알지 못하도록 설정되므로, 집행관의 의도대로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설정에 의해 그것을 구형된 횟수만큼 되풀이하여야 한다.
이와는 별개로, 이미 열린 세계는 세계를 연 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므로 내부에서 그 세계를 연 집행인을 죽일 수는 없다. 그 세계는 곧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음을 원할지라도 세계의 붕괴를 막고자 시스템이 그것을 막게 된다. 따라서 집행인이 집행을 포기하면 시스템이 사형을 대리 집행한다.
각 세계에서의 기억은 그 세계가 닫히고 나서도 남지만, 각 집행인들의 각자의 집행을 위해 죄인의 기억을 매번 지우므로 죄인은 각 세계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도국이 과연 실체일까?
진정한 실체는 조정자, 이미 사라진 선조들이 남긴 단백질 인형의 꿈일 뿐이다.
꿈을 꾸는 자가 사라지면 모든 꿈은 부서진다.
이는 자각몽과 몽중몽이다. <사라진 세계>의 나비와도 유사한 개념이다.
<사라진 세계>에서는 양자 터널을 이용한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데, 여행자가 보는 미래 세계는 과거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미 흘러온 시간으로, 변경하기가 어려운(거의 불가능한) 시간대에서의 현재를 "굳건한 대지"라고 말한다. 이는 이미 여행자가 과거의 체험한 것에 속한 자로서 그 자신을 변화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는 여러 거품 중 하나일 뿐이다.
여행자가 그 거품 안에 있는 동안 "굳건한 대지"에서의 그는 사라진다. 그 존재는 "다른 계"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양자의 시간대는 다르지만 여행자는 자신만의 타임라인에 따라 늙어간다. 목적을 달성한 여행자가 그 거품을 떠날 때, 여행자가 방문함으로써 실체가 되었던 거품은 터져 사라진다. 여행자에게 실체는 "굳건한 대지"에서의 삶뿐이지만, 과연 그러한가?
자신이 거품에 속한 자라는 걸 아는 일부는 여행자를 발견하면 그를 감금해 돌아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이를 "유리병에 갇힌 나비"라고 한다. 그가 돌아감으로써 자신이 깨어진 꿈으로 부서질 것이라는 것을, 그런다고 해서 '내'가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세계를 완전히 똑같이 다시 살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저지르는 짓이다.
"나비"가 존재하는 한 그 거품은 하나의 실체가 되므로.
"이 여섯 명이 여섯 개의 세계에서 여섯 번 피고의 사형을 집행할 것이며, 사형 방식은 각 집행관의 재량으로 결정할 것이다. 피고는 각 세계에서 생과 죽음을 겪을 것이며 각 생의 관계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사형이 끝남과 동시에 죄수는 진정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이 선고는 모든 권위에 우선하는 부도국의 신성한 법에 의한 것이며 무엇도 이 선고를 되돌릴 수 없다."
미친 자
무진. 누리다함. 수명국의 왕.
피고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하였으며 하나뿐인 동생의 목숨을 잃었다. 그는 왕이었고 그에 어울리는 자였으나 스스로 자신보다 자신의 동생이 왕의 자격이 있는 자라 믿었다. 그래서 부도국의 시스템 안에서는 죽은 자도 되살릴 수 있다는 말에 집행관을 수락하고 동생의 기억과 함께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판사들은 귀신 들린 자들이었고 (후에 조정자에서 부가 서술한다) 그들이 무진에게 넣은 인격은 동생의 것이 아니라 조정자의 인격이었다.
이미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조정자를 왜 산 자에게 실어 다시 시스템 안으로 넣었는가? 이는 조정자의 의지가 아니라 그를 왕으로 추대하는 신도들의 의지였으며 (그러나 조정자의 의지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실체가 아닌 정신적인 인격으로 출입자를 판단하는 시스템의 규칙을 이용해 그들의 왕이 '왕이 될 자'를 먹고 당당한 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미친 자의 세계
미친 자의 세계는 첫 세계였고, 노인과 미친 자가 함께 연 세계였다. 그는 단독으로 세계를 여는 것을 포기했다.
이 세계에서 피고는 조폭 조직의 양아들이었으나 보스가 가장 제거하고 싶어 하는 존재였다. 보스가 내린 청부 지시에 따라 찾아간 곳은 함정이었고, 피고는 그것을 알면서도 찾아갔다. 그에겐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내기. 시계. 생존.
후에 밝혀지지만 반복되는 첫 장면은 피고가 열린 세계에 최초로 접속하는 순간이다. 이전까지의 기억은 모두 잊고 주입된 기억과 설정된 신체에 적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자신이라 믿는 것이 송두리째 바뀌었어도, '나'는 '나'일 것인가? 피고는 처음부터 자신의 생과 사를 넘어서서 '나'를 유지하는 훈련으로서 이 형벌을 받아들였다. 그래야만 '귀신'을 자신 안에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도 '나'인 채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 수밖에 없는 내기이지만 '찰나'는 존재한다.
미친 자는 피고의 눈에 이렇게 묘사된다.
-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가늘고 얇실한 턱수염이 난 사내. 어깨를 움츠려 목이 없는 듯 보였다. 눈이 확대되어 보이는 두꺼운 안경을 썼고 모자부터 양복, 목도리와 장갑과 구두까지 온통 흰 색이다.
그의 두꺼운 안경은 무진이 세계를 왜곡된 눈으로 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조정자의 특징을 가려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가 가져온 검은 하드디스크는, 무진은 동생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조정자'다.
시스템 안에서 정보체는 실체를 가진다. 그것을 '실존'으로 믿을 것인지는 개인의 가치관에 달려 있겠다. 그것은 내 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나이되 내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한 가지 정도는 그렇게 믿고 싶은 현실이 존재한다.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는 가족으로서의 비통함과 지켜야 할 나라가 있어 죽을 수 없는 왕으로서의 책임감은 각자의 무게를 가지고 이미 죽은 자를 진정한 왕이라 믿게 한다. 그 믿음 하에 생각과 슬픔은 강화된다. 그때에 무진이 죽었다면 이 고통도 사라질 것이고, 나라도 왕을 잃지 않은 것이 된다. 무진은 자신은 잠시 진정한 왕의 대리를 맡고 있을 뿐이며, 그의 동생이 장성하여 왕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믿는다. 그런 소중한 그의 왕을 피고가 죽였다. 그리하여 왕국은 진실한 왕을 잃고 쭉정이 왕만 남았다. 피고에게서 사과를 받고, 왕을 되살려 돌아가야 한다. 그의 진정한 복수는 피고의 죽음이 아니라 왕의 귀환이다. 그것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무진의 죽음을 요구한다.
피고와 무진의 기억을, 이 세계의 왜곡을 통해 재생하자면 다음과 같다. 너무 성장한 수명수산의 보스를 죽여 그 시신을 가져오라 명한 피고의 보스. 그 보스의 의자에 붉은 보석과 봉황 세공이 나타났다 말았다 한다. 이는 부도국에서 같은 명령을 했던 그의 아버지, 왕에 대한 기억과 겹쳐진 것이다. 그러나 피고의 진정한 왕은 수명국의 왕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두 명령이 상충될 때 피고는 어느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명령받은 대상의 동생을 대신 죽이고 보스를 설득하려 한다.
- "형이 아니더군요. 놈은 내버려 둬도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할 거고, 우리에게 위협도 안 될 겁니다. 하지만 놈을 죽였다면 이 꼬마가 왕/보스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놈들의 세력은 점점 확장되었을 거고, 드높은 치세에 백성/꼬붕들은 놈들에게 몰려갔을 거고, 그랬으면 전하/보스의 자리도 얼마 가지 못했을 겁니다."
- "사죄한다. 이 사죄의 의미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했던 거짓말에 대한 사죄다. 나는 그 어린아이에게서 왕의 징후를 보지도 않았고, 너를 대신할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아버지가 나를 의미 없는 싸움에 내보냈고 나는 그 지시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네 조직(하마터면 왕국이라고 할 뻔했다)을 무너트리고 싶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일어날 혼란도, 이어질 전쟁도(또 전쟁이라고 하는군) 세상에 풀어놓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너와 네 왕국(왕국이라고 해버렸군)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이었다. 내가 세상을 농락했다. 세 치 혀로 아버지를 속였고 너를 속였고, 네 왕국과 내 왕국 모두를 농락하여 네 동생의 목숨으로 너와 네 왕국을 대신했다. 내가 이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도 이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아버지가 잘못된 전쟁을 했음을 인정하는 일이며, 그 싸움에서 죽은 내 부하들의 넋을 모욕하는 일이며, 네 동생의 죽음마저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너에게 사죄한다. 내가 너를 미치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자격 없는 자라고 믿게 만들었다. ...."
들었어야 할 말, 그러나 들어서는 안되었던 말을 들은 무진은 그대로 피고의 손에 다시 한 번 죽는다. 어떻게 세계를 연 자가 죽을 수 있는가? 심리적인 죽음이기 때문에?
그러나 양명의 경우와는 달리, 세계는 곧바로 닫히지 않았다. 이것은 무진이 참관인이었음을 의미하는가, 공동 집행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인가? 이것을 의문으로 두기 위해 조정자는 첫 세계를 공동으로 열었다. 나는 무진은 참관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진이 덮어쓰고 들어온 그의 동생의 인격(조정자)은 하드디스크의 형태로 나타났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조정자'는 사실 이미 시스템 그 자체다. 따라서 하드디스크가 멀쩡했더라도 이미 그는 자신의 실체를 구현할 수 있었겠지만 첫 세계에서는 마치 디스크의 파괴로 그가 자유를 얻은 것 같은 뉘앙스를 준다. 하지만 피고와 조정자의 내기를 보면 그는 이미 무진과 분리할 수 있었거나, 무진을 흡수하고 완전히 쓰여 있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집행관의 자격이 있는 것은 조정자였거나, 혹은 조정자와 무진 둘 모두였다.
따라서 미친 자가 연 세계는 사실 양명과 조정자가 함께 연 세계였다. 처음부터 마지막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무위로 돌리기 위한 세계였다. 함께 들어온 다른 집행관들이 자신을 무진으로 생각하게끔 하기 위해 무진은 첫 세계에서 죽었어야 했고, 그것이 의지대로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무진이 참관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중간 서술에서 '그 자' 역시 동일한 법칙을 적용받지만 다만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서술이 나오고, 세계를 연 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의 기능은 법칙이므로.
즉, 내 생각에는 무진은 처음부터 세계를 연 자가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집행하지 못한 자이다.
이후 등장인물들이 미친 자라고 생각한 자는 조정자였다. 그 이후 등장하는 검고, 죽은 자 같아 보이는, 고개를 푹 숙인 검은 미친 자는 사실은 조정자였다. 마지막 세계에서 다른 이들이 무진의 시체라고 생각한 것도 조정자였다. 스스로 목에 칼을 꽂고 기다린 기억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떻게 무진이 완전히 사라졌는가? 설정대로라면 세계 안에서의 죽음이었을 것이고 그는 '사이'에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 안에서의 심리적인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될 수 있다. 허용 한계를 넘어선 진실은 그릇을 깨트려버린다.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자, 혹은 죽기를 바라는 자는 그 상태로 머물게 될 것이다. 이는 무진의 죽음이 심리적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죽음을 맞은 자가 더 이상 '사이'나 다른 세계에서 의지를 가진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양명을 보면 알 수 있다.
경험 없는 집행관들이 열었던 첫 세계였고, 당연히 자신들에게는 '죽음'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집행관들은 동요한다. 어떻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죽을 수 있는가? 그들은 두 집행관이 함께 연 세계라 시스템이 두 명 중 한 명만 살아남아도 된다고 판단했으리라 생각하고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또한 그 이후로 나타난 미친 자의 모습이 다소 이상한 것도 그가 죽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어진 이후의 세계들에서 그들의 모습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반영했을 뿐이다. 세계 안에서 죽었다고 해서 급격한 자아상의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죽을 수가 없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9막에서 거대한 무진이 나타나는 것은, 선우가 등장하는 것과도 같다. 죽은 자라도 그를 기억하는 자의 기억에 의해 세계에 나타날 수 있다. 그가 왕으로서의 위엄을 가졌다는 것은 피고가 한 사과가 진심이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나는 조정자가 열었던 신의 세계와 기계의 세계의 두 거인이 무진이었다고 생각한다. 존재하나 스스로 죽음을 맞아 사물화 된 자로. 같은 의미로 야차는 양명이 아닌가 한다. 이건 좀 멀리 나간 생각일 수 있겠지만.
미친 자의 세계에서 피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 나는 이곳에서 죽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 방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 누구 마음대로. 너희들이 내 죽음의 때를 정했을지라도 그 방식은 내가 정한다. 너희들이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내 계획도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너희가 탁자 앞에 앉아 내 죽음을 두고 협상할 작정이라면 그곳에 내 자리도 마련해야 한다. 이 목숨의 소유권은 아직 내게 있으니 빼앗아 가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의 생각은 이 세계 안에 한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체를 보았을 때 이는 시스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본질은 '자신의 계획'의 달성이고, 그를 위해 그는 죽을 것이나 살아야 하고, 살 것이나 죽어야 한다.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죽음에서 시스템의 예상을 뛰어넘는 삶으로 자신을 증명해 시스템이 관심을 가질만한 개체가 되어 그를 유혹해야 했다. 나에게 들어오는 것은 퇴보가 아닌 진보임을 시스템이 한순간이라도 믿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를 품은 채 '나'로 죽을 수 있을 테니까.
피고가 싸우는 도중 밟아 부순 하드디스크는 그 자체로서 보다는 암시적으로 무진과 함께 들어온 '시스템'을 암시한다. 또한 기록과 정보가 실체일 수 있을지에 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피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 무슨 의미였을까. 동생이 쓰던 일기장이라도 들어 있었을까. 사진이나 동영상이라도 저장해놓았을까. 하긴 시체가 없으면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을 대신 관에 넣기도 하니까. 하지만 정말 그런 의미일까?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인데도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모든 일의, 수많은 운명과 인생의 시작인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의 끝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어쩌면- 일이 잘 안되면). 곧 죽을 놈에게 무슨 남은 일이 있고 남은 인생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만나게 되는 "턱이 뾰족하며, 눈꼬리는 지나치게 올라가 얼굴 전체를 양 옆으로 들어 올리는 것 같고 초승달처럼 가늘고 한가운데가 솟은 눈이라 웃지 않을 때도 웃는 듯 보였다."는 괴상한 자. 그는 피고를 죽이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하며 예정된 길을 벗어나는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조정하기 위한 시스템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이제 6명은 6명이 아니다. 7번째 집행관은 조정자이기도 하고, 피고이기도 하다.
소심한 자
소암. 작은뜰바위. 피고의 사촌동생이다. 피고에게 해를 입은 모든 귀족을 대변하여 이 자리에 섰다.
집행관들 중에서 피고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가장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의 자기 인식은 신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제한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과, 그의 세계에서 피고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가 집행관인데도 죽일 수 없었음 등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9막에서 수경의 입을 빌어 표현된 그는 왕위에 욕심이 있는 자다.
- 사람에 따라 행동거지가 잘도 바뀌는 놈이다.
- "주인님 자리를 노리고 있기는 하지만 소심해서 아무것도 못할 놈입니다."
소심한 자의 세계
피고는 말을 할 수 없어야 했다. 이는 복선이 되기도 하는데, 조정자가 연 세계에서 내기의 결과가 나오는 시점은 피고가 '말을 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피고가 말의 힘을 쓰는 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스템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말'을 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참관인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함이라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첫 번째 세계에서 피고는 말이 자유로웠는가? 그것은 양명이 함께 연 세계였기 때문이다. 양명은 그에게 듣고자 하는 말이 있었다.
소심한 자의 세계에서 피고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이지만, 그는 결국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소심한 자의 세계가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었음을, 피고가 이 세계가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조정자는 대담하게도 고문관으로 등장하여 피고와 접촉한다. 다른 참관인들은 그를 세계의 일부로 여길뿐이다. 미친 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직 세계를 여는 것에 익숙지 않아 타인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구분할 능력이 부족했던 점,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던 점, 그리고 원한다면 죄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올 수 있으니 아직 죽음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이 시스템이 처음이라는 것은 다들 죽음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는 말이므로- 미친 자가 피고를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라는 점등을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다.
2막은 깊은 설정과 복선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했던 장이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채 관음하는 자들의 세계, 콜로세움. 비인간적인 것을 탐하는, 죽음을 보고 싶지만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은 이들의 세계다. 이는 죽음의 대한 대가로 죽음을 요구하며 그것을 보고자 하는 참관인들을 나타내는 동시에 독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세계는 강렬하지만 단조로운 이미지이다.
창을 내밀어 그 끝으로 시계를 받는 것은 기사들의 마상시합에서 따온 이미지를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연인이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기사들은 때로 그를 응원하는 귀부인의 손수건을 받아 창 끝에 매달곤 했다. 그러나 신체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해 귀부인들은 높게 솟은 창 끝에 그 손수건을 건네곤 했는데, 여기서 죄인은 미인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더럽혀진 기사라는 의미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그녀와 피고가 지키고자 했던,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사실 하나임을? 제약을 걷어낸 피고의 본심?
나는 여기서 2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하나로 좁혀야만 하지는 않는 열린 막으로 생각한다.
그녀가 공격을 받지만 소심한 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는 본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가 의도한 부분이 전혀 없다면 그녀는 참관인의 자격을 지닐 뿐이고, 조정자는 시스템의 법칙의 위배 없이 그녀를 죽일 수 있다. 소심한 자가 왕위에 관심이 있다면, 어쩌면 그의 무의식은 그것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중요하지는 않다. 단지 참관인은 죽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서 읽어야 할 부분은 간수와 피고의 대화다.
- '경의를 표하고 싶으면 뭐 먹을 거라도 입에 넣어주든가.'
간수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꽤나 정신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하는지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째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이 장면에서 피고는 육성으로 말을 했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간수는 어떻게 그것을 들을 수 있었는가?
이후 피고는 실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이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정말로 내가 그런 일을 했단 말인가? 불현듯 의문이 솟았다. 내 기억에 남은 그 짓들을, 정말 내 이 몸이, 내 손이, 내 심장이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내 정신은 이토록 또렷한 걸까? 이토록 분명한 정신으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 어째서 이 몸이 그 모든 기억을 낯설게 느끼는가? 혹시 나를 집어삼킨 악귀가, 가혹한 신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리기라도 했을까? 정신병자에게 고통을 주는 고전적인 치료법이, 영 효과가 없는 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좋으련만! 적어도 죽음만은 제정신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죽음만은 제정신으로, 라는 부분이 복합적으로 읽힌다. 그의 죽음은 조정자를 껴안고 '그'로서 제정신을 유지하며 맞아야 하는 죽음이기도 하고, 반대로 '그'가 아닌 상태여야만 맞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간절한 바람은 공포와 닿아있다. 때로 갈망은 그 자체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이루어지지 않을 순간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자신의 삶을 당시의 감정적 필터 없이 마주하는 자는 엄청난 괴리감에 고통받을 것이다. 사람은 불합리한 선택들에 타당성을 부여하며 살아간다. 그 주관적 타당성이 배제된 채 '나'라는 자각만을 가지고 다시 그 상황을 지켜본다면, 그것은 너무나 깨끗한 거울이라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은 뇌를 통해 현실을 왜곡시키고 기억을 변형시킨다. 모든 자는 자신 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것들이 때로 겹쳐 중첩된 세계를 우리는 현실로 인식한다. 그러나 모든 세계는 그 세계를 연 자가 죽는 순간 끝이 난다.
- 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해내고 나니 조금 당혹스러워졌다. 어렴풋이, 내가 몸을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내 기억보다 뛰어날 거라는 기괴한 기분이 들었다.
- 하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놀라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안다. '이것이 나타나는 원리를 안다'. 모두가 이해 가능한 범주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규칙을 무리하게 쓰고 있군. 어리석은 놈. 그럴수록 내가 세계의 본질을 깨닫게 될 가능성은 높아지는데.)
- "'아무리 배가 불러도 밥알 하나 정도는 더 먹을 수 있다'라는 문장이야. 너는 어찌 생각하지? 그 전제에 의하면 사람은 무한히 밥을 먹을 수 있어.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 없잖아. 선생님은 밥알 하나조차도 더 먹을 수 없는 배부름이 어디엔가 존재하므로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하시더군. 하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아."
살랑거리는 바람이 코에 와 닿는다. 그의 체취도 바람에 섞여 있다.
"나는 이 논리는 무한이 존재하지 않으며 계가 연속적이지 않다는 증명이라고 생각해. 전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유한의 입자로 나뉜다. 우주를 잘게 분해했을 때 나타나는 것은 무한이 아니라 개별의 입자야. 우주는 유한하며, 시간도 논리도, 수학도 이성도, 생명도 사람도 모든 것이 유한해. 작은 단위에도 큰 단위에도 모두 한계가 있어. 그러므로 무엇이든, 그것이 한계가 있으며 언젠가 소멸하며 사라진다는 것을 가정하지 않는 모든 논리는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생각해."
"내 생각은 달라."
그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의 등 뒤에 비친 햇빛이 눈부시다.
"그 문장에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숨어 있어. 시간에 관한 조건을 달지 않았다고. 그리고 밥을 먹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단 말이지. 만약 누군가가 시간을 충분히 들여 천천히 밥을 한 알씩 먹는다면, 앞에서 먹은 밥은 소화가 될 거야. 24시간에 걸쳐 한 공기의 밥을 천천히 먹는다면, 다음 날에도 충분히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있어."
그가 미소를 짓는다. 나는 보리 줄기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충분한 인내를 갖고 시간을 들여 어떤 일을 한다면, 그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이 우주가 사멸할 때까지 무한을 향하여 밥을 먹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문장은 계속해서 분열하는 그림자 늑대와의 전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결말은 이 문장 안에 들어있다. 이승과 저승을 걸고 수수께끼를 나누었던 두 형제처럼, 이 세계를 걸고 나눈 문답이다.
무한에 가까운 생을 살아가며 자아를 덧씌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조정자와, 유한자로서 그의 생 하나하나를 흡수하며 '나'를 유지하고자 하는 흑영의 싸움이다. 그리고 흑영 또한 조정자이기도 하므로 - 결국 생은 끝나지 않는 세계이다. 유한한 개개인의 삶들은 무한으로 이어진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죄인이 우리를 알아보는 것 같소. 전 세계의 기억이 남아 전해지는 것 같소."
"집행관이 전 세계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죄인의 기억을 만들어 넣는 사람이 집행관이기 때문입니다. 집행관은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사안은 시스템이 집행관의 정신을 참조해 가다듬습니다. 그 과정에서 집행관의 생각이 은연중에 죄인에게도 전해지는 것입니다."
2막은 인간을 말하는 막이었다. 내 안에 내재된 능력, 기억, 신성 같은 것도 떠오른다. 의지대로 세상을 창조한다는 설정과 더불어서 그렇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제약이기도 하다. 내가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내 세계 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나의 모순은 세계의 균열을 가져온다. 닫힌 계의 모든 것은 순환한다. 핵융합, 원소 변이,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 나의 호흡이 멈추면 함께 순환을 멈춘 탄소들의 비율로 흘러간 시간을 측정한다. 그러나 그 탄소들은 결국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주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탄소들이 있다면 흘러가는 탄소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은 총 10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사 떡밥에 대해 떠들고 나면
설정 떡밥에 대해 떠들어 볼 생각이었는데
단 2막 만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말았다.
책을 다시 한 막씩 살펴가며 수정까지 할 생각을 하니
일단 여기까지 하고 뒷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으로.....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는 꼭 하고 싶기 때문에
아마 이어서 쓰긴 쓸 것 같다. 근 시일 안에. 아마도.
그런 이유로, 리뷰1.
<작가의 말 중>
어느 날 무심히 어떤 서두를 썼는데, 쓰면서도 왜 쓰는지를 몰랐다. 그 후에는 그 서두를 써 놓은 사실마저도 덮은 채로 잊어버렸다.
... 지난 메모를 뒤적이다가 그 서두를 발견 했는데 폭발하듯이 다음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신없이 뒤를 잇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생각이 쓰는 속도를 앞서고 지금 장면을 쓰는 사이에 다음 장면이 떠올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주인공은 내 의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움직였고 '조정자'없이는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쓰다 보면 결말이 나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다음 세계에 대한 구상을 하는데 정작 세계가 펼쳐지면 엉뚱한 것이 생겨났다. 나는 이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일어나는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정신이 들고 나니 나는 내가 쓴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낯선 세계를 손에 쥔 채 황망한 기분으로 서 있었다.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스스로 생겨난 소설에는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 썼다'고 믿은 시점에서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다.
작품을 완성한 날에 꿈을 꾸었다. 환상에 가까운 체험이었다. 그건 내가 긴 세월 동안 반복해서 꾸었던 꿈이었다. 나는 집 안에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문을 나가면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문을 열면 그 너머에 또 문이 있고 방을 나가면 또 방이 있어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는 꿈이었다. 너무 힘들었고 울고 싶었다.
갑자기 나는 방향을 바꿔 그 집의 가장 안쪽에 있는, 내가 가장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방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감옥처럼 어둡고 좁고 지저분한 방이었다. 서까래가 무너져 내려 내게 상처를 입혔다. 나는 거기 선 채로 내 강렬한 두려움을 응시했다. 마음이 단단해졌고 편안해졌고 또 확고해졌다. 1분도 견뎌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평생이라도 견뎌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때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 자아 하나가 내려와 나와 합쳐졌다. 그 순간 문이 잠겼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이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혼으로는 이해한다. 비로소 이 소설을 쓴 사람이 나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도 안다. 내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이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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